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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여제(麗濟)동맹 13

오늘의 쉼터 2014. 11. 1. 20:46

제25장 여제(麗濟)동맹 13

 

 

 

하룻밤 묵어가라는 지소의 간청도 뿌리치고 춘추는 곧장 대궐로 들어가서 김유신의 말을 전했다.

백제를 향해 군사를 내자는 말에 여주는 잠깐 놀라는 표정을 지었으나 춘추가,

“적이 쳐들어와도 어차피 전쟁은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당나라에 가서도 군사를 얻어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 의자는 틀림없이 군사를 일으킬 것이니

차라리 김유신으로 하여금 먼저 적을 치도록 하는 편이 우리에게 여러 모로 이롭습니다.”

하고 설명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내가 양위를 거론하여 무리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닌가?”

여주는 그렇게만 확인한 뒤 아니라는 말을 듣자 곧 김유신을 불러들이도록 하였다.

이때 김유신이 마음에 둔 곳은 남악, 지리산이었다.

지리산을 잃고 국세가 기울었으니 남역의 수세를 회복하려면 지리산을 되찾는 일이 시급했다.

유신이 여주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자

여주는 사뭇 큰 기대를 보이며 그를 대장군으로 삼고 병부 군사 5천을 내어주었다.

지리산을 얻으려면 대야성을 먼저 쳐야 했지만 유신은 군사를 이끌고 압량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향군 3천을 보태어 남악 북변의 접경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압량주 서남단의 가혜현(加兮縣:고령), 과거 대가야국의 수도이기도 한 곳이었다.

8천 군사를 이끌고 접경에 이른 유신에겐 전날 낭도들을 이끌고 다니던 길이 눈에 선히 밟혔다.

중악(팔공산)에서 남악까지는 워낙 수도 없이 말을 타고 다녀서 길가의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잊지 못할 여인 천관은 입만 열면 남악 자랑에 침이 말랐었다.

거기 칠불암이라고 했던가,

헤어지면 제일 먼저 찾아달라고 했던 곳이.

유신은 잠깐 옛일을 떠올렸지만 곧 휘하의 장수들을 불러 군령을 내렸다.

금성에서부터 유신을 따라온 병부의 장수는 모두 다섯이었다.

제일 먼저 그가 부른 사람은 상수를 살 때 자식처럼 업어 키운 김진주(金眞珠)였다.

“너는 2천 군사를 이끌고 동화성(同火城:거창)으로 가라.

그 성의 동문 옆에는 야산이 있고 밤나무 숲이 울창할 것이다.

그곳에서 군사들을 질서 없이 늘여놓고 야영을 하되 끼니마다 불을 피우고 밥을 지어 먹으며

기다렸다가 내달 초순 처음 동풍이 부는 날을 만나면 초저녁쯤 야산에 불을 놓고 야간을 틈타

신속히 성의 남문으로 이동하라.

한 가지 유념할 것은 떠날 때 지어 먹은 밥솥을 그대로 걸어놓고, 군막이나 깃발도 치우지 말고,

헌 창 몇 자루와 부러진 화살 몇 개도 어질러놓고 떠나라.

성의 남문에 도착하면 군사들을 모두 쉬게 하고 너도 눈을 좀 붙였다가 새벽에 일어나

남문을 들이치면 쉽게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화성을 얻고 나면 그 여세를 몰아 가소성(加召城:거창)을 치고 가혜나루(加兮津:합천호로 추정)

앞에 군사를 집결해 다음 명령을 기다리라.”

군령을 받은 진주가 물러나자 유신은 역시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품일(品日)의 이름을 불렀다.

“너도 2천 군사와 함께 성열성(省熱城) 동문으로 가되 동풍이 불고 동화성 쪽에 불길이 보이거든

이튿날 해가 뜬 뒤에 성을 공격하라.

성열성은 지세가 험난해 함부로 쳤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튿날 해뜬 뒤에 공격하면 큰 어려움 없이 성을 공취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성열성을 얻고 나면 그 여세를 몰아 가소성에서 진주와 합세하고 가혜나루로 나와

다음 명령을 기다리라.”

