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34. 북과 징소리의 비밀

오늘의 쉼터 2014. 10. 26. 13:32

34. 북과 징소리의 비밀

 

 

정식으로 도전할 듯 태세를 갖추는 철라법왕의 태도에 주약란도 지지 않고 냉랭히 말했다.
[오래 전부터 천축국의 무공이 괴이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친히 구경하게 되었군요.]
하고 겨루어 보겠다는 주약란의 강경한 말에 철라법왕은 껄껄 소리 내어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번쩍 손을 들었다.
[잠깐! 소저는 우리의 기술(奇術)을 본 다음 나 법왕과 한 수 겨루도록 합시다.]
주약란은 잠시 생각한 다음 옆애?? 있는 이창란과 양몽환에게 눈짓하여 운기하고 대기하라

이르고는 쾌히 대답했다.

이때 이창란과 양몽환은 주약란의 눈짓에 따라 암암리에 진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좋아요. 구경이나 하겠어요.]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철라법왕은 오른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신호로 해서 북과 징을 들고 있던 두 명의 동료는 일시에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주약란이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로 철라법왕은 뒤로? 물러 선 두 명의 동료에게
명령을 했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북을 들고 있던 흑의이 먼저 둥! 북을 한 번 치는 것이었다.
그 북소리가 들리자 이번에는 징을 들고? 있던 흑의인이 괭! 한번 치고는

그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북이 울리고 북이 울리면 징이 울리고......

이렇게 해서 북과 징은 번갈아 가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괴이하게 조화된 북과 징소리는 음산한 밤이어서 그런지 모골이 송연하고 머리 끝이 쭈뼛하도록

두려운 감을 주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전음지술로 이창란과 양몽환에게 속삭였다.
[천축국에는 괴이한 술법이 많아요. 북소리와 징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태세를 갖추세요.]

하는 것이었다.
이때 북소리와 징소리는 더욱 어지럽게 두들겨지고 그나마 북 한번, 징 한 번 치던

순번도 없어지면서부터 웽웽거리는 소리는 더욱 어지러워지고 거의 정신마저 잃을 지경으로

야단스러웠다.
그러나 주약란은 정신을 가다듬고 웅후한 진기를 모은 다음 두 손가락에는 천강지의

지풍을 운집시키고 사태를 주시했다.
이윽고 어지럽게 두들겨 정신을 잃을? 만큼 야단스럽던 북과 징소리는 점차?

 그 속도가 빨라지면서 살기를 띄우는 것이었다.
한편, 비교적 강호에 견문이 넓은? 이창란은 북소리와 징소리가 합친 괴상한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가 아무래도 살기를 띄우고 또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같은 것에 이마를 찌푸리며

창고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창고에서 크게 소리쳐 외친다 해도 북소리나 징소리 때문에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북소리와 징소리는 쉬임없이 고막을 두드리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던 북과 징이 홀연 딱 멈추고 숨 한번 돌려 쉴 사이를 두었다가 이번에는 더욱 요란하게

두들기는 것이었다.
북소리와 징소리는 마치 수 천? 마리의 맹수가 계곡을 치올라가는 듯한 우뢰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드디어 창고의 문이 쾅! 열리며 혼절해 있던 장정들이 일제히 튀어나오지 않는가!

언제 혼절했더냐 싶게 민첩하고도 재빠른 동작으로 튀어나오는 장정들을 보는 순간!
용두지팡이를 거꾸로 쥐었던 이창란이 흥!? 소리를 내며 맞받아 달려갔을 때는

십여 명의 장정이 모두 튀어나온 뒤였다.?

그리고 이창란을 에워싸듯 쭈욱 늘어서는? 데는 이창란도 순간 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줄 알았다면 이놈들을 미리 깡그리 죽여 버릴 걸......>

번개같이 지나가는 후회였지만 지나간 일이었다.
수염을 곤두 세우고 용두지팡이에 힘을? 주며 이창란은 잠시 그들과 대치했다.

그때 주약란이 조용히 이창란을 부르는 것이었다.
[노선배님. 아직 손을 대지 마세요.?

저는 미혼대법에 정신을 잃었던 자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보겠어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할 수 없이?? 수염을 내려쓸며 올렸던 지팡이를 내리긴 했으나

대치한 태세를 풀지는 않았다.
한편 하림은 생각지도 않았던 창고에서 이십 명의 장정이 우당탕 몰려나오자

질겁을 하고 놀랐지만 주약란과 양몽환 그리고 이창란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때 우르르 뛰어 나온 이십여 명의 장정은 아직 정신이 덜 깨었는지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을 뿐 대적 하거나 도망갈 기색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큰 소리로 껄껄...... 웃는 철라법왕은 웃음을 거두며 소리높여 외쳤다.
[자, 보시오 저 조수들은 모두 이? 북과 징소리에 조종되는데 지금 보기에는

저렇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는 강렬한 살기(殺氣)를 일으키고 있소.

그리고 지금 저 조수들은 몸에 아무? 이상도 없지만 몸 어느 한 곳에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거요.

그래서 나 법왕이 한 마디만 명령하면 배고픈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듯 당신들을 죽이고 말 거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코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그 재간인가요. 천축국에는 기기묘묘한 재간이 많다고 했는데 이 정도라면 실망했어요.]
[뭐? 실망이라? 있소. 또 있소. 얼마든지 있소. 잠깐 기다려 보시오.]
하고는 머리 속으로 무슨 생각을 모으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저 조수들은 이 북과 징소리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생사(生死)는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소. 그래서 그들의 무공은 정상적인 때보다 곱절이나 발휘할 수 있다 이거요.]


<음 그 정도라면 조금 놀랍군......>

하면서도 주약란은 생긋 웃었다.
[그러나 아직 멀었어요. 저 장정들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의 일격을 감당할 수는 없을 거에요.]
[나 법왕과 우리? 대국사님은 주소저의 무공이 강하다고 하는? 말을 듣긴 했소. 아미태산(阿彌泰山)의 삼음신니(三音神尼) 신공(神功)을 터득했다고 말이오.]
[그런 것으로 놀랄 것은 없어요.]
[그러나 삼음신니의 신공도 우리 천축국의 무공과 같은 파라는 것은 주소저도 몰랐을 것이오.]
처음 듣는 말에 주약란은 잠시 놀랐다.

<삼음신니의 무공이라면 무술계의 지보(至寶)인데 뭐 천축국 무공의 일파라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자들과 싸우기가 수월치 않겠어......>

하는데 이창란이 크게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천축국의 무공으로서는 우리 중원땅의 무공과 상대가 되지 않을걸......]
하고 조롱하듯 말했다.

그러나 철라법왕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화도 안내고 눈썹도 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여하간 좋소. 나중에 겨루어 보기로 하고 우선 우리 천축국의 기술(奇術)이나 더 구경하시오.]
하고는 이번에도 역시 오른 손을 높이 들어 흔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요란하게? 두드리던 북과 징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며 홀연 가늘고 낮은 음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멍청히 서 있던 이십 여명의 장정이 살기를 띄우며 소매속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한 자루씩 뽑아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앞에 거치는 것없이 비수를 꼬나 쥐고 주약란과 이창란 그리고 양몽환과 하림에게 노도같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이에 정신이 번쩍 든 이창란은? 거머 쥐었던 용두지팡이를 비껴들며 대갈일성! 대비로 마당을 쓸듯

후려 갈기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산 송장같은 장정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몇 명씩 떼를 지어 맹공을 가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창고 앞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일곱 명을 상대로 용두지팡이를 날리는? 이창란은 수염까지 꼿꼿이 세우고 좌충우돌 번개처럼

돌아갔고 지팡이에 맞아 무참히 쓰러지는 놈, 악을 쓰는 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참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편, 주약란에게로 달려가는 여덟 명의 장정 중에서 세 놈을 가로챈 양몽환은 역시 자기에게로

덤비는 세 명의 장정을 합친 여섯명을? 상대로 전광석화같이 장풍을 날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땅을 박차며 들어갔다.
그러나 송장같은 장정들이? 한 번 살기를? 품자 그들의 거동은? 날렵하고 매서워 공격하기에?

많은 신경이 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깨무는 양몽환은? 우선 비수부터 피하고는 허리를 바싹 굽히며

다음 달려드는 장정의 오른 손목을 힘껏 움켜쥐기에 성공했다.
일단 손목을 움켜 잡기만 하면 일시에? 손목의 힘이 빠지며 항거할 능력을 잃는 것이

보통 무공의 웅후한 공격이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장정은 어떻게 된 것인지 끄떡도 안하고 오른? 손에 쥐고 있던 비수를 왼 손에 바꿔 쥐면서

양몽환의 면상을 후려 갈기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장정의 손목을? 움켜쥔 채 몸을 비잉 돌려 일격을 피한 뒤 팔굽으로 장정의 옆구리를

힘껏 쥐어 박았다.
그제야 장정은 으윽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엎어질 듯 비틀거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엎어지려는 몸을 바로 세우면서 번개같이 왼 손을 휘둘러 자기의 손목을 쥐고 있는

양몽환의 팔을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장정의 손목을 놓칠 뻔한 양몽환은 그만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도저히 상대할 수도 없는 장정의 무공은 그야말로 이곳 중원 땅에서는 볼 수 없는 강인한 무공이었다.

보통 팔굽으로 힘껏 쥐어 박힌 옆구리라면 적어도 두 대의 갈비뼈는 박살이 나야 했다.?

그러나 겨우 신음소리만 내고는 그만이었다.

그리고는 더 사나운 기세로 역습해 오는데는 양몽환도 그만 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뿐인가. 뒤에서 멈칫했던 세 명의 장정이 합세하여 지쳐들어 오며 비수를 번쩍이는 데는

일시 눈앞이 아찔했다.
아차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번쩍거리는 비수에 만신창이가 될 것을 직감한 양몽환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움켜쥐고 있던 장정의 손목을 휙 낚아채며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 장정의? 몸을 방패삼아 달려드는 세 명의 비수 앞으로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달려들던 세 명의? 장정은 일시에 행동을 멈추며 사방으로 에워싸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번쩍 들어 올렸던 장정을? 왼쪽으로 휘두르면서 몸은 오른쪽에 있는 장정으로

기울이듯 하다가 오른 손을 번개같이 휘둘러 장정의 비수를 튕겨버렸다.

그 순간, 왼쪽으로 피했던 장정은 자기 동료가 양몽환인 줄 알았는지 푹?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

비수를 맞은 장정은 곧이어 축 늘어지며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마나 힘껏 찔렀던지 비수의? 자루까지 몸속으로 푹 꽂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축 늘어지는 장정을 힘껏 주켜 들었다가 뒷편에서 달려드는

또 다른 장정에게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뒤에서 달려들던 장정은 자기 동료의 몸에

가슴을 호되게 맞으며 함께 쓰러져 밑으로 깔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쓰러질 때 발을 잘못 짚었는지 무릎뼈가 우두둑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왼쪽으로부터 동료의 몸에 비수를 꽂았던 장정은 그제야 자기가 찌른 상대가 양몽환이 아니고

자기의 동료라는 것을 알았는지 눈에 살기를 띄우며 곤두박질 치듯 달려 들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옆으로 피하고 그 피하는 순간에 옆으로 휙 지나가는 장정의 뒷등을 쫓아가며

주먹으로 힘껏 맘껏 후려 갈겼다.

