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내공이 약한 하림은 기어이 몸도?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흐느적 쓰러졌고 주약란?
역시 당장 질식할 것같아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었다.
턱에 탁탁 막히는 숨부터 쉴 수 없어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몸부림치듯 괴롭고 답답함을 참고 있을 때 드르륵 암벽의 창구가 열리며 열린 창구로부터
도옥이 머리를 디밀고 석실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득 찬 독연기로 해서 지척도 분간할 수 없음은 물론 주약란이나 하림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자 도옥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뿜어 넣은 독연기를 멈추게 하고는 밖으로
독연기를 뽑아낼 수 있도록 다른 하나의 창구를 열어놓는 것이었다.
죽이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창구가 열리고 잠시 후,
석실 안에 가둑 찼던 독연기가 점차 빠져 나가고 신선한 공기가 유통됨에 따라 석실 안의 사물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옥은 그때까지 인기척이 없는 석실을 휘둘러 보고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주소저! 연기 맛이 어떻소?]
한편, 주약란은 하림과 달리 정심(精心)한 내공과? 내식공(內息功)이 웅후하였기 때문에
곧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즉시 독연기가 체내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내공을 운기하고 다음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옥의 간계를 역이용하려는 주약란은 일부러 심한 타격을 받은 것처럼 대답도 하지 않고
내공을 운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은 지금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도옥과 상대하는 것보다 계략을 써서
이 석실을 빠져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몇번 소리내어 주약란을 불렀으나 끝내 아무 소리도 없자
도옥은 자기의 독연기에 주약란과 하림이 완전히 실신한 것이라 믿고는 만족한 웃음을 웃었다.
[헛...... 허...... 두 분이 다 말할 기력까지 없어진 거요.]
하며 석실을 살피던 도옥은 얌전히 앉아 있는 주약란과 그 옆에 쓰러져 있는 하림을 발견하고는
번쩍 정신이 드는지 눈을 크게 뜨며 다급히 외치는 것이었다.
[주소저! 심소저가 독연기에 쓰러졌소?]
그제서야 주약란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간신히 말하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소저는 어떻소?]
그러나 주약란은 더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 두고 봐라! 꼭 너를 죽이고 말겠다......>
고 백번 천번 되씹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약란을 바라보며 도옥은 자기 만족에 도취되어 연방 낄낄거리며 웃었다.
[주소저처럼 건방진 성격의? 소유자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상당한 타격을 받은 모양이군! 으하하......]
도옥이 뭐라고 혼자 떠들어도 주약란은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통을 참는 시늉만 했다.
그러자 도옥은 다시 혼자 떠들었다.
[그러나 주소저! 이 도옥의 말을 들어보시오.
아무리 이 도옥이 냉정하다 해도 아름다운 두 분을 어찌 사지(死地)에 몰아넣겠소...
이 도옥도 아름다운 여자는 좋아한단 말이오.]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주소저! 내말을 듣고 있는 거요?
어쨌든 지금은 정세가 좀 시끄러워 할 수 없이 석실에 가둬둔 것이니 나쁘게 생각하진 마오.]
[?............]
[더구나 주소저는 지금 새장에 갇힌 새란 말이오.
그러니 지금 어떤 조건을? 내세워 놓아달라고 해도 이 도옥은 듣지 않을 것이오.
만일 그래도 살고 싶다면 스스로 무공을 폐하는 것이 좋을 거요.]
그러나 주약란은 눈도 뜨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궁리에 골물하고 있었다.
<...... 석실 밖에서 떠드는 도옥과 입씨름을 할 필요는 없어.
어떻게 하든지 석실 안으로 둘어오게 해서 사로잡아야지? .......>
이렇게 생각한 주약란은 더 앉아 있을 기력도 없다는 듯이 기절하는 척하며
하림이 쓰러져 있는 옆으로 픽 힘없이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도옥은 주약란의 심정을 꿰뚫어 본 듯 싸늘하게 웃으며 조롱하는 것이었다.
[흐...... 흐...... 그렇게 쓰러지면 이 도옥이 석실 안으로 들어갈 줄 아오?
그런 꾀엔 넘어가지? 않는 도옥이라는 걸 모르오?]
주약란은 눈을 꼭 감으며 교활한 놈! 눈치도 빠르구나!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는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도옥은 품속에서 한 자루의 비수를 꺼내들고 다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주소저! 이 비수에는 극독이 묻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석실로 날은 비수는 싸늘한 검광을 번쩍이며 그대로 허공을 가르고
주약란의 왼쪽 다리에 푹 꽂히고 말았다.
순간, 주약란은 몸이 비비 꼬였다.
그러나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아픔을 참았다.
그런데 도옥이 비수를 들고 소리치며 던질때 주약란은 이미 그 비수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대강 어느 방향으로 날아와 자기의 몸 어느 부위에 꽂히리라는 것을 알고
즉시 진기를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의 사정도 없는 비수는 주약란의 다리에 꽂히고 이윽고 선혈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고 진기를 돋우어 아픔을 참는 주약란은 도옥을 석실 안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아픔을 참는 방법이외에는 더 좋은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기로 했다.
