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31. 여심(女心)

오늘의 쉼터 2014. 10. 26. 10:55

제5권

 

31. 여심(女心)

 

 

 

절벽 밑으로 내려오는 양몽환을 발견한 이창란은 엄숙한 어조로 주약란의 건강부터 물었다.
[주소저의 건강은 어떻든가?]
[예, 염려해주 덕분에 완쾌되었습니다.]
[그럼 도옥이 주소저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나?]
[네, 도옥도 주소저에 의해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교환 조건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도옥은 확실히 귀원비급을 완전히 터득한 모양이군......

허...... 사실이 그렇다면 장차 무예계도 편할 날이 없겠군...]
[그러나 염려할 것은 없을 것같습니다.]
[염려 없다? 왜 좋은 무공이도 터득했단 말인가?]
[주소저가 이미 도옥을 앞질러 진기역연법을 연구하고 있습다.

주소저의 지혜라면 도옥보다 먼저 성취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창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도옥이는 귀원비급에서 진기역연법을 이미 터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방법만 알아낸 모양입니다. 옛날 천기진인과 삼음신니가 귀원비급을 기술할 때에 진기역의

무공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연구는 하였지만 확실한 성과를 거두는가에 의심이 생겼던지

책장속에 기록해둔 모양입니다.

그래서 소접이 비록 귀원비급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지만 진기역연의 방법은

발견하지 못하고 만 모양입니다.]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러나 천기진인과 삼음신니도 주약란과 같은 재치있는 여자가 진기역연법을 연구하다

인체 한계에 봉착되어 고뇌에서 헤매게 되리라고는 몰랐을 겁니다.]
[그럼 그 진기역연이라는 것이 인체 한계만 극복한다면 성취가 무난하다는 말이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소저가 하는 말에 그런 이야기가 있어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소저도 아직 진기역연법을 찾지 못하고 있답니다.]
이창란은 가만히 양몽환의 말을 들으면서 지팡이를 흔들기도 하고 수염을 쓰다듬기도 하면서

귀를 기울이다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럼 도옥은 귀원비급에서 진기역연 방법을 찾아냈단 말이지?]
[글쎄요.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는 하더군요.

그로 미루어 본다면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한 것같습니다.]
[그렇다면 주소저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더냐?]
[주소저는 어디까지나 기회를 보자고 합니다만 조소저는 지금 곧 도옥을 찾아가 진기역연법을

연구 터득하기 전에 도모해 버리자고 말합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군. 이 노부도 조소저의 의견에는 찬성이네.

너도 도옥의 위인됨을 잘 알지만 그 놈이 만일 무공의 제일 절수라고 하는 진기역연법을 터득하면

강호에서 으뜸가는 것은 물론 무공의 실력자가 되어 어떤 풍파가 일어날지 심히 두려운 일이야.

지금 힘을 합해 그를 제거한다면 만사가 해결되고 후환도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주소저가 기회를 보라고 하는 이유는 자기대로 어떤 계획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아직 자기의 계획을 말하지는 않지만......]
[음...... 알았네. 여하간 수고스럽지만 자네가? 좀 가서 주소저를 불러다 주게.

이 노부가 의논할 일이 있네.]
어떤 의논인지는 모르지만 이창란의 표정으로 보아 중대한 일인 것같아 곧장 대답하고 돌아섰다.
이때 이창란은 양몽환을 다시 불러 세웠다.
[잠깐만 기다려라.]
[?............]
[홍아(紅兒)에게서 소식이 왔는데 아직 자네에게는 연락하지 못하고 있었네.]
[네? 소식이 왔다고요?]
[그래. 시부모님을 잘 모시고 있다고 하더라.]
[네............]
[그리고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심소저와 속히 의논해서?

