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4

오늘의 쉼터 2014. 11. 1. 22:22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4

 

 

 

유신의 집은 군사들이 행진하는 큰길가에 있었다.

북소리를 울리며 진군하는 군대를 구경하고 격려하려고 길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운집했다.

장수와 군사의 가족들도 모두 그곳에 몰려나와 먼발치에서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다시 눈바래기로 떠나보낼 뿐이었다.

유신의 집에서도 많은 사람이 구경을 나와 있었다.

수많은 구경꾼과 별배들 틈에서 유신의 처나 흠순의 처도 반년이나 헤어진 남편 얼굴을 보려고

다리를 한껏 앙버티고 기다렸다.

마침내 군사들의 모습이 시야에 나타나고 펄럭이는 대장기(大將旗) 아래로 늠름한 장수 하나가

 말을 탄 채 지나갔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앞만 바라볼 뿐 집 쪽을 향해서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 지소는 혹시 그가 딴사람이 아닐까 의심이 일었다.

“대장군이 바뀐 것은 아닐까?”

“대장군이 바뀌다니요? 그런 말도 없었지만 풍채를 보아하니 틀림없는 큰서방님입니다요!”

“저기 보십시오, 대장군 깃발에 신라 장군 김유신이라고 분명히 써놓았지 않습니까?”

지소의 말에 별배들이 다투어 소리쳤다.

“그렇다면 어째서 말 안 듣고 쫓겨난 사람처럼 나하고는 눈도 맞추지 않는단 말이야?”

지소는 너무도 속이 상했다.

한데 그 뒤로 지나가는 흠순도 눈길을 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지소는 그제야 유신에게 무슨 깊은 뜻이 있는 줄을 알았다.

집 앞을 그냥 지나쳤던 유신은 군사의 대오를 맞추기 위해 잠시 쉬게 되자 가만히 소천을 불렀다.

“우리 집에 가서 장물(漿水:간장)을 한 사발만 떠오너라.”

소천은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군말 없이 말을 타고 달려가서 유신의 집 장물을 떠다주었다.

유신이 그것을 받아 맛을 보고 나서 흠순을 불러,

“우리 집 장물 맛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하고는 남은 장물을 흠순에게 내밀며,

“너도 맛을 보아라.

내가 들으니 집안에 흉변이 있으면 장물 맛이 먼저 간다고 했는데

아버지 일은 아직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였다. 불만하던 군사들은 유신이 집 앞을 그냥 지나칠 때부터

서서히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가 이 모습을 지켜보자 서로 눈빛을 빛내며,

“대장군도 저와 같은데 하물며 우리가 어찌 골육과 헤어지는 것을 한탄하랴!”

하고 새롭게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비장했던 각오와는 달리 이때의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김유신의 군대가 적화성에 당도했을 때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싸움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앞서 매리포성에서 대패한 윤충은 전날의 실패를 거울삼아 적화성 맞은편의 넓은 공터에

군사들을 늘여 세우고 신중히 적의 동향을 살폈다.

유신은 성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 군사들을 오행진(五行陳:오군진)의 형태로 배치하고

스스로 한 필 말에 올라 대장기를 펄럭이며 위세를 과시했다.

윤충은 나부끼는 붉은 깃발에 쓰인 글을 보고 김유신이 온 줄을 알았다.

게다가 펼쳐놓은 진형을 보니 그 형세가 굳어 좀처럼 공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윤충은 며칠간 기회만 엿보다가 결국 군사를 되돌려 대야성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6장 요동(遙東)정벌 2  (0) 2014.11.02
제26장 요동(遙東)정벌 1  (0) 2014.11.02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3  (0) 2014.11.01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2  (0) 2014.11.01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1  (0) 201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