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비단헝겊 속의 약도
주약란의 방을 나온 양몽환은 곧장 자기의 거실로 돌아왔으나
복잡한 머리와 조소접 그리고 하림과 이요홍을 생각하고 번뇌에 싸였다.
그러나 이렇다 할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그 긴긴 밤을 홀 새우고 훤히 동이 트는 아침을 맞고 말았다.
마음이 괴로운 양몽환은 찬바람이라도 쏘이면 좀 정신이 들까해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괴로운 마음이 바람을 쏘인다고 해서 번민이 가셔지지는 않았다.?
뒷짐을 지고 새벽의 찬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내뱉으며 앞 마당을 서성거리던
양몽환은 번쩍 정신을 차리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 순간 검은 베로 얼굴을 가린 괴한이 앞마당을 가로 질러 질풍같이 달려가고
그 뒤를 조소접이 바람을 가르며 뒤쫓아 가는것이 아닌가 !
<...... 이 새벽에 얼굴을 가리고 나타난 자는 누군가? 그리고 이 수월산장에는 왜 왔을까? ......>
번개같이 지나간 괴한을 생각하며 나무 뒤로 몸을 숨긴 양몽환은 마침 조소접에 쫓기듯
열심히 달려가는 괴한에게 마주쳐 나가려고 하는 그 찰나,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 조소접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앞서 달리는 괴한에게 덮쳐들고 말았다.
복면한 괴한의 경신법도 놀웠으나 뒤에서 덮치는 조소접을 피하지 못하고 뒷덜미서부터
잡아 채이며 조소접의 손아귀에서 신음소리를 내는가 했을 때는 어느덧 조소접의
재빠른 손이 그의 혈도를 짚어버리고 난 뒤였다.
그제야 숨기고 있던 몸을 나타내며 뛰어나간 양몽환은 큰 소리로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 무슨 일이오?]
그러자 조소접도 양몽환임을 알고는 생긋이 웃었다.
[양상공 ! ]
급히 괴한에게로 뛰어나간 양몽환은 혈도가 짚혀 허우적거리는 괴한의 복면을 잡아캐듯 벗기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양몽환은 입을 딱 벌리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때 양몽환의 괴이한 태도를 보고 있던 조소접은 놀라운 일이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왜 ? 아는 사람인가요?]
[알......고 있어요......]
[그럼 잘 됐어요. 양상공이 잘 처리하세요. 저는 다른 곳에 가보겠어요.]
하고는 급히 돌아서며 대청 뒤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조소접이 사라진 후에도 얼마 동안 넋을 잃은 듯 서 있던 양몽환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에 깜짝 놀라며 복면을 벗긴 괴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실로 뜻밖인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한번 쯤은 당황하는 것이 상정이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이 지금 양몽환의 심정이었다.
어쩌면 얼굴마저 기억에서 사라질 뻔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혼란한 정신을 되찾으며 태연하기에 노력했다.
[사형 ! 사형이 웬일이오?]
그러자 복면했던 사나이도 놀라며 양몽환을 보았다.
[양사제 ! 한 마디로 다 이야기할 수는 없소.
소형(小兄)이 양사제를 찾아온 것은 양사제가 소형을 도와 어떤 사람을 구해 달라고 찾아온 것이오.
그런데 지금 그 아가씨에게 발각되어 첩자로 오해받게 된 모양이오.]
[그렇다면 정정당당히 찾아오시지 않고 왜 검은 베로 복면까지 하고 들어올 일이 무엇이란 말이오?]
[양사제 미안하오. 나같은 무명의 인물이 어찌 대문으로 양사제를 뵙겠다고 들어올 수 있겠소?
만일 그렇게 되면 양사제의 덕망에 누를 끼칠까 해서 남이 모르게 들어와 양사제만 만나보고
곧 가려고 한 것이오.]
<......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양모인이 사형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상한 일이군......>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었지만 양몽환은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이 너그러운 양몽환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더 캐묻지 않고 너그럽게 웃었다.
[그렇다면 알겠소. 그런데 도대체 누구를 구해 달라는 이야기인가요?]
슬쩍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그 사람은 양사제와 관계없는 사람이오.
