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38. 절세가인

오늘의 쉼터 2014. 10. 26. 22:37

38. 절세가인

 

 

한편,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조소접이 번개같이 돌아가는 민첩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양몽환은 또 한 번 혀를 내두르며 무시무시하고도 날카로운 그녀의 독수(毒手)에

감탄을 연발하며 천천히 모습을 나타냈다.
[조소저, 실로 놀라운 재간이오. 이 양모인이 감탄하는 바이오.]
그러자 조소접은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내심 싫지 않은 눈치였다.
[이 수 년간 무공을 쌓지 못했지만 암기(暗器) 사용법을 한가지 터득했어요.]
[어떤 암기인가요?]
[바로 이거에요.]
하고는 바구니를 기울이며 안을 보이는 것이었다.
바구니 안에는 몇 자루의 비수가 성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이때 조소접은 죽어 쓰러진 두? 명의 장정에게서
각기 한 자루의 비수를 뽑아 묻은 피를 그들의 옷에 씻어 바구니에 집어 넣으며
양몽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양상공, 미안하지만 이 시체들을 숲 속에 밀어 넣으세요.]
하고 조소접은 도망치다 쓰러진 장정에게로 다가가 역시 두자루의 단검을 뽑아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두 명의 장정을 숲속으로 밀어버리고 돌아오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승려만큼은 살려서 내막을알아보려고 했는데 그만 죽고 말았군요.]
하고는 역시 발끝으로 시체를 밀어 잡풀 속으로 넣고는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절벽가에 다다른 조소접은 먼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양상공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요.]
[그러죠. 그런데 조소저, 조소저의 암기 수법은 실로 놀랍군요. 피할 시간도 없을 것같습니다.]
[그럼 제가 너무 독수를 썼군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더구나 지금의 일은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었죠.]
[그렇긴 해요. 그러나 저는 언니의 분부를 따를 뿐이에요.

언니는 이 증원 땅으로 물밀듯 달려오는 천축국의 승려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라는 분부였어요.

그래서 우선 악독한 수를 써서 그들을 처치하면 절로 공포심이 생겨나지 않겠어요?

그런 다음에 다시 계획을 세우자고 했어요.]
[그건 참 좋은 계획입니다. 그래서 조소저도 사정을 두지 않는군요.]
[그래요. 그런데 저의 암기 수법이 어때요?]
[보통 수법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같습니다.]
[그럴 거에요. 저는 이미 수 년간을 연구했어요.

그러나 지금 시험해 보는 것에 불과해요.

수법은 암기를 던지는 수법으로 던졌지만 여기에는 위검(衛劍)의 진기를 이용하고 있어요.?

양상공의 공력으로도 능히 이 암기를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하고 잠시 말을 끊었던 조소접은 다시 이었다.
[그러나 저는 지혜나 재간이 언니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언니를 따르지는 못할 거에요.

그래서 저는 암기 한가지만 연구해서 저대로의 무공을 남기고 싶었어요.]
[좋은 생각이오. 그러나 조소저 당신과 주소저는 재간이 똑같습니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 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는 바로 그때, 저편 길에 네 명의 흑의 장정이 나타나 얼마를 달려오다가

급히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눈을 깜박거렸다.
[양상공, 저들이 왜 급히 돌아갈까요?]
f글쎄요. 나도 수상히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조소접과 양몽환은 급히 자리를 옮겨 몸을 숨겼다. 그리고 다음 동정을 살폈다.
얼마를 기다려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 저편 길을 노려보며 조소접은 가늘게 한숨을 토했다.
[그 천축국의 대국사라는 자가? 이곳 중원 땅에 올 것같아요?]
[글쎄 ......승려들의 말을 들으면 올 것같습니다.]
[여하간 올테면 속히 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결판을 내면 속이 시원하겠어요.]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우리 쪽에서도 준비가 되었는지요?]
[아직 준비는 끝나지 않았어요.]
[주소저는 천축국의 고수들을 일거에 처치해 버리려는 계획이 아닌가요?]
[그렇긴 해요. 그러나 우리가 준비를 다 하지 못한 지금 그들이 나타난다면 사태는 달라져요.

언니의 시녀돌은 지금 천기석부에 있고 저의 화녀들만 수월산장에 와 있을 뿐이에요.

요행히 저와? 저의 화녀들이 그들을 처치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천기석부에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해요.]
[그렇군요......그런데 저의 생각으로는 천축국의 대국사라는

자의 무공이 약하지는 않은 것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조소저가 불리해진다면 그것도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공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만일 제가 패한다하더라도

언니와 양상공이 뒤에서 호응하면 상관없을 거에요.]
[옳은 말입니다.

