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천축국의 이혼대법
구리 거울이 달빛을 받아 번쩍번쩍 한다고 느끼는 그때에 조소접은 웬일인지
몸이 나른해지며 기운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무 곳이나 눕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때 주약란이 낮은 음으로 소리쳤다.
[접매 ! 천축국에 이혼대법(移魂大法)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돼요.]
하고 주의를 주자 조소접은 현기증이 나는 듯 이마를 짚었다.
[언니. 저 여덟 사람이 돌아가는 것은 봤는데 갑자기 피곤하고 머리가 어지러워요.
언니는 괜찮아요? 언니도 조심하세요.]
하는 그 시각에도 여덟 명의 승려들은 손에 든 구리 거울을 달빛에 반사시켜
주약란과 조소접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이때 주약란은 전음지술로 혼대법에 대한 설명을 조소접에게 들려 주었다.
[천축국의 이혼대법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중원에 전해진 술법이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백년 전에 이혼대법이 중원 무림에서 명성을 떨쳤는데
차차 쇠퇴하여 지금은 거의 들을 길도 없었어.?
그렇게 이름을 날리던 이혼대법이 몇년 사이에 없어졌다는 것은
그 술법에 어딘가 결점이 있다는 것이겠지,?
지금 접매가 피곤한 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이혼대법의 술법에 걸려든징조야
속히 운기해서 진기를 모으도록 해요.]
하고 속삭이자 조소접도 역시 전음지술로 대답했다.
[잘 알겠어요. 이제는 피곤한 감도 없어진 것같아요.
그런데 언니. 만일? 우리들이 반격한다면 일격에 네 사람쯤은 쓰러뜨릴 수 있는데
언니는 어떻게 하겠어요?]
[잠깐 기다려요. 무슨 변화가일어나는지 지켜 보기만 해요.
천축국의 기술(奇術)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두었다가 대국사가 온다면
간단히 처치해 버리도록 해요.]
[알겠어요. 언니.]
전음지술의 수법으로 주약란과 조소접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강기(剛氣)를 돋우어
몸을 보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편, 여덟 명의 승려들은 여전히 달빛을 이용하여 구리 거울로 주약란과 조소접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려는 행동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한편,
산 중턱에서 기다리고 있는 양몽환은 오랜 시간이 지나가도 주약란과 조소접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군. 혹시 산정에서 적에게 포위되어 꼼짝도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올라가 도와 주어야겠는데......>
이윽고 결심한 양몽환은 단숨에 산정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산정에 올라선 양몽환은 진기를 돋우며 이상하게 벌어진 사태에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주약란과 조소접이 나란히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주위로? 칠팔 명의 승려들이
구리 거울로 그녀들의 얼굴을 열심히 비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양몽환은 번쩍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저 거울로 사람의 혼을 빼앗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왜 앉아만 있고 반격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한 양몽환은 더 두고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장검을 쭈욱 뽑아들고 목정을 돋우었다.
[두 분 아가씨는 놀라지 마시오!]
하고는 땅을 박차며 여덟 명의 승려에게로 덮쳐들고 말았다.
그것은 주약란과 조소접이 그들에게 포위되어 꼼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시에 덮쳐들어 그들을 어지럽게 하면 그 시각을 놓치지 않고 포위망에서
벗어나올 줄 알고 덮쳐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괴이한 반응으로 벌어지고 말았다.
구리 거울을 든 승려들은 양몽환이 덮쳐들어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대신
백의노이가 은으로 된 피리를 한 자루 뽑아 들며 양몽환의 앞길을 가로막듯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뜻밖에 나타난 백의노이의 갑작스런 물음에 양몽환은 주춤 한 걸음 물러서며 지체없이 대답했다.
[양몽환이오.]
하고 대답을 하면서 들었던 장검을 풍차같이 돌려 영문격랑(迎門擊浪)의 수로 돌변시키며?
백의노이의 얼굴로 향하고 번개같이 휘둘렀다.
그러나 백의노이는 한 발자국도 피하지? 않고 마주 지쳐나오며 은피리를 이마? 위로 을려 대면서
양몽환이 후려친 장검을 맞받아 힘껏 밀어 내고는 캉... 하는 쇳소리를 내며 휘파람까지?
불어제친 백의노이는 돌풍같이 달려들며 일격에 변화무쌍한 세 수의 공격을 퍼붓고
살짝 옆으로 몸을 비트는? 것이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가 연이어 세 번을 을리고 양몽환의 장검과 백의노이의 은피리가
맞붙었다가 떨어지며 파란 불꽃을 사방으로 튀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옆으로 비켜 선 백의노이는 차가운 음성으로 소리쳤다.
[당신이 바로 수월산장의 양몽환 대협이오?]
그러자 양몽환은 즉시 큰 소리로 소리쳐 대답했다.
[그렇소. 바로 내가 양모인이오.]
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백의노이가 어떻게 양몽환 자기의 이름을 아는지 의아심이 일어났다.
그때 다시 백이노이가 소리쳤다.
[당신을 죽여 버린다면 저 두 아가씨는 즉시 우리 대국사에게로 가게 될 것이오.]
[뭐라구? 주소저와 조소저는 우리 중원 무림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이오.
이 양모와 두 아가씨와는 연관시키지 마시오.]
