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백장봉에 모인 대사들
<<누구를 막론하고 여기서 멈추시오!>>
말뚝에 쓰여진 글자를 내려 읽고 올려 읽고 하며 붉으락 푸르락 분통을 터뜨리던 도옥은
코웃음을 치면서 발길로 힘껏 걷어차 버렸다.
그 바람에 말뚝은 허공으로 부웅 떴다가는 삼장 밖으로 나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목덜미에 핏대를 세우며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지만 이 도옥과 만나고 싶으면 정정당당히 나타나라!]
그 순간, 갈대밭 속에서 역시 차가운 음성이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도옥! 너같은 악종은 벌써 죽였어야 했다!]
하며 싸늘히 응답해오는 곳을 노려보던 도옥은 거의 삼장이나 될 듯 한 거리를 가늠하며
즉시 진기를 운집했다.
그러자 다시 갈대밭 속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핫...... 하...... 너도 알겠지만 양몽환, 조소접은 이미 우리들이 구해왔다!]
그 말에 도옥은 또 한번 코웃음을 치고는 되물었다.
그러나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뭣이? 그게 정말인가?]
소리친 도옥은 땅을 박차며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감과 동시에 재빨리 뽑아든
금환검으로 방어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풍차같이 돌리는 도옥의 금환검에 갈대가 썩은 풀 쓰러지듯 쓰러지고?
도옥이 내려선 주위 다섯자 둘레에는 갈대 한대 없는 평지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도옥은 즉시 눈썹을 모았으나 보이는 것은 갈대뿐 고함치던 사람은 어느새 도망을 갔는지
인기척도 없었다.
도옥이 울화통을 터뜨리고 달려들긴 했지만 상대방을 죽이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온몸에
진흙만 흠뻑 뒤집어 쓰고 말게 되자 분통이 터질대로 터졌다.
잠시 울화통을 터뜨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자신의 행동이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는 즉시 몸을 되돌려 돌아오고 말았다.
[헛...... 허...... 어떤 자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빠른 놈인데...... 말을 끝내자 마자
즉시 달려갔는데 그 사이에 도망쳐버렸단 말야. 헛...... 허......]
하며 허세와 감탄을 함께 섞어 연발하던 도옥은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이었다.
[우리들로서는 이 갈대밭 속에서 자유자제로 몸을 놀릴 수 없는 형편이오.
그런데다 이곳까지 와서 되돌아 설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러니만큼 적들이 아무리 빈정거려도 모른 척하고 지나갑시다.]
하며 자기의 의견을 말하자 곧 왕한상이 호응해 왔다.
[방주 말씀이 옳습니다. 그럼, 제가 앞장을 서죠.]
어깨를 추켜보인 왕한상은 쇠부채를 쏴악 펴 자기 몸을 보호하며 당당한 걸음으로 앞장서서 나갔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또 다시 갈대발 속애서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도옥! 고개를 들어라! 그리고 누가 왔는지를 봐라.]
순간, 도옥은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러자 십여장 앞 길에는 장검을 든 십여명의 시녀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 여자가 말을 탄채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힐끔 쳐다보는 도옥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지고 말았다.?
뒷 모습으로 얼핏 보아도 틀림없는 조소접이었다.
깜짝 놀란 도옥은 큰 소리로 왕한상을 불렀다.
[왕형! 어떻게 된 거요? 틀림없이 수거 속에 있어야 할 여잔데.... 응? 똑똑히 보았소?]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노롯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눈이 홱 돌아 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황한 도옥은 어쩔줄을 모르고 왕한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맥없이 대답하는 왕한상이었다.
[보았습니다. 방주님!]
[그럼, 확실히 조소접이란 말이오?]
[글쎄요. 닮은 것같기는 하지만 조소접은 아닐겁니다.
수거 속에 단단히 묶어두었는데 무슨 재간으로 나온단 말입니까?]
하고 어정쩡한 대답을 하자 도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 그건 이 본좌도 같은 생각이오.
만일 지금 지나간 여자가 진짜 조소접이라면 그녀의 성격으로 이 도옥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거요.
그런데 그냥 지나간 것으로 보아 조소접은 아닌 것같소.]
하고는 조소접이 아니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일단락읕 지으려는 태도에 눈치가 빼른 왕한상은
술찍 말을 돌렸다.
만일 그녀가 조소접이라는것이 사실이라면 사태는 심상치 않을 것같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 갈대밭이나 빠져나가서 다음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십시다.
만일 적들이 나타나면 그때그때 처리하도록 하고 말입니다.]
그러는 바로 그때, 또 다시 웃음소리가? 터지며 이어서 왕한상을 소리쳐 부르는? 것이었다.
그 음성은 도옥 일행의 행동을 세밀히 보고 있다가 움직이려는 기색만 보이면 소리치고
또 소리치고 하는 것이 꼭 정신을 홀리려는 수단같아 절로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정체를 나타내지 않고 소리만 치는데는 듣기 싫어도 들어야 했다.
[왕한상! 당신은 그래도 무예계에 이름께나 있는 인물이오.
더구나 수년 전만 하더라도 당신을 선배라고 부르던 도옥이오.
그러던 당신이 환장을 해도 분수가 있지, 도옥 앞에서 아첨하며 방주님!
제가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소?]
아무리 두꺼운 얼굴을 가진 왕한상이라도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입이 열개 있어도 말할 건더기가 없는 왕한상이었다.
그러는 한편, 도옥은 눈살을 찌푸리며 홀로 생각에 잠겼다.
지금 갈대밭 가운데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정체 불명의 괴한에게 회롱을 당하고 있는 꼴이
생각할 수록 분하고 원통했다.
<도대체 어떤 자가 이토록 모든 비밀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인가! 말하는 것으로 보이이
이 도옥과 잘 아는 자가 분명하다.>
생각하며 옆에 있는 승일청에게 고개를 돌렸다.
[승형! 누구냐고 좀 물어보시오.]
하는 말에 승일청은 목청을 돋우었다.
