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죽음의 세갈래 길 !
자리를 옮기자는 옥소선자의 말에 이창란은 더 버티지 않고 곧 앞서 가는 옥소선자의 뒤를 따랐다.
어둠의 장막이 깔린 숲 속을 벗어난 일행은 옥소선자의 안내로 숲 속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앞에 가로놓인 언덕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먼저 옥소선자가 말했다.
[노선배님 여기서 이야기 하도록 해요. 이곳은 지대가 조금 높아 적정(敵情)을 살피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소저에게서 무슨 소식이라도 오는지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어요.]
그러나 이창란은 옥소선자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자기의 궁금한 문제로부터 물었다.
[대체 어느 두 사람이 양몽환을 지킨단 말이오?]
[동숙정과 심하림 두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말에 이창란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 했다.
[아니 림아가 그리고 동숙정도 왔단 말이오]
그러자 옥소선사는 음성을 낮추며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동숙정과 양몽환과의 사이는 옛날 곤륜파의 같은 제자로서 정이? 두터워요.
그런데다 동숙정은 도옥에게서 받은 수모를 보복하기 위해 몇 년간을 노려오기만 하다
겨우 지금에야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기회를 얻었다는 말이오?]
[동숙정은 지금 도옥의 부하들에게 밥을 해 주는 일꾼으로 교묘히 변장하고 들어가
적정을 살피고 아울러 암암리에 양상공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어요.
그리고 심하림은 자기의 몸을 희생시키면서 양상공을 구하려고
도옥과 손을 잡고 있는 한편 양몽환을 지키고 있어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펄쩍 뛰었다.
[뭣이? 자기 몸을 희생해서 양몽환을 구한다고?
그 선량한 림아가 늑대의 밥이 되다니 안되지, 안돼!]
눈을 부라리며 발을 굴렀지만 옥소선자는 태연히 이창란을 제지시켰다.
[제 말을 들어보세요. 심소서가 원래 심지가 곧고 선량해서
남을 속이거나 해친 일은 없지만 지금은 달라요.
이제는 어린애도 아니고 선량하지도 않아요.
제가 보기로는 오랫동안 생각한 나머지 자기 몸을 희생시켜서
양상공을 구하려고 결심한 것같아요.]
[아무리 생각하고 결심한 일이라 해도 도옥을 상대로 싸울 적수는 아니오.]
[그러나 이미 결심하고 뛰어든 심소저를 어떻게 하겠어요.
소식을 기다리기로 하고 힘 닿는대로 노력해 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 같습니다.]
[허...... 참...... 이 늙은이의 손으로 키워준 제자가 원수로 변할 줄은 몰랐구려.
세상 일이 허무하구려 ......]
탄식소리와 함께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서글퍼하는 이창란을 소선자는 낮은 음성으로 위로해 주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도 있어요.
너무 괴로워 하시지 말고 진정하세요. 이 수 년간 강호에 일어났던 그 많은 일들이
모두 지나고 보면 허무하고 감개(感慨)가 무량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창란은 천천히 수염을 내려 쓸었다.
[옳은 말이오. 어제의 친구가 오늘날의 적이 되고 심지어 제자까지 적이 되는 세상이구려.
이 늙은이가 천용방을 일으킬 때만 해도 벌써 옛날 일이라니...... 허...... 허......]
처량한 웃음으로 맥없이 웃는 이창란은 고개를 들며 옥소선자를 불렀다.
[옥소선자께서는 양몽환을 만나보았소?]
[아직 보지 못했어요.
수거(囚車)까지 다가갔을 때 갑자기 나타난 도옥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창란은 움푹 패인 주름살을 어루만지며 침통히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의 사위를 이용해서 흉계를 꾸미려는 도옥은 당장 그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이 늙은이가 염려하는 것은 도옥이 악랄한 수단을 써서 사위의 무공을
폐(廢)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오.
지금 주소저가 달려와 그를 구한다 해도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소!]
하는 말에 옥소선자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제가 직접 만나보지 못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동숙정과 심하림이 암암리에 지키고 있어서
별로 걱정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아직 도옥이 양상공의 무공을 폐할 기회가 없었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랬으면 마음을 놓겠소만, 초조해서 견디기가 힘들구려.]
하고는 또 침울해지는 이창란을 옥소선자는 위로하기에 바빴다.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노선배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강호 무술계의 모든 고수들은
양상공의 덕망을 흠모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면
모두? 우리들을 도와 도옥과 대적할 것입니다.
더구나 소림사의 고수들도 오지 않았습니까?
지각(知覺)이 있고 양심(良心)이? 있는 무술인이라면
양상공을 구하기 위하여 달려올 것입니다.]
[글쎄 ......그러나 어찌 그들에게만 기대하고 있겠소.
더구나 천하 무술계의 고수들이라 해도 도옥의 무공을
따를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소이다.]
하면서 비통해 하던 이창란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을 계속했다.
[아마도 주소저가 직접 달려오지 않는 한, 어려울 것같소.]
하는 말에 옥소선자도 고개를 끄덕거려 수긍했다.
[사실 옳은 말이에요. 지금 도옥을 당해낼 고수는 이 천하에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그러나 많은 고수들이 일시에 들이닥치면 아무리 무공이 놓은 도옥이라도 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듯한 말이오. 비록 내가 늙었다 해도 싸울 용기만은 있소.
만일 이 늙은이가 도옥과 싸운다면 그를 죽이지는 못한다해도 병신을 만들거나 같이 죽게 할 수는 있소.]
[노선배님의 결심이 그러시다면 굳이 막지는 않겠어요.
그러나 날이 밝을 때쯤 해서는 주소저의 연락이 올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기다려보고 여의치 않으면 그때 싸우기로 하는 것이 좋겠어요.
저는 물론 호응하겠어요. 그러면 지금부터 조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즉시 옥소선자의 말에 호응한 이창란은 곧 눈을 감고 조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창란이 조식을 끝내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도 훤히 밝은 아침이었다.
한편, 이창란보다 먼저 조식을 끝낸 옥소선자는 하늘을 살피고 있었다.
초조하기로 말하면 이창란 못지않게 주약란의 연락을 기다리는 옥소선자였다.
그래서 지금도 뒤로 넘어갈 듯이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두루 살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옥소선자의 손이 하늘을 가리키고 곧이어 맑고 낭랑한 음성이 터졌다.
[왔어요!]
과연 옥소선자가 가리키는 손 끝에는 점점 모습을 크게 나타내는 현옥의 백유같은
날개가 아침 햇살에 찬란히 빛나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후,
삽시간에 머리 위까지 날아언 현옥은 빙빙 두어번 머리 위를 돌고 긴 날개를 펼치며 내려 앉았다.
그러자 이창란은 혼잣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수 년동안 보지 못한사이에 더 커졌군!]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이창란의 감탄하는 말에 옥소선자는 오랜만에 생긋이 웃으며 그말을 받았다.
[최근에는 더욱 영특해서 주소저가 총애하고 있어요.
더구나 현옥은 백 마리 이상의 백학을 통솔하여 천기
석부의 십리 밖에까지 백학을 배치시키 놓았어요.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천기석부가 방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십리 밖에 적이 나타나기만 해도 곧 일러줘요.
더구나 현옥의 감시가 철저해서 안전해요.]
자랑하며 옥소선자는 현옥에게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현옥의 오른쪽 날개 밑에서 대나무 통을 끄집어냈다.
그러는 동안 현옥은 사방을 휘휘 둘러보며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애태우며 기다리던 현옥이었고 또 주약란의 연락이었다.
지금 옥소선자는 둥근 대나무 통의 뚜껑을 열고 수약란의 서신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봉투에서 꺼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져 있었다.
< 일개월 이내로 백장봉(百丈峯)에 도착할 예정이에요.
옥소선자는 천기석부로 돌아오지 말고 도옥의 행동을 감시할 것이며 현옥도
옆에 두고 급한 일이 있므면 연락하도록 하세요.
만일 현옥도 옆에 두고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도록 하세요.
만일 이곳으 일이 일찍 끝나면 백장봉에 도착할 날짜가 좀 빨라질 것입니다.
보중하세요. -주약란- >
극히 간단한 사연이었으나 글씨가 고르지 못한 것이 매우 초조한 가운데 쓴 글같았다.
편지를 다 읽은 옥소선자는 혼자 머리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자 초조히 지켜보고 있던 이창란이 급히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주소저가 무슨 연락을 했소?]
하고 궁금해 하는 이창란에게 옥소선자는 들고있던 편지를 건네어주었다.
[노선배님, 읽어 보세요.]
그러나 내용은 별로 신통한 것이 못되었다.
한시가 급한 이때에 사흘 후도 아닌 한달 후라면? 더 기대를 걸
어볼 것도 없는 것같았다. 그러나 이창란은 실망의 빛을 감추고 애써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한달 후에라도 주소저가 직접 오기만 한다면, 양몽환을 구할 수 있겠군...... 허......]
아무래도 맥이 빠지는 이창란에 비해 옥소선자는 눈에 생기를 띄웠다.
[이 오년 동안 주소저는 양상공을 한번도 만나지는 않았지만 항상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직접 백장봉으로 오겠다는 것이 아녜요?]
[그런 것같소. 이 늙은이의 딸인 요홍이도 늘 그런 말을 하였소.]
[사실 주소저의 넓은 마음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녀의 이름이나 인상을 잊지 못할 거에요.]
[옳은 말이오. 이 늙은이도 칠십을 살아왔지만 사람에게 감복해 보기는 주소저에게서 처음이오.
왜? 그런지 머리가 숙여진단 말이오.
그것은 주소저의 인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품에서 오는 것인가 하오.
더구나 친히 백장봉까지 오겠다니 이 늙은이의 마음이 놓이는구려.]
하는 이창란의 말에 옥소선자는 약간 이마를 찌푸렸다.
< 이 엉큼한 늙은이...... 주소저를 추켜 올려서 양몽환만 구해내면 그만이란 말이지...... >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웃어 보이고 말았다.
[노선배님 말씀이 옳습니다. 원래 주소저는 가볍게 응낙하는 사람이 아닌 만큼 양상공을
구해내는 데는 노선배님이 염려하지 않아도 구해줄 것입니다.]
[이 늙은이도 알고 있는 바이오.
그런데 주소저가 올 때까지는 양몽환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지 않겠소?]
[물론 지켜야죠.]
[그러면 옥소선자께서 계획을 세워 동숙정과 림아에게 실수없도록 하였으면 좋겠소.]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이만 이 늙은이는 물러가겠소.]
하고는 주먹을 흔들어 보아고 검북사의를 재촉해서 멀리 사라져 갔다.
이창란과 그의 부하 네 명이 사라져 간 다음 옥소선자는 급히 주약란에게 회신(回信)을
떠서 현옥의 날개 밑에 끼워 주었다.
그리고는 현옥의 등을 두드려 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주소저는 너를 내가 데리고 있으라는 분부지만 지금은 괜찮아.
그냥 천기석부로 돌아가 응?]
그러자 현옥은 옥소선자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긴 목을 뽑아 한소리 크게 울고는
날개를 펴며 하늘로 높이 치솟아 금새 옥소선자의 시야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현옥을 보낸 옥소선자는 옷을 뒤집어 입고 머리에 수건을 써서 얼른 알아보지 못하게
변장한 다음 다시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주소저의 분부대로 이제부터 도옥을 감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도옥의 손에 끌려 숲 속으로 들어온 하림을 왜 그런지 불안하기만 했다.
더구나 도옥에게 패하던 이창란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이창란이 이겨 주었으면 좋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더욱 속상했다.
< 이창란의 무공도 보통 고수들과는 그 유가 다르다.
그런데? 도옥에게 패했다면 도옥의 무공이 그만큼 진보했다는 것이 아닌가?
조금만 더 시일이 흘러간다면 강호 무술계에서 도옥을 따를 자가 없겠구나! >
생각하면 두려운 바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도옥 옆에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즉시 표정을 바꾸어 담담히 웃었다.
[당신의 놀라운 무공에 감탄했어요. 이젠 양몽환도 달려들지 못하겠죠?]
그러자 도옥은 만족한 듯이 빙긋 웃었다.
[비록 무공이 진보하긴 했지만 이직도 배울 것이 많아.
그런데 단시일에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 유감이지!]
그러나 하림은 그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할 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입을 열었다.
[오늘밤 당신과 제가 부부의 관계를 맺는다면 양몽환을 놓아주겠어요?]
불쑥 묻는 말에 도옥은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곧 대답했다.
[아까도 옥소선자 때문에 그만두었지만 오늘밤 당신과 이 도옥이
부부의 관계를 맺기만 한다면 당당 놓아주지. 암 놓아주고 말고!]
하는데도 어딘가 내키지 않는 말같아 하림은 마음을 사렸다.
< 만일 부부의 관계까지 맺고도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
이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떨렸다.
그렇게 되면 이미 몸은 후회해도 소용없게 될 것이고
양몽환은 양몽환대로 철창 속에 갇혀 있게 된다면......
더 생각하기도 싫은 하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
당신과 오늘밤 부부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쩐지를!]
[더 생각해 볼 것 없어. 틀림없이 놔주면 되지 않아?]
하면서 도옥은 하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화제를 바꾸어 말하는 것이었다.
[자 빨리 갑시다. 말을 타고 가야겠어!]
갑자기 말을 타고 가자는 말에 하림은 고개를 바싹 들었다.
[말이요? 왜 말을 타고 가죠?]
[이 도옥이 양몽환을 사로잡았다는 소문을?
듣고 천하 무술계의 고수들이 구경삼아 몰려올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단 말이오.]
그 순간, 하림은 도옥이 하는 말을 뒤집어 생각했다.
< 천하 각처의 무술인들이 불려온다면 그것은 양몽환을 구경하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구해내려고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
하고 생각하는데 도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이?]
그러자 하림은 아차했다.
그러나 생긋 웃으며 재치있게 대답했다.
[천하 고수들이 몰려와 당신을 해치려 한다면 어떻게 할까하고 걱정하고 있었어요.]
하면서 웃음을 지으며 근심하는 척했다.
그와 같은 하림의 태도에 도옥은 기쁜 듯 빙긋이 웃었다.
[흥! 몇 십명이라도 두렵지 않아! 이미 처리할 방법을 세웠어!]
[무슨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수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상대할 수 있어요?]
하고 되묻는 하림을 도옥은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는 것이었다.
순간, 하림은 또 한번 아차했다.
그런 하림에게 도옥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 도옥을 죽이고 양몽환을 구해낸다면 당신이 원하는대로 되는 것이 아니오?]
하는 말에 하림은 길게 탄식했다.
[잘 아시는군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든지 제가 그를 구해드려서 과거에 입은 은혜를 갚고 싶어요.]
그러자 도옥은 씨익 웃었다.
[염려할 것 없어! 그들은 절대로 양몽환을 구해내지 못해!]
너무나 자신있게 하는 말에 하림은 도옥의 위인됨으로 보아 그말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고 단정했다.
도대체 어떠한 계략으로 또는 무슨 함정을 만들어 놓고 수 많은 고수들과 겨룰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막아낼 계획이라도 있어요?]
[계획? 많지. 아까 당신이 양몽환을 만난 직후 이 도옥은 재빨리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단 말이오.
그들이 이 도옥을 추적한다해도 헛수고일 뿐이야!]
속으로 이 간교한 놈아! 하면서도 하림은 태연을 가장하며 놀라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그럼, 숲 밖에 있는 수거는 뭐예요?]
[흥! 양몽환 대신 딴 놈을 슬쩍 집어넣었지!]
하고 빙긋이 웃는 도옥의 낯짝에 침을 뱉어주고 싶었지만 꿀꺽 참았다.
[굉장히 슬기로운 일이군요. 언제 그런 명령을 내렸어요?
당신은 틀림없이 강호를 제패하고 말거에요. 하는 일이 모두 놀라워요.]
추켜주는 말에 도옥은 기분이 좋은지 큰소리로 웃었다.
[핫...... 하...... 당신도 이 도옥이 강호를 제패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군.