그러자 목표를 헛 짚은 장정은 뒤에서부터 가하는 양몽환의 무시무시한 주먹에 피를 토하며

사지를 쭉 펴고 엎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호되게 얻어 맞고 정신없이 쓰러지다 쥐고 있던 자신의 비수에 얼굴을 푹 박고는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양몽환과 겨루었던 세 명의? 장정이 쓰러진 것이었다.

이것을 시초로 해서 이창란의 용두지팡이에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진 장정이 일곱

또, 주약란의 매서운 지풍에 혈도가 짚혀 숨도 쉬지 못하고 주저앉은 장정이 넷,

이와같이 해서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십오 명의 살상자(殺傷者)를 낸 솜씨에 철라법왕은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이렇게 천축국의 무공이 맥을 추지 못? 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철라법왕은

입 안의 침마저 바싹 말라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불시에 장검을 뽑아든 철라법왕은 뭐라고 소리를 치기는 해야겠는데 입 안이 바싹 말라

컥!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한 철라법왕은 끙! 괴이한 소리를 내며 어깨 위로 비껴 들었던 장검을 곧장 주약란에게로

메다 꽂으면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불의의 사태에 위기를 당한 주약란은 급히 몸을 옆으로 뒤틀면서 내려쳐지는 장검부터

헛치게 한 다음 오른 손에 모았던 강력한? 진기를 쏟아 철라법왕의 양쪽 어깨를 누르듯 휘갈겼다.

그리고는 연이어 세 수의 공격을 퍼붓고 두어 걸음 뒤로 피했다.

그러나 철라법왕의 무공 역시 만만치 않았다.

주약란의 공격을 모두 맞받아 낸 다음, 뒤로 물러서는 주약란을 쫓아가며 장검을 휘둘러

별처럼 검광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도 약간 마음이 서늘했다.
<조심해서 겨루어야겠군......>
생각하면서 돌혈점맥(突穴點脈)의 수법으로 철라법왕의 혈도와 맥을 일시에 노리면서

재차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주약란이 죽지 않으면 철라법왕이 죽어야 하는 절기와 절기의 대결은 점차 불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차간에 무공이 비슷해서 그런지? 치열하고 날카로운 공방전이지만 쉽게 승부가

날 것같지는 않았다.
한편, 이창란과 양몽환 그리고 하림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십여명의 장정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팔, 다리가 부러져나가도 아랑곳 없이? 팔과 발을 휘두르며 벌떼처럼 이리 달려들고

저리 달려들고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러한 장정들을 상대로 해서는 심장을 뚫어놓든가,

숨통을 끊어 놓기 전에는 한 팔, 한 다리로라도 어디까지 덤빌 기세였다.
이러한 장정들과 맞선 이창란과 양몽환은 추호의 사정도 두지 않고 장풍과 용두지팡이를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이때 고개를 돌려 이창란과 양몽환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본 주약란은 한 팔, 한 다리로 절룩거리면서

악착같이 덤벼드는 장정들의 불굴의 투지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주약란은 철라법왕을 상대로 날카로운 지풍을 날리고 한편으로는 전음지술로

양몽환을 주의시키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양상공. 조심해서 싸우세요.

나는 지금 철라법왕의 실력과 그 무공을 관찰하고 있어요.

제 걱정은 마시고 장정들을 처치하세요.

그리고 아까? 내가 한 이야기도 잊지 마세요.

 어느 정도 싸우다가 북과 징을 뺏는다면 장정들도 무력해질 거에요.]
한편으로는 철라법왕을 후려 갈기고 한? 편으로는 전음지술로 양몽환에게 말하는 것은

사실 주약란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보통 무공인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북과 징은 여전히 시끄러울 정도로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장풍을 날리고 있던 양몽환은 갑자기 들려오는 주약란의

전음지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양몽환은 애초에? 싸우게 되면 북과 징을 먼저 뺏으라던 주약란의 말을 깜박 잊고 있었다.
그러나 주약란에게서 말을 들었을 때는 한창 싸움이 치열해서 몸을 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십여 명의 산 송장이 하나하나 쓰러지고 이제 겨우 다섯 명이 남았지만

이 다섯 명은 모두 무공이 웅후하여 양몽환, 이창란 그리고 하림의 생명을 간간이 위협하며

굴할 줄 모르는 악종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악종이고 무공이 강한 장정은 바로 등가보의 소보주인 등개우였다.
한때는 양몽환을 등가보로 모셔가서 도옥을 맞아 생명을 걸고 함께 싸우던 일테면

동지였던 등개우가 지금은 정신을 잃은 산 송장으로서 양몽환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겨누고

달려드는 것이다.

이러한 등개우를 처음에 양몽환은 자기가 양몽환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스물네 명의 장정 중에서 다섯 명이 남는 그 기간 동안 등개우는 양몽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필살의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는 환장하다 못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등개우가 먼저 양몽환을 알아 보던가 해서 싸움을 그쳐 주었으면 좋겠는데
마구 덤벼드는 데는 양몽환도 어쩔 수 없이? 뒷걸음을 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양몽환은 먼저 등개우의 혈도를 짚어 일시 혼절상태로 만들어 놓으려고 했으나

그 눈치를 알아챘는지, 아니면 그저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입에 거품을 물며 달려드는 데는

양몽환이 기절하듯 놀라며 등개우의 공격을 피해야 할 신세였다.

진퇴양난에서 등개우와 겨루고 있던 양몽환은 드디어 결심했다.

<등개우에게 상처를 입히는 한이 있더라도 잔호한 수를 써서 등개우를 쓰러뜨린 다음

몸을 빼어 북과 징을 뺏으리라.>


어금니에서 소리가 나도록 힘껏 이를 깨물은 양몽환은 팔소매를 걷어 붙이며

등개우와 마주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번쩍 들어 덮쳐드는 등개우에게 마주 달려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기세있게 달려오는 등개우의 비수를 장풍으로 날려 버리면서 번개같이

팔을 휘둘러 등개우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고 몇 번 잡아채는 동시 다음 순간

나머지 왼 손마저 끌어쥐며 빙그르르 돌리면서 양몽환도 함께 돌아갔다.

그제야 등개우는 당당하던 기세가 꺾이면서 눈썹을 몰아 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입 가득히 거품을 물면서 두 발을 허우적거리다 양몽환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걷어 찼다.
순간, 무지무지한 고통이 아랫배로부터 치밀어 올랐으나?

꾹 참고 한 번 더 등개우를? 휘둘러 쓰러뜨리고는 전광석화와 같이 빠른 수법으로

등개우의 옆구리와 등에 있는 다섯 곳의 혈도를 짚어버리는 데에 겨우 성공했다.
악전고투였다.

그제야 등개우는 팔과 다리를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등개우를 보면서 양몽환은 길게 탄식했다.

<.......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동료를 적으로 만들어 놓은 천축국의 무공이야말로 대단하군......>

일말의 서글픈 감회가 마음을 괴롭혔으나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쓰러진 등개우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싸우는 북새통에 행여 다칠까 염려해서 다섯장(五丈) 밖의 풀밭으로 던져 버리고는

한숨을 토했다.
이때 다시 달려드는 한 명의 장정과 대치한 양몽환은 미처 숨도 돌려 쉴 사이도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장정을 정면으로 대치한 양몽환은 등개우로 해서 끓어 오르는 분노와

서글픔을 이 장정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지쳐 나가면서 두 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장정의? 가슴을 힘껏 걷어차 쓰러뜨린 후 뒤로 돌아서면서 마악 일어서려는?

장정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발길로 밟아 코를 땅에 박도록 만든 다음 꿈틀거리는 장정의 엉덩이를

더 한 번 내려 밟았다.

그제야 기승스럽던 장정도 그만 다리를 벌리고 늘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장정을 발길로 간단히 처치해 버린 양몽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북과 징을 두드리고 있는 흑의인에게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이때 징을 치고 있던 흑의인은 질풍처럼 달려드는 양몽환을 발견하자

몸을 홱 돌리면서 발을 번쩍 들어 여차하면발길질을 하려는 태세를 취하면서도

징을 두드리는 손은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달려가던 몸을 갑자기 멈추어 서며 북과 징을 두드리는 두 명의 흑의인을 노려 보았다.

그러는 양몽환의 머리에는 번개같이 지나가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 북과 징을 맞추어 두들김으로써 어떤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북과 징 중에 하나만 빼앗으면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퍼뜩 지나간 양몽환은 징을 빼앗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양몽환은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면서 손바닥을 칼날같이 하여 단단한 진기를 모아

쫙 펴고는 징을 두드리는 흑의인의 허벅다리를 노리고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흑의인은 왼 발을 번쩍 드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오른쪽 발을 들어

양몽환의 가슴을 겨누고 달려들며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노리고 달려들었던 공격이 무위로 끝난 양몽환은 흑의인이 두 발을 거의 동시에

사용할 줄은 몰랐던지 은근히 놀라며 일단 비켜섰다.

그리고는 주먹을? 단단히 쥐고 다시 땅을 박찼다.
이어 양몽환과 흑의인은 발길질의 괴이한 싸움이 시작되고 말았다.
그러나 흑의인은 두 발을 번개같이 놀려 공격하고 방어하면서도 두 손으로는

여전히 징을 두들기는 것이 몽환의 발길질에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징을 두드리는 것은

멈출 수 없다는 다시 말하면 죽을 때까지 징을 두들기다 죽겠다는 태도였다.
이때 이창란과 하림을 상대로 싸우던 세 명의 장정 중에서 한 명이 번개같이 몸을 날려

양몽환을 뒤에서부터 덮치고 들어왔다.
돌연 앞과 뒤에서 협공을 받게 된 양몽환은 일시 위기에 처하는 듯했으나

즉시 협공의 포위망을 뚫고 한 옆으로 빠져나오는 바로 그 찰나.
홀연! 길고 처절한 비통소리가 터지며 한 명의 장정이 머리를 감싸쥐며 벌렁 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장정은 팔을 허우작거리며 땅바닥을 후벼 파다가 끄응!?

소리를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다.
이때 수염을 곤두 세웠던 이창란은 용두지팡이를 천천히 휘두르며 소리쳐 외치는 것이었다.
[덤벼라. 이젠 몇 놈 남았냐!]
소리치며 하림과 싸우고 있는 장정에게로 용두지팡이를 겨누었다.
지금 머리를 감싸며 숨을 거둔 장정은? 이창란의 용두지팡이에 머리가 두 쪽이 나며 쓰러진 것이었다.
이윽고 하림과 상대하고 있는 장정마저 건원지의 일지풍으로 깨끗이 쓰러뜨린 이창란은

사방을 휘둘러보며 이젠 또 어느 놈을 헤치울까 하는 듯이 목을 길게 뽑았다.
한편 자기의 상대를 이창란에게 넘겨 버린 하림은 언제 빼앗아 들었는지 한 자루의 비수를 들고

쏜살같이 양몽환에게로 달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다급히 외쳤다.