[핫......하...... 이 화상이 오랫동안 이 중원땅을 떠나 있었다고 해서 중원 무림계의 사정쯤
모르는 줄 아시오?
지금 주소저나 조소저의 마음은 당신을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당신을 죽여 버리면 자연히 당신에게 품었던 정이 없어지고 우리 대국사님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있소?]
<음...... 틀림없이 간사한 도옥의 간계에 넘어갔군......
그렇다면 이 화상을 사로잡아 어떻게 된 내막인지를 알아봐야겠군......>
하고 결심하며 주약란과 조소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들은 여러 승녀들에게 둘러싸인채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들을 보는 양몽환의 마음은 더 초조해졌다.
<속히 구해야지......천축국의 기술(奇術)에 잡힌 것이 틀림없어.
주소저나 조소저의 무공이 지고에 이르렀는데 천축국의 기술에 꼼짝 못한다면
과연 놀라운 기술인 모양이군......그럼......>
어쨌든 그녀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내야 하는 양몽환은 갑자기 피가 끓어 용솟음쳤다.
그때 백의노이의 음성이 터졌다.
[흥!? 두 아가씨에게는 약간 사정을 두었지만 당신에게 사정을 둘 필요가 없어.
방해가 되는 자는 죽여버리겠어. 각오해라!]
하고 눈을 부라리며 은피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나 양몽환은 굳건히 서서 눈썹을 치켜 올렸다.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 화상을 사로잡아서 여러 승려들에게 붙잡힌 주약란과 조소접을 구해야 하는
양몽환은 덮쳐드는 백의노이의 은피리를 두동강이라도 낼 듯이 팔을 쭉 뻗치며 마주 지쳐나갔다.
그러자 기세도 당당히 달려들던 백의노이는 가슴이 서늘해 지고 말았다.
처음 이십 여수는 백의노이가 우세한 가운데 불꽃을 튀겼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고
삼십 여합이 교환되면서 부터 형세가 판이하게 변하고 말았다.
양몽환의 장검이 침착한 가운데서도 매섭고 날카로워지는가 했을 때는
이미 양몽환의 장검 안에서 몸을 뺄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을 때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차! 했을 때,
양몽환의? 장검은 사방 팔방에서 싸늘한 빛을 번쩍이며 들이닥쳐 도저히
대항할 기력조차 생겨나지 않는 것이었고 막을래야 막을 수도 없는 상태여서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노도처럼 밀려오던 양몽환의 장검이 하늘에서 번쩍 ! 빛을 발하고 부터는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신을 차릴 수도 없는 백의노이였다.
[으윽......]
신음소리를 내며 은피리를 떨어뜨리고 가슴 위로 급히 끌어 올리는 백이노이의 손목은
댕강 잘라진 후였고 뒤미처 장검의 예리한 칼끝이 백의노이의 가슴을 슬쩍? 건드렸다고 했을때는
달빛 아래서도 선명한 검붉은 피가 주르르 옷을 적시며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장검끝을 떼지 않고 지그시 힘을 주며 눌렀다.
그러자 검붉은 피는 칼끝을 타고 양몽환의 손에까지 흘러 내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한 백의노이라 하더라도 날카로운 장검 끝이 심장을 누르고 시시각각으로
찔러 오는데는 눈을 뒤집어 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까고 목을? 잔뜩 움츠린 백의노이를 노려보던 양몽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날카롭게 외쳤다.
[이래도 더 항거하겠소.? 죽고싶지 않으면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하시오.]
하는 바로 그때도 백의노이는 손목과 가슴에서 흘러 내리는 피로?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고
얼굴은 그 반대로 하얗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가슴에 꽂힌 칼끝이 뼈를 쑤시며 들어오는 것같고 손목은 손목대로 어깨까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과 고통에 흰거품만 잔뜩 물고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는 백의노이였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흐르자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백의노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애원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양대협. 무슨...... 말이든지 다 대답하겠소.]
하고 항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장검은 거두지 않고 그대로 주약란과 조소접을 가리켰다.
[두 아가씨는 왜 저렇게 앉아 있소?]
[제발 이 장검만 거두어 주시오. 그러면 다 말하겠소.]
[흥! 계략을 쓰려고?]
[아니...... 아니오...... 진정이오.]
[그럼 좋아!]
그제야 장검을 거둔 양몽환은 곧이어 소리쳤다.
[속히 말하시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장검에서 풀려난 백의노이는 쓰러지듯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 앉으며 짐승의 울음처럼
처절한 신음소리를 연발했다.
그러한 백의노이를 노려보던 양몽환은 다시 소리를 높였다.
[엄살 부리지 말고 속히 대답하시오. 아니면 더 쓴 맛을 보여 주겠소.]
[아니.......아니오.......이제 말하겠소.]
[그럼, 어떻게 된 거요.]
[그녀들은 지금 이혼대법에 애워싸여 곤혹을 받고 있소......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오.]
[이혼대법?...... 만일 그따위 서투른 장난으로 그녀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친다면
당신을 죽여 보상하도록 하겠소.]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녀들은 조금도 해를 입지 않을 것이오.
최면술(催眠術)에 걸렸을 뿐이오. 한잠 자면 깨어나오.]
[그렇다면 어디 두고 보겠소. 만일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신은 이 황량한 산정에서 사지(四肢)가 끊길 것이오.]
[틀림없소. 곧 깨어나오.]
