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요동(遙東)정벌 17
여러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안시성을 떠난 연수와 혜진은 15만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성의 동남쪽 40리까지 진군했다.
그 무렵 이세민은 장수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지금 고연수가 쓸 계책에는 세 가지가 있다.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되 안시성과 고산 사이를 연결하는 보루를 쌓고,
성중의 양식을 먹으며 가끔 말갈병을 놓아 우리의 우마(牛馬)나 약탈한다면
우리는 저들을 쳐도 쉽게 함락시킬 수 없고,
또 돌아가려고 해도 진창에 빠져 군사들을 괴롭힐 것이니 이것이 상책이요,
성중의 군사들을 빼내어 도망가는 것이 중책이며,
지능(知能)을 헤아리지 않고 우리와 싸우는 것이 하책인데,
두고 보라! 저들은 반드시 하책으로 나올 것이다.
포로가 된 고연수의 꼬락서니가 이미 내 눈에는 훤히 보이는구나!”
하였는데,
과연 얼마 안 있어 말과 같이 되자 장수들은 황제에게 남다른 묘책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세민의 손위 처남인 사도(司徒) 장손무기(長孫無忌:장손 황후의 오빠)가 동료 장수들을
대신해 말했다.
“요동에서 얻은 잇단 승리로 아군은 고구려 군사만 보면 그 기세가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니
이는 필승의 병(兵)입니다.
폐하께서는 이미 20세 전에 전선으로 친히 나가셔서 이르는 곳마다 모두 승리를 거두셨는데
그것은 군사들이 폐하의 신묘한 계략을 묻고 장수들이 그 뜻을 받들어 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일에도 폐하의 지휘를 바랍니다.”
그는 본래 황제의 요동 정벌을 만류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이세민은 장수들의 요청에 흐뭇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허허, 공들이 사양하니 그렇다면 짐이 마땅히 필승의 전략을 세워보리라.”
그는 장손무기를 비롯한 수백 명을 거느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직접 산천의 형세와 복병을 숨길만한 장소 따위를 물색했다.
하지만 멀리 바라뵈는 적진은 그 길이만도 어림잡아 40리,
고구려와 말갈 군사가 합병하여 구축한 진지는 제법 위용까지 갖추고 있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황제가 적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크게 한숨을 쉬자 시립한 도종이 입을 열었다.
“고구려에서 저만한 군사를 동원했다면 평양은 틀림없이 비어 있을 것입니다.
신에게 정병 5천 기만 빌려주시면 비사성에서 배를 타고 가 그 본거지를 쳐서 뒤엎겠나이다.
그럼 저따위 수십만 무리는 싸우지 않고도 항복시킬 수 있지 않겠는지요?”
그러나 이세민은 도종의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적군을 이 고산 입구까지 유인해야 한다.”
한참 만에 이세민이 말했다.
그는 돌궐족 장수로 종군한 아사나두이(아사나는 돌궐족의 대표적인 성씨)를 불렀다.
“너는 군사 1천을 데려가서 고연수를 유인해보라.
고산 입구까지만 유인한다면 내게 사로잡을 계책이 있다.”
명령을 받은 두이는 즉시 자신이 데려온 마군 1천 기를 이끌고 적진으로 달려갔다.
대군의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잔뜩 긴장했던 고연수는 고작 1천 명 남짓한 돌궐족이 나타나자
코웃음을 쳤다.
“이는 이세민이 우리의 전세를 시험해보려는 것이오. 그렇다면 어찌 두고만 보겠소?
내가 친히 나가서 저들의 간담이 서늘해지도록 돌궐병을 무참히 짓밟아주겠소!”
연수의 말에 혜진도 무기를 집어 들며 말했다.
“같이 갑시다. 밀어붙일 때는 딴생각을 아예 못하도록 무섭게 밀어붙여야 하는 법이오.”
이에 두 장수는 마군 일패를 거느리고 나와 두이의 군대를 맞아 싸웠다.
그러나 애당초 싸우려고 온 돌궐병이 아니었다.
서로 기세를 올리며 어울리는가 싶더니 두이는 이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잡아 죽여라! 한 놈도 그냥 살려 보내지 말라!”
고연수와 고혜진의 군사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도망가는 돌궐병을 다투어 뒤쫓았다.
얼마나 정신없이 말을 달렸을까.
“장군!”
연수의 등 뒤에서 혜진이 다급한 소리로 불렀다.
“이제 그만 갑시다! 벌써 고산 입구까지 쫓아왔소!”
연수도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줄잡아 8리쯤은 족히 내려온 듯싶었다.
“저것들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치는 것을 보면
혹시 뒤로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르겠소.”
혜진이 사뭇 걱정스럽게 말하자 연수는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호탕하게 웃었다.
“원 걱정도 팔자요. 장군은 사냥도 안 가보셨소?
토끼가 쫓겨 토굴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지 무슨 꿍꿍이가 있단 말이오!”
“어쨌든 산으로 들어가는 것은 조심해야 하오. 복병이라도 설치했다면 낭패가 아니오?”
연수는 혜진의 거듭되는 만류로 추격을 멈추었다.
“보아하니 당군은 모조리 저 고산에 쥐새끼들처럼 숨어버린 모양인데 우리 군사를 여기로 데리고 옵시다. 산의 입구를 봉쇄한다면 제놈들이 간들 어디로 가겠소?”
연수의 제안을 혜진도 옳다고 판단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꾀를 생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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