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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안시성 6

오늘의 쉼터 2014. 11. 8. 11:33

제27장 안시성 6

 

 

 

9월 한 달 금쪽 같은 시간을 당군은 안시성 공략에 모두 허비했다.

이적과 장손무기는 연일 대여섯 차례씩 군사를 끌고 나가 성의 동편과 서편에서 교전했지만

별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충차 부대도 깊이 파놓은 해자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고, 돌덩이 열을 날리면 그 중 하나가

가까스로 물길을 건너갔는데 그조차도 대부분은 성벽 밑으로 맥없이 구르기만 할 뿐이었다.

이세민과 당군 장수들은 연일 머리를 맞대고 지략을 짜냈으나 불리한 지형과 안시성 사람들의

결사항전에 번번이 낭패를 보았다.

9월 중순이 되자 비사성에서 올라오던 식량 공급에도 자주 문제가 생겼다.

고구려 수군들이 해역을 급습하는 바람에 군량을 실은 배가 불에 탔다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난공불락이로다, 실로 난공불락이로다……”

10월이 다가오면서부터 이세민은 더 이상 계책도 내지 않고 도도한 성루를 바라보며

그렇게 탄식할 때가 많았다.

황제와 장수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추운 데서 자고 나온 군사들은 좀체 기운을 쓰지 못하고 해만 떠오르면 아침부터

양달에 쭈그리고 앉아 병든 닭처럼 졸기 일쑤였다.

조석으로 기온이 무섭게 떨어지고 있었다.

“낙성(落城)이 어려우니 아무래도 금년에 평양까지 진격하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이세민으로선 동정(東征)에 대한 전체적인 전략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요동에서 겨울을 난 뒤 내년 봄쯤에 다시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어

도성을 침략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선 안시성과 건안성은 기필코 수중에 넣어야 했다.

그래야 겨우내 군량과 마초도 확보할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양도가 끊길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백 가지 계책이 모두 무위로 돌아간 뒤 이세민은 도종과 염립덕의 군사들이

쌓고 있던 흙산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흙산이 완공되면 요동성의 경험을 되살려 충차 부대를 동원해 석공(石攻)과 화공을 써볼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도종과 염립덕이 밤낮없이 애를 써준 덕택에 흙산은 운제를 똑바로 세워놓은 높이만큼

자라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쌓으면 성안이 훤히 보이겠구나! 어서 서둘러라!”

마음이 바빠진 이세민은 이적과 장손무기의 정예들한테까지 흙 쌓는 일을 지시했다.

그 서슬에 휘둘린 때문이었을까.

도종은 장정들을 이끌고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 심을 박다가 그만 실수로 발을 다치고 말았다.

“괜찮다. 이 정도는 하룻밤만 푹 자고 나면 씻은 듯이 나을 것이다.”

나무둥치에 깔려 금세 퉁퉁 부어오른 발을 내려다보며 도종은 의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튿날이 되자 낫기는커녕 부기(浮氣)는 더욱 심했고

통증마저 겹쳐 꼼짝달싹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승범이 다쳤다면 이는 큰일이다! 어서 어의를 불러라!”

임시로 지은 조당에서 이 소식을 들은 이세민은 종군한 의원을 대동하고 황급히 흙산으로 올라갔다.

도종이 누운 군막에 이르자 그는 어의를 제치고 시퍼렇게 부어오른 발목을 살핀 다음

직접 침을 놓고 뜸을 떠주며 말했다.

“이곳에 흙산을 쌓는 것은 적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를 얻는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

아군이 성을 얻는 날엔 이 모두가 쓸모 없는 흙더미에 불과할 것이니

지나치게 견고할 까닭이야 있겠는가?

며칠 동안 충차와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면 족하니 승범은 공사를 대충 하라.”

안시성에서 모욕을 당한 뒤 현무문에서 죽은 형과 아우의 일로 자주 마음이 심란했던

그에게는 아버지의 종형제인 도종의 존재가 새삼 각별하게 다가와 행한 일이었으나

도종은 황제의 보살핌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이세민은 그에게 임금이 먹는 어선(御膳)을 내려 위로했다.

한편 이때 안시성의 지휘권은 양만춘에게 있었다.