[여보시오! 귀하가 갈대밭 속에 사람을 매복시킨 것만 보아도 결코 무명지배(無名之輩)는 아닌 모양이오. 그러나 숨어서 입으로만 떠든다는 것은 무술인답지 못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소?]
그러자 갈대밭 속에서는 코웃음 소리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승일청! 당신도 쓸데없이 혀를 놀리지 마시오.
옛날 천용방의 오기단주(五旗壇主) 가운데 당신이 그래도 가장 정직하고 의협심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고 더구나!무예계에서 승일청이라는 이름 석자만 대면 모두? 우러러 보았소
그러나 부끄럽게도 왕한상과 같이 도옥을 받드는 꼴은 정말 못보겠소.]
그러나 승일청은 분통을 터뜨리는 대신 기침만 크게 했다.
[귀하는 누구요? 무엇 때문에 숨어서 나오지 못하는 거요?]
하고 소리치자 옆에 섰던 도옥이 승일청을 불렀다.
[승형! 아무래도 수상하오.
저 자의 말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들이 잘 보이는 곳에 숨은 모양인데
왜 우리는 그를 볼 수 없는지 모르겠소?]
그러자 이번에는 우방이 끼어 들었다.
[방주님! 놈들은 갈대밭 속에 숨어 있지만 우리들은 서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놈들은 우리를 볼 수 있지만 우리들은 그들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는데 다시 갈대밭 속에서 이번에는 우방에게로 공격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었다.
[우씨(于氏) 형제들아! 너희 형제가 강호에 이름을 떨치기는 최근의 일이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재명(才名)을 날리던 형제가 아니냐?
그런데 무슨 일로 도옥의 앞잡이가 되었단 말인가? 언젠가 한번은 꼭 후회하리라!]
뜻밖에 인신공격(人身攻擊)을 받은 우씨 형제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혀를 내두를 뿐
끽소리도 못했다.
더구나 자기들 형제의 이름과 과거지사까지 들추어내며 후회할 것이라고 호통을 치는데는
목이 움츠러들 지경이었다.
흡사 옷을 홀딱 벗고 대낮에 큰 길가에 서 있는 지경이 되고만 도옥 일행은 서로 눈치만 살피고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입만 벙긋 하면 갈대밭 속에서 영락없이 과거를 들추어 내며 부끄럽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속이 상한 도옥은 왕한상을 슬쩍 보며 혼자 생각했다.
<갈대밭 속의 인물은 분명히 이 도옥의 부하들을 이간질시킬 계획인 모양이군
...... 을 계획에 말려들면 큰일이지.......>
여기까지 생각한 도옥은 속이 탈대로 타 견딜 수가 없었다.
이어 금환검을 빼어들고 앞에 있는 갈대를 후려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즉시 갈대밭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온통 불바다로 만들어 놓겠다.
이 도옥의? 성질을 잘 아는 자라면 선뜻 나서라!]
그러나 갈대밭 속에서는 여전히 통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큰 소리로 응답해 왔다.
[흥! 불을 지른다고? 핫......? 하...... 그건 이 늙은이가? 기다리는 일이지.
불을 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질러라!
그러면 너 도옥과 너의 늑대같은 부하들은 새까맣게 타 죽을거다!]
그러자 도옥은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얼굴에는 살기마저 돌았다.
[건방진 소리말고 썩 나와라!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겁장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서 나와라. 할 이야기가 있다.]
[서두르지 마라! 너 도옥이 살아서 이 갈대밭을 빠져나가지는 못할테니까!]
[뭐라고? 어느 놈이 이 도옥을 여기다 매어둘 수 있단 말인가. 흥! 잠꼬대하지 말고 어서 나와라!]
[핫......하......그래도 큰 소릴 치는군!]
하는 소리가 갈대밭 속에서 쩌렁쩌렁 울려오는 순간에 이미 도옥은 뽑아들었던 금환검과
한 덩어리가 되어 갈대밭 속, 소리나는 곳으로 이미 몸을 날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전광석화갈이 눈깜짝할 사이에 우거진 갈대를 쓰러뜨리며?
달려들자 갈대밭 속에서 한줄기 흰 섬광이 번쩍하며 도옥의 접근을 막아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자 할 수 없이 갈대밭 속에 내려선 도옥의 눈앞으로 나타나는 노인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노인의 정체를 살피려고 눈을 크게 떴을 때는? 거의 오십세가 된 노인이 장검을 들고?
건너편 갈대숲 속으로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순간, 도옥은 당장 달려가 한 갈에? 요절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우거진 갈대? 숲으로 해서 앞이 콱콱 막힐 뿐 아니라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 속에서는
움치고 뛸 재주조차 없었다.
아무리 두공이 강하다 해도 급한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몸이었다.
더구나 지금 갈대숲 속으로 도망간 노인을 꼭 처치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도옥은 쫓기를 단념하고 말았다.
그런데다도망간 노인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턱대고 갈대숲 속으로
쫓아 들어가다 어떤 위험이 닥친다면 따라가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에서
그만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자 왕한상이 도옥에게 마주 다가오며 도옥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들은 고의로 방주님을 노하게 하려는 계획인 것같습니다.
방주께서는 그들이 뭐라고 해도 상관하지 마십시오.]
하는 말에 승일청도 같은 말을 했다.
[왕호법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뭐라고 해도 그냥 이곳을 지나갑시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도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소, 그러면 될 수 있는 한, 속히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합시다.]
[그럼,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왕한상의 말이 떨어지자 도옥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겨 놓기 시작했다.
왕한상을 선두로 해서 갈대숲 사잇길을 다시 십장 가량 갔을때?
대나무 가지로 앞길을 막고 하나의 펫말이 꽂혀 있는 말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팻말에는 다음과 갈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
<<여기 있는 갈대에는 극독이 묻어 있다. 모름지기 되돌아감이 좋을 것이다.>>
재빨리 먼저 팻말의 글을 읽은 승일청은 자기나름대로의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 갈대에 독이 묻어있다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이 주위에 무슨 함정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따위 장난을 할리 없습니다.]
하는 승일청의 말에 앞을 내다본 일행은 저마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것은 앞에? 보이는 갈대숲이 지금까지 지나온 숲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발 디딜 틈이라기 보다 바람 한점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빽빽이 들어선 갈대숲이었다.
