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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여제(麗濟)동맹 14

오늘의 쉼터 2014. 11. 1. 20:52

제25장 여제(麗濟)동맹 14

 

 

 

유신은 가혜성에서 누군가 말을 타고 나오자 가만히 문영에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저들에게 한껏 얕보여야 한다.

나는 도망갈 채비를 갖추고 기다릴 테니 네가 나가서 한번 상대해보겠느냐?”

“얼마나 시간을 끌면 될까요?”

문영은 김유신이 자신을 믿어주는 것에 신바람이 나서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적당히 끌어라. 처음부터 너무 맥없이 도망치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싸우는 흉내는 내야지.

너도 적과 싸우는 것은 처음이니 차제에 적장을 상대하는 법이나 익혀두도록 해라.”

“명심하겠나이다!”

문영이 힘차게 대답하고 말을 달려 나가자 백문두가 마상에서 칼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너희는 대체 무엇을 하러 나온 얼뜨기들인가?”

“가혜성을 치러 온 압량주의 용사들이다!”

문영도 지지 않고 소리 높여 응수했다.

문두가 문영을 보니 아직 나이도 어린 데다 신출내기 티가 역력하므로 가소롭다는 듯 껄껄거리고 웃었다.

“나라꼴이 워낙 한심하니 동네 조무래기들이 의분을 참지 못해 나선 모양이구나.

뜻은 가상하다만 이놈아, 전쟁이 무슨 어린애들 장난인 줄 아느냐?

어서 동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라!”

문두가 점잖게 나무라자 문영이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네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 솜씨를 보고도 그따위 소리가 나오는지 어디 보자!”

이어 문영은 칼을 뽑아 들고 벼락같이 말배를 걷어차며 문두에게 달려들었다.

문두는 마지못해 문영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섰으나 점점 칼을 놀리는

문영의 솜씨가 빨라지자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네가 봉변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문두는 본격적으로 문영의 공격을 상대하려고 칼을 고쳐 잡았다.

그때부터 두 사람이 어울려 10여 합을 겨루었는데 승부가 좀처럼 갈리지 않았다.

말머리가 떨어졌을 때 문두가 다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김유신 장군의 비장인 김문영이다!”

문두는 김유신의 이름을 듣자 잠시 뜻밖인 표정을 지었다.

“김유신이라면 고구려의 낭비성을 혼자 쳐서 얻었다는 장수가 아니냐?”

“왜 아니겠느냐? 우리 장군의 존함을 아는 것을 보니 너도 귀머거리는 아닌 모양이구나.”

“하면 김유신이 여기 왔단 말이냐?”

“물론이다!”

“가혜성을 치러 김유신이 왔다고?”

문두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글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그렇다고 하지 않느냐?”

“군사는 얼마나 되느냐?”

“숫자는 1천밖에 되지 않지만 가혜성 하나쯤을 얻는 데는 충분한 군사들이다.”

문두는 문영의 말을 들으며 한편으로 신라군의 진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과연 숫자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듯했다.

“어서 승부를 가리자! 너를 죽이지 못한다면 우리 장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문영이 대갈일성 고함을 치르며 다시 칼날을 세워 달려들었다.

양자가 어울려 또다시 싸우기를 10여 합,

그런데 문두의 칼이 허공에서 춤을 추다가 문영의 어깨를 내리찍자

문영이 슬쩍 몸을 돌리더니 갑자기 안색이 하얗게 변하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문두는 상대가 겁을 먹은 줄 알고 쏜살같이 문영이 탄 말을 뒤쫓았다.

“문영이 아무래도 역부족인가 봅니다. 제가 나가서 돕겠습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신에게 성보의 아들 소천이 말했다.

그러나 유신은 웃으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어서 군막을 걷어라. 1백여 보만 뒤로 물려 다시 진지를 만들자.”

유신이 웃는 것을 본 소천은 그제야 모든 것이 계책인 줄 알고 군사들을 독려해 서둘러 군막을 걷었다.

적진 가까이 문영을 뒤쫓아온 문두는 군사들이 물러나는 것을 보는 순간 왈칵 겁이 났다.

아무리 기잠성에서 혼자 1천 군사를 상대했던 그였지만 그때는 서로가 피를 흘리며 싸울 때여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어느 만큼 문영을 뒤쫓던 문두는 급히 말머리를 낚아채어 가혜성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잘했네. 저들은 우리를 유인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게 틀림없네.

문영이란 놈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김유신이 고작 1천 군사를 데리고 하필이면

변방의 우리 가혜성을 치러 올 리가 없지. 반드시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걸세.”

문두에게서 이야기를 전해들은 성주 진기문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휘하의 장수와 군사들에게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바깥의 동태만 유의해서 살피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신라군 진지에서는 날마다 김문영이 혼자 나와 고함을 질러대며 싸움을 걸었지만

진기문은 적의 속셈을 알 수 없다며 일체 응수하지 않았다.

“성주께선 지나치게 겁을 내는 게 아니오?

내게 말 한 필만 주면 연일 소란을 떠는 저놈들을 혼자서라도 싹 쓸어버리고 오지요!

이거야 원, 밥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소, 그렇다고 잠을 마음놓고 잘 수 있소?”

사나흘쯤 지나자 제일 먼저 불만을 터뜨린 자는 부리였다.

그러자 흑치모도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투덜거렸다.

“백장군이 아무래도 어린애한테 속은 거요.

김유신이 온 게 아니라 문영이란 그놈이

어디서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만 잔뜩 이끌고 온 게 분명하오.

왜 신라엔 화랑인가 하는 조무래기 패가 있질 않소?”

시일이 지날수록 가혜성에서는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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