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안시성 15
자신을 걱정하여 찾아온 벗이 침통해하는 것을 본 성충은 마음이 아팠는지
비로소 안색과 표정을 밝게 하여 말했다.
“자네는 내가 행여 사지(死地)를 벗어나지 못할까봐 살아날 비방을 일러주러 왔지?
어디 한번 들어보세.
꼼짝없이 죽을 판에 흥수의 덕으로 목숨을 구한다면 내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리겠는가?”
그러자 흥수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자네라고 방책이 없지 않을 터, 살아날 계책을 세워두었는가, 죽을 계책을 세워두었는가?”
“아직 아무 계책도 세우지 않았네. 그러니 자네한테 물을 수밖에.”
“그럼 지금이라도 세워보게.”
“그저 내 마음대로 할 것만 같으면 서안(西岸)에서 배를 타고 내주,
등주로 가서 다시 나귀로 갈아타고 낙양으로, 장안으로,
서역 구만리까지 순행하며 학문과 도를 구하고 싶네.
성상 앞에서 불경스럽게 얼굴을 붉히기도 지쳤고,
닭 모가지 하나 비틀지 못하는 주제로 밤새 머리를 써서
수백,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을 궁리나 하는 이것이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책더미 속에 파묻혀 일생을 마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자네가 말하는
진정으로 살아날 계책이 아니던가?”
“인간사에 진심이 통하려면 적어도 10년은 사귀고 봐야 하네.
몇 해 더 지나면 성상도 자네의 진심을 헤아릴 때가 올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리세.
만일 그런 후에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배와 나귀는 내가 준비함세.
나 또한 자네와 같은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흥수가 위로하자 성충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남쪽을 치면 살아날 계책인가, 죽을 계책인가?”
“그건 죽을 계책일세.”
흥수의 대답에 성충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일전에 김유신이 남역의 우리 성 일곱을 쳐서 빼앗아갔으니
그럼 나는 이번에 황등야산(黃等也山:황산) 서쪽을 쳐서 꼭 일곱 성만 되찾아오겠네.
성왕 때 잃어버린 우술군(雨述郡:대덕, 유성)의 자성이 모두 일곱일세.
만일 그곳을 다 얻는다면 삼년산성(三年山城:보은)이나 요차성(腰車城:상주)으로
진격하는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니 훗날을 위해서도 왕업에 큰 보탬이 되지 않겠나?”
흥수도 그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이제 됐네. 나는 안심하고 물러가서 승전보나 기다리겠네.”
이튿날 성충은 아침 일찍 편전을 찾아갔다.
의자는 성충을 골탕먹여 고분고분 자신을 따르게 하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라,
“그런데 하필이면 농사일이 바쁜 철이라서 많은 군사를 내어주기가 어렵구나.
1만 명쯤 데려가도 승리할 수 있겠는가?”
하며 성충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데 놀랄 줄 알았던 성충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1만 명도 오히려 많습니다. 보군 2천 명에 마군 1천 기만 주시면 됩니다.”
하고서,
“대신에 마군은 방군(方軍)의 장수 계백(階伯)의 군사를 내어주십시오.”
하고 특별히 청했다. 임금이 반신반의하며,
“3천 기를 데려가서도 이길 수 있단 말이지?”
거듭 오금을 박고는,
“만일 지고 돌아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니 성충이 태연히 군령다짐을 하고 이를 군령장에 서명으로 남겼다.
그런데 임금은 이때까지 성충이 말한 계백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방군 장수라면 도성을 지키는 5방(五方)의 10군 장수 가운데 한 명이니
특수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임금이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의자왕은 성충의 청을 쾌히 받아들여 계백의 군사를 데려가도록 허락했다.
성충은 황등야산을 넘어 동쪽 국경에 당도했다.
이때 신라는 군사를 원조하라는 당주의 서신을 받고 조정이 무척 시끄러웠다.
자국의 방비도 어려운 처지로 무슨 원군을 보내느냐고 반대하는 측과 양국의 우호를 고려해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는 측이 맞서 달포나 설전을 벌였는데,
향군 가운데 늙은 군사들만을 추려 약간의 식량과 함께 요동으로 실어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끌어모은 전국의 향군이 무려 3만이었으나 말이 향군이었지 기실은 등짐 잘 지는 짐꾼,
쇠 잘 두드리는 대장장이, 활 만드는 노사(弩師), 약초꾼과 간병인에 심지어 밥 잘 짓고
빨래 깨끗이 빠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당의 요구를 거역하기 힘들었던 신라로선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생색도 내는
일거양득의 묘안을 찾아낸 셈이었다.
3만이나 되는 군사가 별도움도 되지 않고 양식이나 축낸다면 일찌감치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계산까지 깔려 있었다.
어쨌거나 향군 3만을 동원해 배를 태워 보내자니
전국이 시끌벅적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성충이 노리는 곳은 신라인들의 입당로인 당항성(唐恩浦로도 불림. 경기도 화성)으로 가는
7백릿길(唐恩浦路)에 인접한 지역이어서 연일 사람과 물자를 실은 수레가 다니느라 어수선했다.
성충은 바로 이 점을 활용해 순식간에 적성 일곱을 공취하고자 했다.
그는 먼저 우술군의 벌판에 불을 놓아 한창 무르익은 벼를 태운 뒤
주민과 농부들이 당황한 틈을 타서 재빨리 우술성을 들이쳤다.
당항성으로 보낼 양곡을 조달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렸던 우술성에서는
뒤늦게 적이 쳐들어온 줄을 알고 군사를 내어 항전했으나 미처 전열을 갖추기도 전에
성은 함락되고 성주도 계백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성충은 우술성을 장악하자마자 군사들을 신라인 복장으로 꾸민 다음 수레에
빈 가마니를 가득 싣고 소비포(所比浦:대청호)로 향했다.
자성에서는 수레를 끌고 나타난 사람들이 적일 거라고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성충의 명을 받은 계백은 우술군의 자성 일곱을 차례대로 돌며 적장을 베고 성을 취했다.
적세를 꿰뚫는 성충의 지략과 이를 차질 없이 수행한 계백의 신들린 듯한 무용은 가히
황홀한 조화를 이루어 적성 일곱을 뺏고 우술군 전역을 수중에 넣는 데 채 한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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