그러는 한편, 도옥은 순간 눈을 크게 뜨고 싸늘한 웃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비수가 꽂히고 선혈이 흘러내려도 꼼짝하지 않는 주약란을 지켜보기 얼마,
드디어 도옥은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흘렀다.
그리고 더 반응이 없는 주약란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 이제는 별 수 없이? 쓰러졌겠지...... 더구나 몸을 보호하는 강기(? 氣)로서
비수쯤 살에 꽂히지 않게도 할 수 있을텐데 비수가 꽂힌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러나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죽일 수야 없지...... 아까워...... 암, 아깝고 말고 ......>
여기까지 생각하던 도옥은 그만 욕정이 끓어올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가는 허리, 두 개의 유방, 그리고 둥그런 하체가 그대로 곡선을 그리며 쓰러져 있는
주약란을 보고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두 눈부터 벌겋게 충혈되고 말았다.
급히 석실 문을 열고 들어간 도옥은 그래도 마음이 안놓이는지 주약란에게로 바싹 다가가지 못하고
하림이 쓰러져 있는 옆까지 와섰다.
그리고 주약란과 하림을 번갈아 보았다.
싱싱한 두 마리의 생선을 앞에 놓은 고양이처럼 번갈아 보던 도옥은 아무래도 주약란보다
하림이 만만할 것같았다.
그래서 하림의 전신을 훑어보고는 한번 더 주약란을 불렀다.
[주소저! 오늘 이런 사태가 벌어질 줄을 몰랐소?
우선 하림부터 고운 살결을 감상하고 그 다음에 주소저를 감상하도록 하겠소!]
하고는 주약란의 눈치를 보았다.
입으로는 큰 소리를 치고 욕정에 못이겨 다가오기는 했지만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주약란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하림부터....... 라고 말한 것도 사실은 주약란에게 생각이 있었지만
두려운 생각이 앞서 얼핏 손을 대지 못하고 말로만 떠들어대고 그다음 주약란이
어떻게 돌변하는가를 살피려고 했다.
그러나 주약란이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금방 엉뚱한 야욕이 들었다.
<...... 음, 틀림없이 기절한 모양이군 ......
그렇다면 주소저부터 아름다운 살결을 감상하고 그 다음에 하림을 천천히 감상하자.
언제라도 하림은 이 도옥의 소유니까......>
욕정에 사로잡힌 도옥은 슬금슬금 하림을 지나 주약란에게로 다가갔다.
아름답게 봉긋이 솟은 유방이며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곧게 뻗은 두 다리를 내려보고
올려보고 하던 도옥은 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쓰러져있는 주약란의 몸 위로 덮치듯
달려들어 가는 허리를 끼어안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홀연 주약란의 오른 손이 홱! 뒤집어지면서 허리를 끼어안은 도옥의 오른 손목을 번개
같이 거머쥐며 후다닥 일어나 앉는 것이 아닌가.
순간, 벌떡 일어나려던 도옥은 아차 하면서 몸을 뒤집어 비호같이 일으키며 왼 손을 휘둘러
역시 주약란의 손을 움켜쥐고 말았다.
그 바람에 주약란은 도옥에게 왼쪽 손목을 잡히게 되었고 반대로 도옥은? 오른쪽 손목을
주약란에 잡히고 말았다.
그러자 먼저 도옥이 눈을 부라렸다.
[이런 사태에서도 반항할 생각이오?]
[뭐라고요? 이러한 사태에서 응큼한 생각을 품고! 흥! 죽여 버리겠어요.]
주약란으로부터 조금 무안을 당하자 도옥은 끓어오르던 욕정이 싹 가시고 말았다.
그대신 진기를 운기시켜 주약란의 맥혈을 짚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다.
주약란 역시 도옥의 맥혈을 짚어 쓰러뜨리려고 이를 악물었다.
서로 손목을 움켜쥐고 내공으로 버티기를 얼마, 좀처럼 맥혈이 짚히지 않고 내공으로
겨루기만 하던 도옥은 약간 힘에 부치는 듯했다.
그러나 일부러 코웃음을 치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주소저! 당신은 귀원비급으로 단련한 몸, 이 도옥도 역시 귀원비급으로 단련한 몸이오.
누가 이길지 모르겠는데!]
하면서 힘을 주어 주약란을 밀었다.
그러자 주약란도 손에 힘을 주어 밀린 만큼 다시 밀어붙이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흥! 큰 소리 치지 말아요!]
날카롭게 쏘아붙인 주약란은 재빨리 몸을 비틀며 도옥의 손아귀에서 왼 손을 뽑아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되돌아서면서 도옥의 가슴을 후려갈겼다.
이렇게 되어 각자 왼 손이 자유로워진 도옥과 주약란은? 서로 읜 손으로만 치고 박고 하는
난투극을 벌리고 말았다.
움켜잡은 손목을 놓지 않으려는 주약란과 잡힌 손목을 빼지도 못한 도옥이
서로 왼 손으로만 공격하여 장풍이 석실안을 요란하게 휘몰아치기 몇 번, 갑자기 도옥이
주약란의 공격을 왼 손으로 막으면서 휘파람을 휙! 불었다.