 

정식으로 도전할 듯 태세를 갖추는 철라법왕의 태도에 주약란도 지지 않고 냉랭히 말했다.
[오래 전부터 천축국의 무공이 괴이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친히 구경하게 되었군요.]
하고 겨루어 보겠다는 주약란의 강경한? 말에 철라법왕은 껄껄 소리 내어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번쩍 손을 들었다.
[잠깐! 소저는 우리의 기술(奇術)을 본 다음 나 법왕과 한 수 겨루도록 합시다.]
주약란은 잠시 생각한 다음 옆애 있는 이창란과 양몽환에게 눈짓하여 운기하고
 대기하라

이르고는 쾌히 대답했다.

이때 이창란과? 양몽환은 주약란의 눈짓에 따라 암암리에 진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좋아요. 구경이나 하겠어요.]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철라법왕은 오른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신호로 해서 북과 징을 들고 있던 두 명의 동료는 일시에 다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주약란이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로 철라법왕은 뒤로? 물러 선 두 명의 동료에게
명령을 했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북을 들고 있던 흑의이 먼저 둥! 북을 한 번 치는 것이었다.
그 북소리가 들리자 이번에는 징을 들고 있던 흑의인이 괭! 한번 치고는

그 여운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북이 울리고 북이 울리면 징이 울리고......

이렇게 해서 북과 징은 번갈아 가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괴이하게 조화된 북과 징소리는 음산한 밤이어서 그런지 모골이 송연하고

머리 끝이 쭈뼛하도록 두려운 감을 주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전음지술로 이창란과 양몽환에게 속삭였다.
[천축국에는 괴이한 술법이 많아요.

북소리와 징소리에 현혹되지 말고 태세를 갖추세요.]

하는 것이었다.
이때 북소리와 징소리는 더욱 어지럽게 두들겨지고 그나마 북 한번, 징 한 번 치던

순번도 없어지면서부터 웽웽거리는 소리는 더욱 어지러워지고 거의 정신마저

잃을 지경으로 야단스러웠다.
그러나 주약란은 정신을 가다듬고 웅후한 진기를 모은 다음 두 손가락에는

천강지의 지풍을 운집시키고 사태를 주시했다.
이윽고 어지럽게 두들겨 정신을 잃을? 만큼 야단스럽던 북과 징소리는

점차 그 속도가 빨라지면서 살기를 띄우는 것이었다.
한편, 비교적 강호에 견문이 넓은 이창란은 북소리와 징소리가 합친 괴상한 소리를 들으면서

그 소리가 아무래도 살기를 띄우고 또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같은 것에 이마를 찌푸리며

창고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창고에서 크게 소리쳐 외친다 해도 북소리나 징소리 때문에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북소리와 징소리는 쉬임없이 고막을 두드리고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러던 북과 징이 홀연 딱 멈추고 숨 한번 돌려 쉴 사이를 두었다가 이번에는 더욱 요란하게

두들기는 것이었다.
북소리와 징소리는 마치 수 천 마리의 맹수가 계곡을 치올라가는 듯한 우뢰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드디어 창고의 문이 쾅! 열리며 혼절해 있던 장정들이 일제히 튀어나오지 않는가!

언제 혼절했더냐 싶게 민첩하고도 재빠른 동작으로 튀어나오는 장정들을 보는 순간!
용두지팡이를 거꾸로 쥐었던 이창란이 흥! 소리를 내며 맞받아 달려갔을 때는

 십여 명의 장정이 모두 튀어나온 뒤였다.?

 그리고 이창란을 에워싸듯 쭈욱 늘어서는? 데는 이창란도 순간 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줄 알았다면 이놈들을 미리 깡그리 죽여 버릴 걸......>

번개같이 지나가는 후회였지만 지나간 일이었다.
수염을 곤두 세우고 용두지팡이에 힘을? 주며 이창란은 잠시 그들과 대치했다.

그때 주약란이? 조용히 이창란을 부르는 것이었다.
[노선배님. 아직 손을 대지 마세요.?

저는 미혼대법에 정신을 잃었던 자들이 일으키는 변화를 보겠어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할 수 없이 수염을 내려쓸며 올렸던 지팡이를 내리긴 했으나

대치한 태세를 풀지는 않았다.
한편 하림은 생각지도 않았던 창고에서 이십 명의 장정이 우당탕 몰려나오자

질겁을 하고 놀랐지만 주약란과 양몽환 그리고 이창란이 옆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때 우르르 뛰어 나온 이십여 명의 장정은 아직 정신이 덜 깨었는지?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을 뿐 대적하거나 도망갈 기색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큰 소리로 껄껄...... 웃는 철라법왕은 웃음을 거두며 소리높여 외쳤다.
[자, 보시오 저 조수들은 모두 이 북과 징소리에 조종되는데 지금 보기에는 저렇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는 강렬한 살기(殺氣)를 일으키고 있소.

그리고 지금 저 조수들은 몸에 아무 이상도 없지만 몸 어느 한 곳에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거요.

그래서 나 법왕이 한 마디만 명령하면? 배고픈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듯 당신들을 죽이고 말 거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코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그 재간인가요.

천축국에는 기기묘묘한 재간이 많다고 했는데 이 정도라면 실망했어요.]
[뭐? 실망이라? 있소. 또 있소. 얼마든지 있소. 잠깐 기다려 보시오.]
하고는 머리 속으로 무슨 생각을 모으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저 조수들은 이 북과 징소리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생사(生死)는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있소.

그래서 그들의 무공은 정상적인 때보다 곱절이나 발휘할 수 있다 이거요.]
<음 그 정도라면 조금 놀랍군......>
하면서도 주약란은 생긋 웃었다.
[그러나 아직 멀었어요.

저 장정들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의 일격을 감당할 수는 없을 거에요.]
[나 법왕과 우리 대국사님은 주소저의 무공이 강하다고 하는 말을 듣긴 했소.

아미태산(阿彌泰山)의 삼음신니(三音神尼) 신공(神功)을 터득했다고 말이오.]
[그런 것으로 놀랄 것은 없어요.]
[그러나 삼음신니의 신공도 우리 천축국의 무공과 같은 파라는 것은 주소저도 몰랐을 것이오.]
처음 듣는 말에 주약란은 잠시 놀랐다.

<삼음신니의 무공이라면 무술계의 지보(至寶)인데 뭐 천축국 무공의 일파라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자들과 싸우기가 수월치 않겠어......>


하는데 이창란이 크게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천축국의 무공으로서는 우리 중원땅의 무공과 상대가 되지 않을걸......]


하고 조롱하듯 말했다. 그러나 철라법왕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화도 안내고 눈썹도 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여하간 좋소. 나중에 겨루어 보기로 하고 우선 우리 천축국의 기술(奇術)이나 더 구경하시오.]
하고는 이번에도 역시 오른 손을 높이 들어 흔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요란하게 두드리던 북과 징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며?

홀연 가늘고 낮은? 음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멍청히 서 있던 이십 여명의 장정이 살기를 띄우며 소매속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한 자루씩

뽑아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앞에 거치는 것없이 비수를 꼬나 쥐고 주약란과 이창란 그리고? 양몽환과 하림에게 노도
같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이에 정신이 번쩍 든 이창란은? 거머 쥐었던 용두지팡이를 비껴들며 대갈일성!

 대비로 마당을 쓸듯 후려 갈기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산 송장같은 장정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몇 명씩 떼를 지어 맹공을 가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창고 앞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일곱 명을 상대로 용두지팡이를 날리는? 이창란은 수염까지 꼿꼿이 세우고

좌충우돌 번개처럼 돌아갔고 지팡이에 맞아 무참히 쓰러지는 놈, 악을 쓰는 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참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편, 주약란에게로 달려가는 여덟 명의? 장정 중에서 세 놈을 가로챈 양몽환은 역시 자기에게로

덤비는 세 명의 장정을 합친 여섯명을? 상대로 전광석화같이 장풍을 날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땅을 박차며 들어갔다.
그러나 송장같은 장정들이? 한 번 살기를? 품자

그들의 거동은? 날렵하고 매서워 공격하기에? 많은 신경이
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깨무는 양몽환은? 우선 비수부터 피하고는 허리를 바싹 굽히며