더구나 양사제가 우리 곤륜파의 제자가 아닌 이상 내가 사사로이 부탁드린다는 것을 미리 말해 두겠소.]
양몽환은 주먹을 쥐고 허리를 굽혔다.
[사형 ! 이 양모인은 이미 곤륜파에서 추방된 몸이오.
그러나 한번 섬긴 사형은 언제까지나 사헝이오. 이 양
모인이 곤륜파를 떠났다고 해서 사형을 모른다고 할 사람은 아니오.
그 점은 사형께서 알아 주시오.
그러나 이곳은 은밀히 이야기 할 곳이 못됩니다.
자리를 옮기십시다.]
하고 자기의 거실로 안내해서 앞장을 서는 양몽환은 다시 머리 속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안내해서 데리고 가는 복면의 사나이는 바로 옥영자(玉英子)의
수제자(首弟子)인 황지영(黃志英) 그 사람이었다.
황지영으로 말하면 일찍이 동숙정(童淑貞)을 사랑하고 또 동숙정 때문에
도옥의 금환검에 중상을 입기까지 했던 황지영이었다.
그렇듯 동숙정을 사랑하던 황지영이 도옥의 손아귀에 동숙정을 빼앗기고 난 뒤부터 소식이 묘연했다.
그러한 황지영이 지금 복면을 하고 양몽환 앞에 나타났다가 조소접의 손에 혈도가 짚히고
양몽환의 손에 복면까지 찢긴 것이다.
그리고 양몽환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양몽환의 손을 빌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뒤를 따라오던 황지영은 시간을 알아보려는 듯 하늘을 쳐다보곤 양몽환의 등에 대고 말했다.
[양사제의 두터운 정에 소형이 폐를 끼치게 되었소그려.]
하며 미안해했다. 그러나 양몽환은 머리를 흔들며 겸손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서로 사형제지간인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하며 거실로 향하던 양몽환은 마침 지나가는 하림을 불러 세웠다.
[심소저, 황사형을 기억하겠소?]
하는 말에야 양몽환의 뒤에 서 있는 황지영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했다.
[웬일이세요? 사형께서 이곳까지 오시고......]
허리를 나비처럼 곱게 굽혔다.
그러자 황지영도 급히 주먹을 쥐며 반례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심사매 ! ......]
[예, 덕분에. 사숙님도 안녕하신가요?]
[호진자 사숙님도 안녕하십니다.]
하는 수인사에 이번애는 양몽환이 물었다.
[장문 사숙님께서도 안녕하신가요?]
그때 황지영은 바로 그거라는 듯이 눈에 생기를 띄우며 양몽환에게 엄숙히 고개를 돌렸다.
[소형이 여기 온 것도 사실 바로 장문 사숙님의 일로 온 것이오.]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양몽환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한 사람을 구하겠다던 말이 바로 장문 사숙님이오?]
[그렇소.]
[아니, 무슨 일이 생겼소?]
곤륜파의 장문 사숙님이라면 바로 옥영자(玉英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 그 옥영자들 구해야한다는 황지영의 말에 펄쩍 놀랄수밖에 없는 양몽환이었다.
[장문 사숙님께서는 이번 동쪽으로 오시는 길에 소형과 다른 두 제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만 도중에서 행방불명이 되어 소형은 다른 두 사람의 사형제와 사숙님을 잃고 말았소.]
하고 이곳 수월산장까지 양몽환을 찾아오게 된 곡절을 대충 말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양몽환은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파(一派)의 장문인이 그도 길에서 우연히 실종되었다면 강호에 부끄러운 소문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곤륜파의 수제자인 황지영이 스승을 잃었다면 그것도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황지영은 얼굴까지 복면을 하고 스승을 찾아 나섰다가 할 수 없이
양몽환에게 구원을 청하려고 온 것이라고 짐작이 가는 양몽환이었다.
[그것이 사실이오?]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으음......]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 체면 불구하고 양사제를 찾아온 것이오.
모쪼록 지나간 감정은 버리고 소형을 도와 주시오.]
[그것 참......이상한 일이군요......]
[다른 일 같으면 이렇게 폐를 끼치지는 않을 거요. 좀 도와 주시오.]
