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16. 고심대사 ( 苦心大師 )의 무공전수/육보 ( 六步 ) 의 활약

오늘의 쉼터 2014. 10. 24. 00:43

16. 고사 ( 苦師 )

 

 

 

조리있게 말하는 양몽환의 말을 듣고 있던 하림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걱정은 없겠는데......]
[그토록 염려할 일도 아니요.

조소저가 당장은 도옥과 손을 잡았다 해도 얼마가 지나면 다시 헤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오.

조소저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누구 한 사람에게 매여 살 여자가 아니오.

지금은 도옥과 손을 잡았다가도 중용(中庸)을 지킬 수도 있는 일이오.

또 어쩌면 예전대로 나를 도와 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
그러나 하림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양몽환의 말에 곧장 호응해 오지 않았다.
[당신의 심정도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리고 당신이 웬만한 사소한 일은 말도 잘 안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아오.

그러나 이번 문제는 생각도 하기 싫소.

차라리 당신에게 무공을 더 가르쳐서 나를 도와주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요]
[그러면 저도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겠어요. 당신이 하라는 대로만 하겠어요.]
하는 바로 그때였다.
서로 이야기에 열중하느라고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고 걸어가는 양몽환과 하림은

언제부턴가 그들 앞에서 합장을 하고 서 있는 두명의 도사와 마주쳤다.
그중의 한 사람은 나이가 거의 칠 십여세 정도로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회색 도포를 입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이제 겨우 십여 세 정도의 어린이가 역시 회색의 도사 옷을 입고 등에는 자기의 머리보다

더 큰 듯한 목탁을 메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모아쥐고 합장하는 노승을 발견한 양몽환은 우선 합장의 답례로 주먹을 쥐고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노승은 천천히 한 걸음 다가오며 또 한번 합장을 하는 것이었다.
[바쁘신 걸음을 멈추게 해서 미안하오마는 당신이 바로 양몽환 대협이 아니시오?]
뜻밖의 장소에서 한번 면식도 없는 노승으로부터 양몽환 대협이라고 불리움을 받은 양몽환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바로 제가 양모(楊某)입니다. 선사(禪師)님은 누구신지요?]
그러나 노승은 양몽환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옆에 서 있는 어린 중을 바라보며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수 백리를 걸은 보람이 있구나...... 바로 이분이 양몽환 대협이시란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무슨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노선사님은 어디서부터 오시는 길이신지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오. 양대협을 찾아 한달 동안을 헤매었소.]
점점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만, 어떤 까닭으로 저를 찾는지요?]
[가만 있소. 이제야 대협을 만나고 보니 기운이 빠지는것 같소. 어디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널찍한 바위가 있었다.

족히 대여섯 명은 앉아 쉴 수 있었다.
[오. 저기 바위가 좋겠군. 그쪽으로 갑시다.]
양몽환을 돌아보지도 않고 먼저 휘적휘적 바위를 향하여 가는 것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또 이름이 무엇이고 무슨 이유로 한 달 동안을 찾아다녔는지

알 길 없는 노승의 뒤를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옆에 서 있는 하림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림 역시 이상한 눈빛으로 노승을 바라보고 있다가 양몽환의 시선과 마주치자

생긋 웃으며 앞서가는 노승을 턱으로 가리킨다.
[무슨 일일까요?]
[글쎄...... 하여간 나를 찾아온 사람이니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소?]
언뜻 보아도 양몽환이나 하림을 해칠 사람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달 동안이나 양몽환을 찾아 헤맸다면 무슨 일인지 중요한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이때, 바위를 향하여 휘적휘적 앞서 걸어가는 노승의 태도는 양몽환이야 따라오든 말든,

아니 당연히 따라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더욱 양몽환을 어리둥절케 했다.

그러나 초면인 노승을 만난다는 것은 비록 도를 닦은 중이라 하지만 얼마간의 방비태세는 취해야 했다. 내공을 조절하고 운기 조식한 뒤 하림의 손을 잡고 노승의 뒤를 따랐다.
생각보다 바위 위는 넓고 편편해서 앉기도 좋았다.
노승과 대좌한 양몽환은 무슨 말이 떨어지려는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노승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윽고 노승은 하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소저는 뉘시오?]
하고 묻는 말에 하림보다 먼저 양몽환이 대답했다.
[네, 저의 처입니다.]
[하, 그렇든가요? 실례가 많소이다.]
[노선사님께서 무슨 긴요한 말씀이 계신지 제 처가 있어도 되겠읍니까?]
[무슨 말씀을...... 상관없소이다. 도리어 이 빈도의 실례가 많소.]
그러면서도 노승은 좀처럼 긴요한 말을 꺼내지 않고 양몽환을 차근차근히 살펴 보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속히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한달 동안 찾아다니던 사람같지 않게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이

오히려 양몽환 편에서 조급한 생각이 들었다.
[노선사님께서는 무슨 일로 저를 찾아다니셨는지요?]
그러나 노승은 금방 대답하지 않고 얼마 동안 양몽환을 주시하고 있다가 하는 말이

기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양대협! 미안하오만 손바닥을 펴보시오.]
[예?]
[손바닥을 좀 펴보라는 말이오. 내장이 상한 것 같소이다.]
순간, 양몽환은 가슴이 뜨끔했다.

