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랑의 고통
한편!
도옥과 조소접의 아니꼬운 꼴을 외면하고 피로하고 지친 몸을 간신히 끌며
등가보로 향하던 양몽환은 급히 운기 조식하여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져 가슴이 울컥거렸다.
갑자기 변한 조소접의 행동이나 모사꾼인 도옥을 생각하면 자다 말고도 벌떡 일어나 앉을 노릇이었다.
조소접이 자기에게서 떠날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미워하던 도옥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더욱 양몽환의 몸을 부르르 떨게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 강호를 어떻게 돌변시켜 놓을지 자못 근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제부터 둘이 한짝이 되었을까?......>
지금까지 지내온 일을 곰곰히 생각하던? 양몽환은 퍼뜩 지나가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염라묘(閻羅墓)에서 도옥을 사로잡아 조소접의 거처까지 가던 길에 마차 안에서 하던 말과,
또 양몽환이 그들과 헤어져 하림과 함께 돌아오던 길에 어떻게 나왔는지 도옥이 뒤따라와
양몽환에게 하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 도옥은 이렇게 말했다.
<조소저가 양형을 죽이라고 했소. 그러면서 나를 뒤따르게 한 것이오!>
양몽환은 그때부터 도옥과 조소접 사이에는 무엇인가 밀약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않았다기 보다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쉬고 싶었다.
등가보까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아 있었다.
불편한 몸을 끌고 등가보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피로해 있었다.
양몽환은 길가 풀밭에 쓰러지듯 앉아 지그시 눈을 감고 말았다.
잠시 쉬면서 운기 조식하면 피곤한 몸이 가뿐해질 것 같았다.
지그시 눈을 감은 양몽환은 차차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아니면 동틀 시각이 얼마나 남았는지 캄캄하기만 한 주위를 휘둘러보며 양몽환은 일어났다.
좀더 운기 조식하고 싶었지만 등가보에서 자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걱정할까봐
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괴이한 서찰을 그것도 화살에 끼인채 날아온 서찰을 받았다는 것을 등개우와 유원만 알 뿐,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그 서찰을 읽은 양몽환이 남의 눈을 피해 등가보를 빠져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은밀히 등가보를 빠져나온 양몽환이었다.
그런데 뒤늦게라도 이 사실을 알고 없어진 양몽환을 찾느라고 발칵 뒤집힐 등가보를 생각하면
그리고 발버둥칠 하림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했다.
더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일은 양몽환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몇 점이나 되었을까,
빨리 돌아가야지 하는 양몽환의 눈 앞에 장검을 뽑아든 두 명의 거한이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양몽환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신을 차린 양몽환는 급히 그들의 아래 위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계산했다.
우람한 체구에 흑의로 단장한 거한들을 지금 잠시 동안의 운기 조식으로서
한방에 쓰러뜨릴 수 있을까, 없을까를 가늠해 보았다.
자신이 있었다.
쥐어지는 주먹에 가만히 힘을 주었다.
약간 벅찰지는 모르지만 해치울 것 같았다.
이 밤중에 장검을 꼬나들고 노리고 선 괴한이 절대로 양몽환 자기를 돕기 위해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돕기 위해 이곳까지 올 사람도 없겠고 설사 도우러 왔다해도 행동이 벌써 틀려먹었다.
양몽환은 눈치채지 못하게 운기한 다음 가슴을 폈다.
[무슨 사람들이오?]
그때까지 말도 하지 않고 버티고 섰던 괴한들은 양몽환이 먼저 묻자
그중의 한 놈이 빙글빙글 장검을 휘두르며 엉큼하게 웃었다.
[당신이 양몽환이오?]
양몽환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렇소마는 당신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이오?]
그러나 괴한들은 양몽환의 물음에는 아예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비위 상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러시군! 양대협님이시구먼. 제기랄! 강호에서 존경을 받는다는 양대협님이
우리들 손에 잡혔다면?......]
[이놈들! 무슨 잠꼬대를 그따위로 하느냐 속히 소속을 밝혀라!]
[정 알고 싶다면 가르쳐 드리겠소. 우리들은 금환이랑 도옥 밑에서 파수를 보는 사람들이지......]
[도옥?]
[그렇소. 우리 방주님(幇主任)이 양대협을 사로잡으라는 명령을 내리셨읍니다.
미안하지만 우리들 손에 잡혀주실까?]