결정을 지으라고? 하더라. 홍아와 심소저는 이미 결정을 보았으니

자네가 어서 결정을 해서 연락해 달라고 쓰여 있네......]
[글쎄요. 무엇을 결정하라는 말은 없었나요?]
[다른 말은 없었어. 자네도 생각이 안 나거든 심소저에게 물어보게나.]
양몽환은 이마를 찌푸렸다가 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곧 가서 주소저에게 연락해 주게. 이 노부가 좀 만나잔다고......]
양몽환은 더 생각하지 않고 곧장 절벽위로 올라갔다.
절벽위에는 조소접과 하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주약란만이 푸른 잔디밭에 앉아 먼 하늘만 바라보고

한가로이 앉아 있다가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양몽환임을 알아챈 주약란은 발딱 일어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마침 잘 왔어요. 저를 따라 오세요.]
하고 앞장을 서서 걷는 것이었다.
낮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 푸른 잔디밭에 먼저 다다른 주약란은 뒹굴 듯이

풀밭에 앉으며 양몽환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여기 앉아요.]
그리고 양몽환이 옆자리에 앉자 주약란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를 어떻게 할 셈인가요?]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묻는 말에 양몽환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 누구 말입니까?]
[조소접 말이에요.]
[조소저?]
하다가 그제야 좀 전에 조소접과의 혼인건을 생각하고 얼굴을 붉히며 다시 이었다.
[제가 어떻게 처리합니까? 역시 주소저가 처리할 일입니다. 그러나......]
[왜 제가 처리해요? 양상공 당신의 일인데 당신이 직접 처리하세요.]
순간 입장이 난처하게 된 양몽환은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 생각으로는 역시 주소저가 그녀를 데리고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은 없어요...... 그렇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어요.]
[그럼 주소저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처리하세요. 당신만이 그녀를 순진한 여인으로 만들 수 있어요.]
[제가 어떻게...... 전 자신이 없습니다.]
[조소저는 총명해요.

조금 고집이 있지만 당신이 잘 감화시키면 훌륭하고 착한 여인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저는 주소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군요.]
[무슨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거죠?]
[모든 것이...... 도대체 저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당신은 조소저를 어렇게 생각하고 있죠?]
[저는 조소저를 친누님같이 그리고 때로는 스승같이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약란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차차 표정도 굳어졌다.
[제가 묻는 것은 조소저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거에요.]
[..................]
[그럼, 저의 말을 잘 들어 보세요.?

장차 무예계의 변화는 당신과 도옥 두사람에게 달려 있어요.
앞으로 이 강호를 피로 물들이냐 아니면 화평을 누릴 수 있느냐? 하는 큰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도옥으로 말하면 귀원비급의 무공을 터득해서 무예계를 종횡으로 누비고,

살기를 흘리며 다니는데 그를 막을 사람은 바로 조소저란 말이에요.

그러나 그녀를 잘 감화시키지 않으면 더구나 그녀의 천성으로 보아 도옥에게

시집가서 그를 도와 줄지도 모른다는 말이에요.

그러한 그녀가 저의 말을 어느 정도 들을지는 모르지만 저도 잘 말해서

당신과 부부지간을 맺게 한다면 그녀의 절묘한 무공이 당신을 도와 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고

나아가서는 이 강호에 피비린내를 없애고 화평을 누리게 할 수도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당신과 조소저가 부부의 의를 맺으라는 거에요.]
[그건 너무 극한된 이야기가 아닐까요?

조소저가 지금 주소저를 따르는 만큼 도옥에게로 간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데요.]
[그럼 조소저가 처녀로 혼자 지낼 수 있을 것같아요?]
[그야 모르는 일이죠.]
[하여간 저의 말을 들으세요. 해롭지 않을 거에요.]
[..................]
[더구나 그녀가 옛날 천기석부에서 당신을 치료하던 일을 기억하시죠?]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질 기억이었다.
물론 그때는 여기 있는 주약란도 그랬지만 거의 나체의 몸으로 실신상태에 있는

양몽환 자기를 그도 옷을 다 벗기고 역시 알몸인 양몽환을 힘껏 끼고 안아 누운 채

병을 치료해 주던 조소접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잘 생각해 보세요.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더구나 알몸으로 당신의 살과 맞댔어요.
살과 살을 맞대는 것은 보통 흔한 일이 아니에요.

