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안시성 25
월성에 도착한 천존을 알천은 반갑게 맞이했다.
이때쯤은 유신과 춘추도 알천을 통해 모든 사실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더 이상 천존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인 일인가?”
자리를 잡고 앉자 알천이 급히 물었다.
“명활성은 치기가 까다로운 곳입니다.
죽기살기로 버티면 며칠이 갈지 몇 달이 갈지 알 수 없으니 저들을 남산으로 유인해 사로잡으십시오.
제가 한 가지 계책을 세워두고 왔거니와 오늘밤에 혼쭐이 나서 위급해진 저들로선
그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어 천존은 자신의 계책을 소상히 설명했다.
“비담과 그 추종자들만 생포한다면 돈 몇 푼에 팔려온 나머지 군사들이야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들도 다 아까운 우리네 장정들이 아닙니까?”
“실은 우리도 바로 그 점을 염려하고 있네.
몇 해나 공을 들여 애써 키운 군사들을 이따위 내란으로 또다시 하룻밤에 수백 수천 명씩 잃고 있으니
장차 외적에 대비할 일이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닐세.”
알천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 우지암 밑에 미리 군사를 숨기고 기다린다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저들을 토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존의 얘기를 다 듣고 나자 알천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같이 가세나. 비담을 우지암으로 유인하려면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없네.”
그러자 유신과 춘추는 물론 꾀를 낸 천존조차도 깜짝 놀랐다.
“정말 괜찮으시겠소?”
“병부대감의 말이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리께서 직접 갔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세 사람이 한결같이 만류했으나 알천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담은 의심이 많고 교활한 인물이네.
천존이 혼자 가서 말한다고 쉽게 믿어줄 자가 아닐세.”
알천은 월성을 빠져나가 천존과 함께 명활산을 찾아갔다.
천존을 보내고 나서 비담은 웃으며 장수들에게 호언했다.
“이제 두고 보라. 십중팔구 천존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편의 형세가 약해지자 저쪽에 가서 붙으려고 거짓말로 우리를 속인 것이다.”
“왜 그런 의심을 하십니까?”
장수들이 반신반의하며 묻자 비담은 자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그가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어제 우리가 월성을 칠 때는 혼비백산한 적들이 무기도 팽개치고 도망갔지만
천존은 코앞에서도 이들을 베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딴마음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비담은 그렇게 장담한 뒤 다시 이런 말도 덧붙였다.
“만일 천존이 다시 돌아와 모든 것이 잘됐다고 나를 안심시킨다면 이건 더욱 경계할 일이다.
경들도 생각해보라.
알천이나 김유신이 우리와 이렇게 싸우고도 내가 보위에 오를 것을 뻔히 알면서
천존의 말에 동의할 까닭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천존이 와서 합의가 된 것처럼 말하면 나는 단칼에 그를 베어 죽일 것이다.”
그런데 성문을 지키는 군사가 나타나 천존이 돌아왔음을 고하고 알천까지 왔다고 말하자
비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알천이 왔다고? 정말 알천이 왔느냐?”
그는 몇 번이나 연통한 군사를 다그친 뒤,
“그렇다면 대관절 어떻게 된 노릇인지 알 수가 없구나.”
하고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알천은 비담의 군막에 들어서자
먼저 허리를 숙여 공손히 절하며 상신에 대한 예를 갖췄다.
“본의 아니게 이런 불상사가 생겨 유감천만이올시다.”
“왜 아니 그렇겠나? 딱한 심정이야 나 또한 매한가질세.”
비담이 거만하게 턱을 곧추세운 채 원망하듯 대꾸했다.
“긴한 말씀을 나누기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주위를 좀 물리쳐주시겠습니까?”
알천이 비담의 군막에 모인 장수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훑어보고 나서 말했다.
“그대들은 다들 나가 있어라.”
비담의 명령에 따라 염종이 근신들을 모두 인솔해 바깥으로 나갔다.
이윽고 단둘만 남게 되자 알천은 비담의 곁에 가까이 다가앉으며 사뭇 음성을 낮춰 물었다.
“나리께서 친히 여주를 시해하셨나이까?”
“내가? 아, 아닐세……”
“그럼 누가 그같은 짓을 저질렀는지요?”
“……여, 여운이가 그랬다고 들었네만.”
“그렇다면 나리께선 무엇이 두려워 이런 고생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비담은 일순 말문이 막혔지만 급히 둘러댔다.
“그대들이 나를 의심한다고 들었네.
또 하필 그날 내가 인사를 갔으니 의심을 살 만한 일도 있었고……”
그러자 알천이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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