다음 달려드는 장
정의 오른 손목을 힘껏 움켜쥐기에 성공했다.
일단 손목을 움켜 잡기만 하면 일시에? 손목의 힘이 빠지며 항거할 능력을 잃는? 것이 보통 무공의 웅후한
공격이었고 그렇게 되는 것이 정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장정은 어떻게 된 것인지 끄떡도 안
하고 오른? 손에 쥐고 있던 비수를 왼 손에? 바꿔 쥐면서 양몽환의 면상을 후려 갈기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장정의 손목을? 움켜쥔 채 몸을 비잉 돌려 일격을? 피한? 뒤 팔굽으로 장정의 옆구리를 힘껏 쥐
어 박았다.
그제야 장정은 으윽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엎어질 듯 비틀거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엎어지려는 몸을 바로
세우면서 번개같이 왼 손을? 휘둘러 자기의 손목을 쥐고 있는 양몽환의 팔을 내려치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장정의 손목을 놓칠 뻔한 양몽환은 그만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도저히 상대할 수도 없는 장정의 무공은 그야말로 이곳 중원 땅에서는 볼 수 없는 강인한 무공이었다. 보통
팔굽으로 힘껏 쥐어 박힌 옆구리라면 적어도 두 대의 갈비뼈는 박살이 나야 했다.? 그러나 겨우 신음소리만
내고는 그만이었다. 그리고는 더 사나운 기세로 역습해 오는데는 양몽환도 그만 화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
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뿐인가. 뒤에서 멈칫했던 세 명의 장정이 합세하여 지쳐들어 오며 비수를 번쩍이는
데는 일시 눈앞이 아찔했다.
아차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번쩍거리는 비수에 만신창이가 될 것을 직감한 양몽환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움켜쥐고 있던 장정의 손목을 휙 낚아채며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 장정의? 몸을 방패삼아 달려드는
세 명의 비수 앞으로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달려들던 세 명의? 장정은 일시에 행동을 멈추며 사방으로 에워싸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번쩍 들어 올렸던 장정을? 왼쪽으로 휘두르면서 몸은 오른쪽에 있는? 장정으로 기울이듯 하다가 오른 손을
번개같이 휘둘러 장정의 비수를 튕겨버렸다. 그 순간, 왼쪽으로 피했던 장정은 자기 동료가 양몽환인 줄 알
았는지 푹? 비수를 꽂는 것이었다. 비수를 맞은 장정은 곧이어 축 늘어지며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얼
마나 힘껏 찔렀던지 비수의? 자루까지 몸속으로 푹 꽂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축 늘어지는? 장정을
힘껏 주켜 들었다가 뒷편에서 달려드는 또 다른 장정에게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뒤에서 달려들던 장
정은 자기 동료의 몸에 가슴을 호되게 맞으며 함께 쓰러져 밑으로 깔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쓰러질
때 발을 잘못 짚었는지 무릎뼈가 우두둑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왼쪽으로부터 동료의 몸에 비수를 꽂았던 장정은 그제야 자기가 찌른 상대가 양몽환이 아니고 자기의
동료라는 것을 알았는지 눈에 살기를 띄우며? 곤두박질 치듯 달려 들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옆으로 피하고
그 피하는 순간에? 옆으로 휙 지나가는 장정의? 뒷등을 쫓아가며 주먹으로 힘껏 맘껏 후려 갈겼다.? 그러자
목표를 헛 짚은 장정은 뒤에서부터 가하는 양몽환의 무시무시한 주먹에? 피를 토하며 사지를 쭉 펴고 엎어
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호되게 얻어 맞고 정신없이 쓰러지다 쥐고 있던 자신의 비수에 얼굴을 푹 박
고는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양몽환과 겨루었던 세 명의? 장정이 쓰러진 것이었다. 이것을 시초로 해서 이창란의 용두지팡이에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진? 장정이 일곱 또, 주약란의 매서운 지풍에 혈도가 짚혀 숨도 쉬지? 못하고 주
저앉은 장정이 넷, 이와같이 해서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십오 명의 살상자(殺傷者)를 낸 솜씨에 철라법
왕은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이렇게 천축국의 무공이 맥을 추지 못? 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철라법왕은 입 안의 침마저 바싹 말
라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불시에 장검을 뽑아든 철라법왕은 뭐라고 소리를 치기는 해야겠는데 입 안이 바싹 말라 컥! 소리도 나지 않
았다.
그러한 철라법왕은 끙! 괴이한 소리를 내며 어깨 위로 비껴 들었던 장검을 곧장 주약란에게로 메다? 꽂으면
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불의의 사태에 위기를 당한 주약란은 급히 몸을 옆으로 뒤틀면서? 내려쳐지는 장검부터 헛치게 한 다음 오
른 손에 모았던 강력한? 진기를 쏟아 철라법왕의? 양쪽 어깨를 누르듯 휘갈겼다. 그리고는 연이어 세? 수의
공격을 퍼붓고 두어? 걸음 뒤로 피했다. 그러나 철라법왕의 무공 역시 만만치 않았다. 주약란의 공격을? 모
두 맞받아 낸 다음, 뒤로 물러서는? 주약란을 쫓아가며 장검을 휘둘러 별처럼 검광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도 약간 마음이 서늘했다.
<조심해서 겨루어야겠군......>
생각하면서 돌혈점맥(突穴點脈)의 수법으로 철라법왕의? 혈도와 맥을 일시에 노리면서 재차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주약란이 죽지? 않으면 철라법왕이 죽어야 하는 절기와 절기의 대결은 점차 불을? 토하기 시작했
다. 그러나 피차간에? 무공이 비슷해서 그런지? 치열하고 날카로운 공방전이지만 쉽게 승부가 날? 것같지는
않았다.
한편, 이창란과 양몽환 그리고 하림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십여명의 장정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팔, 다리가 부러져나가도 아랑곳 없이? 팔과 발을 휘두르며 벌떼처럼 이리 달려들고 저리 달려들고 마치 귀
신에 홀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러한 장정들을? 상대로 해서는 심장을 뚫어놓든가, 숨통
을 끊어 놓기 전에는 한 팔, 한 다리로라도 어디까지 덤빌 기세였다.
이러한 장정들과 맞선 이창란과 양몽환은? 추호의 사정도 두지 않고 장풍과 용두지팡이를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이때 고개를 돌려 이창란과 양몽환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본 주약란은 한 팔, 한 다리로? 절룩거리면서 악착
같이 덤벼드는 장정들의 불굴의 투지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주약란은 철라법왕을? 상대로 날카
로운 지풍을 날리고 한편으로는 전음지술로 양몽환을 주의시키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양상공. 조심해서 싸우세요. 나는 지금 철라법왕의? 실력과 그 무공을 관찰하고 있어요.? 제 걱정은 마시고
장정들을 처치하세요. 그리고 아까? 내가 한 이야기도 잊지 마세요.? 어느 정도 싸우다가 북과 징을 뺏는다
면 장정들도 무력해질 거에요.]
한편으로는 철라법왕을 후려 갈기고 한? 편으로는 전음지술로 양몽환에게 말하는 것은 사실 주약란이 아니
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보통 무공인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북과 징은 여전히 시끄러울 정도로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장풍을 날리고 있던 양몽환은? 갑자기 들려오는 주약란의 전음지술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양몽환은 애초에? 싸우게 되면 북과 징을 먼저 뺏으라던? 주약란의 말을 깜박 잊고 있었다.
그러나 주약란에게서 말을 들었을 때는 한창 싸움이 치열해서 몸을 뺄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십여 명의 산 송장이?? 하나하나 쓰러지고 이제 겨우 다섯 명이? 남았지만 이 다섯 명은
모두? 무공이 웅후하여 양몽환, 이창란 그리고 하림의? 생명을 간간이 위협하며 굴할 줄 모르는 악종들이었
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악종이고 무공이 강한? 장정은 바로 등가보의 소보주인 등개우였다.
한때는 양몽환을 등가보로 모셔가서 도옥을 맞아 생명을 걸고 함께 싸우던 일테면 동지였던 등개우가 지금
은 정신을 잃은 산 송장으로서 양몽환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겨누고 달려드는 것이다. 이러한 등개우를
처음에 양몽환은 자기가 양몽환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스물네 명의? 장정 중에서
다섯 명이 남는 그 기간 동안 등개우는 양몽환을 알아보지 못하고 필살의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는 환장하
다 못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등개우가 먼저 양몽환을 알아 보던가 해서 싸움을 그쳐 주었으면 좋겠는데
마구 덤벼드는 데는 양몽환도 어쩔 수 없이? 뒷걸음을 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양몽환은 먼저
등개우의 혈도를 짚어 일시 혼절상태로 만들어 놓으려고 했으나 그 눈치를 알아챘는지, 아니면 그저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입에 거품을 물며 달려드는 데는 양몽환이? 기절하듯 놀라며 등개우의 공격을 피해야 할 신
세였다. 진퇴양난에서 등개우와 겨루고 있던 양몽환은 드디어 결심했다.
<등개우에게 상처를 입히는 한이 있더라도? 잔호한 수를 써서 등개우를 쓰러뜨린 다음 몸을 빼어? 북과 징
을 뺏으리라.>
어금니에서 소리가 나도록 힘껏 이를 깨물은 양몽환은 팔소매를 걷어 붙이며 등개우와 마주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번쩍 들어 덮쳐드는 등개우에게 마주 달려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기세있게 달려오는 등
개우의 비수를 장풍으로 날려? 버리면서 번개같이 팔을 휘둘러 등개우의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고 몇 번 잡
아채는 동시 다음? 순간 나머지 왼 손마저 끌어쥐며 빙그르르 돌리면서 양몽환도 함께 돌아갔다. 그제야 등
개우는 당당하던 기세가 꺾이면서 눈썹을 몰아 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입 가득히 거품을? 물면서 두 발
을 허우적거리다 양몽환의 아랫배를 사정없이 걷어 찼다.
순간, 무지무지한 고통이 아랫배로부터 치밀어 올랐으나? 꾹 참고 한 번 더 등개우를? 휘둘러 쓰러뜨리고는
전광석화와 같이? 빠른 수법으로 등개우의 옆구리와? 등에 있는? 다섯 곳의 혈도를 짚어버리는? 데에 겨우
성공했다.
악전고투였다. 그제야 등개우는 팔과 다리를?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지는 것이었다. 이러한 등개우를 보면
서 양몽환은 길게 탄식했다.
<.......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동료를 적으로 만들어 놓은 천축국의 무공이야말로 대단하군......>
일말의 서글픈 감회가? 마음을 괴롭혔으나 곧 마음을 진정시키고? 쓰러진 등개우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싸우는 북새통에 행여 다칠까? 염려해서 다섯장(五丈) 밖의 풀밭으로 던져 버리고는 한숨을? 토했
다.
이때 다시 달려드는 한 명의 장정과 대치한 양몽환은 미처 숨도 돌려 쉴 사이도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장정을 정면으로 대치한 양몽환은 등개우로 해서

끓어 오르는 분노와 서글픔을 이 장정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지쳐 나가면서 두 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장정의 가슴을 힘껏 걷어차 쓰러뜨린 후 뒤로 돌아서면서 마악 일어서려는 장정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발길로 밟아 코를 땅에 박도록 만든 다음 꿈틀거리는 장정의 엉덩이를 더 한 번 내려 밟았다.

그제야 기승스럽던 장정도 그만 다리를 벌리고 늘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장정을 발길로 간단히 처치해 버린 양몽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북과 징을 두드리고 있는 흑의인에게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이때 징을 치고 있던 흑의인은 질풍처럼 달려드는 양몽환을 발견하자

몸을 홱 돌리면서 발을 번쩍 들어 여차하면발길질을 하려는 태세를 취하면서도

징을 두드리는 손은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달려가던 몸을 갑자기 멈추어 서며 북과 징을 두드리는 두 명의 흑의인을 노려 보았다.

그러는 양몽환의 머리에는 번개같이 지나가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 북과 징을 맞추어 두들김으로써 어떤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북과 징 중에 하나만 빼앗으면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퍼뜩 지나간 양몽환은 징을 빼앗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양몽환은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면서 손바닥을 칼날같이 하여 단단한 진기를 모아

쫙 펴고는 징을 두드리는 흑의인의 허벅다리를 노리고 쏜살같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흑의인은 왼 발을 번쩍 드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오른쪽 발을 들어

양몽환의 가슴을 겨누고 달려들며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노리고 달려들었던 공격이 무위로 끝난 양몽환은 흑의인이 두 발을 거의 동시에

사용할 줄은 몰랐던지 은근히 놀라며 일단 비켜섰다.

그리고는 주먹을? 단단히 쥐고 다시 땅을 박찼다.
이어 양몽환과 흑의인은 발길질의 괴이한 싸움이 시작되고 말았다.
그러나 흑의인은 두 발을 번개같이 놀려 공격하고 방어하면서도 두 손으로는

여전히 징을 두들기는 것이 몽환의 발길질에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징을 두드리는 것은

멈출 수 없다는 다시 말하면 죽을 때까지 징을 두들기다 죽겠다는 태도였다.
이때 이창란과 하림을 상대로 싸우던 세 명의 장정 중에서 한 명이 번개같이 몸을 날려

양몽환을 뒤에서부터 덮치고 들어왔다.
돌연 앞과 뒤에서 협공을 받게 된 양몽환은 일시 위기에 처하는 듯했으나

즉시 협공의 포위망을 뚫고 한 옆으로 빠져나오는 바로 그 찰나.
홀연! 길고 처절한 비통소리가 터지며 한 명의 장정이 머리를 감싸쥐며 벌렁 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장정은 팔을 허우작거리며 땅바닥을 후벼 파다가 끄응!?

