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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여제(麗濟)동맹 19

오늘의 쉼터 2014. 11. 1. 21:40

제25장 여제(麗濟)동맹 19

 

 

 

“어차피 가혜나루로 나가봤댔자 이쪽으로 다시 올 게 아니오?

게다가 우리야 계획대로 성을 얻었지만 진주 장군이나 품일 장군이

반드시 우리와 같으리란 보장도 없소.

그렇다면 가혜나루에서 또 얼마나 시일을 지체하겠소?

두고 보십시오만 제가 적화성까지 쳐서 아우르고 나면 대장군께서도 흡족해하실 게 틀림없소.

그럼 장군께서 다시 여기로 왔을 때도 한결 일이 수월하지 않겠소?”

흠순도 듣고 보니 생판 허무맹랑한 얘기만은 아니었다.

서쪽을 조금이라도 확보해두면 동남쪽 거타주를 칠 때 나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유신의 당부도 무시할 수 없어,

“형님께서 무슨 복안이 있어 그런 군령을 내리지 않았겠나?

여기야 너설에 험지로 둘러싸인 데라 여간 소란이 나도 거타주에서 알기 어렵지만

적화성에 봉화가 오른다면 사정이 다르네. 내 생각엔 그냥 군령대로 따르는 게 좋지 싶은데.”

흠순의 말투가 약간 눅어지는 기미를 보이자 흠돌은 더욱 기가 살아났다.

“글쎄 뒷일은 모두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요!

어차피 칠 것, 하나 더 먼저 친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씀이오?

싸움도 기세가 올랐을 때 싸움이지, 며칠씩 주저앉았다가 싸우라면 흥이 납니까?

적화성을 수중에 넣지 못하면 군령을 어긴 죄로 목을 내놓겠소!”

흠돌이 워낙 날뛰는 바람에 흠순도 문충도 더 만류할 수 없었다.

흠돌은 당장 자신의 군사 1천을 거느리고 적화성으로 떠나고 흠순과 문충만 군령대로

가혜나루에 도착했다.

이들이 도착하고 반나절쯤 지났을 때 품일이 나타났다.

잇달아 진주가 오고 마지막으로 김유신이 왔다.

“노고가 컸다. 다들 제 몫을 훌륭히 해낸 모양이구나!”

유신은 활짝 웃으며 장수들을 치하하다 말고 갑자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흠돌은 어디로 갔느냐?”

이에 흠순이 모기 소리만하게 경위를 설명했다.

흠순의 말을 들으면서 김유신의 안색이 점차 흙빛으로 변해갔다.

“하면 흠돌이 혼자서 적화성을 치러 갔단 말이냐?”

“네.”

“너는 보고만 있었더냐?”

누가 보더라도 꾸짖는 말투였다.

흠순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맛을 다시자 문충이 나서서 흠순을 변호했다.

“흠순 장군께서야 여러 번 좋은 말로 나무라고 또 말렸지만 대장군께서도

흠돌의 별쭝난 성깔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 녀석이 어디 남의 말을 듣는 사람입니까?

적화성을 얻지 못하면 목을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바람처럼 유유히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충은 흠돌까지 변호했다.

“그 녀석도 대장군께 공을 세울 욕심밖에 더 있겠나이까?

뒷일을 수월하게 하겠다고 기를 쓰고 갔으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유신은 한참 동안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더니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운이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흠돌이 비록 적화성을 취하더라도 그곳이 위급하면 남역 전체가 경계에 들어갈 것이므로

뒷일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기천의 군사로 남역을 모두 상대할 수야 없지 않느냐?

여섯 성을 얻고 가혜나루를 열었으니 이걸로 만족할 수밖에.”

하지만 적화성을 치러 간 흠돌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그는 1천 군사를 모두 허허벌판 적화성 앞에 횡대로 늘여 세우고 적을 유인해

이를 얕본 성안의 군사들이 달려나오자 과감하게 단병접전으로 응수했다.

흠돌은 황소 같은 힘과 신들린 듯한 검술로 적장 10여 명의 목을 베고

달아나는 적의 후미를 들이쳐 1천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놀란 성주가 봉화를 올려 위급함을 알렸지만 흠돌의 기세를 당할 수 없어

수레를 타고 남문으로 달아났는데, 흠돌이 성을 장악한 뒤 추격군을 놓아 성주를 다시 잡아왔다.

그는 사로잡은 성주를 성루에 매달고 주먹으로 때려죽였다.

김유신이 군사들을 이끌고 적화성에 나타나자 신이 난 흠돌은 침을 튀겨가며 자신이 한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유신은 근엄한 표정으로 흠돌을 지그시 바라보고 나서,

“성을 뺏은 공은 집 한 채 값이지만 군령을 어긴 죄는 참수감이다.

적화성 하나를 얻고 거타주를 잃었으니 공도 죄도 모두 네 것이다.

군사를 부리는 장수가 신상필벌에 엄격해야 하는 것은 병가의 불문율이니

군율을 세우려면 마땅히 너를 참수해야 할 것이다.”

하고 엄포를 놓았다.

제 자랑에 침이 말랐던 흠돌이 돌연 자라목을 하고 눈치를 살피니

유신의 표정에도 겁이 났지만 주위에 둘러선 다른 장수들의 안색이 다들 침통하여

그제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하겠느냐? 상을 먼저 받겠느냐, 벌을 먼저 받겠느냐?”

“……상에다 벌을 제하면 안 되겠는지요.”

좀 전과는 달리 흠돌의 목소리는 목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이놈아, 그것이 격이 맞느냐?”

“봉화대에 불이 오르는 것을 보고 진작에 잘못한 일인 줄 깨달았으나 그땐 이미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흠돌은 평소 그답지 않게 손이 발이 되다시피 싹싹 빌었다.

유신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러자 제일 먼저 흠순이 나섰다.

“흠돌은 충심이 지나쳐서 그런 것이니 이번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군영의 본보기로 삼자면 참수가 마땅하나 끝까지 말리지 못한 저에게도 죄가 있으니

처벌을 하려면 같이 해주십시오.”

흠순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흠돌과 티격태격 다투던 문충이 말했다.

“소장 또한 흠돌을 만류하지 못한 죄가 큽니다. 함께 처벌해주십시오.”

진주와 품일도 가만있지 않았다.

“저희가 동화성과 성열성을 취한 공이 있다면 그것까지 보태어 흠돌의 죄를 삭감하여주십시오.”

흠돌은 여러 장수들이 한결같이 자신을 두호하자 너무도 감격하여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유신이 어린애처럼 우는 흠돌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한 말투로 일렀다.

“군령을 어기는 장수는 장수가 아니야.

이 말을 명심한다면 너는 앞으로 계림의 최고 장수가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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