[핫...... 하...... 미친놈들...... 이놈들아, 사로잡겠다고 했으면 어서 잡지 못하고 무슨 말이 많으냐?]
[그 무슨 말씀을 그따위로 하십니까? 자, 받으시오......]
[고얀놈들 내 한 주먹에 네놈들부터 잡아주마!]
[됐어...... 그런데 잠깐! 우리 방주님은 사로잡아 오라고 하셨는데 만일 싸우게 되면
양대협님을 죽일 수밖에 없으니 어찌하오면 좋으리까?]
양몽환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어디서 피라미 두 마리가 딱딱거리는 데는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비록 도옥과의 일전으로 쇠진했던 몸을 운기한 직후이지만
손바닥 한번 뒤집으면 개구리가 나가 떨어지듯 할 놈들이 무술인인 척 하는 것이 가소로왔다.
[하...... 하...... 못난 놈들...... 어떤 놈들인지 잘 모르겠다만 공연한 죽음으로
황야에 버려지지 말고 돌아들 가거라!]
그러자 놈들은 당치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글거리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은 지금 이놈들 이외에 수를 알 수 없는 적들이 매복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피라미같은 놈들이 이렇게 방자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급히 사방을 휘둘러 보았으나 워낙 어두운 밤이고 주위가 우거진 수풀이어서 용이하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동안 눈앞의 괴한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기도 하고 양몽환을 보기도 하는 것이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섣불리 달려 들었다가는 자기 몸뚱이 하나 없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대가리가 댕강 날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선뜻 나서지 못하는 대신 입만 살았다.
[어이쿠 양대협님. 어찌 그냥 돌아가라십니까?
우리 방주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그냥 돌아가면 우리는 볼일 다 봅니다.]
[그러면 내가 죽여주마. 그러면 방주가 너희들을 그냥 놔두고 말고가 없지 않느냐?]
양몽환은 더 이상 이놈들과 말하고 있을 처지가 못되었다.
한방 장풍을 날려서 없애버린 다음 사태를 보아가며 처리하리라 다 짐했다.
[이놈들! 너희 두 놈으로는 안 된다. 내가 먼저 죽여주마!]
벽력같이 외치며 두 손을 높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어둠침침한 수풀 속에서 거창한 웃음 소리와 함께
도사 차림의 거한이 질풍같이 뛰어나와 우뚝 서는 곳이었다.
[으하핫...... 오랜만이오.]
하고는 두 명의 거한에게 눈을 부릅뜨는 것이었다.
[이놈들 물러가 있거라!]
산이 쩌렁쩌렁 울릴 듯한 소리를 내지른 거한은 달빛에 번쩍이는
구환도(九環刀)를 들고 옆구리에는 두툼한 보따리를 꿰어 찼다.
분명 암기(暗器)를 넣은 가죽 보따리였다.
순간, 양몽환은 이마에서 불이 번쩍했다.
그리고는 신음소리처럼 가늘게 부르짖었다.
[승일청(勝一淸)!]
하고 외치는 양몽환의 뇌리에는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오년전 단혼애로 줄달음쳤다.
<...... 천용방의 남기단주(藍旗壇主)일 승일청!
용하게 죽음을 면하고 방주 이 창란을 이끌고 자취를 감추었던......
자모신담승일청(子母神膽勝一淸).....>
여기까지 기억을 더듬어 오던 양몽환은 이제까지와는 정반대로
온몸의 힘이 쏘옥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러면 안된다 하면서도 맥이 다 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실로 의외의 일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인물을 만난 탓인지도 몰랐다.
<생사를 겨루고 싸우던 적! 승일청......>
분명히 자모신담 승일청이었다.
[승선배! 안녕하셨소?]
맥이 탁 풀리는 양몽환은 일단 그의 인사에 답례했다.
그러자 승일청은 정색을 하며? 음성이 부드러워지는 것이었다.
[양대협의 명성은 이 승모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소. 장인어른도 안녕하시오]
[예, 덕분에......]
[실로 오랜만이오.
옛날 장인 어른 밑에서 일할 때에도 피차 적으로 지냈는데 오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오.
진정 인간지사가 무상하오.]
이때, 양몽환은 맥이 탁 풀리면서도 앞에 나타난 승일청이 적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것에
내심 저윽이 놀랐다.