그리고 경신술을 발휘해서 한번에 뛰어넘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넓었다.
얼마 동안 거리를 눈으로 가늠해 보던 도옥은 입을 열었다.
[이놈들이 우리들을 교묘히 속이려는 것뿐 아니라 여기서 자웅을 겨루어보자는 의도가 있는 모양이오.]
약간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구환검(九環劍)을 쓱 뽑아들면서 승일청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방주님!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하고 소리치고는 구환검에 힘을 주어 비잉 돌리다가 그대로 가로막은 갈대를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의 심후한 공격을집중한 구환검에 박혔던 갈대가 회오리? 바람에 몰려자듯
우수수 꺾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휘두르는 구환검에 사정없이 꺾어진 갈대는 이리 날고 저리 날고 삼시간에
하늘을 가리는 듯했다.
구환검을 휘두르며 앞서 나가면서 길을 열어 놓은 승일청의 뒤를? 따라 도옥이
역시 금환검을 휘둘러 나머지 갈대를 썩은 풀 치듯 하며 나가고 그 뒤를 왕한상과 하림,
우씨 형제가 따랐다.
이리하여 독이 묻어있다는 갈대를 난도질해서 날린 승일청은 드디어 팻말이 꽂혀 있는
갈대숲의 중간 지점까지 나올 수 있었다.
그 순간, 홀연 하늘이라도 꿰뚫을 듯한 호령소리가 들려왔다.
[게 섯거라!]
순간, 펼쩍 놀란 승일청은 구환검을? 고쳐쥐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용두지팡이를 쥔 이창란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줄 알았던 상대가 바로 코 앞에 있다는 것에
자지러질눗이 놀란 승일청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뒤에 섰던 도옥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흥! 또 저 늙은이군!]
귀찮다는 듯이 흥 소리를 터뜨린 도옥은 상대가 의외로 이창란이라는 데에
조금 실망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곧 몸을 날려 이창란 앞에 내려서며 정면으로 대치하고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차갑게 소리쳤다.
[이노영웅! 이렇게 따라다니며 귀찮게 군다면 이 도옥이 무정무의(無情無義)하다는 말은 못할 것이오!]
눈을 부라리며 냉소를 터뜨리는 말에 이창란은 수염을 곤두 세웠다.
[뭣이? 언제는 네놈이 정이 있고 의리가 있었더냐? 이 짐승보다 못한 놈!]
꽂꽂이 수염을 세운 이창란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듯이 도옥의 머리를 겨누고 용두지팡이를? 날렸다. 그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강력한 장풍이 회오리 바람처럼 불어 닥치고 말았다.
그러나 도옥은 슬쩍 옆으로 피하면서 금환검을 휘둘러 이창란의 장풍을 막아내며
즉각 공격의 태세로 몸을 비스듬히 뉘었다.
그 순간, 한줄기의 날카로운 검광과 섬광이 뒤섞여 이창란의 가슴으로 곧장 덮쳐 들어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각기 한 수씩 공방전을 벌린 후 이창란은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머리 위로
윙윙윙 용두지팡이를 날렸다.
그 바람에 일대 주위는 웅후한 용두지팡이의 장풍으로 먹구름을 뒤집어 씌우는 듯 주위가 어두워졌다.
더구나 아름드리 나무를 뿌리채 뽑아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바람까지 일으키는 이창란의 공격에 비해
도옥은 도옥대로 몸을 가볍게 놀리며 요리조리 피하면서 이창란의 신력(神力)을 막아내며
사이 사이로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원숭이가 나뭇가지 사이로 뛰어다니며 재롱을 피우듯 하는 도옥을 한 수에
요절내지 못하는 이창란은 노성을 지르며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어떤 때는 용두지팡이를 위로 세워
수십년 동안 단련한 심후한 공격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듯 기세가 등등해서 호랑이처럼 덤벼드는 이창란의 용두지팡이에 일시 기세가 꺾인 도옥은
자신의 날카로운 무공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더구나 이창란의 무공을 능가할 만한 수법도
찾아내지 못하고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그러던 도옥은 이창란의 허리를 노리고 비호같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역습을 감행하고는
재빨리 뒷걸음쳐 용두지팡이의 장막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듯 맹렬한 싸움이 어떤 오십 여합, 여전히 같은 기세로 살벌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때 한 옆에서 도옥과 이창란의 공방전을 보고 있던 승일청과 왕한상은 서로 이상한 감회에 젖어 있었다
그것은 용두지팡이를 휘두르는 이창란은 옛날 천용방의 방주였고 금환검을 휘두르며 도전하는
도옥은 지금 천용방의 방주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천용방의 신구(新舊) 방주가 지금 불을 뿜는 치열한 싸움을 벌리고 있다는 데는
그들의 운명이 너무나 숙명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기도했다.
그런데다 다 같은 두 명의 방주 중에서 과연 어느 방주를 도와 싸워야 하는지조차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한평 이창란의 부하인 검북사의는 자기들의 주인인 이창란이 이렇듯 눈썸과 수염을
곤두세우고 노도같이 달려들며 무섭게 싸우는 것을 처음 보는지 눈을 크게 뜨고 이창란의
용두지팡이만 주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중에서도 공방전은 그래도 치열하게 다시 십 여합, 갑자기 휘파람을 불어제친
도옥이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뛰어 오르는 것이었다.
얼마를 허공으로 올라가던 도옥은 한바퀴 빙그르르 몸을 돌려서는 흡사 병아리를 덮치는
매처럼 머리를 아래로 하고 곧장 내려꽂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쉴 사이없이 금환검을 휘둘러 싸늘한 검광을 수천만의 줄기로 날리면서
이창란이 뿌려놓은 용두지팡이의 장막(杖幕)을 뚫고 급강하하여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이창란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가 대갈일성! 목줄기에 핏대를 올리며 오른 손을
내밀어 건원지의 일지풍(一指風)을 쏘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지풍과 검광이 함께 얽혔다가 펑!