그는 당군이 나타났을 때부터 가능한 한 교전을 피하고 모든 성문을 단속한 뒤 수비에만 전념했다.

이를 지루하게 여긴 뇌음신과 온사문이 성문을 열고 나가 싸우기를 청했을 때도

그는 아직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린단 말씀이오?

혹시 성주께서는 당군이 저절로 물러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오?”

요동성 구원에 실패한 두 젊은 장수는 하루빨리 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에 안달이 났다.

하지만 양만춘은 느긋한 얼굴로 이들의 혈기를 억누르기만 했다.

“정확히 보셨소.

저 많은 군사가 저절로 물러가기만 한다면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소?

굳이 피를 흘리며 싸울 까닭이야 없는 게 아니겠소?”

그는 성문을 걸어 잠그고 매일 고정의와 함께 성루에 올라가서 적이 진을 치고

군사를 부리는 모양을 살폈다.

그럴 무렵 죽리가 와서 막리지의 군령을 전했다.

군령은 아주 간단했다.

10월이 되면 기둥을 쳐서 들보를 울리라는 것이었다.

다른 장수들은 그 군령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양만춘만은 홀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막리지께서는 벌써 당군이 물러간 훗날의 일을 염려하고 계시는 게 틀림없소.

수나라와 싸울 때처럼 적을 궤멸시킬 수도 있지만 후사를 생각해

그렇게까지 무참하게 당주를 욕보이고 싶지는 않으신 게요.

그 까닭은 당조의 번성함이 수나라 때와는 격이 다르기 때문이오.

이세민이 죽는다고 망할 당나라가 이미 아니지 않겠소?”

그는 고정의에게 개소문의 뜻을 설명한 뒤 곧 뇌음신과 온사문을 불렀다.

“장군들이 드디어 공을 세울 때가 왔소.

안시성을 수비하는 일은 모두 내게 맡기고 두 장군은 성의 서문을 빠져나가

요수를 건너오는 적의 양도를 끊으시오.

지금 적이 양도로 사용하는 길은

우리 성과 요동성 사이의 뱃길과 무려(武견:요서)로 통하는 다리인데,

요동성이 함락된 뒤론 거룻배가 다니는 길이 북쪽으로 많이 올라갔으나 방비는 오히려 허술해졌소.

1만 군사만 데려가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만약을 모르니 우리 성의 맹졸 3천 명을 빌려드리리다.

다리는 끊어버리고 거룻배와 강변 둔치의 곡창(穀倉)은 모조리 불을 질러 적을 굶주리게 만든다면

안시성 앞의 적들도 며칠 안에 스스로 물러갈 것이외다.

막리지께서도 기둥을 쳐서 들보를 울리라고 하셨으니 이는 양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두 장수는 비록 군령을 받았지만 안시성 앞의 수많은 적군들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없어도 정말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두 욕살이 15만 군사를 데려가서도 당하지 못한 대병입니다.

하물며 저들은 요동성에서처럼 성 앞에 흙산을 쌓고 있다니

얼마 안 있어 돌덩이가 수도 없이 날아올 것인데 3천이나 되는 성군을 빌려주고

어떻게 막으려 하십니까?”

“내게 방책이 다 섰으니 장군들은 양도만 확실히 끊어주시오.

그럼 나머지는 모두 내가 책임을 지리다.”

두 장수는 걱정이 되었으나 성주가 워낙 자신만만해하니 어쩔 수 없었다.

“부디 성을 꼭 지켜주십시오. 만일 성주께서도 실패하신다면

저희는 원군 장수로서 막리지의 문책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신신당부한 뒤 두 장수는 안시성을 떠났다.

맹졸 3천여 기를 빌려주고 나자

성에 남은 군사는 1만 5천 명, 성민 장정과 늙은이까지 모두 합해야 채 5만이 되지 않았다.

양만춘은 이들을 동원해 성의 동남루에 높은 보루를 쌓고 대장간과 궁방(弓房)에는

날카로운 표창과 화살을 더 많이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산의 나무를 베어 크고 작은 목책(木柵)들을 만들고 이를 동남루 보루에 잔뜩 쌓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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