소리를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다.
이때 수염을 곤두 세웠던 이창란은 용두지팡이를 천천히 휘두르며 소리쳐 외치는 것이었다.
[덤벼라. 이젠 몇 놈 남았냐!]
소리치며 하림과 싸우고 있는 장정에게로 용두지팡이를 겨누었다.
지금 머리를 감싸며 숨을 거둔 장정은? 이창란의 용두지팡이에 머리가 두 쪽이 나며 쓰러진 것이었다.
이윽고 하림과 상대하고 있는 장정마저 건원지의 일지풍으로 깨끗이 쓰러뜨린 이창란은

사방을 휘둘러보며 이젠 또 어느 놈을 헤치울까 하는 듯이 목을 길게 뽑았다.
한편 자기의 상대를 이창란에게 넘겨 버린 하림은 언제 빼앗아 들었는지

한 자루의 비수를 들고 쏜살같이 양몽환에게로 달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다급히 외쳤다.

[저 북을 두드리는 사람을 맡으세요. 저는 이 사람을 맡을께요.]
하고는 양몽환을 대신해서? 징을 두들기고 있는 흑의인과 맞서며 비수와? 왼 손을 동시에 흔드는 것이었다.
한편, 이창란은 달려드는 장정들을 추호의 사정도 주지 않고 머리를 부수어 놓아 그들은? 거의 전멸 상태였
다. 그래서 어디로 간다? 하며 두리번 거렸지만? 하림이 제일 염려스러웠다. 철라법왕과 상대하는 주약란은
말할? 것도 없고 북을 치는 흑의인과 상대하는? 양몽환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둘러보던 이창란은 바쁠 것 없이? 서서히 용두지팡이를 끌며 하림을 도와 주기 위해 다가가는 것이
었다.
한편 주약란은 주약란대로 자신의 기묘한 무공을 약간 발휘해 가면서 철라법왕이 있는 재간을 다해 싸우는
것을? 세밀히 관찰하며 여유있게 전세를 몰고 있었고? 양몽환은 양몽환대로 북을 치는 흑의인과 열전을 벌
리고 있었다.
그러나 북을 치는 흑의인 역시 보통의 무공이 아니었다.
양몽환의 공격이 점차 날카로워지자 흑의인은 부득이?? 북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두 발과? 두 팔을 모두
흔들며? 역공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북을 칠?? 틈도 주지 않는 양몽환의 공격에 북소리가 없어진
창고 앞 뜰에는 기분 나쁜 징소리만 울리게 되고 말았다.
그러자 징을 치고 있던 흑의인도 이창란이? 하림과 합세하는 바람에 결국 징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옆에
서부터 날아오는? 이창란의 용두지팡이를 피하느라고 엉겁결에? 비켜 선다는 것이? 그만 비수를 고추 세우
고 달려들던 하림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 순간, 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서던 흑의인은 옆으로부터? 이창란의 용두지팡이에 왼쪽 팔이 떨어지
고 연이어 앞에서 달려들던? 하림의 비수에 심장이 꿰뚫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징을 떨어뜨리며? 풀썩 무릎
을 꿇고 끄응!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두는 것이었다.
징을 두드리던 흑의인을 한 방에 쓰러뜨린 이창란은 그 여세를 몰아 양몽환과 싸우는 흑의인에게로 달려들
었다. 이때 이창란은 한 번 살계(殺戒)를 범하자 그 살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사실 이창란으로 말하면 지금
까지 사위인 양몽환의 덕망과 명분을 생각해서 살계를 범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사태가 위중한데다가 적은 거의 삼십 여명을 헤아리는 수에 그만 살계고 뭐고 돌아 볼 겨를도 없이
성난 호랑이처럼 용두지팡이를 휘둘러? 거의 이십여? 명을 썩은 풀 치듯 쓰러뜨리고 지금? 다시 북을 매고
있는 흑의인과 맞선 것이었다.
그러한 이창란의 눈은 보기만 해도 살기와 독이 뚝뚝 떨어졌다. 이때 양몽환은 급히 이창란을 불렀다. 그것
은 모두 죽일 것이 아니라? 몇 명쯤 사로잡아 그들의 계책을 알아두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 때문
이었다.
[장인 어른. 이 흑의인은 사로잡도록 해 주십시오.]
[오냐, 알았다. 너는 좀 비켜 있거라!]
쾌히 대답한 이창란은 오른 손에 쥐었던? 용두지팡이를 왼 손으로 옮겨 쥐고 오른 손에 건원지의 일지풍을
강하게 모으며 눈썹을 곤두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북을 메고 있는 흑의인의 가슴을 정확히 겨누었다.
그러던 이창란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흔들며 이번에는 심장을 겨누었던? 손을 조금 옆으로 옮기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순간!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흑의인의 왼쪽 팔이 축 늘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창란의 강한 건원지풍은 흑의인의 심장을 노려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변경시켜 왼쪽 팔을 꺾어 놓는 것
으로 일격이 끝났다.
그러나 흑의인은 굴하지 않고 더구나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아직 성한 오른쪽 손으로 강한 장풍을 일으
키며 이창란을 덮치는 것이었다.
<악종이군!>
생각하며 이창란은? 크게 코웃음을 터뜨렀다.? 그리고는 강한 건원지의? 일지풍을 날리는? 소리가 씽! 하고
나는가? 했는데 흑의인이 메고 있던 북이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삼장 밖으로 떨어지는 것과 함께 어느 사
이에 흑의인의 두곳 혈도를 짚어버리는 이창란이었다.
실로 눈깜짝할 사이도 긴 것같은 느낌이 드는 찰나적인 시각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로 해서 이제 남은 사람은 주약란과 싸우고 있는 철라법왕 한 사람밖에 없었다.
철라법왕은 주약란의 느릿하고도 신랄한 공격에? 거의 기운이 쇠퇴해서 변변히 공격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다 스물네 명의 산송장같은?? 조수가 깨끗이 쓰러지고 징과? 북을 두드리던 두 명의? 흑의인 동료도?
용두지팡이와 건원지에 사로 잡혀 북과 징소리도? 울리지 않자 맥이 풀릴대로 풀렸다. 그런데다? 여유를 두
지 않고? 공격하는 주약란의 공격에 들고 있던 장검마저 놓치게 되고서는 더 싸울 기력도 없었다.
죽었던 할아버지가 다시 살아오고 대국사가 집채만한 금덩이를 준대도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우선 삼십육
계해서 살고 보자고 주위를 급히 휘둘러 본 철라법왕은 죽을 힘을 다해 땅을 박차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아나는 철라법왕의?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두어 번 땅을? 구르고? 일어났다고 했을 때는 이미 수
월산장의 벽돌 담을 넘고?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을 때였다.? 이때 용두지팡이를 땅에다 꽝! 꽂으
면서 이창란이 말했다.
[주소저. 이 늙은이가 잡아 오겠소.]
하고는 숨을 돌려쉬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두세요. 도망가도록 버려두는 것이 좋아요.]
[그럼 나중에 화근이 되지 않겠소? 깨끗이 없애버려야지......]
[관계 없어요. 그? 자가 죽었다고 해서 천축국의 대국사의 망념(妄念)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두 파로 나누어져 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지......]
[그러면 다른 파를 찾아가 구원을 청해 또 올 거에요.]
하고는 곧 다시 말했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과 징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을 희미하게 만드는지 그것부터 알아 내야 하는 것
이에요.]
하는 것을 양몽환이 곧 받아 이었다.
[옳은 말이오. 만일 그것을? 모르고 지난다면 이 중원 땅의 인물이? 모두 그들의 조수가 될 것이오.]
[그래요. 그럼 사로잡은 흑의인을 대청으로 데리고 오세요.]
하고는 하림을 이끌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창란은? 북과 징을 주워 들고 들어가고? 양몽환은
흑의인을 끌고 대청으로 들어갔다.
흑의인을 대청까지 끌어다 놓은 양몽환은? 곧 되돌아 나갔다가 잠시 후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는
양몽환의 품에는 한 사람의 장정이 안기워져 있었다.
등개우였다. 양몽환에 의해 혈도를 짚힌 등개우는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등개우를 한 옆에 눕혀 놓은 양몽환은 사로잡혀 온 흑의인을 바라보고는 주소저를 불렀다.
이때 흑의인은 짚었던 혈도를 풀어 주었는지 단정히 앉아 있기는 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히멀건 동공이었다.
[주소저. 무슨 내막이라도 알아냈습니까?]
흑의인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들었느냐는 물음에 주약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 것도 못들었어요.]
하는데 옆에서 하림이 거들었다.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모양이에요.]
그러자 주약란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러나 이창란은 흑의인이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는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쓴 맛을 좀 보여주면 입을 열거요.]
[그럼 그렇게 해보세요.]
즉각 응답하는 주약란의 말에 이창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흑의인에게로 다가갔다.
[이놈. 너의 천축국에는 피를 내부로 모이게 하는 수법이 있지?]
하고 물었다.
그러나 흑의인은 이창란을 쳐다보며 눈만 멀뚱거릴 뿐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약간 기분이 상한 이창란은 흑의인의? 가슴 부위에 있는 세곳의 혈도를 짚으며 등심을 후려 갈겼다.
그러자 흑의인은 입을 씰룩거리며 우...... 와......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마와 얼굴 그리고 목덜미에서는 땀방울이 비오듯 쏟아져 흐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끝내 아무 말
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창란은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주약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참기 어려운 고통일텐데 말을 하지 않소.]
[그렇다면 정말 우리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주약란은 곧 말을 이었다.
[이 북과 징의 비밀은 끝내 알 수 없겠군요......]
하며 가볍게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이때 이창란은 괴로워할 뿐 말을 못하는 흑의인의 막힌 혈도를 풀어주며 주약란에게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놈은 아무? 소용도 없소. 처치해 버리고 철라법왕이라는 놈을 잡아야겠소.]
하자 주약란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구원병이 없는 한, 빠른 시일에 다시 오지는 못할거에요. 그리고 그 자가 다시 나타났다면? 만반
의 준비를 갖추고 나타날 거에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저로서는 이 흑의인을 상대로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같아요.]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렇다고 우리 중원의 말을 가르칠 수도 없고......]
[혹시 그의 태도와 행동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는 곧이어 양몽환에게 말했다.
[그들이 치던 북과 징소리를 기억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는 기억합니다.]
[그러면 능히 칠 수 있겠군요.]
하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창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노선배님께서 한 번 들어 보세요.]
북을 집어 든 주약란은 둥, 둥, 둥 세 번을 치고는 이창란을 바라보았다. 어떠냐는 뜻이다.
[조금 비슷한 것같소.]
그러자 주약란은 양몽환에게 등개우의 혈도를 풀어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의 행동을 보면 잘 알거에요.]
양몽환은 재빨리 등개우의 짚은 혈도를 모두 풀어 주었다.
그러나 깊은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 등개우는 두 눈을 꼭 감고 뜨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다시 양몽환을 불렀다.
[양상공. 제가 북을 치면 여기에 맞추어 징을 두들겨 보세요.]
하고는 둥, 둥, 북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에 양몽환도 그 북 소리에 맞추어 기억나는? 대로 징을 두
들기기 시작했다.
먼저 흑의인이 두들기던 북소리와 징소리를 더듬으면서 조화를 이루듯 북과 징을 번갈아 치며 그때까지 눈
을 뜨지 않는 등개우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주시하고 있었다.
한편 주약란과 양몽환이 번갈아 두들기는? 북소리와 징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창란은 고개를 갸웃거
렸다. 흑의인이 치던 때와 거의 비슷한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어딘가 조금 부족한 것같았고 조금 더 가세히
들으면 흑의인이 치던 북소리와 징소리는 아닌 것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가 비슷하다면 응당 반응을 일으켜
야 할 등개우도 여전히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것이 북소리와 징소리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같았다.
그렇게 얼마 동안 열심히 북과 징을 두들겼지만 등개우에게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북을 두드리던 주약란은 북을 놓으며 가볍게 한숨을 토했다.
[아무래도 틀린 것같군요......]
하는 말에 이창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거의 비슷한 소리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부족한 것같소.]