그 순간,
주약란은 그 휘파람 소리가 사람을 부르는 신호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지금의 사태로서는 원군이 오기 전에 도옥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주약란의 생명도
생명이지만 하림과 양몽환 그리고 조소접까지 영향이 미치게 될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다 주약란까지 도옥의 손에 사로잡힌다면 그때는 도옥을 당해낼 사람도 없거니와 만사는
도옥의 수중에서 움직이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주약란은 원군이 오기 전에 도옥을 빨리 사로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귀원비급을 터득한 도옥의 무공을 주약란으로서는 도저히 가볍게 볼 무공이 아니어서
더욱 난처했다.
주약란의 공격이 실로 매섭고 날카로웠지만 도옥도 이에 못지않게 날카로워 주약란의
어떠한 공격도 여지없이 막아내는 데는 문제가 달랐다.
누가 먼저 사로잡히느냐 하는 긴박한 사태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점점 열을 올리고 있을때,
석실 입구에서부터 어지러운 발소리가 나며 들이닥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도옥의 화신인 사령화신(四靈化身)이었다.
질풍같이 달려온 네명의 화신이 주약란을 에워싸며 태세를 갖추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 순간!
현무(玄武)부터 금환검을 휘두르며 주약란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위기에 직면한 주약란은 오른 손에 힘을 주어 도옥을 한쪽으로 당기면서
왼 손을 휘둘러 현무의 금환검을 강한 장풍으로 밀어붙였다.
그러자 현무는 주약란의 강한 장풍에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뒤로 비톨비틀 물러서다 석실 벽에까지
가서는 꽝! 부딪치며 그제야 몸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나머지 세 명의 화신들도 달려들지 못하고
각기 네 곳의 방위를 지키며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주약란의 수법은 드디어 절수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기기묘묘하게 도옥의 가슴을 후려갈기고 반격하는 도옥의 주먹을 피해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그러면서 날렵하게 후려갈기는 주약란의 왼 손은 점점 더 힘이 솟아나는 것같았다.
한편
이처럼 전광석화같이 돌아가는 주약란의 주먹에 도옥은 다른 곳에 정신을 쏟을 겨를도 없이
막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렇게 싸우길 거의 한 시간!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주약란은 웅후한 진기가 샘솟듯 날카릅게 공격하는 한편,
도옥의 날카로운 수법도 도를 가하기는 했지만 주약란의 절수를 따르지는 못했다.
거기다 주약란의 손아귀에 잡힌 도옥의 손목은 점차 힘이 빠지는 것을 느켰다.
그리고 주약란의 길고 아름다운 다섯개의 손가락은
흡사 쇠꼬챙이처럼 단단하고 끝내는 손목까지 조여드는 바람에 도옥은
거의 힘도 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석실 안에서 서로 손목을 잡고 돌아가는 것을 얼핏 보면 다정한 한쌍의 남녀가
춤을 추며 돌아가는 것같지만 실제로는 피차 생사를 겨루고 심후한 내공과 무공으로
촌각을 다루는 무시무시한 싸움터였다.
이때, 주약란은 입술을 깨물며 다섯 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도옥의 오른쪽 손목은 갑자기 힘이 빠지며 손을 쓸 수 없게 마비되고 말았다.
그리고 연이어 왼쪽 손도 맥없이 축 늘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자 두 손을 맥없이 늘어뜨린 도옥은 주약란의 손아귀에서 흔들거리는 것을 본
네 명의 화신은 일제히 달려들려다 말고 멈칫 서고 말았다.
그것은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주약란의 노기를 사게 되어
도옥의 목숨을 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눈만 굴릴 뿐 어쩔 줄을 모르고 주약란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자 주약란은 노기를 띄운 음성으로 흔들거리는 도옥을 불렀다.
[도옥! 나의 다리에 꽂힌 비수에 극독이 묻어 있다고 했는데 사실이오?]
이때, 도옥은 주약란에게 오른 손목을 움켜잡힌채 뒤로 젖혀져
주약란을 바로 바라볼 수도 없는 자애였다.
패배를 자인한 도옥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독이 묻어 있었다면 벌써 썩었을 거요.]
하는 말에 그제서야 주약란은 그때까지 자기의 다리에 꽂혀있는 비수를 뽑아
그대로 도옥의 목에다 비수의 날카로운 끝을 들이대고는 싸늘하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당신을 죽일 기회만 있으면 꼭 죽이겠다고 맹세했어요.]
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도옥은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흥! 콧소리부터 터뜨리는 것이었다.
[흥! 마음대로! 죽일테면 죽여보시오.
그러나 당신과 하림 그리고 양몽환도 살아서 이 석실을 벗어나지 못할 거요.]
도도하게 말하는 도옥의 목줄기에 지그시 칼끝을 누른 주약란은 그대로 찌익 긋고 말았다.
그러자 칼끝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새빨간 피가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도옥의 사령화신은 기절하듯 놀라 일제히 고함을 지르고 네 자루의 금환검으로
꽃망울을 그리며 주약란에게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오른 손으로 단단히? 거머쥐고 있던 도옥을 번쩍들어 일제히?
달려드는 네 명의 화신앞에 들이대고 빙빙 휘둘렀다.
