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정체불명의 괴한
곧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가마 앞으로 다가가던 양몽환은 가마와 거의 오륙자(五六尺) 근처에서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그리고 손에 쥔 장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가마를 겨냥하는 것이었다.
그때, 하림을 비롯한 두 명의 시녀와 육보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양몽환이 이제 어떠한 수법으로 공격하여 가마의 주렴을 들치고
정체 불명의 괴한을 대할 것인가 자못 심각하고 초조한 순간이 일각일각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마 안에서는 인기척도 없는 것이 조용히 양몽환을 주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두 명의 시녀와 정체 불명의 괴한까지 합쳐 세 명이 들어간 가마 속은 숨소리 하나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한편, 비틀거리며 가마 근처까지 다가간 양몽환도 가마를 겨누고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런 양몽환은 자기 몸이 차차 운기되어 강력한 내공이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검을 쥔 손에 힘을 주어 휘둘러 보았다.
그러자 상상밖으로 강력한 검풍이 회오리? 바람처럼 일어나며 가마의 주렴을 요란스럽게 흔들었다.
<음, 됐어, 고심대사의 내공이 이제부터 나의 몸에 퍼지는 모양이구나......>
과연, 양몽환은 진기가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졌음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암암리에 진기를 돋우어 운집시켜 보았다.
그러자 전신으로 새롭고도? 강력한 진기가 유통하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격전을 벌린다 하더라도 몸에는 아무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능히 상대방을 처치할 자신이 생기는 것이었다.
이때, 지금까지 두 명의 시녀를 삼켜버린 가마 속에서 양몽환의 거동을 살펴보고 있었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양대협이라면 대협답게 걸어나올 일이지 어찌 술취한 놈처럼 비틀거리오?]
순간, 양몽환은 가마 속에서 튀어나오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생소한 음성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도옥은 아닌 모양인데...... 상대방은 나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정체를 드러내놓지 않고 주렴 안에서 소리치는 주인공이 누구인지조차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귀하가 어떤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허세가 많은 모양이군.
천하에 유명한 도옥도 나를 양형이라고 부르오.]
[양형? 흥! 위엄을 부리지 마시오. 당신은 대협답지도 못하면서 속인(俗人)들을 속이고
대협인 척 하는 꼴이 우습소.]
[이 양모는 속인을 속여 대협을 사칭하지는 않소. 그런 일이 있으면 지적해 보시오.]
[흥!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한가지만 말하겠소.
그것도 다름이 아니라 당신이 바로? 사매(師妹)라고 하는 여자를 속여 처로 삼고 그것도 부족해서
천용방 방주의 따님까지 속여 처첩으로 만들었지 않소.]
[그것이 대협인 척 하며 속인을 속였다는 말이오? 말을 하려면 똑똑히 하시오.]
눈썹을 곤두 세우며 양뭉환은 눈을 부라렸다.
[왜? 속이 뜨끔하시오? 대협이랍시고 여자들을 우롱하지 마시오.]
여전히 가마 안에서 정체를 감추고 하는 말이다.
[귀하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찌기 무술계에서는
자기의 얼굴을 숨기고 남을 비방하는 짓은 용서치 않았소.
이 양모인 역시 마찬가지오.
가마 속에서 왈가왈부 하지말고 무술인답게 나오시오.]
[흥! 제법 호령이시군! 나가지 못하겠다면 어떻게 하겠소?]
[좋소! 나오지 못하겠다면 이 양모인이 나오도록 하겠소!]
하고는 들어올렸던 장검을 휘둘러 가마에 쳐진 주렴을 들치려고 했다.
그러자 가마 안에서부터 강력한 내공의 결정체인 파란 섬광이 튀어나오며
양몽환의 칼끝을 후려지고 말았다.
순간, 장검을 움켜쥔 양몽환은 칼끝이 뒤로 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며 휘어지는 장검을 고쳐잡았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로하며 전신의 내공을 장검에 집중시켰다.
미처 예기치 못한 강력한 내공에 장검을 날리고 몸까지 뒤로 젖혀질뻔한 양몽환은
가마 속에 운신하고 있는 주인공의 무공을 새로 인식했다.
<보통의 무공은 아니군. 조심해서 다루어야겠는데......>
호흡을 조절한 양몽환은 손끝에 집중한 내공을 장검으로 옮기며 내려쳐진 주렴을 걷어버리려고 했다.