[그러면......이렇게 해보죠! 저 흑의인을 완전히? 혈도를 풀어주고 북과 징을 동시에 치게 해보세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흑의인의 혈도를 다 풀어 주고 북과 징을 건네어 주었다.
그리고 두들기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자? 흑의인은 한참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이며 북과 징을 번갈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등개우가 몸을? 꿈틀거리며 눈을 뜨려는지 아니면 정신이? 드는지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주약란은 음성을 낮추며 말했다.
[노선배님께서는 등개우를 조심히? 보세요. 그리고 양상공은 징을 치는? 법을 알아 두세요. 저는 북치는 법
을 알아 두겠어요.]
하고는 다시 북치는 것을 응시하고 있다가 이창란에게 북과 징을 멈추도록 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창란이 손을 흔들어 치지 말라는 시늉에 흑의인은 북과 징에서 손을 떼었다.
이때 등개우는 거의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다 갑자기 북소리와 징소리가 멈추는 바람게 일어나지도 앉지
도 못하고 그냥 엉거주춤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등개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주약란은 양몽환에게
말했다.
[양상공. 다시 칠 수 있겠어요?]
[예. 그런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런지......]
하는데 이창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군......]
[뭐가요?]
[저 북소리와 징소리를 아무리 들어도? 우리들은 영향을 받지 않는데 유독 등개우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소?]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주약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요...... 저의 생각같아서는 등개우가 먼저? 다른 수법에 의해 상처를 입으므로써 북소리와 징소리에 민
감하게 조종되도록 되지 않았나 해요.]
그러는 동안 긴 밤도 천천히 밝아 창문이 훤히 밝아오고 있었다.
이때 주약란은 켜 놓았던 촛불을 불어 끄며 창문을 열다 말고 낮은 음성으로 외쳤다.
[누가 오는군요. 나가 보세요.]
하는 말에 양몽환이 마악 문을 열고 나가자 마당에 들어서는 네 명의 장정이 주먹을 쥐고 흔들며
일읍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로 이창란의 부하인 검북의 사형제였다.
양몽환 역시 주먹을 마주 쥐고 흔들며 반례했다.
[지금 돌아오시오? 장인 어론께서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러자 검북사의 중에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저희들은 수상한 사람의 뒤를 쫓느라고 그만 지체되었습니다.]
하는 동안 뒤따라 나온 이창란은 위엄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수고했다. 어서 물러가 쉬어라.]
검북사의는 일제히 허리를 굽혀 대답하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그렇게 물러가는 검북사의의 걸음걸이나 그들의? 얼굴에서 지치고 피로한 기색을? 발견한 양몽환은 그둘이
어느 고수를 만나 치열한 싸움을 벌리고 돌아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역시 검북사의가 물러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는 이창란에게 천천히 몸을? 돌린 양몽환은 공손히 입을
열었다.
[검북사의들은 정말 장인 어른께 충성을 다하는군요.]
그러자 이창란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사실이 그렇네. 이 늙은이에게는 고마운? 사람들이지. 이 늙은이를 따르지 말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도 막무가내로 이곳까지 나를 따라왔네그려.]
하며 측은해 하는 것이었다.
이때 역시 하림과 함께 마당으로 나온 주약란은 이창란에게 조용히 말했다.
[노선배님께서도 조급 쉬셔야죠. 흑의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번갈아 지키고 조금 쉬도록 하십시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먼저 들어가시오. 이 늙은이가 지키겠소.]
하고 이창란은 대청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양몽환이 따라 들어가자 주약란은 하림을 이끌고 자기의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납치사건
흑의인을 이창란에게 맡긴 양몽환은 등개우를 안고 자기의 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침대에 편히 눕히고 그 옆에 앉아 눈을 감고 운기 조식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뜬 양몽환은 잔뜩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앞에는 환하게 웃는 조소접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조소저!]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던 조소접이 지금 돌아와 양몽환 앞에서 있는 것이었다.
[방해가 되지 않았나요?]
하며 조식하고 있는 양몽환을 불러 미안해 하다 말고 침대에 누워있는 등개우를 보고는 눈을 크게 뜨는 것
이었다.
[등가보의 등소보주가 아니에요?]
[그렇습니다만 이상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이상한 상처라니요?]
하며 의아해 하는 조소접에게 양몽환은 어제 아침부터 수월산장에서 벌어진 일을 되도록 자세하게 말해 주
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자못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래서 주소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철라법왕이라는 자의 무공이 어느 정도에요?]
[검법도 괴이하지만 무공도 한 것같습니다. 그래서 주소저도 퍽 다루기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럼 언니한테 가보겠어요.]
하고 돌아서려는 조소접을 양몽환은 다시 불러 세웠다.
[조소저 혼자 오셨습니까?]
[예, 혼자 왔어요. 언니가 허락하기 전에는 제 마음대로 시녀들을 거느리고 올 수는 없어요.]
[그럼 주소저에게 안내해드리죠.]
[고맙습니다.]
양몽환과 조소접은 어깨를 나란히 해서 주약란의 거실로 걸어가며 양몽환은 입을 열었다.
[도옥이 천축국의 강적을 끌어들여 우리와 맞서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악한 인간이군요.]
[그가 이 수 백 리까지 고수들을 보낼 때는 어떤 조건이 있을거에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 그것은 도옥이 천축국의 대국사에게 주소저의 인물화를 보낸 것으로 조건을 제시한 것같습니다.]
[언니의 인물화요?]
[그렇습니다. 도옥이 어느 화공을 찾아 주소저의 인물을 그리게 해서 천축국의 대국사에게 보낸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그 댓가로 이곳까지 부하들을 보낸 것같습니다.]
[그럼 도옥이 대국사라는 자에게 언니의 인물화를 보냈단 말이죠?]
[예, 그렇습니다.]
[그럼 도옥은 천축국과 우리들을 싸우게 하고는 그 중간에서 이득을 보자는 계책이군요. 그림 한 장으로 대
국사를 속이고 말이에요.]
하면서 조소접은 분해했다.
이윽고 주약란의 방문 앞에까지 온 양몽환은 조소접에게 문을 가리키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럼 들어가 보시오.]
하고는 되돌아 섰다.
이때 주약란은 북과 징을 앞에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다가 들어오는 조소접을 반가히 맞아 주었다.
[언니!]
[기다렸는데...... 어서 와요.]
하고는 곧이어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접매가 있었으면 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전국 각지에 있는 접매의 비밀연락소를 없애지는 않았겠죠?]
[몇 곳만 남기고는 철수시켰는데...... 무슨 일이 생겼어요?]
[그럼 다행이야. 몇 곳은 그냥 놔둬요.]
하고는 다시 덧붙였다.
[지금 우리는 사람이 많이 부족해요. 될 수 있는대로 해산시키지 말고 모이도록 해야겠어요.]
그러자 조소접은 약간 근심 섞인 표정을 지으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좀 나갔다 오겠어요.]
[왜? 어디로 가려고?]
[두 곳의 연락처에 아직 사람이 남아 있는가 보고 오겠어요. 몇명만 남아? 있으면 그들에게 먼저 떠나간 사
람들을 데려 오도록 하겠어요.]
[그래? 그럼 속히 다녀오도록 해요.]
하자 조소접은 즉시 되돌아 나갔다.
[오일(五日)안으로 돌아오겠어요.]
하고는 훌쩍 몸을 날려 이장 밖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조소접이 방에서 나가자 주약란은 다시 북과 징을 마주하고 앉아 생각에 잠기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한편 이창란과 네 명의 부하는 주야로 수월산장의 경계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넓은 수월산장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지만 불철주야로 외적을 방비하기에? 심신을 아끼지 않고
또 흑의인의 감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수월산장은 평온한 하루가 지나고 다시 하루가 지났다.
그래서 이틀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외면으로는 극히 평온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것같지만? 양몽환이나 주약란은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때도 대문 밖으로? 신경을 쏟고 있는 양몽환은 며칠만에 하림의? 방문을 받았
다. 실제로는 부부간이지만 끼니때 이외에는 별로 상면을 하지 않는 양몽환과 하림은 자연히 화제도 자신들
의 주위에서 떠난 이야기를 하기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양몽환은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하림을 반갑게
맞으며 주약란의 동정부터 물었다.
[주소저는 무엇하고 있소?]
[지금도 그 북과 징을 두들겨 보며 생각에 잠겨 있어요.]
하는 대답에 양몽환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곧 입을 열었다.
[육보 화상은?]
오랜만에 생각나는 육보 화상이었다. 원래 육보 화상은 고심대사가? 데리고 다니던 어린 소사미였다. 그 육
보 화상이 고심대사의 죽음으로 양몽환에게 이끌려 등가보에까지 온 것이었다.
그랬던 육보 화상을 등개우가 다시 이곳 수월산장까지? 데려다 주고 되돌아갔다가 등개우는 천축국의 북과
징소리에 정신이 혼절해져서 이틀만에 다시 이 수월산장으로 말 잔등에 태워진 채 왔던 것이었다.
그러한 등가보의 등개우를 생각하자 곧 육보 화상이 생각나 지금 하림에게 묻는 것이었다.
[마침 육보 화상에 대해서 의논할 일도 있고...... 그래서 찾아왔어요.]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이 며칠 동안 육보 화상은 귀신에라도 홀렸는지 말도 하지 않고 또 웃지도
않고 그냥 앉아서 좌선(坐禪)만 하고 있어요. 더구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이 수월산장에 어떤 일이 일
어날는지도 모르는 양 그대로 좌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해요.]
[음......지금 어디 있소?]
[어디 있는지는 알지만 누구에게도 자기의 거처를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
[언제까지?]
[내일 오전까지만 그냥 버려두라고 하더군요.]
<이상한 일이군. 정말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닐까......>
하도 괴이한 일만 연속으로 일어난 후라 양몽환도 육보 화상의? 소식을 들으며 머리를 갸웃했으나 더 생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내일 만나도록 하겠소. 하도 이상한 일만 일어나서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려. 그건 그렇고 요새 당신이
너무 고생을 하는 것같소.]
[응당히 제가 할 일인데요 뭐......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어요.]
집안의 청소로부터 여러 사람의 식사에까지 소매를 걷어붙인 하림은 사실 심신이 고달펐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양몽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같은 하림이기도 했다.
[고맙소. 여하간 수고를 너무 끼쳐 미안한 생각이 드오. 어서 풍파가? 지나가서 평온한 날이 왔으면 좋겠소.
그러면 당신도 고생이 덜할 거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염려마세요.]
[고맙소...... 이제 주소저가 북과 징의 비결만 알아내면 곧 평온해 질거요.]
하는 위로의 말에 하림은 생긋이 웃으며 방을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하림의 뒷모습애서? 양몽환은 예전의 하림이 아닌 성숙한? 한 사람의 여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가늘게 한숨을 토했다.
하림이 나가고 얼마 후, 양몽환도 밖으로 나갔다.
깨끗이 청소된 넓은 마당은 여러가지의 꽃들이 바람에 향기를 은은히 풍기며 흔들리고 있었다.
천천히 마당을 지나 대청으로 걸음을 옮기던 양몽환은 무슨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고 느꼈
을 바로 그때 쉬익 소리를 내며 뒤에서부터 날아오는 암기의 날카로운 소리를 들었다.
순간, 허리를 굽히며 옆으로 피하는 양몽환의 민첩한 행동과 쇳 소리를 내며 양몽환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
나간 암기가 벽에 부딪치며 하얀 가루를 날리는 순간과는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이때 벽에 부딪치며 터져버린 암기에서는? 하얀 가루가 터져 날고 곧이어? 목구멍이 매캐할 정도로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즉시 진기를 운집하고 이상한 냄새를 맡지? 않도록 몸을 보호한 양몽환은 그 향기가? 미혼약(迷魂藥)이라는
독약임을 알아챘다.
이 독가루의 냄새를 맡기만 하면 코를 통해 내장으로 들어가? 정신을 잃게 하고 나중에는 혼절시키는 일종
의 마취제였다.
이와 같은 독가루 냄새를 조금 맡은 양몽환은 곧 진기를 운집해서