조금 전에도 그녀가 저에게 한 말이지만 이 몇 년간 그녀가 강호를 휩쓸고 다닐때도

당신을 찾아 헤맸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거에요.

그리고 자기의 시녀들만은 저에게 부탁해서 천기석부로 데려가 달라는 거에요.]
[그게 사실일까요? 저는 믿기지 않는군요.

조용히 살고 싶다는 것은 모르지만 왜 저를 찾아 헤맸는지......]
[그러니까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녀도 당신을 흠모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마음도 많이 변했어요 그래서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거에요.

그러나 현재 강호의 사정으로 봐서 도저히 그녀를 조용한 곳으로 보낼 수는 없어요.?

왜냐 하면 도옥이 모든 계략을 다 써서 그녀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만일 도옥의 계략대로 조소저가 도옥과 손을 잡는다면 그때는 무예계의 풍파를 걷잡을 수 없게 돼요.]
하고 깊이 한숨을 내쉰 주약란은 다시 말을 이었다.
[양상공도 아마 동숙정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거에요.

여자란 아무리 재간이 있다 하더라도 남자 없이는 소용없어요.

아무리 눈물을 감추고 태연한 척해도 평생 정신적인 고통을 없애지는 못해요.]
여자가 아닌 양몽환은 주약란의 말을 알 듯도 하고 또 모를 듯도 해서 애매한 대답을 했다.
[글쎄요......]
[하여간 석굴로 같이 가요. 지금 조소저가 기다리고 있어요.]
하고는 더 말하지 않고 주약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한편 어떻게 해야 좋을지, 조소저와 혼인해야 좋을지 어떤지조차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양몽환은 엉겁결에 주약란을 따라 석굴로 들어갔다.
이때 조소접은 조용히 앉아 두 눈을 감고 조식하고 있다가 주약란과 양몽환이 들어오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석실 안으로 들어온? 양몽환은 왜 그런지 조소접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곳에나 주저 앉으며 자기의 어색함을 감추려고 먼저 입을 열었다.
[주소저의 말은 적어도 일년이 걸려야 도옥이 무공을 발휘할 수 있다죠?]
하는 말에 조소접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별뜻없이 대답했다.
[예, 그렇대요. 도옥이 진기역연의 무공만 터득하면 언니와 저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할 거에요.]
[그렇다면 도옥이 무공을 성취하기 전에 도모하는 것이 좋겠군요. 주소저는 반대하지만......]
[저는 지금이라도 곧 도옥을 도모했으면 해요......더구나 저는 이 몇 년간 무공을 게을리 했어요.

그러는 동안 도옥은 굉장한 진보를 했고요.

이제 일년만 더 있으면 도옥을 당할 사람이 없을 거에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즉 앞으로 일년동안 불철주야로 무공을 닦아 도옥을 능가하도록 해야겠다고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언니는 이미 계획이 있을 거에요.

언니에게 조용한 시간만 가질 수 있게 한다면 충실히 무공을 닦아 도옥을 물리칠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조소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좋은 방안이라도......]
[좋은 방안은 커녕...아무 계획도 없어요.

지금 저는 모든 것이 싫고 다만 백화곡(百花谷)이나 갈까 해요.]
[백화곡]
[예. 그곳은 재가 자란 곳이고 더구나 어머님이 묻힌 곳이에요.

그곳에 가서 조용히 지내고 싶어요.]
하며 조소접은 눈을 내려까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집과 어머님 생각이 나서 마음이 괴로운 모양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그녀를 위로해 줄 말을 생각하다가 생각을 달리했다.
만일 위로하는 말을 해서 그녀가 감동되어 울기라도 한다면 자기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질 것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음성을 약간 높였다.
[백화곡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 않아도 지금 주소저는 아가씨만 믿고 있는데......]
[제가 언니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아닙니다. 주소저는 지금 아가씨의 재지(才智)와 귀원비급의 무공을 믿고 있습니다.]
[저는 언니에 비해 재지도 무공도 다 못해요.

그런 제가 언니를 도와주기보다 도리어 짐만 될 거에요.]
[천만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아무 생각마시고 주소저를 따라 천기석부로 가십시오.?

