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장 여제(麗濟)동맹 12
한편 이보다 앞서 당에 사신으로 갔던 훈신이 돌아오자 신라 조정은 사뭇 비탄에 잠겼다.
하늘처럼 믿었던 당나라의 검은 속셈이 훈신의 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훈신은 여주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주가 말한 세 가지 가운데 본심은 마지막 방책에 있었나이다.
이는 전하가 여자임을 핑계로 당주의 친척을 보내 우리를 당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계책이므로
신은 그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양 바보 흉내만 내다가 물러났으나 가슴에선 울분과 비애가
치밀어 애간장이 찢어지는 듯하였나이다.
전하, 어쩌다가 계림이 이 지경이 되었나이까?
우리나라에도 조정에는 문무백관이 있고, 병부에는 숱한 장수가 있으며,
화랑들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려 말을 달리고, 산곡간에는 의로운 장부들이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르고 있나이다.
동맹도 중하고 남의 군사를 빌려오는 것도 필요하나 그보다 더 위중한 일은
우리 스스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7백 년을 이어 내려온 유구한 사직이올시다.
이제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으니 전하, 부디 장수와 장정들을 끌어 모으고
병장기를 수리하여 자력으로 우리나라를 지켜주십시오.
용렬한 신은 비분강개를 이기지 못해 장안의 담벼락에 머리를 부딪쳐 자진하고 싶었지만
바로 이 말씀을 드리고자 만길 물길을 헤치고 전하의 앞에 다시 이르렀나이다!”
훈신이 피를 토하듯 절규하자 여주도 덩달아 눈시울을 붉혔고 신하들 역시 고개를 숙인 채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르고 나서 여주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방에는 대적과 소적이 우글거리고 도둑과 승냥이 떼가 미친 듯이 날뛰는데
우리는 스스로 지킬 힘이 없어 허공만 바라보며 불안에 떨고 있으니
지금 당하는 이 모든 시련은 내가 여자로서 나라를 다스릴 만한 덕이 없는 탓이다.
나라의 강성함은 백성들로부터 나오고, 백성들의 강성함은 제도와 문물에서 나오며,
제도와 문물의 강성함은 조정과 임금으로부터 나온다.
외세의 침략을 당하매 어린애부터 늙은 노인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결합하여
창칼을 들고 나와 싸우는 나라는 강국이다.
그러나 그 강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난 10여 년간 제도와 문물을 손보고 선정을 베풀려고
불철주야 노력해왔지만 갈수록 사정은 나아지지 않으니 아무래도 과인에게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여주는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한 뒤 놀랍게도 양위를 거론했다.
그는 신라를 고립시키려는 주변국의 공세에 무척 위축되고 지쳐 있었다.
“작금의 왕실을 둘러보면 임금이 될 만한 사람으로 비담공(毗曇公)이 있다.
예전에 백반 숙부가 그렇게도 보위를 이으려고 애를 썼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차라리 그때 숙부가 왕이 되었더라면 이런 어려움은 겪지 않았을지 모른다.
과인은 여자로서 군사를 부리고 병법을 구사하매 한계가 있다.
게다가 나도 이제 나이 예순을 훌쩍 넘겨 총기마저 예전 같지 않다.
하여 젊은 비담공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과인은 다시 장안사로 들어가 사직의 안전과 일신의 안식을
함께 도모하고 싶구나.”
여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러 명의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불가를 외치고 나왔다.
그 가운데 제일 목소리를 높인 이는 품주대신 수품과 병부령 알천이었다.
“하루를 보내는 데도 낮과 밤이 있듯이 일국의 사직을 운위함에도 성기와 쇠기란 반드시 있는 법입니다. 대개 난세가 있고 다음 성세가 돌아오기까지는 제아무리 명군 성주라도 10년 세월은 걸린다고 하였는데, 이제 전하께서 나라를 맡아 다스린 지 바로 그 10년이 조금 지났을 뿐입니다.
항차 그 세월은 덧없이 보낸 10년이 아니옵고 전하와 만조의 중신들이 합심하여 밤낮으로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고 전조의 만연했던 난속과 악정의 병폐를 바로잡으며 보낸 세월입니다.