그리고 지금 승일청의 표정을 보아서는 당장 태도가 돌변해서 역습해 오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상대가 정색하며 누그러지는데는 양몽환 혼자만 눈을 부릅뜰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실로 무상합니다.
승선배께서는 요사이 어찌 지내십니까?
예전 천용방의 단주이시던 선배님을 만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오이다.]
[지나간 일이오.
나 역시 몸은 늙었어도 기억은 생생하오......
그러나 다 과거지사요, 흘러간 물이지요.]
하고는 잠시 말을 끓었다가 다시 이었다.
[내가 조금 전 양대협의 일을 지켜 보아서 잘 알고 있소.
중상인 모양인데 좀 어떠시오?]
순간,
양몽환은 승일청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면 저의 싸움을 보셨읍니까?]
[예, 자세히 보았소이다. 몸이 매우 불편한 모양인데 같이 가시는 것이 어떻소?]
[어디로?]
[아, 아직 말하지 않았군......]
하고 말한 승일청은 매복시켜 두었던 이십여 명의 부하들을 불러 주위에 세워 놓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승모인은 지금 도방주(陶幇主) 밑에서 향주(香主)로 있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의 천용방과는 성격이 다르오.
그래서 묘수어은 소천의(妙手魚隱蕭天儀)도 우리 방(幇)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소이다.]
[소천의께서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토록 천용방에서 초청하여 방에 가입시키려 해도 거처마저 감추고
무술계의 시시비비에 뛰어들지 않으시던 소천의까지도 도옥의 밑에서 충성을 다한다는 말에
양몽환은 청천벽력을 얻어맞는 것 같았다.
[그렇소. 요사이는 소신의(蕭神醫)라고 하죠.
양대협께서 몸이 괴로우시면 소천의옹(蕭天儀翁)에서 보시고 가겠읍니다.]
양몽환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만일 가지 않겠다면 이십 명의 부하와 승일청이 달려들어 사로잡을 것이 너무나 뻔했다.
그렇다고 가겠다고 나선다면 스스로 호랑이굴로 찾아가는 격이 되고마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록 정중한 어조로 말하는 승일청이지만 언제 어떠한 형태로 표변해 버릴지
심히 염려스러운 존재였다.
얼마 동안 대답을 못하고 난색을 짓자 승일청은 호탕하게 웃으며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아무 염려 마시오.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록 적대관계에 있을망정 원수라도
중상을 당하면 구해 주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오는 무술계의 도리요,
이 승모(勝某)를 따라가서 상처를 치료하심이 좋을것 같소.]
그래도 양몽환은 주저했다.
좀전 만 해도 운기되던 것이 승일청이 나타나므로서 맥이 탁 풀려버린 지금의 처지로서는
이십여 명의 저지선을 뚫고 몸을 날린다는 것이 무리였다.
잠시 진퇴양난에 빠졌던 양몽환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폐를 끼칠까 염려 됩니다만 굳이 승선배님이 말씀하신다면 기꺼이 응하겠읍니다.]
[폐될 것은 하나도 없소. 가십시다.]
양몽환은 승일청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스스로 택해서 가는 길이지만 사로잡혀 가는것 못지 않았다.
<...... 할 수 없지 않은가?
기운이 빠진 지금의 형세로서 그들과 대적할 수 없는 한 대협답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싸우다 사로잡힌다면 이후 승일청이 냉소할 것이고......
싸울 수도 없는 기력인바에는 차라리 위엄이라도 지키자......>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 이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사태에 어떤 지략(智略)으로 대처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일 그곳에서 도옥을 만난다면 다시 한번 생사를 걸고 승부를 가리리라 다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부터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승일청이 간계를 꾸며서 유인하지 않는 한,
어떠한 위급한 사태에 직면해서도 능히 뚫고 나올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등가보였다.
<미리 알리고 나오든가...... 동행인이라도 데리고 나올 것을......>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오래 하지 못했다.
그것은 목적지에 다다라 깨끗이 청소된 방으로 안내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두워서 주위를 자세히 살펴 볼 수는 없었지만 어림풋이나마 큰 건물들이 대여섯채?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고 수 많은 부하들이 여기저기서 철통같이 방비하고 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양몽환이 안내된 방은 십여 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을 만큼의 면적이었고 침대 한대가 깨끗한
이불로 단장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몽환을 방으로 안내한 승일청 이하 부하들은?
