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요동(遙東)정벌 4
5월이 되자
비사성이 함락되고 곧 개모성마저 함락되었다는 비보가 잇달아 국내성으로 날아들었다.
개소문은 압록수에서 수군을 내어 해역의 방비를 강화한 뒤 황급히 뇌음신과 온사문을 불렀다.
“너희는 지금 즉시 국내성의 정병 2만을 데려가서 요동성을 구원하라.
나는 보지 않아도 안다.
적이 노리는 곳은 틀림없이 요동성과 안시성이며 이세민은 필경 그 두 성 가운데
어느 한 곳에 있을 것이다.”
젊은 장수들이 군령을 받고 물러나자 그는 다시 조의에서 선발한 고하를 불렀다.
“너는 신성으로 가서 성주 연보(楊延寶)에게 성군을 빌려 요동성으로 가라.
신성은 전 성주 양공(楊公:양만춘)이 선견지명이 있어 오랫동안 노역을 미루고
군사를 훈련시켜 제성 가운데 가장 군사가 넉넉한 곳이다.
만일 요동성에서 적을 물리친다면 이들은 안시성으로 내려갈 것이니
그때는 너도 뇌음신, 온사문의 군대와 힘을 합쳐 안시성을 구원하라.”
고하 역시 군령을 받고 물러나자
개소문은 노장 고정의와 북부 욕살 고연수(高延壽)를 불렀다.
“그대들은 도성에서 데려온 군사와 절나(북부)의 정군들을 모두 이끌고 안시성으로 가서
양공을 돕되 앞으로는 군사를 내어 싸우는 척하고 기회를 보아 시일을 끌며
적의 양도(糧道:군량 보급로)를 끊어라.
지금 이세민이 데려온 군사가 무릇 30만이라고 하니
이들을 먹일 양식은 대부분 요수를 건너올 것이다.
양도를 끊으면 적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개소문은 고연수를 빤히 쳐다보더니,
“연수는 어떤 경우에도 고대로(高對盧:고정의)의 절도를 받아라. 알겠는가?”
하고 매섭게 오금을 박았다.
“여부가 있겠나이까. 막리지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오골성(烏骨城) 성주로 있다가 그 아버지 고창개가 죽자
향리로 돌아와 북부 욕살의 지위를 계승한 연수는 개소문의 위엄에 짓눌려 대답을 철석같이 했다.
연수가 군령을 받고 물러난 뒤 개소문은 중부 욕살 고선(高扇)을 불렀다.
“너는 중부의 군사들을 이끌고 가시성(加尸城)으로 가서 개모성의 형세를 살폈다가
만일 이를 회복할 기미가 보이거든 성을 되찾고,
사정이 불리하면 백암성(白巖城)으로 가서 손대음(孫代音)을 도우라.
손대음은 9성 성주 가운데 가장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원군이 가서 그를 돕지 않으면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고선은 각별히 이 점을 유념하라.”
고선이 물러나자 개소문은 마지막으로 남부 욕살 고혜진(高惠眞)을 불렀다.
“혜진은 번거롭겠지만 말갈로 가서 군사를 좀 얻어와야겠다.”
막리지의 말에 고혜진은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말갈이 과연 군사를 내어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건 과히 염려하지 말라.
내가 작년에 친히 그들의 영내를 방문해 그 족장들에게 이미 맹약을 받아놓은 바다.”
“그렇다면 걱정할 게 뭐가 있습니까.”
고혜진은 그제야 안도하는 표정으로 군령을 받았다.
“말갈의 군사를 얻거든 오골성으로 가서 안시성과 요동성의 전세를 엿보다가
고연수의 군대와 합류하라.
거듭 강조하지만 적의 양도를 끊는 일은 성곽 하나를 지키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
요동의 9성을 모두 잃는다 해도 양도만 끊는다면 겨울에 내지의 군사들을 일으켜
저들을 섬멸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보다 오히려 쉬울 것이다.”
군령을 받은 장수들이 각기 임지로 흩어지고 나자 개소문도 약간의 연나부(서부) 군사들을 이끌고
국내성을 떠나 오골성으로 향했다.
뇌음신과 온사문이 원군을 이끌고 요동성에 당도했을 때는 성주 태사가 도종의 군사들과
성의 남쪽에서 한창 대치전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도종은 야음을 틈타 성문으로 진격해 본국에서 가져온 갖가지 공성(攻城) 기구들로
성문을 파괴하려고 애썼고, 태사는 이를 막느라 밤잠을 설치며 분전에 분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낮에는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다가 밤만 되면 당군이 어김없이 남문에 나타나
충차와 8륜누차에 돌을 실어 성문을 들이치니 성질 급한 태사는 그 쿵쿵거리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성문을 열어라! 내 저것들을 한달음에 쓸어버려야겠다!”
몇 번이나 성밖으로 나가 교전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태사의 심복인 모평(募平)이 소매를 붙잡고,
“성문을 열고 나가면 그때부터 적의 꾐에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은 워낙 높은 철벽의 장성이라 앉아서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데
무엇 하러 공연히 성문을 열고 나가 위험을 자초하겠습니까?
저쪽의 군사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으니 사정을 파악할 때까지 제발 화를 눅이고 참으십시오.”
하며 극구 만류하여 가까스로 교전을 막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원군이 당도하자 태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신이 나서 소리쳤다.
“이제야 저 눈엣가시 같은 것들을 쓸어버리게 되었구나! 어서 성문을 열어라!”
하지만 이번에도 모평은 소매를 붙잡고 만류했다.
“참으십시오. 앉아서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시석으로 충분한데 굳이 어려운 일을 벌일 까닭이 있는지요?”
뇌음신과 온사문도 성루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굳이 싸울 이유가 없을 듯했다.
“지금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뵈지 않으니 적세를 알아본 연후에 나가 싸워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어둠이 내리고 밤이 되자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공성 기구를 앞세운 당군 수백 명이 나타나 집채만한 바윗덩이를 쉴새없이 날려대니
다섯 자나 되는 두꺼운 성문에 서서히 금이 가고 성벽에도 조금씩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쿵쾅거리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여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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