소리를 내며 갈대를 한아름 하늘 높이 날리고 곧이어 허공에서 내려 꽂히던
도옥의 몸이 일장 밖으로 나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길을 돌아서 가자!]
소리친 도옥은 그대로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급히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왕한상과 승일청 그리고 우씨 형제는 하림을 호위하듯 하면서 저만치 달려가는
도옥의 뒤를 헐레벌떡 따라가고 말았다.
그와 반면, 도망치듯 달려가는 도옥 일당을 뒤쫓으려던 검북사의는 비틀비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는 이창란을 발견하고는 급히 달려갔다.
그러자 이창란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음......이젠 늙었구나, 늙었어!]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신음과 같은 탄식이었다.
검북사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근심스럽게 이창란을 내려다보다가
힘을 합쳐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다옴 순간!
부축해 일으켜 세운 이창란의 등과 위쪽 어깨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피를 발견하고는
일제히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주공님! 상처가 대단하십니다.]
하는 검북사의를 바라보던 이창란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관계없다. 이까짓 상처쯤 염려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도옥이 놈도 쓴맛을 단단히 봤을거다......]
하고 말을 일단 마친 이창란은 얼굴을 씰룩거리며 다시 말을이었다.
[이젠 우리도 떠날 때가 됐군! 옥소아가씨를 불러서 곧 철수하도록 부탁해라!]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는 듯이 갈대숲 속애서 옥소선자가 뛰어 나왔다.
[노선배님! 상처가 어떠하십니까?]
이창란은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벙긋이 웃었다.
[별로 깊은 상처는 아니오. 세곳을 가볍게 찔린 모양이오만 이 늙은이는 아직 견딜만 하오.
그러나 아깝게도 도옥을 놓쳐 버렸구려.]
하고 도옥을 놓친 것을 분해했다.
그러나 옥소선자는 그렇게 애석해 하지는 않았다.[노선배님께서는 너무 애석해 하지는 마세요. 비록 우리들이 계획에 따라 행동한다해도 도망가는 도옥을 막
지는 못할 거에요.그러나 우리들의 처음 목적대로 도옥의 길을 지연시켰다면 그것으로 일은 성공한 셈이 아
니겠어요? 노선배님께서는 속히 몸이나 회복하도록 하세요. 빨리 백장봉으로 가서 주소저를 만나야겠어요.]
긴 이야기를 단숨에 말하는 옥소선자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창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은 생각이오. 아무래도 도옥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주소저외에는 없을 것같소.]
한숨을 내려쉬며 말하는 이창란의 얼굴애는 한없이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검북사의에게 부축을 받으며 백장봉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역시 옥소선자도 조소접으로 분장한 십이화녀들을 이끌고 먼저 백장봉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며칠 후, 정오.
높이 솟은 백장봉이 까마득히 보이는 산밑까지 도달한? 이창란과 옥소선자 일행은 첩첩이 깔린 산봉우리를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먼저 이창란이 낮은 음성으로 옥소선자를 불렀다.
[옥소아가씨! 우리들이 이곳에 들어선지도 반나절이 되었는데 주소저에게서는 왜 소식이 없소? 더구나 구대
문파에서 응원해 왔다는 고수들은 한 사람도 볼 수가 없구려.]
그러면서 산모퉁이를 돌던 바로 그때.
황색가사(黃色袈裟)에 옥여의(玉女意)를 든 숭려가 역시 선장을 든 네 명의 승려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모퉁
이를 접어드는 일진의 승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옥소선자가 소리를 죽여 이창란에게 속삭였다.
[노선배님은 혹시 저 승려들을 아십니까?]
하는 말에 자세히 바라보던 이창란은 역시 소리를 죽여 대답했다.
[자세히는? 모르겠소만 소림사의 장문인(掌門人) 천홍대사가 아닌가 하오.]
하는 때 역시 승려들도 이창란 일행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빨리하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곧 큰 소리로 염불을 외우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이노영웅! 별고 없으시오?]
하고 먼저 인삿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창란도 역시 두 주먹을 쥐고 허리를 굽혔다.
[대사님께서도 무량하시오? 만나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소.]
이창란의 짐작대로 천홍대사가 분명했다.
서로 인사가 끝나자 천홍대사는 뒤에 서 있는 옥소선자를 바라보며 아는 체했다.
[여시주께서는 옥소선자가 아니신가요?]
하며 합장하는 천홍대사에게 옥소선자는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대사께서 저를 기억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하며 얼굴을 붉히자 천홍대사는 다시 합장을 하며 반례했다.
[고맙소이다.]
옥소선자와 인사를 마친 천홍대사는 이창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빈도가 얼마전에 양몽환 대협이 갇혔다는 소식이 있기에 본사백여 명의 고수들을 곳곳에 보내어 소식을 알
아오게끔 하고 이 빈도도 궁금해서 나왔소이다만, 그것이 사실이오이까?]
하고 근심 띄운 표정으로 묻는 천홍대사의 말에 옥소선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예, 그것은 사실입니다만 양대협의 행방을 탐지하셨나요?]
[글쎄 이곳까지 오긴 했소만 도옥도 만나지 못했고 양대협의 행방도 알 길이 없소이다.]
하는 말에 이창란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늙은이도 여기까지 달려왔소만 도옥을 만나 몇번 싸웠을 뿐 다른 소식은 듣지 못하였소이다.]
[그럼 양대협이 이곳까지 옮겨졌다는 것은 사실인가요?]
[그것도 여러가지 사태로 미루어 보아 추측할 뿐이오. 그러나 이? 늙은이의 생각은 틀림없이 이곳에 옮겨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소이다.]
[만일 양대협이 이곳으로 옮겨진 것이 사실이라면 찾아낸다는 것은 어렵지 않소.]
[무슨 묘안이라도 있으시오?]
[묘안이라기 보다 이 빈도가 파견한 본사의 고수 오십명이 내일 이곳으로 올 것이오. 그러면 찾아보기로 하
겠소.]
하고 양몽환을 찾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듯이 대답하는 천홍대사의 말에 이창란은 회색이 만연했다.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오. 그토록 대사께서 염려를 해주시어 고맙기 이를데 없구려.]