[음...... 여하간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말을 해주시오.]
[시간이 있겠소?]
[시간이 있든 없든 장문 사숙님을 찾아야 하지 않겠소?]
[그럼 지금이라도 도와 주겠소?]
[음......사형의 조조한 심정은 이해가 가오만
그래도 일파의 장문인이 실종되었다면 매우 중요한 일이오.
우선 저의 장인 어른께 의논해 봅시다.]
하는 말에 하림이 몸을 돌렸다.
[그럼 제가 가서 모시고 오겠어요.]
하고 되돌아 갈 듯하자 황지영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 이노선배님께서도 여기에 계신가요?]
하는 사이에 하림은 급히 이창란을 모시러 갔다.
[그렇소. 백장봉에서 도옥을 대패시키고 이곳 수월산장으로 와계십니다.
그런데 도옥이 천축국의 승려들을 충돌질 해서 이 수월산장을 소란스립게 하는군요.]
하고 묻지도 않은 말까지 했다.
그때 하림은 이창란을 앞세우고 달려왔다.
양몽환과 황지영은 주먹을 마주 쥐고 달려오는 이창란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때 이창란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고는 하림에게서 대강의 말을 들었는지 먼저 걱정했다.
[아니, 옥영자가 실종됐다구 허...... 그러나 옥영자의 검술이 절묘한 만큼 별일은 없을걸세......]
하고는 황지영에게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어디 자세히 좀 말해 보게. 어떻게 돼서 스승이 실종되었나? ]
황지영은 황송스럽다는 듯이 두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제가 사숙님을 따라 세 사형제와 곤륜산을 떠나서 동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꼭 닷새 전이군요.
이곳에서 이 백리쯤 떨어진 마을에서 여인숙에 들어 고단한 몸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을 때는 사숙님과 사형제가 없어진 후였습니다.]
[그래? 수상한 일인데.....잠에서 깨어보니까 없어졌단 말이지?]
[예,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찌 노선배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알 수 없는 일이군......옥영자의 무공이라면 그토록 감쪽같이 없어질리 없는데.......]
하는 바로 그때였다.
수월산장의 대문을 우당탕 밀어 젖히며 하나의 흑의의 장정이 달려 들어오다
이창란을 보고는 급히 외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이 흑의의 장정은 검북사의의 제일 맏형이 되는 사람이었다.
검북사의는 이창란의 명을 받고 수월산장 주위를 지키다가 괴한의 출현에
급히 달려와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검북사의의 보고를 접한 양몽환은 급히 몸을 들려 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과연 회씩의 가사를 입은 한 사람의 화상(和尙)이 수월산장을 향해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대문을 가로 막듯 떠억 버티고 섰던
양몽환은 화상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려 크게 외쳤다.
[대사는 무슨 볼 일이 있소?]
그러자 회색의 화상은 소리치는 양몽환을 아래 위로 뚫어보고는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주약란이란 사람을 만나러 왔소.]
[주약란 도대체 대사는 어디서 오는 누구요?]
그러나 화상은 묻는 말에 대답치 않고 다른 말을 했다.
[당신이 양몽환이란 사람이오?]
[그렇소. 대사는 어디서 오는 길이오?]
[빈도는 명을 받고 왔을 뿐이오. 더 묻지 마시오.
여기 만날곳을 그린 약도가 있소.
이것을 주약란이란 사람에게 전해 주시오.
그곳에서 만나자고 말이오.]
하며 화상은 비단 조각을 한 장 던지듯 양몽환에게 건네어 주고는 휘적휘적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양몽환은 멀어져가는 화상을 얼마 동안 멍청히 바라보다가 손에 놓여진
비단 헝깊을 펴 보았다.
비단 폭에는 높은 산이 하나 그려져 있고 그 산 밑으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듯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높은 산에는 모두 고송(枯松)이 빽빽이 들어서 있으나?
산봉우리에는 나무가 없는 평지였다.
그리고 산이 그려져 있는 한옆으로 불견불산(不見不散)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얼마동안 네 글자를 읽고 또 읽어보던 양몽환은 불견불산이라는 말이 만나지 않고는
떠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림과 글을 다 읽고 다시 고개를 들었던 때는 이미 화상의 그림자도 시야 밖으로 사라진 후였다.