[그럼 기다려.......보겠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의 명으로 이곳까지 와서 이 양모인과 싸우게 되었소?]
[.......우리 대국사의 명을 받고 왔을 뿐이오.]
[거짓말 ! 이 중원 땅에서 천죽국이 수 천리 길인데 어떻게 중원땅의 사정을 잘 알고 당신을 보낸단
말이오. 분명히 누군가의 계략에 빠져 온 것이 아니오?]
[그럴리 없소. 이 소승은 그런 것을 아는 바 없소.]
[없다구? 흥 ! 좋소. 그럼 당신의 간(肝)을 꺼내 정말 모르고 있는지 알아봐야겠군.......]
하며 장검을 술쩍 들어 올리며 금방 찌를 듯이 위협하자
백의노이는 펄쩍 뛰며 눈을 허떻게 뒤집었다.
그리고는 손목이 성한 한 손을 휘저으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얼굴이 찌푸려지고 땀을 비오듯 흘리는 것이 고통이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이오. 양대협 잠깐만 참고 말을 들어 보시오.]
그제야 양몽환은 장검을 거두며 싸늘하게 외쳤다.
[그럴테지......? 말해 보시오.]
[휴.......자세히는 모르지만 도옥이란 사람이 비단에 주소저의 모습을 그려 우리
대국사님께 보냈다는 것과 대국사님이 이 중원 땅에 올 마음이 생겼다는 것밖에 모르오.]
양몽환은 이미 들은대로 다시 똑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밖에 모른단 말이오?]
[그뿐이오. 간을 꺼내 봐도 그것뿐이오. 사실이오.]
[그럼 좋소. 그런데 어떻게 하면 두 아가씨를 구할 수 있소?]
[아까도 말했지만 이혼대법에 걸렸다면 한잠 푹 자야할 거요.]
하고 대답하고는 몸을 비틀며 고통과 아픔을 참느라고 비지땀을 흘리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과 조소접은 사실 백의노이가 말하는 이혼대법에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약간 조소접이 피곤한 감을 느꼈지만 곧 진기를 일으켜 이혼대법의 기술에서부터 흐려지는
정신을 차렸고 지금도 전신의 강기를 모아 몸을 보호하고 진기를 일으켜 정신이 흐려지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이 보기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 꼭 이혼대법에? 정신이 흐려진 것같았지만
사실은 더더욱 또렷해지고 내공도 단단한 몸이었다.
그러한 주약란은 양몽환과 백의노이의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조소접을 불렀다.
물론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전음지술로 말하는 것이었다.
[접매. 이젠 싸울 준비를 해요. 이혼대법이 이 정도라면 더 볼것 없어요.]
하고는 곧이어 운집시켰던 운기를 탄지신통(彈指神通)의 수법으로 변화시키고
오른 손 손가락을 쭉 펴면서 한 줄기의 날카로운 지풍을 날려 맞은 편에 서 있는 승려의
구리 거울을 겨누고 날려 보냈다.
그 순간, 손가락에서 튕기듯 달려나간 한? 줄기의 지풍은 여지없이 구리 거울을 명중시키고
이장이나 높이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이때 역시 번개처럼 몸을 일으킨 조소접도 왼 손으로 웅후한 지풍을 모아 앞에 서 있는
승려를 후려 갈기는 것과 동시에 오른 손으로는 천강지의 한 지풍을 날려 보냈다.
그 순간, 여덟 명의 승려는 이혼대법에 정신을 잃은 주약란과 조소접이 일어나지도
못하리라 여기고 있다가 그만 벼락같이 덤벼드는 공격에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고
엎어지기도 하고 껑충 뛰기도 하고 피해 달아나기도 하는 일대 수라장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주약란과 조소접은 땅을 박차며 갈팡질팡하는 승려들을 이리저리 쫓아 다니며
순식간에 승려들의 혈도를 짚어 버리는 것이었다.
한편, 백의노이의 말대로 주약란과 조소접이 꼭 이혼대법에 정신을 잃고 있는 줄 알았다가
돌연 몸을 날리며 번개같이 팔을 휠둘러 승려들의 혈도를 짚어 버리는 데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는 양몽환이었다.
[여보쇼 화상! 이혼대법이 저런 거요?]
그러자 백의노이 역시 입을 딱 벌리고 아니 저게...... 저게.......도시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해하며 중얼거리다 양몽환의 물음에 실신한 사람처럼 헛소리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아니...... 저게.......저럴 수가.......이혼대법이.......이상한 노릇이고.....]
하는데 순식간에 여덟 명의 승려를 쓰러뜨린 주약란과 조소접은 흩어진 머리를 쓸어 을리며
나란히 바위 위에 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양몽환을 부르는 것이었다.
[양상공 ! 그 화상을 이쪽으로 데려 오세요.]
하자 양몽환은 백의노이의 한쪽 팔의 혈도를 짚고는 끌 듯 주약란에게로 데리고 갔다.
백의노이는 산정에 질펀하게 쓰러진 여덟 명의 부하를 휘둘러 보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여덟 명의 부하가 맥없이 혈도를 짚혀 쓰러지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이혼대법이
그토록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리라고는 더욱 상상하지 못하였다.
그런데다 자기마저 손목이 떨어져 나가고 가슴이 찔리고 혈도마저 짚힐 줄은 정말 몰랐다.
