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4장 원한 31

오늘의 쉼터 2014. 10. 27. 23:14

제24장 원한 31

 

 

 이렇게 양가의 혼사가 결정 나서 급하게 날을 잡고 잔치를 준비하는데,

 

하필이면 잡은 길일이 말 꺼낸 지 사흘 뒤여서 두 집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처음에 날을 잡을 때는 길일이 보름 뒤에 또 있어서 문희는,

“보름이면 음식 장만하고, 베 떠다 새 옷 짓고, 일가친척한테 기별하기 적당하다.”

했는데,

그 소리를 들은 지소가 보름씩이나 무슨 수로 기다리느냐고 하도 펄펄 뛰는 데다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보름 뒤엔 시집가서 남편 받아들일 몸 사정이 못 된다고 우기니

 

뒤에 다른 계획이 있던 춘추도,

“기왕 치를 혼사, 불이 번쩍 나게 치릅시다.”

하고는 사흘 뒤가 어떻겠느냐고 유신의 집에 사람을 보냈다.

만명부인도 애먹이던 장남 혼사가 급했지만 사흘 뒤라는 말엔 엄두가 안 나 잠시 난색을 보였는데,

“물 한 그릇 떠놓고 절하는 데 사흘이면 넉넉하지요.”

하는 유신의 대답을 듣고는 장가 빨리 들고 싶은 아들 마음을 헤아리느라,

“그럼 어디 번갯불에 콩을 한번 볶아보세.”

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두 집안의 경사가 있던 날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하객들로 양가 사이 두 마장 거리가 북적거렸다.

 

늙은 신랑은 시종 겸연쩍어 헛웃음을 치고, 어린 색시는 자꾸만 그런 신랑을 훔쳐보며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는데,

 

겹사돈 경사에 잔재미가 없을 리 없어 모처럼 치장을 곱게 한 문희는 친정어머니

 

만명부인에게 사뿐사뿐 다가와 턱을 거만스레 치켜들고는,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사돈.”

하며 우스개를 내니 만명부인이 장단을 맞춘답시고,

“그럽시다, 안사돈.”

나부시 목례까지 하여 구경하던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내친김에 문희는 초례청으로 가서 절을 마친 신랑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이보게 사위, 내 딸 잘 부탁하네.”

하니 그러잖아도 잔뜩 긴장해 헛웃음만 연발하던 신랑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다시 헛웃음을 치며 얼굴을 붉혔다.

춘추가 대궐로 임금을 찾아간 것은 김유신과 지소의 잔치가 있고 난 바로 다음날 저녁이다.

 

이때는 임금도 아우네 집의 잔치 소문을 듣고 마음이 기꺼워 이미 약간의 재물을 하사한 직후였다.

“이번에 범 같은 사위를 보았다니 공의 뒤가 실로 든든하겠구나.”

덕만왕이 먼저 잔치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공의 가문과 유신공의 가문은 선대부터 우애가 돈독하더니

 

이번에 겹사돈까지 맺은 것을 보면 불가에서 말하는 만세대의 전생지연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예가 고금에 둘이 있으랴.

 

두 집안의 결속은 귀신이 시샘하고 만인이 부러워할 정도니

 

부디 남다른 인연을 아름답게 잘 가꾸도록 하라.”

“여부가 있겠나이까.

 

잔치가 끝나고 양국의 열성조와 천지신명께 고하여 선대의 굳은 맹약을 이어가기로 하였나이다.

 

또한 신과 김유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변고가 생기면 목숨을 바치기로 피로써 맹세하였으니

 

이제 안심하시고 신을 고구려로 보내주십시오.”

춘추의 말에 덕만은 당장 대답하지 않았지만 전과는 달리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이모님……”

내관도 멀찌감치 떨어져 졸고 있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춘추가 간절한 얼굴로 덕만을 바라보았다.

“사신으로 갈 사람은 만조를 통틀어 오직 저뿐입니다.

 

제가 만약 60일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김유신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왕정을 짓밟을 것입니다.”

“너는 내게 자식과 같은 사람이다. 정말 무사히 귀환할 자신이 있느냐?”

“있습니다.”

“좋다.”

덕만이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네가 알아서 잘할 테지만 낭비성과 칠중성은 당장이라도 돌려줄 수 있다.

 

백제를 멸하고 난 뒤엔 한수 이북의 땅도 모두 돌려준다고 해라.

 

그 정도면 동맹의 대가로 족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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