왜냐하면 날카로운 장검으로 가마 속을 찔러서 다행히 양몽환의 장검에 정체 불명의 괴한이
찔린다면 모르지만 이미 사로잡힌 두 명의 시녀가 다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한,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려쳐진 주렴만을 겨냥하고 장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러나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양몽환의 장검끝이 주렴을 후두둑 스친다고 느끼는 순간,
가마 속에서부터 주렴을 들치고 시뻘건 끈이 쭈욱 뻗쳐나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뱀의 혓바닥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줄기의 날카로운 섬광도 아닌 한오라기의 밧줄이었다.
주렴이 칼끝에 절단되는가 아니면 장검이 튀어나올 줄만 알았지 한줄기의 날카로운
섬광같은 밧줄이 튀어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등골이 오싹했다.
일단 주렴을 흔들며 튀어나온 붉은 색의 밧줄은 그 길이가 열자(十尺)도 넘을만큼 긴 끈이었다.
그러나 보통 아무곳에서나 볼 수 있는 밧줄이 아니라 시뻘건 빛을 이글거리며 발산하는 밧줄이었다.
그러한 밧줄의 한끝을 가마 안의 괴한이 쥐고 흔들고 있었다.
시뻘건 밧줄은 허공을 이리저리 누비며 흡사 숲속에서 무시무시한 독사가 머리를 내젓는 것처럼
이리 휙! 저리 휙!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치 요동치고 있었다.
보기만해도 정신이 아찔힐 지경이다.
그뿐 아니라 밧줄이 날카로운 그 소리를 내며 허공을 누빌 때마다 싸늘한 기분이 감돌며
모래와 먼지를 수없이 날리는 것이었다.
머리 위에서 춤추듯 휘둘러지는 밧줄을 용하게 피하면서 양몽환은 장검을 비껴잡고
밧줄의 중간 부분을 노렸다.
끊어버릴 계획이었다.
한번 양몽환의 머리 위에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 밧줄이 저만치 날아갔다가
다시 맹렬한 속도로 달려드는 순간,
양몽환의 들었던 장검이 검광을 번쩍이며 힘있게 날았다.
순간, 캉! 하는 쇠붙이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그리고 양몽환의 몸이 뒤로 쓰러질듯 비틀거렸다.
실로 무시무시한 밧줄이었다.
양몽환의 장검도 단단한 무쇠로 다져 만든 장검이었다.
그러나 장검이 밧줄의 중간 부분을 후려쳤을 때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장검과 밧줄은
서로 튕겨지고 마는 것이었다.
어림도 없었다.
밧줄은 강철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밧줄을 끊기는 고사하고 밧줄에 닿았던 장검의 칼날이 톱날처럼
이가 떨어져 울퉁불퉁 볼품없이 되어 버리고 마는데는 속수무책이었다.
만일 괴한이 흔드는 밧줄에 한번? 얽히기만 하면 몸뚱이는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으스러져 만신창이가 될 것 같았다.
재빨리 밧줄을 피해 뒤로 물러선 채 밧줄과 장검을 번갈아 보던 양몽환은 맥이 빠지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자기의 장검이면 겁낼 것이 없다고 자부해온 양몽환이었다.
그런데 괴한이 휘두르는 뱀의 혓바닥 같은 밧줄에 칼날이 떨어져 나간다면 자기의 무공도
무공이려니와 장검의 성능도 다시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음...... 무쇠 칼날이 떨어져 나갔다...... 보통 문제가 아닌데...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록 칼날이 떨어져 나간 장검이지만 다시 한번 밧줄을 겨누고
여지없이 끊어버리리라 결심하고 가마 앞으로 돌진해 나갔다.
그러자 그때까지 허공에서 우줄우줄 춤을 추며 돌아가던 밧줄이 이번에는
양몽환의 장검을 겨냥하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양몽환의 장검이 밧줄을 겨누었지만 판도는 정반대로
괴한의 밧줄에 양몽환의 장검이 엉킬 판국이었다.
분명히 밧줄은 양몽환의 몸뚱이를 겨누고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양몽환의 장검을 겨누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장검의 손잡이를 힘있게 움켜쥐고 지금 마악 한쪽편에서부터
모래를 날리며 달려드는 밧줄을 힘껏 후려갈기고 말았다.
순간,
양몽환의 몸이 어디론가 끝없이 끌려간다고 느꼈다.
정신없이 끌려간다고 느꼈던 양몽환이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괴한의 밧줄에 장검이 얽혀 가마 앞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때 양몽환은 필사의 힘을 다해 장검을 낚아채고 말았다.
그와 함께 양몽환은 뒤로 벌렁 자빠졌다가 몸이 비잉 한바퀴 재주를 넘으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앗!]
눈이 홱! 돌았다.
