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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장 안시성 5

오늘의 쉼터 2014. 11. 8. 11:19

제27장 안시성 5

 

 

 

죽리는 당군이 포진한 정문을 피해 한쪽 구석으로 우회하여 성에 잠입하려다가

그곳에서 흙산을 쌓고 있던 도종의 군사들에게 그만 붙잡히고 말았다.

“너는 누구냐?”

군사들에게 붙잡혀온 죽리를 보자 도종이 물었다.

“밝힐 수가 없소.”

죽리가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대답했다.

도종이 보니 생김새도 약간 이상한 데다 풍병을 맞은 환자처럼 말소리도 분명치 않아

과히 경계할 인물은 아닌 듯했으나 그렇다고 알아보지도 않고 놓아줄 수는 없었다.

“왜 밝힐 수 없단 말이냐? 그렇다면 나도 너를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

도종은 군사들에게 죽리를 죽여버리라고 말했다.

군사들이 달려들어 죽리의 양팔을 낚아채자 죽리가 황급히 팔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사실대로 말할 테니 살려주시오.”

그리고 죽리는 개소문이 말한 대로 자신은 막리지가 보낸 첩자라고 밝혔다.

“뭐라고?”

도종은 뜻밖의 대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가 첩자라니 그게 사실인가?”

“그렇소.”

“그렇다면 무슨 임무로 왔는가?”

“살려준다면 대답하겠소.”

“임무만 사실대로 밝혀라. 그럼 살려주겠다.”

“건안성의 무기와 식량 사정을 알아보고 당나라 군대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살펴

오골성의 막리지께 보고하는 것이 저의 임무요.”

“너희 막리지가 오골성에 있는가?”

“그렇소.”

죽리의 대답을 들은 도종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런데 이상하구나. 건안성에 볼일이 있는 자가 안시성에는 무엇하러 왔단 말이냐?”

“안시성에 제 형님이 살고 있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형님의 안부가 궁금해

임의로 임지를 벗어났는데 난데없이 이런 곡경에 처하였으니

만일 이 사실을 막리지가 안다면 저는 틀림없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도종은 죽리의 행색과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으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가 막리지의 첩자라고 밝힌 이상 자신이 함부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도종은 죽리를 데리고 황제가 있는 군막을 찾아갔다.

도종으로부터 대강의 얘기를 전해 들은 이세민은 직접 죽리를 만나보았다.

“네가 막리지의 첩자라는 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임지가 건안성이라고?”

“네.”

“그래 건안성의 무기와 식량 사정은 어떠하더냐?”

“무기도 넉넉하고 식량도 비축해둔 것이 많아 올 겨울을 넘기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세민 역시 죽리의 태도를 한동안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막리지의 첩자라는 죽리의 주장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너는 혹시 안시성에 사는 형의 안부가 궁금해서 온 건안성 성민이 아니냐?”

그러자 죽리는 안색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올랐다.

“바른 대로 말하면 보내주마. 첩자냐 아니냐?”

“첩자올시다.”

“첩자라면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첩자냐?”

“……첩자올시다.”

죽리가 고심 끝에 침을 주르르 흘리며 말하자 이세민은 별안간 소리를 높여 웃었다.

“저 자를 안시성으로 보내주어라.”

“첩자라고 주장하는 자를 어찌 그냥 돌려보낸단 말씀입니까?”

도종이 묻자 이세민은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 대답했다.

“이 난리에 형의 안부가 궁금해 왔다니 그 우애가 실로 갸륵하지 아니한가?”

그러잖아도 오래전 현무문의 일이 떠올라 마음이 심란하던 그였다.

죽리가 나가고 나자 이세민은 도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승범도 생각해보라.

개소문이 어떤 위인인데 저런 바보 같은 자를 첩자로 삼을 리가 있는가?

게다가 정말 첩자라면 이를 숨겨야 옳지 죽인다고 협박을 하는데도 첩자라고 주장할 리가 없다.

저 자는 그저 좀 모자라는 바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시자들을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방금 그 자가 안시성을 방문해 형의 안부를 알아본 뒤

다시 건안성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군표를 써주라.

대국의 천자로서 변방의 가련한 백성에게 어찌 그만한 은혜도 베풀지 않으랴.”

이런 과정을 거쳐 안시성에 입성한 죽리는

곧 성주 양만춘과 원군 장수들에게 개소문의 군령을 전했다.

임무를 마친 죽리는 다시 과하마를 타고 적진을 가로질러 오골성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죽리가 오자 개소문은 마치 사지에 나갔던 친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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