사실 도옥과의 일전으로 내장에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승일청을 따라 소천의를 만나러갔던 일을 생각했다.
[속히 펴보시오.]
[그보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아하...... 고집이 세군...... 하여간 손바닥을 펴보시오.]
할 수 없이 양몽환은 노승의 말대로 손바닥을 펴보였다.
그러자 노승은 양몽환의 손바닥에 자기의 손바닥을 대고 밀착시키는 것이었다.
[우선 양대협의 상처부터 치료하고 이야기합시다.]
그제야 노승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승은 웅후한 내공을 지녔는지 양몽환의 손바닥에 자기의 손바닥을 밀착시키고 운기를 조식하자

잠시 후에 뜨거운 기운이 양몽환의 손바닥을 통해 온 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마에서는 뜨거운 땀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이었다.
[자, 이제는 팔을 움직여 보시오.]
양몽환의 손바닥에서 자기의 손바닥을 떼며 노승이 하는 말에 양몽환은 그대로 팔을 움직여 봤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온 몸이 뜨거워지며 내장의 상처가 거뜬하게 낫는 것이 아닌가!
[노선사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아니오.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오.

이 빈도가 양대협을 볼 때 어딘가 병색(病色)이 있는 것 같아서 해본 일이오.]
[네, 사실 약간의 상처를 입었읍니다.]
[과연 이 빈도의 눈이 정확하군...... 그럼 됐소.]
[그런데 노선사님은......]
[잠깐 계시오. 이제 이 빈도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무슨 말씀이든지 듣겠읍니다. 그런데 노선사님의 고명(高名)을 아직 여쭈지 못했읍니다.]
[그렇군! 이 빈도의 이름은 고심대사(苦心大師)라 하오. 이름이 좀 괴로운 이름인 것 같지 않소?]
[그렇군요. 고심대사님!]
[마음이 괴롭고 쓰다는 뜻이지요. 원래 인간 세상이 괴로운 것 아니겠소!]
[옳은 말씀입니다. 고심대사님.]
[헛...... 허...... 그래서 이 빈도가 양대협을 찾아 한달 동안 오천 리 길을 헤매었소.]
무슨 말인가 꼭 긴요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도 바로 이야기하지 않고 서론(序論)이 길어

양몽환은 초조하기만 했다.
[이 미련한 자를 그토록 고생하시며 찾으셨다니 황송하고 부끄럽습니다만 무슨 일로 저를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아, 그것은 한가지 부탁이 있기 때문이오.]
[부탁?]
[그렇소. 이 빈도의 부탁을 실행해 줄 사람은 이 천하에 양대협 말고는 없을 것 같아

천리길을 고생하며 찾았소.]
[그러시다면 퍽 중대한 부탁이신 모양인데 미련한 제가 노선사님의 뜻을 받들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겸손의 말이오. 강호에 양대협의 명성이 자자한데 어찌 겸손하시오.

과연 인덕(人德)이 있고 도량(道量)이 넓다더니 바로 맞는 말이군!]
[부끄럽습니다. 모두 저를 아껴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소. 이 빈도의 눈도 사람을 볼줄 아오. 귀인과 속인을 가릴 줄 안단 말이오.]
[황송합니다. 그런데 부탁이란 것은 무엇인지요?]
[양대협께서 꼭 이 빈도의 부탁을 들어주리라 믿고 하는 말이오.

부탁이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빈도의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이오.]
[원수요? 어떤 사람입니까? 그 원수가.]
[양대협한테는 별로 대수로운 사람이 아니오만 이 빈도는 이미 늙어 서천(西天)으로

귀의할 날짜가 멀지 않았소.

