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35. 무서운 음모

오늘의 쉼터 2014. 10. 26. 21:09

35. 무서운 음모

 

 

희미하게 비추던 등불이 그나마 꺼지고 말자 밀실은 갑자기 어둠이 닥치듯 캄캄한 암흑이 엄습해 왔다.
그래서 지척도 잘 분간할 수 없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양몽환은 흑의 화상이 어떤 정으로? 서 있는지는 모
르지만 큰 소리로 코웃음을 터뜨리며 화상을 불렀다.
[대화상(大和尙)! 그래도 이 양모의 말을 믿을 수 없소?]
그러나 흑의 화상도 범연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역시 크게 코웃음을 터뜨리며? 양몽환의 일격에
쓰러져 끙끙 신음소리를 내는 장정을 소리쳐 부르는 것이었다.
[이놈아! 저 양몽환도 그 약을 먹었다고 했는데 저렇듯 손을 쓰니 어찌된 일이냐?]
그러자 끙끙거리던 흑의 장정은 더 신음소리를 내며 간신히대답하는 것이었다.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하고는 끙 소리를 내며 잠잠해지는 것이 말할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끙 소리를 내며 잠잠해진 장정에게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놈! 남의 앞잡이가 되어 못된 일을 돕다가 얻어 맞은 맛이 어떠냐?

아직 깨닫지 못했다면 더 쓴 맛을 보여주마!]
하면서도 화상의 불의의 공격을 염려해서 몸을 천천히 움직고 있었다.
철라법왕의 일당과 싸움을 겪은 이후로 양몽환은 천축국의 화상들을

특히 경계하며 상대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도 괴이한 수법으로 수단을 쓰기 때문에 미리 조심하는 것이었다.
이때 흑의 화상은 자기의 부하가 양몽환의 일격에? 쓰러지자

암암리에 암수를 쓰려고 극독을 묻힌 암기(暗器)를 세 개 꺼내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경계하는 양몽환에게서 빈 틈을 찾지 못한

화상은 이젠가, 저젠가 기회를 노리다가 노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양몽환! 본좌는 당신이 중원 무림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과 무공이 강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찌 지금은 피하기만하는 거요?]
하는 소리에 양몽환은 은근히 자신의 몸에 기혈(氣血)이 충만해서 어떠한 공격에도

끄덕없다는 것을 자신하고는 움직이던 몸을 멈추고 섰다.
[당신이 어떤 솜씨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 마음대로 해보시지......]
하는 순간, 화상은 들고 있던 세 개의 암기를 힘껏 던지고 말았다.
그러나 양몽환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라 즉시 두 걸음 비켜서며 강한 장풍을 몰아붙이고

다음 사태에 눈을 번뜩였다.
그때 양몽환의 옆을 스치고 지나간 세 개의 암기는 모두 맞은편 벽에 꽂히고 말았다.

그런데 이 세 개의 암기는 모두 끝이 날카로운 쇠붙이로서 손가락 굵기만한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또 한 번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천축국의 재간이란 것이 겨우 이 정도요?]
하는 바로 그때 더 참을 수 없는 화상은 한 마디 소리를 지르며 양몽환에게 덮쳐들고 말았다.
[어디 한번 받아 봐라!]
소리까지 외치며 달려든 화상은 두 손을 쫙 펼치며 강한 장풍을 날렸다.
그러자 양몽환도 두 손을 쫙 펴서 맞받아 쳤다.

그러자 장풍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먼지가 뿌옇게 날렸다.
그러나 양몽환은 여전히 상대가 안 된다는 듯 크게 비웃었다.
[대화상! 무슨 묘한 재간이 있는지 다 써보시오!]
그만 분통이 터질대로 터진 흑의 화상은 안절 부절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정신없이

어둠 속을 뚫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흑의 화상은 얼마나 분통이 터지고 화가 나는지 대꾸도 하지 않고 두 팔을 펼치고

맹렬히 휘둘렀다.
서로 상대방의 위치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두운 밀실에서 공격하고 방어하며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양몽환은 악랄한 수법을 쓰지 않고 슬슬 공격해서 화상이 거의 지칠 때쯤 해서