얼마 동안 대문 앞에서 지도를 내려 보고 또 승려가 사라진 곳을 보고 하던 양몽환은
일단 주약란에게 지도를 내주고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밖에 었다고 생각하며
주약란이 거처하고 있는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주약란은 조소접과 마주 앉아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그러한 때에 양몽환이 다가오자 주약란은 먼저 얼굴을 들었다.
[양상공, 무슨 일이죠?]
양몽환은 아무 말 없이 비단헝겊을 내주었다.
[뭐죠? 이게.]
[직접 보시오.]
하자 주약란은 잠시 비단헝겊을 내려다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나를 만나자고 하는군요......찾기는 쉽겠는데......]
하고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누가 가져 왔어요?]
[한 승려가 주고 갔습니다. 꼭 천축국의 승려처럼 생겼는데....]
[그래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만나봐도 괜찮을 거에요.]
하고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 혼자는 위험해요. 저하고 같이 가요.]
그러자 주약란도 조소접의 말이 옳은지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도 좋겠군......그러나 양상공......]
양몽환을 부른 주약란은 곧이어 말했다.
[양상공은 장인 어른께 말씀드리세요.
접매가 데리고 온 시녀들을 명해서 이곳을 잘 지키라구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돌아온 다음에 결정하자구요.
그리고 양상공 당신도 같이 가요.]
[알겠습니다.]
하고 되돌아 선 양몽환은 이창란과 하림에게 대강 이야기하고 황지영에게도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장검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주약란과 조소접 그리고 양몽환은 비단헝깊에 그려진 산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얼마나 왔을까? 밤도 으슥해서 어느덧 이경(二更), 별빛이 은은히 산과 들을 비쳐주는 이경에야
지도에 그려진 높은 산 아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달빛을 등에 받으며 세 사람은 쉽게 높은 산에 올라 증턱에 다다랐을 때 주약란은 앞서 가는
양몽환을 불러 세웠다.
[양상공은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만일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급히 연락해 주세요.]
하고는 조소접의 손을 잡고 산봉우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윽고 산봉우리에 다다른 주약란과 조소접은 눈이 둥그래졌다.
산 위에는 여덟 명의 승려가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주약란은 천축국의 괴이한 무공에 약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지금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천축국의 승려들을 볼 때 걸음이 멈추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한 사람도 아닌 여덟 명이 누워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들어 급히 사방을 경계했다.
그리고는 조소저에게 주의시켰다.
[접매, 조심해요. 천축국의 무공은 괴이하기 이를데 없어요. 소홀히 다루지 말아요.]
하는 말에 조소접은 샛별같은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다시 주약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승려들이 죽은 거야, 자는 거야?]
하는 말에 조소접은 허리를 굽히며 발 앞에 누워 있는 승려의 코에 손을 대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허리를 폈다.
[이상하군요.]
[왜?]
[보기에는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죽은 사람처럼 숨을 쉬지 않는군요.]
[그래? 싸운 흔적도 없는데......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 있다면 왜 숨을 쉬지 않을까요? ]
사방을 둘러보아도 별로 이상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주약란의 머리를 더 갸웃거리게 했다.
그러나 주약란은 다른 말을 했다.
[접매, 만일 우리들이 독한 마음이 있다면 이 승려들의 사혈(死穴)을 짚어버려
다시 살아날 수 없게 할 수도 있겠지?]
하는 말에 조소접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저의 눈을 속이진 못해요.
이 승려들은 분명히 죽었어요. 심장도 멈추었고요.]
그러자 주약란도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누워 있는 하나의 숭려를 발길로 힘껏 차버렸다.
그러자 승려는 떼굴떼굴 구르다가는 제풀에 멈추어 서며 아까처럼 쓰러진 게 꼽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군
.......여기서 만나자고 했으면 응당 살아서 기다려야 할 일이 아닌가딸 그런데........>
죽어 있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주약란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자기가 생각한 바를 말하는 것이었다.
[언니, 혹시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요?]
[어떻게?]
[언니와 여기서 만나자는 것을 누가 먼저 알고 와서 이 승려들을 죽였다고요.]