양몽환의 상처를 소신의에게 보이지도 않고 밖에서 문을 잠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순간! 독 안에 든 쥐를 생각했다.
이제는 빠져나갈 도리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어떠한 사태에도 이미 각오가? 된 양몽환은 유유히 침대에 누워
운기 조식하는 한편 잠시 피곤한 몸도 쉴겸 눈을 감았다.
얼마나 잤을까?언뜻 눈을 뜬 양몽환은 이미 해가 떠올라
그 찬란한 광채를 아낌없이 비추고 있는 아침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도 개운하고 몸의 각 혈도도 모든 요혈이 창통(暢通)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쉰 양몽환은 천천히 문앞에까지 다가와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네 명의 장정이? 문앞을 가로막으며 장검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양대협님께서는 어딜 가시려고 하십니까?]
주춤 물러선 양몽환은 그들이 자기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양몽환은 빙긋이 읏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긴...... 문을 열었을 뿐이오.]
하면서도 급히 주위를 훑어보았다. 드문드문 몇 명의 부하가 지키고 있는 것이 보이고
그외에는 거칠 것 없는 들판이 전개되어 있었다.
이때, 양몽환은 앞에 늘어서 있는 네 명의 장정쯤 한 손으로 처치하고
이곳을 탈출할 수 있었지만 짐짓 그러한 내색을 보이지 않고 침대 위에 걸터앉고 말았다.
[당신들의 직책은 무엇이오?]
양몽환의 악의 없는 말에 한 놈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집형향주(執刑香主)의 부하로서 보초(步哨)하는 것이 일입니다.]
[집형향주? 그러면 승선배님인가요?]
[네, 바로 집형향주이십니다.]
[미안하오만 향주님을 모셔올 수 없겠소?]
[글쎄요...... 바쁘시지 않으시면......]
[가기전에 뵈옵고 떠나겠다고 전해주시오.]
그들은 잠시 양몽환의 말대로 승향주를 불러와야 하는지 어떤지를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한 명이 선뜻 나서는 것이었다.
[제가 가보겠읍니다.]
하고 밖으로 뛰어나간 거한은 잠시 후에 승일청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승선배님 덕분에 몸이 쾌차했소이다. 이만 폐를 끼치고 물러갈까 하오이다.]
그러자 승일청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것은 양몽환을 돌려 보내주고 싶은 눈치지만
방주 도옥의 명령과 밑에 부하들이 있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무엇인가 한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군...... 승선배의 마음 속에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나를 해칠 마음도 없는 것 같고 돌려 보내주고 싶은 모양인데 남의 눈이 있어서 고민하는 모양이군......>
분명히 승일청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양몽환을 해치려는 악의의 기색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승일청 자기와 자기의 부하를 처치하고 이곳을 빠져나가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한편, 승일청은 홀로 고민에 빠졌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적은 적이지만 이제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이 기회에 양몽환을 살려 주어서 후일을 도모한다면......
더구나 도방주의 명대로 사로잡아 왔다고 보고 하였으니 명분은 섰겠다......
이제 일부러 지는 척 해서 양대협을 살려 보내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부하들 앞에서 순순히 놓아 보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후환이 두려웠다.
<양대협이 눈치를 채고 내가 바라는 대로 해주어서 이곳을 빠져나갔으면......>
하는 것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부하들의 눈을 피해 양몽환에게 사실대로 말한다면 후일에
자기의 체면도 있고 또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공연히 인심만? 쓰게 되는 것이 아닌가도
계산해 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만 일이 우연히 연줄이 닿도록 하려는 것이 지금 승일청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말은 정반대였다.
<모쪼록...... 눈치만 채고 일을 처리하기를......>
하고 비는 마음으로 승일청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못갑니다. 도방주의 명도 있고 더구나 아직 소신의옹의 치료도 받지 않은 몸인데...... 안되겠소.]
순간, 양몽환은 승일청의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군...... 승선배의? 태도로 보아서는? 무슨 곡절이? 있어 나를 놓아주려는?
눈친데 말은? 정반대로......>
이렇게 생각하던 양몽환은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여차하면 일장을 후려쳐 모두 쓰러뜨리고서라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승일청의 눈빛도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양몽환은 앞에 서 있는 네 명의 거한부터 서지하고 승일청의 태도를 보아
다음을 결정하기로 했다.
순간, 불문곡직하고 앞에 서 있는? 거한부터 가슴을 겨누고 일장을? 날려보냈다.