사로잡을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 화상을 사로잡아서 북과 징의 비밀을 알아 내야지......>

하고 생각하며 양몽환은 흑의 화상에게 치명상을 입혀 죽이지 않으려고

별로 기묘한 수법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공이 강한 고수끼리의 싸움은 실로 위험한 것으로서 양몽환이 아차 실수해서

화상의 장풍을 받게 되면 양몽환 자신이 목숨을 잃게 되는 위험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양몽환은 추호의 사정도 주지 않고 공격해 오는 화상의 공격을 재치있게 피하며

적당한 수법으로 그의 공격을 방어하기에 바빴다.
그러니만큼 양몽환은 수세(守勢)에 빠져 싸우게 되고 말았다.
흑의 화상의 공격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악독해져 그야말로 일격에 쓰러뜨릴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얼마 동안 화상의 공격만 막아내던 양몽환을 기어이 사로잡을 생각을 버리고 역공을 감행하기로 했다. 이대로 화상의 공격을 막고 있다가는 도리어 화를 입을 것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사로잡을 것을 단념한 양몽환은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는 장풍을 날려 순식간에 화상을 구석으로 몰아넣는 데에 성공했다.

이와같이 해서 수세에서 공세로 나온 양몽환은 전세를 만회해서 날카롭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흑의 화상도 만만치는 않았다.

삽시간에 거의 오십여 수나 장풍을 교환한 양몽환과 흑의 화상이었지만 어느 한쪽에서

쉽게 쓰러질 것같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어둡고 캄캄했던 밀실의 문이 열리며 환한 불빛이 한 줄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순간! 힐끗 바라보던 양몽환은 빙긋이 웃었다.
그것도 또 그럴 것이 지금 등불을 둘고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하림이었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은 주약란 바로 주소저가 아닌가!
눈이 휘둥그래진 양몽환은 불시에 무슨 일인가 했다.

그때 뒤따라 들어오던 주약란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하는 것이었다.
[양상공은 물러 서세요. 제가 저 화상을 사로잡겠어요.]
하고는 곧장 몸을 날리며 섬섬옥수를 들어 날카로운 장풍을 날리는 것이었다.
등불과 함께 들어 온 아리따운 여인에게 순간 정신을 빼앗긴 흑의 화상은

세상에 저렇듯 아름다운 여인도 있을까 하며 양몽환과 치열하게 싸우던 것도 잊고 넋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황홀한 주약란을 넋없이 보고 있던 순간,

그녀에게서부터 날카로운 한 줄기의 지풍을 얻어 맞은 흑의 화상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황망히 옆으로 피하긴 했으나 일거에 세 줄기로 후려 갈긴 지풍을 모두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화상은 미모의 여인에게서부터 풍기는 살냄새와 향기로운 머릿기름 냄새에 코끝이

씰룩씰룩 움직일 정도로 정신이 아찔하며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하나의? 왼쪽 팔이 크게 원을 그렸다.
그리고 휘익 바람소리가 나며 한 무더기의 돌풍이 사정없이 화상의 얼굴을 뒤집어 씌우고 말았다.

이때 화상은 실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름다운 주약란의 얼굴을 보랴,? 공격해 오는 장풍을 피하랴
손과 발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주약란은 추호의 여유나 사정을 두지? 않고 손과 팔을 뒤집고 제치고

또 원을 그리며 공격하자 그만 머리가 홱? 돌아버린 화상은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간간이 역공을 감행하려고 기회를 노리는 듯했으나?

워낙 주약란의 공격이 날카롭고 노도같아 그것부터 피하느라고 제대로 역습하는 태도도

갖추지 못하는 흑의 화상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비단을 찢는 듯 날가로운 소리를 부르짖으며

왼 손을 번개같이 휘둘러 장풍을 몰아 붙이고 말았다.

그 순간 우왕좌왕 피하기에 급급하던 화상은 공연히 주약란의 외침소리에 놀라
옆으로 피하다가 뒤미처 날아온 장풍에 옆구리를 호되게 얻어 맞고는 무릎을 꺾으며

옆어질 듯하다가 겨우 몸을 바로 세웠다.