저는 모르겠지만 주소저의 무공이라면 능히 해치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곤란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어떤 문제가 있는데요?]
[그것은 이렇습니다. 주소저는 어디까지나 서로 의논해서 대적하도록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소저가 독단으로 대적한다면 주소저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태가 위급하면 할 수 없잖아요...안 그래요? ]
[그렇습니다. 바로 그 문제입니다. 그 대국사라는 자가 조소저와 싸운다 해도

직접 나서지 않고 부하 고수들을 내세울것입니다.
그런데 조소저가 무리하게 싸우다가 해라도 입는다면 주소저의 노여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가만히 있어 봐요.]
하고 무슨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가 음성을 낮추었다.
[나타났어요.]
하는 바로 그때였다.
과연 회색 옷을 입은 두 명의 승려가 드디어 양몽환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 승려들은 등나무로 엮은 들것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 들것 위에는 역시 황색가사(黃色袈裟)를 입은 화상이 의젓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이었다.

무릎 위에 두? 손을 얹고 들것이 흔들거리는대로 몸을 흔들거리며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모양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던 조소접은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듯 말했다.
[품위가 당당한 것이 대국사같은데요.]
하고는 그들이 더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다시 주위를 휘둘러 보던 조소접은 언제 나타났는지

웃음을 담뿍 띄운 주약란이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기절하듯 놀랐다.

이때 역시 양몽환도 혀를 내둘렀다.

경신법 재간이 초인에 이른 주약란은 그들이 말하고 있는 사이에 번개같이 달려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 깜짝이야. 언니 언제 오셨죠?]
조소접은 사뿐히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주약란도 고개를 숙여 답례하며 생긋이 웃어 주었다.
[좀전에 ......별일 없었어요?]
[예,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천축국의 승려 세 명을 죽여 버렸어요.]
[그래? 잘했군요. 나도 금방 일곱 명을 처치하고 오는 길이에요.

처치할 수 있는대로 모두 처치해서 그들의 기세를 꺾도록 해야겠어요.]
[옳은 말이에요. 그런데 언니, 도대체 저쪽에선 몇 명이나 온 것같아요?]
[모르겠어.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민첩하고 또 지리를 잘 아는 것으로 보아?

중원의 어느 사람이 도우고 있는 모양이에요.]
[혹시 도옥의 부하들이 아닐까요?]
[그럴 거에요. 자기의 계획을 완수하려면 천축국의 승려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는 형면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이 천축국의 승려들과 싸우다가 지치기를 기다려 우리를 도모하겠다는

계획인지는 모르지만 그도 한가지 계산을 잘못하고 있어요.]
[그것이 어떤 계산인가요?]
[만일 도옥이 천축국의 승려들과 결탁하여 우리들을 공격한다면 모르지만

자기는 나타나지 않고 뒤에서 조종만 해서

천축국의 승려를 몇 명씩 우리와 대결하게 한다면?

우리들이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하고 말을 마치자 조소접은 황망히 손을 흔들며 말하지 말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쉬이, 어서 몸을 숨겨요. 그들이 왔어요.]
그러자 주약란은 옆에 서 있는 노송(老松)나무 위로? 몸을 날혀 숨기고 조소접과

양몽환은 바위 뒤에 몸을 찰싹 붙였다.
이때 가까이 다가온 들것의 일행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리고 들것 위에 앉아 있는 황색가사의 승려가 들것을 내려놓게 하고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네 명의 흑의 장정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명령을 내리는 듯하고는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한 황색가사의 거동을 눈여겨 보고 있던 양몽환은 가만히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저 승려는 대국사가 아닌 것같은데요.]
[어떻게 알아요?]
[그래도 명색이 대국사라면 나이도 지긋할텐데 굉장히 젊어보이잖아요.]
그러자 조소접도 고개를 들고 앞을 살펴 보았다.
과연 나이가 이제 삼십 정도의 새파란 젊은이였다.
그때 황색가사의 화상도 양몽환과 조소접이 숨어 있는 곳에서 무슨? 눈치를 챘는지

걸음을 멈추며 눈을 부라리는 것이었다.
[어떤 놈이 숨어 있느냐? 써억 나와라! ]
하는 소리에 양몽환은 섬?하며 목을 움츠렸다.

