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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안시성 26

오늘의 쉼터 2014. 11. 8. 23:59

제27장 안시성 26

 

 

 

“일이 이렇게 된 건 나리의 뜻도 아니겠지만 제 뜻도 아닙니다.

저는 병부대감 천존한테서 진작 얘기를 듣고 그 순간부터 나리를 추대하려고 마음먹었던 사람입니다.

방금 전에 천존이 와서 다시 얘기를 하기에 이번만은 제 뜻을 확실히 전하고자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지난 일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오늘 일이고 또 내일 일입니다.

싸움은 이쯤에서 그치고 평화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보십시다.”

“여부가 있겠나. 나도 그러고 싶어 천존을 보냈다네.”

“화백을 열면 나리께서는 틀림없이 보위에 오르십니다.”

알천이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지금 월성에서 나리를 반대하는 사람은 김유신과 김춘추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벼슬이 낮아 아직 화백에 참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는 물론 나리를 추대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찬 대신 대부분도 드러내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론 한결같이

여주의 정사를 통탄하던 터이므로 반대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내일 우지암으로 오십시오.

여기서 이런 고생을 할 까닭이 없는 일이올시다.”

“공은 누구보다 여주의 총애를 받은 사람이 아닌가?”

비담이 묻자 알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신은 계림의 임금을 섬길 뿐 여주를 섬긴 것은 아니올시다.

지금 국법을 고치지 않고 임금이 될 분은 오직 나리밖에 없으니

앞으론 오로지 나리를 섬기고자 할 뿐입니다.”

알천의 대답을 들은 비담의 얼굴에 돌연 화색이 감돌았다.
“하긴 위징 같은 신하도 본래는 은태자의 심복이었다지?”

“새가 바람을 좇고 고기가 물을 좇는 법입니다.

장부가 권세를 좇는 것을 어찌 나쁘다고만 하겠습니까?”

“김유신이나 김춘추를 제압할 자신이 있는가?”

“그런 자신이 없이 어찌 이곳에 왔겠습니까?

김유신에게는 병부령의 직권으로 향군의 절도권을 박탈하면 될 일이요,

김춘추는 얼마든지 말로 설득할 수 있습니다.”

“또 반대할 자들은 없겠나?”

“품계로 보나 조정의 서열로 보나 오직 한 사람을 두고 열리는 화백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말이지요.”

알천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제야 비담은 모든 의심이 풀리는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진작에 우리가 직접 만났으면 피차 편했을 텐데 애꿎은 장정들만 죽이지 않았나.”

“그러게나 말씀입니다.”

“혹시 따로 내게 당부할 일은 없는가?”

비담이 은밀히 묻자 알천이 무슨 말인가를 할 듯하다가,

“아닙니다. 보위에 오르시고 나면 말씀드리지요.”

하고 입을 다물었다.

비담이 궁금하여,

“괜찮네. 얘기를 해보시게.”

하고 수차례 권했다.

“그럼 순서가 아닌 줄 알지만 미리 말씀드립니다.

나리께서 임금이 되고 나면 상신의 자리가 비지 않습니까?”

“그렇지.”

“혹시 그 자리엔 누구를 앉히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은 비담의 의구심에 쐐기를 박는 질문이었다.

순간 비담은 염종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평생 변함없는 정성으로 오로지 자신만을 섬겨온 염종의 충정을 비담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알천의 속셈도 알아차린 그로선 엉겁결에 입을 열고,

“그거야 당연히 공이지. 상신을 맡을 사람이 공말고 또 누가 있는가?”

하고 말했다.

알천이 활짝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면 내일 아침에 우지암에서 뵙겠습니다.”

“알았네.”

“대신은 세 사람만 데리고 나오십시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세.”

알천은 돌아서 나오려다 말고 다시 음성을 죽여 속삭였다.

“남산의 안전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만 만일을 모르니

명활성 군사들은 산밑에 세워두고 우지암에 올라올 때도 맹졸 2, 30명쯤은 데리고 오십시오.”

그것은 누가 듣더라도 진심으로 비담을 걱정하는 말이었다.

“허허, 그리함세. 나는 2, 3백 명을 데려갈까 했더니

공이 그렇게 말하니 2, 30명만 데려가도 마음이 놓이겠네그려.”

비담은 안심이 지나쳐서 급기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농담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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