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안시성 21
“죽어라, 이놈!”
여운의 칼은 무자비하게 필탄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참으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몸에서 떨어진 필탄의 머리가 땅바닥을 굴러가자
주인을 잃은 찬간자는 구슬픈 울음을 토하며 어쩔 줄 모르고 사방을 뛰어다녔다.
“고맙소.”
넋을 잃고 앉은 천존의 등뒤에서 여운이 말했다.
“어찌나 발광을 해대는지 대감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내가 저 꼴이 될 뻔했구려.”
여운은 부하들에게 필탄의 시신을 치우도록 하고 찬간자도 붙잡아 묶어놓도록 지시했다.
그런 다음 피가 흘러내리는 천존의 어깨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상처가 깊은가보오. 어서 가서 치료부터 받으시오.”
여운이 대궐 안으로 사라지고 난 뒤 군사들이 시신을 치우려고 거적과 수레를 끌고 왔다.
그때까지 마상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천존이 군사들을 향해 불같이 고함을 질렀다.
“삼도대감이시다! 거적이 웬 말이냐? 당장 관과 상여를 준비하라.
예법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도록 모셔야 할 것이니라!”
궐에 갔던 필탄마저 돌아오지 않자 필탄의 젊은 아내는 괴변이 났음을 느낌으로 알아차리고
친정아버지인 수품을 찾아갔다.
품주대신 수품이 딸로부터 얘기를 듣고 급히 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궐 문을 지키는 자들이 일부는 상신의 사병이요,
일부는 병부 군사들이라고 하여 비담과 알천이 역모를 일으킨 것으로 단정했다.
“비담은 능히 그럴 만한 인물이지만 알천이 어째서 역모에 가담했는지 알 수 없구나.”
조정 기밀을 다루던 수품은 신하들의 면면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즉시 김춘추를 찾아갔다.
그런데 춘추는 이때 내외가 함께 압량주 김유신에게 다니러 가서 며칠째 집을 비운 상태였다.
수품은 그 길로 말을 타고 압량주까지 한달음에 달려갔다.
“큰일났소. 비담과 알천이 모반을 일으킨 듯하오.”
이상야릇한 인연으로 맺어진 양가 내외가 정초에 모처럼 만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에
수품이 헐레벌떡 찾아와 긴박한 사정을 전하자 두 사람은 크게 놀랐다.
“모반이라니요?”
춘추는 차마 믿어지지 않는 듯 되묻는데 유신은 어느새 바깥으로 달려나가 소천에게
향군들을 소집하라는 영을 내렸다.
비상을 알리는 관사의 나팔이 울리고 북소리가 나자 압량주 향군들은 재빨리 관사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 숫자가 순식간에 1만이나 되었다.
“도성에 정변이 나서 압량주 용사들이 평정해주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이기고 돌아오면 망친 휴가를 갑절로 보상할 것이니 과히 섭섭해하지 말라!”
용맹하기로 이름난 압량주 향군들은 김유신의 말에 천지가 떠나갈 듯 함성을 질렀다.
밤늦게 압량주를 출발한 향군 가운데 마군 1천 기가 먼저 월성에 도착했다.
불시에 습격을 당한 비담의 사병과 여운의 군사들은 궐문을 닫아걸고 항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김유신이 왔다고?”
여운으로부터 사정을 전해들은 염종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는 틀림없이 알천이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알천이 알리지 않았다면 압량주의 김유신이 어떻게 궐내 사정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염종이 천존을 불러 다그쳤다.
천존도 당황하기는 염종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태가 내란으로 번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지만 이미 일은 터진 셈이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병부령이 자신의 군사도 동원하지 않고 외주 군주에게 먼저 구원을 요청할 까닭이 있습니까?
십중팔구 이는 김유신이 혼자 소문을 듣고 나타난 것입니다.”
“궐 밖에서 이 사실을 아는 자는 알천뿐이다.
도대체 김유신이 어디서 소문을 듣는단 말인가?”
“어쨌거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서 상신께 이 사실을 알리고 군사를 동원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여운이 소리쳤다.
염종은 천존과 알천을 다 같이 의심했지만 여운의 말대로 우선 사저에 있는
비담을 피신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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