그러자 주약란은 도옥을 방패삼아 그들의 공격을 막아낸 셈이 되었고 네 명의 화신은
주약란에게가 아니라 스승인 도옥에게 금환검을 휘두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더 이상? 달려들지 못하고 주줌 물러서는 틈을 타 주약란은 도옥을 불렀다.
[도옥! 부하들을 물러가게 하시오. 아니면 당신을 장검대신 휘두르겠어요.]
날카롭게 외치자 교활한 도옥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손을 들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그러나 만일 주소저가 이 스승을 죽이면 즉시 너희들도
양몽환과 조소접을 죽여 보복하라!]
하자 네 명의 화신은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총총히 밖으로 사라져갔다.
그때 주약란은 사령화신이 석실문을 열기 위해 암벽을 두드리고 문이 열리는 것을 세심히 보아두었다.
제자들이 나가고 다시 돌문이 닫혀지자 주약란은 도옥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옛날 단혼애 절벽 밑으로 버린 귀원비급을 찾았겠죠?]
[물론 찾았소!]
[지금 어디 있어요?]
[그건 말할 수 없소. 그러나 이 도옥의 몸속에는 없다는 것만 말해두겠소.]
[교활한 당신이 무학대전(武學大典)인 귀원비급을 함부로 다룰리는 없겠고 틀림없이
품 속에 감추고 있겠죠?]
[흥! 믿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뒤져보시오.]
그 순간, 주약란은 재빨리 왼 손을 들어 도옥의 전신에 퍼져있는 대혈(大穴)을 짚어
꼼짝 못하게 세워놓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비단 수건을 한장 꺼내 자기 다리의 상처를 싸매며 도옥을 부르는 것이었다.
[도옥! 이제는 주객(主客)이 바뀌었소. 이미 나의 손에 대혈이 짚혀 꼼짝 못하는 처지에
어떤 조건을 내걸 수도 없는 일, 더이상 버티지 말고 나의 분부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 어때요?]
그러나 비록 전신에 퍼져있는 대혈을 모두 짚혀 수족(手足)을 움직이지는 못할지라도
입은 청산유수로 놀리는 도옥이었다.
[흥! 마음대로는 안될거요.
더구나 양몽환과 조소접이 이 도옥의 수중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면
큰 소리는 치지 못할 것이오. 안 그렇소?]
[그럼, 흥정을 하자는 건가요?]
[흥정? 그런 것은 모르오. 다만 이 도옥을 죽이고 싶으면 죽여보시란 말이오.
그러나 이 도옥이 죽는다면 양몽환과 조소접은 사지(四脂)를 찢어 죽일 것이오.]
[뭐라고요?? 양상공과 조소저를 죽인다고 위협하면 내가 겁낼줄 알아요?]
그러자 도옥은 차갑게 웃음을 흘리며 입을 씰룩거렸다.
[지금과 같은 처지에 서로 잔꾀를 부려 속들여다 보이는 말은 안하는 것이 좋을거요.
더구나 양몽환이 비록 주소저의 남편은 아니지만 속으로는 꽤 흠모하고 있다는 것을
이 도옥이 모른다면 몰라도 알고 있는 이상 이 도옥을 괴롭히지 마시오.]
하고 씨익 웃던 도옥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다 조소접으로 말하면 주소저 당신과는 친자매 이상으로 가까운 사이고
더구나 조소접의 부친이 당신에게 친히 부탁해서 조소접을 잘 돌봐주라고 한 이상,
조소접이 이 도옥의 손에 의해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죽는 것읕 그대로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일거요.]
그러나 주약란은 아무 대답없이 고개를 숙이고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말이 없었다.
그러한 주약란을 힐끗 바라보며 도옥은 말을 이었다.
[그러한 양몽환과 조소접의 생명과 이 도옥의 생명을 바꾼다면 이 도옥은 유감이 있을 까닭이 없소.]
그제야 주약란은 숙였던 고개를 돌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만일 내가 당신을 놓아준다면 양몽환과 조소접을 놓아주겠어요?]
결국 다시 조건부로 교환하자고 제의하는 주약란의 말에 도옥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핫...... 하...... 주소저! 양몽환과 조소접 두 명과 이 도옥이 한 사람과 바꾼다는 것은
너무 차이가 심하지 않소!]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이 도옥은 공명하게 교환하자는 거요.]
[공평하게?]
[그렇소! 양몽환과 조소접 둘 중에 한 사람만 고르시오.]
하는 말에 순간 입이 막힌 주약란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도옥이 다시 말을 이었다.
[흥! 조금 곤란할 거요. 두 사람 중에 과연? 누구를 택해야 할지......
누구를 택하는가에 따라서 주소저의 마음도 알게 되겠군...]
하고 조롱하듯 히죽거리는 도옥을 노려본 주약란은 손을 들어
이마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올렸다.
정말 딱하고 난처한 순간이었다.
양몽환을 구해서 마음속에 그리던 정을 나타내 보일것인가,
아니면 동생처럼 아껴주던 조소접을 택해서 의리를 지킬 것인가.
심히 곤란한 입장에서 주약란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도옥! 정말 조건부로 교환하자는 건가요?]