 이미 마셔버린 독가루를 뱉아내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러던 양몽환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 미혼약을 뿌린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행동을 하려는가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가지 꾀를 생각했다.
즉시 미혼약 가루에 혼절한 사람처럼 몸을 비틀비틀 하다가 주저앉듯 쓰러져서

정말 혼절해 쓰러진 사람처럼 일부러 행동했다.
그러자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질풍같이 달려와 흡사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어가듯

쓰러진 양몽환을 번쩍 안고는 그대로 벽돌담을 휘익 넘어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수월산장에서 양몽환을 납치한 괴한은 양몽환을 품에 안은 채 이장(二丈)정도를

달려 낮으막한 산어귀에서 걸음을 멈추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아까 마셨던 독가루를 이미 모두 뱉아버린 후라 정신은 말짱했다.

그래서 자기를 안고 달리는 괴한의 혈도를 짚어 사로잡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괴한이 어떤 일을 하는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혼절한 체하고 괴한의 동정만을

살피는 것이었다.
산 어귀에까지 다다른 괴한은 곧 칠팔 명의 동료의 영접을 받는 듯했다.
살그머니 눈을 반쯤 뜨고 소리나는 곳으로 눈을 돌리자 숲 속에서부터

칠팔 명의 괴한들이 뛰어나오고 있었다.
양몽환을 안고 있는 괴한에게 다가온 칠팔 명의 괴한 중에서 괴수인 듯한 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공했군!]
그러자 양몽환을 안고 있는 괴한은 만족한 웃음을 터뜨렸다.
[흐...... 흐......다행히 명령을 어기지 않게 되었소.]
[장형(張兄)이 이와같은 큰 공을 세운데는 진심으로 축하하오. 자, 그럼 속히 갑시다.]
하는 말을 들으며 양몽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바로는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 사람이 따로 있는 것같았다.

<......어디 두고 구경이나 해야지......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끝까지 가보자...>

생각하면서 진기를 모으기에 열심이었다.
이때 양몽환을 사로잡게 된 괴한들은 큰 공이라도 세운 듯 의기양양해서 양몽환을

에워싸듯 하고는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들의 행동을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양몽환은 귀를 바싹 올려 세우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편,
괴한에게 사로잡힌 양몽환이 괴한의 품에 안겨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을 때

이창란은 대청 안에서 운기 조식하고 있었다.
밖에서 약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긴 했으나 별일이 아니겠지 하고는 천천히 운기 조식을 끝낸 다음

밖으로 나왔다.
이창란이 천천히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상한 냄새도 거의 사라지고 약간 이상한 냄새군......

할 정도로 그 냄새는 미미했다.
그러나 강호에 경험이 많은 이창란은 즉각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즉시 수월산장을 구석구석 뛰어다니면서 무슨 이상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는 반면 수월산장에

기거하고 있는 사람들의 유무도 살폈다.
그리고 맨 나중에 양몽환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소리높여 양몽환을 불렀다.
이때 역시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이창란으로부터 양몽환의 실종을? 전해 들은 하림은

곧장 주약란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하림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주약란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급한 중에서도 이창란에게 일읍한 주약란은 근심이 가득 찬 얼굴을 들었다.
[수월산장을 샅샅이 찾아 보셨어요?]
[찾아보았지만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구려.]
[참 이상하군요. 이곳에서 싸우기라도 했다면 우리들이 이토록 모르고 있을리도 없는데......

그렇다면 적의 암수에 걸려 사로잡혔을까요?]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늙은이가 소홀했소. 벽에 무슨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를

듣긴 하였소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나가지도 않았소.

그런데 만일 그때 사로잡혀 갔다면 이 늙은이의 잘못이오.]
[그럼 사로잡혀 간 것이 틀림없어요.]
[그런 것같소......음......만일 사로잡혀 갔다면 이 강호에서 그를 그냥 살려 주지는 않을거요.]
[무슨 흔적이라도 없어요? 찾아갈만한 곳이라도?]
[글쎄......아무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를 가서? 찾는단 말이오!

혹시 주소저는 짐작이라도? 가는 곳이 있소? 이 넓은 중원땅을 모두 뒤질 수도 없고......]
[저 역시 없어요......혹시 조소저라도 온다면 찾을 수 있을 거에요.]
하고는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노선배님은 이 수월산장을 잘 지키세요. 저는 좀 나갔다 오겠어요.]
[어디를 가려는지 함께 가지 않아도 되겠소?]
[아니, 저 혼자 갔다 오겠어요. 그 면이 더 좋을 것같아요.]
하고는 땅을 박차며 가볍게 몸을 날히 수월산장의 담을 넘어 곧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주약란의 자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창란은 천천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하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환아가 사로잡혀 갔다면 그 천축국의 승려들과 연관이 있는 것같구나......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사로잡은 저 흑의인을 앞장 세워 찾으면 되겠는데......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애석하군...]
[그러면 혹시 글이라도 알지 않을까요?]
[안다고 해도 천축문자(天竺文字)겠지...... 천축 글자는 우리들이 모르고......]
하고 이창란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려 쉬었다.
한편, 괴한의 품에 안겨 얼마를 달려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까지 와서

풀밭에 내던져진 양몽환은 아무렇게나 던지는 바람에 몸이 아팠지만 얼굴을 찌푸리거나

눈을 뜰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부러 혼절한 척 가장하면서 신경만 날카롭게 했다.
그때 괴한 중의 한 명이 하얀 알약을 하나 꺼내 양몽환의 입에 쑤셔넣듯 먹이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간신히 받아 먹는 척하면서 넣어주는 알약을 혀밑으로 밀어넣고 삼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괴한 중의 한 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장형! 어찌된 일이오?

그 해약(解約)은 약효가 빠른데 아직 저 모양이니 말이오.]
하는 말에 양몽환은 그 알약의 효능이 해독약임을 눈치채고는 마취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그제야 장형이라고 불리운(실은 양몽환을 사로잡아온 괴한이지만) 괴한은

큰 소리로 웃으며 소리쳤다.
[보시오! 이제 깨어나지 않소?]
소리치는 괴한을 바라보던 양몽환은 자기를 에워싸듯 서 있는 십여 명의 괴한들을 볼 수 있었다.
이때 양몽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는 손을 써서 일거에 쓰러뜨릴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그러나 더 두고 이들의 정체를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에 정면에 서 있던 괴한이 손가락으로 양몽환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 해약은 혼절했던 정신을 되찾기는 하지만 사지(四肢)는? 무력하게 하는 것이오.

그런 만큼 항거할 생각은 갖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하는 것이 미리 엄포를 놓아 쓸데없는 행동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양몽환은 알약을 먹지 않기를 천만번 잘했다고 쾌재를 불렀다.

아직 혀 밑에? 있는 알약은 녹지도 않은채 그대로 있었다.
<만일 알약을 먹었다면 저놈들이 끄는대로 움직일 뻔했군...>
생각하며 일동을 노려보고는 그대로 지그시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괴한이 더 엄포를 놓는 것이었다.
[때를 아는 자만이 총명한 자라는 것을 안다면 피육(皮肉)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시오.]
그러나 양몽환은 못들은 척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먼저 말했던 괴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양대협은 이 강호에서 덕망이 높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요.

그러한 당신이 무명 소졸에 지나지 않는 이 장모(張某)에게 수모를 받았다면

무술계에 부끄러운 일일 것이오.]
그제야 양몽환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 야단이오? 할 말이 있거든 어서 하시오.]
[흐...... 흐......과연 양대협은 총명한 인물이오. 한 마디 말만해도 다 알아듣고...

우리 형제들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당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오.

그런 만큼 우리들이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한다면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오.]
하며 달래기도 하고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양몽환은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들을 쏘아볼 뿐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양몽환의 차가운 눈초리와 위엄있는 태도에 위압되었는지

더 말하지 않고 그대로 걸음을 옮겨놓는 것이었다.
양몽환을 가운데에 세우고 호위하듯 앞뒤로 서서 걸어가던 괴한들 중에 한 괴한이

검은 헝겊으로 양몽환의 두 눈을 가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이미 그들의 끝까지 따라가 보기로 결심한 이상 항거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대로 버려 두었다.
이와같이 양몽환의 두 눈을 가린 괴한은 양몽환의 손목을 잡고 끌었다.
그리고 수 십장(數十丈)을 걸어가던 그들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이번에는 노끈으로 양몽환의 두 손을 묶고는 끈의 한 끝을 잡아 끄는 것이었다.

그래서 양몽환은 앞에서 노끈을 잡아당기는 사람의 인도로 넘
어지지 않고 그들의 목적지까지 올 수 있었다.
[다왔어.]
앞선 괴한의 소리에 맞추어 걸음을 멈춘 괴한들은 그제야 양몽환의 두 눈을 가렸던

헝겊을 풀어 주고는 캄캄한 방속으로 밀어넣는 것이었다.
이때에야 양몽환은 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하며 혀 밑에 감추어 두었던

 알약을 뱉아버릴 수 있었다.
어디를 얼마나 왔는지 그리고 이곳은 무슨 방인지 모르지만 캄캄한 방에 햇빛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지하실이 아니면 동굴속같았다.

