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여제(麗濟)동맹 18
군사들과 백성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야산 계곡과 심지어 성안의 우물에서까지 물을 퍼 나르느라
밤새 손발이 바빴다.
어느 정도 불길이 잡히자 성안의 부녀자들이 고생하는 남자들을 위해 야참을 마련하고 술까지 곁들여
야외에서 즉석 잔치판이 벌어졌다.
힘든 노역에 재미가 붙어 고생이 반감되자 부여성도 이를 흐뭇하게 여기고,
“불은 신라군이 내고 덕은 우리가 보네.”
하고는 기왕 벌어진 잔치에 먹으라고 짐승 몇 마리를 내놓았다.
이들이 불 덕에 예정에도 없던 야간 잔치를 흥겹게 벌이고 새벽녘이 되어 성으로 돌아왔을 때
성의 남문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동화성 군사가 비록 강했지만 밤샘 노역에다 술까지 마신 터라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여성은 급히 봉화를 올려 동화성의 위급함을 사방에 알리는 한편 스스로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남문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성문은 부서지고 신라군이 사방에서 덤벼들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는 해가 뜰 때까지 이리저리 적군을 피해 다니다가 부장 해치가 적장의 손에 구슬픈 비명을 지르며
죽는 것을 보자 분기를 참지 못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본래 무인(武人)이 아니라 부지런하고 학식 높은 선비일 뿐이어서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동화성 쪽에서 밤새 정체 모를 연기가 날 때부터 성열성 망꾼들은 북변 망루를 떠나지 않았다.
그 연기가 조금씩 잦아드는가 싶더니 새벽녘에 다시 연기가 치솟는데 이번엔 신호까지 하는 걸로
미루어 틀림없는 봉화였다.
곤한 잠에 빠졌던 성주 연미질(燕彌秩)은 눈을 뜨자마자 급히 성중의 군사를 소집했다.
동화성 성주 부여성의 장인이기도 한 그는 사위가 위급함에 처하자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크게 놀랐다.
“내 사위는 글을 읽은 사람이라 병법에는 밝지만 무기를 잘 다루지 못한다.
망지 장군의 각별한 부탁이 아니더라도 어찌 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인가.”
그는 휘하의 장수들을 모두 부르고 성열성 군사 가운데 1백여 명만을 남겨둔 채 시급히 동화성을
구원하라고 명령했다.
그때까지 성열성 주변에선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었고,
또 그는 만일의 경우에도 성곽 자체의 지형지세가 가파른 것을 믿었다.
거의 전군을 동화성으로 파견한 연미질이 뜻밖에도 적의 공격을 받은 것은 해가 뜨고도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당황한 그는 남은 군사들을 성루에 늘여 세우고 성안의 여자와 어린애들까지 동원해
시석을 퍼부었지만 상황은 점점 어려워졌다.
“아뿔싸, 내가 너무 많은 군사를 동화성으로 보냈구나.”
미질이 후회를 할 무렵 이번에는 인근 자성에서도 위급함을 알리는 봉화가 오르기 시작했다.
사위의 일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자신부터 무사하고 볼 일이었다.
그는 사람도 보내고 북편 봉수대에 봉화도 올려서 동화성으로 보낸 군사들을 황급히 불러들이는 한편
남쪽의 적화성에도 구원을 요청했다.
모성에서 성주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거시, 남내, 속함의 자성 셋은 이미 신라군의 손에 들어갔다.
한바탕 교전 끝에 별로 어렵잖게 자성을 장악한 신라군은 성을 공취한 직후 속함성에 집결해
군령대로 남문 밖의 소로를 찾아 군사를 숨겼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큰길 쪽에서 과연 수백 수천 명의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동화성으로 가던 도중에 급보를 받고 황급히 성열성으로 되돌아가는 군사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대장군은 신장일세!”
문충이 동갑인 흠돌을 향해 씩 웃었다.
상수관의 막내 문충이 삼천당의 최고 무인이 된 건 매사에 적극적이고 악착같은 그의 성격 때문이었다. 검술로만 쳐서 당대 제일이라는 소리를 듣던 두 사람은 거시와 남내를 칠 때부터 서로 누가 적장을
많이 죽이는가 내기까지 벌이곤 했다.
기교로는 한수 위인 문충이 거시성에서 적장 넷을 동시에 베자 남내에서 셋을 죽인 흠돌이 갑자기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와,
“항복한 적장 한 놈을 죽이고 왔으니 피장파장이야.”
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흠순이 그 꼴을 보고,
“아무리 적이지만 사람 목숨을 가지고 내기를 할 게 무어냐? 이런 망나니들 같으니……”
하고 꾸짖은 뒤에야 내기 말이 쑥 들어갔지만 그래도 흠돌은 문충보다 더 큰 공을 세우려고
내심 야물게 마음을 도슬렀다.
셋은 흠순의 지휘에 따라 매복지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성열성으로 되돌아가는 데만 혈안이 된 백제군은 갑자기 길가에서 복병을 만나자
미처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대오가 흐트러지고 장수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에 신라군은
닥치는 대로 백제군을 짓밟았다.
무기를 휘두르는 자는 신라군이요,
마른 짚단처럼 맥없이 나동그라지고 잘려나가는 자는 백제군이었다.
김유신의 비유대로 길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 담는 일보다 결코 어렵지 않은 싸움이었다.
이날 신라군 3천이 매복지에서 죽인 백제군은 2천 명이 훨씬 넘었다.
거의 전멸이었다.
인간 세상에 예나 지금이나 전쟁보다 끔찍하고 참혹한 것이 또 있을까.
시체는 큰길에 산처럼 쌓이고 피는 개천이 되어 계곡을 따라 흘렀다.
그 처참한 광경 위로 무심한 나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낙엽을 털어내곤 했다.
군사들이 돌아가지 못한 성열성도 이내 품일의 군사들에게 함락되었다.
성주 연미질은 신라군에게 사로잡혀 조리돌림을 당한 뒤 죽었고,
그 처첩들도 같은 꼴을 당했다.
처음 군령을 내릴 때 김유신은 모든 장수들에게 성을 공취하면 즉시 가혜나루에 모일 것을 지시했다.
가혜진은 속함성에서 적화현을 거쳐 대야성 입구까지 흐르는 크고 넓은 호수였는데
그 동남쪽에 신라가 부여장에게 뺏긴 거타주 6성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속함성에 전군을 집결해 거타주 전역을 되찾고 대야성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유신의 계책이었다.
그러나 일은 엉뚱한 곳에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거타 6성의 최북단인 속함성에서 적군 2천 명을 참살한 뒤 흠돌은 서남쪽의 적화성(赤火城)으로
눈길을 돌렸다.
평소 성질이 불 같던 그는 산모퉁이 두어 개만 돌아가면 나타날 적화성 쪽 하늘을 바라보며
결의에 찬 얼굴로 흠순에게 말했다.
“장군께서는 가혜나루로 가십시오.
저는 그사이에 저놈의 적화성을 쳐서 대장군이 오실 때 선물로 바칠까 합니다.”
흠돌의 말에 흠순도 문충도 깜짝 놀랐다.
“이 사람아,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괜히 나서지 말게. 대장군께서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질 걸세.”
하지만 흠돌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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