그리고는 뜻밖의 공격으로 우왕좌왕하는 네 명의 거한을 이리치고 저리 갈겨 흡사 풍차 돌아가듯
양몽환의 몸이 돌아가 순식간에 네 명의 거한을 차례차례로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익숙한 솜씨로 쓰러진 거한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곡지혈을 짚어버리고 승일청의 동정을 살폈다.
그러자 승일청은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지 벽을 향한채 외면하고 서 있는 것이었다.
더 주저할 것없는 양몽환은 그대로 몸을 박차며 밖으로 뛰어나오고 말았다.
그때야 외면하고 있던 승일청은
큰 소리를 지르며 몇 걸음 따라 나오더니 달려가는 양몽환의 등을 향하여 일장을? 날려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무슨 연극을 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네 명의 거한을 상처? 하나 나지않게
그리고 곧 정신이 들도록 가볍게 처치하고 달려나가던 양몽환은 승일청의 외치는 소리와
날려보내는 장풍도 그 역시 연극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순일청이 날려보낸 장풍을 가볍게 손을 들어 막아버렸다.
그러자 생각 밖으로 승일청이 뒷걸음질치며 비척비척 뒤로 물러가다가는
그대로 쓰러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속으로 승일청의 기지에 감탄했다.?
지금 양몽환의 손놀림이라는 것은 승일청이 날려보낸 장풍을 막아버번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승일청은 공격을 당한 듯이 뒤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 들길을 달려가던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승일청을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나를 돌려 보내려면 눈도 많고 그렇다고?
마주 상대해서 싸울 수도 없는 처지로서는 일부러 쓰러져 불가항력이었다는 것을
여러 부하들에게 보여 연극을 꾸밀 수 밖에......>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의아심이 없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곡절로 연극을 꾸며 자기를 놓아주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무술계의 의리 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후일에 알게 되겠지...... 그런데 저토록 무공이? 웅후하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어째 도옥에게? 붙잡혀 부하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더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때 어느곳에서 뜻밖에 만나게 되면 의문 투성이인 승일청의 내심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인연이 아니라 생각하며 덮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나 왔을까.
어디선가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양몽환의 귀에 들려왔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가였다.
그리고 그 시냇가는 겨우 한사람이 건널 수 있는 외나무 다리가 놓여있고?
다리 끝에는 휘청 늘어진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폭의 그림같은 경치에 도취해 있던 양몽환은 어느덧 고향 마을의 수월산장(水月山莊)의
고향집이 생각나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고즈넉한 경치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때, 눈이 시릴 만큼 하얀 백의(白衣)로 몸을 감싼 여인이 등을 돌리고 앉은채
맑은 개울물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양몽환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양몽환은 여인의 뒷모습만 보고도 즉각 그녀가 바로 조금
전에 헤어진 조소접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무공이 절묘하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조소저가 비록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해도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을 텐데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다......>
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다음은 조금 전에 도옥과 어울려 자기에게 보이던 생각이 떠올라
저절로 이마가 찌푸려졌다.
양몽환은 조소접을 못본척 하고 그대로 외나무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보기도 싫었고 만난다는 것은 더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이 외나무 다리에 발을 딛고 몇 걸음 옮기려는 찰나,
향기로운 바람이? 양몽환의 코끝을 스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소접이 어느 사이에 몸을 날렸는지 맞은편 외나무 다리 한? 끝에서부터 천천히 다가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다리 위에서 기어이 마주치고? 말았다.
되돌아갈까도 생각했으나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하기도 싫은 양몽환은 할 수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소저!]
그러자 조소접은 생긋이 웃으며 놀라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아직 죽지 않았군요? 당신은.]
하고 놀리는 듯 하는 말에 양몽환의 굵은 눈썹이 치켜 올라가다 멈추었다.
[조금 내장에 상처를 입었을 뿐이오. 왜 죽었으면 하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래 도옥이 조금만 더 공격을 가했더라면 당신은 꼭 죽었을 거에요.]
[생사는 천명(生死之天命)입니다.
내 비록 반생동안?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 명이 다하지 않은 모양이오.]
싸늘하고도 냉랭한 양몽환의 대답이었다. 생각같아서는 한방 후려치고도 싶었지만 꾹 참았다.
모든 일은 순리(順理)대로 돌아가고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믿는 양몽환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의 대답은 여전히 비웃는 어조였다.