[또한 이 빈도가 탐지한 바에 의하면 이곳 백장봉으로 달려온 고수들이 우리 소림사의 고수뿐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모양입니다만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소. 다만 주소저가 이곳으로 먼저 달려온 것만 알고 있습니다.]
하는 말에 천홍대사는 깜짝 놀라며 들었던 옥여의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 것이었다.
[주소저? 그럼 바로 오년 전에 단혼애에서 구대문파 인사를 구해낸 바로 그 주약란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그렇지요. 바로 그 주소저요. 그녀야말로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인물이지요.]
[아주 잘 되었소. 주소저가 왔다면 구대문파의 고수들을 쉽게 통합할 것이오. 틀림없이 통합할 것이오.]
하며 기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실로 다행한 일이오. 그리고 이 늙은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귀사(貴寺)의 고수들에게 두 번이나 도움을
얻었소. 감사를 드리는 바요.]
[아니오. 그것은 그들이 응당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오. 이노영웅께서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 마시오.]
[겸양의 말씀이오. 도움을 입은건 보답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대사님께서는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별
일은 없으셨습니까?]
하는 물음에 대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옥소선자가 한 곳을 가리키며 속삭이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잠깐! 저기 다섯분의 도사님이 오십니다. 호시 무당파(武當派)의 고수들이 아닐까요?]
하는 말에 고개를 돌리자 과연 장검을 멘 다섯 명의 도사가 수염을 휘날리며 산모퉁이를 막 돌아서서 다가
오는 것이었다.
한참 그들을 바라보는 천홍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바로 무당파의 정현도장(淨玄道長)이 오는군요.]
하며 먼저 알아보는 천홍대사에게 고개를 돌린 이창란은 주먹을 쥐며 고마워 했다.
[이 늙은이의 사위 때문에 대사와 정현도장까지 먼 길을 오시게 해서 죄송할 뿐이오.]
그러자 천홍대사는 펄쩍 뛰었다.
[무슨 말씀을 이 빈도도 늘 하는 말이오만 천하 무술계의 안위(安危)는 양대협 한 몸에 달려있는 것이지요.
이 빈도가 이곳까지 달펴온 것도 무술계를 구하고자 해서 달려온 것입니다.]
[고맙소 고맙소.]
거듭 고마워 하는동안 무당파의 정현도장을 호위하듯 하며 네 명의 승려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자 먼저 이창란이 주먹을 마주쥐며 일을했다.
[도형께서는 무량하시오.]
하는 인사에 정현도장 역시 합장하며 반례했다.
[이처럼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
하고 반갑게 웃었다. 그리고는 곧이어 천홍대사와 인사를 나눈 정현도장은 먼저 천흥대사의 물음을 받았다.
[도형께서는 무슨 소식이라도 들으셨소?]
하는 물음에 정현도장은 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빈도도 사실 놀라운 소식을 듣고 달려오긴 하였소만 도옥 일파를? 만나지도 못하였소. 오기는 어제 저녁에
왔소이다만 밤새껏 두 곳의 골짜기를 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소이다. 혹시 대사께서
는 무슨 소식이라도 들으셨소이까?]
하고 되묻는 정현도장의 말에 천홍대사는 수염을 내려쓸며 고개를 흔들었다.
[빈도 역시 도형과 같소이다.]
한편, 옆에서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듣고있던 옥소선자는 정현도장을 위시한 네 명의? 무당파 승려돌의 얼
굴에서 지치고 피로한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알기로는 무당파의 고수들이 웅후한 무공과 진기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저렇게 지치
고 피곤해 보인다면 필시 오는 도중 큰 일들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저렇듯 지칠 수 있
을까?.......>
하고 생각하는 옥소선자는 그들의 대화속으로 끼어들었다.
[적들은 숨어서 행동하는 반면 우리들은 공공연히 행동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들의 행동을
보고 있을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그들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해요. 더구나?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이
매우 피로한 것같아요. 속히 피로를 풀고 도옥 일당과 맞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겠어요. 언제 어디
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도옥 일당을 보이지 않는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하고 의견을 말하는 옥소선자를 정현도장이 호응했다.
[옥소아가씨의 말이 옳습니다. 빈도들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와? 밤을 세우며 수색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쳤소이다.]
[예,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같아요. 그럼 잠시 쉬도록 하세요. 그동안 제가 지켜드리겠어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합장을 한 정현도장은 네 명의 도사를 이끌고 왼쪽 숲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조소접의 시녀인 십이화녀 중에서 한 여자가 자지러질 듯이 다급하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도옥! 도옥이 나타났어요!]
순간! 번쩍 고개를 돌리자 금환검을 맨 도옥이 흰기(白旗)를 들고 산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러자 다가오는 도옥을 뚫어지게 노려보던 옥소선자는 옥피리를 뽑아들며 태연한 음성으로 일동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진짜 도옥이 아니에요.]
그러자 이장란도 수염을 곤두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꼭 닮긴 했지만 도옥에게서 볼 수 있는 살기가 없군. 저건 가짜야.]
하며 진짜 도옥과 가짜 도옥을 판별해냈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천홍대사와 정현도장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천홍대사는 눈을 크게 떴다.
[옷차림이나 모습이 똑 같은데 도옥이 아니라면 누군가요?]
하며 의아해하자 이창란은 천홍대사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누구이던간에 저 놈을 곱게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하는데 일장 앞까지 다가온 도옥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며 큰 소리로 용건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스승의 명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하는 말에 천홍대사가 맞받아 소리쳤다.
[너의 스승이 누구냐?]
[금환이랑 도옥입니다.]
그러자 어리둥절해진 천홍대사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며 다시 소리쳤다.
[스승이 도옥이라? 꽤 닮았군! 그런데 너는 이름이 뭐냐?]
[청룡(靑龍)이라 부릅니다.]
그제야 옥소선자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았어! 바로 도옥이 대용품이군!]
하며 비웃듯 하자 청룡은 눈을 부라리며 서슴치 않고 맞받아 소리쳤다.
[그렇소!]