좋아. 그런데 이 도옥이? 언제 그렇게 술책을 썼는지 당신도 눈치를 못챘을 것요.]
[전연 눈치채지 못했어요.]
[바로 그거요. 양몽환을 슬쩍 딴 곳으로 옮기고 이 도옥이 고의로 몸을 숨기는 척하면
놈들은 이 이 도옥을 찾느라고 눈이 벌게질 것이오.
그때 슬슬 유인하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거요.]
득의야양해서 떠들어대는 동안 하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속히 옥소선자를 만나 이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군.
양몽환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은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사실을 알려주면 양몽환을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야...... >
그러나 도옥은 하림이 무슨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자기 흥분에 도취되어 큰소리로 한참 웃고는 하림의 손을 잡았다.
[자! 우선 요기나 하고 길을 떠나지!]
하고는 하림을 이끌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천막이 쳐진 곳까지 달려온 도옥과 하림은
곧 새로 준비시켜 놓은 음식상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친막 옆에는 양몽환과 조소접 그리고 독용부인이 갇혀 있던
수거가 그대로 놓여 있었어나. 다만 달라진 것은 수거를 지키는 장정의 수가
더 많아졌다는 것 뿐이었다.
도옥과 하림이 식사를 끝내고 천막 밖으로 나오자
그곳에는 튼튼한 두 필의 말이 기다리고있었다.
즉시 말위에 가볍게 올라 앉은 도옥은 하림이 올라 타기를 기다려 곧 떠나기를 명했다.
나란히 말머리를 세우고 숲 속을 벗어난도옥과 하림은 관도(官道)에 이르자
바람소리가 나도록 말을 힘껏 몰았다.
도옥은 기분이 좋고 흥겨운 모양이었다.
가끔 하림을 돌아다보며 씨익 웃기도 했다.
[이제 머지찮은 장래에 이 도옥이 강호를 제패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을 우러러 볼 것이오.
그때는 다시 이 길을 멋지게 달려봅시다!]
하고 으시대는 말에 하림은 억지 웃음을 웃어주었다.
[꼭 이루어지기를 빌겠어요.
당신의 무공으로 보아 강호를 제패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하면서 생긋이 웃었다.
그러한 하림을 바라보는 도옥은?
하림만 옆에 있어 준다면 더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거짓없이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도옥은 한없는 애정을 만끽할 수 있었다.
< 하림은 과연 순진하고 착한 여자구나. 저 웃는 얼굴은 이 도옥을 사로잡는군...... >
하고 생각한 도옥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림을 불렀다.
[이 도옥이 강호를 제패하는 날이면 천하 영웅들이 모두 이 도옥을 존경할거요.
그러면 당신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오.]
하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호응해 주었다.
[그러면 저는 행복에 겨운 생활을 하겠죠?]
하림은 날아갈 듯이 좋아했다.
그러나 아무리 도옥의 말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비록 입으로는 도옥과 쉬지 않고 말하고 얼굴에는 웃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마음은 머지않아 달려올 천하 영웅들이 양몽환을 찾아 꼭 구해야 할텐데라는 생각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하림의 마음을 알길 없는 도옥은 신나서 콧소리를 내며 말을 몰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말의 고삐를 다른 한 손에는 하림의 손을 잡은 채 천하를 다 얻은 듯이
기뻐하며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연방 큰 소리를 치는 도옥이었다.
[암, 천하를 제패하기만 한다면 당신과 함께 천하 산천을 다 구경하겠어!]
간(肝)이 커질대로 커지고 마음이 부풀대로 부푼 도옥은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다.
옆에 하림만 있다면 이 세상 끝까지라도 다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큰 포부로 떠들어대던 도옥은 옆에 있는 하림이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는 말은 듣지 않고 또 무슨 생각을 하지?]
하는 물음에 번쩍 정신을 차린 하림은 방긋이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다 듣고 있어요. 그땐 바다 구경도 하고 싶어요.]
그러나 도옥은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아닌데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같은데.]
[아니에요.]
< 속히 고수들이 몰려와 양몽환든 구했으면 하고 생각했어요. >
하고 말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 혼자 생각하며 하림은 말을 이었다.
[만일 당신이 천하를 제패하게 되면 천하 산천을 구경하러 다닐 때
저 아닌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가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되면 저는 싫어요.]
일부러 쓸쓸한 척했다.
그러자 도옥은 즉시 고개를 흔들며 부정했다.
[천만에, 당신은 염려말아요.
이 도옥이 비록 평소에는 그런 행동을 했었으나 당신이 이 도옥을
진정으로 사랑해 준다면 절대로 다른 여자를 거들떠 보지도 않을거요.]
[진정으로 하는 말이에요?]
[이 도옥은 진정으로 하는 말이오. 왜 거짓말같소?]
하던 바로 그때,
도옥은 갑자기 말고삐를 낚아채며 막 달려가는 두필의 말을 세우는 것이었다.
순간, 하림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그리고 도옥은 귀를 바짝 세우며 주위 사방을 샅샅이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 언덕의 형세가 심상치 않은데!]
하는 바로 그때였다.
과연 도옥의 예감은 적중했다.
갑자기 기합 소리가 크게 나며 언덕 위에서 회색의 가사(袈裟)를 입은
네 명의 승려가 불쑥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들 네 명의 승려는 거의 나이가 오십세쯤으로 서로 비슷한 중늙은이 었고
두 명은 계도(戒刀)를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철선장(鐵禪杖)을 쥐고
천천히 언덕을 내려와 양편으로 두 명씩 갈라서며 도옥과 마주 대치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사 험악한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던 도옥은 말에서 내려서며 역시 뒤따라 내리는
하림을 보호하듯 가로막고 앞으로 나섰다.
그때 철선장을 쥔 한 명의 승려가 염불을 외우며 들었던 철선장을 가슴 앞으로 반듯하게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도시주의 발걸음을 멈추게 해서 미안하오. 그러나 한가지 물을 말이 있소이다.]
하는 말에 도옥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대사는 누구신데 길을 막는 거요?]
[소승(小僧)들은 숭산(嵩山)의 소림사(小林寺)에 있는 달마원(達摩阮) 순호승(巡護僧)이오.]
정중히 대답하는 말에 도옥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소림사의 도사면 도사지 무슨 일로 이 도옥의 앞길을 막는 거요?]
하고 싸늘하게 물었다.
이때 하림은 하림대로 초조와 흥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소림사가 오년 전 구대분파와 힘을 합쳐 천용방과 대적할 때에 비해
그 세력이 많이 약해졌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일파(一派)로서 지금도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은
기세라는 것을 하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림은 네 명의 승려가 나타날 때 손뼉을 칠만큼 좋아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양몽환의 행방을 가르쳐 수면 곧 구원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기회를 엿보며 그들에게 사실을 말해 주려고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네 명의 시선은 도옥만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철선장을 쥔 승려는 얼핏 보기에는 매우 수양이 깊은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도옥의 싸늘한 물음에도 두 손을 합장하듯 가슴앞에 세우는 것이었다.
[소승은 본사 주지님의 분부로 도시주님에게 양몽환 대협을 어떻게 하였는가를 붙는 것이올시다.]
하다가 도옥의 뒤쪽 저편에서 다가오는 일진(一陣)의 인마(人馬)를 발견하고는 그쪽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하림은 뛸듯이 기뻤다.
분명히 양몽환을 구하려고 달려온 승려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도옥은 당치도 않다는 듯이 크게 냉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했든 안했든 당신들 화상들이 상관할 것 없소......핫 ...하? ......
그러나 정말 알고 싶다면 그까짓 것쯤 알려주는 않지!]
하고는 얼굴 가득히 오만한 빛을 띄우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양몽환을 어쨌느냐구? 헤...... 헤...... 지금쯤 백리(百里) 밖에 있겠지!]
하고 마악 말을 끝내는 순간,
하림은 앞 뒤 가릴 겨를도 없이 큰 소리로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여기 도방주는 당신들이 양몽환을 구하러 올줄 알고 미리 딴곳으로 옮겼어요.
저기 뒤에 오는 수거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 뿐이에요.]
도옥의 행동이 어떻게 나올까도 생각하지 않고 급한 마음에 사실을 말하고 말았다.
그러자 계도를 들고 있던 다른 한 명의 승려가 부르르 손을 떨며 큰소리로 철선장을 쥔 승려를 불렀다.
[사형! 교활하기 짝이 없는 놈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렁차게 소리친 승려는 들었던 계도를 휘두르며 도옥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이 가볍게 화상의 계도를 피하고는 빙그르 한바퀴 돌며
서서히 손을 들어 금환검을 뽑아드는 도옥이었다.
그 순간! 마악 금환검을 뽑아드는 도옥을 향해 네 명의 승려는 철선장과 계도를 일제히
휘둘러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이때 도옥은 번개같이 몸을 날려 화상들의 공격권에서 빠져나오며 묘안을 짜냈다.
오랫동안 내 명의 승려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실로 무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속전속결로 그들을 쓰러뜨리기로 작정한 도옥은? 그들의 공격권에서 빠져나오는 즉시?
뒤로 돌아가며 오른 손의 금환검과 왼 손의 주먹을 휘둘러 그들의 급소를 노리고
좌충우돌 무섭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소림사의 승려들이 이겨주기를 바라고 있는 하림은 은근히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네 명의 승려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도옥이 힐끔힐끔 하림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왜 도와주지? 않고 서 있기만 하느냐? 하는 눈빛 같았다.
이렇게 방관만? 하고 있다가 나중에 혹시 도옥의 의심이라도? 받는다면?
귀찮은 생각이 들어 장검을 뽑아들고 도옥 옆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계도를 휘두르던 두 명의 승려가 하림을 상대로 돌풍처럼 공격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림이 가세해 오므로서 두 명의 철선장을 든 승려와 겨루게 된 도옥은 하림의 행동에
은근히 기뻐하며 더욱 날카롭게 금환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도옥과 상대하는 두 명의 승려가 휘두르는? 철선장은
그 무게나 길이부터 도옥의 금환검과 비할 수 없는 중무기(重武器)였다.
휘두로는 철선장에 한번 맞기만 하면 몸뚱이는 두 동강으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처럼 무시무시한 쇠뭉치들 휘두르는 바람에 도옥은 금환검에 힘을 주며 꼭 죽이고
말겠다는 살기(殺氣)를 온 얼굴과 눈에 번뜩이는 것이었다.
두 명의 승려가 휘두르는 철선장은? 쉬임없이 매서운 살풍(殺風)을 일으켰다.?
한자루의 철선장이 직구천남(直邱天南)으로 도옥을 갈기고 물러서면 곧이어
다른 한자루의 철선장이 창용회수(蒼龍廻水) 춤을 추며 밀려들어?
쇳소리를 내면서 달려드는 것이었다.
도옥을 상대로 무 명의 승려가 번갈아가며 숨도 돌려쉬지 못하게 철선장을?
휘두르는 것이 곧 도옥을 박살낼 것만 같았다.
그리나 도옥은 가벼운 몸짓으로 철선장을 피했다가는 내려져지는?
철신장을 뒤따라 덮치듯 왼 손 손가락에 진기를 운집한 천강지(天 指)의 지풍은
그대로 날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오른 손의 금환검을 눈 위에까지 끌어올렸다가 뒤쫓아 달려드는
승려의 선장을 뒤따라? 덮치듯 후려갈기면서 옆으로 살짝 피했다가 돌아서면서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먼저 달려드는 승려의 풍부혈(風府穴)과 곧이어
달려드는 승려의 주영혈(周榮穴)을 동시에 찔러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천강지의 지풍을 맞은 두 명의 승려는 차례차례로
다리를 꺾으며 푹 엎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두 명의 승려를 쓰러뜨린 도옥은 몸을 돌려 하림과?
상대하고 있는 두 명의 승려에게로 달려가려다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하림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가를 살펴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하림은 도옥이 의심치 않도득 뛰어들어 장검을 휘두를 뿐,
결코 소림사의 승려를 해치려고 뛰어든 싸움은 아니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양몽환을 구하겠다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어찌 장검을 휘둘러 상처를 입힐 것인가?
그래서 하림은 도옥의 눈치를 살피며 주로? 공격이 아닌 수세에 멀려
그들이 휘두르는 계도(戒刀)만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한편, 지금 이곳에 나타난 네 명의 승려는 소림 본사의 순호승으로서
일찍이 양몽환의? 부인인 심하림을 먼 빛으로 본 일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연유로 도옥과 함께 행동하며 또 장검을 들고 상대하는지
그들의 눈에는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여 하림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히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때에 그들의 사형인 철선장의 두 승려가 도옥의 악랄한 수법에? 쓰러진 것을 본
두 명의 승려는 일제히 계도의 방향을 바꾸어 멀찍이 서 있는 도옥에게로 쳐들어가고 말았다.
그들은 이미 두 명의 사형을 잃은 후라 물불 가릴 것 없이 소림사의 절기를 다해 달려든 것이었다.
그러나 교활하기 짝이 없는 도옥은 으례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두 명의 승려에게 마주 달려나가며 금환검을 휘둘러 싸악! 싸악! 뚫고 빠져나갔다가 땅을 박차며?
뒤돌아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옥을 놓치고 몇 걸음 앞으로 다려가는 승려의 뒤를 쫓아가며 미친듯 세 수의 공격을 퍼부었다.그 바람에 나란히 달려가던 두 명의? 승려는 할 수 없이 양편으로 갈라서게? 되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몸을 세우기에 급급했다.
그때 틈을 노린 도옥은 왼쪽에 있는 승려를 쫓아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오른쪽에서 마악 계도를 고쳐쥐는 승려에게로 달려가 금환검을 휘둘러
승려의 계도를 공중 높이 튕겨버리고 되돌아서면서 왼쪽의 승려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갑자기 가숨팍을 호되게 얻어맞은 승려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다
겨우 몸의? 중심을 잡으며 바로 서는 것이었다.
실로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구나 허망하게도 계도를 날려버린 승려는 계도가 있어도? 형편없이 몰리기만 했는데
금환검을 바로 세우고, 달려드는 도옥을 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리저리 몸을 피해 달아났다.
도옥은 달아나는 승려의 뒤를 쫓으려다? 말고 자기 주먹에 가슴팍을 얻어맞은 승려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승산이 기울어짐을 안 승려는 얼떨떨한 가슴을 내려쓸며 허둥지둥 앞서?
도망간 승려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달려가고 마는 것이었다.
요행히 목숨을 건지고 도망가는 승려를 바라보던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하림의 한숨 소리에 고개를 들었던 도옥은 하림이 혼자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당신 뭐라고 했지?]
[놀라운 무공을 지닌 당신이지만 양몽환과는 다르다고 했어요.]
사실 하림은 소림사의 승려가 상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던 바와는 달리 두 명은 쓰러지고 두 명은 정신을 뺏긴듯이
허둥지둥 도망가도록 만든 도옥에게서 잔인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던 것이었다.
그래서 한숨을 쉬며 혼자 중얼거린 것인데 도옥에게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계속해서 되묻는 도옥이었다.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거요?]
일이 이렇게 된 바에는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
[양몽환은 그렇게 무공이 강하여도 결코 가볍게 사람을 해치지는 않아요.
그러나 당신은...... 당신은......]
하고 당신 소리만 했다. 그러자 도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도옥이 어쨌다는 거야?]
하고 소리치는데는 하림도 순간 기가 죽었다. 그러나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무서워요. 그렇게 소리치지 마세요.]
[그럼 말해보오.]
조금 누그러지는 도옥의 표정을 보고서야 하림은 대답했다.
[당신은 사람을 해치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는 것같아요.]
하고 한숨을 쉬었다.
도옥은 어이없다는 듯이 허 허 웃고는 먼저 말 위에 올랐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어....어서 갑시다.]
하는 말에 하림도 더 말하지 않고 말 위로 올라탔다.
그동안 도옥의 뒤를 멀리 쫓아오던 일진의 인마(人馬)도 두런두런 소리를 내며
거의 도옥의? 뒤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말 위에 오른채 아무 말 없이?