그리고 다시 얼마 동안 두리번거리는 양몽환의 눈에는 한쪽? 구석에 희미한 촛불이 있고

그 촛불 옆에는 눈썹이 굵은 화상(和尙)? 하나가 흑의로 전신을 감은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때 양몽환은 자기의 두 손을 함께 묶은 노끈을 내려다 보고 약간 마음을 놓았다.

그 노끈은 조금 힘만 주면 쉽게 끊을 수 있는 노끈이었기 때문이었다.
넓은 동굴 속 같은 밀실에는 하나의 나무 침대와 촛불,

그리고 무엇을 하는 화상인지는 모르지만 잠자코 앉아 있는 모습이 캄캄한 밀실과

이상한 조화를 이루어 음침하고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 촛불 옆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던 화상은 양몽환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음성을 터뜨렸다.
[당신이 바로 이 중원에서 이름을 떨치는 양몽환이오?]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도 지지않고 화상을 노려 보며 차갑게 대답했다.
[그렇소!]
[그럼 당신은 나를 알겠소?]
그제야 양몽환은 화상을 자세히 노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 본 얼굴은 아니었다.

그리고 더욱 화상의 말이 느릿하고 이상한 발음이 아무래도 이 중원 땅의 인물같지는 않았다.

천축국에서 온 화상같았다.
[모르겠소만 이 중원 땅의 인물은 아닌 것같소.]
그러자 화상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그럼 어디서 온 것같소?]
[천축국에서 오지 않았소?]
[핫......하......맞았소. 그러면 철라법왕을 만나 보았소?]
[그렇소. 만나 보았소.]
[그 철라법왕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갔는데 어디 갔는지는 모르오.]
그러자 흑의인은 가늘게 한숨을 토하며 혼자 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술법이나 재간은 있지만 지모가 없어......패한 것이 당연하지.]
하는 말에 양몽환은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럼 당신은 철라법왕보다 더 지모가 있소?]
[암, 본좌(本座)는 지(智), 용(勇), 그리고 술(術) 이 세가지를 다 겸비하고 있소.]
<흥! 제법 큰 소리를 치는군......>
하는데 흑의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주약란이란 사람을 알고 있소?]

<흥...... 이 화상도 역시 주소저를 찾는군......

어디 무슨 이야기나 하는지 슬슬 들어봐야겠군......>

[알고 있소.]
[그럼 됐소. 우리 심심한데 주소저의 이야기나 하는 것이 어떻소?]
[주소저는 아직 처녀의 몸인데 무슨 이야기를 한단 말이오?]
[흐......흐......당신은 이 본좌가 천축국에서 온 것을 안다면 그런 말은 묻지 않을 거요.]
[그럼 당신도 철라법왕처럼 명령을 받고 왔소?]
물으면서 양몽환은 철라법왕이 하던 말을 생각했다.

즉 철라법왕 이외에도 다른 법왕이 한 명 더 와서 주약란을 찾는다고.

그래서 그 다른 법왕이 바로 이 흑의의 화상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흑의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소. 이 본좌도 명을 받고 주소저를 우리 천축국으로 데려가려고 왔소.]
[흥! 그러나 당신의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요.]
[핫......하......그건 두고 봐야 알지.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합시다.]
하고는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데리고 나가라!]
그 순간, 미리 문 밖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두 명의 흑의 장정이 달려와 양몽환을

양쪽에 한 팔씩 끼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침착한 태도로 그들이 하는대로 순순히 따랐다.
다른 밀실로 끌고 간 괴한은 나무 기둥에다 양몽환을 붙들어 매어

꼼짝 못하게 해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간 다음 양몽환은 찬찬히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밀실에는 모두 네 개의 굵은 기둥이 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기둥에는 거의 옷이 비슷한 세 명의 장정이

양몽환과 같이 기둥에 묶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양몽환은 세 명의 선객(先客)을 둘러 보았다.

두 사람은 지그시 눈을 감고 양몽환에 대해서는 아랑곳도 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만이 눈을 크게 뜨고 양몽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음성을 낮추어 말을 걸었다.
[당신은 말을 하오?]
그러자 그 장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만 당신도 불잡혀 왔소?]
하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그들의 옷차림이나 얼굴 생김으로 보아 무공과는 거리가 먼 듯싶은 사람들같았다.
[그렇소. 그런데 당신도 무예인이오?]
그러자 장정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토했다.
[내가 무공을 쌓았더라면 이렇게 잡혀 오지는 않았을 거요.]
하고 말하는 장정을 자세히 바라보던 양몽환은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먼저 기둥에 묶여져 있는 세 명의 장정이 어딘가?

모르게 양몽환 자기와 얼굴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키도 그렇고 얼굴 모습도 자기와 굉장히 닮은 것같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세 명의 장정이 모두 나와 얼굴이 비슷하군......? 그렇다면 화상들이

나인 줄 알고 각처에서 잡아 온 사람들이 아닐까......음......어쨌든 이들을 구해 줘야겠군......>

하고 결심하며 양몽환은 계속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 잡혀온지 며칠이나 되었소?]
그러자 지금까지 양몽환과 대화를 나누던? 장정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다른? 기둥에 묶여져 있는 사람을 턱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삼일이오. 그러나 저 두 사람은 더 오래 되었소.

이 삼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먹지 못해 말할 기운도 없소.]
그제야 양몽환은 말하기를 귀찮아 하는 장정이 왜 그러한 표정을 지었으며

다른 기둥에 묶여진 두 명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이유도 알만했다.
[알겠소. 참고 기다리시오. 반드시 여러분들을 구해드리겠소.]
그러나 장정은 믿기지 않는 듯 놀라운 표정도 짓지 않는 것이었다.
[당신이 우리들을 구할 수 있다면 왜 이곳까지 잡혀왔소?]
하는 물음에 양몽환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서 알아듣게 할 것인가.?

말을 해서 그들이 알아듣게 하는 것보다 그들을 속히 구해 주어서

스스로 이해하게끔 하는 편이 더 빠를 듯했다. 양몽환은 더 말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두 눈을 감고 운기 조식하고 진기를 온? 몸에 창통시켰다.

그것만이 지금 취할 수 있는 양몽환의 행동이었다.
잠시 침묵이 지나간 다음, 밀실의 문이 열리며 등에 장검을 멘 장정이 등불을 들고

들어오고 그 뒤를 흑의의 화상이 따라 들어왔다.
먼저 등불을 들고 들어 온 장정은 등불을 들어 양몽환의 얼굴을 비추었다.
[당신의 정신은 어떠하오?]
[매우 좋소.]
그러자 장정은 뒤에 서 있는 화상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신은 맑다고 합니다.]
흑의 화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웃었다.
[당신이 나를 보았소?]
좀 전에 밀실에서 대면했던 화상이라는 것을 그가 들어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즉시 대답했다.
[보았소.]
[흐......흐......양대협으로 말하면 무술계에서 덕망이 높아 모두 존경하고? 있소.

그래서 우리들은 양대협과 같은 사람들을 몇 명 더 만들어 일반 사람들이

양대협의 진가(眞假)를 모르게 하겠소.]

<음......그래서 나와 비슷한 장정들을 잡아 놓았군...... 악독한 놈들......>

하면서도 양몽환은 빙긋이 웃었다.
[생각은 좋소만 그들이 이 양모인과 꼭 닮지 않았는데 어떻게 똑같이 만들겠다는 말이오?]
[그건 그렇소. 그들이 당신과 똑같지는 않지만 조금 모습을 고치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것이오.]
[흥! 그렇게 해서 그들이 이 양모인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당신들에게 어떤 이득이 있소?]
[흐......흐......이득? 많소. 지금은 당신 양몽환이 강호에서 존경을 받고 있소. 그러나 당신을 닮은 자들이 대역
무도한 일을 몇 가지만 저지른다면 무예계 인사들이 공분(共奮)을 일으켜 풍파가 일어날 것이오.]
<이 중놈은 교활하고 악독하구나......>
했으나 큰 소리로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나쁜 짓을 해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오.]
[핫......하......일시적으로 속이기만 해도 우리는 대성공을 거두는 셈이오.]
그 순간, 양몽환은 어금니에 힘을 주며 진기를 일으켜 기등에 묶어 놓은 끈과 손을 묶은?

끈을 끊어 버리며 어깨를 폈다.
그러나 흑의 화상이나 장정은 놀라지도 않고? 태연히 서 있는 것이었다.

으례히 끈을? 끊으리라고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이때 만일 그들이 공격해오면 일격에 쓰러뜨리려고 했으나 그들이 달려들지 않자

양몽환도 손을 쓰지 않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당신들의 그 미혼약은 효능이 대단하던데 역시 천축국에서 가져온 것이오?]
그러자 흑의의 화상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것은 이곳 중원의 무술인들이 만든 약이오. 우리 천축국과는 아무 관계도 없소.]
[흥! 그러면 당신들은 우리 중원 땅의 고수들을 몇 명이나 해쳤소?]
[상당한 숫자요. 그건 왜 묻소?]
[알겠소. 그러나 당신들이 우리 중원의 고수들을? 해치고 이용하고 있으나 그것은 외면적인 일이오.?

그들은 모두 이 양모인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아시오?]
[천만에. 그럴리 없소.]
[사실이오. 한 번 실례를 말하겠소. 들어보시겠소?]
[좋소. 어디 들어 봅시다.]
[당신들은 우리 중원 사람들이 그 해독약인지 뭔지,

그 약으로 적을 마취시켜? 저항할 수 없게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오?]
[그렇소. 그렇게 말해서 우리가 썼소.]
[그들은 당신을 속인 것이오. 그 약은 그런 효능이 있는 약이 아니오.]
[뭐라구? 거짓말 마시오. 이 본좌는 당신의 말을 믿을 수 없소!]
[믿을 수 없다면 이 양모인이 자세히 말하겠소.]
하는데 등불을 들고 있던 장정이 벌컥 화를 냈다.
[당신은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이간을 시키오?]
그러자 양몽환도 언성을 높였다.
[뭣이? 너는 무슨 마음으로 화상들의 앞잡이가 되어?

우리 중원의 무림 동료들을 해치려고 하는가? 용서받지 못할 놈같으니라구.]
하는 말에 장정은 분통이 터지는지 등불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흑의 화상이 급히 장정을 제지하고 막아서며 양몽환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양몽환! 그대는 이미 막다른 곳에 다다랐소.

큰 소리치지 말고 얌전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러나 양몽환은 냉소를 터뜨렸다.
[흥! 그럼 이 양모의 솜씨를 한 번 보여 드릴까!]
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양몽환은 오른 손을 높이 들어 등불을 들고 있는 장정을 후려 갈겼다.
순간, 정통으로 어깨를 얻어 맞은 장정은 등불을 떨어뜨리며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희미하게 비추던 한 줄기의 등불마저 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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