끊어야 할 밧줄에 오히려 장검은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밧줄은 스르르 가마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 긴 장검이 댕강 부러져 손잡이만 잡고 있는 양몽환은 한심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내려다 볼 여유가 없었다.
양몽환의 장검을 휘감아 꺾어버린 밧줄은 부러진 장검을 감은채
스르르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밧줄은 나오지 않고 부러진 장검만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잠시라도 양몽환이 그 자리에 넋을 잃고 있었더라면 날아오는 칼날에
여지없이 몸이 날아갔을 것이었다.
그러나 날아오는 칼날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휙! 소리가 남과 동시에
햇빛에 번쩍이며 날아오는 칼날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몸을 비켜 간신히 피했다.
담대하기 이를데 없는 양몽환도 목덜미가 서늘했다.
그순간, 가마 속에서 괴한의 음성이 터져나왔다.
[말로만 듣던 양대협의 무공도 거짓만은 아니군. 그러나 나하고는 상대가 안되는데......]
부르르 전신이 떨리고 울분이 치솟아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양몽환은
자루만 쥐고 있던 장검을 내던지며 큰 소리로 외쳤다.
[고맙소!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소!]
[물론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명색뿐인 대협은 아닌 것 같소,
반갑소!]
빈정거리며 놀리는 말이었다.
그러니 양몽환은 입을 다물고 가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가마 속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속히 장검을 바꾸시오. 한 수 더 겨루어 봅시다.]
[좋소, 얼마든지......]
응수한 양몽환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하림에게 소리쳤다.
[장검을 주시오!]
그러자 하림의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시녀가 일제히 달려와 각기 가지고 있던 장검을 주는 것이었다.
[고맙소!]
두 명의 시녀에게서 두 자루의 장검을 받아 쥔 양몽환은 양손에 하나씩 장검을 나누어쥐고
가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한편! 동굴 속에서 비틀거리며 가마 앞으로 걸어나가는 양몽환을 지켜보며 자기들끼리
양몽환을 평가하던 두 명의 시녀들은 싸움이 점차 불을 뿜자
양몽환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다.
비틀거리는? 양몽환을 옆에서 보고 한마디로 평가한 자기들의 경솔함을 뉘우치고 있었다.
[과연, 우리 주인이 하신 말씀이 맞는데......]
[그래요. 아까는 우리기 너무 몰랐어요.]
[나는 나의 경솔함을 용서해 달라고 속으로 빌었어.]
하며 눈을 감았다 뜨는 시녀의 눈빛은 더없이 맑고 아름다왔다.
그뿐 아니라 가마? 앞으로 다가가는 양몽환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마치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戀人)을 전송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연정(戀情)인지도 모른다.
두 명의 시녀가 저마다 양몽환에 대해서 미안함을 금치 못하며 이야기하는 동안
한쪽 산모퉁이에서 네 명의 백의 시녀가 역시 장검을 멘채 나는듯이 달려왔다.
[어머! 우리 원군(援軍)이야!]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두 명의 시녀 앞으로 순식간에 달려온 네 명의 백의 시녀는
조소접의 십이화녀(十二花女)중의 일원들이었다.
금방 달려온 네 명의 시녀 중에 한 시녀가 주위를 돌아보며 급히 입을 열었다.
[녹춘 언니와 또 한 분은 어디 갔지?]
분명히 네 명씩 짝을 지어 다니는데 지금 보이는 사람은 두 사람 뿐이어서 묻는 말이었다.
[언니, 저기 가마 속으로 잡혀갔어요.]
[뭐? 잡혀가?]
[그래요. 그래서 지금 양대협께서 구출하려고 싸우고 있어요.]
[양대협?]
[네, 바로 저분이 양대협이셔요.]
손을 들어 가리키며 양몽환을 바라본 시녀는 가마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양몽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과연, 우리 주인님의 말씀이 옳아. 기품이 늠름하고...... 아! 훌륭해......]
여자 특유의 몸짓을 하며 생글생글 웃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가마 속에 누가 있어?]
[모르겠어요. 어떤 인물이 안에 있는지! 그러나 사람을 두꺼비가 파리 잡아먹듯 해요.]
[그래? 내가 도와야지!]
하며 당장 달려나갈 기세였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림이 급히 막았다.
[안돼요. 위험해요.]
비명처럼 가늘게 떨며 하는 말에 몸을 돌린 시녀는 하림의 아래위를 싸악 훑어보고는 아미를 좁혔다.
[당신은 누구죠?]
아니꼬운 눈치였다.
그때, 먼저의 시녀가 하림 대신 말했다.
[바로 양대협의 부인이에요.]
[부인?]