얼마를 가던 하림은 속으로 도옥의 무공과 소림사 승려와의 무공을 비교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도 어이없이 패해버린 승려들의 무공에 비해 신출귀몰한 도옥의 무공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잠시 후,
도옥과 하림은 목을 움츠리며 일시에 흠칫했다.
그것은 갑자기 그들의 머리 위에서 현옥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현옥이다!]
흠칫했던 하림과 도옥은 똑같이 하늘로 고개를 젖혔다.
과연 하림이 외친대로 거대한 현옥이 날개를 접고 그들의 머리위로 급강하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하나의 유성(流星)이 떨어지는 것처럼 내려꽂던 현옥은 그들의 머리 위 오륙장 지점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멈추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날개를 펄럭이며 머리 위를 빙빙 선회하던 현옥은?
다시 날개를 더욱 세차게 퍼덕여 공중으로 비상하면서 유유히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이상한 행동으로 머리 위를 선회하던 현옥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출 때까지
주시하고 있던 도옥은 고개를 돌리며 하림을 부르는 것이었다.
[당신도 저 학을 알고 있소?]
[글쎄 주약란의 현옥같군여.]
[맞았어! 심상치 않은데 ...... 그녀도 이번 일에 뛰어들 모양이지!]
하고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림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란이 언니만 온다면 모든 것은 해결되겠지 ......
현옥이 나타난 것은 틀림없이? 란이 언니가 온다는 표시야
......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마음놓고 도옥과 상대할 수 있고...... >
혼자 기뻐하며 절로 미소가 나오는 것이었다.
사실 심하림은 워낙 순진해서 남편인 양봉환을 구해내려고
자신의 몸까지 희생할 각오로 도옥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런데 현옥을 보니 머지않아 주약란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앞으로 주약란이 나타날 때까지만 위기를 면하면 자기의 계획은
새로운 양상으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도옥에게 몸을 희생하지 않아도 양몽환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하림은 아무리 기쁨을 감추려해도 감추지 못하고 그만 도옥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러자 하림은 발갛게 얼굴을 붉혔다.
그때 하림을 지켜보고 있던 도옥은 하림이 얼굴까지 붉히며 좋아하는?
모습이 왜 그런지 우습기만 해서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크게 웃는 도옥의 웃음소리에 하림은 마음이 조였다.
[왜 그렇게 웃어요?]
[허...... 허...... 당신의 태도가 우습군 그래 허...... 허......]
[도대채 뭐가 그렇게 우습다고 그러죠?]
[당신은 주약란이 달려와서 이 도옥을 꼼짝 못하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겠지?]
하림은 더 묻지 못하고 그만 입을 다물었다.
< 이 간교한 도옥! 어쩌면 그렇게도 잘 알고 있지? >
속으로 혀를 깨물면서도 말문이 꽉 막혀버리는 것이었다.
[왜 대답하지 않소?]
재촉하는 말에 그제야 하림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직도 당신은 저를 의심하고 있군요.]
[의심? 어떤 점에서 당신을 의심한다고 생각하지?]
[어떤 점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당신은 제가 진심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어요.
틀림없이 그래요.]
하고 조금 토라지는 듯하는 하림의 태도를 눈여겨 보고 있던 도옥은 히죽 웃으며 음성을 낮추었다.
[거짓이 오래가면 사실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지. 지금은 당신이?
이 도옥을 진정으로 따르지 않지만 조금 시일이 흘러가면 진정으로 따르게 될 것이오.]
하며 내 말이 어떠냐는듯이 쓰윽 턱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럼 제가 당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이군요. 그래도 괜찮아요?]
[흥! 그런 것을 두려워할 도옥이라면 벌써 당신을 죽였을? 거요.
이 도옥은 당신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도 알고 있단 말이오.
그러나 이 도옥은 겁나지 않소.]
<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 여우같은 자! >
그러면서도 하림은 그의 말에 이마를 찌푸렸다.
[그럼 제가 양몽환에개 혼인파기서를 쓰게 한 것도 미리 의논한줄 아는 모양이군요?]
[그렇지는 않겠지. 이 도옥이 옆에서 직접 보았으니까.]
[보았다고 다 아는가요?]
[알 수 있지. 더구나 이 도옥은 양몽환의 인품을 잘 알고 있단 말이오.
결코 그는 당신을 이용해서 이 도옥을 홀리려는 미인계(美人計)를 쓸 사람은 아니지.]
하는 말은 그대로 비수가 되어 하림의 가슴을 찔렀다.
한동안 쓰라린 가슴을 진정하느라고 얼굴까지 찌푸렸던 하림은 쓸쓸히 미소를 띄웠다.
더 숨길 것도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웃음이 도옥으로 하여금 미인계까지 생각하게 했다면 일은 다 끝난 셈이었다.
절로 터지려는 한숨을 억제하며 웃어야 했다.
[당신의 말이 맞아요.
이젠 더 숨길? 수도 없군요. 그러나 당신과 양몽환이 다른 점은 바로 이런 점이에요.
만일 제가 양몽환을 구하려고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한다면
그는 평생동안 나를 돌아보지도 않을 거에요.]
그러나 도옥은 하림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큰소리로 웃어젖히고는
말에 채찍을 가해 휭하니 먼저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림 역시 밑에 채찍을 가하고 도옥의 뒤를 바싹 따랐다.
잠시 후,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말을 세운 도옥은 길 한가운데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도옥의 시선을 쫓던 하림은 길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말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말뚝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진 방이 붙어 있었다.
< 여기서부터는 세 갈래의 길이오!
아무 길이나 가고 싶은 길을 임의대로 택하시오. 가는 것은 자유요. 알아서 하시오. >
한참 동안 눈을 껌벅거리며 읽고 있던 도옥은 큰소리로 냉소를 터뜨리고는 말뚝을 뽑아들었다.
그 말뚝은 만들어 세운지가 얼마 안되는 듯 도끼 자리가 그대로 나있고 송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렵지 않게 뽑아든 말뚝을 이리저리 굴려보던 도옥은 방은 방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뚝은 말뚝대로 두 동강을 내더니 그래도 시원치 않은지 말뚝을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
눈을 부릅뜨고 어금니를 깨무는 것이? 속으론 무슨 화가 났는지 분통을 터뜨리지 못해
어깨까지 흔들며 씩씩거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도옥을 보고 있는 하림은 은근히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뒤를 따라오던 일진의 인마와 수거가 도옥과 하림이 서 있는 뒤에
천천히 멈추어 서는 것이었다.
그 일진을 흘깃 뒤돌아보더 하림의 시선은 검은 베로 씌운 수거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 도옥의 말대로 양몽환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저 수거 속에는
조소접과 독용부윈이 갇혀 있겠지 ......
그러나 항상 교활하기만 한 도옥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담...... >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일진을 호령해서 멈추어 세우고 도옥에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왕한상(王寒湘)임을 알아본 하림은
입을 막으며 놀라움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경악하며 놀라워하는 마상(馬上)의 하림을 보았는지
보고도 못본 척하는 건지 곧장 도옥에게 다가간 왕한상은 도옥과 마주서서
낮은 소리로 몇마디 속삭이는 것이었다.
그들의 속삭이는? 소리는 가까이 있는 하림도 받아들을 수 없을만치 작은 소리였다.
왕한상과 낮은 소리로 대화를 끝낸 도옥은 얼굴 가득히 결심의 빛을 띄우며
세 갈래 길 중에서 가운데 길을 손가락질했다.
[그럼 이 중간의 길로 가기로 합시다!]
하고는 먼저 말을 몰아 가운데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도옥의 뒤를 이어 하림이 따르고 그 뒤를 왕한상과 이 십여 명의 흑의장정이
주위를 경계하듯 천천히 수거를 움직여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이십리 길이냐 왔을 때 갑자기 길이 험해지며 눈앞에는
하늘로 치솟는 험한 산이 일행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앞장섰던 도옥은 길을 잘못들어선 것을 깨달은 듯 잠시 주위를 살피며 망설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접어든 길을 되돌아서기는 싫은지 고개를 몇번 흔들고는 높은 산에 도전이나 하는 듯
입을 꽉 다물고 묵묵히 말을 몰고 나가는 것이었다.
험악한 산길은 앞으로 나아갈 수록 더 험해지고 휘휘 틀어진 산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고
구불구불 돌아서 어느덧 깊은 산골짜기로 일행을 인도하고 말았다.
길 양편으로 가파른 계곡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막아섰고 아름드리 나무는?
그 울창한 나뭇가지로 해서 파란 하늘을 가리우고스산한 산바람이 선들선들 쉬임없이
불어 떨어진 나뭇잎들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무시무시한 기운이 온 몸을 엄습하는 듯 소름이 끼치고 마음이 조여오는
숨막힌 골짜기였다.
그러자 도옥은 암암리에 진기를 운집히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만일을 염려해서 몸에 품고 다니던 암기 투골자우침(透骨子牛針) 세 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긴장된 일행의 시선이 한 곳으로 일제히 쏠리고 말았다.
그것은 하나의 흰 물체였다.
울창한 나무 숲에서 토끼라도 달아나는지 바스락 소리가 나는가 했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흰 물체가 날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두려운 생각과 공포감이 가득했던 일행은
손에 무기를 들며 흰? 물체를 노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하얀 헝겊이었다. 긴장했던 일행이?
약간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다시 올려다
보았을 때는 절로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흰 보자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시 올려다 본 일행의 시선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도옥! 너를 산채로 잡으리라! >
그리고 한 조각으로 보이던 헝겊은 여러개로 늘어나면서?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걸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하림은 고개를 젖힌채 생각하고 있었다.
< 도대체 누가 저런 글을 써서 띄웠을까...... >
그러나 곧 하림의 의문도 풀어지게 되고 말았다.
홀연, 어디서인가 난데없는 피리소리가 흐느끼는 듯
갸날프게 들리며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 피리소리를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장송미인곡(葬送美人曲)인데는
더욱 주위가 으시시했다.
이 장송미인곡은 옛날 어느 임금이 자기가 아끼던 총희(寵姬)가 죽었을 때 부르는
장송곡으로써? 그 일화는 대강 이러했다.
-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던 총희가 죽자 임금은 방방곡곡에 방을 붙여 고혼(孤魂)을
위로할 수 있는 곡을 지어 올리게 했다.
그러던 어느날 외다리의 괴한이 곡을 모집하는 관헌에게 던지고 간 종이에
장송미인곡이라는 곡이 적혀 있었다.
임금도 그 곡이 마음에 들어 총희의 장사 때 피리로 불게 하였고 총희가
생각날 때마다 신하에게 명해 피리로 들려주기를 원과곤 했다.
그런데 장송미인곡을 지어 관청에 던지고? 간 다리 병신은 바로 총희의 옛 애인이었다-
라는 일화를 남긴 그런 장송미인곡이 지금 흐느끼는듯 애절히 들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 두뇌가 비상한 도옥은 피리의 주인공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채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옥소선자! 숨어서 잔재주를 부리지 말고 썩 나오라! 그따위 장나에 겁낼 이 도옥이 아니다!]
하는 도옥의 외침 소리가 끝나자마자 산울림처럼 오른쪽 산 속에서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퍼져나왔다.
[도옥! 이미 너는 막다른 함정에 빠져들었다. 만일? 자진해서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이 옥소선자가
날려보내는 암전(暗剪)에 목숨이 온전치 못하리라!]
도옥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소리나는 곳을 노려보며 냉랭하게 소리쳤다.
[옥소선자! 이 몇년간 천기석부에서 주약란의 장난같은 잔재주를 좀 배운 모양이지만?
정말 이 골짜기에 함정을 파놓고 이 도옥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왜 숨어서 떠드느냐!
자신 있으면 얼굴을 나타내라!]
도옥의 소리를 되받은 옥소선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러나 역시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목소리만 들리는 것이었고 그 목소리는
첩첩이 둘러싼 높은 산때문인지 왕왕거리며 여러 곳에서 퍼져나오는 소리같았다.
[도옥! 속으론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으면서도 제법 큰소리를 치는구나! 남보기에 부꾸럽지도 않아?]
그러나 도옥은 숨어 있는 옥소선자에게 소리치지 않고 옆에 있는 하림에게 나직이 말했다.
[무서우면 뒤로 물러가 기다려!]
하는 말에 하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도 무섭지 않아요. 저는 당신과 함께 싸우겠어요.]
그러자 도옥도 눈을 크게 뜨며 기쁜 듯이 미소를 띄우는 것이었다.
[진정이오? 이 도옥과 함께 싸우겠다는 것이?]
[예. 진정이에요. 제가 어찌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됐어!]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 도옥은 다시 옥소선자를 불렀다.
[옥소선자! 이 도옥은 두려운 것이 없다. 정말 이곳에 함정을 만들어 놓았다면 수단껏 해봐라!]
그러자 옥을 굴리는 듯한 청아한 웃음소리가 산골짜기에 가득히 퍼지며 맞은편 나무 위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내려와 길 한가운데에 우뚝 서는 것이었다.
옥소선자였다.
순간, 사방을 휘둘러 본 도옥은 별로 이렇다하게 눈에 뜨이는 변화가 없음을 알고는?
싸늘하게 냉소를 터뜨리며 옥소선자를 불렀다.
[옥소선자! 오늘 여거서 이 도옥을 해치지 못한다면 이 골짜기가 너의 무덤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소리치는 도옥을 보며 하림은 만일 사태가 불리해 옥소선자가 죽게 되는 경우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우선 옥소선자부터 구하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옥소선자는 태연히 흩어진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담담히 웃었다.
[도옥! 너는 운이 나빴어! 오늘 여기서 죽지 않으려면 이 가운데 길로 들어서지 않았어야 했어.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어!]
[흥! 네가 이 도옥을 사로잡겠다고 이곳에 함정을 파놓았다고는 생각지도 않아!
그대신 네가 죽을 곳이 음산하구나!]
[큰소리는 아직 이르다. 우선 맛부터 보여주겠어!]
하고는 들고 있던 옥피리를 높이 머리 위까지 올리고는 빙그르 한바퀴 돌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것을 신호로 해서 양쪽 산비탈에서 갑자기 수를 셀 수 없는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이십여 명의 꽃같은 소녀들이 장검을 메고 도옥을 에워바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도옥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냉소를 터뜨렸다.
[흥! 기껏 조소저의 십이화녀(十二花女)야!]
빈정거리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태도에 옥소선자는 싸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옥! 너는 비열한 수단으로 조소접을 사로잡았지 그러나 여기 그녀의 십이화녀들은?
도옥 너처럼 비열하게 너를 사로잡지는 않아!]
[흥! 흐 ...... 흐 ....... 저따위 계집들이 나 도옥을 잡는다구? 흐...... 흐......]
같지도 않다는 듯이 연방 헤프게 웃음을 흘렸지만 옥소선자는 눈썹도 치켜 올리지 않았다.
[지금은 맘껏 웃어라! 비록 한 두 사람의 무공으로는 너를 당해내지 못하겠지만
십이 명의 무공을 합친다면 그렇게 함부로 웃을 일도 아니지!]
[흥! 그들 십이화녀도 조소접의 귀원비급을 조금 배우긴 했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이 도옥에게 달려든다는 것은 불을 보고 달려드는 하루살이지.
달걀로 바위를 치겠다 그거지 핫...... 하 ......]
하고 차갑게 냉소를 터뜨리는 도옥이었다.
천기석부에서? 온? 주약란
그러나 옥소선자는 여전히 미소를 띄운채 말했다.
[도옥! 이 옥소선자와 십이화녀 말고도 많은 고수들이 이 계곡에 매복되어 있다는 것도 믿지 않겠어?]
[지금 이 천하 무술계에는 두 파로 나눌 수 있지.?
하나는 이 도옥의 부하가 되는 것이오. 다른 한 파는?
이 도옥의 적이 되는 것이지. 그러나 이 산 속에 어떤 고수가 있다 하더라도
또 얼마나 많은 적이 있다해도 이 도옥은 두렵지 않아!]
하고 호기있게 내뱉는 도옥의 태도에시 옥소선자는 잠시 감탄해 마지 않았다.