[물론이오. 그대가 어떤 사람을 택하고 어떤 사람을 남기든 관계없소
만일 남긴 사람을 구하고 싶으면 한번 더 이 도옥을 사로잡으면 될 것이오.
그때도 역시 조건부로 교환하자고 할 것이니까!]
과편 도옥은 냉호하고 계략이 있는 악동(惡童)이라고 생각하며 주약란은 이를 갈았다.
[그러면 내가 한번 더 당신을 잡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가요?]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일이오.
그러나 주소저가 이 도옥을 한번 더 사로잡기만 한다면 남긴 사람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만일에 그렇지 못하면...그렇다고 남긴 사람을 해치겠다는 말은 아니오.]
주약란은 듣기 싫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오른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화제를 바꾸어 싸늘하게 물었다.
[도옥! 삼음신니(三音神尼)가 남긴 무공 가운데 관절(關節)을 비트는 무공이 있는데
분근착골(分筋錯骨) 수법에 비해 그 맛이 어떤 것같죠?]
하는 말에 도옥의 얼굴빛이 대뜸 흙빛으로 싹 변하며 눈을 크게 뜨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다급하게 묻는 도옥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며칠간 양상공이나 조소저가 당신에게 받은 고통이 어떠하다는 것을 당신에게
직접 느끼게 하겠단 말이죠.]
하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들어올렸던 손을 그대로 내밀어 도옥의
어깨와 팔을 연결시키는 관절을 우지끈 떼어놓고 마는 것이었다.
순간, 으악! 하는 신음소리도 변변히 내지못한 도옥은 입을 딱벌리며 땀을 쭉 흘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지,
아니면 무슨 계략이 있는지 비지땀을 좔좔 흘리며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비틀던 도옥은 고통을 참으며 큰 소리로 외치며 말했다.
[양몽환을 데리고 나와라!]
그러자 돌문이 드르륵 열리며 도옥의 화신 두 명이 양몽환을 부축하고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때, 주약란은 다시 손을 들어 도옥의 오른 팔 관절마저 비틀어 놓으려고 하는데
도옥의 음성이 바로 터졌다.
그것은 두 명의 부하에게 하는 소리였다.
[너희들도 삼음신니의 관절을 비트는 수법을 알고 있겠지?]
그러자 양몽환을 한 팔씩 부축하고 있던 두 명의 제자는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대답하였다.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주님!]
[그럼, 됐다. 지금 여기 주소저가 이 스승의 관절을 비틀고 있다.
너희들도 그 양몽환의 관절을 비틀어라.]
순간, 주약란은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벌어진 입에서는
<이 지독한 놈!>
소리가 연방 터져나왔다.
그러자 도옥의 명령을 받은 두 명의 제자는 금방 달려들어 양몽환의 두 팔을 하나씩 거머쥐는 것이었다. 위기일발의 순간,
주약란은 정신없이 소리치고 말았다.
[가만두지 못해!]
식은 땀을 흘린 주약란은 마저 부러뜨리려던 도옥의 오른 팔을 놓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그대로 양몽환의 두 팔을 쥐고 있는 두 명의 부하와 도옥을 노려보며 날카롭게 외쳤다.
[도옥! 부하에게 명해서 양상공을 데려온 것이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요.
설마 이것이 내가 양상공을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모르고 한 일은 아니겠죠?]
[흥! 재간껏 해보시오.
그러나 우선 비틀어 놓은 이 도옥의 어깨부터 이어 놓으시오.
만일 이 도옥의 부하들이 알면 양몽환을 그냥두지는 않을 거요.]
하고 도옥은 제자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도옥의 부하에게 두 팔이 붙들려 있는 양몽환을 보고는
만약 도옥의 관절을 부러뜨리고 그의 말대로 이어주지 않으면 양몽환이
당하는 고통보다 주약란 자신이 더 괴로을 것같아 아무 말없이 부러뜨렸던
도옥의 왼쪽어깨를 이어주고 말았다.
그리고는 도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도옥! 당신의 부하들이 양상공의 아혈(啞穴)을 짚은 것같은데
나도 당신의 아혈을 짚어주는 것이 어때요?]
하는 말은 양봉환의 짐은 아혈을 풀어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부하들을 돌아보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될 수 있는대로 이 주소저에게 접근하지 마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두 명의 부하는 즉시 양봉환을 이끌고 암벽 가까이 뒷걸음질쳐 주약란과의 거리를 넓혔다.
그러자 다시 도옥은 명령을 내렸다.
[그럼, 양몽환의 아혈을 풀어줘라!]
역시 대답을 한 부하들은 순순히 양몽환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그제야 주약란은 안도외 숨을 내쉬었다.
[나도 이제는 당신을 해치지 않겠어요.
그러니만큼 내가 심소저를 구해 양상공과 부부간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 동안 가만히 있어요.]
하는 말에 도옥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즉시 주약란은 쓰러져있는 하림을 일으켜 등심에 손을 대고는 진기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막혔던 피가 순환 되기를 기다려 조용히 하림을 불렀다.
[심소저! 이젠 눈을 떠도 돼요.]