부인이면 부인이지 뭐가 어떻다는 말이냐는 듯 눈을 곱게 흘기고는?
그대로 양몽환이 서 있는 옆으로 달려갔다.
[비키세요. 제가 구하겠어요.]
이때까지 가마 속의 동정만 살피며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양몽환은
갑자기 옆에 와서 말하는
시녀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 그녀가 조소접의 시녀 중의 한 여자라는 것을 알았는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안됩니다.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녀도 지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 해보겠어요.]
양몽환이 말리고 뭐고 할 사이도 없었다.
고추 세워든 시녀의 장검이 가마의 주렴을? 건드렸다고 했을 때는
이미 주렴이 몇번 흔들렸을 뿐 시녀의 어여쁜 자태는 가마 속으로 사라지고 난 후였다.
순식간에 다시 한 명의 시녀를 삼켜버린 싸움터는 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아무리 몇번 다시 생각해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양몽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계략을 짜냈다.
그러나 좋은 계략이 떠오르지 않았다.
<단단한 장검, 그렇지 저 밧줄을 끊을 수 있는 단단한 장검이 있으면......>
하는 것이었으나 있을리가 없었다.
지금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장검은 이미 밧줄에 두동강이가 난 장검에 비길 수 조차 없이
허술한 장검인데는 더 해볼 도리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쥐고 있는 두 개의 장검으로 가마의 주렴을 들치고 정체 불명의 괴한을 처치한 다음
사로잡힌 세 명의 시녀를 구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얼마 동안 암암리에 운기 조식하고 내공의 진기를 운집한 양몽환은 땅을 박차며 장검을 휘둘러
지기의 몸을 보호하는 한편, 왼손의 장검으로 가마의 주렴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주렴은 약간 옆으로 모여지며 잠깐 들추어졌다.
그러나 곧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때 만일 양몽환이 재빨리 등을 굽히고 가마? 안을 보았더라면 정체
불명인의 하체(下體)라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양몽환이 비호처럼 돌진하며 왼 손의 장검으로 가마의 주렴을 들추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가마에서부터 불어닥치는 강력한? 잠력에 눈앞이 아찔하며 숨통이 콱 막
히는 것을 느끼고 오른 손의 장검으로 잠력부터 후려쳐야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너무 갑자기 불어닥친 잠력이었고 또 양몽환은 양몽환대로 힘껏 내공을 운집하고 달려갔던 차에
당한 일이
라 들추어진 주렴 밑으로 가마 속을 들여다 보기는 고사하고 가마를 스쳐 왼쪽으로 곧장 달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번쩍 차리며 달리던 몸을 세운 순간 깜짝 놀라 그만 자기도 모르게 장검을 휘두르며 되돌아
서고 말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왼편으로 피하다 너무 갑자기 당한 일에? 일시 정신이 혼미하여져 가마를 옹위하고 있는
십여 명의 괴한들 앞으로 달려갔던 것이었다. 재빨리 그들 앞에서 뛰어나온 양몽환은 가마와 얼마간의 거리
를 두고 숨을 돌렸다. 그러는 양몽환은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가마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정체 불명의 괴한만 노린 탓인지? 가마뒤에 서 있는 십여
명의 괴한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말을 탄 십여 명의 괴한들은 도무지 싸울 마음이 없는지 검
을 든채 뽑아들지 않고 말 잔등에 비스듬히 엎드려 한가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군...... 저놈들이 우리들을 해칠 생각이 있다면 십여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 장검을 휘두를텐
데 저토록 관전만 하는 것이...... 이상하군......>
하는 것은 양몽환 뿐 아니라 육보 그리고 여러 명의 시녀들도 생각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괴한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얼마동안 생각하며 가쁜 숨을 정상으로 되찾은 양몽환은 괴한들의 행동도 이상한 일이지만 가마 속의 정체
불명의 괴한이 가마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싸움의 승부는 고사하고 이미 가마 속으로? 빨려들어간 세 명의
시녀도 구할 길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마를 찌푸렸다.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에 봉착
한 것이었다.
<......가마 속의 괴한은 몸도 피하지 않고 들어앉아서 나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다...... 그리고 십여 명의 괴한
도 싸울 마음이 없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나는 사방 팔방에서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곧 머리를 다시 흔들었다.
<......그래도 나는 가마 속의 괴한을 죽이거나 세 명의 시녀를 구하기는 고사하고 늘어뜨린 주렴마저 들추지
못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가마 속에 들어앉은 괴한은 상당한 무공을 지닌 괴물이 아닐까...... 틀림없이 무공
이 강한 인물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양몽환은 들고 있던 장검을 내려놓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이 양모인이 귀하의 무공에 감탄을? 금치 못하오. 원하건데 가마 밖으로 나와? 정체를 밝힘이 어떠하
오?]
