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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안시성 16

오늘의 쉼터 2014. 11. 8. 20:29

제27장 안시성 16

 

 

 

성충은 우술군을 장악한 뒤 당은포로를 습격해 3천 석에 달하는 양곡과 수레를 끄는 마소 3백 두까지

취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 뒤 소비포를 사이에 두고 적과 대치했다.

급보를 접한 신라의 삼년산군(보은) 군사들이 달려왔을 때는 소비포 서쪽의 광활한 옥토가

이미 백제 땅으로 편입된 뒤였다.

성충은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 수성(守成)에 필요한 장비와 인부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출병한 지 만 하루 만의 일이었다.

성충이 군사를 이끌고 떠난 뒤 의자는 신하들과 더불어 논의하기를,

“이번에 상좌평이 군령장까지 써놓고 떠났으니 일이 매우 재미있게 생겼다.

그것도 3천 기를 데려가서 7성을 취하고 오겠다며 큰소리를 쳤으니

아무리 신라군이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천지가 개벽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고서,

“만일 일을 그르친다면 어떤 벌을 내리는 것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신하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내는 와중에 별안간 전령(傳令)이 와서 아뢸 것이 있다고 하니

의자는 듣지도 않고 웃으며,

“필경은 군사를 더 보내달라는 것이겠지.

애당초 1만을 얘기했으니 나머지 7천 군사쯤은 더 보내줄 아량이 있다.”

하고는 전령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미친놈의 전령이 죽을상도 시원찮을 마당에 내관을 따라 편전을 들어설 때부터

싱글벙글 웃더니 이윽고 덥석 엎드려 고하는 소리가 엉뚱하게도 승전보라,

의자는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겼다니, 어디를 쳐서 어떻게 이겼단 말이냐?”

“우술군의 7성을 쳐서 모두 복중(服中)에 넣었나이다!”

“우술군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가?”

“웬걸입쇼. 모성을 치고 잇달아 자성을 쳤는데 관수 일곱을 모조리 베고

잇달아 당은포로까지 습격하여 곡식 3천 석과 마소 3백 두를 얻고 소비포 뱃길까지 열어놓았나이다.

적이 반격을 하기 전에 수성 공역이 시급합니다.”

의자는 들을수록 더욱 궁금하고 기가 막혔다.

“싸우지 않고 그냥 행군하기에도 바쁜 시간이다.

도대체 언제 적과 싸우고 무슨 수로 소비포까지 진격했다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구나.

신라가 성문을 열어놓고 기다리지 않는 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너는 모든 과정을 직접 보았을 것이니 소상히 아뢰어라.”

이에 전령은 자신이 본 바를 편전 마루에 손가락으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의자는 넋이 나간 얼굴로 한참을 가만히 앉았다가

이윽고 맥빠진 말투로 중얼거렸다.

“과연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 재주와 꾀를 가지고도 어찌하여 과인을 전심전력으로 보필하지 않았단 말인가?

과인이 부덕한 것인지 그가 불충한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하지만 의자는 공을 세운 신하를 더 이상 책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유사에 명하여 수성에 필요한 장비와 역부들을 급히 우술군으로 보낸 뒤

개선군을 맞이할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점점 시간이 지나고 충격이 가시면서 의자의 감격은 오히려 커져갔다.

자상할 때는 누구보다 자상하고 대범할 때는 누구보다 대범한 그였다.

좀처럼 뜻을 꺾는 법이 없었지만 한 번 마음이 돌아서면 쾌히 뉘우칠 줄 아는 것도

타고난 그의 천성이었다.

의자는 만조의 백관들을 불러모으고 그동안 성충을 의심했던 자신의 행동을 깊이 후회하는 듯

이렇게 말했다.

“군신(君臣)이 서로 시기하는 것은 국운이 쇠하고 나라가 망하는 징조라고 들었다.

과인은 그간 사소한 일로 상좌평과 틈이 있었으나 크게 생각하면 서로 방법과 견해가 달랐을 뿐,

백성을 위하고 사직의 앞날을 걱정하는 일에 이견이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일국을 다스리는 처지에서 성충과 같은 기재를 얻은 것은 누가 뭐래도 과인의 홍복이다.

앞으로 과인의 면전에서 상좌평을 음해하거나 헐뜯는 자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내가 먼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알라!”

당나라를 원조하는 문제로 시끄러웠던 신라 조정은 성충에게 우술군마저 뺏기고 나자

심각한 내분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정책 결정에 앞장섰던 상대등 사진(思眞)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부령 알천의 문책론에 이어 다시 여주(女主)의 자질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국론을 주도하고

조정 전체를 어지럽혔다.

한때 여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승려 자장은 당에서 돌아와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장대하게 세우며 여주의 흔들리는 왕업을 밖에서 도우려고 애를 썼으나

이미 그런 미봉책으로 가라앉을 여론이 아니었다.

여주가 정사를 잘 다스리지 못해 나라가 곧 망할 거라고 걱정하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백반의 아들인 비담을 옹립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를 제외하고 성골로서 왕위를 이을 사람은 오로지 비담 한 사람이 남았을 뿐이었다. 비담의 세력이 갑자기 커지자 여주도 하는 수 없이 그를 상대등으로 삼아 반대파를 달래려 하였으나

비담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은밀히 무리를 규합해 세력을 키우다가 정미년(647년) 정월,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비담의 추종자들은 이찬 염종(廉宗)을 비롯해 중신들만 30명이 넘었고,

이들이 부리는 관군과 사병(私兵)들까지 합하면 무릇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비담은 당주가 처음부터 여주를 탐탁찮게 여겨온 데다 요동 정벌에 실패한 후

다른 일에 한눈을 팔 여유가 없을 거라는 데 착안해 모반을 계획했다.

하물며 신라가 태산같이 믿는 당주 자신도 대의를 위해 형제를 죽인 사람이니

후에 사정을 알아도 이해해줄 듯했고,

소문으로 들은 고구려 연개소문의 정변도 무시할 수 없는 참고와 힘이 되었다.

“국사를 위해 힘없는 군주를 처단하는 것은 가히 천하의 유행이다.

성공하면 쇠락의 구렁텅이에서 사직을 구하는 의거요,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것이니 거사의 평가는 오직 일의 결과에 달렸을 뿐이다.”

비담은 사가를 찾아온 추종자들 앞에서 공공연히 그런 말을 입에 담곤 했다.

그러구러 정월이 되어 하루는 여주가 설핏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장안사에서

헤어진 스승 연적이 어느 물 맑고 경치 좋은 곳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냇물을 떠 마시고는,

“자네도 거기서 그러지 말고 이제 그만 이리로 오게나.”

해맑게 웃으며 팔짓을 했다. 그때 상대등 비담이 알현을 청한다는 내관의 전언이 있어

여주가 잠에서 깨었다.

비담은 사촌 누이인 여주에게 사사로이 세배를 왔다는 핑계로 내전에서 담소를 나누며

우어하다가 밖에 내관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갑자기 표변하여 다과상을 발로 차면서,

“너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암탉이 어찌 새벽을 알릴 것이며, 늙은 계집이 어떻게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겠는가!”

말을 마치자 소매 안에 감춰온 칼로 놀란 여주를 무참히 살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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