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7장 안시성 7

오늘의 쉼터 2014. 11. 8. 11:47

제27장 안시성 7

 

 

 

10월에 접어든 뒤로 당군들에겐 양식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는 날이 부쩍 늘어났다.

해역의 보급로가 심대한 타격을 받은 것과 때를 같이해 요동성을 통한 육로에서도

급보가 연일 당군 진영으로 날아들었다.

30만이나 되는 군사와 10만 두의 말을 먹일 양식은 하루치만 제때 공급되지 않아도

큰 혼란이 일게 마련이었다.

이세민은 양도를 책임진 후군 장수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먹는 일에는 그 어떤 항우장사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절충도위 조삼량과 영주도독 장검에게 3천 군사를 주어 요동성과 비사성으로 보내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군량의 공급을 차질 없이 수행하도록 명했다.

양식이 떨어지자 군사들의 기세도 급격히 떨어졌다.

하물며 때는 바야흐로 초목이 마르고 산과 들에 황량한 기운이 감도는 초겨울,

밤새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간신히 불편한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면 군막 바깥에는

꿈에 본 쌀처럼 서리가 하얗게 땅을 뒤덮고 있었다.

“저것들이 모두 양식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세민은 아침마다 그렇게 탄식했다.

임시방편으로 요동성과 백암성 창고에 남은 양식을 모조리 긁어왔으나

아귀같이 먹어대는 30만 군사의 입에는 사흘거리가 되지 못했다.

먹지 못한 군사들 사이에서 차츰 불만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정이 급해질수록 도종은 흙산을 쌓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것만이 당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양만춘은 당군 진영에서 밥 짓는 연기가 자주 때를 거르자

성안에서 기르던 닭과 돼지를 잡아 성민과 군사들의 배를 불렸다.

닭을 삶고 돼지를 굽는 냄새가 잔인하게도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갔다.

초근목피와 생콩을 씹던 당나라 군사들은 기름진 음식 냄새를 맡자

눈알이 번들거리고 창자가 뒤집혔다.

“이것이 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인가?”

이세민도 조당에까지 흘러든 고기 냄새를 맡고 종관들을 불러 물었다.

군량이 자주 끊어지면서 스스로 절식(節食)하여 하루 두 끼 식사로 수범을 보이던

그에게도 바람을 타고 흘러온 구수한 고기 냄새는 괴로운 고문이었다.

“안시성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군사들이 이 냄새 때문에 오장육부가 뒤집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자 이세민은 갑자기 무슨 생각에 잠겼다가 시급히 이적과 장손무기를 불렀다.

“우리가 성을 포위한 지 꽤 오래되었으므로 성중에서는 날로 기세가 쇠약해졌을 것인데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은 반드시 군사들을 잘 먹여 밤에 우리를 습격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군사들을 각성시켜 수비를 엄중히 하라.”

그날 밤 어둠이 깊어지자 과연 안시성으로부터 수백 명의 성군들이 줄을 타고 성벽을 내려왔다.

미리 군사들을 숨기고 기다리던 이적과 장손무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반격을 가해

수십 명을 잡아죽였다.

당황한 고구려 군사들은 다시 줄을 타고 성벽을 기어올라 성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이는 당나라 군사들을 괴롭혀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려는 양만춘의 계략이었다.

이튿날에도 성중에서는 닭과 돼지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고 뒤이어 기름진 음식 냄새가

당군들의 코를 찔렀다.

이적과 장손무기는 다시 야음을 틈탄 기습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초저녁부터 철저한 경비를 펴고 있었다.

그러나 밤이 다 지나고 새벽이 될 때까지 어제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튿날도 그랬고 그 이튿날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낮에는 허기를 괴롭히는 음식 냄새로,

밤에는 기습에 대비한 불침번으로 당군의 사기와 기력은 급속히 저하되었다.

그렇게 10월 초순이 지나고 중순이 되었다.

발에 부기가 빠지자 도종은 더욱 열심히 성 쌓는 일을 감독하고 독려했다.

하지만 흙산이 높아지면서 차츰 드러나기 시작한 성안의 모습은

또 한 번 당군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성안에서도 흙산에 대비해 또 다른 성을 쌓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시성에서 당군들의 계책을 알아차린 것은 전날 고죽리가 왔을 때였다.

양만춘은 고죽리를 통해 당군이 흙산을 쌓고 있음을 알고 나자

곧바로 성민들을 동원해 성루에 연하여 보루를 쌓고 성벽을 증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아, 이 노릇을 어찌한단 말인가!

우리의 마지막 계책마저 적에게 모두 발각되고 말았구나!”
사실을 확인하고 나자 이세민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도종이 근 두 달 가까이 무려 50만의 연인원을 동원해 기울인 공력을 무시하고

그대로 물러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흙을 더 쌓는 것은 무의미하다.

승범은 충차 부대를 이끌고 산에 올라가 꼭대기에 진을 치고 돌을 아래로 쏘아 성벽을 파괴하라.

밑에서도 군사를 내어 협공하면서 요동성에서처럼 싸운다면 아주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안시성의 전세가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세민은 흙산의 일을 도종에게 맡기고 이적과 장손무기에게도 충차 공격에 맞춰 성을 치도록

지시한 뒤 자신도 칼과 방패를 들고 싸움터로 나갔다.

흙산의 꼭대기는 안시성 동남루로부터 열 길 남짓 떨어져 있어 능히 성안을 굽어보며

싸울 수 있었으나 성중에서 새로 쌓은 보루보다는 낮았다.

도종은 충차 부대를 일렬로 늘여 세우고 수십 개의 바윗덩이를 일제히 날려댔다.

아래에서는 무기로 쓸 바위를 꼭대기까지 가져오느라

수천, 수만 명의 군사들이 비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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