제28장 전란 3
군사들의 사기는 본래 민심에서 나오는 법이었다.
거듭되는 적의 침략과 횡포에 이를 갈며 한번 해보자고 벼르던 민간의 결의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비탄과 탄식이 다시금 민심을 휩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란의 사상자가 기천이니 그 인척과 벗, 사돈에 8촌까지 합치면
피해를 본 사람은 수만 명에 달했다.
외적의 침입에 격분하던 신라 사람들의 적개심은 오히려 내부로 향하여 셋만 모이면
조정을 욕하고 그런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했다.
“어째 허구한 날 내란인가. 무슨 놈의 나라가 이 모양이야.”
“북은 밖에서만 치지. 밖에서 치고 안에서 맞는 건 세상에 우리뿐일세.”
“신라 사람으로 태어난 죄가 크네.
하늘엔 별도 많고 천하엔 나라도 많은데 하필이면 우리 부모는 신라에서 나를 낳아
이 고생을 시키나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집 있고 땅 있는 사람들이야 일궈놓은 재산이 아까워 못 간다지만
우리같이 서발 막대 밤새 휘둘러도 거칠 거라곤 한줌 달빛밖에 없는 생짜 빈털터리야
무슨 미련이 있겠나?
어디든 가서 일하고 밥 먹고 사는 거야 한가질세.
전란, 내란 없는 데로 가서 사람답게 살고 천수나 누리세.”
떠나면 그뿐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탐라(耽羅:제주도)나
왜국(倭國:일본)으로 떠나기도 했고, 문물이 창성하고 살기가 좋다는 당나라로 가려는 이도
꽤나 있었다.
산간에는 없어졌던 도적들이 다시 들끓고 민간에선 전란의 공포와 인생의 무상감이 퍼져
패륜이 날뛰고 미신이 성행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고 예를 섬길 리 없었다.
노비가 상전을 범하고 가짜 중이 활개를 치며 군역을 징발하면 장정들이 전부 달아나는 마을도
한둘이 아니었다.
신라 조정에서는 내란으로 무너진 법강과 풍기를 바로잡고 어지러운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신왕의 연호를 태화(太和)로 고치며 화합과 단결을 호소했으나 그따위 구호로 다스려질 민심이 아니었다.
김유신의 1만 군사는 대부분이 전날 가혜성을 공취할 때의 바로 그 군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때와 같은 승병과 맹졸들이 아니라 마치 짚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허수아비들 같았다.
하물며 백제군의 수장은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의직, 그는 3만 군사 가운데 추리고 추려서 뽑은
3천 군사를 두 패로 나눠 감물성과 동잠성을 동시에 공격하며 무섭게 기세를 올려대니
김유신의 군사는 맞서기만 하면 달아나기 바빴다.
양성(兩城)에서 수십 차례 교전이 있었지만 신라군은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김유신은 군사들이 맥 빠지게 싸우는 모습을 보며 크게 탄식했다.
그때 유신의 비장인 김문영이 말했다.
“이대로는 어렵겠습니다.
병부에 군사들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하십시오.”
그러자 유신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수가 아니다.
문제는 싸우기도 전에 달아나려는 우리 군사들의 사기다.”
“숫자가 더 많아지면 사기가 절로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그건 네가 전쟁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10만 대군이 와도 지금과 같으면 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말씀인지요?”
“글쎄다. 며칠만 더 두고 보자.”
이튿날도 양측에선 서로 군사를 내어 교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김유신은 감물성 성루 위에서 양군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급히 징을 쳐서 군사를 거둬들이곤 했다.
그때마다 김유신의 탄식이 이어졌다.
“양성을 잃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부럽구나, 의직의 군사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저다지도 용맹하단 말인가!”
그 다음날도 김유신의 군사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성안으로 쫓겨 돌아오자
의직은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 말했다.
“저것이 정말 김유신의 군대인가?”
그는 가소로운 듯 웃음을 금치 못했다.
“윤충의 재주가 의심스럽구나.
저따위 오합지졸에게 연거푸 당했다니 개도 웃을 일이다!”
의직은 김유신이 나타났을 때부터 잔뜩 긴장하여 수십 가지 대책을 세우고
경계를 철저히 했으나 며칠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그만 시쁜 마음이 절로 일었다.
“내일은 감물성과 동잠 성으로 나누었던 군사들을 모두 한곳에 불러 모아라.
저따위를 무서워하여 굳이 두 패씩이나 군사를 나눌 까닭이 없다.
총력전을 펼쳐 우선 감물 성부터 얻고 볼 일이다.”
이튿날 의직은 양성으로 나눴던 군사를 자신의 군영 앞에 집결시키고 힘과 기세를 다해
감물 성을 들이쳤다.
김유신은 무심코 군사를 내었다가 사방에서 몰려오는 갑절의 적군을 보자 오히려 기뻐하며 소리쳤다.
“이제 됐다! 적을 한곳에 모았으니 저들만 물리치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그는 교전 후 처음으로 칼과 방패를 들고 직접 군사들을 독려하며 전장으로 달려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반나절 싸움에서 신라군은 크게 패하여 다시 감물 성으로 쫓겨 왔다.
연일 기백 명의 군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김유신은 관을 만들어 죽은 군사들의 시신을 한쪽에 모아놓고 그 앞에서 장수와 군사들을
모두 불러 말했다.
“나는 평소 신라 군사 하나의 목숨이 백제 군사 열 명의 목숨과 같다고 믿어온 사람이다.
내일은 반드시 적군 수천 명을 죽일 것이다!”
장수들은 기가 막혔다.
적군의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났으니 당연히 원군을 요청하거나 싸움을 그만둘 줄 알았는데
김유신은 도리어 열 배의 보복을 다짐하며 결전의 의지만을 불태우니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내일도 교전을 하시겠는지요?”
보다 못한 문영이 묻자 김유신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성밖에 적을 봐라!
교전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저놈들을 모조리 잡아 죽일 수 있겠느냐?”
“그러다가 오히려 우리가 전부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죽으면 죽는 게지 그게 대순가?”
김유신이 태연히 반문했다.
“사기가 살아나면 이기는 것이고 끝내 살아나지 않으면 지는 것이다.
승패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것은 만 년 전부터 있어온 병가의 법칙이 아니냐?
나는 승패나 생사를 지금 생각하지 않는다.
칼을 들고 전장에 나왔으니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울 따름이다.”
병영으로 돌아간 장수들은 휘하의 군사들에게 김유신의 뜻을 전했다.
“대장군은 감물성 앞에서 죽을 각오를 한 게 분명하다.
원군도 청하지 않고 싸움을 그칠 마음도 없으니 어찌하나?
우리는 전부 사지에 들어왔으니 살려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