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안시성 29
국반이나 월명부인은 모두 타계한 뒤여서 갈문왕의 사가에는 승만이 별배들만 데리고 혼자 살았다.
대신들이 사가로 가서 그동안 일어났던 일과 조정 내부의 비밀들을 하나도 숨김없이 모두 고한 뒤
즉위할 것을 엎드려 간청하니 승만이 사촌 언니 덕만의 참혹한 종말에 충격을 받아 연신 눈가를
훔쳐대며 대답 없이 한참을 앉았다가,
“나는 번거로운 것을 싫어해 남들이 다 가는 시집도 안 간 사람입니다.”
이렇게 입을 열고는,
“그러나 비명에 가신 언니의 뒤를 생각하고 또한 계림의 마지막 성골로서 7백 년 역사에 유종(有終)의
아름다움을 고려한다면 대신들의 청을 거절하기도 어려우니 꼭 한 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하였다. 대신들이 말도 듣기 전에 미리 약속부터 철석같이 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데 승만의 당부는 신기할 정도로 알천의 말과 같았다.
“덕만 언니께서 보위에 계시는 동안 바른 정사를 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여주라고
업신여기며 깔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혹은 서(書:서경)를 들먹이고 혹은 역(易:역경)을 들먹이며 하늘같은 임금을 암탉과 암퇘지에
비유하였으니 급기야 불충한 자들이 나타나 이런 참변이 생긴 것도 일견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지요?
돌아가신 언니께서는 저를 만날 때면 늘 그 일로 마음을 쓰셨고,
여자로서 차마 하지 못할 일이 군주 노릇이라며 괴로워하시는 말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남의 나라에서 뭐라고 하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주가 모란꽃을 보내 희롱하고,
서적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리로 욕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좋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조정에서, 엄연히 계림의 신하와 문무 백관들이 자신들이 섬기는 임금을
스스로 깔보고 다투어 비하하는 일만은 참을 수 없습니다.
남녀의 구분은 여염과 저자에서나 있는 것입니다.
글을 읽고 학문을 하는 데도 없는 것이 남녀의 구분이거늘 하물며 조정과 사직의 일이겠습니까?
하니 앞으로 누구라도 여주라고 깔보는 소리가 들린다면 나는 그날로 임금의 자리를 박차고
다시 이리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 약속을 분명히 해준다면 조정의 뜻에 따라 대궐로 가지요.”
대신들은 기운을 합치고 목청을 높이면서도 속으론 알천의 혜안에 또 한 번 탄복했다.
이리하여 승만은 사저를 나와 보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성골 마지막 임금인 훗날의 진덕여왕(眞德女王)이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그날로 비담과 염종을 잡아죽이고 대인과 여운을 비롯해 모반에 연루된
도당 30여 명과 그 구족을 모조리 참수형으로 다스렸다.
아울러 선왕의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狼山)에 모셔 성대히 장사지냈다.
2월에는 알천을 상대등으로 삼았고, 난이 진압된 뒤 향군을 이끌고 압량주로 돌아간 김유신에게는
이찬 벼슬을 주었다.
또한 전쟁에서 이긴 고구려의 침략을 우려해 수승으로 하여금 우두주(牛頭州:춘천) 군주로
삼아 북방을 정비했다.
신라에서 일어난 내란 소식이 당에 전해졌을 때 이세민은 요동 정벌의 후유증 때문에 정사를
태자인 이치25)에게 맡겨놓고 있었다.
이치는 신라의 사신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듣자 곧바로 지절사를 파견해 선덕여왕을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추증하고 승만 여주를 주국낙랑군왕(柱國樂浪郡王)에 봉했다.
선덕여왕 즉위 때와는 달리 당이 이처럼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고구려 정벌의 실패가 가져온
불가피한 태도 변화였다.
황제가 친정(親征)하고도 꺾지 못한 강적을 지척에 두고 공연한 트집으로 우방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동 정벌의 실패는 이처럼 당나라 외교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혼자서도 능히 만방을 아우를 수 있다는 자만심에서 벗어나 우방과 동맹하고 연합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한편 선덕여왕의 장례식이 끝난 뒤 삼도대감 필탄의 장례도 성대하게 치러졌다.
신왕은 필탄에게 잡찬 벼슬을 추증하고 처자에게 평생 먹고 살 식읍을 하사해 충신의 절개를 기렸다.
그런데 비담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말하면 천존을 빼놓을 수 없었다.
알천은 백관들이 모인 곳에서 천존에게 병부를 맡기고자 제안했지만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드러내고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가 순수한 가야인이라는 게 반대의 속뜻이었다.
“선임인 김유신도 압량의 군주로 나가 있습니다.
병부의 업적으로 말해도 천존이 김유신을 능가할 수 없고, 나라에 세운 공으로도 마찬가집니다.
만일 천존에게 병부를 맡기면 후임이 선임의 윗자리에 처하게 되니
어찌 이를 공정한 처사라 할 수 있겠소? 군율과 위계가 무너질까 염려됩니다.”
알천은 반대하는 백관들의 속셈을 알아차렸지만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바는 아니었다.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당자인 천존도 병부령의 자리를 극구 사양했다.
“신은 아직 유신공에 비할 만큼 공적도 없고 덕도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병부대감도 오히려 과분합니다.”
이에 알천은 여주의 윤허를 얻어 천존에게 삼도대감을 맡겼다.
천존이 병부에 와서 자신의 물건을 챙겨 삼도대감의 관사로 가니
대궁 방비를 맡은 군사들이 한편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군사 하나를 불러 물으니,
“필탄 장군이 타고 다니던 말이 사람을 물어 의원이 와서 데려갔으나
아마 살아나기가 어렵지 싶습니다.”
하고서,
“그놈의 말이 정말 애를 먹입니다.
벌써 며칠째 여물은커녕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아 살이 다 빠지고 앙상하게 가죽만 남았는데,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그림처럼 웅크리고 있다가도 사람만 얼씬거리면 벌떡 일어나
주둥이로 처박고 발길질을 해대는 게 아무래도 살기(殺氣)가 씐 모양입니다.
며칠 전에도 여물 주러 간 사람을 뒷발로 차서 반병신을 만들어놓더니
좀 전에 또 사고를 쳤지 뭡니까?”
하고 저간의 사정을 전했다.
천존이 병부에서 벼슬살이를 한 이래로 필탄과는 가깝게 지낸 사람이라
필탄이 생전에 제 말을 얼마나 끔찍이 아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말인들 어찌 정을 모르겠느냐? 그놈이 정든 주인을 잃었으니 그러는 게지.
그 말은 장산국의 이름난 준마이니 말 잘 다루는 자를 찾아다가 한번 잘 구슬러보도록 해라.”
그날만 해도 천존은 직접 말을 보지는 않았다.
필탄의 칼에 다친 상처는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고 있었지만 벗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픈 그였다.
장례에 찾아가서 울 만큼 울기도 했고, 젊고 아름다운 필탄의 아내에게 남편을 구하지 못한 것을
사죄도 했으며, 필탄이 남기고 간 젖먹이 아들을 품에 안고 제 자식처럼 돌볼 것을
수없이 맹세도 했지만 자신이 아니면 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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