그러자 조소접은 양몽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발각된 모양이죠.? 당신이 나가 보세요.]
하는 말에 양몽환은 진기를 돋우며 바위 옆으로 쭈욱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는 주먹을 쥐고 흔들며 먼저 일읍했다.
[대사님 ! ]
하는 바로 그 순간! 황색가사의 화상은 인사를 받지도 않고 오른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얀 물체가 줄을 그으며 양몽환에게로 번갯불처럼 날카롭게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가 !
순간, 양몽환은 몸을 둥그렇게 꼬부리며 구르듯이 옆 소나무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하얀 물체는 양몽환을 명중시키지 못하고 훨씬 뒤에 있는 바위에 푹푹 박히는 것이었다.
그제야 가슴을 내려쓸며 하얀 물체가 꽂힌 바위를 흘깃 돌아다보았다.
그리고는 은근히 놀랐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하얀 물체는 염주알이었고 분명히 여덟 개가?

꽂히는 소리를 들었는데 양몽환의 눈에는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만일 양몽환이 염주알의 성분을 알았더라면 놀라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염주알은 첫번에 던져진 염주알과 일직선이 되어 한곳에만?

 박힌다는 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전신에 잔뜩 진기를 운집시킨 양몽환은 이를 악물며 맞은면 바위 위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기풍도 당당히 가슴을 펴고우뚝 섰다.

그러한 순간,

들것에서 일어섰던 황색가사의 화상은 어느 틈에 다시 들것 위에 앉았는지

단정히 정좌하고 눈마저 감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화상의 태도는 내가 언제 염주알을 던졌느냐는 듯 태연한 자세였다.
그제야 양몽환은 어떠한 공격에도 물리칠 진기를 돋우고는 그 화상에게로 몇걸음 다가섰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오?]
그러나 화상은 여전히눈을 감고 정좌한채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태도에 약간 비위가 상한 양몽환은 흥! 하고 크게 코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소리쳤다.
[흥! 허세가 대단하시군! 그러나 천축국의 승려같지 않은데.]
하고 빈정거리는 듯하자 화상은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며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이 빈도의 염주알을 피하는 것으로 보아 무공도 그럴듯하겠는데......

우선 당신의 신분이나 밝혀 보시오.]
[나는 양몽환이라는 사람이오. 그건 왜 묻소?]
그러자 빙그레 웃던 화상은 정색을 하며 번쩍 고개를 어지간히 놀란 태도였다.
[당신이 양몽환이란 말이오?]
[그렇소 ! 왜 거짓말같소?]
[음.......그럼 주약란을 알겠군.......]
[주약란? 당신이 아무렇게나 부르라는 주약란인줄 아시오? 건방지게 ! 그런데 왜 묻소?]
[묻지도 못한단 말이오?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이나 할 것이지, 뭣이 건방지다고?]
눈썹이 홱 ! 올라가며 금방이라도 뛰어들 태도였다.

그러나 양몽환 역시 눈썹을 치켜 올리며 노성을 발했다.
[도대체 당신은 어디서 왔소?]
[흥! 천축국에서 왔지. 보면 모르나?]
[그런 것같지 않은데 ? 거짓말이겠지.]
[거짓말이든 아니든 여하간 주약란을 아는가 물었소.]
[알고 있소. 그럼 됐소?]
그러자 황색가사의 화상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담담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음성마저 낮추는 것이었다.
[그럼 그 주소서는 어디 있소?]
[그것보다 내가 한가지 묻겠소. 당신은 천축국의 대국사요?]
[아니오.]
[아니라......]

<저 화상도 무공이 보통은 아닌데......

화상이 저 정도라면 대국사는 더 절묘한 무공을 지니고 있겠군......>

하면서 다시 소리쳐 물었다.
[그럼 대국사를 알고 있소?]
그러자 화상은 크게 냉소를 터뜨리다 웃음을 뚝 그쳤다.
[여보시오, 당신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묻기만 했소. 이제는 내가 좀 물어야겠소.]
하고 양몽환의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자기가 물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묻고 대답하는 것에도 위신이 서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기만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이 싫었던 눈치였다.
[흥! 허세가 대단하군. 그럼 물으시오. 대답하겠소.]
[그래야지 ......주소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소. ]
[바로 이곳에 있소.]
하자 화상은 급히 사방을 휘둘러 보고는 눈을 부라렸다.
[산과 구름뿐인데 어디 있다는 거요?]
그러나 양몽환은 화상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천연스럽게 물었다.
[대국사가 있는 곳은 여기서 얼마나 되오?]
그러자 다시 한 번 말싸움에서 지게 된 화상은 입을 씰룩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십리 길이오. 그련데 또 당신만 자꾸 물었소. 주소저는 어디 있소?]
[헛 ......그렇군 멀리는 음......하늘 끝이오. 가까이는 바로.......]
하는데 그때까지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조소접이 자태를 드러내며

양몽환이 못다한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바로 눈 앞에 있어도 모르지 ......]
그 순간 고개를 돌리던 화상은 입을 헤 벌리더니 넋이 빠지는 듯 멍청히 조소접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벌 것이 일찍이 조소접같은 미녀를 본 일이 없는 화상으로서는 입안의 침이? 마를 정도였다. 균형 잡힌 몸매와 화용월태는 일찍이 보지 못한 절세가인임에 틀림없었다.

