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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여제(麗濟)동맹 23

오늘의 쉼터 2014. 11. 1. 22:18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3

 

 

 

윤충은 그것을 천운이라고 여겼다.

“만일 대야성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지켰더라면 이번에 우리는 살아남지 못할 뻔했구나.”

그는 물을 떠 마시고 잠시 안도감에 젖었다.

그런데 조용하던 호숫가 어둠 속에서 언제부턴가 조금씩 사각거리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윤충은 혹시 대야성의 군사들이 마중을 나왔나 싶어 고개를 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적장은 들어라! 계림의 장부들이 이곳에서 너희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수백 명의 말 탄 군사들이

윤충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윤충은 오줌을 지릴 정도로 크게 놀랐다.

“조금만 더 가면 대야성이다! 어서 대야성으로 피신하라!”

그는 목이 터지게 고함을 질러 부하들을 재촉하는 한편 자신도 말에 뛰어올라

죽을힘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생지옥에서나 들을 수 있는 처절하고 구슬픈 비명소리가 난무했지만 윤충은

말 배를 걷어차며 오직 앞으로 내닫기에만 바빴다.

그곳에서 다시 수백 명의 지친 백제군이 목숨을 잃었다.

“게 섰거라!”

도망가는 윤충의 앞을 가로막은 장수는 품일이었다.

품일은 윤충을 사로잡을 욕심에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

그러나 윤충도 만만찮은 장수였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실력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켜라, 이놈!”

윤충은 패장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품일의 칼을 무섭게 받아친 뒤

그대로 몸을 날려 비호처럼 달아났다.

품일이 얼마만큼 뒤를 쫓아갔지만 잡지 못했다.

매리포성 반격에서 신라는 또다시 대승을 거두고 적군 2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김유신이 승리한 군사들을 이끌고 금성으로 돌아와 임금에게 복명한 것은 그해 3월이었다.

여주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김유신과 여러 장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런데 장졸들에게 내릴 상도 미처 결정하지 못했을 때 또 변방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이번엔 흠돌이 쳐서 얻은 적화성에 백제군 수천 명이 나타났다는 전언이었다.

“이 일을 어찌하오? 나라의 존망이 공의 한 몸에 달렸으니

수고롭겠지만 또 한 번 나가서 계림을 지켜주오.

적들이 전비를 갖추기 전에 가야 방비가 쉽지 않겠소?”

여주의 안타까운 부탁에 유신은 흔쾌히 대답했다.

“조정의 녹봉을 받는 신하가 어찌 수고로움을 따지겠나이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신이 가서 단숨에 적을 물리치고 오겠나이다.”

유신이 어전을 물러나오니

군사들은 이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한결같이 희색이 만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혜성을 칠 때부터 반년이 넘도록 식구들 얼굴을 보지 못한 군사들이었다.

유신 또한 아버지 서현의 안부가 말할 수 없이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자신은 물론 어느 누구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는 들떠 있는 군사들에게 다시 출정 사실을 알리고 훼손된 병기구를 수리했다.

낙담한 군사들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신의 아우 흠순이 그런 군사들의 분위기를 전하며,

“하루가 어렵다면 반나절만이라도 집으로 보냅시다.

저렇게 불만들이 심한데 데려가서 무슨 싸움이 되겠습니까?”

하니 소천도 나서서,

“군사들도 군사들이지만 장군께서도 집에 가서 소식이나 묻고 오십시오.

여기서 집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덴데 편찮으신 나리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습니까?”

잊고 그랬는지 부러 그랬는지 유신의 당부를 무시하고 소리를 질렀다.

흠순이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니?”

하고 소천을 다그쳐서 소천이 집안 사정을 비로소 다 털어놓았다.

하지만 유신의 뜻은 요지부동이었다.

“군사들을 집에 잠깐이라도 보내면 긴장이 풀어져서 오히려 싸우기 어렵다.

설사 불만이 있더라도 장수들이 먼저 본을 보이면 군사란 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부상한 인원을 보충하고 군사들을 쉬게 한 뒤 출정 채비를 다시 갖추는 데는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그동안 장수와 군사들 사이엔 대장군의 집에 우환 든 사실이 죄 알려져서 어쩌면 하루나 이틀쯤

출정을 연기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기대가 만들어낸 소문이었다.

거기다 병부령 알천도 병장기를 보강하고 군사들을 격려하러 와서,

“비록 화급을 다투는 일이지만 궐에서 집이 훤히 보이는 거리니 잠시 유했다가 가시게.”

하고 유신에게 권한 뒤로는 출정 연기가 기정사실처럼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소문과 기대를 뒤엎고 유신은 출정을 명했다.

군사들의 낙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오를 새롭게 정비한 군대는 병부의 집결장을 빠져나와 큰길을 행진하며 서쪽으로 향했다.

아침에 왔던 길을 반나절 만에 되돌아가는 꼴이었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신바람이 났던 군사들은 반나절을 쉬었지만 오히려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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