그러나 가마 안에서 정체 불명의 괴한이 얼굴도 내밀지 않고 양몽환의 말을 받는다.
[천만에, 별로 놀라운 재간도 아니오. 과찬의 말씀이오. 거듭 말하지만 당신이 대협칭호를 받는 것도 당연하
다고 생각하오.]
[그 말은 이 양모인이 해야 할 말이오. 당신의 무공이 높은데는 감탄해 마지않는 바이오.]
[고맙소, 그러나 나는 양대협만큼 재간이 없소.]
[천만에, 이 양모인이 알기로는 당신같은 무공을 지닌 사람이 천하에 몇명밖에 없는데 어찌 정체를 숨기고
나오지 않소?]
[그러면 당신은 진정으로 나와 싸우겠다는 말이오?]
[그렇소. 그래야만 세 명의 시녀를 구할 수 있지 않겠소?]
[그러면 좋소. 그전에 당신에게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소. 그러면 당신과? 내가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겠
소.]
[말해 보시오. 무슨 말인지.]
[묻고 싶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이 천하에 놀라운 무공을 지닌 사람이 몇명밖에 안된다고 했는
데 그 몇명이 누구누구요?]
순간, 양몽환은 쾌재를 불렀다. 슬슬 이야기를 해서 괴한을 가마밖으로 유인하려고 했다.
<......지금 싸울 기회를 준다고 했다. 내가 말을 하면 자기도 약속을 지키겠지......그러면!>
밖으로 유인해서 정체를 드러내놓기만 하면 일은 양몽환 뜻대로 될 것 같았다.
[좋소. 그런데 지금 싸우겠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소?]
[물론 약속은 지키겠소. 속히 말해 보시오!]
양몽환은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이 양모인은 천하에 쟁쟁한 무공을 지닌 사람을 세 분이라고 말할 수 있소.]
[먼저 꼽을 사람은?]
[그분의 이름은 조해평(趙海萍)이라는 사람으로서 일찌기 천기진인과 삼음신니가? 엮은 귀원비급을 찾아 무
공을 닦은 사람이오.]
[그것은 나도 알고 있소. 바로 천기석부에서 귀원비급을 꺼내온 사람 아니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가마 속의 인물을 더욱 괴이하게 생각했다.
사실 지금 양몽환이나 가마 속의 정체 불명인이 말하는 조해평은 일찌기 황제의 근위병으로 있다가 귀원비
급이 숨겨져 있는 장진도(藏眞圖)를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되어 강호 무술계의 군웅호걸들이 목숨을? 걸고 찾
으려는 귀원비급을 먼저 찾아낸 사람으로서 자기 딸 소접(小蝶) 바로 다정선자 조소접과 황제의? 딸로서 불
우한 운명을 타고났던 재색 겸비의 아름다움을 지닌 주약란(朱若蘭)에게 전수한 후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어
버린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러한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지만 정체 불명인이? 조해평을 알고 있다면 범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신도 조해평 선배를 알고 있소?]
[약간, 그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양몽환은 의아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바로 지금 말한 조해평 노선배님의 따님인 조소접 바로 다정선자라고 말할 수 있소.]
[그렇겠지. 그들은 부녀(父女)니까. 지금 그의 딸 다정선자가 강호를 주름잡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소.]
점점 괴이한 생각은 도를 더해 갔다. 정체 불명인은 조소접이 조해평의 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다음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주약란(朱若蘭) 바로 주소저가 있소.]
[지금 괄창산 천기석부에 있는 주소저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 그런데 주소저가 천기석부에 있단 말이오?]
[모르겠소!]
[지금 말하지 않았소.]
[모르겠소!]
양몽환은 기가 막혔다. 금방 괄창산 천기석부에 있다고 하더니?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 정체 불명인이 뒤를 이었다.
[또 없소?]
[없소!]
[내가 알기로는 한 명이 더 있을텐데......]
그러자 양몽환은 정체 불명인이 말하는
한 명이 금환이랑 도옥(金環二郞陶玉)을 말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척 했다.
[더는 모르겠소. 당신이 말해보시오.]
[그럼 내가 말하겠소. 바로 양대협 당신이 아니오?]
[나?]
[놀랄것 없소.]
[천만에, 천만에 나는 아니오......]
단호하게 말하자 가마 속의 정체 불명인은 양몽환이 대협이라는 것을
뒷받침이라도 하는 듯이 다름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당신이 스스로 아니라고 해도 나는 당신이 고수라고 생각하오.?