하며 어깨까지 쓰윽 펴는 청룡을 노려보던 이창란은 차갑게 물었다.
[너의 스승은 어디 갔느냐?]
그러자 청룡은 손에 든 흰기를 두어번 흔들며 역시 차갑게 대답하는 것이다.
[저의 스승은 여러분들을 위하여 그물같은 함정을 만드느라고 바쁘십니다.? 그래서 친히 만나뵙지도 못하십
니다.]
그 순간, 날쌘 동작으로 청룡의 퇴로(退路)를 막아버린 옥소선자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도옥이 나타날 때까지 미안하지만 인질이 되어주는 것이 어때?]
그러나 청룡은 웃음이 가득 찬 얼굴로 옥소선자를 노려보며 금환검의 칼자루를 움켜쥐고 왼쪽으로 흰 깃발
을 흔드는 것이었다.
[인질? 그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여러분들은 양몽환과 조소접을 만나보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흥! 놀라진 마십시오. 만나보고 싶다면 조용히 이 청룡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성미가 급한? 천홍대사가 한걸음 나
섰다.
[양대협은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디 있는지 그것은 둘째 문제요. 하여간 이 청룡의 말만 들으면 곧 만나볼 수 있습니다.]
실로 태연한 자세의 청룡이었다. 이에 이창란은 조바심이 났다.
[무슨 말이냐? 어서 말해라. 설마 너의 명령을 들으란 것은 아니겠지?]
[명령은 아닙니다. 싫으시면 그만 두시고 좋다면 저를 따라 은밀한 곳까지 간다면 양몽환을 만나볼 수 있습
니다. 이 청룡이 안내 하지요.]
그러자 천홍대사는 이창란과 정현도장을 돌아본 다음 청룡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거짓말 마라! 도옥과 같이 간사한 자를 스승이라고 하는 너를 어떻게 믿고 은밀한 곳까지 간단 말이냐?]
[흥! 여러분들이 믿지 못한다면 낸들 별 수 없죠.]
하며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퇴로를 막아섰던 옥소선자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어딜 가려고?]
눈을 딱 부릅뜬 옥소선자를 마주 노려보던 청룡은 서서히 금환검을 뽑아들며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흥! 여러분들이 합세해서 나에게 달려둘 셈이오?]
만만치 않게 나오는 청룡의 말에 역시 장검을 뽑아든 천홍대사가 뭇 사람들을 제지하며 선뜻 나섰다.
[좋다. 이 빈도가 너를 따라 양대협을 만나겠다. 그러나 만일 간사한 짓을 한다면 이 장검이 용서치 않으리
라!]
[아직 큰 소리치지 마시오 더구나 양몽환을 만나려면 위험한 고비가 한 둘이 아니오. 미리 말해두지만 위험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겠다면 따라 오지도 마시오.]
[염려마라. 양대협을 만나는데 위험한 고비쯤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럼 좋소. 이 청룡의 뒤를 따르시오.]
하고는 옥소선자가 버티고 서 있는 옆으로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앞장을 서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옥소선자는 속으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감탄하는 것은 대협이라는? 양몽환에 관해
서였다.
<짧다면 짧은 이 오년 동안에 양몽환이 대협으로 무술계에 군림하게 된 것도 놀랍지만 그보다 소림사의 장
문인이라면 천하 고수들이 우러러 보는 천홍대사인데 천홍대사까지 저토록 양몽환을 추앙한다면 다른 고수
들은 말할 것도 없겠구나 ......>
하는 놀라움에 절로 감탄이 터져나오는 옥소선자였다.
한편 앞장서서 가는 정룡의 뒤를? 따르는 천홍대사를 급히 불러 세운? 정현도장은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사! 만일 저 놈이 우리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안내한다면 스스로 핫정에 빼지는 결과가 아니겠소?]
하고 근심스럽게 묻자 천홍대사는 이창란을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천하에서 가장 위험한 곳을 말한다면 옛날 이노영웅의 단혼애보다 더한 곳이 어디 있겠소?]
그러자 이창란은 빙긋이 웃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쓰디 쓴 옛날의 기억이 아널 수 없었다. 그러자 서
로 더 말하지 않고 청룡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앞에 어떠한 함정이 있는지 예측할 수도? 없는 일행은 저
마다 진기률 돋우고 주위의 경계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일행이 들어선 곳은 길고도 좁은 협곡(峽谷)으로 거의 중간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길 좌우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고 높이는 마치 하늘을 뚫을 듯이 높아 머리가? 어지러을 정도였다. 이렇
듯 험하고 높은 절벽에서 적을 만난다면 제 아무리 날고 뛰는 재간이 있다해도 꼼짝못하고 아니 엄두도 못
내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 정도였다.
그러나 일행은 아무 위험없이 좁고도 긴 협곡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눈앞에는 조금전에 지나온 곳보다 훨씬 좁은 또 다른 협곡이 보였다. 그 협곡은 절벽 사이로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뚫려 있는 것이었다.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용두지팡이를 번쩍 들어올린 이창란은 앞서 가는 청룡의 등에? 한끝을 지그시 눌
러댔다. 그리고는 싸늘한 음성으로 준엄하게 말했다.
[만일 네가 망령되이 서투른 계략을 씌다면 이 지팡이로 너의 심장을 뚫고 말테다!]
그러나 청룡은 여유있게 고개를 돌리며 빙긋이 웃었다.
[만일 양몽환을 만나기 싫다면 마음대로 하시오.]
[그보다 네가 간사한 장난만 안한다면 이 지팡이로 먼저 바람을 일으키지는 않겠다.]
눈을 부라리는 이창란을 청룡은 두려워하지도 않고 그대로 걸음을 계속해서 옳겼다. 그리고 자가의 등에 대
고 있는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쯤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그러나 워낙 몇 십년 동안 무술계에서 경험을 쌓은 이창란이나 정현도장 그리고 천홍대사와 옥소션자는 용
두지팡이가 등심을 노리고 있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청룡의 태도에서 은연중 앞길에 매복수나 합정
이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아무리 담이 큰 청룡이라도 간이 콩알만해지지 않
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한면 청룡이 좁은 협곡을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흔들던 백기를 더욱 빠르게 조금도 쉬지않고 흔드
는 태도에 더더욱 의심은 한층 굳어졌다.