지금 당장 성세가 오지 않는다고 낙담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오랜 한재에 메말라 갈라진 땅에서
하룻밤 소낙비에 꽃이 피고 과실이 달리지 않음을 한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오리까?
그러나 지난 10년간 전하께서 기울인 노력은 매일 조금씩 내리는 단비가 되어 땅바닥 깊숙한 곳에서부터 마른 곳을 적시고 차츰 지면으로 차올라 드디어 기름진 옥토로 만들어가고 있나이다.
이제 그곳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다면 얼마 안 있어 틀림없이 만개한 꽃과 탐스러운 과실을
보게 될 것이니 우선 당장의 일이 어렵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옵소서.
신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아뢰는 말씀입니다.”
축건백이 수품의 말이 끝나자 알천도 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 또한 병부의 일로만 아룁니다.
건복 말년의 어지러운 정사로 법강과 풍기는 누더기처럼 갈라져서 장정들은
군역에 동원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또 기회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져나가려고만 했습니다.
신이 처음 병부를 맡았을 때는 군역에 나온 사람들의 절반이 늙은이요,
창과 칼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자가 태반이었나이다.
그런 군사들을 데리고 제아무리 무예와 병법의 기초를 말한들 무슨 진전이 있었겠나이까?
그러나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국기가 바로 서고, 나라의 정책과 제도가 백성들을 착취하는 쪽에서
보살피는 쪽으로 돌아선 뒤 지금은 스스로 군역에 나오려는 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나이다.
과연 나라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킬 가치가 있을 때라야만 강한 군대가 되고 무서운 용사가 나오는
법입니다.
압량주 군주로 나간 김유신이 병부대감으로 5년을 봉직하며 가르친 군사가 2만이요,
그 밑에서 장수로 삼은 자만도 서른 명이 넘습니다.
이들은 모두 일기당천의 맹부들로 지금 당장이라도 전장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김유신의 휘하에서 병법과 무예를 익힌 장수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6정(六停)과 9서당(九誓幢)의
군사들을 가르치느라 연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나이다.
신 또한 쇠를 녹여 병기구를 만들고 군율을 칼날같이 세우는 일에 신명을 바쳐 일하고 있으니
제발 양위한다는 말씀만은 거두어주십시오.
그것은 오히려 한창 들끓기 시작하는 우리 군사들의 사기를 여지없이 꺾는 일이 될 뿐입니다.”
조정의 대체적인 뜻을 반영한 두 사람의 간청 덕택에 여주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으나
당에서조차 원병을 얻지 못한 신라의 고립감은 한동안 침통한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때 김유신은 오랜 병부 생활을 끝내고 압량주에 군주로 나가 있었다.
그에게 내린 벼슬은 소판. 외주 벼슬 소판은 금성의 잡찬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김유신의 벼슬이 높아진 것은 그가 병부대감을 맡아 오랫동안 군사들을 훈련시킨 공로가
첫번째였지만 김춘추의 딸과 혼인하여 왕실의 일원이 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었다.
그는 압량주 군주로 갈 때 알천에게 말하여 병부에서 군사 1천 명을 얻어가지고 나갔는데,
부임하자마자 향군을 징발한 뒤 금성에서 데려간 군사로 하여금 무예를 가르치게 하니
향리에 사뭇 원성이 돌았다.
신임 군주가 정사는 펴지 않고 허구한 날 싸움질만 가르친다는 게 주민들의 불만이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김유신은 공터에 장정들을 모으고 입에서 단내가 나고 코피가 터지도록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면서,
“지금은 나를 원망할지 모르지만 구적이 쳐들어와 강토가 피로 물들 때는 너희가 아끼는
부모와 처자의 목숨이 바로 지금 배우는 칼질과 창질에 달려 있다.
지금 잘 배워놓으면 그때 능히 식솔들을 지킬 것이고, 대충대충 흉내만 내는 자는
그때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 생길 것이다.”
“칼 쓰고 창 쓰는 법은 한번 배워 몸에 익혀두면 평생 나와 내 식구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험한 세상살이에 무슨 일을 언제 당할지 어떻게 아느냐?
산에서 범을 만나도, 으슥한 곳에서 도적을 만나도 무예를 몸에 익힌 자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봉변을 면치 못한다.
이 이치를 생각하면 장부의 첫째 덕목이 바로 무예를 익히는 게 아니겠느냐?”