그래서 양대협이 이 빈도의 원수를 대신 갚아 달라는 것이오.]
[그 원수가 어디에 있읍니까?]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오만 이름을 들으면 알 것이오?]
[저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렇소. 바로 왕한상(王寒湘) 그놈이오.]
[네? 왕한상!]
순간, 가늘게 외치며 양몽환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럴 줄 알았소. 분명히 왕한상이오. 꼭 원수를 갚아주시요.]
[노선사님은 왕한상과 어떤 은원(恩怨) 관계가 있으십니까?]
[그것은 차차 알게 될 것이오. 그보다 우선!]
말을 끊은 노승은 품 속에서 손바닥만한 책자를 꺼내 양몽환에게 건네어 주었다.
[그 책자를 소중히 간직하시오. 이 다음 요긴히 쓰일 때가 있을 것이오.]
[무슨 책자입니까?]
[그것은 지금 말해드릴 수 없소. 하여간 간직해 두시오.]
양몽환은 정중한 태도로 고심대사로부터 책을 받아들고는 그 책자를 내려다 보았다.
비단 헝겊으로 표지를 씌운 책자에는 아무 것도 쓰인 글자가 없었다.

다만, 상당히 얇은 종이가 몇 장 비단실로 꿰매져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품 속에 넣었다.
[감사히 받겠읍니다.]
[감사할 것까지는 없소.

그러면 이 빈도가 삼 십여년 동안 연구 터득한 무공을 양대협에게 전수하겠소.]
이때, 양몽환은 무엇인가 일이 잘못 꼬여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노승이 말하는 왕한상은 너무나 잘 아는 구적(舊敵)이다.

그러나 노승과 어떤 은원 관계가 있으며 하필이면
양몽환 자기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비단 표지의 책자를 주고 삼십 년간 노력 연구하고 터득한 무공을

가르쳐 준다는 노승을 재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늙은 여우에게 홀린 모양인데......>
하면서도 한편, 끝까지 노승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노선사님께서는 삼십여 년간 연구 터득한 무공을 어찌 오늘 이 짧은 시간에 저에게 전수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사실이었다.

귀원비급에 기재된 무공 한 가지만 해도 몇 달씩? 걸려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승이 삼십 년간 연구한 무공이라면 그 무공도 무공이지만 얼마나 긴 세월 동안을 보내며

연구한 것인가.

그것을 단 몇 시간 동안에 전수시켜 준다는 말이 양몽환에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자 노승은 태연했다.
[어려울 것이 없소.]
[노선사님께서는 어떤 비법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저의 좁은 생각으로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럴 것이오. 속세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일이 허다하니까요.

그러나 우리 불가(佛家)에서는 전신지술(傳薪之術)이란 것이 있어서 아무리 웅후한 무공이라도

단 몇 시간 내에 터득시킬 수 있소.]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전수하시겠다는 무공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것은 화공대법(化功大法)이라는 것이오. 그럼, 시작해 보도록 합시다.]
하고는 양몽환을 일으켜 마주 바라보고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노승이 몸을 움직여 양몽환에게 무공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수법은 열개의 손가락에서부터 손바닥, 손등, 팔을 거쳐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각 부분을 움직여 적을 공격하는 수법이었다.
그것은 아직 양몽환이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무공이었다.

별로 대단한 것 같지도 않으면서 노승을 따라 손과 발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온 몸에 기운이 뻗치며

땀이 줄줄 쏟아지는 것이었다.

처음에 쉽게 생각하고 노승을 따라 무공을 배우던 양몽환도 근 한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그것이 얼마나 오묘하고 심오한 무공인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해가 중천에 있을 때부터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 일곱가지의 무공을 배웠을 때는

어느덧 해도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삼십 여년 동안 연구 터득한 무공을 단 몇시간 동안에 양몽환에게 전수한 것이었다.
연습을 끝내고 흘러내린 땀을 닦는 고심대사는 늙은이답지 않게 기력이 좋았다.

오히려 양몽환이 지친 느낌이었다.

잠시 동안 피로한 몸을 쉰 고심대사는 그때까지도 눈을 감고 운기 조식하고 있는

양몽환의 뒤로 돌아가 그의 두 손목을 끌어당겨 잡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은 두 손목이 떨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펄쩍 뛰었다.
이때, 양몽환이 운기 조식하느라고 눈만 감지 않았던들,

그리고 갑자기 뒤에서 끌어잡지만 않았던들 노승의 손아귀에서 잡힌 손목을 빼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나 단단히 쥐었는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노선사님 웬일이십니까?]
그러자 노승은 더욱 힘을 주어 양몽환의 손목을 쥐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고 더구나 전혀 생각도 못하던 중에 당한 일이었다.

꼼짝달싹할 수 었었다.

손목이 잡힌 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노승의 손아귀에서 손목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아픔이 차차 가시면서부터

온 몸이 펄펄 끓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듯한 일이었다.

몸이 뜨거워지면서 힘이라는 힘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빠져나간 듯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순간, 하림은 양몽환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달려들려고 했으나 노승의 부릅뜬 눈에 몸이

오싹하더니 맥이 탁 풀리는 것이었다.