청룡의 깃발이 흔들거리는 속도대로 일행의 경계심도 날카롭고? 예민하게 주위를 살폈으나 별로 눈에 띄게
이상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좁은 협곡을 빠져 나오자 지세(地勢)는 일변하여 넓다란 분지(盆地)가 눈앞에 탁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분지에 푸른 잔디가 잔잔하게? 깔려 있고 그 잔디 위에는 둥그런? 탁자와 여러개의 의자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었다.
그때 먼저 앞장서서 가던 청룡이 걸음을 멈추며 천천히 돌아섰다.
[여러분들은 여기 준비된 의자에 앉아 쉬십시오. 함부로 움직여서 어지럽게? 하지만 않으면 가장 안전한 곳
이 될 것입니다.]
하고 주의겸 위협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옥소선자는 앉지도 않고 소리부터 질렀다.
[양상공은 어디 계시죠?]
[조급히 서두르지 마시오. 이 청룡의 스승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안심하시고 조용히 기다
려 주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만나고자 하는 양몽환과 조소접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낸 옥소선자는 아무 의자에나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급히 사방을 휘둘러 보
았다.
사방은 모두 첩첩이 둘러서 있는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다만 통로라는 곳은 지금 둘어온 협곡밖
에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음...... 저 협곡만 막아 버린다면?>
그 누구도 이곳에서 빠져나갈 도리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옥소선자는 만일을? 대비햐여 협곡만 경
계하기로 했다.
그러는 한편 천홍대사와 이창란은 각기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독안에 든 쥐처럼 협곡 속으로 가두어 놓은 도옥이 만일 불로 공격해 온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
게 행동해서 막는가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각기 생각에 잠긴 동안 한쪽 절벽으로 다가간 청룡은 목을 길게 뽑고 획! 휘파람을 부는 것이었다.
그리고 휘파람의 여운이 높은 산에 막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기? 저기서 메아리가 되어 한바퀴 도는 동안
절벽 위에서는 그 휘파람을 신호로 하여 굵은 밧줄이 내려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내려진 밧줄을 덥석 끌어쥐는 청룡의? 행동과 구장(九丈) 높이의 절벽 위로 쏜살같이
올라가는 것과는 거의 같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곧장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약 육장(六丈)되는 곳에? 툭 튀어나온 암석(岩石)위로
가볍게 올라 잡았던 밧줄을 놓고 바위 사이로 몸을 숨기듯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자 청룡이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 것과 험한 산세를 세밀히 살피던 이창란은
정현도장과 천홍대사를 조용히 불렀다.
[두분 도형! 지금 청룡이 사라진 곳이 아무래도 도옥의 거점(據點)인 것같소.]
하고 턱으로 절벽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천홍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같습니다. 만일 도옥이를 이 골짜기까지 유인할 수만 있다면
그와 결전을 벌릴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이창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으로서는 도옥이 절대로 우리와 결전을 벌리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오.]
하며 앞을 내다보는 듯하자 이번에는 정현도장이 한 걸음 나섰다.
[그건 그렇다 치고 빈도가 염려하는 것은 교활한 도옥이 양대협의 생사를 밝히지 않고
우리들을 꼼짝 못하게 협박해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오.]
그러자 천홍대사도 정현도장과 의견을 같이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 빈도도 그것을 염려하고 있소이다.]
하고 말하는 동안 이창란은 흰 수염을 쉬임없이 쓸어내렸다.
[하여간 두 분께서 이 늙은이의 사위를? 염려해 주는 것은 고맙소.
그러나 사위도? 사위지만 뜻대로 안되면 도옥을 격살하여
이 강호의 화근을 뿌리채 뽑아 평화스러운 천하가 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 하오.]
대의를 따르자는 이창란의 말을 천홍대사는 온화한 웃음으로 받았다.
[그것도 옳은 말씀이오. 도옥을 죽여서 무술계의 화근을 뽑는 것도 중요한 일이오마는
양대협을 구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오.
사실 우리들이 이곳으로 달려온 것도 양대협을 구하기 위해서요.]
어떻게 하던지 양몽환을 구해야 한다는 천홍대사의 말을 들으며 옥소선자는 오랜만에 만족해 했다.
그러나 한편 두려운 것이 있었다.
<...... 지금 두 분은 양몽환을 구하기에 협력하고 있음은 물론 목적도 양몽환에게 있다.
그렇다면 도옥의 어떠한 요구에도 다 응낙할지 모르는 일이다 ......>
속으로 은밀한 걱정을 하는 옥소선자였다.
사실 천하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양몽환을 구하겠다고 이창란은 생각했다.
무술계의 평화보다? 딸 이요홍의 남편이며 자기의 사위인 양몽환을 구하는 것이
도옥을 죽이고 강호의 화근을 없앤다는 대의명분보다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다시 이창란과 천홍대사를 바라보며 정현도장이 말을 꺼내지 않았던들
이창란의 혼자 생각은 더 깊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도옥이 우리들을 속여 이곳까지 데리고 오지 않고 우리들 스스로 들어와서
협곡에 갇혀 있율때 도옥이 협공해 온다면 말입니다.
그때는 또 어떻게 이곳을 뚫고 나갈 방법이 있겠소?]
하고 만일을 가정해서 대책을 강구하는 정현도장의 의미심장한 말에 천홍대사는
천홍대사대로 자기의 의견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조금 어두운 전망이었다.
[우리들이 이와같은 상황에서는 별 수 없이 밖에서 구원병이 오기를 기다릴 도리밖에 없을 것이오.
비록 이노영웅같은 무공을 지니고 있다해도 이곳을 빠져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할 것이오.]
그러자 이창란은 손을 흔들며 천홍대사의 말에 겸사했다.
[이 늙은이의 변변치 못한 무공을 어찌 대사의 불문신공(佛門神功)에 비기겠소...]
하고 겸손해 하자 정현도장이 웃으며 한 걸음 나섰다.