그러자 하림은 번쩍 눈을 뜨며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하림을 내려다 보던 주약란은 그녀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지금 양상공이 앞에 있어요.
그간 도옥에게 속은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용서를 빌어요.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결과가 돌아와요.]
그러자 고개를 번쩍 들고 주위를 살피던 하림은 한쪽 구석에 부축되어 있는
양몽환을 보고는 주르로 눈물부터 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급히 양몽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는 하림이었다.
[용서해 주세요. 일시 도옥에게 속아 혼인파기서에 수인까지 찍게 했어요.]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흔들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하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쓰디쓴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시오.]
하는 바로 그때, 뒤에서부터 도옥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뭘 보고 있어! 양몽환을 데리고 가지 못해!]
자기의 부하에게 벽력갈이 고함을 지르는 소리에 두 명의 부하는 설설 기며
급히 양몽환을 끌고 옆 석실로 사라졌다.
순간, 정신이 혼란해졌던 하림은 급히 양몽환의 뒤를 따르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다른 두 명의 부하가 나타나 하림을 가로막으며 금환검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이때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 하림은 급한 마음에 두 손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주약란의 다급한 음성이 석실을 울렸다.
[심소저! 그만 돌아와요.]
하는 소리에 두 명의 부하는 얼핏 돌아서는 하림의 소매자락을 찢고는 그대로 다른 석실로
사라지고 드르륵 돌문이 닫히고 말았다.
꿈 속에서처럼 잠시 만나 본 양몽환이 다른 석실로 사라지자
하림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몸을 날려 금방 닫혀진 돌문을 들이받고는 힘없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주약란은 급히 하림에게로 달려가 일으켜 세웠다.
[심소저! 너무 상심말아요.
지금 도옥을 사로잡아 놓고 있는 만큼 양상공을 구해내는 것은 시간 문제에요.]
하며 위로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하림은 가날픈 몸으로 돌문을 들이받은 탓인지 부혈(浮血)이 요동하고 내부까지 통증이 왔다.
달걀로 바위를 부수는 격이 되고만 하림은 겨우 정신을차리고 주약란이 이끄는대로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는 도옥을 노려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도옥! 만일 양상공의 몸에 어떤 상처라도 입힌다면 나는 당신을 물어 뜯어 죽이겠어요 .]
평생동안 이처럼 저주에 찬 말을 과연 몇 번이나 했을까 싶도록 순진하기만 하던? 하림이었다.
그러한 하림이 지금 도옥을 노려보며 이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그러한 하림을 보는둥? 마는둥 싸늘하게 읏으며 다른 석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다.
[조소접을 데려와라!]
그러자 다시 돌문이 드르륵 열리고 그 열린 돌문으로부터 호의로 감싼 두 명의 장정이 조그만
철창을 메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한편, 그 철창 속에는 두 눈을 꼭 감은 초췌한 얼굴의 조소접이 힘없이 앉아 있었다.
순간, 주약란은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괴로움을 당해야했다.
더구나 그녀의 어머니인 취이(翠夷)의 은정(恩情)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다.
그러나 심한 충격을 받은 자신의 모습을 도옥에게 보이기 싫은 주약란은 시큰해지는
코허리를 매만지며 다음을 주시하고 있었다.
실로 오년 만에 만나는 해후(邂逅)가 너무나 가슴 아프기에 인간의 운명블 다시 한번
기구하다고 되씹는 주약란이었다.
이때, 도옥은 두 명의 장정에게 명령을 내렸다.
[철창을 내려놓고 조금 비켜 서 있어라!]
하고는 주약란에게 고개를 돌리며 씨익 웃는 것이었다.
어떠냐는 뜻이다. 그러나 주약란은 당황하거나 괴로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태연을 가장했다.
[도옥! 조소저도 아혈을 짚었소?]
하는 물음에 도옥은 한번 더 씨익 웃었다.
[모르겠소! 직접 말해보시오.]
[모른다고? 좋아요.
만일 조소저가 어떠한 고통을 받는다면 모두 당신의 몸에서 보상을 받아내겠어요.]
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인 주약란은 번개같이 오른쪽 손을 들어 도옥의 요혈 혈도를 짚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귀원비급에 있는 무공중에 스스로 운기하여 막힌 혈도를 유통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겠죠?]
하는 것이었다.
[물론 알고 있소.]
하고 대답하는 도옥을 노려본 주약란은 하림에게 고걔를 돌렸다.
[도옥을 지키고 있어요. 아직 해치지 말고.]
하는 말에 하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옥에게로 다가가 노리고 감시했다.
그러는 동안 주약란은 조소접이 갇혀있는 철창으로 다가가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조소접을 불렀다.
[조소저!]
그제야 살며시 눈을 뜨던 조소접은 주약란을 보는 순간,
주르르 두 줄기의 눈물을 홀리는 것이었다.
[공주마마!]
겨우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같은 심정을 억제하며 주약란은 눈물을 흘리는 조소접을 조용히 웅시했다.
[울지 말아요...... 무공은 폐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고통은?]
연이어 묻는 말에 조소접은 고개를 천천히 흔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미안해요. 그러나 공주마마에게 너무나 죄송해요.]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란대(蘭黛)공주는 이미 죽고 주약란이란
사람이 새로 탄생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언니라고 불러줘요.]