[평생토록 요행만 바라고 살 수는 없을 걸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대장부 한 번? 세상에 나서 뜻을 세우고? 죽으면 그만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소.]
[흥! 그토록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당신을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이 만들어 놓겠어요.]
[마음대로 하시오. 더구나 조소서가 나의 생명을 구해준 것은 아직 잊지 않고 있읍니다.]
[그때 당신을 살려 준 것을 후회해요.
이렇게 내 마음을 괴롭힐 줄 알았으면 그때 구해주지 않았을 걸......]
하고 말하는 조소접의 얼굴에는 순간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이
연기처럼 피어 올랐다가 사라졌다.
[내가 조소저에게 별로 죄를 범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이유로 그토록 미워하는지 모로겠읍니다.]
[그것은...... 그것은 말이죠. 당신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미워하는 거에요.]
너무나 사랑한 까닭에 증오로 변했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즉각 이해하지 못한 양몽환은 더 상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꼭 무슨 트집을 잡으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던 길을 되돌아섰다.
그러자 조소접은 제비같이 몸을 날려 다시 양몽환의 앞길을 가로막고 얼굴을
바싹 양몽환에게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슬그머니 화가 난 양몽환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무엇 때문에 앞길을 막는 거요? 너무 사람을 무시하지 마시오!]
그러자 조소접은 화를 내는 양몽환외 태도가 재미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여전히 빈정거렸다.
[어찌 명성이 자자한 당신을 무시하겠어요? 너무하신데......]
그러나 양몽환은 조소접이 어떤 심정으로 하는 말인지, 그냥 노엽기만 했다.
[나는 조소저와 적수가 되지는 못하지만 이토록 조소저가 나를 대한다면 그냥 있지 않겠소.]
[뭐라구요? 가만히 있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양보없이 싸우겠소!]
[흥! 공연히 심하림과 이요홍을 과부로 만들려고요?]
하는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한 줄기의 흰 빛이 눈앞을? 가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뜻밖에도 하림이 나는듯이? 달려와 양몽환과
조소접을 번갈아 보다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 계신 줄 알았으면 찾지 않았을 걸......더구나 조소저와 함께 계신 것을......]
하는 것이었다.
하림의 출현으로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을 짐작한 조소접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무슨 소리죠?]하고 묻는 조소접의 음성은 상상 밖으로 크고 날카로왔다.
그 순간,? 하림은 조소점의 얼굴에 나타난 분노의 기색과 큰 소리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조소저의 무공이 뛰어나기에 함께 계시면 도옥도 덤벼들지 못할 것 같아서 한 말이에요.]
하고는 조소접의 동정을 살피며 하림은 말을 계속했다.
[이 세상에 조소저와 란이 언니만 우리를 돕는다면 겁낼 것이 없을 거에요. 그렇죠?]
하는 말에 조소접은 노했던 마음을 풀었다.?
처음에 하림의 말은 꼭 오해하기? 쉬운 말이었다.
그러나 점차 하림의 말을 듣는 조소접은 자기의 경솔함을 뉘우쳤다.
[그건 모르는 말이에요. 주약란 언니는 원래? 금지옥엽(金枝玉葉)의 몸으로서
무공도 훌륭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요.
나같은 사람이 양상공과 함께 있다고해도 도움이 되진 않을 거에요.]
[아니에요. 조소저는 훌륭해요.]
[나는 성질이 나빠서 마음에 안맞으면 누구든지 죽이거든요.]
그러자 하림은 양몽환과 조소접을 번갈아 보며
근심띄운 얼굴로 양몽환을 불렀다.
[당신 혹시 조소저와 다투셨어요?]
그러나 양몽환은?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림은 양몽환과 조소접 사이에 무슨 언짢은 일이 벌어졌음을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림은 조소접에게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숙였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어요.]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조소접은 자기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무엇 때문에 흘리는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자기도 하림처럼 양몽환을 위해서
두둔하고 사과할 수 있는 그러나 하림 못지않은
애정을 발산할 수 없는 스스로를 생각하고 흘리는 눈물인지도 몰랐다.
자기도 모르게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하림에게 보이고 만? 조소접은
그 자리에 더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곧 냉랭한 음성으로 그러나 조용히 말했다.
[가보세요. 양상공을 모시고 돌아가 주세요.]
