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

오늘의 쉼터 2014. 10. 30. 15:44

제25장 여제(麗濟)동맹 2

 

 

“이는 졸렬한 할양계(割讓計)를 써서 우리를 저들의 싸움터로 끌어들이려는 수작입니다.

기껏 낭비성과 칠중성을 내어주면서 10만 군사를 달라고 하니

김춘추는 도둑놈 심보를 가진 게 틀림없습니다.”

“하면 거절하실 건가요?”

“아니올시다.”

“아니라니요?”

“일언지하에 거절하면 저들의 속셈을 다 알 수가 없지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한번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연개소문의 말을 임금은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우선 전하께서는 김춘추를 극진히 대접해주십시오.

성대한 주연을 베풀고 저들의 제안에 따라가는 척 호의와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기회를 봐서 따로 김춘추를 만나보겠습니다.”

신왕은 연개소문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튿날 신라 사신 두 사람을 대궐로 초대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친히 술잔을 권하며 가무를 즐겼다.

그러나 정사에 대한 말은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연회가 끝날 즈음 왕은 자신을 보필하던 우보 선도해(先道解)에게 말하여

춘추 일행을 사신들이 묵는 객관으로 인도하고 잠자리까지 보살펴주도록 지시했다.

김춘추가 임금의 환대에 감격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임금께서는 연세 아직 젊으신 분이 어쩌면 그리도 마음이 넓고 정이 깊으시오?

귀국의 앞날은 실로 탄탄대로이겠소이다.”

춘추는 객관까지 자신을 데려다준 도해에게 따로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기뻐했다.

북부 출신의 선비로 관나부에서 농정을 담당하다가 욕살 고창개가 중앙관직을 맡을 때

따라와 소사자 일을 보았던 선도해는 정변 뒤에 고창개의 추천으로 벼슬이 하루아침에

소형에까지 올라 임금을 보필하는 우보와 고추대가까지 겸직하고 있었다.

그는 천성이 너그럽고 인자하여 불안해하는 임금을 잘 다독거렸으므로 특히 나이 어린 신왕의

총애가 각별했다.

“모르긴 해도 필시 사신께서 목적한 일이 잘 이루어질 모양입니다.

걱정 말고 기다려보십시다.”

도해도 춘추 일행에게 무척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대궐 연회가 있고 며칠이 지나도록 임금한테서는

별다른 기별이 오지 않았다.

시일이 흐를수록 춘추는 마음이 사뭇 조급해졌다.

“혹시 일이 틀어진 게 아닐까요?”

걱정스럽기는 훈신도 마찬가지였다.

“글쎄, 그날의 분위기로는 일이 쉬울 것 같았는데……”

“나리께서 막리지를 한번 만나보시면 어떨는지요?”

사찬 훈신의 권유를 듣자 춘추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긴 자신이 온 줄 알면 누구보다 반갑게 달려 나와 환대할 줄 알았던 연개소문이

며칠이 지나도록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것도 불안감을 더해주는 요인이었다.

춘추는 저녁에 선도해가 침식을 보살펴주러 들렀을 때 처음으로 연개소문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도해는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막리지께서는 요동에 급한 일이 생겨 떠나셨습니다.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도해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필이면 춘추가 장안성에 당도한 이틀 뒤, 요동 9성 가운데 하나인 안시성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아버지 고각상의 뒤를 이어 안시성 성주로 있던 고준(高峻)은 우장군 고정해의 사위였다.

그는 고정해가 건무왕(建武王:영류왕)에게 말하여 대궐의 요직으로 발탁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이제나저제나 연락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는데,

정변이 나서 임금도 장인도 모두 죽어버리자 병석의 아버지를 제압하고 군사를 일으켰다.

천하가 뒤집힌 지 한 달여, 고구려의 정세는 아직 불안한 상태였다.

“윗전에서는 아무런 언질이 없으셨소?”

“그렇습니다.”

“하면 혹시 막리지께서 돌아오셔야 일이 진척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그럴 공산이 큽니다.”

“허허, 이런 낭패가 있나……”

춘추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무료하십니까?”

그런 춘추에게 도해가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료한 것도 무료한 것이지만 일각이 여삼추라 마음이 조급하외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우리 군사들은 대부분 요동에 있습니다.

이번에 막리지께서 요동으로 가신 것도 어쩌면 사신께서 말씀하신 군사 징발이 목적일 수 있으니

여유를 갖고 기다려보시지요.”

춘추는 도해의 말에 한 가닥 위안을 얻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소만.”

속절없이 날짜만 지나갔다.

무료한 춘추는 훈신과 더불어 장안성 주변의 경관을 구경하며 하루하루를 소일했다.

비록 날은 살을 에일 정도로 찼지만 폭포에도 올라가고,

남패수(대동강)에 나가 얼음을 깨고 낚시도 했으며,

관가에서 말을 빌려 타고 향산(묘향산) 입구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5장 여제(麗濟)동맹 4  (0) 2014.10.31
제25장 여제(麗濟)동맹 3  (0) 2014.10.30
제25장 여제(麗濟)동맹 1  (0) 2014.10.30
제24장 원한 31  (0) 2014.10.27
제24장 원한 30  (0) 201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