그곳에서 무공을 더 닦아 주소저와 힘을 합해야 합니다.]
[그럼, 양상공은 어떻게 하겠어요?]
[저도 물론 함께 가겠습니다.]
하는 말에 그제서야 조소접은 고개를 들며 방긋이 웃는 것이었다.
[그럼 저도 가겠어요. 백화곡엔 다음에 가고...... 그런데......]
[그런데?]
[제가 양상공을 따라 천기석부로 가면 이소저와 심소저가 걱정하지 않을까요?]
[무슨 말씀을......]
약간 얼굴을 붉힌 양몽환은 빙긋이 웃었다.
한편 석굴까지 양몽환을 데리고 와서 조소접과 대화를 나누게 한 주약란은

그들이 눈치채지 않게 조심하며 절벽 아래로 내려왔다.
이때 양몽환에게 주약란을 불러달라 이르고 주소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이창란은 절벽 아래로 내려오는 주약란에게 다가왔다.
평소 남에게 굽힐줄 모르는 이창란이었지만 사위인 양몽환을 구해주고

또 도옥의 화염 공세에서 자기의 목숨까지 (물론 구대문파의 여러 고수들도 포함되지만)

구해준 주약란에게 각별히 마음이 쏠려 은연중 그녀에게 감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다가서며 두 손을 마주 잡고 일읍하였다.
[주소저. 건강은 어떠시오?]
주약란 역시 허리를 굽히며 반례했다.
[노선배님의 염려 덕분에 완쾌되었어요.]
[다행이오. 모쪼록 주소저는 몸을 보중하시오. 금후 강호의 성쇄는 주소저 한 몸에 달려 있소이다.]
[과분하신 말씀을...... 저에게 어찌 그런 능력이 있겠어요.]
[친만에. 이 늙은이는 가볍게 입을? 놀리지 않는 사람이오. 주소저는 오래 전부터

강호의 의협도(義俠道)의 안위(安危)를 짊어지고 있소이다.]
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자 주약란은 고개를 숙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주약란은 약간 표정을 굳혔다.
[저는 노선배님과 금후 무림(武林)형세를 논하고자 하는데 모쪼록 많은 가르침을 주세요.]
[허...... 이 몸은 이미 늙었소. 늙은 사람이 무슨 탁월한 의견이 있겠소.]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하고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노선배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천기진인과 삼음신니가 귀원비급을 기록하여

세상에 남긴 것은 무공의 절기가 세상에서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 남긴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 귀원비급이 본래의 뜻과는 달리 의외에도 세상에 풍파와 재난을 가져오게 하고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리라고는 그 두 분도 미처 몰랐을 거에요.

 이제 그 두 분이 다시 살아나신다 해도 지금의 형세를 바꾸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은 말씀이오. 바로 도옥 때문에 일어난 풍파가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비록 도옥이 맨 처음으로? 귀원비급을 손에 넣은 사람은 아니지만 무림계에 있어서

전혀 새로운 경지인 진기역연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만일 그에게? 완전히 성취할 기회를 준다면 도옥은 그 기묘한 내공력을 발휘하여

가장 먼저 저를 상대해서 싸우게 될 것이고 그 다음으로 노선배님의 따님과 사위인 양상공이

화를 당할 것이고 나아가서는 이 무술계에 재난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소저는 왜 도옥이 그런 무공을 터득하기 전에 손을 쓰지 않소?]
[저도 그런 생각을 안한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이 백장봉에서 도옥을 처치해서 화근을 없애려고 생각은 했어요.

그러나 불행히도 저의 몸이 불편하여 그만 대사를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다 지금은 행방이 묘연해져 도옥을 추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

이제는 그가 나타나기 전에 우리들이 무공을 닦고 힘을 다해 그와 대적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창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소저의 말씀이 옳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도옥의 소굴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주소저 외에는 그의 적수가 될 사람이 없을 것같으오.]
[글쎄요. 제가 생각한 바로는 앞으로 무예계는 도옥과 양상공과의 대결장이 될 것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파의 세력이 결국은 두파로 갈라 설 것같아요.]
[그렇다면 주소저께서는 양몽환과 도옥의 판도에서 물러서겠다는 말이오?]
[아니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러면?]
[저도 끝까지 양상공을? 도와 힘이 되어 드리겠지만 저 혼자의 힘으로서는 부족해요.