그래서 내가 당신을 죽인다면 미안 하지만 나의 명성은
일약 온 천하를 떠들썩하게 하고 유명해질 것이오.]
양몽환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이 양모인이 고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이 양모인을 죽여서 명성을 얻기 바라오.]
[천만에!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명성을? 날리고 싶지는 않단 말이오.
무릇 명예욕이 있는 시람들은 고수를 죽여 천하에 명예를 얻으려고 하지만
나는 숨어서 일하는 것을 좋아한단 말이오.]
[그래서 지금도 가마 속에 숨어 있는 것이오?]
[그렇소. 이제는 그만 이야기하고 아까의 약속대로 나와 싸울 기회를 주겠소.]
[좋소. 얼마든지 응하겠소.]
[그러면 오늘밤 두 시에 당신이 서 있는 바로 뒷산 봉우리로 오시오. 틀림없이 기다리고 있겠소.]
[장부일언은 중천금이라는 말이 있소. 당신의 말대로 두 시를 기다리겠소.]
[그런데 한가지, 두시에 올 때에는 나도 그렇게 하겠지만 당신도 혼자 오시오.
아무도 데리고 오지 말라는 말이오.]
[그러면 이 양모인도 한가지 말할 것이 있소.]
[무슨 말이오?]
[지금 당신의 가마 속에 있는 세 명의 시녀들을 놓아주시오.]
[잠깐 기다리시오.]
[만일 당신처럼 무공이 있는 사람이 여자들을 납치해 간다면 장차 당신의 명예에 관계되는 일이오.
그녀들이 누군지나 아시오?]
[왜 모르겠조. 바로 다정선자의 시녀들이 아니오.]
양몽환은 갈수록 정체 불명인이 모든 일에 정통하고 있는 것에 감탄했다.
<굉장한 인물인데...... 강호의 정세에 밝은 것으로 보아 무슨 곡절이 있는 사람이군......>
하는데 다시 가마 안에서 정체 불명인의 말이 들려왔다.
[염려마시오. 명예도 없지만 설사 명예에 관계된다? 하더라도
그녀들의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을 것이오.
다만 나와 승부를 겨루어서 당신이 이기면 깨끗이 돌려보내겠소.]
[진다면?]
[그때는 양대협 당신도 내 손에 죽을? 것이오.
그다음에 시녀들을 염려해서 무엇할 것이오?
염려함 필요도 없을 것이오.]
하고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돌아가자!]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네 명의 괴한이 가마를 메고 앞장을 서고 그 뒤로 십여 명의 괴한이
말을 몰아 옹위하며 따라가는 것이었다.
밤 두시!
정제 불명인과의 약속대로 밤 두시를 기다려 양몽환은 동굴을 나섰다.
하림과 육보 그리고 다섯 명의 시녀에게는 동굴을 잘 지키라 명하고는
많은 장검 중에서 제일 단단해 보이는 장검 두 개를 골라가지고 지정한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교교한 달빛만이 은빛을 발하며 어두운 주위를 밝혀줄 뿐,
새소리? 벌레소리조자 들리지 않는 밤이 산정(山頂)은 가끔 찬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놓고
지나갔고 그외에는 온 삼라만상이 어둠에 묻혀 저마디의 안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편 양몽환은 바위에 걸터앉아 두 자루의 장검을 내려다보며 운기 조식을 끝냈다.
이지러전채 중천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밤 두시를 재어보고 있는 양몽환의 눈앞에는
하나의 검은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하며 다가오는 검은 복면의 괴한은 가마 안에서 정체를 내놓지 않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검은 복면의 괴한이 가마 속의 정체 불명인임을 알아차린 양몽환은 앉았던 자리에서
장검을 집어들며 일어났다.
[약속을 어기는가 했소.]
[천만에!]
강경하게 말하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멈추어서는 괴한을 노려보던 양몽환은 순간 멈칫했다.
그것은 자기가 괴한의 얼굴을 볼 수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 일시에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목덜미에서부터 발끝까지 흑의(黑衣)로 내려덮은 괴한은 손목이나 발목도 보이지 않았고
손에도 역시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파란? 광채가 도는듯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얼굴은 물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았다.
다만 두 눈만 빠끔히? 내놓고 양몽환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복장으로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철가면(鐵假面) 같기도 하고 복면을 한 것 같기도 한 것이 얼른 분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괴한은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듯 차가운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세인들이 일컬으는 대협이오. 대협답게 싸울 수 있소?]
[물론! 그보다 한가지 조건이 있소!]
[이제 와서 무슨 조건이 있단 말이오. 낮에 약속한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오.]