[글쎄 ......그럴 리가 있을라구?]
[왜요?]
[만일 접매의 말대로 다른 사람들이 와서 이 승려들을 죽였다면 무슨 상처라든가,
싸운? 혼적은 있지 않겠어 그런데 아무 상처나 흔적도 없잖아]
[그렇긴 해요. 그러나 아까 언니가 생각한 것처럼 사혈(死穴)을 짚어 죽였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녜요]
[어쨌든 우리들은 이곳까지 오라고 한 이상 좀 기다리도록 하지.
어떻게 죽였던 우리가 알 필요는 없어......]
하고 기다려 보자는 말에 조소접은 그래도 마음의 의심을 씻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만일 우리와 만나자고 한 사람들이 바로 이 승려들이라면 어떻게 하죠]
[그렇기도 해. 그러나 이 승려들의 옷이 다 같은 색깔이라면 같은 신분의 승려들임에 틀림없어.
조금 지위가 높은 사람은 다른 색의 옷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조금만 기다려봐요.]
그러나 조소접은 주약란처럼 차분하게 언제 나타날지 아니면 끝내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기다릴 성미는 아니었다.
[그럼 언니는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저는 이 주위를 돌아보겠어요.]
하고는 곧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내려갔던 조소접은 나는 듯이 되돌아 왔다.
그리고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북쪽으로, 남쪽으로 사방을 휘둘러 보고는
주약란이 서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있을 것같지 않은데요......]
[찾아 봤어?]
[네......그러나 이 승려들이 죽은 이상 찾아보면 뭘하겠어요?]
하고 말하는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인가 가느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주약란과 조소접의 눈 앞게는 전신을 백의(白衣)로 감싼 사람이 얼굴과 머리까지
역시 하얀 헝겊으로 가린 정체불명의 괴인이 쓰윽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어두컴컴한 밤, 산봉우리 위에 하안 옷을 휘감은 괴인이 나타난다는 것은
아무리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도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 조소접은 진기를 돋우며 차갑게 소리쳤다.
[누구요? 당신은?]
그러나 백의의 괴인은 대답도 없이 몇 걸음 더 다가오다가?
멈칫 걸음을 멈추며 주약란과 조소접을 싸늘한 시선으로 기분나쁘게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백의 괴인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주약란이오?]
그러자 주약란은 서슴없이 한 걸음 나서며 즉시 대답했다.
[나예요. 당신이 나를 불렀나요? ]
되묻는 주약란의 싸늘한 말이 떨어지자 괴인은 두어 걸음 다가서 다 말고 주먹을 마주 쥐고
일읍하는 것이었다.
[주소저를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에 주약란은 약간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가
그 태도 여하에 따라 손을 쓰려고 진기를 돋우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조소접은 여차하면 달려들려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다시 물었다.
[당신도 천축국에서 왔나요? ]
그러자 백의의 괴인은 천천히 손을 올려 머리에 썼던 하얀 헝겊을 벗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얀 헝겊이 벗겨지는 그의 머리는 희다 못해 푸른 빛이 도는 대머리 화상이었다.
[예, 소승은 비록 천축국에서 오긴 하였소만 천축국의 사람은 아니오.]
하고 말하는 괴인의 말은 틀림없는 중원 땅의 사람처럼 말이 유창했다.
즉각 중원 사람임을 알아챈 주약란은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럼 중원 사람인가요?]
[소승은 원래 소림사(少林寺)의 중이었소만 십오세때 천축국에 들어가
꼭 십팔 년간을 그곳에서 살았소.]
[천축국에서 십팔 년을 살았다 해서 천축국 사람을 도와 중원의 우리들을 적으로 대한다는 말인가요?]
하고 날카롭게 외치며 괴인의 얼굴을 쏘아 보았다.
달빛 아래 보이는 승려의 얼굴은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는데 커다란 귀와 넓적한 이마는
툭 튀어나온 광대뼈만 아니면 부귀지상(富貴之像)이 틀림없을 뻔한 얼굴이었다.
그때 백의 괴인은 가볍게 탄식하는 것이었다.
[그건 절대 오해요.
소승이 중원 땅의 사람이기에 주소저를 이곳까지 나오라고 한 것이오.