갑자기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모르는 하림은 눈물을 흘리는 조소접을 위로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어서 양몽환과 함께 떠나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가겠어요. 그러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그이 때문에 그러신다면 제가 대신 용서를 빌겠어요.]
[필요없어요. 어서 가주세요.]
하림은 하는 수 없이 양몽환의 손을 이끌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노한 듯한 조소접의 심정을 흔들어 놓는다면 그녀의 성질대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일이었다.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조소접의?
심정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착잡했다.
마음이 텅 비인 것같고 일시에 무엇인가를 잃은듯 했다.
한편!
양몽환의 손을 이끌고 조소섭과 헤어져 얼마를 걸어오던 하림은 아무 말도 없이
시무룩한 양몽환은 웃는 얼굴로 불러세웠다.
[왜 그러세요? 싸웠어요?]
그제야 양몽환은 자기가 너무 무뚝뚝하게 하림을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빙긋이 웃어주었다.
[아니...... 우연히 만나게 되어 좀 이야기를 했을 뿐이오.]
[예...... 그런데 어디를 가셨다가 조소저와 만나게 됐죠?]
당연한 물음이었다.
꼭 하룻 둥안을 찾아 헤매던 하림은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기는 하였지만?
무슨 일로 등가보를 비우고 더구나 하림에게까지 알리지 않고 행방을 감추었는지
실로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도 명색이 부부지간인데 말도 없이 행방을 감추는
양몽환의 행동이 야속하고 서운했다.
그러나 아녀자의 몸으로서 부군(夫君)의 일을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이라는
생각이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감추게 했다.
하림이 서운해하고 그리고 만나서 반가와 하는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던 양몽환은
소탈하게 웃으며 지나간 하룻밤의 일을 되도록 소상하게 말해 주었다.
서찰의 사연대로? 십리 밖에 있는 고가(古家)에서 조소접과 도옥을 만난 일과 도옥과의 결투
그리고 승일청의 출현으로 소천의를? 만나러 갔다가 탈출해 오는 길에 다시 조소접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차근차근히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하림의 서운해하는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하나도 숨김없이 말하는 양몽환의 긴 이야기를 듣던 하림은 그제야 눈빛을 반짝이며 활짝 웃었다.
그러던 하림은 금방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양몽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불쑥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군요.]
[그렇게 되다니?]
[그렇지 않아요? 만일 조소저와 도옥이 손을 합친다면......]
그제야 하림이 말하는 큰일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알았다.
[음...... 난 또...... 도옥과 조소저가 힘을 합쳐 강호를 휩쓴다는 말이군......]
[네. 간사하고 흉악한 도옥의 꼬임에 빠져 조소저가 춤을 춘다면 큰일이 아니겠어요?]
사실 옳은 말이었다. 그렇게 되라라는 것을 양몽환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실로 그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아직 어리고 순진하기만 한줄 알았던 하림의 입에서 앞을 내다보는
말을 하는 것에 내심 놀라며 기뻐했다.
<...... 생각하는 것도 많이 달라졌군......>
기특한 생각이 들어 하림이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당신도 이제는 어른이 다 되었구려......]
[어머...... 그럼 언제까지나 어린애로 아셨어요?]
[하하...... 미안하오. 하도 놀라와서 하는 말이오.]
[당신도......]
[그런데 사실 도옥과 조소저의 앞으로의 행동이 걱정되긴 하오.
그러나? 설마 조소저가 도옥과 손을 잡을라구......]
[설마가 뭐에요. 간사한 도옥에게 걸리면 별재간이 없을 거에요.]
[조소저도 이제는 사리를 판단하게끔 되었는데 아무려면 악한과 손을 잡겠소?]
[사람의 마음은 몰라요...... 어떠한 일을 꾸미고 있는지...... 이럴때 주약란 언니라도 있으면......]
[없는 사람을 생각해서 뭐 하겠소.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해야지......]
양몽환과 하림은 서로 손을 꼬옥 쥔채 등가보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동안의 침묵을 깨며 하림이 양몽환을 불렀다.
[?..................]
양몽환을 불러 세워 놓기는 했지만 얼은 말이 나오지 않는지 주저하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무슨 일이오?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그제야 용기를 얻은 듯 하림은 눈을 반짝거린다.
[당신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려도 화내지 않겠어요?]
[무슨 말인데?]