가슴을 치고 분통해 해도 소용없고 눈을 감았다 떠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기절초풍하고 창자를 바꿔 놓아도 시원치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별 수 없는 몸이 되고서는 소리내어 통곡할 수도 없게 된 백의노이는
또 한 번 땅이 꺼져라 하고 한숨을 내려 쉬고 올려 쉬고 할 뿐이었다.
이때 조소접의 싸늘한 음성이 퍼졌다.
[흥! 이봐요. 저것이 바로 당신이 자랑하는 천축국의 이혼대법인가요? ]
하고 조롱하듯 말하던 조소접은 갑자기 음성을 바꾸며 냉랭히 묻는 것이었다.
[당신이 데리고 온 산 송장들은 모두 사혈(死穴)을 짚혔어요.?
눈이 있으면 잘 보고 죽고 싫지 않다면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해요.
그렇지 않으면 큰 코 다칠 거에요.]
백의노이는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감았다가 뜨며 다시 쓰러진 부하를 휘둘러 보고는
한숨을 토했다.
[무슨 말이오?]
[대국사라는 자는 지금 어디 있죠?]
죽음을 예감한 백의노이는 묻는 대로 순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죽음 앞에서는 약간 처량해지는 모양인지 지금 백의노이도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꺼져가는 음성으로 천천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소승은 자세히 모르는 일입니다만 지금쯤 제자들을 데리고 이곳 중원 땅에 들어섰을 거요.]
[그가 데리고 오는 제자들의 무공은 어때요? 모두 당신같은 엉터리 무공인들인가요?]
[소승은 천축국에서 중원 땅의 말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소. 그러나 대접은 기가 막혔죠.]
[뭐라고요? 누가 그따위를 물었어요? 그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어요.]
[아하...... 난 또......]
죽는 시늉을 하면서도 능청을 떠는 백의노이는 조소접의 부릅뜬 눈에 찔끔하고는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대국사님의 무술은 꼭 한 번밖에 보지 못했소.]
[글쎄 그게 어느 정도냐 말예요.]
[예-, 그때-그러니까 마침 무공을 닦느라고 후원에 있을 때였죠.
마침? 머리 위로 한 마리의 독수리가 날아 갔죠.
그때 대국사님이 손을 한 번 흔드니까
독수리는 곧장 대국사님 발앞에 떨어지며 죽어 버리지 뭡니까? ]
[흥 ! 어느 정도의 높이였어요.]
[거의 삼장(三丈) 높이였소.]
[혹시 암기(暗器)로 떨어뜨린 것은 아닌가요?]
[천만에, 아닙니다. 만일 암기같으면 소승도 떨어뜨릴 수 있소.]
[그럼 그것이 기술(奇術)이란 말인가요?]
[기술이라뇨? 그건 어디까지나 무공이죠.]
하는 대답을 듣고 있는 조소접이나 주약란 그리고 양몽환도 삼장 높이의 독수리를
손을 한 번 들어 떨어뜨렸다면 만만히 볼 무공이 아니라고 내심 놀랐다.
한편, 조소접이 백의노이에게 묻고 있는 동안 조용히 듣고만 있던 주약란은
이윽고 조소접을 대신해서 백의노이를 노려보며 차갑게 소리쳐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몇 명이나 중원 땅에 왔길래 대국사가 왔는지 안왔는지 모른단 말이에요.
서로 연락을 취하지 않나요? ]
[연락이 있다면 그것은 암호죠.]
[암호? 그것으로 어떻게 연락하죠?]
그러자 백의노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이었다.
[말할 수 없소. 그것만큼은 안 되오. 만일 그 이야기를 하면 이 노승은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죽게 되오.]
[죽는 것이 그렇게 두려우면 지금 당장? 무예계에서 발을 떼세요.
만일 지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당장 여기서 죽여 버리겠어요.]
그러자 얼마 동안 고개를 떨어뜨리고 생각에 잠겼던 백의노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약란을 주시하는 것이었다.
[아가씨와 같은 절세 가인을 천축국의 대국사에게 뺏긴다는 것은 정말 애석한 일이오.]
하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이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양몽환이 불쑥 입을 열었다.
[대국사라는 자는 어떤 인물이오?]
[인물이라니 ? 말도 마시오. 못생긴 것으로? 말하면 아니 그렇지 주소저가 절세가인이어서?
더 못생겨 보일 거요]
그러자 주약란은 이마를 찌푸리며 소리를 빽 질렀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했어요? 어서 연락 방법이나 이야기해요.]
하고 날카롭게 재촉하자 백의노이는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자세히 말하는 것이었다.
백의노이의 말이 끌나기를 기다려 주약란은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양상공. 기억하시겠어요?]
[네. 모두 기억했습니다.]
[그럼 양상공. 옷을 벗고 이 화상의 옷을 입으세요.]
하고는 양몽환이 벗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듯 조소접과 함께 등을 돌리고 돌아앉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피로 범벅이 된 화상의 옷과 바꾸어 입고는
주약란과 조소접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 보시오. 얼마나 닮았습니까?]
하자 돌아 앉았던 주약란과 조소접은 제대로 돌아 앉으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는 조소접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섞인 말로 놀리듯 했다.
[호...... 호....... 꼭 중같아요. 그런데 머리는 깎을 수 없죠?]
