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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요동(遙東)정벌 12

오늘의 쉼터 2014. 11. 4. 10:19

제26장 요동(遙東)정벌 12

 

 

 홍주가 용랑과 자식까지 낳고 다섯 해를 사는 동안에 손대음은 다시 아내를 구하지 않고

관사에서 혼자 살았다.

그런데 용랑의 형이 갑자기 병으로 죽자 노욕(老慾)이 막심하던 용랑의 아버지가 장남의 아내를

용랑의 집으로 데려와 법도(兄死取嫂)를 거론하며 세 사람이 한집에서 살 것을 윽박질렀다.

“죽은 네 형이 3년이나 온갖 궂은 노역을 살면서 데려온 여자를 누구 좋으라고 그냥 보내준단 말이냐?

여자는 재산 중에서도 으뜸이다.

집안이 흥하려면 여자가 많아야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가 아니더냐?”

용랑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늙은이는 요지부동이었다.

게다가 용랑의 형수는 홍주보다도 오히려 나이가 어렸다.

결국 세 사람이 한집에서 지내게 되자 홍주와 용랑 사이엔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초만 해도 손가락을 걸며 형수가 제풀에 못 이겨 도망가게 만들겠다고 호언하던 용랑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눈빛이 이상해지고 형수와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돌더니

급기야는 홍주의 눈을 피해 잠을 자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고 말았다.

만인이 부러워하던 성주 부인의 자리까지 팽개치고 나온 홍주로선 배신감에 이가 갈리고 살이 떨렸다.

그는 용랑의 집을 나와 친정으로 갔고, 친정아버지 장태는 홍주를 달고 관사로 손대음을 찾아갔다.

“저 철없고 무례한 딸년을 성주 손으로 죽여주오.

우리 부녀는 만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성주를 뵐 면목이 없는 사람이지만

제 스스로도 옛일을 후회하고 오로지 성주 손에 죽는 것만이 유일한 바람이라니

아비 된 처지로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데려왔소.”

칠순의 장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자 손대음도 장태의 손을 붙잡고 같이 훌쩍였다.

“죽이다니 당치 않습니다.

이제라도 돌아온 게 천행이지요.

장인께서는 과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그 뒤로 줄곧 혼자 살아왔으니 다시 저 사람을 맞이하는 데 아무 장애가 없습니다.”

백암성 사람들은 노회한 장태와 영악한 홍주가 성주의 어진 성품을 이용했다고 쑤군댔지만

정작 손대음은 홍주를 받아들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의좋게 살았다.

손대음의 됨됨이가 대략 이러했다.

임금이 시해되고 도성에 정변이 일어난 그해 겨울,

개소문이 요동을 순시하는 길에 백암성을 방문하겠다고 전갈을 보내자

손대음은 그날부터 근심이 깊어져서 밤이 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막리지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벌벌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1백 명이나 되는 조정 대신들을 잡아 죽이고 임금까지 동강내어 시궁창에 버렸다는 사실을

손대음으로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며칠 뒤에 그는 백암성에 나타난 개소문을 다 죽어가는 얼굴로 맞이했다.

더구나 이때는 개소문이 위엄을 세운답시고 임금 앞에서도 갑옷을 입고

몸에는 항상 다섯 자루 칼을 찬 채 중무장한 위병 1백여 명을 좌우로 그림자처럼

거느리고 다닐 때였다.

손대음은 개소문의 앞에 이르자 바닥에 엎드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고 질문을 하면

입술이 새파래지고 깜짝깜짝 놀라는 꼴이 마치 중죄를 짓고 붙잡혀온 사람 같았다.

“큰일이구나. 백암성 성주가 저토록 심약하니

행여 전란이라도 나면 성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백암성을 떠나면서 개소문은 내심 혀를 찼다.

