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여제(麗濟)동맹 22
“문충과 흠돌은 마군을 이끌고 성문을 나가는 즉시 동서로 갈라져 적군을 에워싸고
적의 마군을 공격하며 안쪽으로 옥죄어 들어오라.”
문충과 흠돌이 복수하고 물러나자 다음엔 진주와 소천, 흠순을 불렀다.
“너희는 군사를 이끌고 중앙을 갈라 성의 맞은편에 명령하는 자들을 공격하되
만일 달아나는 기미가 보이거든 서쪽으로 몰아라.
그럼 적들은 동쪽으로 달아나려고 기를 쓸 것이다.
이때 동쪽으로 아무리 많은 무리가 달아나더라도 무시하고 너희는 끝까지
서쪽으로 달아나는 자들만 추격하라.”
장왕에게 뺏기기 전만 해도 그 일대는 모두 신라 땅,
게다가 낭도들을 끌고 주야장천 산천을 돌아다녀서 웬만한 지형지세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고 있던 김유신이었다.
“품일과 문영은 남은 마군 3백 명을 모두 이끌고 북문으로 빠져나가 적화성 쪽으로 우회하여
가혜나루 남단으로 내려가라.
나루에 도착하는 대로 몸을 숨기고 기다리면 오늘밤에 여기서 도망친 적군들이
초췌한 몰골로 나타날 것이다.
한 놈도 남김없이 주살하되 적장을 생포할 수 있거든 생포하라.”
품일과 문영이 힘차게 대답하고 자리를 뜨자 그는 부순을 돌아보았다.
“형님은 어떻습니까? 아우 함의 원수를 한번 후련히 갚아보시렵니까?”
“여부가 있소. 아우님이 대장군이 되어 왔으니 나 또한 절도를 받으리다.”
“기왕 금물성에서 예까지 오셨으니 오랜만에 저하고 녹슨 칼이나 닦아보시지요.
형님을 뵈니 낭도들을 이끌고 다니던 풍월주 시절이 새삼 그립습니다.”
“나 또한 그렇소. 우리가 이때를 위해 젊어서부터 그렇게들 칼을 갈지 않았소?”
군령을 받은 장수들이 모두 떠난 말석에 군관이란 청년이 홀로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신은 군관을 불렀다.
“그대의 신들린 듯한 창술을 다시 한 번 구경할 수 있겠는가?”
“지난 며칠간 늘 하던 짓이올시다.”
군관이 웃으며 대답했다.
유신은 부순, 군관과 함께 성문을 열고 나가 직접 백제군의 정면을 들이쳤다.
기껏해야 또 말 탄 청년이 나올 줄 알았던 백제군은 갑자기 수천 명의 군사가
성문으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자 크게 놀라고 당황했다.
정면이 공격을 받는 틈을 타 양쪽으로 쏜살같이 갈라진 마군들이 바깥을 감싸고 포위를 풀지 않으니
1만 백제군의 대오가 삽시간에 형체도 없이 허물어졌다.
거기다 윤충이 날아오는 시석을 염두에 두고 군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짜놓은 울타리 모양의
책진법(柵陣法)이 역공에 밀려 달아나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되었다.
“도대체 저 많은 군사가 어디서 한꺼번에 나타났단 말인가?”
진중의 후미에 있던 윤충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마도 원군이 온 모양입니다.”
“아, 내가 시일을 너무 지체했구나. 이것이 모두 그 젊은 놈 때문이다.”
비로소 그는 원군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
“어서 징을 쳐서 마군들을 불러라! 책(柵)을 풀지 않으면 아군이 패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징소리를 울려도 백제 군사를 둘러싼 마군들은 좀처럼 퇴각할 수 없었다.
문충과 흠돌의 군사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후미에서부터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보군들에게도 퇴각 명령을 내려라! 전군에 퇴각 명령을 내려라!”
윤충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그는 아군이 처참히 무너지는 것을 보고 이를 갈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인파에 떠밀려
적장을 상대할 수조차 없었다.
후미의 길을 터주자 비로소 퇴각로가 열리고 군사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윤충은 달아나야 한다는 부길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분함을 참지 못해 적군 몇을 베어 넘겼다.
한동안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고 났을 때였다.
“아악!”
자신의 옆에서 같이 싸우던 부길이 갑자기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윤충이 깜짝 놀라 보니 황소같이 생긴 젊은 장수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김유신의 부장 흠돌이 네 목을 취하려고 왔다!”
부길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단칼에 죽는 것을 본 윤충도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두 사람은 곧 한덩어리가 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0여 합. 하지만 승부는 좀처럼 갈리지 않았다.
쉽게 이길 줄 알았던 두 사람은 합이 거듭될수록 상대가 어렵게 느껴졌다.
불리한 쪽은 쫓기는 윤충이었다.
“다음에 보자!”
윤충은 적당한 기회를 틈타 말머리를 돌렸다.
흠돌도 그런 그를 더 이상 뒤쫓지 않았다.
어려운 상대 하나보다는 쉬운 상대 여럿을 죽이는 일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성문 앞에서 대패한 윤충의 군사들은 대야성이 있는 남동쪽을 향해 달아났다.
뒤를 쫓아오는 적군이 이를 허용할 리 없었다.
그들은 패주하는 군사들을 남서쪽으로 몰아가려고 애썼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사이에 또 한 번 목숨을 건 혈전이 벌어졌다.
윤충은 정신없이 칼을 휘두르며 남동쪽으로 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얼마나 많은 군사가 목숨을 잃었는지 모른다.
윤충이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가까스로 가혜나루 남단에 이르렀을 때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대야성까지는 불과 20리, 윤충은 물가에 이르자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이곳에서 잠깐 쉬어가자.”
그는 퇴로를 얻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나머지 칼을 들 힘조차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신라군이 대야성 쪽으로 쫓아오지 않고 반대편으로 소수의 군사를 몰아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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