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7장 안시성 18

오늘의 쉼터 2014. 11. 8. 20:50

제27장 안시성 18

 

 

 

“알천공이 여주를 섬긴 것은 여주가 임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주께서 돌아가셨으니 국법에 따라 보위를 이을 사람은 나리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알천공도 뜻을 바꿀 게 분명합니다.

먼저 알천공의 의향을 떠보신 다음 대책을 강구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천존이 권유하자 비담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천존이 그런 비담을 다시 설득했다.

“김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나가 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쓸 게 없습니다만

알천공과 춘추공의 생각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리께서는 계림에 하나뿐인 성골이신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하나뿐은 아니지. 승만이 있으니……”

“승만 공주도 여자입니다.

만인이 여주의 폐해를 몸소 겪은 마당에 다시 여주를 세울 턱이 있습니까?

승만 공주는 무시해도 좋을 것입니다.”

천존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나리께서는 시급히 사저로 돌아가 계시는 게 어떨는지요?

여주를 시해한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아무리 성골이라도 덕을 잃어

보위에 오르시는 데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은 염종공과 제가 주관하여 벌인 일이고,

나리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으로 해두십시오.

그런 다음 알천공과 춘추공을 설득한다면 얼마든지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보위에 오르실 수 있습니다.

만일 국법을 무시하고 병부의 군사를 동원해 무력으로 3궁을 장악한다면

자칫 전조의 내란이 재현될까 두렵습니다.

내란이 일어나면 적이 쳐들어올 일도 걱정스럽지만 김유신과 같은

외주의 군주들이 저쪽에 가세할 것도 불을 보듯 뻔한데 왜 일을 그토록 어렵게 만들려고 하십니까?

지금 중요한 사람은 병부령 알천공이고, 알천공은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하니 나리께서는 여주를 죽인 일을 비밀로 하시고 사저로 돌아가십시오.

제 소견엔 그것이 가장 현명한 일인 듯싶습니다.”

듣고 보니 비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가 염종을 바라보자 염종도 빙긋 웃음을 지었다.

“병부대감의 지혜가 과연 소문대로 놀랍습니다.

싸움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지요.

후사는 모두 신과 두 병부대감에게 맡기고 나리께서는 사저로 가셔서

보위에 오를 준비나 하고 기다립시오.”

이에 비담은 사병들을 궐에 남겨둔 채 혼자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비담이 가고 나자 천존이 염종에게 말했다.

“이런 일은 시일을 끌면 불리합니다.

저는 지금 즉시 알천공을 찾아가 의향을 떠보겠으니

두 분께서는 내전의 어지러움을 깨끗이 정돈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꾸민 다음

제가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만일 알천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소?”

염종이 불안한 듯 물으니 천존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신께서 여주를 시해하지 않았다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가 감히 상신의 지위에 맞서려 하겠습니까?

상신께서 제일 잘못한 건 직접 손에 피를 묻히신 것입니다.

이를 감추는 것에 이번 일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알천은 눈치가 비상한 사람이오.

대감이 비록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낌새로 사정을 간파할 수 있으니 조심하시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염종이 거듭 당부하자

천존은 품안에서 칼을 꺼내 보이며 단호한 말투로 쐐기를 박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제 손으로 알천공의 목을 따서 가지고 오겠나이다.”

무사히 궐을 빠져나온 천존은 곧바로 말을 타고 알천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알천의 집에는 명절 뒤끝에 인사를 온 내방객이 여럿 있어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어여 이리로 들어오시게나. 그러잖아도 이제 막 술판을 벌이려던 참일세.”

시끌벅적한 사랑채에서 손님들과 어울려 있던 알천은 천존을 보자 반색을 하며 소리쳤다.

“잠시만 따로 좀 뵈었으면 합니다.”

천존이 그런 알천에게 은밀히 눈짓을 보냈다.

“사람 참, 그냥 들어오면 될 것을!”

알천이 신을 찾아 신고 바깥으로 나오자

천존은 다짜고짜 그의 팔을 잡고 으슥한 헛간으로 이끌었다.

“정변이 나서 지금 막 여주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방을 몇 번이나 경계한 뒤 엿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천존이 재빨리 말했다.

순간 알천은 쓰고 있던 복두가 벗겨질 만큼 크게 놀랐다.

“그, 그게 참말인가?”

“제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 오는 길입니다.”

하지만 알천은 침착했다.

그는 자세한 내막을 듣기도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한 듯 물었다.

“……비담인가?”

“네.”

“세력이 얼마나 되던가?”

“염종과 여운이 한패가 되었고 조정 중신 가운데 30명쯤 되는 자들이 가담한 모양입니다.

제가 연락을 받고 당도했을 때는 여운의 군사와 비담의 사병 수백 명이

내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나이다.”

이어 천존은 비담을 사저로 돌려보낸 일과 자신이 알천을 찾아온 이유를 모조리 털어놓았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7장 안시성 20  (0) 2014.11.08
제27장 안시성 19  (0) 2014.11.08
제27장 안시성 17  (0) 2014.11.08
제27장 안시성 16  (0) 2014.11.08
제27장 안시성 15  (0) 2014.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