그러나 주약란은 웃지 않았다.
[상관 없어요. 양상공은 지금의 연락 방법을 잘 기억해서 대국사라는 자를 유인하세요.
그러면 일은 끝나는 거에요.]
[그럼 언니. 우리도 준비를 해야 되겠네요? ]
[물론 준비해야죠. 그러나 그들의 암흑가 어느 정도로 큰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고 있어요.
우선 시험해 보고 그들이 올만한 곳을 택해 준비하도록 해야 돼요.]
[그렇군요.]
[나의 생각으로는 천축국에서 온 사람이 적은 수는 아닐 것같아요.?
그리고 수월산장을 중심으로 주위 백리(百里) 이내에는 그들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을 거에요.
그러나 그들이? 이곳 중원땅의 지리에 밝지 못해 틀림없이 중원 땅의 사람들을 이용해서
안내를 하도록 할 거에요.]
하며 앞을 내다보는 말에 조소접은 간단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먼저 중원 땅의 인사들에게 안내하지 못하도록 손을 쓰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지만 만일 도옥의 부하들이 이끌고 온다면?]
[그렇다면.......그때는 사정없이 처치해 버리죠 뭐.]
그러자 주약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띄웠다.
[옳은 말이야. 그러니까 이 기회에 도옥 일당을 깨끗이 소탕해버려야 해요.
각자 특별히 조심해서 말예요.]
하고는 곧이어 양몽환을 불렀다.
[양상공. 우선 그들의 암호가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세요.
그래야만 우리도 준비할 수 있어요.]
하고는 양몽환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대답한 양몽환은 두 주먹을 마주 쥐어 흔들고는 산아래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이때, 산정에 질펀히 쓰러져 있는 여덟 명의 산 송장들을 둘러보던 조소접은
이마를? 찌푸리며 주약란을 불렀다.
[언니, 저 송장같은 자들을 어떻게 하죠?]
그러자 주약란도 양미간을 찌푸리며 산 송장들을 휘둘러 보는 것이었다.
[손을 써서 처치할 필요도 없어요. 어느 은밀한 곳에 모아둬요. 명이 긴 자는 살아나고
그렇지 못한 자는 영원히 잠잘 거에요.]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조소접은 미소를 띄우며 돌아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산 송장들의 덜미를 잡아? 하나씩하나씩 끌다가는
그대로 산밑으로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소접의 손아귀를 떠난 승려들은 산아래로 떼굴떼굴 굴러 내려가다
나무와 바위에 걸리기도 하고 그냥 계곡으로 줄줄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해서
여덟 명의 산 송장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간단히 승려들을 처치해 버린 조소접은 백의노이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언니, 이 화상은?]
그러자 주약란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간단히 처치해 버리지 말고 좀 이용하자는 표정이었다.
그러던 주약란은 백의노이에게로 다가가 음성을 낮추었다.
[당신의 이름이 백의노이(白衣老二)인가요?]
[그건 별명이죠.]
[그럼 ?]
[소승이 소림사에 있을 때는 한가지 이름이었죠.]
[흥 ! 제법이군 ! 그게 어떤 이름이죠?]
[심전(心傳)이라고 했소.]
[심전? 그럴 듯한 이름이군요. 그런데 심전화상!]
[예. 말씀하시오.]
[지금 당신은 우리 접매의 손에 죽게 되어 있어요.]
[음.......]
입맛이 쓴지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조소접과 주약란을 번갈아 볼 뿐 입은 열지 않는 것이었다.
[왜, 두려운가요?]
[두렵겠지........ 만일 죽기 싫다면 사죄하는 뜻으로 한가지 공을 세우면 살려 주겠어요.]
그러자 심전화상은 귀가 번쩍 뜨이는지 눈을 크게 뜨며 반색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공을 세울 수 있소?]
주약란은 자기의 계획대로 심전이 끌려오는 것에 쾌재를 불렀다.
[당신이 진정으로 살고 싶다면 그래서 공을 세우겠다면 살려 줄 수도 있어요.]
[분부만 하십쇼. 무슨 일이든지 하겠소.]
[진정인가요?]
[아니, 지금 때가 어디 장난할 땐가요?]
[흥!? 그러면 꼭 하겠다는 말인가요?]
[물론, 진정이구 말구요. 여하간 분부만 해 주시오.]
[그럼 좋아요. 천축국의 대각국사 부하를 이끌고 오면 내가 지정한 곳까지 유인해 오면 돼요.
그러면 당신은 살려 주겠어요.]
목숨만 살려 준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더구나 두 여자에게서 풀려나기만 한다면 기회를 보아 멀리 도망갈 수도 있다는 계산에서
심전화상은 쾌히 응낙했다.
[그거라면 간단하죠. 소승이 해보겠소.]
그러자 주약란은 조소접을 불렀다.
[접매. 화상의 혈도를 풀어 줘요.]
그러나 조소접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요. 언니. 천축국에서 십팔 년이나 살았다는 저 화상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접매는 염려말아요. 이미 계획한 바가 있어요. 어서 풀어 줘요.]
하는 데는 조소접도 더 버티지 않고 짚힌 혈도를 모두 풀어 주었다.
조소접이 심전화상의 혈도를 풀어 주기를 기다려 주약란은?
심전화상에게 어서 가라는 손짓까지 하며 싸늘하게 말했다.