[못다한 약속이 있소. 싫다면 듣지 않아도 좋소!]
그러나 흑의인은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냉랭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좋소, 한가지만 더 듣기로 하겠소.]
[만일 이 싸움에서 당신이 진다면 얼굴에 쓰고있는 가면을 벗어야 하오!]
[가면? 무슨 뜻이오?]
[아무 뜻도 없소. 무슨 대단한 인물이기에 얼굴까지 가렸나 해서 하는 말이오.]
[좋소. 그러나 내가 지는 경우에만 벗겠소.]
[물론! 그리고 세 명의 시녀는 잘 있소?]
[잘 있소!]
똑같이 무뚝뚝한 말이 교환되고 있었다.
그러던 얼마 후 양몽환의 두 손에 들리워져 있는 두 자루의 장검을
노려보던 흑의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흥! 두 개의 장검으로 대항하겠다는 모양이군! 그러나 몇개 더 준비하시지!]
몇개의 장검이라도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이에 양몽환도 지지 않았다.
[염려마시오. 원한다면 맨 손으로도 싸울 수 있소!]
[대단하시군!]
비웃는 소리를 그치며 흑의인은 품속에서 한자루의 단검(短劍)을 뽑아들었다.
길이가 겨우 한자나 될까말까
한 짧은 단검의 시퍼먼 칼날이 달빛에 번쩍였다.
순간, 양몽환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저것이 무쇠를 자른다는 단검인 모양이군......>
일찌기 풍문으로만 듣던 수리검(袖裡劍)임을 알았다.
그러나 두려울 바가 없었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단검과 장검을 들고 서로 노려보며 살기를 내뿜는
긴박한 순간이 일각일각 지나가던 찰나.
흑의인의 단검이 허공을 찌르자 필살의 검광과 검풍이 일대를 뒤덮기 시작하고 말았다.
어느 때 어느 방향에서 협공해 들어오더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자신을 가지고
흑의인을 노려보던 양몽환도 흑의인의 검광이 허공을 찌르자 나느듯이 땅을 박차고
오른 손의 장검을 휘두르며 연이어 왼 손의 장검에 진기를 불어넣었다.
일단 싸움이 맞붙게 되자 두? 명의 적수는 자신의 무공을 총동원하여 찌르고 후려치는 것이었다.
두 자루의 장검을 휘두르는 양몽환의 솜씨나 단검인 수리검을 날카롭게 내려지며 협공을 시도하는
흑의인의 날카로움이나 백중의 기세에 놓여 있었다.
양몽환의 장검에서 뻗치는 무시무시한 검풍이 흑의인을 명중시키지 못하고 주위의 나뭇가지를
우두둑 부러뜨리는가 하면 흑의인의 예리한 단검이 싸늘한 광채를 발하며 부러져 떨어지는
나뭇가지를 몰아가 양몽환의 앞길을 사정없이 막아버리는 것이었다.
거의 이십여수, 어느덧 싸움도 절정에 달했다.
회수를 거듭해서 휘두르는 양몽환의 장검은 더욱 무서운 기세로 덤벼들고 용이하게
두 자루의 장검을 피해 육박해 오는 흑의인의 수법도 기기묘묘한 절기가 아닐 수 없었다.
흡사 생선을 난도질하듯 가로 세로 단검을 휘두르다 갑자기 양몽환의 머리 위를 스치며
단검과 흑의인이 혼연 일체가 되어 접근을 시도하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자리가 바뀌어져
양몽환이 섰던 자리를 차지하고 단검을 고쳐 세우는 흑의인이었다.
이에 반해 양몽환은 금방 자세를 가다듬으며 단검을 고쳐 세우는 흑의인의 가슴을 겨누고
오른 손의 장검을 허공으로 들어올려 무지개를 그리듯 시퍼런 검광을 그으며 내려치는 동시에
잠시의 여유를 두고 왼 손의 장검을 휘두르고 말았다.
그러자 흑의인은 앞서 찔러오는 오른 손의 장검을 피하느라고 허리를 구부리다가
뒤미처 달려오는 왼 손의 장검에 가슴을 찔리는 순간,
팔딱 몸을 뒤집으며 위험천만의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이용하여 앞으로 숙여지는 왼 손의 장검을 흑의인의 단검이
무서운 속도로 내려치고 말았다.
순간, 캉! 하는 쇳소리를 내며 양몽환이 들고 있던 왼 손의 장검은 자루만 남고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순간, 기분이 상한 양몽환은 왼 손의 장검을 내려치느라고 얼핏 몸을 숙인 흑의인의 면상을
힘껏 후려갈겼다.