< 비록 적이지만 대담하군! 일찍이 천하 무술인을 상대로 모두 적이라고 외친 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었던가...... >
하고 은근히 감탄하고 있을 때 다시 도옥은 옥소선자를 불렀다.
[옥소선자! 너는 이 두옥과 겨루어 이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겠지!
그리고 이 도옥과 상대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
그러면 더 이상 입을 놀릴 것 없이 최후로 한 마디만 하겠다.
오늘 이 싸움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기는 편이 왕이 되기로 하자. 어때?]
말을 끝내자마자 말 잔등에서 뛰어내린 도옥은 그대로 몸을 날려 옥소선자에게 덮쳐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벌써 진기를 운집하고 있던 옥소선자는 옥피리를? 들어 달려오는 도옥을 정면으로
맞받으며 지쳐나왔다.
그 순간, 번개같이 몸을 날린 도옥은? 왼손으로 강력한 장풍을 불러 일으켜
옥소선자에게로? 뒤집어 씌움과 동시에 오른손가락에 천강지력을 모아
일지풍(一指風)을 몰아붙이고 말았다.
그러자 옥소선자는 아무래도 도옥과의 상대가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는지
순간적인 도옥의 공격을 막아내며 옥피리를 휘둘러 십이 화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와 함께 날카로운 섬공이 사방? 팔방에서 번쩍이며 여덟개의 장검이 싸늘한?
칼끝을 세우며 도옥을 향해 물밀듯이 달려들었다.
사실 옥소선자와 십이화녀 사이에는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
즉 뒤로 물러서며 옥피리를 들면 그것을 신호로 일제히 도옥을 공격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순간! 미리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일제히 달려드는 화녀들의 장검을 상대하게 된
도옥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귀원비급의 기기묘묘한 무공으로 단련된 도옥은 길게 휘파람을 불면서 땅을 박찼다.
그러자 도옥의 몸은 가볍게 허공으로? 뛰어 올라 이장(二丈)이나 곧장 오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여덟개의 장검은 도옥이 섰던 자리만 헛치고 말았다.
일단 허공으로 뛰어오른 도옥은 잠시 허공에 머무르더니 화녀들이 헛 찌르고 되돌아서는 순간
금환검을 휘두르며 새처럼 가볍게 땅에 내려섰다.
그러나 화녀들도 보통의 무공이 아니었다. 도옥이 사뿐히 내려서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여덟 명의 화녀는 종전과 똑갈은 방법으로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러자 도옥은 또다시 허공으로 몸을? 치솟다가 화녀들의 칼끝이 한 곳으로 모이는
틈을 노려 질풍같이 금환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눈앞이 아찔한 것도 잠시,
어떻게 되었는지 여덟 자루의 장검이 한데 뭉쳐 금환검에 튕기어 삼장(三丈) 밖으로
나가 떨어지고 제각기 악! 소리를 지르는 화녀들의 사이를 뚫고 다시 사뿐히 내려서는
도옥이었다.
이와같은 도옥의 신법(神法)에 옥소선자는 가슴이 서늘했다.
< ....아무래도 오늘의 이 싸움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겠는데...
도옥의 신법이 며칠 전보다 또 다르지 않은가?...... >
내심 은근히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옥소선자는 빈틈을 주지 않으려고 옥피리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추호의 사정도 두지않고 일격에 여덟 수의 공격을 가하며 지쳐 들어갔다.
그와 때를 맞추어 화녀들이 옥소선자를 호응하여 장검의 끝을 사방으로 퍼뜨리며
앞과 뒤 양쪽에서 나비처럼 춤을 추며 공격했다.
삽시간에 다시 옥소선자와 화녀들에게 에워싸인 도옥은?
여유만만하게 금환검을 변화시키며 검광을 뿌리고 좌충우돌, 여념이 없었다.
한편!
착잡한 감정으로 냉정히 싸움의 추세를 관망하고 있던 하림은 십이화녀와
옥소선자에게 에워싸였다가도 신출귀몰하고도 날쌔게 빠져나와 역습을 감행하는
도옥의 놀라운 재주에 어안이 벙벙했고
따라서 옥소선자가 이긴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직감했다.
< 이러한 태세로 싸운다면 아무래도 옥소선자의 신변이? 위험천만이야.
그렇다고 옥소선자를 도울 수도 없고 또 가만히 서 있는다면 도옥의 의심을 살 것이다.
슬쩍 도옥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암암리에 옥소선자를 거들어 주는 것이 좋겠어...... >
여기까지 생각한 하림은 즉시 장검을 뽑아들며 옥소선자를 큰소리로 불렀다.
[옥소언니! 너무하는군요.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비겁해요.]
야무지게 소리친 하림은 곧장 에워싼 화녀의 장검을 헤지고 도옥의 옆에 바싹 붙어섰다.
그러자 옥소선자는 눈썹을 곤두세웠다.
[심소저의 내심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 옥소선자가 친히 상대해주지!]
결심한 옥소선자는 도옥에게로 향했던 옥피리를 돌려 하림에게로?
지쳐들어가 주로 급소 요혈만 노리고 번개같이 옥피리를 휘둘렀다.
그렇게 얼마를 휘둘러대던 옥소선자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것은 지금 하림의 취하는 행동에서 얼핏 그녀의 행동이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사실 옥소선자도 하림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도옥과 행동을 같이하지만 그녀의 애틋한 심정은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양몽환을 구해내려는 헌신적인 사랑 그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결심에 내심 머리가 숙여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왕 맞붙은 바에야 철저히? 연극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일부러 소리까지 크게 내며 더욱 기세를 올렸다.
[너 요망스러운 심소저! 양상공이 위험에 빠졌다고? 해서 그렇게 냉정히 돌아설 수 있단 말인가?
양상공이 결코 너에게 박정하지 않았는데 그 사이를 못참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다니!]
연신 입을 놀리며 하림에게로 지쳐들어가자 옆에서 화녀와 겨루고 있던 도옥은
급히 몸을 돌려 옥소선자의 옥피리를 후려 갈기며 하림을 가로막고 눈을 부라리는 것이었다.
[이미 양몽환은 혼인파기서에 수인까저 했어.
그런데 뭣이 어쨌다고 떠드는? 거야? 어디까지나 심소지는 자유의 몸이야!]
하면서 소리친 도옥은 일면 달려드는 화녀들의 장검을 이리 치고?
저리 치고 그야말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동분서주로 금환검을 놀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림도 기운을 내며 장검을 휘둘러 옥소선자를 뒤로 물러서게 한 다음 쏘아붙였다.
[도대체 옥소언니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큰 소릴 치는 거죠?]
눈썹까지 치켜올리며 장검을 휘둘렀다.
이와같이 쌍방은 서로 몰리고 밀리고 하면서 장검과 장검을 부지런히 휘둘렀다.
그렇게 치열한 공방전을 벌리고 있던 화녀중의 한 소녀가 동료에게?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적의 솜씨가 놀라워요. 우리는 팔선검진(八仙劍陣)으로 대적해요!]
그러자 도옥은 팔선검진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는지 급히 하림을 부르는 것이었다.
[심소저! 당신은 이 도옥과 등을 대고 싸워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하는 소리에 하림은 즉각 도옥의 말뜻을 알아채고는 장검을 휘두르면서
옥소선자를 물러서게 한 다음 곧장 도옥에게로 달려가 맞대고 서는 것이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화녀들도 위치를 바꾸어 급히 팔선검진을 펼치면서 일제히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지금 화녀들을 펼친 팔선검진을 환하게 알고 있는 터였다.
비록 팔선검진을 펴며 공격해 오는 화녀들의 공격이 날카롭다 해도 미리 공격해 오는 방법을
알고 가볍게 막아내는 데는 누가 보아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 반면 하림은 전연 장검도 휘두르지 못하고 있었다.
판선검진이란 말을 미처 들어보지도 못했고 또 어떻게 공격을 막아내며 역공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하림은 도옥의 등에 자기의 등을 마주대고 빙빙 돌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혼자의 몸으로 하림까지 방어해야 하는 도옥은 결국 안팎으로 금환검을
날쌔게 휘두를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하림을 위해 붙였던 등을 떼며 돌아서야 하기도 했다.
도옥은 애초부터 팔선검진을 쉽게 무너뜨리고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하림의 몫까지 담당하느라고 여전히 팔선선검진에 얽매인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한편, 하림이 도옥에게 달려감에 따라 상대방을 잃은 옥소선자는 급히 옥피리를 거두고
팔선검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찍이 피해 놀라운 검진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점점 화녀의 공격은 날카로워지고 팔선검진의 변화도 점차 무쌍하여져 눈이 홱홱 돌아가도록
기기묘도한 재간이 피차 속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옥은 화녀들의 팔선검진이 점차 변화가 무쌍해질 수록 대적하고 공격하는 데에도
익숙하여져 팔선검진이 어떠한 변화를 일으킨다 해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한 반면 하림은 싸우면 싸울수록 몸둘바를 몰라 왼쪽으로 돌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돌기도 하는?
도옥을 따라 돌아가는 한편 시시각각으로 역습해오는 화녀의 장검을 피하느라고 정신마저
혼란에 빠지는 듯 어지러워지기만 했다.
일찍이 도옥의 구원이 없었다먼 벌써 쓰려져버렸을 하림이었다.
이리하여 쌍방은 별로 이렇다할 승부의 기미도 없이 막상막하의 실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관망하고 있던 옥소선자는 비록 팔선검진의 위력이 날카롭기는 해도
도옥을 해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확실히 도옥의 무공이 진전되었군.
만일 도옥과 상대할 수 있는 고수가 있다면
조소저밖에 없겠는데...... 그러나 오늘 당장은 어려운 일이고......
하여간 무슨 방도를 강구하시 않으면 안되겠는데...... >
하고 생각에 여념이 없는 바로 그때였다.
홀연! 하림이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얼핏 돌아보는 옥소선자의 눈에는 지금 막 왼쪽 어깨의 옷이 찢어진 사이로
붉은 피가 흐르는 하림을 발전할 수 있었다.
상처가 심한 모양이었다.
그 순간, 도옥의 다급한 음성이 터졌다.
[상처가 심하오?]
소리친 도옥은 금환검을 새로이 꼬나잡으며 맹렬한 기세로 반격하는 것이
하림이 흘리는 피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싸우던 태도가 돌변하여 쇳소리도 날카롭게 후려갈기는 도옥의 금환검에
화녀들도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금환검을 다시 휘둘러 허공 가득히 검막을 치면서 하림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어떻소? 상처가.]
[별로 심하진 않아요.]
일변 물으며 하림의 대답을 들어가면서도 도옥은 부지런히 검막을 뿌려 얼씬도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혹시 뼈를 다친 것은 아니오?]
[모르겠어요.]
[속히 운기하여 피가 흐르지 않도록 하시오. 그리고 대적할 필요는 없소!]
하고는 더욱 기세있게 금호나검을 휘둘러 검풍과 검막을 일제히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오른쪽 절벽 밑에서부터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일제히 검을 멈추고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검북사의를 거느리고 수염을 날리며 달려오는 이창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나 달려오는 이창란을 도옥은 도옥대로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노려보았고 옥소선사도 또 옥소선자대로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미소를 띄우던 옥소선자는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 이창란의 무공도 보통은 아니다. 이제 십이화녀들과 힘을 합세하면?..... >
도옥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불쑥 떠올라 급히 이창란에게 마주 달려갔다.
[노선배님!]
그러자 이창란도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섰다.
[언제 오셨소?]
[예. 노선배님께서 잘 오셨어요.
지금 한 가지의 계교로 도옥을 이곳까지 끌어들이긴 했지만
도옥의 무공이 상상밖으로 놀라워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에요.]
하자 이창란은 화녀들과 싸우고 있는 도옥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저런 흉악한 도옥과 싸울 때는 강호의 도리를 돌아보지 않아도 좋소! 수단껏 싸워봅시다.]
[그렇다 해도 그의 무공이 놀라워 우리들이 합세해도 어려울 것 같군요.]
하고 근심을 띄우는 옥소선자를 지그시 바라보던 이창란은 펄럭이는 수염을 천천히 내려쓸었다.
[옥소선자의 무공도 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싸우지 않고 있었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이 물러나고 말았어요.]
[그럼 상처라도 입었소?]
[그것이 아니라 저기 십이화녀들이 벌려놓은 검진에 내가 끼어있으면 공격하는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물러서 있는 거에요.]
[오, 그렇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이창란은 곧 말을 이었다.
[만일 이 늙은이가 나선다면?]
[노선배님의 공력이 심후하셔서 예측할 길이 없군요.
귀원비급을 터득한 도옥이 미쳐 날뛰지만 노선배님과 우리들이 합세하면
이길 승산도 없지 않을 것같아요.]
하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조금 어두웠다.
그것은 이창란 당신의 무공도 강하지만 도옥의 무공도 강하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그러한 옥소선자의 표정을 무술인으로서 늙은 이창란이 모를리 없었다.
[이 늙은이는 귀원비급에 기재된 무공이라고 해서? 전부 절수라고는 믿지 않소.
어쨌든 이? 늙은이가 한 수 겨루어 보겠소. 뒤에서 호응이나 해주시오!]
하고 결심을 나타내는 이창란의 얼굴에는 옛날 천용방을 이끌며 호령하던 위엄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볼 수 있었다.
어딘가 속인이 범할 수 없는 풍채가 더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이창란이었다.
굳은 결심으로 옥소선자와 말을 마친 이창란은 뒤에 서 있는 검북 사의에게 고개를 돌렸다.
[만일 이 노부가 도옥의 금환검에 쓰러지거든 너희들은 곧장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오년 동안이나 이 노부를 따르면서 고생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보답할 것도 없구나. 어쨌든 너희들의 앞길이 평탄하기를 빈다.]
엄숙히 하는 말에 검북사의는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주인공께서 저희들에게 베푼 은혜는 바다와 같습니다. 이제 어찌 주공을 잊겠습니까?]
이구동성으로 일제히 대답하는 말을 들은 이창란은 가볍게 탄식했다.
[고맙다. 어쨌든 이 노부의 말을 명심해 두어라. 그리고 우선 보도록 해라.
궈원비급의 무공이 얼마나 절묘한가를 한 수 시험해 보겠다.]
하고는 한창 싸움에 여념이 없는 화녀들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편, 싸움에서 계속 우세를 견지하며 무궁무진하게 금환검을 휘두르고 있던 도옥은
다가오는 이창란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공이 강한 이창란이 화녀들과 합세하면 자신의 위치가 심히 불리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곧장 검법을 변화시켜 눈 앞에 있는 두명의 화녀를 벼락같이 공격해서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급히 하림을 이끌고 진로(進路)를 뚫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순간, 도망가는 도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창란은 용두지팡이를 쇳소리가 나도록 흔들며
고함을 터뜨렸다.
[이 의리도 없는 놈아! 피하지 말고 이 노부와 일전을 겨루어보자. 이놈!]
하며 도옥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러자 도옥은 왼손을 번쩍 들어 천강지의 강한 일지풍을 터뜨려 두 명의 화녀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눈을 부라렸다.
[조급히 서두를 것은 없소? 내일도 있는데 굳이 오늘 싸워야 하겠소?]
하고는 하림을 이끌고 그대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울화통이 터진 이창란이 땅을? 박차며 도망가는 도옥을 따르려는 순간,
갑자기 옥소선자가 다급히 외쳤다.
[수거(囚車)다!]
하는 고함소리에 번쩍 고개를 돌린 이창란의 눈에는 이 십여 명의 장정들이
수거를 호위하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고 맨 앞에 부채를 들고 다가오는 왕한상도 볼 수 있었다.
순간, 이창란은 도망가는 도옥을 그냥 버려두고 다가오는 왕한상과 정면으로 대치하여
용두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한편, 뜻밖에도 험한 계곡에서 이창란과 옥소선자를 만나게 된 왕한상은 약간 불안을 느꼈다.