그러나 정변을 일으킨 막리지의 위엄으로도 백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성주를

마음대로 갈아 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봉화를 통해 당군의 침략 사실을 알고 자나 깨나 걱정하던 손대음은 개모성이 망하고

북쪽에서 성민들이 도망쳐오자

시급히 성군을 동원해 서쪽에 보루를 쌓고 성루에 포차를 늘여 세워 나름대로 방비를 철저히 하였다.

“개모성이 비록 망했지만 아직도 요동성이 건재하고 당군들은 전부 그쪽으로 몰려갔다.

막리지가 어떤 사람인데 설마 요동의 소문난 곡창인 우리 백암성이 위태롭도록 두고만 보겠는가?”

그렇게 애써 두려움을 달래고 스스로를 위로하던 손대음이었건만 요동성에서 모평이 죽은

성주 형제의 목 없는 시신과 그 식솔들을 거두어 수레에 태우고 밤새 말을 달려 백암성으로

피신해오자 다시금 안색이 백변하였다.

그는 모평에게 요동성의 전황을 꼬치꼬치 캐어묻고 나서,

“아아, 전쟁이란 본시 그토록 끔찍하고 참혹한 것이다!

요동성같이 높고 견고한 성곽과 태사같이 용맹한 성주도 당하지 못하는 저들의 기세를

뉘라서 꺾는단 말이냐!”

하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모평이 온 며칠 뒤 요동성이 함락되고 당군이 백암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손대음은 황급히 휘하의 성군 장수들을 불렀다.

“개모성과 요동성을 차례로 꺾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당군과 싸우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병화(兵禍)를 당하면 인명이 상하고 집과 국토가 조잔(凋殘)하여 폐허가 되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닌가? 결사항전으로 적과 대항하는 것도 승산이 있을 때나 해볼 만한 일이지 30만 대군을 무슨 수로

상대한단 말이냐?

더욱이 요동성처럼 성역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아군 시체가 산처럼 쌓인 뒤에 성을 잃는다면

그보다 허무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성민을 보호하고 인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은 성주의 본분이며 책무다.

성문을 열어 항복하면 처참한 병화를 피할 수 있으니 차라리 나는 그 길을 택하고자 한다.”

손대음이 항복할 뜻을 밝히자 몇몇 장수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어찌 싸워보지도 않고 성을 적에게 내어준단 말씀이오?

적이 입성하면 가산을 몰수하고 부녀자를 건드릴 것은 뻔한 이치인데

항복으로 인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말은 당치않은 궤변이오!”

“우리 성은 요동성과는 달리 남으로 패강(태자강)과 깎아지른 암벽이 있고

서쪽으로는 전대에 6장 높이로 쌓아올린 바위성이 몹시도 견고하오.

화공에 대응할 강물도 넉넉할뿐더러 수나라가 침략했을 때는 백만 군대를 상대하고도

온전했던 백암성이외다.

30만을 상대하지 못할 까닭이 없소!”

하지만 손대음의 뜻에 찬성하는 장수들도 절반은 되었다.

“수나라 때는 을지문덕이라는 천하 제일의 명장이 있었고 성주 해찬공도 지략이 뛰어난 장수였으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오. 성주의 뜻처럼 항복하여 후사를 도모하는 것만 같지 못하오.”

“그렇소. 천하를 제압한 당군을 어찌 수나라 오합지졸들과 비교할 수 있겠소?

더구나 당주 이세민은 우리 막리지가 임금을 시해한 불의를 다스리려고 군사를 내었으므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노략질 따위는 하지 않을 게 분명하오.

항복을 하면 우리 또한 천자의 백성들인데, 덕화(德化)를 중시하는 황제가

제 나라 신민(臣民)을 해칠 까닭이 없소.”

한동안 장수들의 설왕설래를 묵묵히 듣고 있던 손대음은 마침내 논의를 중단시키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걱정하는 바는 당군의 노략질이니 미리 사람을 보내 당황제의 약속만 받아두면 될 것이다.

항복을 하더라도 우리 백성을 해치지 않겠다는 확답을 얻은 연후에 할 것이므로

그대들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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