단단히 골탕을 먹는 흑의 화상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의 공격이 약간 강했던지 겨우 몸을 세우던 흑의 화상은 비틀비틀하며

양몽환이 서 있는 곳으로 휘청거리며 피해오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있는 것을 알았다면 그쪽으로 가지 않을 화상이었지만

너무나 날카로운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것이었다.

이에 양몽환은 기다렸다는? 듯 주먹을 들어 흑의 화상의 가슴을? 후려 갈기고는
민첩한 솜씨로 두 곳의 혈도를 짚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화상은 모래밭애 문어가 기어가듯 흐늘거리다가 풀썩 주저앉고 마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흑의 화상이 완전히 맥이 빠져 쓰러지듯 주저앉는 것을 보고는

눈을 돌려 다른 기둥에 묶여 있는 세 명의 장정을 둘러보며 싸움의 태세를 풀고 음성을 낮추어

양몽환 불렀다.
[양상공, 저기 묶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서 수월산장으로 데려 가세요.]
하는 말에 양몽환은 곧장 기둥에 묶여진 세 사람을 풀어 주었다.
그러는 바로 그때, 문 밖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다 보던 양몽환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등불을 들고 있는 줄 알았던 하림은 간 곳이 없고 등불은 등불대로 벽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순간, 양몽환은 문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문을 막아선 하림이 장검을 휘두르며 십여 명의 흑의 장정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뒤미처 달려온 주약란이 다급하게 양몽환을 불렀다.
[양상공. 나가지 말고 여기서 이 화상을 지키세요. 만일 도망갈 눈치를 보인다면

다리를 비틀어 버리세요.]
하면서 흑의 화상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녀의 말은 은근히 화상에게 위협을 주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즉시 몸을 돌려 흑의 화상에게로 되돌아 왔다.
[대화상.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면 얌전히 앉아 있는 것이 좋을 거요.]
했지만 흑의 화상은 죽음을 각오했는지 아니면 어떤 계획이 있는지

들은 체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다시 주약란은 양몽환을 불렀다.
[양상공. 모두 데리고 가세요.]
양몽환은 더 지체하지 않고 흑의 화상을 옆구리에 끼었다.

그리고는 기둥에서 풀어 준? 세 명의 젊은이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나의 뒤를 따르시오.]
하자 주약란은 양몽환의 앞을 서며 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한편, 문을 가로 막고 십여 명의 장정과 싸움을 벌리고 있던 하림은 주약란이 달려오자

한쪽으로 몸을 비켰다.
[림매(琳妹)는 물러가요. 내가 처리하겠어요.]
하고는 두 손을 곧장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가 연거퍼 네 수의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와같은 주약란의 강한 무공은 십여 명의 장정이 새끼줄에 묶은 생선처럼

주약란의 장풍에 똑같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강한 장풍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손을 멈추지 않고 다시 오른쪽 손을 들어 위에서부터

아래로 줄을? 내려긋듯 후려 갈겼다.
그 순간 일곱 명의 장정이 풀썩풀썩 쓰러지고 그 중에서도 눈치가? 빠른 세 명의 장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에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다.
그제야 주약란은 코웃음을 터뜨리며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는 거칠 것 없이? 앞장을 서서 밀실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뒤를 화상을 낀 양몽환이 따르고 그 다음?

세 명의 젊은이, 그리고 맨 나중에 장검을 쥔? 하림이 주위를 경호하듯 하며 뒤를 따랐다.
이와 같이 해서 일행이 수월산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초조하게 기다리던 이창란이 활짝 웃으며

맞아 주었다.
그러나 양몽환이 무사히 돌아온 것은 기뻤지만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양몽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자네는 너무 이 늙은이와 주소저를 걱정시키는군. 어디를 가면 간다고 말을 할 것이지.]
하다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화상과 세 명의 젊은이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뜨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구냐?]
그제야 양몽환도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사정이 급박하여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는 곧이어 세 명의 젊은이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장인 어른께서는 이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이창란은 세 명의 얼굴이 양몽환과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이 둥그래졌다.
[아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글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화상이 우리 말을 잘합니다.

이 화상에게 내막을 알아 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는 끼고 있던 흑의 화상을 털썩 내려 놓았다.