“나는 젖먹이 신세를 벗어난 때부터 손에서 칼과 창을 놓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나이 18세에 국선이 된 것을 천우신조라고 여기는 모양이지만
실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무예를 연마하고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노력의 결실이다.
그런 내게 어찌 상대를 제압하는 비술이 없겠느냐?
이제 너희들에게 특별히 내가 가진 비술을 전해줄 것이니 우선 체력을 단련하고
기초부터 열심히 닦아놓아라.
뜻을 가진 자는 누구나 천하의 명장이 되어 만군을 호령하는 장수로 키울 것이다.”
틈이 날 때마다 장정들을 데리고 앉아 차근차근 좋은 말로 설득하니
시초에는 멀찌감치 앉아 째려보던 이들이 갈수록 유신의 앞에 모여들고 급기야는
침까지 꼴딱꼴딱 삼켜가며 열심히 경청하는 무리가 늘어났다.
유신이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압량주에서는 집집마다 아침밥 짓는 시간이 빨라졌다.
어떤 집에서는 부자가 훈련장에 서로 가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군주가 싸움질만 가르친다고 욕하던 치성화현(대구) 들머리에 살던 노인은 아들 셋과 손자 일곱이 전부 신이 나서 훈련장으로 달려가니
가만히 지팡이를 짚고 뒤따라가서 장정들이 훈련하는 것을 구경했는데,
혼자 집에 돌아와 지팡이 작대기를 거꾸로 잡고 창질하는 흉내를 내다가 독도 두엇이나 깨어먹었지만
이마에 시퍼런 혹도 생겼다.
또 도동화현(영천) 현령은 자신의 귀한 아들이 혹시 다칠까봐 하인을 아들처럼 꾸며
대신 훈련장에 보냈으나 나중에 아들이 남들 다 배우는 무술을 혼자만 못해 바보가 되었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아들을 다시 보내기도 했다.
유신이 압량주 군주로 부임한 지 반년 만에 1천명도 못 되던 향군의 숫자가 무려 4, 5천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여주의 입에서 양위 말이 나온 직후 춘추는 압량주로 유신을 찾아와서 조정의 분위기를 전하고
함께 걱정했다.
“믿을 것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오.”
이야기를 전해들은 유신이 한참 만에 비장한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백제의 군사가 강하다고 하나 그 강함은 죽은 부여장에게서 나온 것이오.
부여장은 즉위 초에 자신들의 오합지졸로 우리 모산성을 치는 허세를 부려가면서까지
성을 쌓고 병기구를 만들며 무려 12년간이나 전국에서 몰래 군사들을 키워 오늘과 같은 강군을 만들었소. 하지만 말년에 그도 도학과 염세에 빠져 군국사무를 처음과 같이 돌보지 않았고,
그 아들 의자가 즉위한 뒤로는 작금의 풍족함만을 믿고 풍속이 몹시 난잡해졌으므로
지금쯤은 우리 맹졸로 백제를 한번 쳐볼 만합니다.
대개 국력이란 불을 지펴 물을 데우는 것과 같아서 지금 화로에 불길이 치솟아도
물은 금방 뜨거워지지 않지만, 한번 뜨거워진 물은 비록 화로가 식었어도 얼마간은
온기가 남아 있는 법입니다.
우리 군사는 지난 수년간 매섭게 훈련을 시켰으니 불땐 아궁이와 같고,
백제는 남녀가 뒤섞여 노는 일에만 열중하니 불기가 사라진 화로와 같습니다.
한쪽은 쇠기를 거쳐 성기로 치닫는 중이고, 또 한쪽은 성기를 지나 쇠기로 접어들고 있으므로
우리가 군사를 일으켜 그 정도를 가늠해보는 것이 어떨지,
만일 임금의 윤허만 얻어낸다면 제가 그 일을 맡아 백제를 쳐볼까 합니다.”
춘추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 뒤 유신은 춘추를 깍듯이 섬겼다.
그것은 춘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전하의 윤허는 제가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주의 일을 걱정하느라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던 춘추도 반색을 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앞장서서 이 위기를 타개하고 실의에 빠진 임금과 백성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게 해줄 인물이
무엇보다 절박한 때였다.
춘추는 그 영웅이 김유신밖에 없다는 점을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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