그대로 이창란과 옥소선자를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가야 할지,
아니면 되돌아 서서 도망을 쳐야 좋을지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서로의 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좁혀지고 그러는 동안에도
왕한상은 결정적인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쇠부채를 든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것을 신호로 해서 이 십여 명의 장정과 수거는 천천히 멈추어 서는 것이었다.
그 순간, 이창란의 수염은 부르르 떨렸다.
한 때는? 천용방의 황기단주로서 방주 이창란에게 충성을 다하던 부하 왕한상이
지금은 이창란의 사위 양몽환을 압송하는 괴수가 된 것에 또 한번 인간사(人間事)가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는 이창란이었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는 그래도 좋다.
자식같이 키워준 도옥도 원수가 되어 금환검을 휘두르는 판국에 부하가
배반해서 사위 양몽환을 압송하는 것쯤 대수로울 것이 아니리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말의 감회는 없을 수 없었다.
서로 대치한채 얼마동안 노려보기만 하던 이창란은 한 손에 용두지팡이를 힘있게 꼬나쥐고
다른 손으로는 분노에 부르르 떠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위엄있게 왕한상을 불렀다.
[옛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소! 왕형은 이 늙은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오?]
한편, 왕한상도 이창란을 만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천용방의 방주인 이창란이
그렇게 신임해주고 만일 방주 이창란이 불의의 사고로 해를 입게 되면 방주의 자리까지
내약되었던 그래서 다섯 명의 단수 중에서 제일 신임을 받고 총애를 받던 왕한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로 적대지간으로 험한 산 속에서 마주 서게 된 것이었다.
잠시 번민 속에 빠진 왕한상은 어떻게 태도를 정하고 이창란을 대해야 할지
심히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옛날의 스승이고 방주였던 이창란을 그냥 노리고 바라볼 수 만은 없었다.
더구나 자기보다 먼
저 입을 열고 말을 거는데는 더 가만히 서 있을수 만은 없었다.
그래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방주님께 삼가 인사를 드립니다.]
두 주먹을 마주 쥐며 일읍하는 왕한상의 인사를 이창란은 큰소리로 쾌활하게 웃으면서 받았다.
[허...... 허...... 천용방은 이미 망했소.
그러나 지금의 형세로 보아 왕형과? 이 노부는 서로 적대지간이 된 모양이오!]
그러나 왕한상은 황망히 고개를 흔들면서 표정을 굳혔다.
[어찌 감히 방주님을 적으로 대하겠습니까?]
그러나 이창란은 더욱 호탕하게 웃으며 왕한상의 말을 막았다.
[왕형! 이 노부와 왕형과의 사이에는? 지금 적대지간이라는 다리가 가로놓여 있소.?
이것을 없앨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취할 길은 두 길이 있소.?
하나는 옛날의 정분을 생각해서 저기 수거의 문을 열고 가두어둔 사람들을 풀어주는 것이오.
아니면 이 노부와 왕형이 목숨을 걸고 겨루어 보는 것이 남은 한 길이라 생각하오]
이창란의 말을 들으며 왕한상은 점차 난처한 입장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와같은 진퇴양난에서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그저 망설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옛날의 정분을 생각한다면 수거의 문을 개방해야 하고 또 지금 자기 자신이 처하고 있는
위치와 도옥을 생각하면 스승에게 쇠부채를 휘둘러야 할 입장에 놓여있는 왕한상은
얼마 동안 시간이 흘러가도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기다리기에 지친 이창란은 용두지팡이에 힘을 주며 부르르 수염을 떨었다.
[왕형! 수거의 철문을 열지 못하겠다면 이 늙은이의 무례함을 원망마오!]
고함을 지르며 그대로 용두지팡이를 휘둘러 즉각 직구천남(直邱天南)의 수로
변화시키며 달려들고 말았다.
그 순간까지도 단안을 못내렸던 왕한상은 달려드는 이창란을 피해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연거퍼 세 수나 날카롭게 공격하는 데는 더 망설이지 않고 들었던 쇠부채를
좌르르 흔들어 펴고 말았다.
순간, 과거도 돌아볼 것 없이 스승과 부하가 맞붙어 요란한? 쇳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옥소선자와 검북사의도 각기 장검과 옥피리를 꼬나들며 수거를 지키고 있는
이 십여 명의 장정들에게 뛰어들었다.
이리하여 험악한 산골짜기는 삽시간에 검은 구름이 끼듯 아비규환의 도가니 속으로 휘말려 들고 말았다.
한번 분통을 터뜨린 이창란의 공격은 실로 한 수 한 수가 필살의 한 수였다.
옛날의 정분을 생각한다면 왕한상의 배신이 분통을 터뜨리게 했고 더구나 양몽환을 압송하는
괴수가 되어 있다는 것에 이창란의 분통은 도를 더했다.
그런데다 감히 쇠부채를 펼쳐들며 대항하는 데는 울화통이 터지다 못해 피를 토하고 죽어도
분이 풀릴 것 같지 않은 이창란이었다.
그러한 이창란의 용두지팡이가 사정이 있을리 없었다.
그러나 왕한상은 왕한상대로 이창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쇠부채를 펴들기는? 했지만
한때는 스승이었던 이창란과 정말 쇳소리를 내며 싸울 수는 없다는 죄책감과 십여년 동안
보좌해오던 이창란의 위엄에 눌려 실력을 발휘하가보다 이창란의 공격을 피하기에도 힘에 겨웠다.
물론 도의감 때문이었다.
차마 이창란에게 해를 줄 수 없는 왕한상은 십여합을 교환끝에 이창란의 용두지팡이에
어깨를 호되게 얻어맞고는 그대로 맞은편 계곡으로 기어오르고 말았다.
한편, 왕한상의 부하들도 밀리고 있었다.
이십 여명의 부하들은 옥소선자와 검북사의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십여 명의 중상자를 내며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그러던 둥 괴수인 왕한상이 이창란의 용두지팡이를 피해 절벽으로 기어오르자
그들도 일제히 휘파람을 불며 사방 팔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왕한상과 그의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 목숨을 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을 본 이창란은
더 추적하기를 단념하고 곧장 수거로 달려가 검은 배의 휘장을 들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크!]
비명소리를 내며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틀림없이 양몽환, 조소접 그리고 독용부인이 갇혀 있는줄 알았던
이창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머리가 없는 하나의 시체뿐,
양몽환도 없고 조소접과 독용부인도 없는 텅 빈 수거였다.
뒤이어 달려온 옥소선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전신에서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 후들후들 다리까지 떨었다.
[교활한 도옥! 짐작대로 어떤 간계를 꾸민 것이 분명하군!]
하는 소리에 이창란도 정신을 수습하며 힘없이 탄식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속았소. 이게 바로 금선탈매지계(金蟬脫賣之計)라는 거요!]
중얼거리다가도 분통을 터뜨리지 못해 용두지팡이를 들어 수거의 쇠창살을 후려갈겼다.
그 바람에 세개의 쇠창살이 부러지 나가는 것이었다.
[맞아요. 양몽환은 교활한 도옥의 계교로 이미 다른 곳에 갇혀 있을 거에요.]
[그런 것같소. 그런데 이 머리없는 시체를 놓아둔 것이 무슨 이유겠소?]
[도옥의 위인됨이 교활해서 우리들을 놀라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을 거요. 우리들이 도옥을 끝까지 추적한다면 양몽환도
이 머리없는 시체처럼 만들겠다는 암시일거요.]
듣기에도 끔찍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말에 옥소선자는 목덜미가 서늘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극악하기 이를데 없는 놈이군요. 우선 수거를 압송해온 자에게 물어보죠.]
하고는 주위를 휘둘러보던 옥소선자는 그때까지 땅에 쓰러져 버둥거리는 장성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장정의 현기혈(玄氣穴)을 두드려 짚힌 혈도를 풀어놓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정은 깊은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살펴보고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는 것이었다.
이에 약간 자신을 얻은 옥소선자는 낮은 음성으로 상처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나 장정은 못들은 척하고 눈도 뜨지 않았다.
[속히 정신을 차리고 묻는 말에 대답해요.]
하고 재차 말하는 옥소선자의 말에도 장정은 북묵부답 장승처럼 서있기만 하는 것을 보다 못해
이창란은 장정을 붙들고 한가닥 희망으로 달래고 있었다.
[이 늙은이는 이창란이다. 네가 만일 묻는 말에 대답한다면
너의 몸을 완전히 치료시켜 네 갈 길을 가도록 해주마.]
하며 은근히 달랬다.
그제야 장정은 감았던 눈을 뜨며 이창란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죽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을 거요.
그러나 말만이라도 고맙소. 아직 숨이 붙어 있으니 속히 물어보시오.]
하며 응했다.
[그럼, 저 수거에 가두어 두었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갔느냐?]
먼저 이창란이 묻는 말에 장정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방주가 다른 인마(人馬)에 태워 백장봉(百丈峰)으로 보냈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말에 이창란은 가슴을 내려쓸며 안도의 숨부터 쉬었다.
장정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직 목숨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한마디만으로 만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이창란이었다.
[음...... 그러면 혹시 도옥이 그들에게 무슨 상처를 입혔는가?]
[상처를 입지는 않았습니다.]
하고 끝까지 말을 잘 하던 장정은 갑자기 눈동자가 흐려지며 꼬르륵 가래를 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처 붙잡을 사이도 없이 그대로 축 늘어지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순간, 예민한 안광으로 장정의 얼굴색을 살핀 이창란은 고개를 저으며 침울하게 말했다.
[이미 독약을 먹고 사살할 결심이었소. 저 얼굴이 벌써 변하는 것을 보시오.]
과연 장정의 얼굴은 이창란의 말대로 검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을 가지고 상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양몽환의 안위를 염려하는 이창란을 위로하기 위해 옥소선자는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노선배님께서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놓으세요.
저의 생각같아서는 도옥이 부득이한 사태가 아니면 결코 양상공을 해치지는 않을 거에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 하다가 입을 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심이 안되는군. 지금 도옥이 심하림을 데리고 도망갔는데 아직 멀리는 못갔을 거요.
우리 그를 쫓기로 하는 것이 어떻겠소?]
[노선배님께서 도옥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지금이 좋은 기회이긴 해요.?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그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 좋겠어요.]
그러다 이창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이 늙은이는 도옥을 해칠 자신이 있소.]
하고는 검북사의를 돌아보며 명을 내렸다.
[가자!]
소리친 이창란은 먼저 앞장을 서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의 뒤를 검북사의가 따르고 옥소선자도 십이화녀들을 이끌고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나 달렸을까?
마악 눈 앞에 있는 산비탈 고개길로 넘어서려는 일행의 머리 위에서 갑자기 학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언덕길 가운데에 긴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은 학을 볼 수 있었다.
그러자 먼저 이창란이 걸음을 멈추며 옥소선자를 불렀다.[주소저의 현옥이 아니오?]
틀림없는 주약란의 현옥이었다.
급히 현옥에게로 달려간 옥소선자는 현옥의 목덜미를 쓸어주며 다정하게 물었다.
흡사 현옥이? 말을 알아듣기나 하는 것처럼.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그러자 현옥은 옥소선사의 딸을 일아들었다는 듯이 긴 목을 꺼덕꺼덕 흔들고는
긴 부리로 옥소선자의 옷을 물고 가볍게 당기는 것이 아닌가!
순간 옥소선자는 현옥의 행동에서 얼핏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예감이 있었다.
[그래 알았어! 누가 부르는 모양이군. 그럼 앞장서요.]
그러자 현옥은 물고 있면 옥소선사외 옷을 놓고 앞장서서 그 긴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현옥의 안내를 받으며 옥소선자가 따르고 뒤이어 이창란과 검북사의
그리고 십이화녀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따르면서도 이창란은 양몽환의 생사에만 정신이 있는지 옥소선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앞서 가는 현옥을 가리켰다.
[현옥이 적의 행방을 탐지한 모양이오?]
[글쎄요. 무슨 일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곧 알게 될 거에요.
천천히 가는 것으로 보아 적을 쫓는 짓은 아닌 것같아요.]
[그럼 따라갈 필요가 없소.
이렇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따라가기만 하다가 대사를 그르치면 어떻게 하겠소?]
[염려마세요. 이 현옥은 영학(靈鶴)이에요. 중대한 일이 아니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지 않아요.]
이창란은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옥소선자의 말이 맞을 것같아서였다.
일행을 인도한 현옥은 몇 개의 산구비를 돌고 돌아 높은 산봉우리 밑까지 와서 걸음을 멈추고는
머리를 길게 뽑으며 곧장 봉우리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제야 옥소선자는 짐작되는 바가 있는지 뒤에 따라오는 이창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만일 중대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저 산봉우리 위에요. 속히 가보도록 해요.]
하고는 그대로 산봉우리를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창란과 검북사의 그리고 화녀들도 진기를 돋우어 일제히 옥소선자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산봉우리 위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었고 그 바위 위에는 아주 못생긴 여자가? 앉아 현옥의 등을
쓰다듬고 있다가 옥소선자를 보고는 기쁜 빛을 띄우고 있었다.
[어서 와요. 이곳까지 오라고 해서 미안하군요......]
하고 일어나는 사람은 틀림없는 팽수위(彭秀韋)였다.
그제야 옥소선자도 맑게 웃으며 팽수위의 밖을 잡는 것이었다.
[팽언니가 현옥을 보냈군요.]
하며 반가워하던 옥소선자는 뒤에 서 있는 이창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노선배님께서도 팽소저를 아시죠?]
[아, 몇 번 만난 일이 있소.]
하며 고개를 돌리는 이창란에게 팽수위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삼수나찰(三手羅刹) 팽수위(彭秀韋)의 흉악한 얼굴을 본 사람이면 대개 잊지 않고 기억하더군요.]
[천만에 팽소저의 얼굴이 어떻다는 것은 절대 아니오.]
황망히 손을 흔들며 이창란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팽수위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상관없어요. 이젠 저도 못난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하면서 미안해 하는 이창란에게 담담히 웃어주었다.
그제야 옥소선자는 화제를 돌렸다.
[언니는 주소저의 명을 받고 오셨어요?]
그러자 팽수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다음 머리를 끄덕거렸다.
[예, 주소저도 오셨어요.]
하는 말에 옥소선자와 이창란은 기절하듯이 놀랐다.
[주소저가 오셨다구요? 바쁘실텐데 어떻게 오셨죠? 지금 어디 계셔요?]
하고 황급히 묻는 옥소선자의 말에 팽수위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큰 일이 있었지만 그냥 오셨어요.]
하는 팽수위의 얼굴에는 잠시 검은 그늘이 지나갔다.
한편, 주약란이 왔다는 말에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이창란은
즉시 양몽환을 구해낸? 것저럼 마음이 들떴으나 자신의 체통을 생각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저는 어디 계셔요?]
그러자 팽수위는 하늘의 해를 바라보고는 곧 대답했다.
[아직 시간이 일러요. 잠시 기다렸다가 말하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옥소선자는 지금 주약란이 어느 조용한 곳에서 운기 조식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이창란이 헛기침을 하며 두 사람의 대화 속으로 끼어 들었다.
[수소저가 왔다는 말이 사실이오?]
[예, 주소저 가 오셨다는군요.]
하고 옥소선자가 대답했다.
[그럼 미안한 말이오만 주소저를 만나시거든 이 늙은이가 뵙기를 원한다고 전해 주시오.]
[부탁드리시 않아도 노선배님의 말씀만 하면 만나보기를 원하실 거에요.]
하고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곧 팽수위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주소저께 말씀 드리고 오겠어요.]
하고는 몸을 일으켜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이렇제 조용히 삼수나찰 팽수위가 언덕 아래로 사라지자 이 창란은 낯은 음성으로 옥소선자를 불렀다.
[혹시 팽소저가 평소 이 늙은이에게 무슨 불만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요?]
그 말에 옥소선자는 팽수위의 긴장한 표정에서 혹시? 무슨 생각이라도 느꼈을지 모르는
이창란을 안심시켰다.
[그런 것이 아니에요. 노선배님께 무슨 불만이 있겠어요.
다만 소저를 모시고 온 만큼 모든 것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절로 그녀의 표정이 밝지 못할 뿐이에요.]