손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된 몸에 기운이 빠진 하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혼미해지는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데 노승의 위엄있는 음성이 터져나왔다.
[부인께서는 아무 염려마시고 그대로 앉아 계시오.

지금 양대협은 이 빈도의 진기를 모두 몰입받고 있는 중이오.

염려마시고 속히 조식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맥이 탁 풀리고 정신이 혼미한 하림으로서는 손 하나 써 볼 도리가 없었다.
한편, 양몽환은 어찌된 셈인지 노승이 눕히는 대로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양몽환 역시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다만 숨쉬는 기색만이 눈에 보였다.
이때, 역시 노승은 하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양대협같이 훌륭한 분은 이 빈도의 부탁일지라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그것을 염려해서 지금 이 빈도의 진기를 모두 몰입시켜 이 빈도의 뜻을 성취시키도록 하려 함이오.

이제 이 몸에 있는 진기를 양대협에게 모두 몰입시키면 그것으로 이 빈도는 한많은 속세를 떠나

서천(西天)으로 귀의하게 되는 것이오.

이 빈도는 원래 중생을 구하려고 무공을 닦았소.

그러나 뜻밖에 왕한상을 만나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소.]
하고는 말을 잠시 끊고 주위를 둘러보던 노승은 다시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여기 양대협은 천하의 무술인일 뿐 아니라 백성들까지도 존경하고 있는 분이오.

이렇게 훌륭한 양대협에게 이 빈도의 무공을 전수하고 또 진기를 몰입시키면

이 빈도가 못다한 중생 구제의 대업(大業)을 계승할 것이라 믿소.]
혼미해졌던 하림은 차차 정신이 들고 몸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만큼 고심대사의 무공은? 날카로운 시선 하나로도 능히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완전히 정신이 깨어난 하림은 가만히 고심대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럼, 부인 잘 계시오. 이 빈도는 서천(西天)으로 갈 길이? 바쁘오.

이제 잠시 후면 양대협이 눈을 뜰 것이오.

그러면 몸을 움직이지 말고 한 시간 동안 운기 조식하라고 이르시오.]
하고는 옆에 있는 나이 어린 소사미를 한참 바라보고는 다시 하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 어린 놈을 부탁드리겠소. 수고스럽지만 잘 보살펴 주시오.]
한 후, 고요히 눈을 감고 말았다.
그제야 급히 달려온 하림은 이미 숨이 끊어진 고심대사 앞에서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한편!
고심대사의 진기를 몰입받고 정신을 잃었던 양몽환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는 양몽환의 시야에는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어린 소사미와 하림이 누워 있는 고심대사 옆에서 조용히 머리를 숙인채 울고 있는 것이었다.
[............]
허무한 일이었다.
고심대사의 손아귀에서 잡힌 손목을 빼려다 깜박 정신이 나간 그 사이에 일은

너무나 놀라운 사태로 변해 있었다.
더구나 달려온 하림이 말도 못하게 하고 한 시간 동안 조용히 운기 조식하고 있으라는 데는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하림의 말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운기 조식하고 있기에는 사태가 너무나도 놀라왔다.
[그래도 어떻게 된 곡절인지 말해주요.]
아무래도 순순히 조식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양몽환의 놀라운 표정을 보며 하림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심대사가 임종하기 전에 남긴 말을 자상하게 옮겨주었다.
[...... 그래서 당신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운기 조식하고 여기 소사미를 돌봐 달라는

부탁이 있었어요.]
양몽환은 펄쩍 놀라 급히 고심대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가슴을 풀어 헤치고 귀를 대보고 맥을 짚어 보았다.

그러나 기사회생의 명약이 있다해도 이미 싸늘해진 고심대사의 심장을 뛰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처절하고 기막힌 일이었다.
[그러면 나에게 진기를 몰입시켜 주고 끝내 돌아가셨다는 말이오?

아! 이 양몽환이 도대체 얼마나 노선사님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스스로를 희생하시면서까지

진기를 몰입시켰단 말이오?]
울부짖듯 외치는 양몽환을 붙잡고 하림은 애원했다.
[제발 진정하세요. 이러시면 당신도 위험해요.]
울며 부르짖는 하림도 아랑곳없이 양몽환은 싸늘하게 변한 고심대사를 흔들며 흐느꼈다.
[노선사님...... 노선사님...... 길이 노선사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읍니다.