그러자 조소접은 멍청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화상의 마음을 더 어지럽게 하려는 듯

섬섬옥수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생긋이 웃어주었다.

그러자 화상은 헤에 벌렸던 입이 더 커지며 바보처럼 따라 웃는 것이었다.
한 때는 마음 속에 그리던 양몽환을 찾아 다정선자로 행세하고 다닐 때

조소접의 아름다운 얼굴을 본 남자라면 누구없이 정신을 잃고 꿈인가 생시인가

살을 꼬집어 보는 남자가 부지기수였다.

그렇듯 아름다움을 과시하던 조소접이 생긋이 웃어주는 데는 어찌 마음이 혼란하고

정신이 아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시에 전신의 피가 소용돌이 치며 절로 숨이 탁 막히는 화상이었다.

그래서 지금 자기는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는지

그 목적조차 잊어버린 듯 넋을 잃고 서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옆에서 보고 있던 양몽환마저? 매혹적인 조소접의 미소에 마음이 떨릴 정도였다면

그 화상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윽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화상 앞까지 다가간 조소접은 옥을 굴리는 듯

맑은 목소리로 화상을 불렀다.
[화상 ! 정신 좀 차려요.]
그제야 화상은 꿈길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크게 벌렸던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그러한 화상의 모양을 보고 있던 양몽환은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래도 화상은 얼떨떨해 뭐가? 뭔지 분간을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때 다시 조소접은 낭랑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당신은 대국사와 어떤 관계죠?]
그러자 멍청히 섰던 화상은 엉겁결에 대답한다는 것이 영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소승은......정말 놀랐습니다.......]
하다가 문득 자기가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음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당신이 주소저요?]
[흥! 주소저 ? 주소저는 당신 따위가 부르라는 이름인줄 아세요?]
하고 내뱉듯이 말을 마친 조소접은 그 유연한 몸매가 한번 흔들거렸다고 했을 떼는

이미 화상의 가슴을 호되게 후려 갈긴 후였다.
그러자 설마 이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공격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화상은

펄쩍 놀라며 미친 듯이 손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 후려 갈긴 조소접의 오른 팔은 땅을 박차면서 한번 더 후려 갈기고

사뿐히 뒤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엉겁결에 두 대를 얻어 맞은 화상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되찾는 듯했다. 그리고는 다시 각오를 새로이 하
는 눈치였다.

이렇게 꿈만 꾸다가는 목숨이 끊어질? 위험을 알아챈 모양인지 한 번 눈을 치켜? 떴던

화상은 들것 위에서 두 발로 땅을 박차는 것이었다.

그러자 들것이? 땅 속으로 푹, 들어가는 듯하다가 돌연 튕기듯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한바퀴 빙그르르 돌고는 들것 위로 가볍게?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슨 행동의 전초 작업인지는 모르지만 양몽환의 눈을 크게 뜨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음......내공력이 굉장한데.......>

그리고 들것을 앞 뒤로 들고 있는 두 명의 승려도 몸 한 번 기우뚱 하지 않는 데는 가히 그들의 내공을 알
만했다.

<......대국사의 제자라는 승려들의 무공이 저 정도라면 대국사는 말도 못하겠군.......음......>

하고 혀를 내두르는 양몽환 옆에서 조소접 역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는 것도 잠시 혼자 이것저것 궁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 화상만 사로잡는다면 대국사의 정체도 알 수 있겠군.?

그리고 대국사의 무공도 어느 정도인지 알아볼 수 있으리라......사로잡아야지 ......>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화상의 무공도 무공이지만 막상 사로잡으려면 아무래도 들것을? 들고 있는
두 명의 승려가 걸릴 것 같았다. 그들의 무공도 범상치 않으리라 생각한 조소접은

우선 두명의 승려부터 처치한 다음 화상을 사로잡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결심한 조소접은 들것에서부터 화상을 유인해 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서 조소접은 잠시 그들을 노려본 다음 화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화상! 들것에만 앉아 있지 말고 내려와요.]
그러나 화상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조소접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역시 그 화상도 조소접을 사로잡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자 조소접은 급한 성미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못들었어요? 어서 내려와서 정정당당히 싸워요.]
그제야 화상은 심각했던 표정을 바꾸며 빙그레 웃었다.
[당신이 바로 주약란이오?]
[천만에 주소저는 우리 언니죠.]
[음.......그럼 됐소. 틀립없겠지?]
[틀림이 없다면?]
[이 빈도는 주소저의 초상화를 보았소. 그런데 과연 미인이오.