[글쎄...... 그랬으면 다행이오마는 몇 마디 물을 것이 있는데 괜찮겠소?]
옥소선자는 쾌히 응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물어보십시오. 제가 아는 데까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조금 전에 주소저가 바쁜 틈인데도 이곳까지 왔다고 하지 않았소?]
[예, 아주 바쁘세요.]
[바로 그것이오. 무슨 일로 그렇게 바쁜지. 혹시 무공을 단련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오.
그렇다면 내공(內功)이오, 외공(外功)이오?]
하고 묻는 말에 옥소선자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사실 노선배님과 저는 한때 서로 적대관계로 생사를 겨루기도 했지만 이제는 서로 힘을 합치는
동지가 아니에요? 그런데 무엇을 숨기겠어요? 그러나......]
하며 말끝을 흐리자 무공이 노련한 이창란은 즉시? 옥소선자가 말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를 알아채고는
뒤에 있는 검북사의에게 손을 흔들었다.
[너희들은 좀 떨어져 있거라!]
하고 물러서기를 명했다.
그러자 검북사의와 화녀들은 일제히 다섯장(五丈) 밖으로 물러가 서는 것이었다.
그제야 옥소선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서 아직 보지못한 극치의 내공을 수련하고 있어요.]
가만 가만히 속삭이듯 하는 말에 이창란도 소리를 죽이며 말했다.
[오, 그렇군요. 그러나 심오한 내공일수록 중단되거나 방해하면 극히 위험한데
어떻게 이곳까지 왔단 말이오?]
[그렇지만 우리 주소저는 그런 위험을 초월한 사람이에요.]
[초월했다고 허 참 굉장한 일이군.]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하는 이창란을 바라보며 옥소선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더구나 소저는 항상 부드러운 얼굴로 모든 사람들을 대해 줘요.
저도 천기석부에서 몇 년 동안을 함께 지냈지만 한번도 화를 내거나 큰소리로 꾸짖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소저가 우리들을 친절히 대해주면 줄 수록 존경하게 되고 두렵게 되더군요.
그래서 우리들은 주소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으로 보답할 결심을 했어요.
그리고 주소저의 고고한 인품은?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두려워 하지 않고 도와주고 이끌어 줘요.
그래서 우리들은 소저의 일을 전력을 다해 뒷받침 해주려고 결심했어요.]
길고긴 칭찬의 말을 계속해서 들려준? 옥소선자는 이번에 급히 오게된 것도 어려운일
즉 양몽환을 구하기 위해서 내공의 수련까지 중단하고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제야 이창란은 감동한 빛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옳은 말이오. 주소저의 그 고고한 기품을 한번 본 사람은 누구없이 존경심이 우러나는 것은 사실이오.]
그너나 동안 팽수위가 돌아왔다.
[소저께서는 조소저의 소식도 알고 싶어하시는데 옥소선자께서 화녀 한 사람을 데리고
같이 가 뵙도록 하시죠.]
[그렇게 하겠어요.]
즉시 대답한 옥소선자는 화녀 한 사람을 데리고 이창란과 함께 즉시 팽수위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그때까지 바위 한 편에 얌전히 서 있던 현옥도 종종 걸음으로 뒤를 따르다가는
긴 날개를 펴서 먼저 앞장을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먼저 날아온 현옥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춘 일행은
자기들이 지금 깍아지른 듯한 절벽가에 있는 동굴 앞에 멈추어 선 것을 알 수 있었다.
컴컴한 동굴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서부터 서서히 주위가 뿌옇게 보였고
그 한 끝에 청의(靑衣)를 곱게 입은 여자가 단정히 정좌(正坐)하고 앉아 운기 조식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앞장을 서서 일행을 안내하던 팽수위는 아직 조식에 몰입하고 있는 주소저를 발견하고는
음성을 낮추었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기로 해요.]
하는 말에 먼저 이창란이 조금 뒤로 물러서며 동굴 벽에 등을 기대자
뒤이어 옥소선자도 이창란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음성을 낮추어 이창란을 불렀다.
[노선배님! 주소저가 반드시 노선배님께 현재 무예계의 형세 물을 거에요.
그러면 너무 나쁘게 말씀하지 마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창란은 눈을 크게 뜨며 역시 음성을 낯추었다.
[그건 무슨 말이오?]
[별로 다른 뜻은 아니에요.
지금 주소저는 극히 외부의 영향에 예민해 있어요.
더구나 내공을 수련 중인 소저가 갑자기 큰 충격을 받으면 소저의 몸에 미치는 영향도 커요.
그런만큼 충격을? 줄만한 이야기는 안하는 것이 좋을 것같아요.]
하고 말을 마티는 바로 그때, 단정히 앉아 운기 조식하던 주약란의 몸이 갑자기 오한이라도 든듯
전신을 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이창란은 눈을 크게 떴다.
< 아니, 이게 웬일이야? 혹시 진기가 잘못 운집된 것이 아닐까? >
하고 생각이 드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디디며 떨고 있는 주약란의 몸을 잡아주려고 했다.
그러자 재빨리 이창란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팽수위와 옥소선자였다.
그제야 이창란은 팽수위와 옥소선자의 표정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때 그녀들의 표정은 자기처럼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 하지도 않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 음...... 내가 모르고 있었군...... 내공이 지고(至高)에 이르면 몸을 떠는 모양이군! >
생각하며 다시 주약란에게로 시선을 돌렸을 때는
그녀의 뺨에는 무수한 땀방울이 수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얼마를 더 그렇게 지켜보던 옥소선자가 먼저 팽수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저께서 우리들을 분명히 부르셨나요?]
아마 기다리기에 약간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것이었다.
[예,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곧 끝날 거에요.]
그제야 옥소선자는 이창란을 돌아보며 조금만 더 기다리기를 권했다.
[지금 우리들이 함부로 소저의 몸에 손을 대면 안돼요. 잠깐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리고는 다시 고요한 침묵이 흐르기를 거의 일각.
암암리에 주약란을 보호하는 팽수위의 예민한 눈초리가 쉬임없이 주위 사방을 경계하는 동안,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가 다시 일각이 지나갔다.
이때 기다리기에 지친 이창란은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을 너그럽게 품고 주약란의 조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얼마 동안외 시간이 흐른 뒤.
이윽고 사르르 눈을 뜨며 일어나는 주약란이었다.
그렇게 흐르던 땀도 언제 깨끗이 씻어졌는지 발갛게 달아오른 주약란의
상기된 볼과 사람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는 듯 초롱초롱 빛나는 두 눈,
그리고 꼭 다문 입술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실로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기풍이 가득히 서려 있었다.
한번 사르르 눈을 떴던 주약란은 다시 눈을 조용히 감았다가
또 사르르 뜨고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띄우며 드디어 입을 여는 것이었다.
[아, 이노영웅께서도 오셨군요.]
하며 고개를 숙이자 이창란은 황망히 두 주먹을 쥐고 일읍했다.
[주소저! 안녕하시오.]
[예, 덕분에...... 이곳까지 오시게해서 미안합니다.
대강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무슨 분부라도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아, 그러신가요? 그럼 도옥이 나타났다는 소문도 익히 알고 계시겠군요.]
[들어 알고 있어요. 도옥이 강호에 나타나 이노영웅의 사위와 조소저를 감금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이 늙은이도 바로 그 일 때문에 다시 강호에 발을 딛게 되었소.]
[그러시면 이노영웅께서는 도옥과 친히 겨루어 보셨나요?]
[겨루어 보았소.]
[그럼 도옥의 무공이 어느 정도라는 것도 아시겠군요.]
[물론 귀원비급을 터득해서 예전보다는 대단한 진보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오만
이 늙은이는 두려워 하지 않소.]
하는 이창란의 대답에 주약란은 살짝 미소를 띄웠다.
[지금 사위님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지요?]
[도옥이 천하 무술인을 백장봉으로 초청하고 그곳에서?
이 늙은이의 사위를 화형(火刑)한다고 하오.
지금쯤은 백장봉으로 끌려가는 중일겁니다.]
[예, 그것은 옥소선자에게서 들어 알고 있어요.]
하고는 옥소선자를 돌아보고는 다시 팔을 계속해서 이창란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노영웅께서는 어떻게 하실 작정인지요?]
[글쎄 이 늙은이가 도옥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오만 아직 작정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오.
혹시 주소저는 어떤 생각이라도 있으시오?]
그러나 주약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했다.
[구대문파(九大門派)에서는 이 일을 어떻게 보고 있나요?]
[모두 분노하고 이미 고수들을 파견해서 도옥을 쫓고 있소.]
[잘 알았어요.]
처음서부터 끝까지 이창란에게 묻기만 하고 자기의 말은 하시 않은 주약란은
이창란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조소접의 화녀에게로 돌리는 것이었다.
[바로 아가씨가 조소저의 화녀이신가요?]
그러자 화녀는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예, 친히 주인을 모시는 몸입니다.]
[그럼 주인의 일을 잘 알겠군요?]
[예!]
[이 수년간 아가씨의 주인은 무슨 일을 하던가요?]
[별로 하신 일은 없습니다. 더구나 일정한 처소도 없었고 정해진 목적도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자 주약란은 약간 이마를 찌푸렸다가 펴며 다시 묻기를 계속했다.
[다정선자(多情仙子)라고 자칭하며 강호를 뒤흔들기도 했다는데 그것도 사실인가요?]
하고 묻는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화녀는 추약란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갓 시녀에 지나지 않는 자기에게 깍듯이 공대해서 묻는 주약란의 태도에서도
위압을 느꼈지만 이렇듯 조소접이 다정선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강호를 누빈 일까지 물을줄은 몰랐다.
그래서 화녀는 입술을 개물뿐 감히 바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큰소리도 치지 않고 시종 똑같은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백화곡(百花谷)이라는 곳이 사철 꽃이 피고 살기도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일로 조용히 지내지 않고 강호를 떠돌아 다니는지 모르겠군요.
더구나 주인을 가까이 모시는 아가씨라면 옆에서 말릴 수도 있지 않았어요?]
하고 약간 주춤하는 듯 하는 말에 화녀는 조용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주인의 성격이 조금 괴퍅하셔서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는 말에 주약란은 담담히 웃으며 시선을 돌려 다시 이창란에게 옮겼다.
흡사 죄를 짓고 문초를 받는 장면같았다.
그러나 주약란은 가끔 미소를 띄우기도 하며 공손한 음성으로 묻는 것이었다.
[노선배님께서는 사위를 구하는데 무슨 고견이라도 있으신가요. 듣고 싶습니다.]
재차 묻는 주약란의 말에 이창란은 깊이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는 도옥과 겨루어 사위를 구할 마음이오.]
[그러시다면 도옥과 겨루어서 이길 승산이 있으신가요?]
[꼭 이길 승산이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죽기로 결심한 이상 두려울 것이 없소.
힘이 있는 한, 싸울 마음이오.]
굳은 결의를 나타내는 이창란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던 주약란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이노영웅님의 무공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 같아서는 이길 승산이 별로 없을 것같아요.
사실 귀원비급에 기재된 무공은 절묘한 무공뿐이에요.
그러한 무공으로 단련한 도옥의 간계를 이미 늙으신 이 노영웅께서
어떻게 감당하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에요.
그리고 아무리 간교한 도옥이라 하더라도 이노영웅님
과는 생사를 겨루는 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을 거에요.]
[그것도 옳은 딸이오만 소저는 무슨 묘안이라도 있으시오?]
[저 역시 별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어요. 아직 자세한 정세를 모르고 있어요.]
[모든 정세는 옥소선자가 자세히 들려주었으리라 여기오.]
[대강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만일 이쪽에서 도옥을 위협한다면
지금 양상공과 조소저가 도옥의 수중에 있는 한,
그를 미끼로 도리어 우리에게 위협해 올 거에요.
그렇게 되면 어떠한 계책으로 구하겠어요?]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주약란의 물음에 즉시 대답을 못하는 이창란이었다.
그러한 이창란을 바라보며 주약란은 말을 계속했다.
[만일 도옥이 양상공을 풀어주는 대신 이노영웅님의 목숨을 원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 몸은 이미 늙었소.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소?
이 늙은이가 죽어서 사위를 구한다면 그것으로 족하오.]
[이노영웅님의 굳은 마음은 알겠어요.
그러나 자진하여 도옥에게 사로잡힌다? 해도 도옥은 양상공을 놓아주지 않을 거에요.]
하고 말한 주약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동굴을 벗어나 절벽가까이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먼 하늘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꼼짝하지 않고 서있는 주약란의 옷깃이 바람에 휘날리고 머리카락도 흩날렸다.
그러한 모습은 지금 막 목욕을 끝내고 하늘로 오르려는 선녀같았다.
이때 주약란을 바라보고 있던 옥소선자는 지금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아채고
속삭이듯 이창란에게 말했다.
[소저께서 계교를 생각하고 계셔요.]
하는 말에 이창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내려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동안의 침묵은 조용히 흘러갔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돌린 주약란은 다시 이창란에게 물었다.
[따님은 어디 있어요?]
이요홍의 안위를 묻는 주약란의 물음에 이창란은 수염을 쓸어내리린 손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지금 은밀한 곳에 있소.]
그러자 모든 것을 눈치챈 주약란은 그 다음을 묻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도옥의 회포를 피해서 은거하고 있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도옥이 찾지 못할 곳인가요?]
[그럴거요.]
하면서도 이창란은 어디에 은거하고 있다는 거처는 말하지 않았다.
[찾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겠어요.]
쓸쓸히 말한 주약란은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의 형세로 보아 도옥의 계략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해요.
그가 백장봉을 선택한 원인도 심각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만반의 준비도 모두 갖추어 놓았을 거에요.
우리는 먼저 도옥과? 겨루기 전에 도옥의 실력이 어느 정도이고
또 어떠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를 알아내어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일시의 감정으로 대사를 그르치는 수도 있으니까요.?
어디까지나 철두철미하게 시도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자 이창란도 수염을 쓰다듬으며 공감했다.
[옳은 말씀이오. 잡초(雜草)를 뽑으려면 뿌리채 뽑아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춘풍(春風)에 되살아 나기 마련이오.]
계 략 의?? 명 수
수염을 쓸어내리며 하는 이창란의 말을 주약란은 곧 받아 이었다.
[제가 보는 바로는 양상공이 요절(夭折)할 상(相)은 아니에요.
양상공이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생명의 위협은 없으니
이노영웅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안심을 시키는 말에 이창란은 한숨을 내쉬며 고마워하는 빛을 나타냈다.
[같은 말이라도 주소서가 하는 말이라면 이 늙은이도 안심하겠소.]
그러자 주약란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과찬의 말씀..... 그런데 구대문파에서는 이번 일에 어떤 실제적인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소림(小林) 무당(武當)의 각 분파에서는 이미 고수들을 파견하고?
실정을 살피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옥을 추적하고 있소만 적지 않은 소림파의 승려들이
도옥이 손에 살상을 당했소.]
주약란은 그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가 폈다.
그리고 화제를 바꾸었다.
[이노영웅님께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무슨 부탁이든지 이 늙은이가 힘이 닿는 한 도와드리겠소.]
하고 쾌히 승낙하는 이창란의 말에 주약란은 용기를 얻은듯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부탁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더 양해를 구하며
이창란의 동정을 살피는 주약란이었다.
[이노영웅님의 명성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에요.]
[아니 무슨 일이기에 명성까지 있어야 하오. 그런 일이라면 이 늙은이가 감당할 수나 있겠소?]
하고 반문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주약란은 눈을 똑바로 뜨며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이 아니에요.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을 설득시켜 행동을 같이?
취하게끔 수고해 주십사하는 부탁이에요.
틀림없이 이노영웅님이 나서면 될 일이에요.]
생각보다는 별로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창란은 쾌히 대답했다.
[어렵지 않소!]
이창란의 간단한 대답에 만족해 하며 주약란은 담담히 웃었다.
[그럼 이노영웅님께 부탁드리고 저는 먼저 백장봉으로 가겠어요. 가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어요.]