하며 굳이 옛날 황제의 딸로 태어난 자신을 감추려 했다.
그러자 조소접도 머리를? 끄덕이며 쓸쓸히 대답했다.
[알겠어요. 언니!]
도옥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다정선자로 이름을 떨치던 그 기백은 다 어디로 갔는지
가없기만 한 조소접을 보고 있는 주약란은 애써 과거를 잊으려고 했다.
그래서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무공은 발휘할 수 있겠죠?]
[예, 걱정없어요.]
[그럼 나도 안심하겠어요. 모쪼록 몸을 조심해요. 곧 구해 내겠어요.]
[언니! 염려하지 말아요. 도옥이 비록 겉으로 표가 나지않게
저의 근(筋)을 짚어 운기행공(運氣行功)을 못하게 했지만 그것은 조금도 걱정할 것이 못돼요.
도리어 이 며칠 동안 많은 무공을 생각해 냈어요.]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던 조소접은 음성을 낮추며 주약란을 불렀다.
[언니! 한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무슨 말인데?]
[도옥이 종종 저와 양상공을 한 곳에 가둬요.]
하는 말에 주약란은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서로 역경에 처한 몸으로 상부상조해서 위로받도록 해요.]
그러자 조소접도 말하려던 것을 그만 두고 말았다.
그것은 양몽환과 조소접 자기를 같은 방에 가두고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도옥의 행동을 말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워낙 성정(性情)이 깨끗한 주약란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래서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다론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도옥의 의도는 다른데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양상공과 함께 있는 동안
전음지입밀(傳音指入密)의 수법으로 양상공에게 귀원비급의 요점과 최근에 터득하게 된
비결을 일일이 가르쳐주었어요.]
[잘했어요. 이 다음에 이소저와 심소저가 알면 고맙다고 인사를 할 거에요.]
[저는 그런 인사를 받고 싶어서 한 일은 아네요.
다만 언니에게 용서를 빌려는 마음에서 했을 뿐이에요.]
[너무 미안해 하지 말아요.
조소저가? 강호에서 종횡으로 다닐때 이 언니는 조소저를 천기석부로 데려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어요.]
[제가 속세를 떠들썩하게 한 것은 어린 마음에서 저지른 일이에요.
진심으로 언니애게 용서를 빌겠어요.
그러나 인명을 해치지는 않았어요.]
사실 다정선자로 개명하고 강호에서 날뛰던 조소접을 주약란은 매우 못마땅히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고 만나면 단단히 쓴 맛을 보여주리라고 별렀다.
그러나 오년 만에 해후가 기막힌? 장소이고 더구나 조소접 자신이 먼저 용서를 비는 데는
주약란도 더 이상 꾸짖을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한마디쯤은 따끔하게 말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주약란은 약간 노기를 띄웠다.
[인명을 해치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안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만큼 강호를 소란하게 했으면 그것만으로도 죄가 충분해요.]
그러자 조소접은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소매(小妹), 용서를 빌겠어요. 언니!]
하고는 가늘게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그러한 조소접을 보고 있는 주약란 역시 마음이 좋을리 없었다.
[됐어요. 잘못을 알고 뉘우치면 새출발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는 음성을 낮추어 그녀의 상심한 마음을 달래듯 화제를 바꾸었다.
[철창을 탈출할 자신이 없으면 조금 더 기다려요.
그리고 도옥에게 접매의 무공을 여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요.]
[예, 명심하겠어요.]
[그럼, 안심하고 있어요.]
조소저에게서 물러난 주약란은 다시 도옥에게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끝났어요. 데리고 가도록 해요.]
했다. 그러나 이때의 도옥은 주약란애게 짚혀 막혔던 여러 곳의 요혈 중에서
두 곳을 운기하여 유통시키고 계속 다른 곳의 혈도를 유통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는데 주약란의 말소리가 들려 운기를 중단한 도옥은 시간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러나 태연히 입을 열었다.
[왜 좀더 이야기하지 않소?]
[할 말은 다 했어요. 시간도 없고.....]
[시간이 없다고? 이 도옥이 말한 이상 하루종일 이야기를해도 좋소.]
그러면 그 동안에 자기는 운기 조식하여 막힌 혈도를 모두 풀 수 있기 때문에 능청을 떠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더 듣지 않고 왼쪽 손을 들어 도옥의 오른쪽 손목을 힘껏 움켜쥐고는 잡아끌었다.
[이젠 가야지!]
하던 주약란은 급히 도옥의 막힌 혈도를 모두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옥 자신이 진기를 운집시켜 이미 풀어놓은 두 곳의 혈도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도옥은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해마지 않았다.
<과연 놀라운 주약란이군!
이 도옥이 미리 진기를 운집시켜 두 곳의 혈도를 유통시킨 것을 알고 있구나!>
혀를 내두르던 도옥은 주춤주춤 주약란에게 이끌려 가다말고 멈칫섰다.
[어디로 가자는 거요?]
그러자 주약란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도옥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양상공과 조소저 모두 당신에게 고통을 받고 있어요
그렇다면 당신도 응분의 고통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지금 당신에게는 두 가지의 길이 있어요. 그중에서 마음대로 한길을 택해요.]
