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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안시성 23

오늘의 쉼터 2014. 11. 8. 23:25

제27장 안시성 23

 

 

 

새벽녘에야 겨우 남은 군사를 수습해 월성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춘추에게 말했다.

“북적과 서적을 모두 상대했지만 이렇게 무너진 적은 없었소. 꼭 귀신이 씐 것 같습니다.”

“대관절 군사들이 싸울 생각을 하지 않으니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구려.”

그러자 춘추가 대답했다.

“그게 다 간밤 초저녁에 떨어진 유성 때문입니다.”

그는 진중에 나도는 말을 두 장수에게 전한 뒤,

“실은 나도 두려운 느낌을 떨칠 길이 없습니다.”

하고 덧붙였다.

유신과 알천은 비로소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진 이유를 알았다.

“그렇다면 소천을 불러 한번 물어봅시다.

천문의 이치야 소천만큼 아는 사람이 또 있겠소?”

소천은 김유신에게 불려와 사정 얘기를 전해 듣자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세간에 흔히 그런 말이 나도는 것은 사실이지만 길흉은 본시 무상(無常)하여

오직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을 뿐입니다.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유신은 춘추와 알천을 돌아보며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적작(赤雀:붉은 봉황으로 길조를 뜻함)이 모여들어 망하고,

노(魯)나라는 성왕이 나올 조짐이라는 기린을 잡음으로써 오히려 쇠약해졌소.

그런가 하면 은(殷)의 고종(高宗)은 불길의 징후인 꿩이 욺으로써 크게 일어났고,

정공(鄭公:鄭나라 定公) 또한 용 두 마리가 성문 밖에서 싸운 뒤로 창성해졌소.

이런 것을 잘 헤아려보면 요사(妖邪)를 눌러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인덕일 뿐,

성신의 이변 같은 것은 과히 두려워할 일이 아니오.”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 소천에게 지시했다.

“너는 오늘 해가 지고 나거든 간밤에 별이 떨어진 장소로 가서 허수아비로 연을 만들고

불을 붙여 하늘로 올려라.

그런 다음 어제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을 퍼뜨리면

필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날 저녁에 김유신은 월성 군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고 백마를 잡아 제사를 지낸 뒤

친히 축문을 지어,

“천도(天道)는 양이 강하고 음이 유하며, 인도(人道)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거니와

만일 이 도리가 바뀌면 대란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지금 비담의 무리가 신하로서 임금을 해치고 아래에서 위를 범하니

이는 난신적자(亂臣賊子)로서 사람과 신령이 함께 저주할 일이요

천지가 용납하지 못할 죄인데, 하늘이 무심하여 유성의 괴변을 도리어 왕성에 보인 것이라면

신들은 과연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까?

생각하면 하늘의 위엄은 오직 사람의 정성에 달렸으니 비옵건대 선을 선하게 여기시고

악을 악으로 여기시어 신령의 부끄러움이 없게 해주옵소서!”

하고 낭독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저것 봐라, 저게 무어냐?”

“별이다! 별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세상에 저런 일도 다 있구나!

이는 유신 장군의 정성에 천지가 감동하여 일어난 기변이다!”

제사를 지낼 때만 해도 시무룩하던 군사들은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간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꼬리를 반짝이며 하늘로 올라가자

월성 군사들의 사기는 승천하는 별과 같이 치솟기 시작했다.

유신과 알천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군사들을 총동원해 명활성 공략에 나섰다.

“하늘이 감응한 마당이다! 무엇을 겁낼 것이며 누구를 두려워하겠는가!”

월성에서 솟아오른 별은 명활성 비담의 진영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어제만 해도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비담은 일순 소스라치게 놀라 염종에게 물었다.

“땅에서 솟아오르는 별도 있소?”

염종이라고 그런 별을 알 턱이 없었다.

“글쎄올시다. 칠십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이오.”

“어제 떨어진 그 별이 맞소?”

맞으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기변에 어리둥절해 있을 때 월성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오자

이번엔 비담의 군사들이 맥없이 흩어졌다.

하루 만의 대역전극이 펼쳐진 셈이었다.

격전지에서 밀린 비담의 군사들은 태반이 죽었고,

나머지는 명활성 안으로 밀려들어와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시석을 날려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이틀 사이 양측에서 죽거나 다친 군사는 무려 5천여 명,

그러잖아도 고구려에 밀리고 백제에게 당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뼈아픈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교전이 길어질수록 외적의 침략이 걱정스러운 것은 양측이 다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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