평안히, 평안히 쉬십시요.]
흔들고 불러봐도 이미 고심대사의 혼은 서천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대답도 없고 눈도 뜨지 않았다.
<아! 중생을 구하고 원수를 갚고...... 이 크나큰 일을 나에게 맡기고 떠나시다니......>
대업을 계승해서 고심대사의 혼을 위로해 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생명이 끊어진 시신 앞에서 애통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 노선사님의 유언대로 어린 소사미까지도 힘껏 돌봐주는 것이 명복을 비는 길이다!>
속으로 다짐한 양몽환은 바위 밑에 깊은 구멍을 파고 고심대사를 반듯하게 눕혔다.
그리고 하림과 소사미를 불러 셋이 함께 서천으로 떠난 고심대사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올렸다.
처음에는 될수록 부드러운 흙을 뿌리고 차차 흙을 다져 무덤을 만들고 손을 털었다.
그러자 하림이 근심스러운 얼굴을 돌렸다.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드려요.]
그러자 양몽환은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숭고한 넋을 위로해 드리는 뜻에서라도 비석 생각을 했지만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세울 비석이 아닌 것 같소.

이 다음 세월이 흘러가 고심대사의 큰 듯이 천하에 알려지면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이

다투어 비석을 세울 것이오.

중생을 구하려다 못다하고 떠나는 고심대사를 나같은 속인이 위로할 일이 못되는 것 같소.]
하림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양몽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는 운기 조식하세요. 저와 소사미가 지켜드리겠어요.]
[알았소.]
심각하고도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양몽환은 아직도 울고있는

소사미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었다.
[울지 말아라. 이제 대사님은 아무 고민도 없이 평안히 쉬게 되었어.

너는 내가 힘껏 보살펴 주마.]
소사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울고 있었다.

고심대사와 소사미가 어떤 관계인지 모르지만?

슬피 우는 어린 소사미를 바라보는 양몽환의 마음도 괴로왔다.
이때, 하림이 소사미를 꼭 껴안으며 무슨 말인가 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사미는 눈물을 씻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 다정한 하림의 위로가 주효한 것 같았다.

소사미의 눈물을 손수 닦아준 하림은 양몽환을 불렀다.
[속히 조식하세요. 대사님이 꼭 운기 조식하라고 하셨어요.]
하는 말에 양몽환도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바위 위에 단정히 앉아 운기 조식에 들어갔다.

 

 

 

 

 

 

17. 육보 ( 六步 ) 의 활약

 

양몽환이 운기 조식에 몰입한지도 거의 한 시간,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운기 조식하는 양몽환을 지켜보고 있던 하림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것은 그녀가 일찌기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정좌하고 운기 조식하는 양몽환의 몸이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는듯 하더니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부터 당장 쓰러질듯이 요란하게 몸을 떠는 것이었다.
아무리 심한 중상을 당한 후 운기 조식을 취해도 몸을 떠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하림의 눈에 보이는 양몽환의 몸은 너무나 격렬하게 떠는 것이었다.

마지 중병에 걸려 자기도 억제하지 못하고 떠는 사람처럼 떨고 있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마에서는 비오듯 땀이 흘러 얼굴을 온통 땀으로 적시는 것이었다.

혹시 무슨 잘못된 곳이라도 있는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양몽환을 지켜보던 하림은

우선 줄줄이 흘러내리는 땀이라도 씻어주려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하림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는지 조용히 말하는 양몽환이었다.
[건드리지 마시오. 그냥 내버려 두시오.]
순간, 하림은 멈칫 서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며 속으로 기원했다.

<마(魔)가 들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나 갈수록 양몽환의 용태는 사색(死色)이 완연했다.

설마 고심대사가 악수(惡手)를 써서? 양몽환을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너무나도 괴롭게 떠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는 없었다.

당장 달려가 몇 곳의 요혈을 짚어 고통을 덜어주고는 싶었지만 양몽환의 말대로 접근하거나

건드리면 실로 무서운 불행이 뒤미처 따른다는 것을 하림은 무술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무아의 경지에서 운기 조식하고 있을 때 소란을 피우거나 손을 대면

운기 조식하던 사람은 마(魔)가 들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구나 무아의 경지를 넘어서 전신을 떨고있는 양몽환을 건드린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친듯이 몸을 떨던 양몽환이 이번에는 한층 더 악화되어 팔을 내젓는가 하면 발을 굽혔다 오무렸다

하다 끝내 바위 위에 쓰러져 몸을 비틀며 괴로와 하는 것이었다.

하림은 겁이 덜컥났다.

손은 쓸 수 없고 그렇다고 괴로와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에는 너무나 마음이 괴로왔다.