하고는 옥소선자를 불러 무슨 말인가를 귓속말로 주고 받은 주약란은 휙!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그 휘파람 소리에 멀찍이 떨어져 경계를 하고 있던?
현옥이 쏜살같이 날아와 주약란 앞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이창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가뿐히 현옥의 잔등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옥소선자와 팽수위에게 손을 흔들며 곧장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주약란의 모습이 현옥과 함께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이창란은
몸을 돌리며 그때까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옥소선자를 불렀다.
[옥소선자와 팽소저는 다음 행동을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오?]
하고 묻자 옥소선자는 조소접의 십이화녀를 가리키며 곧 대답했다.
[조소저의 십이화녀들과 여기서 다른 명령을 받기로 했어요.]
[그럼 잘되었소만 이 늙은이는 구대문파를 통합하라고만 했소.
앞으로는 어떻게 주소저와 연락을 취하면 되겠소?]
그러자 옥소선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곧 말했다.
[주소저께서는 이노명웅님의 웅재대략(雄才大略)을 아시고 이노영웅님 스스로 작정하셔서
도옥과 대항하시리라 생각할 거에요.]
[그렇겠군. 그럼 속히 서둘러야겠소.
이 늙은이가 구대문파를 통합해서 도옥을 공격한다면 주소저도 가볍게 행동할 것이오.]
[원래 주소저는 어떤 일을 분부해도? 그 사람됨을 일일이 알아보고 분부해요.?
지금도 주소저가 이노영웅께 부탁드린 것은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일을 잘 처리하시리라 믿기 때문에
그렇게만 말한 거에요.]
하고 주수저의 행동을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이창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팽수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팽소저는 어떻게 하시겠소?]
[저는 곧 백장봉으로 오라는 분부가 있었어요. 그럼 먼저 떠나겠어요.]
하고는 땅을 차며 쏜살같이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주약란이 떠나고 팽수위도 떠나자 이창란은 옥소선자에게 하직을 고했다.
[그럼 옥소선자도 보중하시오!]
하고는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검북사의를 데리고 그대로 팽수위가 사라진 골짜기로 달려나갔다.
사실 이창란은 큰 일을 앞에 놓고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혼자? 도옥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기회를 엿보고 행동을 늦추어야? 하는지 단안을 못내려고 우왕좌왕하다가?
주소저를 만나게 되었고 주소저에게서 구대문파를 통합하라는 부탁을 받아
이제는 완전히 행동할 수 있는 목표가? 세워진 셈이었다.
그래서 거칠 것 없는 기세로 검북사의를 거느리고 팽수위가 사라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간 것이었다.
갑작스런 주약란의 출현으로 사위 양몽환을 틀림없이 구할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된
이창란의 발걸음은 더욱 힘찬 발걸음이었다.
한편, 십이화녀와 이창란 그리고 옥소선자의 포위망을 뚫고 하림을 이끈채 단숨에
십여리 길을 달려온 도옥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먼저 멈추어서는 하림을 따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하림은 숨을 가쁘게 쉬며 도옥을 부르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무예계의 인사들이 모두 우리들을 해치려는 것 같아요.]
근심을 띄우며 하는 말에 도옥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별것 아니라듯이 말했다.
[그건 이 도옥이 다 예측하고 있던 일이지. 아무 걱정할 것 없어!]
[그럼 다 알고 있었군요. 그런걸 괜히 걱정했어요.]
[그놈들이 모든 힘을 기울여 우리들만 쫓아왔으면 좋겠어.]
[그러나 당신도 비록 무공이 강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루도 쉬지않고 싸울 수 있어요?]
[그것도 염려할 것 없어. 이 도옥은 이미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도옥은 급히 말을 몰아 어느 초가집 앞에서 말을 세우고
뒤에 따라오는 하림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싱긋 웃었다.
[이곳이 바로 우리들이 쉬어갈 곳이지.]
그 말에 하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이 초가집을 알아두었어요?]
그러나 도옥은 아무말 없이 빙긋 웃으며 말에서 내려섰다.
그리고는 굳게 잠긴 초가집의 대문을 쾅 쾅 두드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쾅 쾅 두드리는 도옥의 행동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똑같은 힘으로
두드려진다는 것을 하림은 즉각 알아낼 수 있었다.
이미 정해진 암호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대문을 삐거덕 열며 나타난 사람은 의외로 지팡이를 짚은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열어진 대문 안에서부터 나오며 문을 막아서고 도옥의 아래 위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차갑게 물었다.
[누구를 찾으시오?]
그러자 도옥은 놀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고 천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이었는데
그 대답이라는 것이 가관이었다.
[이 세상 사람은 모두 친구이도다.]
하는 대답에 노파는 한술 더 떴다.
[땅 저쪽은 이웃과 같으니라.]
하고는 그제야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묻는 것이었다.
[실례이오만 존함은 무엇이오?]
[하늘 아래 이 한 몸 뿐이오.]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노파는 질겁을 하듯이 펄쩍 놀라며 땅바닥에 엎러지듯 꿇어앉는 것이었다.
[방주께서 오신 것도 모르고 나가서 영접치 못한 죄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는 노파의 음성을 한편에서 듣고 있던 하림은 아무래도 노파의 음성이 여자의 음성은 아니었다.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든 하림은 말에서 뛰어내리며 도옥의 뒤로 가 붙어섰다.
그리고 싸늘하게 물었다.
[당신의 목소리는 여인의 음성이 아닌데?]
하고 날가롭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노파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예 . 그렇습니다. 원래 여자가 아니옵니다만 저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이렇게 변장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도옥은 그따위 말은 흥미없다는 듯이 하림을 이끌고 들어가며 뒤에 그대로 서 있는
노파에게 명령을 내렸다.
[속히 술과 안주를 준비하라!]
이때 도옥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가던 하림은 다시 한번 노파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고는
머리을 끄덕끄덕 했다.
나이는 이제 사십을 넘었을까 한 노파는 얼굴이 좀 긴편이긴 했으나 눈썹 아래로부터
생긴 모습이 능히 여자로 변장해서 남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얼굴이었다.
도옥과 하림이 방으로 들어가 잠시 쉬고 있을 때 노파가 술상을 가지고 왔다.
날라온 술과 안주를 먼저 노파에게 시식(試食)토록 한 다음 이상이 없자
하림과 함께 술잔을 들며 노파에게 물었다.
[지금 이 곳에는 몇 사람이나 있나?]
[있기는 여덟 명이 있었습니다만 네 명은 명을 받고 백장봉으로 달려가고?
두 명은 다른 밀명(密命)을 받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는 저와 항(項)이라는 친구 이렇게 둘 뿐입니다. 방주님!]
[그럼 항이라는 친구는 어디 있소?]
[예, 지금 정세가 긴박하여 주위를 경계중입니다. 방주님!]
[정세가 긴박하다고?]
[예, 그것은 소림사의 중놈들이 무슨 눈치를 챘는지 이틀간 세번이나 이 초가집 근처에 나타났습니다.]
[흥! 그놈의 소림사 중놈들이 곳곳에서 방해를 논단 말야.
백장봉의 일이 끝나는대로 즉시 소림사 중들부터 쓸어버려야지.]
하고 화통을 터뜨리는 말에 노파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죠. 그 중놈들부터 깡그리 없애야 합니다.
그놈들이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우리들이 몇 곳에 만들어
놓은 함정을 그놈들이 모두 깨뜨려 버렸습니다. 방주님!]
하는 바로 그때 문 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그 순간, 벌떡 몸을 일으킨 도옥이 금환검을 뽑아드는 순간과 쾅!
문이 열리며 장검을 든? 흑의대한(黑]衣大漢)이 뛰어든 것은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자 질겁을 하듯 놀란 노파가 큰소리로 마악 뛰어든 대한을 불렀다.
[항 아우! 어찌된 일이요?]
했다. 그러나 흑의대한은 온통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채 씨근벌떡 숨을 쉬며 노파에게 묻는 것이었다.
[누구요? 이 두 사람은?]
그러자 노파는 떨리는 름성으로 말했다.
[방주님이시오.]
그 순간 흑의대한은 끙! 신음소리를 내며 그대로 엎어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자 도옥은 급히 대한의 혈도를 짚으며 눈을 굴렸다.
[무슨 일이냐?]
방주답게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그제야 대한은 벌벌 떨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방주님! 방주님이신줄 모르고...... 아이구...... 빨리 도망가시오...... 소림사의 중놈이......]
[뭇이! 소림사의 중놈이?]
[마악 쫓아옵니다. 방주님......]
하는데 이미 문 밖에서 염불을 외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곧이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속히 나오지 않으면 소승들이 들어가겠소.]
그러자 크게 코웃음을 친 도옥은 금환검을 비껴잡고 발길로 문을 걷어차며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회색승의(灰色僧衣)를 입은 네? 명의 승려는 나란히 서서 지금? 뛰어든
대한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이 다름 아닌 도옥이라는 것에 일순 놀라는 빛을 띄웠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서로 눈짓을 하더니 왼쪽에 서 있는 중이 한 걸음 나서는 것이었다.
[금환검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신이 바로 도옥인 모양이군.]
하는 말에 도옥은 차가운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네 명의? 승려를 차례로 노려보고는 비꼬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도하게 노려보며 내뱉는 말에 승려는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숙였다.
[소승들은 오래 전부터 익히 대명은 들어 알고 있었소.]
[그런데 어떻다는 거요?]
눈을 부라린 도옥은 천천히 네 명의 승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네 명의 승려는 도옥의 무공이 악랄하다는 것을 아는지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각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옥을 에워싸듯 포위하는 것이었다.
그떻게 에워싸는 승려를 번갈아 쏘아보던 도옥은 씰룩거리던 입가에 차가운 옷음을 흘렸다.
[오래전부터 소림사의 나한진(羅漢陣)이 유명하다는 말은 들었지.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할까?]
하고 콧소리를 냈다.
그러나 네 명의 승려는 도옥이 안하무인으로 방자하게 떠들어도
눈썹? 하나 곧두 세우지 않고 각자 경계태세만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욱은 아무 대꾸도 없이 돌부처처럼 서 있는 승려들의 행동에 울화통을 터뜨리고 말았다.
[야 이 중놈들아! 왜들 노리고 섰어!]
소리친 도옥은 땅을 박차며 비껴 잡았던 금환검을 소지천남(笑指天南)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는 왼쪽에 서 있는 승려에게로 비호 같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도옥이 선수로 공격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왼쪽의 승려도 눈썹을?
몰아붙이며 쥐고 있던 선장(禪杖)을 횡가량(橫架金樑)으로 돌변시키며
도옥의 금환검을 ?받아 후려갈기고는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이어 날카로운 쇳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불꽃을 튀었다.
이리하여 한적하던 초가집 앞뜰은? 삽시간에 불꽃과
검광이 흩날리는 싸움터로 변하고 말았다.
왼쪽의 승려가 달려나가는 것을 신호로 해서 오른쪽의 승려도 선장을 휘두르며
한방의 선장으로 도옥의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갤 듯이 덤벼들고 나머지 두 명 의 승려도
눈썹을 곤두세우며 일시에 돌풍처럼 들이닥쳤다.
그러나 대적 경험이 풍부한 도옥은 여전히 입가에 차가운 웃음 흘리며 네 명의 승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딸랑딸랑 손목에 낀 금환까지 흔드는 것이었다.
일시에 달려드는 네 자루의 선장이 허공에서 빙빙 돌다가 도옥을 향하여 쇳소리를 내면
승려를 한칼에 후려갈기는 도옥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네 명의 승려는? 여유만만하게 선장을 휘둘러 어느 승려의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도록 허공에서 춤을 추는가 하면 그대로 비스듬히 휘둘러지기도 했다.
그러한 반면 도옥이 금환검은 금환검대로 날카로운 섬광과 검광을 허공 가득히 뿌리며
승려들을 놀리듯 살살 잘도 빠져다녔다.
그러던 도옥은 네 자루의 선장이 자기를 노리고 들어오기를 기다려?
껑충 허공으로 몸을 날려 헛치게 하고는 내려오면서 한 승려의 어깨를 우지끈 내려밟고
돌아서면서 왼쪽의 승려에게? 금환검을 휘둘러 어쩔 수 없이 대여섯 걸음이나 비틀비틀 물러서게
하고는 여유있게 금환검을 고쳐 쥐었다.
그러나 여유만만히 네 명의 승려를 상대하고 있던 도옥은 절로 이마가 찌푸려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까 승려가 불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십여명의 승려가 달려온 것이었다.
울컥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한 두 놈도 아니고 십여명이 떼지어 몰려온다면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도옥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무예계에서 명성을 날리는 소림사가 다수의 힘으로 이 도옥 한 사람을 상대하겠단 말인가?]
하고 눈을 부라리는 도옥의 호통 소리에 곧이어 승려 중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려운면 검을 버리고 땅에 엎드려라! 여러소리 말고!]
하고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이번에는 자기의 동료들에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여러 사형제들! 저자는 악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자요.
더구나 우리? 사형제 수명을 살상한 자가 바로 저 도옥이오.
오늘은 추호의 사정도 두지 말고 박살을 냅시다.]
하자 와! 소리를 지르며 열 네개의? 선장이 바람을 일으키며 일제히 사방으로 쏴악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도옥은 독안에 든 쥐의 형세로 승려들에게 에워싸이고 말았다.
이때 문 밖에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하림은 도옥의 위급을 직감하고는 장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당신들 여러 사람들이 한 사람을 상대로 공격한다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되지 않아요?]
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포위망을 뚫고 도옥 옆으로 달려가 버티고 서는 것이었다.
그 순간, 여러 승려들은 눈을 크게 뜨고 저마다 중얼거렸다.
[저 여자는 바로 양대협의 부인인데......]
[맞소. 그런데 어떻게 도옥과 같이 있지?]
[여자는 할 수 없어......]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승려들 중에서 좀 전에 소리친 승려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바로, 양부인이 아니시오? 양대협은 소승들이 존경해마지 않는 바인데 어찌된 일이오?]
하는 말에 또 다른 승려가 그 소리를 받았다.
[어찌하여 당신이 양대협을 배반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양대협이 조금이라도
괴로워하지는 않을 거요.]
하는 말을 또 다른 승려가 이어 받았다.
[원래 얌전한 체 하면서 나쁜 일을 하는 법이오.
지금까지 양부인이 현숙하고 심기가 곱다고 한 소문은 모두 거짓이었구려!]
하림은 귀를 막고 통곡하고 싶었다.
승려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로 비수가 되어 가슴을 마구 찌르고 창자를 도려내는
고통을 이를 악물며 참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 지금 천하 모든 사람들이 하림 자기를 나쁜 여자로 말하면서도
그 반대로 양몽환을 존경하는 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어떠한 모욕이라도 감수하고 끝내 자기가 품고 있는 계획만 완수한다면
그때는 지금의 힐책이 찬사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괴로운 마음을 홀로 위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옥이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의심을 이 기회에 없애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앙큼하게 생각하는 하림은 주위 환경이 바뀌어지면 질수록 더더속 마음이 모질어지고
모르고 있던 세상사의 계략을 배우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도옥은 하림의 표정을 은근히 살피며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하림이 승려들에게서 무지막지한 모욕을 받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림은 이미 그러한 도옥의 눈치를 알아채고는 자기의 행동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實證)이라도 해보이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장검을 휘둘러 일진의 승려들 속으로 뛰어들어
닥치는대로 후려갈기며 재 빠르게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러한 하림의 모습에 의심이 가신 도옥은 하림의 뒤를? 따라 좌충우돌 금환검을 휘둘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실로 눈부시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살기가 등등한 도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금환검을? 휘둘러 눈깜짝할 사이에
절묘한 검술을 변화시켜 순식간에 다섯 수를 공격했다.
이와같이 소리를 지르며 펄펄나는 도옥의 무지막지한 검술에 뭇승려들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기에 바빴다.
그 순간을 이용한 도옥은 급히 하림에게 달려가 속삭였다.
[이 도옥과 함께 공격해 들어가!]