그것은 한 가지 일러둘 말이 있기 때문이오.]
[무슨 일인가요?]
[소승이 이 중원 땅에 오게 된 것을 주소저는 짐작하리라 믿소.]
[짐작하고 있는 것은 없어요.]
[정말이오?]
하는데 성미가 급한 조소접이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그럼 거짓말 하겠어요? 속히 말이나 해요.]
그러자 백의 괴인은 조소접을 아래 위로 들어보며 주약란에게 묻는 것이었다.
[이 아가씨는 누구요?]
[그건 왜 물어요? 조소접이라는 아가씨에요.]
[허 ......그러신가요?]
하고는 또 가볍게 탄식하며 조소접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대국사께서는 주소저가 있는 줄은 알지만 또 한 사람의 절세가인이 있다는 것은 몰랐군.......]
하며 혼잣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조소접은 그만 발칵 성을 내고 말았다.
[이 병신같은 중놈아! 무슨 잠꼬대를 중얼거리고 있어 !]
소리치며 눈썹을 치켜 올린 조소접은 왼 손을 번개같이 휘둘러 날카로운 장풍을 몰아붙이고 말았다.
그 순간, 백의 괴인이 옆으로 비킨 것과 주약란이 조소접을 막아 선 것과는 거의 같은 시각이었다.
[접매, 잠깐만 참아요.]
급히 조소점의 앞을 막아 선 주약란은 눈을 껌벅거리는 백의 괴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장 터지려는 싸움을 지금 주약란은 억제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차분히 말했다.
[천축국의 많은 고승(高僧)들이 이 중원 땅에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건 무슨 이유죠?
혹시 우리 중원의 무림계를 정복하자는 건가요?]
조소접의 공격으로, 얼떨떨했던 백의 괴인은 주약란의 말에 약간 마음을 놓으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꾀나 당황하고 놀란 모양이었다.
[아니지요. 천축국의 대국사가 소유한 재산은 국왕에 못지 않소.
더구나 중원 땅에 귀보(貴寶)가 있다 해도 그는 욕심을 일으키지는 않소.
더구나 명예가 대국사라면 중원 땅을 욕심낼 필요도 없소.]
[그러면 무슨 이유로 중원 땅에 왔죠?]
[그것은 바로 주소저, 주소저 한 사람 때문이오.]
<고이얀 놈들......모름지기 중이라면 도(道)나 닦을 것이지......
닦으라는? 도는 닦지 않고 기껏 나같은 여자에 욕심을 둬? ......>
절로? 코웃음이 터지고 욕이 나오려던 주약란이었지만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담담히 말했다.
[나 때문이라고요? 그건 좀 이상하군요.
수 천리를 떨어져 있는 천축국의 대국사가 어떻게 나를 알며
또 머나먼 길을 무릅쓰고 고수들을 보낸단 말인가요?]
[허...... 허......그렇게 생각할 거요.
그러나 이 중원 땅의 사람이 주소저의 모습을 비단폭에 그려 천축국의 대국사에게
보내지 않았던들 어찌 중원 땅에 주소저같은 절세가인이 있을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소?]
그러자 이번에는 주약란보다 먼저 조소접이 빽 소리쳤다.
[어떤 자가 우리 언니의 모습을 그려 보냈단 말이에요? ]
[그야 도옥이지.]
[또 그놈이군 ! ]
하고 이를 갈았으나 백의 괴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씨익 웃는 것이었다.
[천축국의 대국사께서는 주소저의 모습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경탄하고 있소.
소승도 이 세상에 주소저같은 가인이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소.]
능청스럽게 주약란을 앞에 놓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주약란은 그렇게 싫지가 않았다.
남이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니 당자인 주약란도 기쁜 일이다.
그러나 똑같은 말을 여러번 듣고 보면 도리어 비위가 상하기도 하는 주약란이었다.
[듣기 싫어요. 도대체 몇 명이나 왔어요?]
[누가요?]
[천축국의 고수들이 이 중원땅에 몇 명이나 왔는가 물었어요.]
[예......난 또......어찌 고수들 뿐이겠소? 아마 소승이 알기에는 친히 대국사도 올 것이오.]
