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요동(遙東)정벌 11
요동성을 공취한 당군은 7월 하순이 되자 백암성에 당도했다.
백암성은 요동성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성곽이었다.
당군은 군사를 크게 두 패로 나눴다.
이적이 한 패를 이끌고 백암성의 서남쪽을 맡고 이세민이 나머지 한 패를 데리고 서북에 이르렀다.
먼저 도종이 백암성 북쪽의 개모성을 쳐서 개주로 만들어두었으니
백암성만 쳐서 얻는다면 요동 심장부의 3성(三城)이 모조리 당군의 수중에 들어오는 셈이었다.
이때 백암성 성주는 손대음이었는데, 그는 전 성주 해찬(解贊)의 휘하에서
오랫동안 성의 행정을 돌보던 명석한 문관이었다.
본래 요동은 내지와 거리가 먼 데다가 각각의 성곽에서 다스리는 땅도 넓고 백성들도 많았으므로
도성의 영향력보다는 자치제의 성격이 강했다.
그 때문에 성주가 되는 자는 우선 성민들에게 신망을 얻어야 했으며,
설혹 임금이나 조정의 뜻에 어긋나는 성주가 있다 하더라도 함부로 이를 폐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없었다.
백암성은 전 성주 해찬이 워낙 성민들 사이에 덕망이 높고 신망이 두터워 그의 말 한 마디가
천리 밖의 조명(朝命)을 압도했다.
수나라를 물리친 뒤로 해찬이 10여 년을 더 살면서 늘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내게 자식이 여럿 있고 평생 나를 따라다닌 범 같은 장수들도 많지만
백암의 살림을 맡길 사람으론 손대음만한 이가 없다.
나는 비상한 시국을 만나 전쟁을 하느라고 성사를 세밀히 돌보지 못하였는데,
십수 년간 지독한 전란을 겪고도 성민들이 밥을 굶지 않고 요동의 그 어떤 곳보다
풍족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손대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인이 부러워하는 백암의 재정(財政)과 농정(農政)이 모두 그에게서 나왔다.
하물며 수나라는 이제 망하여 당분간 요동에선 전란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성주가 반드시 무인(武人)일 까닭도 없다.”
하고 손대음으로 후임을 삼고자 여러 차례 조정에 진소문을 지어 올리기까지 했다.
조정에서도 해찬의 공을 익히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죽자 유지를 받아들여 손대음을 성주로 삼았다.
손대음은 성주가 된 뒤로 더욱 열심히 박토와 석산을 개간하고 정성껏 성사와 백성들을 보살펴
백암에선 춘궁기에도 떡을 쪄먹는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흠은 있었다.
겁이 많고 마음이 어질어 힘으로 다스려야 할 일에는 늘 결단을 미루고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일국의 간성(干城)인 성주가 지나치게 어질고 심약한 것도 경우에 따라선 성민들의 원성을 자아내는
빌미가 되었다.
마소가 길에서 흘레하는 광경을 보거나 하물며 개싸움만 나도 가슴을 졸이고 식은땀을 흘리던
손대음은 흉악범을 붙잡아도 성옥에 가두기만 했을 뿐 처벌을 미루었고,
행여 죄수나 그 식솔들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선처를 호소하면 덩달아 눈시울을 붉히며
감형이나 아예 사면을 시켜주는 예도 적지 않았다.
나중에는 성주의 이런 점을 알아차리고 악용하는 자들까지 생겨나 성주만 보면
길에서 우는 자가 반드시 있었다.
손대음과 관련한 일화 가운데 단연 백미는 그 아내 홍주(哄舟) 부인과 관련된 얘기였다.
홍주는 백암의 거부인 장태(璋台)공의 딸이었는데 전 성주 해찬이 중매를 서서 손대음의 아내가 되었다. 키가 6척에 용모가 수려하여 백암에선 최고 미녀라는 소리를 듣던 홍주는 성정이 활달하고
웃기를 잘하며 매사에 자유분방한 여자였다.
몇 해가 지난 뒤 해찬이 죽고 손대음이 성주가 되었을 때 홍주는 남편의 어질고 미적지근한 성격에
넌덜머리가 나서 자주 바람을 쐬러 바깥출입을 했는데, 성주 부인을 호위하던 용랑(勇郞)이라는
위병 청년과 그만 정분이 나고 말았다.
두 사람이 근 3, 4년이나 남의 눈을 피해 사귀자 주변에선 소문이 날 만큼 났으나 손대음만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홍주와 용랑이 성주가 없는 틈을 타 관사 안채에서 뜨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주가 들이닥쳐 꼬리가 밟히고 말았다.
손대음이 옷을 벗고 누운 두 남녀를 보고 잠시 기가 막혀 눈만 끔뻑이고 있으려니
홍주가 별로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일어나 천천히 용랑의 옷을 입혀주며,
“당신은 낮이면 공무를 보러 나가는 사람이고 밤에는 관사에 들어와 잠만 자는 사람이니
재미가 없어 같이 못살겠소.
기왕 사정이 예까지 왔으니 나는 이 청년과 관사 밖에 나가 따로 살림을 차리고 살 테요.”
말을 마치자 짐을 꾸려 관사를 나가버렸다.
손대음이 눈앞에서 아내를 잃고도 말 한 마디를 못했다.
용랑은 홍주와 살면서 성주한테 무슨 문책이나 당하지나 않을까 한동안 매우 걱정했으나
손대음은 그 일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용랑을 만나도 전과 다름없이 따뜻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날짜가 지나 승진할 때가 되자
용랑의 직급을 높여주고 별도로 먹을 것과 입을 것까지 챙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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