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24장 장관의 사랑 [3]
(496) 24장 장관의 사랑 <5>
나오미는 신의주 공관장으로 정식 부임했는데 자주 행정청사에 들르는 편이었다.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부장관들하고는 골프도 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은 나오미가 서동수와 단독 면담을 신청했는데 총리의 전언이 있다고 했다.
서동수는 보좌관 안종관을 동석시켰기 때문에 사무실에 셋이 둘러앉았다.
안종관이 조사한 나오미의 경력은 도쿄대 법학부 졸업, 미국 하버드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
일본 외무성에서 2년간 근무했다가 민주당 요시무라 의원의 특별보좌관으로 5년 근무 후에
신의주 공관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나오미는 37세, 미혼이다.
인사를 마쳤을 때 먼저 나오미가 입을 열었다.
“장관 각하, 총리께서 지난번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핵 문제가 미뤄진 것에 대해
우방국으로 함께 우려를 표명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달에 남북한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린 것이다.
1박 2일의 일정이었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지도자 김동일이 고위급 수행원 수백 명과 함께
한국 대통령 한대성을 만난 것이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 평화, 경제협력, 이산가족 재회 등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 협의체 구성도 선언했다.
그러나 서해북방한계선(NLL), 핵문제는 북한이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끝났다.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결실을 본 부분은 신의주 발전에 관한 부분이었다.
한국과 북한은 신의주를 중립지대로 선언했고 발전을 위해 최대한 지원한다는 것을 재천명했다.
그리고 김동일은 신의주를 현재 면적의 2배로 확장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의주 면적은 평안북도의 절반 가깝게 된다.
결국 신의주는 남북한의 평화, 경제협력, 통일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맞았다.
서동수가 나오미의 시선을 받고 말했다.
“나도 유감입니다.
정상 간 분위기가 좋았다던데 그 분위기로 핵까지 처리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일본에선 우리도 핵을 갖춰야 한다는 여론이 솟고 있습니다. 장관 각하.”
“언론이 선동한다고 들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은밀하게 응원을 하고.”
그러나 나오미가 입을 다물었다. 서동수를 응시한 채 눈만 깜박이고 있다.
그때 서동수가 빙그레 웃었다.
“한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이지요. 나오미 씨도 알고 계실 텐데요.”
“이런 상황에서 신의주에 투자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나오미가 본론을 꺼냈으므로 서동수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예상은 했다. 그러나 너무 반응이 빠르다.
일본은 약 100억 달러 규모의 공단과 200억 달러 규모의 유흥시설 투자를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투자량이 현재의 7%에서 15%로 늘어난다.
2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나오미의 시선을 받은 서동수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나오미 씨, 할 수 없지요.”
그때 나오미가 서동수를 응시한 채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데 총리께선 기획된 신의주 투자를 추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전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
“오히려 유흥시설 투자에 2개 업체를 더 포함해 투자액이 더 늘어났습니다.”
숨을 들이켠 서동수가 옆에 앉은 안종관을 보았다.
안종관은 표정이 없다.
서동수가 얼굴을 펴고 웃었다.
“총리 각하의 결단에 감사드린다고 전해주시지요. 과연 위대한 결단이십니다.”
그때 안종관의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497) 24장 장관의 사랑 <6>
“저런 식으로 외교관이 말하면 안 됩니다. 장관님.”
나오미가 사무실을 나갔을 때 안종관이 말했다.
안종관이 남을 이런 식으로 말한 경우는 처음이다.
“아랫사람한테 생색을 내는 말투를 썼습니다. 무례합니다.”
“그런가요?”
쓴웃음을 지은 서동수가 안종관을 보았다.
자신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동수의 기색을 살핀 안종관이 호흡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남북한이 밀착되었다고 일본이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총리가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신의주에서 일본 기업의 기반이 굳어지면 그것도 일본세력이 되니까요.
신의주가 중립지대라고 남북한 정상이 선언을 했지 않습니까?
중립지대에서 일본세력을 키우는 것이지요.”
그렇다. 신의주가 열강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시초부터 예상했다.
지금도 미·일·중·러 등의 정보원들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안종관이 말을 이었다.
“남북한이 신의주를 기반으로 평화 통일을 할 때까지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통일 한국은 핵 보유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두 두려워하고 있겠지요.”
서동수의 추측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핵문제는 건성으로 지나간 것 같다.
북방한계선(NLL)도 마찬가지, 이제는 남북한이 외부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NLL문제를 꺼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반인 생각도 그러니 미·일 정보 당국이야 오죽하겠는가?
두르르 꿰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때 안종관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장관님, 나오미 씨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기록을 확보했습니다.”
“…….”
“국정원에서 보내왔는데 외교관 시절에 1번, 요시무라 보좌관 시절에 3번 참배를 했습니다.
이 정도면 극우 보수 성향이라고 봐도 될 것입니다.”
일본 정부도 나오미가 극우 성향이라는 것이 곧 드러나리라고 예상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보낸 의도는 일본군 위안부 부정과 같다.
심호흡을 한 서동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나로서는 일단 일본 투자가 결정되었다니까 반갑죠, 기쁜 일입니다.”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선 안종관이 따라 웃었다.
“저는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안종관이 방을 나갔을 때 서동수가 인터폰을 눌렀다.
유병선의 직통 전화다.
“예, 장관님.”
유병선이 대답하자 서동수가 실눈을 뜨고 나오미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오미 씨한테 오늘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해줘요. 그렇지, 약속이 없으면 말이지.”
“예, 알겠습니다. 참석 인원은 어떻게 할까요?”
“나하고 둘이, 장소는 영빈관이 좋겠군.”
“알겠습니다. 7시경이 어떻겠습니까? 6시에 부장관과 회의가 있으십니다.”
“그렇게 하지.”
통화를 끝낸 서동수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안종관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세계에서 일본을 가장 우습게 보는 민족이
한국인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는 충고로 받아들이면 된다.
일본의 한국 무시는 도를 넘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일본 소설이, 차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간다.
일본에서는 어떤가?
그때 유병선에게서 온 인터폰의 불빛이 깜박였다.
약속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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