그래서 한 사람의 힘을 더 빌리려고 해요.그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주소저가 말하는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조소접입니다.]
[아, 조소저라면 이 늙은이도 짐작이 갑니다.]
[노선배님이 짐작하신다면 더욱 다행한 일입니다.]
[이 늙은이의 딸년과 심소저는 주소저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주소저가 나서면 일이 잘 될 것같소이다.]

하고 말하는 이창란은 조소접과 양몽환과의 관계를 대강은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이요홍의 서찰에서 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가 강요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그들 네 사람 즉 양상공과 이소저, 그리고 심소저와 조소저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성사시킬 수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노선배님과 양상공의 부모님들에게도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할 일입니다.]
하는 말에 이창란을 큰 소리를 내어 웃는 것이었다.
[허...... 허...... 이 늙은이는 벌써 허락하기로 작정했소.

이제는 주소저의 손에 달렸소.]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도 여러번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무술계의 형세로 보아서 가장 유능한 사람은? 바로 조소저 밖에 없는 것같습니다.

그녀를? 우리 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큰 화근을 초래할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하고 말을 마친 주약란은 목소리를 낮추며 오른쪽 골짜기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노선배님, 우리는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야겠습니다.]
하는 말을 따라 오른쪽 골짜기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양몽환과 조소접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주약란과 이창란은 급히 자리를 피해 왼쪽 계곡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하여 어디까지나? 그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주자는 주약란의 속셈이었다.
양몽환과 조소접을 피해 왼쪽 계곡으로 몸을 숨긴 주약란은 웃는 얼굴로 이창란을 불렀다.
[노선배님.]
[?..................]
[노선배님의 사위님은 도화운(桃花運)을 타고 나서 아무래도 여자가 많이 따르는 모양이에요.

호...... 호...... 깊이 이해하셔야겠어요.]
그러자 이창란도 빙긋이 따라 웃었다.
[어찌 사위를 탓하겠소......무림 형세가 위급한데......]
그때 조소접이 큰 소리로 주약란을 부르는 것이었다.
주약란과 이창란이 몸을 숨기는 것을 본 모양이었다.
[언니, 좀 기다리세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하는 소리에 주약란은 어깨를 들썩했다.
[노선배님. 그들의 눈에 뜨인 모양이에요.]
하는데 벌써 주약란 앞에 달려온 조소접은 이창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곧 주약란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언니. 지금 저는 양상공과 도옥과 대적할 일을 의논했어요.]
[그래? 무슨 좋은 의견이라도 있어?]
[예. 우리 모두 양상공의 고향인 수월산장(水月山莊)으로 돌아가 함께 무공을 연마하는 한편

구대문파와 연락해서 도옥과 대적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의논했어요.

도옥의 소굴만 알면 즉각 달려가도록 말이에요.

그런데 무공을 연마하기로는 언니의 천기석부가 가장 적합한 곳이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구대문파와의 연락도 불편할 것같아서 수월산장으로 정했는데 언니의 의견은 어떠시죠?]
[좋아요. 접매의 의견대로 하는 것이 좋겠어.]
[그럼 저는 몇 명의 시녀들과 함께 먼저 수월산장으로 떠나겠어요.?