그런데다 설상가상으로 주위를 지켜보고 있던 소사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까지 들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안 된단 말이에요. 못가요......]
일장 밖에서 흑의의 괴한과 마주선 소사미가 괴한의 앞 길을 막으며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장 달려가 괴한을 쫓고 싶었지만 그 동안에 양몽환이 어떻게 될까 염려스러워

자리를 뜰 수도 없는 하림은 안절부절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했다.

만약 그 괴한이 지금 운기 조식하며 몸을 비트는 양몽환을 다치기만 하면 모든 것은

끝장이 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든지 접근을 막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흑의의 괴한은 앞 길을 막고 못가게 하는 소사미를 노려보다 장검을 뽑아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으악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하림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다급한 중에서도 하림은 뛸듯이 기뻤다.

그것은 괴한의 장검을 용이하게 피한 소사미가 괴한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 나오다 돌아서며
발길로 괴한의 엉덩이를 두발차기로 걷어차는 것이었다.
그러자 괴한은 엎어질듯 앞으로 몇 걸음 허겁지겁 달려가다 그대로 장검을 거두며 도망가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림은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조그만 소사미가 놀라운 재간을 지녔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었다.
<......고심대사의 제자는 과연 다르군......>
속으로 감탄을 연발하며 급히 소사미에게로 달려가 그의 손을 쥐어주었다.
[놀랬어. 언제 그런 솜씨를 익혀 두었지?]
그러나 소사미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뒤통수를 긁으며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주머니를 양부인이라고 불러도 돼요?]
하림은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럼, 되고말고...... 그런데 네 이름은 뭐지?]
[저요? 육보(六步)라고 사부님이 불렀어요.]
[응...... 육보...... 참 좋은 이름이구나. 고심대사님이 지어 주셨니?]
[네, 사부님이 지어 주셨어요. 육보라구.]
[무술도 가르쳐주고?]
[네, 그렇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이 다음에 많이 가르쳐 준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그만......]
완전무결한 무공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고심대사는 유명을 달리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하림과 육보가 바위 위로 돌아왔을 때는 또 다른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 미친듯이 몸을 뒤틀며 떨던 양몽환이 겨우 숨만 붙어 있을 뿐,

거의 시체와 다름없이 손발이 차고 말도 하지 못했다.
일은 점점 뜻밖의 사태로 번지고 있었다.

양몽환의 몸에 귀를 대어보고 맥을 짚어보고 하던 하림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찌된 일일까? 고심대사가 악수를 썼을까. 아니면 진기의 몰입이 지나치게 격렬했을까......>
도저히 하림의 손으로는 식어가는 양몽환의 몸을 회생시킬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양몽환 스스로 운기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더더욱 초조하고 안타까왔다.
<주약란 언니라도 있었으면......>
했으나 그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옳지...... 고심대사의 운기 조식하는 방법이 혹시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자 하림은 다급히 육보를 불렀다.
[육보야. 너의 사부님도 운기 조식하실 때는 몸을 떨며 괴로와 하시더냐?]
그러자 육보의 대답은 기대 밖이었다.
[아뇨. 단정히 정좌하시고 계셔요.]
<호! 그러면......>
하는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주위가 소란해지며 칠 팔명의 괴한이 각기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조금전 육보의 발길에 쓰러질듯 도망간 자의 밀고로 이 흑의의 괴한들이 달려드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림은 땅이 꺼질듯이 한숨을 쉬었다.

낭패였다.

예전 같으면 양몽환이? 옆에 있어 두려운 것 없이 마음 든든히 대적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양상이 크게 달랐다.

오직 옆에 있다는 사람은 육보 하나 뿐이고 의지가 되던 양몽환은 수족이 싸늘한체

가사(假死) 상태에 있을 뿐이다.
몇 번 다시 생각해도 그들과 마주서서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뿐인 생명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었다.
순간, 하림은 도망가기로 결심했다. 양몽환을 괴한들의 장검에 죽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든지 양몽환을 품에 안고 달릴 수 있는데까지 달려 힘에 부치면 양몽환을 안은채

함께 죽으리라 결심했다.
번개같이 양몽환을 품에 안은 하림은 주저 주저하는 육보를 돌아보며 다급히 말했다.
[육보야, 힘껏 뛰어!]
하고는 경신술을 이용하여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직 나이가 어려 경신술을 배우지? 못한 육보는 제대로 하림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육보를 적들에게 남겨두고 달릴 수는 없었다.

그만큼 하림은 어린 육보에게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애쓰며 뒤에 처져 달려오는 육보를 기다렸다 뛰고 또 기다렸다 뛰는 것은 비록 하림이

경신술의 재간이 있다해도 결국 육보가 뛰는 속도밖에 더 달릴 수 없는 것이었다.

