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원한 30
두 사람은 만명부인이 들여보낸 술상을 마주하고 몇 순배 잔을 돌렸다.
전작이 있던 춘추는 금세 취기를 느꼈다.
그는 갑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낸 뒤 잠자코 유신을 바라보았다.
유신은 춘추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그 역시 두 번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을 깨물었다.
두 사람의 피 묻은 손이 허공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제가 계획한 날짜는 두 달, 60일입니다.
만약 그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저한테 무슨 변고가 생긴 줄 아십시오.”
“알았네.”
두 사람의 음성이 사뭇 비장했다.
“이제야 안심이 됩니다.”
춘추가 말했다.
“유신 형님께서 바위처럼 뒤에 버티고 계시니
용렬한 춘추는 이제 어딘들 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춘추의 말에 유신도 잠자고 있던 혈기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아무렴. 아우는 내 목숨과도 같은 사람일세.
비록 못난 형이지만 이 김유신을 믿게.
자네를 잃고 나 혼자 사는 일은 이승에선 없을 테니!”
유신은 호탕하게 말하고 앞에 놓인 술잔을 비웠다.
“아쉽습니다.”
“아쉽다니 무엇이 아쉬운가?”
“형님과 저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하면 전하께 보여줄 수 있을까요?
그럼 전하께서도 틀림없이 안심하고 윤허를 내릴 것입니다.”
춘추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은근한 눈빛으로 유신을 바라보았다.
“형님.”
“말씀하시게.”
“염치없고 어려운 청이지만 제 딸년을 거두어주십시오.”
느닷없는 춘추의 부탁이었다.
그러나 김유신은 곧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처남 매부로는 부족하던가?”
“처남 매부도 제게야 과하지만 세상 사람 눈이 어디 제 마음 같은가요?”
“지소는 금지옥엽 귀한 딸이고 나는 허물이 많은 사람일세.”
“그런 말씀 마십시오.
가르쳐서 데리고 사시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내어쳐도 좋습니다.”
“허…… 그 아이가 과연 늙은 나한테 시집을 오려 하겠는가?”
“이 외람된 청이 실은 그 아이한테서 처음 나왔습니다.
큰외숙한테 시집을 가겠다고 어찌나 징징거리는지 안사람과 저는 머리가 다 쉴 지경입니다.”
“그래? 허허……”
유신은 과히 싫지 않은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면 자네가 이몸의 장인이 되시겠다?”
“그러니 시초에 염치없는 청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춘추도 웃으며 대답했다.
“어렵게 임금을 설득할 것도 없습니다.
말난 김에 내일부터라도 준비를 서두르고 길일을 택해 혼사부터 올립시다.
그러고 나면 윤허는 절로 날 것입니다.”
“준비는 무슨 준비, 그저 물 떠놓고 절한 뒤에 천지신명께 고하면 되지.”
“어쨌든 승낙을 하신 겁니다?”
춘추가 신바람이 나서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알았네.”
유신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춘추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를 가시나? 술이 아직 반이나 남았네.
게다가 자네가 그토록 좋아하시는 우리 금관국의 차 맛도 보고 가야지?
벌써 어머니가 찻잎을 끓이시는 모양이네.
바깥에서 차 달이는 냄새가 향기롭지 않은가?”
“오늘 못 마신 차는 후일에 다시 마시지요.
지금 한가롭게 차나 술을 마실 때가 아니올시다.”
“왜, 무슨 급한 용무라도 있는가?”
“있지요. 어서 집에 가서 혼사 준비를 시켜야 할 것 아닙니까.”
행여 누가 붙잡을세라 춘추는 벗어놓은 복두도 쓰는 둥 마는 둥 문을 밀고 나가며,
“처남 매부로 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고 뒷날 옹서간으로 다시 만납시다.”
올 때와는 달리 기운이 펄펄 나서 돌아가니 유신이 배웅을 하려고 뒤따라 일어나며,
“허허, 사람 참……”
하고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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