그러나 흑의 화상은 혈도를 짚힌 몸이라?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눈도 꼭 감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이창란에게 말했다.
[노선배님, 이 화상에게 물어 보도록 하세요.]
하고는 먼저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흑의 화상을 가운데에 앉히고 빙 둘러 앉은 다음 주약란이 다시 먼저 입을 열어 화상을 불렀다.
[화상. 고통을 받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묻는 말에 대답해요.]
그러자 흑의 화상은 그제야 눈을 떠 차갑게 노려보며 흥! 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묻느냐에 달렸소.]
하는 소리에 벌컥 화가 치민 이창란은 들고 있던 용두지팡이로 화상의 어깨를 내려 갈기고 말았다.
[건방진 놈. 쓴 맛을 봐야 알겠어!]
이창란의 용두지팡이로 사정없이 얻어 맞은 화상은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찌푸린 얼굴에서는 비오듯 땀이 흘러 내렸다.

상당한 고통이오, 아픔인 모양이었다.
이때 다시 이창란은 수염을 꿋꿋이 세우며 눈을 부라렸다.
[맛이 어떤가? 또 그 따위로 대답한다면 한쪽 어깨마저 비틀어 버리겠다!]
그제야 흑의 화상은 겁먹은 얼굴로 이창란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태도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무엇이든지 물으시오.]
[암. 그래야지. 진작 그랬으면 어깨도 비틀어 놓지 않았을 걸세......]
하고는 먼저 용두지팡이로 비틀었던 어깨의 뼈를 이어주며 다시 물었다.
[화상도 물론 천축국에서 왔겠지?]
[그렇소.]
[그럼 몇 명이나 이 중원 땅에 왔나?]
[첫 번째의 여섯 사람이 철라법왕의 인솔로 이곳에 왔소.]
[뭐라구? 그러면 두 번째 들어온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렇소. 우리는 십일(十日)마다 한 패씩 중원 땅으로 들어오오.

그러나?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더욱 무공이 강한 고수들이오.]
[음...... 그럼 철라법왕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겠지?]
[그건 모르오.]
[모른다? 모를리 없는데......?]
[사실이오. 모릅니다.]
[그렇다면 좋다. 너는 신분이 뭔가?]
[철라법왕이 천축의 기사(奇士)들을 이끌고 이 중원 땅으로 들어올 때

나는 대국사님으로부터 부수령(副首領)의 신분을 받고 있소.]
[그렇다면 너도 철라법왕의 부하란 말인가?]
[그렇소.]
[음...... 난 또 다른 팬가 했는데...... 그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있느냐?]
흑의 화상은 이창란이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고통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한 사람은 뒤에 오는 다른 한 패와 연락을 하기 위해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철라법왕과 행동을 같이 했기 때문에 나는 모르오.]
하는 대답에 이번에는 주약란이 이창란에게 말했다.
[노선배님. 북소리와 징소리가 어떻게 사람의 의식을 잃게 하는지 물어 보세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상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소저의 말을 알아 들었지?]
그러자 화상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들었소.]
[그럼 그 비밀을 말해 보게.]
그러자 흑의 화상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모른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것만은 말 할 수 없다는 뜻인지 태도가 분명치 않았다.

그러한 화상의 태도를 보고 이창란은 코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모른다면 안다고 할 때까지 고통을 줄 것이고 말을 하지 않겠다면

말을 하도록 고통을 줄 것이다. 두고 봐라!]
하고는 용두지팡이를 들어 화상의 어깨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한쪽 어깨마저 내려쳐 양쪽 어깨를 순식간에 비틀어 놓고 말았다.
또 한번 호되게 고통을 당하게 된 흑의 화상은 비오듯 땀을 흘리며 신음하다가 더 참을 수 없는지

입에 거품을 물며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으윽...... 말하겠소. 관절...... 풀어...... 주시오......]
비오듯 땀을 흘리며 처절하게 말하는 화상을 내려다 보던 이창란은 용두지팡이를 옆구리에 끼며

만족히 웃었다.
[암...... 그렇겠지...... 쇳덩이로 된 인간은 아닐테니......]
하고는 비틀었던 양쪽 어깨를 툭 쳐서 바로 잡아 주었다.
그제야 길게 한숨을 토한 흑의 화상은 주먹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는 것이었다.
[속히 말해......]
[예, 예...... 우리는 원래 같은 파에 속했지만 배운 것은 제각기 다르오.

