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안시성 9
그로부터 3일 동안 밤낮 없는 공격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점점 기운이 빠지는 쪽은 당나라 군사들이었다.
잘먹지도 못하고 사기도 떨어진 마당에 도종의 군사들은 서리와 한기를 막아줄 천막까지 잃은 터라
열에 다섯이 추위를 타고 코를 훌쩍였다.
그들은 무기를 놓고 쉴 때도 이적과 장손무기의 군사들을 찾아가 한뎃잠을 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잖아도 허기로 신경이 곤두선 이적과 장손무기의 군사들이 이를 탐탁하게 여길 리 없었다.
급기야 내분과 자중지란까지 일어난 당군들은 장수의 명령에도 코방귀를 뀌고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흙산을 빼앗겼을 시초만 해도 책임감 때문에 입에 거품을 물고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던 도종은
차츰 시일이 흐를수록 낭패감에 휩싸였다.
이런 꼴로는 도무지 싸움이 안 될 성싶었다.
더구나 황제가 입은 눈의 상처도 갈수록 피고름이 차고 통증이 심해졌다.
내관들의 말을 들어보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끙끙 앓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단안을 내리고 스스로 몸을 묶은 다음 맨발로 황제를 찾아가 복주했다.
“토산을 적에게 뺏긴 것은 모두가 저의 불찰입니다.
폐하께서는 저를 죽여 군율을 바로 세우시고 나머지 군사들은 쉬게 하소서.
패전의 책임이 오로지 신, 한 사람에게 있나이다!”
도종이 패전이란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이세민은 벌컥 울화가 치밀었으나
다시 곰곰 생각할수록 그가 아니고선 누가 감히 휴전을 권하랴 싶어 다소 화가 누그러졌다.
이제 만일 무기를 거둔다면 귀향,
수많은 신하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기필코 수양제가 실패한 요동 정벌에 성공하여
당조의 위상과 자신의 명예를 만천하에 칼날처럼 세우고자 했던 꿈이 여지없이 꺾이는 순간이었다.
이세민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때쯤은 그도 흙산을 빼앗겼을 때의 충격과 분노로부터 벗어나 다시 냉정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동정(東征)을 만류하던 이정과 죽은 위징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토록 큰소리를 치고 떠나왔던 친정(親征)의 장도(壯途)로부터 패군(敗軍)을 이끌고
그 먼길을 털레털레 되돌아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아프게 눈앞을 어른거렸다.
그 실추된 무덕(武德)과 위명(威名) 뒤에 따라올 만인의 조롱과 우세를 말해 무엇하랴.
자식을 꿔준 장안의 노인들에겐 무슨 변명을 할 것이며,
해마다 조공을 바치는 번국의 제후들에게는 또 어떤 위엄을 세울 수 있으랴.
하지만 이세민은 마지막까지 양광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힘과 궁리가 다한 곳에서는 정확하게 사태를 읽을 줄 아는 눈이 있었고,
자신의 잘못된 점이나 실패를 인정해야 할 순간에는 지체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의 여유도 있었다.
위신이나 체면 때문에 고집을 부리거나, 욕심이나 화를 달래지 못해
무리한 일을 강행하는 군주는 적어도 아니었다.
즉위 초에 돌궐의 힐리가한이 위수 북쪽에서 궁성을 위협할 때 홀로 말을 타고 나가
20만 적군에게 위용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를 제압할 정도로 담력과 기백이 있으면서도
임읍국(林邑國) 만인(蠻人)들의 오만함을 토벌하자는 신하들의 주장에는 실리를 따져
허락하지 않았고, 용모가 뛰어난 절세가인을 후궁으로 맞으려다가도
정혼한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그만둘 줄도 알았다.
바로 그것이 당나라가 일천한 세월에도 천하를 호령하는 근원이었고,
형제를 죽이고도 성세를 열어가는 정관(貞觀)의 군주 이세민의 힘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 복주한 도종의 충심을 헤아렸다.
도종이 패전 운운하며 귀죄(歸罪)하는 까닭은 스스로를 휴전의 명분으로 삼아
비록 전쟁을 그치더라도 황제의 명예를 지키려는 계산이었다.
그렇다면 신하의 충심을 가납하는 것도 군주의 도리가 아니던가.
이세민은 감았던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근신 장수들이 조당 앞에 잔뜩 모여들어 황제의 처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네 죄는 죽어 마땅하다.”
이윽고 이세민은 단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음성은 사뭇 부드럽고 따뜻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한무(漢武:漢나라 무제)가 왕회(王恢)를 죽인 일은
진목(秦穆:秦나라 목공)이 맹명(孟明:百里孟明)을 살려 쓴 것만 못하다고 여겨온 사람이다.
게다가 네가 개모성을 파하고 요동성에서도 공이 있었던 까닭에 특별히 용서하는 것이니
어서 오라를 풀고 신을 신어라. 날이 차다.
온전하지 못한 발에 상처라도 덧날까 심히 염려스럽구나.”
그리고 나서 이세민은 군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돌아가리라.
여기서 그만두지 않으면 수씨의 행로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이다.
우리 군사들이 허기와 추위에 떨며 고생하는 것도 더는 보기 어렵지만,
만일 한기가 뼈에 사무쳐 병이라도 얻는다면 설혹 고구려를 정복하더라도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헛된 명예를 위해 짐의 백성들을 상하게 할 수는 없다.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여 허명을 구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니
그대들은 그만 군막을 거두고 짐을 꾸려라.”
퇴각이었다. 당군들은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환호를 올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이세민은 군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도 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는 비사성의 장량에게도 미리 사람을 보내 귀환을 명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과연 연개소문이 순순히 요수를 건너도록 놓아둘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지난날 수나라의 예를 보더라도 전몰자의 대부분은 퇴각로에 요수에서 참변을 당했었다.
이세민은 먼저 고구려 백성들을 앞세우기로 하고 미리 사람을 보내 자신들이 점령한 땅으로부터
주민들을 끌어모았다.
이때 요동성과 개모성, 백암성에서 모집한 사람은 7만 명,
이세민은 중국으로 호구(戶口)를 옮기는 자에게 집과 재물을 하사하기로 약속하고
일부는 강제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3성 주민을 앞세우고 나서야 당군은 안시성을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그들은 안시성 밑에 기치를 늘여 세우고 성 주변을 돌며 한차례 시위를 벌였는데,
그 모습을 본 성주가 홀로 성루에 나와 목례를 하며 송별의 예를 표했다.
이세민은 잠시 거가(車駕)를 멈추게 하고 군중의 물자를 담당하는 관리를 불렀다.
“장안으로부터 가져온 비단이 얼마나 있느냐?”
“1백 필쯤 남았나이다.”
“그것을 모두 안시성 성주에게 주고 오너라.”
덕화(德化)를 강조하던 그의 정치가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7장 안시성 11 (0) | 2014.11.08 |
---|---|
제27장 안시성 10 (0) | 2014.11.08 |
제27장 안시성 8 (0) | 2014.11.08 |
제27장 안시성 7 (0) | 2014.11.08 |
제27장 안시성 6 (0) | 2014.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