그러나 당신의 아름다움도 대단하오.]
[무슨 말을 하는 거죠? 빨리 내려오라면 내려올 것이지!]
그러나 화상은 내려올 생각은 고사하고 빙긋이? 웃기만 했다.

과연 조소접의 아름다운 자태에? 현혹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조소접은 빙긋 웃는 화상이 굉장히 눈에 거슬렸다.
[왜 그렇게 웃죠? 안 내려오면 내려오게 해주지.]
하고는 그저 여전히 빙긋거리는 화상을 향해 두 팔을 휘둘렀다.
그 순간, 두 줄기의 강한 장풍이? 좌우로 쏜살같이 퍼지며 들것을 들고 있는?

두 명의 승려를 향해 날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들것을 들고 있는 두 손이 마치 비수에라도 맞은 듯

신음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들것을 내동댕이치고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더 이상하게 벌어지고 말았다.? 들고 있던 들것을 양쪽에서

 일제히 놓았으면? 응당 엉덩이에
아픔을 느끼며 황망히 일어나거나 뒤로 아니면 앞으로 쓰러지던 넘어져야 할 화상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셈인지 떨어진 들것 위에 여전히 정좌하고 앉아 있는 화상은

눈썹도 찌푸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사태에 조소접은 놀라기도 하고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지금 조소접은 자신의? 암기인 비수를 그도 두 자루를 일시에 던져

두 승려의 손목을 댕강 잘라버린 것이었다.
이때 화상은 두 눈을 조소접에게 고정시킨 재 의젓하게 앉아 입을 열었다.
[이 빈도의 두 제자는 보통의 칼날에도 상하지? 않는 횡연기공(橫練氣功)을 지니고 있소.

그런데 당신이 단검으로 죽인 것을 보면 대단한 무공을 가진 모양이오.]
하고 금방 피를 쏟으며 쓰러진 두 제자를 힐끔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히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화상의 침착한 태도에 비록 적이라도 감탄할 일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내색하지 않고 차갑게 소리쳤다.
[흥! 대단한 허세군......천축국에는 정도(正道)의 무공은 배우지 않고 괴상한

기술(奇術)을 가르친 모양이군!]
그러나 화상은 별로 화를 내지도 않고 급히 서두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의로? 시간을 끌어 자기의 계획을 이룩하려는 행동인지

아니면 조소접과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인지?

얼핏 그의 심중을 알 길이 없었다.

한동안 조소접을 바라보던 화상은 또 한번 빙긋 웃었다.
[아가씨, 진정으로 이 빈도와 싸우고 싶소?]
[물론! 어서 들것에서 내려 와요.]
[그야 어려울 것 없소. 그러나 싸우려면 우리 조건을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조건? 싸우다 죽으면 그만이지 조건은 무슨 조건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소리친 조소접은 두 팔을 번쩍 들어 날카로운 장풍을 몰아 붙였다.
일단 조소접의 두 팔에서 퍼져나간 장풍은? 맹렬한 속도로 노도같이 화상을 향하고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화상은 앉았던 자리에서 껑충 뛰어 일장 위로 올랐다가 장풍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들것 위로 앉으며 빙긋 읏는 것이 이건 보통의 무공이 아니었다.

놀라운 재간이었다.
조소접이 아닌 다른 사람같으면 기가 죽을 일이오. 그대로 도망갈 일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내심 놀라기는 했지만 화상이 어떠한 태도로나 오는가 하고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자 화상은 빙긋 웃다 말고 정색하는 것이었다.
[장풍 수법이 대단하시군.....]
[누가 그따위 말을 하랬어요?]
외치던 조소접은 또 한 번 진기를 모았다가 일시에 내뿜으며 날카로운 장풍을 날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좀전과 같이 앉은채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가 장풍이 지나간 뒤에

들것에 내려앉는 화상은
조소접의 장풍을 피하기만 할 뿐 조금도 반격할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에 걸친 자기의? 장풍을 가볍게 피하는 화상의 행동에 조소접도 차차?