품일 뒤로 유신은 문충(文忠)과 흠돌(欽突), 그리고 자신의 아우 흠순(欽純)을 차례로 불렀다.

“너희 셋은 각기 군사 1천씩을 데리고 거시성(居施城), 남내성(南內城), 속함성(速含城)으로 가라.

그 3성은 동화성과 성열성의 자성들이므로 모성에서 원군을 보내주지 않으면 쉽게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성을 취한 다음이다. 속함성 남문 밖에는 수레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소로가 있고

그 길은 적화현(赤火縣:합천)과 대야성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인데 대로와 불과 50보쯤 떨어져 있다.

성을 취한 직후 그곳에 군사들을 숨기고 기다리면 얼마 안 있어 동화성 쪽에서 나타난 적군들이

허겁지겁 성열성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들을 급습해 죽이거나 사로잡는 일은 길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담는 일보다 쉬울 것이고,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품일이 쉽게 성열성을 얻을 수 있다.”

유신은 그들에게도 동풍이 불고 동화성에 불길이 보일 때 성을 공격하라고 일렀다.

“특히 속함성은 우리가 잃어버린 거타 6성의 하나로 만일 그곳을 쳐서 얻으면 대야성의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고, 남악도 능히 노려볼 만하다.

그러니 성을 얻었다고 성급하게 남쪽으로 내려가지 말고 반드시 우리가 가혜나루에서

군사를 모아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거타 6성은 각각 상대할 때 뺏기 쉽지 만일 연대하여 군사를 내고 계략을 쓰면 치기 어렵다.

제장들은 내 말을 각별히 유념하라.”

군령을 받은 장수들이 떠나고 나자 유신은 남은 군사 1천 명을 데리고

가혜현 서쪽의 가혜성(加兮城) 동문이 바라뵈는 곳에 진을 쳤다.

진중에서 북소리를 울리자 가혜성 망루에 성주 진기문(眞奇紋)이 나타났다.

그는 성문 밖 10리허에 얼기설기 늘어진 깃발을 보고는,

“세상 오래 살다 보니 참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저것이 과연 신라 군사냐?”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을 닦으며 보고 또 보다가,

“하긴 쥐도 궁지에 몰리면 돌아서서 덤빈다더니 신라가 막판이긴 막판인 모양이다.”

하고서 별로 급할 것 없다는 투로 수하의 장수들을 소집했다.

진기문도 그랬지만 가혜성 군사들은 대부분 흑치사차의 남악 군영에서 용맹을 떨쳤던

이들로 다사(?仕)와 부리(扶利)는 전날 거타주를 얻을 때 눌최와 벌구를 참살한 공이 컸고,

흑치모(黑齒謀)는 흑치사차의 장자였으며, 백문두(룰文斗)는 기잠성에서 신라군 1천을

혼자 상대한 맹장이었다.

“오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오합지졸 몇 놈이 성문 밖에 진을 치고 있구나.

누가 나가서 군사가 얼마나 되는지, 뭘 하러 온 놈들인지 알아보겠는가?”

진기문의 말에 제일 먼저 나선 사람은 백문두였다.

“제가 나가보고 오지요.”

그는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가혜성의 쪽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때 유신의 군사는 압량주 향군들이었는데,

김문영(金文穎)이란 어린 장수가 마치 친부모를 섬기듯 유신을 따랐다.

유신이 가만히 문영을 살펴보니 몸놀림도 재고 말 타고 칼 쓰는 데 소질도 있어서,

“나도 너만한 나이엔 하도 무예의 비법을 배우고 싶어 공산에 들어가 기도를 했는데

그때 난승이란 이인(異人)이 갑자기 나타나 내게 삼한의 전통 검술을 가르쳐주었다.

그 검술이 본래는 삼한 사람들이 맹수를 사로잡을 때 쓰는 것이었는데 내가 배워서 써보니

움직임에 도가 있고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뛰어나다.

북방에서 내려온 쌍검, 속검 따위의 잔기술보다 윗길이라 배워두기만 하면

전장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난승에게서 배운 검술 몇 가지를 특별히 가르쳐 비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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