[두 분께서는 그만 겸손하시고 이곳을 빠져나갈 계책이나 강구하십시다.
그것이 더 중요한 일 같소이다.]
이와같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좁은 협곡으로부터? 도옥과 닮은 젊은이가
기를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바위 사이로 숨듯 사라진 청룡과 똑 같은 모습이어서 일동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그 젊은이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고 더욱 놀랐다.
그들은 다름 아닌 곤륜삼자의 한 분인 일양자(一陽子)였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푸른 대나무 지팡이를 쥐고 따라오는 노인은 얼핏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이때 먼저 일양자를 확인한 이창란은 몸을 일으키며 두주먹을 마주 쥐었다.
[도관주! 어서 오시오!]
하자 일양자는 죽먹을 맞잡아 쥐고 허리를 굽혔다.
[먼저 오셨군요. 저는 길에서 어떤 일을 만나 조금 늦었소이다.]
인사를 끝내고 일양자의 뒤을 따라오던 노인을 바라보던 이창란은 그제야
그 노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았는지 몇 걸음 다가가서 역시 주먹을 쥐며 허리를 굽히는 것이었다.
[문형! 그동안 안녕하셨소?]
하고 인사를 하자 노인은 큰 소리로 헛......허...... 통쾌하게 웃어제치는 것이었다.
[안녕들 하시오? 이 아우가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는 바요.]
하고는 주먹을 쥐고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몸을 돌려 차례로 인사를? 하는 노인은 바로 청죽장(靑竹杖)의 명수 문공태(聞公泰)였다.
이어 천홍대사와 정현도장도 몸을 일으키며 반례(返禮)했다.
[오랜만이외다. 문형! 어서 오시오.]
하고 자리를 권하며 화산파(華山派)의 장문인인 문공태가 앉기를 기다려 모두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문공태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를?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 아우는 도옥이 강호에 나타나 무수한 고수들을 규합하여 천용방을 다시 일으키고
더구나 양몽환 대협을 괴롭힌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오려고 했소이다.
그러나 단련 중이던 두 가지의 무공을? 마저 배우고 오느라고 늦었소이다.
늦계 온 것을 용서해 주시오.
그런데 이 아우가 듣기로는 도옥이가 양몽환 대협을 교활한 계략으로
감금시켜 놓았다기에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지 지금도 이가 갈릴 지경이오.
그래서 주야로 쉬지 않고 달려오는 길에 일양자 도형을 만나게 되고
또 저 도옥같은 놈을 만나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하며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를 말하던 문공태는 자기들을 인도해온 도옥을 닮은 자를 급히 찾았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절로 콧소리가 나오는 문공태였다.
[흥! 그놈 재간이 제법이군!]
감탄하듯 혀를 찼다.
그러자 천홍대사는 문공태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예계의 동료들이 이곳에 더 오지 않도록 우리들은 그들을 저지해야 할 것같소.]
[옳은 말씀이오.
그러나 일단 이 계곡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돌아서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같습니다.]
하고 일양자는 천홍대사의 말에 호웅하자 문공태는 청죽장을 흔들며 큰 소리로 장담했다.
[그까짓거 염려없습니다. 어디 이 아우가 한번 빠져나가 보죠.]
어깨를 펴며 협곡으로 나가려는 문공태를 옥소선자가 급히 막아 섰다.
[그건 안됩니다.][안되다니! 왜 안된다는 말이오?]
[도옥은 우리들을 이 협곡으로 끌어들인 다음 다시 나가지 못하게 함정을 파 놓았을 거애요. 비록 문장문인
의 무공이 강하다 해도 위험한 일을 자청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양대협을 구하겠다고 달려오는 무수한 고수들이 모두 도옥의 함정에 빠지지 않겠소. 더구나 우리
들도 이 음지(陰地)에서 빠져나가지도 못할 것이 아니겠소?]
[그것도 그래요. 그리고 제가 이곳의 지세를 살펴보았는데 굳이 함정을? 파 놓았을지도 모르는 협곡을 빠져
나가려는 것보다 이 주위의 산을 넘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더구나 함정이나 매
복수를 숨겨 두었다면 반드시 좁은 협곡에 준비해 두었을 것같아요.]
하고 여자답게 꼼꼼이 설명하는 옥소선자를 지켜보고 있던 천홍대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옥소아가씨의 말이 옳습니다. 문형께서는 그런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같습니다.]
그제야 문공태도 주춤 물러앉고 말았다.
[그럼 저도 그만두겠습니다. 그럼 우선 적정부터 살피고 대책을 세우기로 하죠.]
하는 바로 그때, 홀연 고요한 계곡을 주름잡듯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순간, 천홍대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옥이란 놈이 또 무슨 잔 재주를 피울 모양이군!]
하는 말을 옥소선자가 곧 받았다.
[아마 도옥이 우리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죠?]
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궁금히 여기며 두리번거리는 바로 그때,
서쪽 산봉우리에서 우렁찬 음성이 들려왔다.
[여러분! 지금 양몽환이 나타날 것이오. 그러나 볼 수만 있지, 말은 못할 것이오.]
그러자 천홍대사는 목청을 돋우었다.
[어째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거요? 흑시 그가 중상이라도 입은 것 아니오?]
[중상을 입은 것은 아니오! 다만 혈도를 짚어 귀로 들을 수 있게만 하고 말은 할 수 없게 했을 뿐이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인지 정체는 나타내지 않고 음성만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들려왔다.
[그러나 한가지 미리 말해둘 것은 지금 양몽환은 전신을 꼼짝도 못한다는 거요.
여러분들이 그냥 보기만 한다면 모르지만 망령되이 그를 구하려고 한다면 당장
그의 생명은 끓어질 것이오.]
하고 말이 끝나자 곧이어 서쪽 절벽 위에서 한개의 쇠막대기가 불쑥 허공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쇠막대기 한골에 밧줄로 널판지가 매어져 있고 그 널판지 위에 양몽환이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조금 건드리기만 해도 이십장(二十丈) 절벽 아래로 그냥 굴러 떨어질 것만 같은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의 위험한 곳에 양몽환이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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