그들이 북과 징을 배우는 동안? 나는 개용대법(改容大法)을 연구했소.]
[개용대법? 그것은 뭣하는 거냐?]
[그것은 한 사람의 얼굴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게 하는 것이오.

자기의 부모도 몰라보게 말이오.]
[그럼 바로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소.]
[흥! 그까짓 것은 큰 재주도 아니지. 우리 중원 땅에도 역용술(易容術)이 있지!]
[중원의 역용술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우리 천축국의 개용대법에? 비하지도 못할 거요.

한 사람의 용모를 바꾸어 놓으면 평생 동안 본래의 얼굴을 되찾지 못하는 수법이오.]
[그러면 개용대법이란 것은 얼굴이 비슷한 사람만 가능한가?]
[그렇소. 용모와 체격이 비슷해야만 가능하오.

그래야만 빈틈이 없고 다른 사람이 분별하지 못하오.]
하고는 옆에 서 있는 세 명의 젊은이를 돌아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세 사람의 모습은 내가 말할 것도 없소. 바로 저 양대협과 비슷하지 않소?]
하는 말에 양몽환이 선뜻 입을 열었다.
[바로 이 양모인과 닮았소.

당신은 그들의 모습을 이 양모와 같이 변경시켜 남의 이목을 혼란시키자는 것이 아니오?]
[그렇긴 하오.

그러나 저 사람들을 당신과 같이 변모시키고 당신은 다른 얼굴로 바꾸려고 했소.

그러니까 가짜 양몽환을 세 명 만 들어 내는 대신 진짜 양몽환을 딴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했소.]
하고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말에 비위가 상한 주약란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도대체 세 명의 양몽환을 만들어서 무얼 하겠다는 거죠?]
[그야 여러가지로 묘용(妙用)이 있죠.

한 사람은 수월산장으로? 보내 당신들과 같이 생활하게 하고 한 사람은 무술계에 내보내

나쁜 일만 저질러 무술계에서 양몽환의 인격을 다시 인식하도록 만들고

나머지 한 사람은 우리 천축국에 데려가 절묘한 무공을배우게 해서

최후의 무술계를 휘어잡게 하려는 것이죠.]
하는 말에 옆에서 잠잠히 서 있던 하림은 후! 한숨을 토했다.
[악독한 자들이군요...... 당신을 사로잡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어요......]
하고 얼굴까지 해쓱해지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다시 가볍게 기침을 했다.
[또 한 가지 묻겠어요. 다시 묻는 말이지만 양상공을 세 명씩이나 만들려는 목적이 그 뿐인가요?]
그러자 흑의 화상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다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이용할 때가 있어서요. 우선 세 명의 양몽환이 무술계에 나가서 그야말로 무고한 백성을

살상게 하고 민가(民家)를 방화(放火) 하고 여자를 겁탈케 하고 그래서 무술계의 인물들이

양몽환이라면 치를 떨고 달려들게 하려는 것이었소.]
하는 말에 이창란은 그만 수염을 꼿꼿이? 세우며 다시 놓았던 용두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약란이 급히 말리며 눈짓을 했다.

더 두고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뜻이었다.

그제야 이창란은 씩씩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분을 참았다.
[주소저만 아니었다면 이놈 당장 대가리를 두 쪽으로 만들어 놓았을 거다.]
그러나 주약란은 이창란을 만류하며 화상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다음엔?]
[별로 더 할 말도 없소. 대강 그 정도요.]
그러자 주약란은 천천히 양몽환에게로 몸을 돌렸다.
[화상의 오른쪽 손을 비틀어 폐(廢)해서 다시는 개용대법의 수술을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세요.]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지체하지 않고 화상의 오른쪽 손을 거머쥐며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비틀어 버렸다.?