[마음대로 택하라? 좋소. 말해보시오!]
[한 가지는 양상공과 조소저를 놓아주면, 그래서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한다면
나도 당신을 손끝하나 다치지 않고 놔주겠어요.]
[흥! 또 그 소리군! 또 한 가지는 뭐요?]
[다른 하나는 지금 이 계곡 밑에 소림파, 무당파의 고수들이 많이 모여 있어요.
미안하지만 그곳까지 내려가서 그분들과 의논하고 처리한다는 거에요.]
하자 도옥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뒤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저 조소저를 데리고 가라!]
하자 그때까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장정은 냉큼 철창을 메고 다른 석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도옥은 주약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양몽환과 조소접 둘 중에 하나만 택하시오.]
하고 여전히 한 사람만 내놓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게는 못해요. 어서 계곡 밑으로 내려가요.]
하고 말한 주약란은 갑자기 도옥의 손목을 쥔 다섯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도옥은 전신의 힘이 쏙 빠지며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도도하던 도옥은 주약란의 섬세한 손가락에 맥을 못추고 허수아비처럼 휘청휘청?
주약란의 손에 끌려 걸음을 옮겨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하림이 천천히 따랐다.
얼마를 주약란에게 끌려나오던 도옥은 몸을 비틀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목청을 돋우었다.
[주소저가 지금 스승을 데리고 골짜기로 내려간다.
만일 열두시간이 지나도 이 스승이 돌아오지 않으면 양몽환과 조소접을
각기 열두 동강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후환이 없도록 하라!]
틀림없이 자기 부하들에게 소리치는 명령이었다.
도옥의 외치는 소리에 주약란은 잠시 앞이 암담한 기분이었다.
도옥의 성질로 보아 틀림없이 자신이 불리하면 양몽환과 조소접을 죽일 성격의 소유자다.
그런데 지금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도옥의 음성은 그 자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살기를 띄우고 있는지 생각만 해도 절로 소름이 끼칠 일이었다.
그런데 주약란의 생각은 도옥을 죽이고 양몽환이나 조소접이 죽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었다.
도옥이 백명 죽는다 해도 살리고 싶은 양몽환과 조소접이었다.
이처럼 급박한 시기에서 도옥은 자기를 놓아주는 조건으로 양몽환과 조소접 두 명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라는 것이다.
실로 난감하고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도저히 주약란 자기로서는 누구를 택하고 누구를 남겨야할지 결정은 고사하고
생각해 보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얼마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약란은
기어이 옆에 있는 하림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심소저! 지금 도옥은 자기를 놓아주는 조건으로 양상공과 조소저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 놓아주겠다는데 나는 정말 누구를 택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나 하림이라고 해서 선뜻 양몽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주약란을 존경하고 그녀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지 거역하지 않는 하림이었다.?
그러한 하림이 주약란을 대신해서 가볍게 입을 놀릴 처지는 못되었다.
[제가 어떻게 결정하겠어요?]
[그럴거야. 심소저도 나만큼 괴롭겠지......]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내쉰 주약란은 드디어 결정을 내린 표정으로 하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할 수 없어...... 두 명 다 구하지 않기로 해야겠어!]
하는 말에 하림은 기대가 어그러진다는 듯이 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어요?]
[나는 가장 악독한 수법으로 도옥에게 고통을 주겠어...
그래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반 죽음 상태에서 평생동안 괴롭혀주면 양상공과 조소접에
대한 원수를 갚는 셈이 될거야.]
그 말에 하림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주약란은 냉정히 돌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주약란이 먼저 돌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도 누구 하나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하림은 뒤를 따라오며 흐느껴 울기만 했다.
양몽환을 구하지 않겠다는 주약란의 말이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을 준 모양이었다.
이때, 흐느껴 우는 하림을 돌아다 하림을 기다렸다. 보던?
주약란은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위로해 주었다.
[심소저! 울지 말아요.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 있어요.
내가 양상공을 구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야.
더구나 양상공은 그만큼 덕망을 쌓은 분,
천하 무술인들이 모두 그 이름을 길이 길이 빛낼 거에요.]
그러자 하림은 눈물을 닦으며 표정을 굳혔다.
[알겠어요. 그러나 란이 언니! 한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무슨?]
[예전부터 생각해온 일이고 더구나 이요홍 언니와도 언약이 된 일이에요.
비록 홍이 언니와 저는 함께 양상공의 부인이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 정실(正室)자리를 비워두고 있어요.]
[그건 왜?]
[그건 란이 언니에게 드릴려고요.]
[뭐, 나를?]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던 주약란은 더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돌아서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양몽환과 조소접을 구하지 못하고 사지(死地)에 방치하는 것이
못내 가습 아픈데 철부지같은 하림의 말에 주약란은 알 수 없는 노여움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차마 하림에게 화를 내지 못하고 눈씹을 파르르 떨며
도옥에게 날카로운 고함을 터뜨리고 말았다.
[도옥! 속히 밧줄을 내리지 못해요!]
계곡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날카롭고 표독스러운 주약란의 노한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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