인식이 달라졌다.
그리고 반격해 오지 않는데는 더 의아심이 생길 뿐이었다.
[왜 반격하지 않죠? 두려운가요?]
[흥 ! 그렇게 천축국의 기술(奇術)을 구경하고 싶소? ]
[물론이죠. 어서 덤벼요.]
[좋소. 그럼 조금 뒤로 물러서시오. 이 빈도가 천축국의 기술을 보이겠소.]
<이 간사한 놈......그래서 나를 해치겠다는 건가.......>
조소접은 뒤로 물러서지도 않고 냉소를 터뜨렸다.
[잔꾀를 부리지 말아요.......내가 먼저 당신을 시험해 보겠어요.

어느 정도인가. 그 다음에 한 번 해보시지?]
[아, 그것도 좋소. 이 빈도가 피하기만 하니까 두려워 하는 줄아는 모양인데 천만에 말씀이지.]
라고 말하던 화상은 갑자기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가 들것 위로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바로 조소접에게로 덮쳐들며 왼 손으로는 장풍을 몰아붙이고 오른 손으로는 장검을

비껴든 것처럼 꿋꿋이 세우며 돌풍같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상대인 화상이 주로 공중에서 내려오지 않고 공격해 온다면 지상에 있는 조소접이

불리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상대가 그렇다면 어찌 질소냐. 하고 눈썹을 치켜 올린 조소접 역시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오행미종(五行迷從]의 수법으로

물찬 제비같이 화상의 앞을 지나가며 일거에 세수(三手)를 후려 갈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조소접은 이 기회에 천축국의 기술을 알아보려고 맹공을 가하지는 않고

상대방인 화상이 맹공해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며 몸을 피하고 날렸다.
이리하여 허공에서 서로 대치한 조소접과? 화상은 불을 튕기는 듯한?

공방전을 펴기 어언 오륙십합(五六十合).
조소접이 맹공을 가하기 전에는 도저히 승부가 날 것같지 않다고?

바위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양몽환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조소접의 유연한 공세를 알 길이 없는 양몽환은 속이? 탔지만

그와 반대로 조소접은 화상의 무공을 관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조소접이 오륙십합을 교환하면서도 알아챈 것은 화상의? 무공 수법과

소림사의 무공 수법이 비슷하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림사의 무공에 비해 변화가 무쌍한? 천축국의 무공은

어딘가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것을 엿볼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알게 된 조소접은 화상의 무공에서 더 알아보기를 단념하고 전세를 돌변시켰다. 겨우 소림사의 무
공을 변화시킨 것이 천축국의 무공이라면 더 볼 것이 없기도 했다.
그러나 화상의 무공도 조소접이 예상한대로 만만치 않았다. 오랫동안 싸우면서도 한 번도 땅에 내려서지 않
고 허공에서 두 팔을 제각기 휘둘러 이리? 치고 저리 치고 그러는가 하면 두? 팔을 모아 흡사 물을 끼얹는
듯 강한 돌풍을 끼얹는 데는 조소접도 민첩히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여세는 양몽환한테까지 휘몰려와 바위뒤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지나가는 장풍을 피해야 했다.
이와같이 피차간에 불을 뿜는 듯한 공방전이 어느덧 백여합, 진기(眞氣)와 기술(奇術)이

불을 토했지만 조소접의 진기는 화상의 기술로, 화상의 기술은?

조소접의 진기로 피차 어렵지 않게 받아넘기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공방전을 조소접 자신도 알고 있었는지 냉소를 터뜨리며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화상! 이렇게 싸우다가는 언제 끝날지 모르겠군 ! ]
그재야 화상도 옷소매에 이마의 땀을 닦으며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당신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무공까지 절묘하다니....... 이 빈도가 감탄 또 감탄하는 바요.]
[흥 ! 당신도 화상인 주제에 제법인걸 ! ]
[정말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요.]
[잔소리 말고 어서 덤벼요. 오늘이 장례날인 줄이나 알고 있어요.]
[흥!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요.]
[그럼 좋아요. 그러나 이렇게 싸워봤자? 승부는 쉽게 안나요.

이제부터는 서로 내공력으로 싸우는 게 어때요?]
그러나 황의화상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안될 말이오. 내공력으로 싸운다면 한 사람이 죽든가 아니면 둘다 죽는 법이오.