속삭이며 금환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집막을 겹겹으로 내려 승려의 선장으로부터
하림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한편!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도옥을 상대로 싸운 여러 명의 승려들은 무공의 고수인
도옥을 일시적으로 싸워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주위를 철통같이 에워싸고
때때로 공격을 가해 도옥의 힘을 빼게하는 작전으로 공세를 바꾸었다.
지연작전을 써서 도옥의 기운이 쇠진하여질 때 일제히 달려들어 요절 박살을 내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뭇 승려들은 도옥과 하림을 물샐틈없이 에워싸고 한 번에 몇명씩 교대로 나가
도옥의 힘빼기 작전을 벌였다.
그때마다 도옥은 하림을 보호하는 한편 두 명씩 짝을 지어 양쪽에서 협공하는
승려를 이리 치고 저리 갈기고 정신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실로 도옥으로서는 난관에 부딪친 형세였다.
초가집에 있던 두 명도 이미 선장 세례를 받고 녹초가 되어 꿈틀거리고 있는 이때
한 두명도 아닌 십여명을 상대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할지 도옥은
심히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만일 하림만 아니라면 승려 대여섯 명쯤 쓰러뜨리고 포위망을 빠져나가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어쩐지 모르던 의심이 풀어진 지금
그녀플 두고 혼자 포위망을 뚫고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승려들은 번갈아 이리저리 야단스럽게 선장을 휘두르고 덤벼드는 것이었다.
얼마 동인 정신없이 금환검을 휘두르고 있던 도옥은 낮은 음성으로 하림에게 속삭였다.
[속히 운기조식해 이곳을 빠져나가요!]
그리고는 눈을 부릅뜨고 또 달려드는 두 명의 승려들에게 천강지의 강한 일지풍을 날려 보냈다.
그 순간, 도은 앞으로 엎어지는 승려의 등을 힘껏 밟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비켜랏!]
그리고는 하림의 손목을 힘껏 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실로 전광석화와 같은 빠른 솜씨로 금환검을 휘둘러 앞길을 가로막는 두 명의 승려에게
상처를 입힌 도옥은 연방 금환검을 휘두르며 힘껏 땅을 박찼다.
그 바람에 놀라 앞길을 트여주는 승려 사이를 뚫고 몸을 날리고 말았다.
그러자 일시 물러섰던 소림사의 승려들이 와! 소리를 지르며 도옥이 뒤를 따랐으나
이미 비호같이 하림을 들쳐업고 날아뛰는 도옥을 따를 수는 없었다.
약 오리길을 날아뛴 다음에야 도옥은 숨을 물아쉬며 들쳐업었던 하림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달리는 것을 검추지 않았다.
한편, 도옥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끌려가듯 달리기만 하던 하림은 조금 지치기도 했지만?
일부러 지짐 듯이 도옥이 부지런히 보묘안을 짜내고 있었다.
그것은 도옥의 무공이 하루하루 놀랍게 달라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지 때문이었다.
< 이 며칠간처럼 도옥의 무공이 진보한다면 내일은 더 달라질 것이고 그 이후로 계속 진보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도옥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 아닌가? >
그러나 도옥은 하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칠줄도 모르고 열심히 앞으로 치달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승려들과 정신없이 싸웠어도 지치기는 고사하고 더욱 힘이 나는지 윙! 윙! 소리가 나도록
달리는 도옥을 하림은 끌려가면서 또 한번 혀를 내둘렀다.
< 지칠 줄을 모르는 도옥을 가볍게 봤다간 큰일나겠어...... >
잠시도 쉬지 않고 줄곧 달리기를 거의 십리(十里), 잎이 무성한?
나무 밑에 다다라서야 도옥은 달리던 걸음을 멈추었다.
하림은 일부러 지치고 피곤한 듯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다.
사실 십여리를 달려온 도옥에 비한다면 별것 아니지만 일부러 힘든?
체하는 하림도 숨이 가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더 힘든 것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나무 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도옥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승려들이 아직 쫓아와요?].
하는 물음에 도옥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벌써 떨어져 나갔어.]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도옥의 말대로 쫓아오는 그림자는 없었다.]
[저는 놀랬어요. 당신의 무공이 굉장해요.]
그러자 도옥은 씨익 웃었다.
[아직 몇 곳의 경맥을 유통시키는 것과 몇 수의 장법,
그리고 지법(指法)을? 연마치 못하고 있어.
그러나 앞으로 삼개월 후면 모두 터득할 수 있지.
그러면 제일 먼저 소림사의 중놈들부터 죽여야지!]
하고 웃자 하림도 따라 웃었다.
[소림사의 나한진(羅漢陣)은 천하에 명성을 떨치는 진법(陣法)이라는데?
당신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도 어려울 거에요.]
[흥! 이 도옥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일이야. 이 도옥은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지.]
[어떻게 한다는거죠?]
[그건 간단하지. 소림사에 몰래 뛰어들어 만나는 중놈마다 한놈씩 쓰러뜨린단 말야.
그래서 모두 몰살시키면 어느 중놈이 남아 있다고 나한진법을 쓰겠어?]
하는 말에 하림은 오싹 몸을 떨었다.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절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도옥을 올려다보는 하림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하림의 경악스러운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너무 말이 지나친 것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했다.
< 순박한 하림이 이 도옥의 말을 듣고 놀란 모양이군. 그러면 안되지...... >
고쳐 생각한 도옥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빙긋이 웃었다.
[농담으로 한 말이지 정말 고렇게 하겠다는건 아냐.]
하고는 하림의 표정을 슬쩍 살피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 피곤하군...... 우리 여기서 좀 쉬었다 가지......]
하고는 도옥 역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 눈을 감으며 조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 해도 근 한시간 동안이나 이리저리 금환검을 휘두르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십여리 길이나 단숨에 달려온 길이라 힘이 빠지고 지치기도 했으리라.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던 도옥은 금새 잠이 들었는지 코까지 골았다.
순간, 하림은 눈이 커지고 곧이어 가슴이 떨려왔다.
< 이때 죽여야지.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으랴! >
장검에 손을 대는 하림의 손은 가슴보다 더 떨렸다.
그러나 죽여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얼른 장검이 뽑
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 도옥은 코를 골며 정신없이 잠이? 들어 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지금? 하림의 눈앞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맹렬히 끓어오르다가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망설였다.
정말 죽여야 되는지. 죽이지 않아도 되는지 조차 분간할 수 없을만큼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 혼인파기서까지 쓴 하림이 지금 장검에 손도 대지 못하고 마음을 떨고 가슴을? 졸이기만 했다. 막상
도옥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얻자 하림은 먼저 겁부터 나는 것이었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도옥이 일부러 코를 골며 자는 척 해서 하림의 동정을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
이 들자 화들짝 놀라며 얼른 뒷걸음질을 치기까지 하는 하림이었다.
될 일이 아니었다. 이무리 마음을 모질게 먹어도 죽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다가 도옥이 일부러 자
는 척 하면서 자기를 시험해 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연이어 두려움이 앞을 가렸다.
만일 도옥이 자는 척 하면서 자기의 거동을 다 보고 있다면 그래서 실패로 돌아간다면 하림 자기는 고사하
고 당장 가두어둔 양몽환부터 한칼에 댕강 목을 짜를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코를 고는 도옥이 정말 자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매우 고단한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고운 숨결이나 들리는 콧소리, 무엇을 보더라도 잠
을 자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그러면 죽여 버릴까,? 그래서 양몽환을 구하고 천하 무술계에 일어나는 풍
진을 없앨까...... 아니 일부러 자는? 척 한다면? 나도 죽겠지...... 얼마? 동안 단안을 못내리고 가슴을 졸이며
망설이는 동안, 그만 잠을 깨며 눈을 뜨는 도옥 앞에서 하림은 휴우!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떨리
는 가슴도 후련하고 머리 속에서는 윙!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끝났다. 이제부터
는 다시 억지 웃음을 웃어 도옥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행동을 되풀이해야 힐 하림으로 되돌아오고 말았
다.
번쩍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펴던 도옥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하림을 발견하고 빙긋이 웃었다.
[당신도 좀 잤어?]
하고 묻는 말에 하림도 따라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못잤어요.]
[왜?]
[그 승려들이 쫓아오는 것만 같아서 잠을 잘 수 있어야죠.]
하고 빙긋이 웃는 하림을 마주보며 도옥도 빙긋이 웃고는 품? 속에서 한장의 지도를 꺼내 땅바닥에 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도옥은 한참만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얼마 안가면 목적지에 닿겠군.]
하면서 지도를 다시 접어 품 속에 넣었다.
[목적지가 어딘데요?]
[곧 알게 돼!]
하고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목적지에 이르는 앞 길을 분명히 구대문파애서 막을 것을 예상하고 조금? 길을 도는 것 뿐이지. 조
금 전 그 초가집도 미리 쉬어가기로 점찍어 두었던 집이야.]
[그런데 어디까지 가는 길이죠?]
[곧 도착하게 돼. 보면 알거야. 그곳엔 이 도옥의 부하들이 모여서 이 도옥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어.]
하면서도 하림이 알고 싶어하는 목적지의 지명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하림도 굳이 알아야될 것도 없는 듯 해서 화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정말 당신은 놀라운 재간을 지니고 있어요. 강호에 발을 디딘지도 얼마 안되는데 아는 것이 많아요.]
칭찬하는 말에 도옥은 그런 것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듯 오만하게 웃었다.
[흐...... 흐...... 더구나 이번에 택한 목적지도 삼년 전부터 준비한 곳이지.? 이 도옥이 하는 일은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지는 것뿐이야.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삼년 전부터 준비했다고요?]
[그렇지! 그리고 곳곳의 함정도 마찬가지로 삼년 동안이나 준비한 함정이지.]
도옥이 나아가는 앞 길에는 거칠 것이 없는 탄탄대로라는 듯이? 어깨까지 펴보인 도옥은 하림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럼 가볼까?......]
다시 걸음을 빨리하여 반나절 동안에 그들이 다다른 곳은 큰 고을이었다.
때는 이미 해도 지고 으스름한 저녁의 어둠이 깔리고 있는 고을은
곳곳에 횃불이 길을 밝혀주고 길거리에는 유독 사람의 왕래가 어지러울만치 많은 고을이었다.
도옥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하림은 지나가고 지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죠?]
하고 주춤주줌 하는 하림에게 그냥 웃어 보이고 도옥은 어느 큰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대문을 가볍게 일곱 번을 두드리자 굳게 잠겼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도옥은 거침없이 하림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청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춘? 도옥은 낮은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잠깐 기다려요.]
하고 대청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갑자기 흑의로 전신을 감싼 정체불명의 한 사람이 하림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음성을 죽여 말하는 것이었다.
[심사매! 사매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어요. 조심해요.]
그리고는 재빨리 한 쪽 모퉁이로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하림은 소스라치듯 놀랐으나 그 음성이 많이 귀에 익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틀림없는
동숙정 바로 그 여자라는 것을 직감하고 몸을 돌렸을 때는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 웬일일까?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누가 의심을 한단 말일까?...... >
생각하는데 자기를 부르는 도옥의 음성이 들려와 흠칫 몸을 사렸다.
[심소저! 이 대청으로 들이오시오.]
하는 도옥의 음성에 이어 대청에는 환한 불이 켜지는 것이었다.
하림은 잠시 움직이지 않고 혼란한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는 손짓하는 도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무 생각없이 도옥에게로 다가가 마악 대청으로 오르려던 하림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대청에는 도옥이 자기를 부를 때 촛불이 켜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대청에는
아무도 없고 도옥 혼자만 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림의 생각과는 너무도 다르게 대청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눈을 번쩍 뜨며 화들짝 놀랐던 하림은 찬찬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대청 안을 살펴봤다.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거의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왕한상과 승일청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가운데는 두 사람의 노인이 앉아 있었고 그 주위로 노인을 옹위하듯
여덟 명의 장정이 둘러 있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하림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 이상한 일이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면서도 왜 불을 밝히지 않고 있었을까?...... >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하림의 손을 잡은 도옥은 안으로 들어가 중앙에 앉았다.
그리고 옆자리에 하림을 앉힌 도옥은 왕한상과 승일청 그리고 두명의 노인을 손짓해 불렀다.
[네 분께서도 가까이 다가오시오.]
네 사람은 인제히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 일읍(一揖)하고는 도옥 앞에 나란히 앉는 것이었다.
그들이 앉기를 기다려 가볍게 기침을 한 도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진전(陣前)에서 백동옹(百毒翁)의 변절과 독용부인(毒龍夫人)의 배반으로
우러들의 대사가 모두 허사로 되는가 염려 했소.
그러나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성원으로 독용부인은 죽여버렸고 양몽환과 조소접을 수거에 가두어
놓게된 것으로서 위험한 고비를 넘겨 이제 우리들의 거사가 성공을 거두기 직전에 이르렀소.]
[모두 방주님의 영특하신 지략(智略)으로 형세를 바로 잡게 되었소이다.]
하고 일제히 네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자
도옥은 머리를 끄덕끄덕 하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 구대문파에서는 많은 고수들을 총동원시켜 우리를 귀찮게 굴고 있소.
이제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들 앞에 귀찮은 존재가 방해한다면 대사(大事)가 부정(不淨)해질
것이오. 그래서 이 본좌(本座)는 우선 이렇게 했으면 하오.]
하는 말에 왕한상은 위시한 네 명의 고개가 일제히 숙여졌다.
[말씀하십시오.]
[우선 백장봉에 이르는 길 숲 속에 몇 명의 고수를 매복시켜 구대문파의 고수들 몇 놈을 죽여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 어떨까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시오?]
하며 네 사람을 둘러보자 왕한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네, 동의합니다만 제가 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좋습니다. 말씀하시오.]
하고 고개까지 끄덕거리는 도옥을 보고는 천천히 왕한상은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들의 공력의 대부분이 백장봉에 모여 있소.]
하다가 도옥의 옆에서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하림을 보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자 왕한상의 눈치를 챈 도옥이 담담히 웃으며 계속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시오! 여기 심소저가 우리들의 비밀을 안다 해도 대사를 그르치지는 못할 것이오.]
하는 말에 하림은 입이 뾰족해졌다.
< 나를 어린애로 아는 모양이지! >
하면서도 아무 표정을 나타내지 않고 잠잠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가볍게 기침을 한 왕한상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인 모양이었다.
[방주님!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큰 집을 태웁니다. 조심하는 것이 어떨까요?]
은근히 하림을 경계하기를 강조했다.
그러나 도옥은 여전히 손을 흔들며 담담히 웃었다.
[염려없소. 작은 불씨도 불씨 나름이오. 주위에 쇳덩이밖에 없는데 탈 것이 어디 있소?]
하는 말은 도옥 일당을 무쇠와 같이 단단하다는 것을 은근히 시위해서
만일 하림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나 하더라도 끄덕없다는 위세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도옥이 위세까지 부리며 하는 말에 왕한상은 할 수 없이
중단했던 의견을 서서히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럼 ...... 제가 알기로는 구대문파의 모든 고수들이 통합하여 피차의 작고 큰 시시비비를 없애고
우리와 대적할 모양입니다.]
[그건 본좌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오. 더 새로운 소식 없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삼수나찰 팽수위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기석부에 있다는 주약란도 오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는 왕한상의 말에 도옥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여러분 중에서 주약란을 본 사람은 없습니까?]
하고 네 명을 돌아보자 역시 왕한상이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예, 아직까지는 주약란을 본 사람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 모든 일찌 약간 이상한 감이 듭니다.]
[이상한 감이라니? 좀 자세히 말씀해 보시오.]
[그것은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구대문파의 고수들이 우리들을 추적해 왔는데 갑자기 그런 기미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반드시 어느 한 사람이 지휘하고 있는 모양같습니다.]
하는 왕한상의 말에 도옥은 아까보다 더 놀라운 표정이었다.
[그게 사실이오?]
[글쎄 제 생각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음...... 또 다른 것은 없소?]
하고 묻는 도옥의 말에 이번에는 승일청이 천천히 일어났다.
[저, 백독옹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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