점차 적들과의 사이가 좁혀지고 거의 이장(二丈) 정도로 간격이 좁혀지고 말았다.
어린 육보와 가사(假死) 상태의 양몽환을 안은 하림에 비해 뒤쫓아 장검을 휘두르며 질풍같이?

 달려오는 괴한들은 하나같이 기골이 늠름한 젊은이들이었다.

애초부터 적수가 아니었다.

그래도 하림이 뛰어 달린 것은 최후의 일각이라도 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그래서 목숨을 구하려는 그 한가지 목적 뿐이었다.

그러나 뒤쫓아 오는 괴한들과의 거리가 이장으로 좁혀진 다음에는 새로운 각오가 필요했다.
<할 수 없다. 여기서 죽기를 결심하고 놈들과 싸울 수밖에!>
이렇게 결심한 하림은 급히 주위를 살폈다.

양몽환을 눕혀 놓을만한 장소를 찾으려는 심산이었다.

그러자 다행히도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천연적으로 생겨난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육보야! 저기 동굴까지만 가자!]
그리고는 먼저 몸을 날렸다.
동굴은 양몽환을 눕히기에는 아주 적당했다.

되도록 조심히 양몽환을 눕힌 하림은 동굴 문을 막아서며 장검
을 뽑아 들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육보는 하림의 얼굴에서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결심의? 빛을 보았는지 조그만 주먹을 움켜쥐며 눈을 똑바로 뜨는 것이었다.
그 순간, 뒤미처 달려온 흑의의 괴한들은 거의 열 발자국의 거리를 두고 에워싸듯하며

각기 장검을 뽑아드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중앙에 칼자루가 유난히 넙적한 장검을 비껴 잡은 거한이 두목 같았다.

까만 턱수염을 기르고 머리에는 역시 까만 헝겊으로 질끈 동여맸다.?

보기에도 흉악한 얼굴이었다.

괴한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동굴을 막아선 아리따운 여자와 십여세의 아기중을 노려보는? 괴한들은

상대가 너무 미약한데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놀라는 표정이 아니라 저절로 웃음이 터지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앙에 버티고 서 있는 두목은 가소로운지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당신이 심하림이라는 사람이오?]
그러자 하림도 지지않고 쏘아붙었다.
[그래요. 당신은 누구죠?]
[나의 별명은 무적신도(無敵神刀)라 하고 이름은 곽대천(郭大川)이라는 사람이오. 들어본 일이 있소?]
[없어요!]
여유를 두지 않고 뱉듯이 말했다.
[그럴꺼요. 양대협은 명성이 자자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이 무적신도야 아는 사람이 있겠소?

이번 기회에 나의 이름을 똑똑히 알게 해드리겠소.]
[얼마든지. 두렵지 않아요.]
[흥! 두렵지 않다구? 으하핫......]
통쾌하게 웃는 곽대천은 표정을 굳히며 정색했다.
[원래 이 곽대천은 놀라운 무공을 한 수 전수받고자 했는데 보아하니 상처를 입은 모양이군! 할 수 없지.
부인의 무술이라도 한 수 가르침을 받을까 하오.]
[누가 상처를 입었다는 말이오?]
[아따. 상처를 입지 않은 다음에야 양대협이 무슨 지랄로 부인의 품에 안겨 있겠소.

하여튼 여복이 많단 말야. 으하핫......]
[무례한 놈......]
[뭐라구?]
험상궂은 표정으로 바뀐 곽대천은 옆에 서 있는 두 명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와 함께 곽대천의 손이 신호였는지 두 명의 괴한이 각기?

검광을 번쩍이며 장검을 휘둘러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때, 하림도 이미 각오한 몸, 두려울 것이? 없었다.

맞받아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나가는 하림을 급히 가로 막는 사람이 있었다.
[양부인! 저에게 맡기세요!]
아기중 육보였다.

육보의 외치는 소리에 하림이 멈칫 돌아서는 사이에 육보는 달려드는 두 명의 괴한과 마주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괴한이 휘두르는 장검을 용하게 피하며 괴한의 두 다리 사이로 쏘옥 빠져나가다 돌아서면서

발길질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건? 또 너무 맹랑하게 괴한이 무릎을 꺾으며? 풀썩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동료가 맥없이 쓰러지자 같이 장검을 휘두르던 괴한은 한칼에 박살을 내려는 심산으로

높이 들었던 장검을 육보의 머리를 향하여 내려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먼저와 똑같은 방법으로 휘두르는 장검을 피해 두 다리 사이로 빠져나온

육보는 역시 두 발을 함께 들었다 맘껏 걷어차는 것이었다.
그러자 괴한은 허리를 폈다 구부리며 쓰러진 동료 위에 맥없이 엎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실로 순식간에 두 명의 부하를 잃어버린 곽대천은 눈썹이 여덟 팔자로 벌어졌다.
[핫! 조그만 중놈의 새끼가 재간을 피워?]
우악스럽게 소리 지르고는 또 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