[만일 거짓으로 이곳을 빠져나가려 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마지막인줄 알아야 해요.
살고 싶으면 알아서 일을 처리하도록 하세요.
언제나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 두세요.]
[여부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겠소.]
[어서 가요 !]
그제야 심전화상은 호랑이 굴에서 도망치는 사람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구를 듯이
산밑으로 황망히 달려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조소접은 주약란의 처사가 심히 못마땅했다.
심전화상의 자태가 완전히 사라지고도 얼마 동안 아무 말없이 서 있던 조소접은
기어이 불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언니, 그냥 돌려 보내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죠?]
하고 말하자 주약란은 조소접과는 달리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기다려 봐요. 그러면 심전화상은 꼭 우리들에게 충성을 다할 거에요.
그리고 심전화상보다 대국사라는 자를 사로잡아야 해요.]
[.......]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조소접의 표정을 주시하며 주약란은 다시 말을 이었다.
[접매, 잘 생각해 봐요.
심전,화상이 여덟 명의 부하를 데리고 왔다가 모두 잃고 혼자 돌아가면 목숨이 불어 있을 것갈아요?
틀림없이 돌아가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돌아올 거에요.]
그제야 조소접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옳은 말이었다.
부하를 잃고 돌아간 패전지장(敗戰之將)을 받아들일리는 만무했다.
[과연 그렇군요. 언니는 참 훌륭해요. 저는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럼 우리도 이젠 돌아가야지 !]
하고는 조소접의 손을 잡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편, 연락망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산을 내려온 양몽환은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모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주약란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양몽환은 비록 심전화상의
옷을 입어 중처럼 변장했다 해도 머리를 빡빡 깎기 전에는 승려 행세를 할 수 없지않느냐고
혼자 자문자답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뽀족한 수도 없는? 양몽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잡념을 떨어 버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때는 어느덧 동이 훤히 트는 새벽녘이었다.
그리고 해가 떠올랐을 때 양몽환은 길이 네 갈래로 갈라진 십자로에 당도해 있었다.
얼마 동안 사방을 살피며 두리번거리던 양몽환은 바로 길 옆에 한그루의 노송(老松)을 발견하고는
그곳이 적당하리라 생각하며 다가갔다.
그리고는 간직했던 비수를 꺼내 소나무에 이상한 암호를 새기고는 소나무 위로 을라가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피기로 했다.
십자로는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황막한 들판으로 그리고 들판이 보이는 곳과 반대로
시가(市街)로 들어가는듯한 흰한 길이 갈라진 길이어서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의 동정을
살피기에는 아주 적당했다.
얼마 동안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동정을 살피는 양몽환의 눈에는 드디어 첫 행인(行人)이 나타났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은 나무를 잔뜩 짊어진 나무꾼이었고 그 뒤로 여덟 명이 지나가고
또 지나갔지만 모두 옷차림으로 보아 나무꾼이나 심부름꾼 같았다.
그리고 무술계의 인물갈은 행인은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았다.
차차 시간이 흐르고 나무꾼만 지나가 맥이 빠진 양몽환은 지루한 느낌까지 들었다.
얼마를 더 기다려도 그럴 듯한 인물이 지나가지 않는 것에 내심 실망한 양몽환은
그만 돌아갈까 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바로 그때 흑의를 입은 장정이 급히 소나무 옆을
횅 ! 하니 지나가다 멈칫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되돌아선 흑의인은 소나무 앞으로 바싹 다가서서 그 암호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숨을 죽이고 흑의인의 동정을 살피는 양몽환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것은 자기가 새긴 암호가 진짜로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얼마 동안 자세히 암호를 들여다 보던 흑의인은 획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질풍같이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흑의인이 사라지고 잠시 후,
급히 나무 위에서 내려은 양몽환은 동쪽으로 뻗은 길을 택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양뭉환이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길은 이미 산을 내려올 때 주약란과 약속이 된 길이었다.
소나무에 암혹를 표시한 것은 화살표시로서 동쪽을 가리키는 암호였다.
그래서 양몽환은 오던 길을 되돌아 간 흑의인이 누구인가에게 알리고 함께
화살표의 표시대로 동쪽 길로 오리라 생각하고는 한발 먼저 동쪽 길을 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달려오자 길가에 큰 바위가 서 있었다.
양몽환은 급히 그 큰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달려온 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로부터 잠시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과연 ! 다섯 명의 흑의인이 황급히 달려와 양몽환이 숨어있는 바위 옆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암호를 보고 달려가는 인물들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황급히 지나가는 다섯 명의 흑의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중원? 땅의 옷을 입고 있기는 했으나 어딘가
걸음걸이나 피부색이 중원 땅의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모두 엄숙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사라지는 흑의인을 보며 양몽환은
자기의 암호가 무사히 관문을 통과했다는 것에 은근히 기뻐했다.
그리고 다시 더 오는 사람이 없는가? 해서 얼마를 더 기다렸지만 오는 기척이 없어
양몽환도 바위를 떠나 흑의인들이 사라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약란이 양몽환을 이곳으로 보낼 때 동쪽 길로 들어서면 끝에 막다른 골목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암호를 표시해서 적을 계곡으로 유인하라고만 했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양몽환은 주약란이 어떤 계획을 하고 있으며 이 막다른 골목에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윽고 계곡의 악다른 곳까지 돌아온 양몽환은 주위를 살펴 보았다.