그 바람에 화상은 몸을 비틀며 땅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양몽환은 몸을 비틀며 땅바닥을 기는 화상의? 오른쪽 팔에 웅후한 진기를 모은 장풍을

갈겨버리고 말았다.
그 일격은 그야말로 쇠붙이라도 꺾어버릴 듯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우두둑 소리도 더 나지 않는 화상의 팔은 힘없이 축 늘어지고?

 화상은 입술을 깨물며 몸을 비비 꼬다가 기절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제는 훈혈(暈穴)도 짚으세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던 주약란은 화상의 훈혈까지 짚어 버리라고 명령했다.
양몽환은 민첩한 솜씨로 훈혈까지 짚어버렸다.
그때 수월산장의 대문이 삐거덕 열리며 하늘색 옷을 입은 조소접이 나타났다.
조소접은 얌전히 주약란에게로 다가가 허리를 굽히는 것이었다.
[언니, 지금 돌아왔어요.]
주약란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수고했어요. 마침 조소저를 기다리던 중인데 혼자 왔어요?]
[아니, 시녀 십이 명도 같이 왔어요.]
[아주 잘했어요. 그럼 어디 있는지 좀 쉬라고 해요.]
[쉬지 않아도 돼요.

제가 이미 그녀들을 사조(四組)로 나누어 수월산장을 지키도록 했어요.]
[벌써? 참 잘했어. 조소저는 언제나 나를 도와 주는군.]
[언니도......]
조소접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때 다시 주약란이 말했다.
[접매. 이 화상을 좀 봐요.]
그제야 숙였던 고개를 들며 쓰러져 있는 화상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누군데요?]
[천축국에서 온 화상이야. 무공이 괴이하지만 그건 별것 아닌데

한 사람이 한 가지씩 재간을 다 가지고 있는 모양이야.]
[어떤 재간인데요? 놀라운가요?]
[놀랍다면 놀랍지. 북과 징을 두들겨서 사람의 정신을 돌려 놓기도 하고 더구나

 저 화상은 개용대법이라는 재간이 있는 모양이야.]
[그래요? 그렇다면 제가 언니를 도와 드릴께요.]
[그래요. 좀 도와 줘요.]
하고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려 분부하는 것이었다.
[양상공은 이 화상을 감시하세요. 그리고 저 세 사람은 각기 집으로 돌려 보내세요.]
하고는 이창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노선배님깨서는 잠시 쉬도록 하세요 조소저가 시녀들을 데리고 와서?

지금 수월산장 주위를 지킨다는군요.
마음 놓으시고 쉬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소접과 하림을 데리고 자기의 거실로 향했다.
주약란의 지시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역시 자기 거실로 돌아온 양몽환은

이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간교한 도옥의 사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에 결론이 닿자

양몽환은 도옥의 위인됨을 증오하고 꼭 처치해버릴 계획에 머리 속이 복잡했다.
그러한 때에 주약란이 부른다는 하림의 전갈을 받았다.
즉시 주약란의 방으로 달려간 양몽환은 주약란과 마주 앉았다.
[의논할 일이 있어서 오시라고 했어요.]
[무슨 의논입니까?]
그러자 주약란은 매우 중대한 문제라도? 의논하려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매우 중요한 일이고 또 당신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나 선뜻 응낙할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궁금하군요.]
그래도 주약란은 선뜻 말을 하지 못하고 얼마 동안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도 얼마가 지난 다음에야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조소저를 보았죠?]
그제야 양몽환은 긴장했던 마음을 풀며 주약란 몰래 한숨을 토했다.
<...... 또 그 이야기인가? 혼인 이야기 아니면?......>
[봤습니다.]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틀림없는 혼인 이야기였다.
양몽환은 난처해진 표정으로 얼마 동안 맞은편 벽을 응시 하다가 마지 못해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렇게 시치밀 떼진 말아요. 조소저를 어떻게 하겠는가 솔직히 말해 보세요.]
양몽환은 생각을 정리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소저가 하도 말해서 저도 하는 말입니다만 저는 더 이상 부인을 얻고 싶지 않습니다.]
[예? 정말 못알아 들으시는군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물론 조소저를 부인으로 삼아 무공을 높이고 도옥과 상대하자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심소저도 천진하고 순진해서 저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고 더구나 용모나 무공으로도

남에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심소저와 비록 한 쪽 팔이 없지만 이소저도 아름다운 용모에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소저는 그런 것을 자랑하지 않고 성심 성의껏 저를 돌봐주는 것은 물론 시부모님께

효도를 다하고 지금도 시부모님을 모시고 피난까지 가서 봉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름답고 성실한 부인이 두 명씩이나 있는데 지금 더 부인을 얻으면 무엇을 합니까?

