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7장 안시성 31

오늘의 쉼터 2014. 11. 9. 16:12

제27장 안시성 31

 

 

 

어관이 삼도대감 왔다는 기별을 듣고 나오다가 관사 들머리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천존을 만났다.

천존이 다짜고짜,

“자네 어디로 가는가?”

하여,

“삼도대감께서 오셨다기에 마중을 나가는 길입니다.”

하니 천존이 웃지도 않고,

“여보게, 삼도대감은 나중 만나고 나부터 좀 보세나.”

제가 삼도대감인 것도 잊은 듯 말 얘기를 꺼냈다.

“그 말이 지은 죄를 좀 경감해주시게나.”

“글쎄올시다. 살주마가 돼놔서 죄가 무겁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살주마는 아니지.”

“살주마가 아니라니요?”

“살주마야 주인을 해친 말이 아닌가?

그 말은 주인을 해친 적이 없네.

오히려 죽은 주인을 그리다못해 제 목숨까지 내놓으려 한 기특한 말일세.”

“어쨌거나 사람을 물어 죽인 말이 아닙니까? 짐승이 한 번 사람을 물면 자꾸 뭅니다.”

“내가 골라가며 물라고 가르치겠네.”

“골라가며 물다니요?”

“이 사람아, 전쟁이 나면 싸움터에 타고 나가서 적군을 물라고 가르치면 되지 않겠는가?”

“원 나리도……”

어관이 웃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사뭇 음성을 낮춰 속삭였다.

“그럼 말총만 베어오십시오.

대감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야 눈을 감아드린다지만 위에 처벌한 흔적은 보여야 합니다.”

“어따, 봐주는 김에 그냥 화끈하게 봐주게나.”

“마정이 까다롭습니다.

말편자 하나만 잘못 박아도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게 마정입니다요.

아니면 차라리 승부령 어른을 찾아뵙고 부탁을 드리지 그러십니까?”

천존은 신왕이 즉위한 뒤 국원 소경에서 돌아와 승부령에 오른 백룡(白龍) 영감의 깐깐한 얼굴을

떠올리고 이내 체머리를 흔들었다.

“관두게. 내가 말총을 베어옴세.”

천존이 허둥지둥 대궁 마구간으로 되돌아오니 찬간자가 그때까지 여물통에 주둥이를 박고 있다가

곁눈질로 천존이 온 것을 알고 꼬리를 두어 번 흔들었다.

천존이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총인들 어찌 네 것을 베겠느냐.”

하고는 관리를 다시 불러,

“말총 한 벌만 구해주게나.”

하며 승부에 갔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 관리가 웃으며,

“그야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마판(馬板)에만 가도 널린 게 말총입니다만 문제는 푸른빛 도는 말총이 귀하니

영판 그런 것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어디론가 갔다가 한참 만에 구해온 것이 갈색 말총이었다.

“흰말 말총보다야 그래도 이게 비슷하지 않습니까요?”

관리가 머리를 긁적이자 천존이 대뜸,

“됐네. 그거면 충분해.”

하고는 말총을 낚아채듯 가지고 다시 승부의 어관을 찾아가 갈색 말총을 훌쩍 집어던지니

어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찬간자 말총이 왜 이 모양입니까?”

따지듯이 묻는 것을 천존이 팔을 휘휘 저으며,

“말도 말게. 그놈의 말이 식음을 전폐하고 얼마나 모질게 앓아댔으면 그 좋던 푸른빛이 모조리

그 모양으로 변했지 뭔가. 조금만 더 늦었어도 흰말 말총을 들고 올 뻔하였네, 껄껄.”

말을 마치자 손을 흔들며 잽싸게 사라지니 어관이 어이없는 얼굴로,

“그럴 수도 있나?

 내가 말고기 삶아놓으면 말씹내, 말좆내 다 맡는 사람인데 저런 소리는 또 금시초문일세.”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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