[무슨 말이든. 먼저 화내시지 않는다고 약속해 주세요.]
[허, 참. 그래 약속하겠소.]
그러나 하림은 더 말을 못하고 주저하는 것이었다.
[참, 답답하군. 무슨 말인데 그렇게 힘들어 하오?]
하림은 몇 번 망설이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당신, 조소저와 결혼하시면 안 돼요?]
[뭣?]
펄쩍 놀랄 말이었다.
양몽환은 하림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해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나.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신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니오?]
[아니, 온전해요.]
[온전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단 말이오?]
[화내시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지 않아요?]
[비록 약속은 했지만...... 정신이 없구려......]
[아니에요. 가만히 제 이야길 들어보세요.
당신과 조소저와는 옛날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가 아니에요?
더구나 조소저가 당신을 따르는 눈치도 있고......]
하는 것은 조금 전 조소접의 말과 행동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마음을
하림이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못하는 소리가 없구려......]
[글쎄 들어 보세요. 만일 당신이 조소저와 결혼한다면 조소저도 기뻐할 것이에요.
그리고 이요홍(李瑤紅) 언니도 기뻐할 거에요.]
[두번 다시 그런 말을 하지 마오. 결혼이라니 당치도 않소.]
[아니에요. 꼭 결혼하셔야 해요. 제가 조소저에게 말하겠어요.]
[당신 정말 어떻게 된 것이 아니오? 이제는 정말 못 하는 말이 없구려.]
[그러나 한가지만 더 들으셔야 해요.]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는 하림을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하림의 하는 이야기가 너무나 놀랍고 기막힌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조소저는 도옥과 손을 잡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주약란 언니도 없는?
이때에 당신 혼자의 몸으로서는 그들과 대적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일이지만 당신이 조소저와? 결혼하시면 이것저것 아무 염려도 없지 않겠어요?]
할 말을 잊어버린 양몽환은 하림의 말을 들으며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아예 다시는 입밖에도 내지 마오. 당신까지 나를 그렇게 생각할줄은 몰랐소.]
[.................]
눈을 내려깐 하림은 발끝만 내려나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당신 혼자 생각해낸 것이오? 아니면 다른 누가 말하든가요?]
[저 혼자 생각이에요.]
[혼자?]
[저는 그런 생각하면 안 되나요?]
[안될 거야 없겠지만 너무 당돌한 말이어서 정신이 없구려.]
[그럼, 용서해 주세요.]
[용서고 뭐고 생각할 필요도 없소.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한마디 해야겠소.]
[..................]
[다시는 조소저와 만나지도 마시오.]
[무슨 뜻이죠?]
결혼 이야기를 꺼낼까 해서 하는 말인줄 알았다. 그러나 양몽환이 하는 말은 정반대였다.
[조소저와 나와의 사이가 벌어지는 것 같소. 그렇게 되면 당신도
조소저가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 그래도 당신은 조소저와 친하지 않아요?]
[친하다는 것을 지나서 사실 나는 조소저의 도움으로 몇 번의 죽을 고비에서도 생명을 건졌소.
그러나 그것은 옛날 이야기요.
은혜는 보답해야겠지만 요사이 사태로 보아 당신도 나도 몸조심을 해야 할 것 같소.]
[도옥이 때문이죠? 맞아요. 간사한 도옥이가 조소저를 이용하고 있음이 틀림없어요.]
[누구의 게략에 빠졌든간에 우리는 우리대로? 조심하면 되오.
이후로는 조소저와 따로? 만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예, 알겠어요.]
[그리고 조금 전에 당신이 말한 결혼 이야기도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시오.]
[예......]
[물몬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거고.]
[당신에게 처음 했어요.]
[다행이오......]
그냥 웃어넘길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림은 하림대로 심사숙고해서 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는 일이고 더구나 하림이나 이요홍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천하 무술계를 구해내려는 뜻에서? 생각해낸 것임을 모르는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조소접을 포섭한다는 깃이 양몽환으로서는 도저히 생각도 할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의 뜻은 알겠소.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조소저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으로 친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 인간대사(人間大事)인 결혼을 이야기 할 수도 없는 일이오.
도옥과 조소저가 힘을 합친다는 것도 우리들의 추측에 지나지 않소.
만일 그들이 손을 합친다면 그때는 그때대로 강구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더구나 지금 조소저가 도옥을 따르는 것도 일시적으로 취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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