[대국사까지?]
[그렇소. 대국사로 말하면 비단 무공만 강할 뿐 아니라 갖가지?
술법에 능통하며 초인간적인 재간을 가지고 있다오.
소승이 천축국에서 십팔 년을 살아온 만큼 자신하고 말하는 것이오.]
하고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창자가 뒤집혀지는 듯 이마를 찌푸리고 있던 조소접은 또 발칵 화를 내고 말았다.
[흥! 그렇다면 먼저 당신의 목부터 댕강 짤라버리겠어 !]
하고 소리친 조소접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가 획 ! 내려 그으며 칼날같은 장풍을 몰아붙이고 말았다.
그때였다. 조소접의 날카로운 장풍을 피해 옆으로 번개같이 비켜 서던 백의 괴인은
허리를 슬쩍 굽히면서 손빽을 탁, 탁, 탁! 세번치는 것이었다.
순간, 그때까지 땅바닥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여덟 명의 승려가 일제히 벌떡벌떡? 일어나서는
눈을 치켜 뜨고 주약란과 조소접을 잡아먹을 듯이 험악한 기세로 에워싸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에 겁을 낼 조소접은 아니었다.
이 몇 년간 비약적으로 무공의? 경지를 이룬 조소접은 두려움을 몰랐다.
뺑 둘러싼 허깨비같은 승려들을 휘 둘러본 조소접은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이 산 송장들이 어떤 재간을 부리는지 구경이나 할까?]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백의 괴인이 흥! 소리를 내며 크게 웃어 젖히는 것이었다.
[중원의 무공이 비록 강하다 해도 우리 천축국의 기묘한 술법에는 당하지 못할 거요.]
[술법? 이 산 송장들이 죽은 체하고 있다 일어나는 것도 술법이고 재간인가요?]
[암, 물론이오. 우리 천축국에는 요가술(瑜伽術)이라는 것이 있소.
이 요가술만 성취하면 물 속과 땅 속에 십일 동안 있어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단 말이오.]
[흥 ! 그것도 재간인가요? 그까짓 것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아까 이 산 송장들이 쓰러져 있을 때 사혈(死穴)을 짚어버리면 산 송장 노롯도 못했을 거요.......]
하며 코웃음을 터뜨리자 백의 괴인도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생명이 아깝거든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을 거요. 이 산 주위에는 우리 천축국의 많은 고수들이
잠복하고 있단 말이오.
아무리 아가씨가 독수(毒手)를 가한다 해도 뜻대로는 안되지.......]
[흥! 큰 소리치지 말아요.]
하고는 팔소매를 걷어 올리던 조소접은 그대로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두 명의 산 송장부터 후려 갈기기 시작했다.
뜻밖의 맹렬한 공격에 대항할 겨를도 없이 황망히 피하는 두 명의 장정을 노려보던 조소접은
또 한번 흥! 코웃음을 쳤다.
[겨우 도망가는 것이 재간인가?]
하고 이번에는 그 옆에 서 있는 산 송장들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롭고도 재빠른 공격에? 산 송장같은 장정들은 미처 반격할 태세도 취하지 못하고
주약란과 조소접의 주위를 머리가 어지럽도록 뛰며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조소접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지도 못하고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면서
연방 돌아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한면 조소접의 무공을 잘 아는? 주약란은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소접이?
좌충우들 비호같이 몸을 날리며 산 송장들을 후려 갈기는 것만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의 괴인은 백의 괴인대로 피해 달아나는 장정들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할 뿐
가세하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날카로운 독수를 뻗쳐 무혀 이십여 수의 공격을 퍼부었지만 한 사람의 장정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못하자 은근히 울화통이터지는 조소접은 눈씹을 치켜 올리며 번쩍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공격하지 않고 작은 소리로 주약란을 불렀다.
[언니, 조금 비켜 주세요. 이 산 송장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어요.]
가운데 서 있는 주약란이 조소접이 공격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접매, 아직 서두르진 말아요.
저 화상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요.
말이 끝나면 함께 싸우도록 해요.]