남의 이목도 있고...... 지금의 부인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한가지 묻겠어요.

두 명의 부인으로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왜 수월산장에다 저의 방을 따로 마련해 두었죠?]
하는 것은 수월산장에 오는 첫날 하림이 안내해준 방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순간 어리둥절했던 양몽환은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심소저와 이소저가 마련한 방입니다. 어찌 제가 그런 방을 마련해 두었겠습니까?]
[그럼 당신은 왜 말리지 않았죠? 보고도 가만히 있었잖아요?]
양몽환은 그만 대답할 말을 잃고 말았다. 주약란의 물음은 옳았다.
일찍이 말했으면 지금과 같은 곤경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몽환은 심소저와 이소저가 하는 일에 굳이 참견하고 싶지 않아서

모른 척하고 지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무슨 말로 변명할 것인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양몽환을 응시하던 주약란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대답을 하지 못하는군요. 좋아요. 그러나 양상공,

도옥은 아직 죽지도 않았고 더구나 절묘한 귀원비급의 무공까지 터득하고 있어요.

그리고 도옥의 위인됨을 잘 알고 있을 거에요.

도옥이 무예계의 풍파를 다시 일으키고 있어요

더구나 천축국의 화상들까지 이용해서 우리를 해치려고 음모를 꾸미는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
[그런데 저는 여자에요.

무술계의 시시비비를 떠나 천기석부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어요.
그것이 다 누구 때문인지 아세요? 바로 당신, 당신 때문이애요.]
양몽환은 얼핏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때문이라구요?]
[그래요. 생각해서 대답해 주세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대해? 왔는가를 말이에요. 무정하게 대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베풀어 준 은혜와 정은 하해(河海)와 같습니다. 꼭 보답하겠습니다.]
[진정인가요?]
[어찌 거짓으로 말하겠습니까?]
[그럼 무엇으로 보답해 주겠어요?]
양몽환은 깊이 생각않고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주소저의 분부라면 무슨 일이라도 해서 보답하겠습니다.]
[양상공. 그럼 조소저와 혼인하세요. 그것이면 저는 족해요.]
이제는 더 이상 움치고 뛸 재간이 없는 양몽환이었다.

눈을 내려뜨고 공연히 두 손만 맞잡았다.
이때 다시 주약란은 말을 이었다.
[너무 경솔한 말같지만, 지금 조소저의 마음속엔 당신 하나밖에 없어요.

지나간 오년동안 다정선자라고 이름을 바꾸고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그러한 조소저를 왜 싫어하시죠.?

더구나 당신은 이미 두명의 부인이 있어요.

그런데 조소저 한 명 더 거느리지? 못 할 것은 어디 있어요?

당신이 돌보지 않으면 도옥에게로? 가버릴 조소저에요.

그런 조소저를 당신이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에요.?

만일 조소저의 마음이 변한다면 그 사태는 상상조차 못할 만큼 두려운 일이에요.

그리고 저는 사태를 수습할 능력도 없어요.

물론 당신의 마음이 어질고 착해서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으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에요.

그러나 그런 비난을 받기 싫다고 해서 무술계의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어요.]
길고 긴 주약란의 설득이 끝나고 다시 얼마가 지나가는 동안?

양몽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며 주먹을 마주 쥐고 흔들었다.
[주소저. 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며칠만이라도. 그러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지금 제가 말한 것은 당신 한 사람만을 위해서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이 무술계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언제쯤 대답해 주시겠어요?]
[이틀 후에 대답하겠습니다.]
[좋아요. 잘 생각해서 후회없는 대답을 해주세요. 저도 기쁜 대답을 기다리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양몽환은 무거운 마음과 무거운 걸음으로 주약란의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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