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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요동(遙東)정벌 8

오늘의 쉼터 2014. 11. 3. 16:47

제26장 요동(遙東)정벌 8

 

 

 

그런데 천행인지 불행인지 이튿날 아침이 되자 태사의 정신이 돌아와 처자도 알아보고

아우도 알아보고 원군 장수들과도 희미하게나마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팔신은 그제야 맥이 탁 풀렸다.

“하늘이 나를 도왔구나!”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관사를 나와 집으로 갔다.

소임을 마쳤으니 눈을 좀 붙여도 좋으리라 싶었다.

그가 이부자리를 깔고 막 등을 붙였을 때였다.

“역적 팔신은 어서 나와 오라를 받아라!”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난데없이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오?”

팔신이 일어나 나가자 3, 4명의 군사가 다짜고짜 달려들어 포승줄로 몸을 꽁꽁 묶고 말했다.

“자세한 건 우리도 모르오. 위에서 잡아오라는 지시가 있었으니 가서 알아보시오.”

팔신은 혹시 그사이에 성주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관사에 도착해 알아보니 성주한테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붙잡혀온 팔신은 진사가 나타나고야 까닭을 알았다.

“저놈은 인술을 편다는 미명 아래 사람 목숨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더니

급기야 불순한 의도를 품고 내 형님을 독살하려 했다.

제 놈이 신이 아닌 이상 어찌 내가 마음대로 약정한 날에 환자가 깨어날 수 있더란 말이냐?”

진사는 눈알이 시뻘개서 호통을 치고 이내 관사의 위병들을 불렀다.

“여봐라, 저 늙고 교활한 중국놈의 두 발목을 절단하라!”

혼절한 형을 대신해 성사를 관장하던 진사의 명령이었다.

팔신으로선 변명할 겨를도 변명할 말도 없었다.

지시가 떨어지자 위병들이 달려들어 팔신을 형틀에 묶고 양쪽 발목을 잘라버렸다.

지극정성을 다하며 밤새 뜬눈으로 성주를 치료한 팔신에겐 실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이세민이 요동성 서남쪽 마수산(馬首山)에 당도한 것은 당초 약정 날짜를 보름이나 넘긴

6월 하순경이었다.

그는 요수를 지날 동안 예상보다 날짜가 지체되어 꽤나 쫓기는 심정이었다.

마수산에 이르러 군영을 설치한 이세민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선군 장수들을 만나

그간의 경위를 들었다.

“병가의 승패란 항용 있는 일이나 장군예와 같은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세민은 도종을 위로하고 마문거를 특진시켜 중랑장(中郞將)으로 삼았지만 총관 장군예는

즉석에서 목베어 죽여버렸다.

퇴로마저 스스로 끊어가며 매서운 각오로 요동에 이른 그에게 사기를 꺾고 군율을 어지럽힌

총관 따위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한 차례 신상필벌을 마친 이세민은 친히 요동성이 바라뵈는 곳으로 나가 유심히 성세를 살폈다.

“죽은 고건무가 요동에 천리성을 쌓았다더니 과연 성곽이 높기도 하구나.”

그는 웅장하고 드높은 성루를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성이 워낙 높아 포차(砲車)와 충차로 대석(大石)을 날려도 성문 안으로 넘길 수가 없나이다.”

도종이 성문을 공략하던 경험을 말하자 이세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내게 방법이 있다.”

그는 다시 장작대장 염립덕을 불렀다.

“마수산의 흙을 져다 날라 저기 보이는 저 호(濠)를 메우는 데는 시일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염립덕은 황제가 가리키는 남문벌 너머의 물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요동성의 천연 해자(물길 방어막)인 모양이었다.

“평토하는 데는 닷새 공역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럼 성곽 높이의 흙산을 하나 만들자면 얼마나 걸리겠느냐?”

“글쎄올습니다.

군사들까지 노역에 동원한다면 열흘 후엔 제법 높은 보루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좋다. 지금 당장 시행하라!”

염립덕이 물러가자 이세민은 급히 이적을 불렀다.

“우리는 마수산의 흙을 퍼날라 적성 앞의 해자를 메우고 거기에 높은 보루를 만들어

성을 공격할 것인데 성중에서 이를 눈치채지 않아야 일이 수월할 것이오.

대총관은 효기병을 좀 데려가서 적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려보도록 하시오.”

명령을 받은 이적은 휘하의 정병 3천 기를 추려 즉시 요동성으로 달려갔다.

그때부터 그는 장장 12일 밤낮을 쉬지 않고 기세를 올리며 요동성 남문을 공격했다.

그사이 염립덕의 지휘로 당군들은 일제히 흙을 퍼다 구덩이를 메웠다.

어림잡아 이십 수만에 달하는 장정들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흙짐을 져서 나르자

해자는 금세 메워지고 하루에도 흙산의 높이가 쑥쑥 자라났다.

이세민은 몸소 말을 타고 나가 노역에 참가하고 특히 짐이 무거운 자를 발견하면

마상에서 그 짐을 나눠 들어주니 이를 본 근신(近臣)과 종관(從官)들도 다투어 흙을 수레에 싣고

성 밑으로 옮겨놓았다.

공역을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나자 물이 흐르던 요동성 남문벌의 해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웬만한 야산 높이의 흙산 하나가 새로 생겨났다.

흙산의 높이는 요동성의 절반보다도 오히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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