하는 말에 조소접은 심히 못마땅했지만 주약란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사로잡으면 될텐데...... >
백의 괴인을 사로잡아 쓴 맛을 보이면 묻기 전에 알고 싶은 정보를 다 알아낼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드는
조소접이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들어 오렸던 손을 내리고 말았다.
조소접이 손을 거두자 빙빙 돌아가며? 조소접의 공격을 피하던 장정들이 하나? 들
숨을 헐떡이며 멈추었을 때 주약란은 장정들을 노려보던 시선을 백의 괴인에게로 들렸다.
[이 사람들을 몇 걸음 물러서게 하세요. 할 말이 있어요.]
그러자 백의 괴인은 씨익 웃으며 능청을 떨었다.
[주소저의 분부라면 어찌 소승이 거역하겠소?]
하고는 장정들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분부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 말이 물러서라는 뜻인지 주약란과 조소접을? 에워싸고 있던 산송장들은 일제히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에워싸듯 포위한 태세는 풀지 않고 그대로 물러섰다.
그러자 주약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들이 우리들의 말을 알아 들을까요?]
[알아듣지 못하오. 마음 놓고 말하시오.]
[그럼 됐어요. 당신은 소림사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렀죠? ]
하는 말에 백의 괴인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소림사를 떠난지 이미 십팔 년, 지나간 과거를 말해서 뭘하겠소?]
[그렇다면 당신을 어떻게 부르면 되겠어요?]
[주소저는 이 소승을 백의노이(百衣老二)라고 부르면 되오.]
[백의노이(百衣老二)? 이상하군요. 승려의 이름 같지는 않은데......]
[하......그것은 천축국의 이름을 이곳 중원 땅의 말로 옮긴 것이오.
의미가 깊긴 하지만 주소저는 모를 것이오.]
하고 히죽 웃었다. 이때 분통이 풀리지 않은 조소접은 구역질이라도 나는 듯 침을 탁 뱉았다.
[백의노이도 좋고 백의노대(百衣老大)도 좋아요. 그러나 그 이롬이 오늘 마지막인 줄이나 알아요......]
하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러나 백의노이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두 분 아가씨의 무공이 놀랍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 그러나 오늘 밤의 정세는?
두 분 아가씨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아셔야 하오.
옛말에도 때를 아는 자라야만? 인물이라고 했소.
일시의 감정만 가지고 일을
처리하다간 일생의 한을 남길 것이오.]
하고 은근히 협박하듯 위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은 조소접은 당장 달려들려고? 했으나 역시 주약란이 가로막고 말했다.
[당신은 중원 땅의 사람이면서도 무엇 때문에 이역 만리 천축국승려의 앞잡이가 되어
이용만 당하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요. 깨우치고 옳은 일을 하세요.]
[헛...... 허...... 모르는 말씀......
천축국의 대국사가 십팔년 동안 저를 제자로 삼았다면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오.
주소저가 말한다고 해서 돌아설 인물일 것같으면 천축국에서 살지도 못했을 것이오.]
하고는 씨익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어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두 분 아가씨는 천축국의 기이한 술법을 구경하시겠소?]
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도 지지않고 조소접이 내뱉듯이 말했다.
[흥! 얼마든지, 한번 구경이나 할까?]
그 순간, 백의노이는 손빽을 딱! 한번 치고는 헤프게 웃음을 흘리는 것이 자신 만만한 태도였다.
이때 주약란은 백의노이의 태도를 은근히 살피며 조소접에게 눈짓을 했다.
[접매 ! 조심해야 돼요.]
하는 동안 백의노이는 입속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이?
주약란과 조소접은 그 말뜻을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이때 조소접은 암암리에 진기를 모아 천강지력(天 指力)을 운집해서
불의의 사태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백의노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무슨 신호였던지 산송장같은
여덟 명의 장정이? 일제히 흑의의 겉 옷을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붉은 색의 옷이 들어나는 것이었고 한 쪽은 노랑색한 쪽은 회색의 옷이
연거푸 뒤바뀌며 갈아입듯 울긋불긋 옷차림이 바뀌어지는 것이었다.
겉 옷을 벗어버린 괴상한 옷차림의 산 송장같던 장정들이 주약란과 조소접을 에워싸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면 번쩍번쩍하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구리로 만든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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