명중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역시 캉! 하는 쇳소리를 내며 양몽환의 장검이 두동강이 날뿐 흑의인의 면상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흑의인을 볼 때 양몽환의 처음 생각대로 가면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어떠한 쇳덩어리로 두들겨도 흠집하나 생기지 않는 철제가면(鐵製假面)이었다.
순식간에 두 자루의 장검을 두 동강으로 내어버린 흑의인은 날이 없는 빈 칼자루만 들고
어이없이 서 있는 양몽환을 잠시 보고 있다가 자기도 역시 들었던 단검을 품 속에 넣고 마는 것이었다.
[어떠시오? 두 개의 장검으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했는데?]
[흥! 장검이 없으면 맨 주먹으로 싸우겠소.]
그러나 이미 승부는 결정된 셈이었다.
그것은 두 개의 장검이 달아난 지금 상대가 아직 무기를 들고 있는데는
맨손으로 싸운다는 것이 무리였다.
그것도 서로의 무공에 차이가 있다면 모르지만 엇비슷한 지금 상태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졌다고 손을 들 수 없는 양몽환은 급히 두 팔에 진기를 운집하며 가슴을 펴고 달려들
기세로 소리쳤다.
그러나 흑의인도 역시 단검을 들지 않고 맨손을 들어보이며 크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럴줄 알고 나도 단검을 거두었소. 자, 먼저 실례하겠소.]
하고는 언제 운집했는지 강력한 장풍을 날려보내며 양몽환과 맞부딪칠 기세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은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며 옆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강력한 장풍을 휘어잡았다.
그리고는 몸을 솟구치며 이미 휘어 잡은 흑의인의 장풍에다 자기의 강한 내공을 합쳐
흑의인의 뒷등을 노리고 힘껏 내뻗었다.
그러자 흑의인은 미처 그것까지는 계산을 못했는지 황망히 자리를 비켜 날카롭기 그지없는
양몽환의 반격을 간신히 피했다.
그리고 다시 땅을 박차며 두 발을 번쩍 들었다.
그 순간, 양몽환도 그와 똑같은 수법으로 땅을 박차며 두 발을 번쩍 들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순간,? 일시에 뛰어오른 네 개의 발은 서로 비슷한 힘으로 상대방을 걷어차고
동시에 네 걸음씩 물러나며 땅 위에 내려섰다.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을 예기치 못했던 양몽환은 지금까지의 공격태도를 일변시켜
귀원비급 무공 중에서 성월무공(星月無空)의 수법을 발휘하여 흑의인을 산밑으로
굴러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러자 흑의인도 역시 같은 성월무공의 수법으로 양몽환에게 역습해 오는 것이 아닌가!
천강지의 수법을 쓰면 어느 사이에 흑의인도 천강지 수법으로 대항해 오고
오행미종(五行迷從)의 수법으로 몸을 허공으로 날리면 또 양몽환의 수법을 알아채 가지고는
흑의인도 같은 수법으로 역습해 오는 것에 양몽환은 약간 당황했다.
<음...... 이 흑의인도 확실히 귀원비급을 터득한 모양이군!>
하는데 이번에는 흑의인이 먼저 선수로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잠시 생각에 잠긴 틈을 타서 추풍태산(秋風泰山)의 수법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지금 흑의인이나 양몽환이 겨루는 수법은 귀원비급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별로 무서운 수법이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가 발휘한 수법 중에서
어느 한가지의 수법으로 공격을 당하면 그 당장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실로 경악감을 감추지 못하는 위험한 수법이었다.
더구나 지금 흑의인이 취하는 추풍태산의 수법도 가을 바람처럼 산들산들 불어오는
장풍이 태산을 뚫는 괴이한 수법이었다.
즉시 흑의인의 수법을 알아챈 양몽환은 자기도 추풍태산의 수법으로 달려오는
흑의인을 밀어버리고 말았다.
이때, 만일 같은 수법으로 대항하면? 그 강도(强度)의 차이로 말미암아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되도록 상대방의 수법을 먼저 알아 대비하고
그 다음을 노려야 하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해서 맨손으로 장풍을 일으켜 공격하고 역습하기 이십 여합.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었던 양몽환은 두 팔에 운집한 진기로 흑의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천강지의 수법으로 돌변시키면서 흑의인의 가슴을 겨누고
마악 손을 휘두르는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백의(白衣)의 여인이 바람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달려와
양몽환과? 흑의인의 사이에 곧장 멈추어 서며 날카롭게 부르짖는 것이었다.
[잠깐 기다려요!]
순간! 휘두르던 손을 급히 끌어들인 양몽환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조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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