그런데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이 빈도가 죽인다면 그 얼마나 애석한 일이오.]
[흥! 죽기가 두렵다면 두렵다고나 해요. 뭣이 애석하단 말이에요?]
하고는 흩어진 진기를 돋우는 듯 주먹을 쥐고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눈을 똑바로? 뜨고 화상을 노려보았다.
한면 화상은 백 여합의 공방전으로 조소접의 무공을 짐작한 후여서 섣불리 싸우다가

그녀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 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소접을 주시하며 그녀의 민감한? 변화에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 바라보기를 얼마 동안 한 후,
이윽고 조소접이 먼저 선수를 가했다.

오른 손을? 높이 들어 돌을 집어던지듯 후려 갈긴 조소접의? 한 수는
보기에는 매우 느릿느릿 했지만 실제로는 천근(千斤)의 내공력을 가진

그야말로 바위를 부수는 웅후한 진기였다.
그런데다 오행미종법으로 자태를 감추었다 나타내고 나타냈다?

감추는 조소접의 신출귀몰한 공세에 화상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분명히 눈 앞에 있던 조소접이 뒤에서부터? 등덜미를 후려 갈기는 것이 아닌가.

분통이 터진 화상은 돌아서면서 두 발을 번쩍 들어 힘껏 걷어찼으나

앞에는 빈 허공, 헛친 발길이 허공을 내차다
힘없이 앞으로 엎어지듯 하는 순간,

어느 사이에 나타난 조소접은 차마 뒤에서부터는 공격할? 수 없다는 듯이 엎어지려는

 화상의 앞을 막으며 가슴을 내려치는 것이었다.

요행히 눈 앞에 나타난 조소접을 놓칠 수 없게 된 화상은 두 주먹을 모아쥐고 달려들었으나

번번히 허탕을 치는 데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몸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두 팔을 번쩍 들었던 조소접이 힘껏 내려 갈기려고 하는 그 찰나,

역시 두 팔을 들어 방어하는 한면 역습을 노리던 화상의 두 손바닥이

조소접의 손바닥과 마주치며 살이 찢어지는 아폼을 동시에 느끼게 되고 말았다.
드디어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대고 내공력으로 생사를 겨루게된 위기를 맞고 말았다.
일단 서로 손바닥이 맞닿으면 발도 허리도 아니 머리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무 부위도 움직이지 않고 각자 체내에 있는 진기를 모두 손바닥에 집중시켜 누구의?

 내공력이 더 강한가,
그래서 어느 누가 먼저 쓰러지는가

그것이 결판을 내주는 실로 끔찍한 싸움이 바로 이 내공력의 싸움인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조소접과 화상은 눈만 부릅 뜨고 노려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누가 떼어 놓을 수도 없는 싸움인 것이다.

만일 섣불리 떼어 놓는다면 두 명이 다 목숨을 잃든가? 아니면? 평생 병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를 지났을까.
이윽고 조소접과 황의화상의 얼굴에는 점차 커다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화상의 황색가사는 바람도 없는데 마구 흔들리고 비오듯 땀을 흘렸고 조소접은 조소접대로

두 뺨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역시 이마에 땀방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양몽환은 체내에 있는 진기를 모두 단전(丹田)으로 운집시키고 내공을 모았다.
그리고는 만일 조소접이 불리해진다면 자기의 모든 재간을 발휘해서 도우려고 했다.
그리고 경계하는 그의 눈에는 홀연 조소접의 팔과 화상의 팔이 걷잡을 사이도 없이

떨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게 팔부터 떨고 나중에 전신을 떨면 먼저 떠는 면이 내공력이 쇠약했다는 증거요,

생명을 잃든가 평생 병신이 된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그렇게 둘이 똑같이 팔부터 떨기? 시작하던 것도 잠시,

드디어 화상의 몸이 요동을 하며 떤다고 느끼는 순간! 파당당!

소리를 내며 썩은 기둥이 쓰러지듯 뒹굴며 쓰러지는 화상의 육중한 몸뚱이가 아닌가 !

결국 승부가 난 것이었다.
그러자 길게 숨을 몰아쉰 조소접은 양몽환을 바라보며

싱긋이 웃고는 쓰러진 화상에게로 달려가 요혈을 짚어버리는 것이었다.
그제야 지금까지 노송 위에 몸을 숨기고 있던 주약란이 가볍게 몸을 날려 조소접 앞에