그러나 먼저 달려온 다섯 명의 흑의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디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끝내 인기척도 찾아볼 수 없는 것에
더욱 의심이 생겼다.
<.......괴이한 일이군....... 어디로 숨어 버렸단 말인가?.......>
하며 다시 사방을 둘러보는 바로? 그때
어디선가 모기소리만큼 가는 음성이 들리며 양몽환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
획 ! 몸을 돌려 살폈으나 사람의 그림자는 없었다.
그러나 가느다란 말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양상공, 양상공...... 암호는 아주 잘 그려졌어요.
이미 이곳에 들어은 다섯 명의 흑의인은 나의 천강지력에 쓰러졌어요.]
틀림없는 주약란의 음성이었다.
그리고 주약란의 음성은 잠시 끊겼다가 다시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양상공. 수고스럽지만 그 암호를 지우고 다시 오세요.
우리는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앤는데 너무 많이 밀려오면 큰 일이에요, 부탁해요.]
전음지술을 이용해서 자태를 나타내지 않고 말하는 주약란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때 잠시 끊어졌던 주약란의 음성이 다시 들려 왔다.
[시간이 매우 급해요. 경신법을 이용해서 속히 다녀오세요.]
양몽환은 즉시 몸을 돌려 땅을 박찼다.
그리고 다시 십자로에 나타나 노송을 바라보는 순간,
양몽환은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지금 노송 앞에는 붉은 가사(袈裟)를 입은 한 사람의 승려가 암호를 자세히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양몽환은 붉은 가사를 입은 승려를 죽여 없애기로 결심했다.
만일 이 승려도 돌아가 몇 명의 동료를 이끌고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 간다면
지금 준비에 한창인 주약란의 일을 방해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음...... 저 승려도 천축국에서 온 고수인 모양이군......
그 암호를 본 이상 입을 막아둘 수밖에 없지.."..>
하고는 급히 승려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뒤에서부터 해치울 수 없는 무술인의 예의를 지켜 소리높이 승려를 불렀다.
[대사님i ]
하고 불러 고개를 돌리는 순간 승려의 면상을 벼락같이 후려갈긴 양몽환은
자신의 주먹이 아픈 것을 느낄 만큼 강한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엉겁결에 호되게 얻어 맞아 눈에서 불이 번찍한 승려는 으윽 ! 하며
고개를 숙이다 말고 비호처럼 몸을 날려 양몽환의 어깨를 우왁스럽게 내지르는 것이었다.
그바람에 왼쪽 어깨를 되게 얻어 맞은 양몽환은 팔이 떨어지는 아픔을 보수로 받아야 했다.
그러나 승려도 양몽환의 주먹이 석연치 않음을 알아챘는지 두어걸음 뒤로 물러서며
다음 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서로 한대씩 때리고 맞은 양몽환과 승려는 잠시 노려보고 대치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전광석화와 같이 몸을 날린 양몽환은 웅후한? 진기를 발산시키며
천강장(天 掌)의 강한 장풍을 몰아 붙이고 한 옆으로 재빨리 비켜섰다.
그러자 승려는 무쇠같은 두 팔에 대우인(大宇印)의 술법을 변화시키며
양몽환의 천강장을 맞받아 치는 것이었다.
그러한 승려의 손바닥이 얼마나 강하고 탄탄한지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치는 소리는 고사하고
양몽환의 손바닥이 찌릿하며 마치 철추에 얻어 맞은 듯 어깨가 뻐근해지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웅후한 공격을 집중한 싸움이 어언 삼십 여합 드디어 약간 분통이 터진
양몽환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승려의 왼쪽 팔을 노리고 바람을 일으켰다.
그제야 숭려도 한쪽 어깨를 기우뚱 하며 옆으로 쓰러지려다 간신히? 몸에 중심을 잡으며
바로 세우고는 그대로 줄행랑을 치고 마는 것이었다.
양몽환의 무공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려 승려의 뒤를 바싹 쫓았다.
놓쳐서는 안되었다.
기필코 잡아 승려의 입을 봉해 버려야하는 양몽환은 진기를 돋우며 뒤쫓았다.
그러나 승려도 경신법 재간이 놀라웠다.
남쪽 길로 접어든 승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듯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기를 얼마 동안, 실로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죽자하고 달려가던 승려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으며 썩은 나무 기둥이 쓰러지듯
길바닥에 뒹굴고 마는 것이 아닌가 !
순간! 이 너무나 괴이하고도 돌변한 변화에 양몽환은 가슴이 서늘했다.?
뒤를 쫓으며 어떻게 처치할까 궁리만 했을 뿐 손을 쓰지 못한 상태인데
승려가 제풀에 쓰러졌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양몽환은 더욱 자지러질 듯이 놀라고 말았다.
승려의 등에는 예리한 한 자루의 비수가 꽂혀 있는 것이었고
그것도 아주 치명요혈(致命要穴)인 명문혈(命門穴)에 꽂혀 있는 것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양몽환을 겨누고 날린 비수가 승려의 등에 꽂혔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토록 명문혈을 명중시킨 것을 그저 우연이라고 돌리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사건이었다.
