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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여제(麗濟)동맹 1

오늘의 쉼터 2014. 10. 30. 15:37

제25장 여제(麗濟)동맹 1

 

 

김춘추가 별다른 수행원도 없이 사찬 훈신(訓信)만을 대동한 채 약간의 방물을 챙겨

고구려로 넘어간 것은 11월 하순경이었다.

이미 국경을 지키는 군사들로부터 김춘추가 사신으로 입국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보장왕은

사전에 연개소문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정변 직후 고구려에선 또 한 차례 무서운 피바람이 불었다.

전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살아남은 조정 대신들과 식달성에서 참수한 중신들의 가족을 샅샅이

적간하여 후환을 없앴고, 5부 욕살들도 제 뜻대로 정리해 내외관의 면모를 크게 일신한 뒤였다.

아울러 요동에도 사신을 파견해 성주와 관수들에게도 일일이 신왕이 즉위한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당부해놓고 있었다.

“막리지께서는 김춘추라는 사람을 잘 아십니까?”

왕이 공손히 묻자 연개소문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사람은 전에 장안에서 잠시 사귄 사람인데 죽은 전왕의 외손이었으니 지금 여왕의 조카입니다.

식견이 높고 말에 조리가 있어 사신이나 세객으로는 제격이지요.

하지만 당주 이세민과는 지금도 호형호제하는 인물이므로 무엇 때문에 구수지간인 우리나라에

입조하려는지 까닭을 모르겠소.”

“신라와 백제가 서로 틈만 나면 싸우니 혹시 군사를 요청하러 오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글쎄올시다.”

연개소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군사를 요청하려면 당나라가 손쉬울 테고…… 의문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무언가 아쉬운 일이 있어 찾아오는 건 틀림없으니 전하께서 만나 한번 얘기나 들어보시지요.”

그는 자신이 나서지 않고 보장왕을 전면에 내세웠다.

보위에 오른 지 겨우 한 달, 아직 모든 것이 서툴고 나이마저 어린 왕은 연개소문이 데려다 앉혀놓은

문무백관들과 군사들로 자신을 엄중히 호위하게 한 뒤 편전에서 김춘추를 맞았다.

춘추는 임금을 향해 국궁재배로 예를 표한 뒤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고구려왕을 바라보았다.

“그래, 무슨 일로 그대는 구원이 깊은 본조에까지 이르렀는가?”

왕이 짐짓 위엄을 갖추고 물었지만 그 음성은 가볍게 떨렸다.

“지금 백제는 잔악하기가 큰 뱀과 같고, 무도한 것은 게걸스러운 돼지와 같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수십 년에 걸쳐 호시탐탐 우리나라 강토를 침략하므로 수천수만의 무고한 백성들이

부모 형제를 여의고 남편과 자식을 잃어 어느덧 골수에까지 깊은 원한이 사무쳤나이다.

신의 여식 또한 불과 얼마 전 대야성에서 참혹하게 죽임을 당해 이제 백제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 임금께서는 특별히 저를 사신으로 보내 귀국의 의사를 타진해보라고 하였나이다.

만일 대국(大國:고구려)의 구원병을 얻을 수만 있다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백제를

단숨에 토벌해 우리가 당한 치욕을 보란 듯이 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땅을 갈라 양국이 다스린다면 삼한의 강역이 절로 편안하고 고요해질 것은 필지의 일입니다.

감히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결단을 내려 우리와 동맹을 맺어주셨으면 합니다.”

춘추의 말이 끝나자 보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대의 나라는 김유신이란 자를 내세워 우리의 낭비성을 빼앗아갔고, 또 알천이란 자는

칠중하에서 무수한 우리 군사를 창칼로 유린하였다.

그것이 불과 엊그제의 일이거늘 어찌 한 마디 사과의 말도 없이 원군을 청하고 동맹을 논하는가?

이는 아무리 해도 상도에 어긋난 일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자 춘추는 허리를 굽혀 두 번 절하고 대답했다.

“낭비성과 칠중성은 돌려드리라는 우리 임금의 하명이 있었나이다.”

“그래?”

보장은 춘추가 의외로 순순히 두 성을 반납하겠다고 말하자 내심 흡족했다.

“하면 그대가 원하는 구원병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

“요동의 군사들은 예로부터 일기당천의 용병들로 천하에 그 위세를 떨친 바 있습니다.

다다익선이오나 10만 군사만 내어주신다면 백제의 오합지졸쯤은 능히 토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만이라……”

보장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다.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서 기다리라.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조정에는 공론이 있으니

여러 대신들과 함께 의논을 마치고야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하면 신은 궐 밖에서 목욕재계하고 삼가 천명을 구하듯이 성지와 결단을 기다리겠나이다.”

연개소문은 임금을 통해 김춘추가 사신으로 온 이유를 알아차렸다.

“상신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김춘추의 말을 고스란히 전한 임금이 내처 의사를 묻자

연개소문은 갑자기 소리를 높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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