내려서며 그녀의 두 손을 모아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흡족한 미소를 띄웠다.
[접매, 수고했어요.]
그러자 조소접도 기쁜 빛을 감추지 못하며 웃었다.
[화상의 무공도 강한 것같아요.]
[그렇긴 했어. 그러나 접매는 앞으로 얼마든지 싸울 내공이 있어요.]
[정말이에요.]
[그럼 ! 칭찬하고 싶어요.]
하고는 양몽환을 돌아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양상공, 수고스럽지만 저 화상을 끌고 오세요.]
하고는 먼저 걸어가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즉시 쓰러진 화상을 옆구리에 끼고 앞서 가는 주약란과 조소접의 뒤를 급히 따랐다.
그로부터 약 이장 거리에 있는 골짜기까지 들어온 주약란은 먼저 걸음을 멈추었다.
주위는 모두 높은 산으로 막혔고 지금 올라온 골짜기를 통해서만 외줄기의 산길이 있는 골짜기였다.
[양상공, 여기다 내려놓으세요. 이곳이면 사람의 왕래가 없을 것같군요.]
하는 말에 양몽환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화상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주약란은 조소접에게 분부를 내렸다.
[접매, 저 화상의 요혈을 풀어 주고 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손을 쓰세요.]
즉시 조소접은 화상의 요혈을 신중히 짚어 나갔다.

그래서 열두곳의 요혈을 짚고 한시간이 지나서야 화상은 길게 숨을 토하며 눈을 뜨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휘둘러 보던 화상은 자기가 내공력을 겨루다 패한 것을 알고 더구나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에 은근히 의아함을 느꼈는지

눈을 껌벅껌벅하며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사실 내공력으로 겨루다 몸을 떨고 쓰러지면 그것으로서 생명은 끝이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화상을 사로잡으려고 결심했던 조소접은 몸을 떨며 쓰러진 화상에게 달려가

급히 요혈을 짚어 피가 응고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다행히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고

다시 조소접의 절묘한 수법으로 열두 곳의 요혈을 풀어 놓으므로서 죽음직전에서 살아난 것이었다.
화상이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다가 일어나 앉는 것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주약란은

가볍게 기침부터 했다.
[화상 ! 당신이 주약란을 찾고 있었나요? ]
하고 물었다. 그러자 화상은 길게 한숨을 토하며 또 다른 미녀의 출현에 정신이 아찔하는지

한동안 말을 못하고 조소접과 주약란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꿀꺽 침을 삼키며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만...... 당신이 ......바로......주......소저인가요?]
[그래요.]
[예 ? 그렇다구요?]
기성을 발한 화상은 벌떡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으며 입을 딱 벌렸다.
실로 보기드문 미녀, 아니 생전에 어디서 본 것같지도 않은 절세의 가인을

그도 한자리에서 두 명이나 만나게 된 화상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미녀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주약란 바로 그 여자라니

그 놀라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이고..... 내 평생에 저같은 미녀를 볼 줄이야.......>
다시 눈을 비비고 바라보아도 미녀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화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주약란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화상!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숨김없이 대답해요.]
[암, 여부있겠습니까? 무엇이든지 물어 주십시오.

제발 이 목숨만 살려 준다면 무엇이든지 아는대로 다 대답하겠습니다.]
[숨김없이 대답한다면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고 살려 주겠어요.]
[정말인가요?]
[그래요. 그러나 만일 숨기고 대답하지 않는다면 죽여버리겠어요.]
[아이고...... 사실대로 아니 아는대로 대답하겠소. 제발 목숨만은......]
[그럼 묻겠어요. 당신은 천축국 사람인가요? ]
[그렇습니다. 빈도는 천축국에서 나서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 중원 땅의 말을 잘 하는 거죠?]
[예, 그것은......이곳 중원 땅에서 몇 년간 살았기 때문에 풍속이나 언어를 잘 압니다.]
[알겠어요. 천축국의 대국사는 지금 어디 있소?]
[산밀 유가촌(劉家村) 유원외(劉員外) 집에 묵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니겠죠. 내가 가보고 만일 거짓이라면 당신은

 여기서 죽을 것이고 사실이라면 내가 돌아오는 대로 놓아 주겠어요.]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진정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 대국사님은 대단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그곳에 간다 해도 돌아올 생각은 마십시오.]
[흥! 그런 염려는 안해도 돼요. 내 앞길을 막을 사람은 없어요.]
하고 주약란은 조소접과 양몽환을 돌아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가서 대국사라는 자를 만나보고 오겠어요.

그동안? 이 화상을 데리고 숨어 있으세요.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적과 싸우지는 말아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였다.
[언니 혼자 가시겠어요?]
[혼자 가겠어. 만일 여럿이 간다면 도리어 불편해요.

이미 계획한 바가? 있어요.

아무 염려말고 이 화상이나 잘 지키세요.

만일 도망가려는 눈치를 보이면 화상의 무공을 폐(廢)해 버리세요.]
하고는 좁은 계곡을 나는 듯이 빠져나가는 주약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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