급히 주위를 살피며 혹시 매복수라도 있는가 해서 둘러 보았지만
일장(一丈) 밖에 바구니를 든 시골 처녀가 한 사람 있을 뿐 아무도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허...... 괴이한 일이군...... 누가 비수를 던졌을까?......>
하며 주위를 휘둘러보는 바로 그때였다.
[양상공 ! 저를 몰라 보세요?]
하는 말에 후다닥 돌아서던 양몽환은 그만 아연해지고 말았다.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시골 처녀가 바로 조소접인줄이야?
꿈에라도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방긋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은
시골 처녀로 변장한 조소접임에 틀림없었다.
[조소저 !]
하며 눈을 크게 뜨는 양몽환에게 다가온 조소접은 정이 넘치는 얼굴로 생긋이 웃어 주었다.
[몰라 보셨군요 ! ]
하고 웃는 조소접은 승려에게로 다가가 등에 꽂힌 비수를 뽑아 묻은 피를 승려의 옷에 닦고는
발길로 시체를 굴려 수풀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과연 무서운 여자군......>
속으로 은근히 놀라며 혀를 내두른 양몽환은 겸연쩍게 웃으며 조소접에게 얼굴을 돌렸다.
[놀랐습니다. 아주 명중을 시켰더군요.......]
[그런 것쯤 보통이죠 뭐......]
[그래도 여하간 놀랐습니다.
이 승려가 얼마나 무쇠같이 단단한지 조소저의 내공력이 아니고서는 처치할 수 없을 것같습니다.]
[그렇다면 아주 잘됐어요.]
[네 ? 무엇이 잘됐다는 말입니까?]
[이 승려의 몸이 무쇠같다고 해서 생각했지만 이 비수는 천산(天山)에 있는 얼음 구멍에서 파낸
쇠로 만든 비수에요.
쇠는 뚫지 못해도 바위는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비수에요.
아무리 기합술로 몸을 단단히 한다 해도 다 뚫을 수 있죠.]
하며 조소접은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 세우며 무슨 소리를 듣는 것같았다.
그러다가 음성을 낮추었다.
[양상공, 누가 와요.]
[?............]
양몽환은 아무 인기척도 듣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가만 있어 보세요. 이제 누가 올 거에요. 그런데 양상공, 언니가 한가지 부탁을 하더군요.]
[무슨?]
[만일 나타난 사람이 천축국의 승려라면 가차없이 처치하라구요. 그러나 시체는 꼭 숨기라고 했어요.]
[그래요?]
그러는데 멀리서 웅성웅성하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속히 숨어요.]
하고 조소접은 양몽환을 앞세워 수풀 속으로 숨게 하고 자기는 다시 시골 처녀처럼
바구니를 옆에 끼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한 조소접의 행동이 영락없는 시골 처녀의 걸음걸이와? 똑같아 양몽환은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때 과연 세 명의 장정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는 것이 양몽환의 시선에 들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삽시간에 양몽환이 숨어 있는 곳을 지나고 조소접이 걸어가는
옆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그러나 조소접은 모르는 체하고 있다가 그들이 일장 정도 지나쳤을 때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때 뒤를 홀깃 돌아다보던 세 명중의 한 명이 아무래도?
조소접의 행동이 눈을 끌었던지 아니면 여자여서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뒤를 돌아다 보며 앞에 가는 장정에게 무어라고 쑤군거리자
앞에가던 두 명의 장정도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바구니 속으로 손을 넣으며 날카롭게 그들을 쏘아보는 것이었다.
[뭣들을 보는 거죠. 흥! 죽고싶지 않으면 어서 돌아가요.]
하고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나 세 명중에서 두 명은 조소접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서로 얼굴을 쳐다볼뿐 말이 없는데 유독 가운데 섰던 장정만이 눈을 부라리는 것이었다.
[뭐라구, 이 촌년의 계집이. 뭐 죽고 싶냐구?]
하는 말과 함께 세 명의 장정은 일제히 조소접에게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
그중에 한 명은 조소접의 오른 손목을 거머쥐려고 하고 다른 한명은
조소접의 바구니가 이상했던지 바구니를 채려고 덤벼 들었다.
그러나 조소접에게 소리친 장정은 약간 뒤로 처지며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고
잠시 방관만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코웃음을 터뜨린 조소접은 허리를 굽히며 왼쪽으로? 몸을 돌리는 척하면서
그야말로 재빠르게 장정의 뒤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으윽-]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져 뒹구는 한 명의 장정,
그 장정이 쓰러지는 바람에 아차 하고 돌아서는? 또 한 명을 향해 조소접의 팔이 바람을 가르자
다시 으윽 !?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무릎을 탁 꺾으며 주저앉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두 명을 쓰러뜨린 조소접은 그때 조금 뒤에 처져있던 장정을 노리고 달려들려는 순간 !
혼이 빠져나간 장정은 네 활개를 펴며 천방지축 달아나기 시작하고 말았다.
그러나 도망간다고 버려둘 조소접이 아니었다.
[흥 ! 도망가?]
눈썹을 치켜올린 조소접은 다시 한 번 오른 팔을 머리 위로 흔들었다.
그 찰나 ! 번쩍하는 싸늘한 섬광이 바람을 가름과 동시에 코를 땅에 박으며
엎어지듯 쓰러지는 장정의 입에서 처절하게 들리는 신음소리가 길게 꼬리를 물고 들렸다.
그리고 곧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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