언니는 며칠 쉬었다가 오시도록 하시면 좋겠어요.]
조소접은 양몽환과 혼인하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진해서 양상공의 집인 수월산장으로 가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이창란은 사위에게 여자가 많이 따른다는 것이 별로 개운치 않았지만 주약란은 마음이 흡족했다.
[알겠어. 나도 곧 결정을 하겠어. 그런데 접매는 시녀가 많다지?]
[예. 한 이십명 되는군요.]
[그럼 곧 떠나도록 해요.]
조소접은 이창란과 주약란에게 차례로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곧 몸을 돌려 길을 재촉했다.
그러자 이창란과 주약란 그리고 양몽환은 조소접을 전송하기 위해 계곡입구까지 동행했다.
그때 한 필의 건마(健馬)가 소나무 가지에 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말은 미리 조소접이 준비한 말이었다.
말 옆에까지 다가간 조소접은 가뿐한 몸으로 말에 올라타자

건마는 힝!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려나가 곧 일동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멀리 사라져가는 조소접의 뒷모습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흰 옷이

그녀가 사라진 다음에도 눈에 보이는 듯했다.
조소접이 사라지고 얼마 후, 주약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이상하군...... 어디서 구한 건마일까?]
그러자 양몽환이 대답해 주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은 없습니다.

원래 그녀는 신출귀몰(神出鬼沒)한데가 있어서 종잡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건마도 그녀를 위해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요?]
[저도 지금 그녀에게서 들은 말이지만 그녀가 강호에 연락만 하면 무엇이든지

유효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단 떠나면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오! 그래요? 훌륭한 기지(機智)군요.

그렇다면 옛날 천용방의 분타(分舵)와 같다고 하겠군요.]
[그렇다고 하겠죠. 그리고 지금 건마의 일은 그녀가 우리들에게

실증(實證)해 보여준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럼 지금은 모든 연락처를 없앤다고 하던가요?]
[아니,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소저의 연락처를 이용하여 도옥의 정세를 살피는 것이 가장 좋겠군요.

만일 해산시켰다면 아까운 일인데......]
하고 수심을 띄우자 양몽환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예전의 조소저가 아닌 것같습니다.

생각하는 바도 넓어졌고 계획도 치밀히 세우는 것같습니다.

그러한 그녀가 스스로 세운 연락처를 없애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한 옆에서 주약란과 양몽환의 말이 듣기에 지루했던지 이창란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주소저. 아가씨도 수월산장으로 갈 것을 결정하셨소?]
하고 묻는 말에 주약란은 즉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저도 결심했어요. 조소저의 말처럼 수월산장이 구대문파와 연락을 취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같아요.]
[그럼 이 늙은이도 수월산장으로 가겠소. 먼저 가서 주소저를 기다리리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노선배님께서도 저희들과 행동을 같이 해주시는 데에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천만에. 여러분의 일이 바로 이 늙은이의 일이오.]
하고는 용두지팡이를 머리위로 높이 들어 빙빙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것을 신호로 해서 계곡밑에서 검북사의가 달려나와 이창란 앞에 나란히 서는 것이었다.
검북사의가 나란히 서자 이창란은 주약란에게 몸을 돌려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그럼 이 늙은이가 먼저 떠나겠소. 수월산장에서 만납시다.]
하고는 몸을 돌려 조소접이 사라진 계곡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검북사의가 주약란과 양몽환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급히 따라가는 것이었다.
차차 멀리 사라져가는 이창란과 검북사의를 지켜보던 주약란은 가볍게 한숨을 토했다.
[당신의 장인 어른은 이번 강호의 소용돌이 속에 기꺼이 뛰어들 결심이군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맞군요.

딸 이요홍이 아니라면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이 모두 그를 청해도 응하지 않을 분인데

스스로 자원해서 우리를 도와 주시는군요......]
그리고는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쥐고 가볍게 흔들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당신과 조소저의 혼인관계는 어떻게 되었죠?]
[아직 확실한 결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럼 거의 성사가 된단 말인가요?]
[아니,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백화곡으로 가서 조용히 살겠다고 하더군요.

그런 것을 저는 주소저와? 함께 천기석부로 가서 무공을 닦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따라 가겠다던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천기석부는 너무 거리가 멀어 불편하다고 해서 수월산장으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잘 하셨어요. 그런데 심소저와 이소저, 그리고 조소저까지 모두 수월산장으로 모이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단 말인가요?]
하자 양몽환은 잠시 얼굴을 붉혔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심각한 표정으로 양몽환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글쎄요...... 역시 주소저가 처리해 주셔야겠습니다.]
힘없이 대답하며 주약란의 표정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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