그와 함께 이번에도 두 명의 괴한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함께 뭉쳐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쪽으로 갈라서서 달려드는 것이었다.
순간, 하림은 왼편으로 달려드는 괴한을 향해 장검을 휘둘러 일단 물러서게 하고

급히? 육보를 돌아보자 육보는 먼저와 똑같은 방법으로 괴한의 두 다리 사이를 빠져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하림의? 장검을 피해 몇 걸음 물러섰던 괴한이 선수를 바꾸어 마악 두 다리? 사이를 빠져나오는 육보의 머리를 겨누고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기겁하듯 놀란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절규하며 땅을 박찼다.
[조심해! 육보야!]
그러면서 전광석화와 같이 달려가 허공으로 치켜든 괴한의 장검을 후려 갈겨

일장 밖으로 장검을 날려보내며 뒤이어 괴한의 등을 노리고 힘껏 장검을 휘두르고 말았다.
한편, 그와 똑같은 시간에 괴한의 두 다리 사이를 교묘히 빠져나온 육보의 발길에 맞은 괴한이

엎어지는 것과 하림의 장검에 왼 팔이 떨어져 비명을 지르는 시각은 거의 똑같은 시간이었다.
[어이쿠......]
[아- 악-]
두 명의 괴한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하림과 육보는 재빨리 몸을 돌려 동굴 입구로 되돌아와

다음의 괴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곽대천은 분통이 있는대로 다 터졌다.

보잘것 없는 중놈의 새끼에게 부하 네 명이 땅에 코를 박은 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급히 한쪽 손을 들어 나머지 두 명의 부하를 달려나가게 하고 곽대천 자신도 땅을 박차는 바로 그 찰나!
어디서 나타났는지 온 몸을 백의(白衣)로 감싼 네 명의 여자가 장검을 하나씩 메고는 귀거리 소리도

낭랑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순간, 하림과 육보는 싸우는 태세를 고쳐 그녀들을 주시했다.

이때 역시 달려들던 곽대천과 두 명의 괴한도 주춤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그러나 네 명의 소녀는 하림이나 곽대천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여자들의 태도는 주위의 사태에는 아랑곳도 없다는 듯이 아니면 주위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듯이 이야기에만 열중하며 걸어오는 데는 하림의 눈이 둥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안면이 있는 여자들도 아니고 보면 그녀들의 태도는 더욱 수상했다.

네 명의 괴한이 쓰러져 있고 또 양쪽으로 대치하고 있는 하림과 곽대천을 먼빛으로라도 보았으련만

그녀들의 표정은 너무나 태연하고 담담했다.
순간,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먼빛으로도 그랬지만 거의 하림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네 명의 여인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얼굴들이었다.
하림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곽대천과 하림이 대치하고 있는 중간 지점을 거의 지나칠 무렵,

실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토록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이야기에 열중하며 하림과 곽대천?

앞을 돌려 지나가던 네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지며 일제히 등에 메고 있던

장검을 뽑아드는 것과 동시에 몸을 돌려 곽대천을 비롯한 두 명의 괴한에게 벼락같이 달려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든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두어걸음 물러서며 눈을 크게 떴다.
그보다 더더욱 놀란 사람은 곽대천과 두 명의 부하였다.
틀림없이 스쳐 지나갈줄 알았던 네 명의 여인이 돌변하여 장검을 들이대자

혼비백산한 괴한들은 그대로 자빠질듯이 뒤로 물러나며 곽대천에게로 바싹 달라붙었다.
그러자 네 명의 여인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듯한 여인이 장검을 휙휙 휘두르며

곽대천에게로 턱을 올렸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생명이 아깝거던 돌아가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어린 육보의 발길질에 부하 네 명이 쓰러져 분통이 터질 노릇인데

지나가던 행인까지 괄시하며 딱딱거리는 데는 배알이 뒤집혀 기절할 노릇이었다.
[뭣이 어째? 요망스러운 년!]
[호...... 호...... 생긴대로 무례한 작자군!

생명이 아깝거던 돌아가라는데 곱게? 돌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큰 소리야?]
여인도 만만지 않았다.

그러나 곽대천은 이대로 돌아간다면 자신의 모가지가 온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곽대천은 도옥의 부하로서 양몽환을 사로잡아 오라는 명을 받고 부하 여섯 명을 데리고

하림을 따라온 것이다.

그런데 양몽환을 잡기는 고사하고 나이 어린 소사미의 발길질에 네 명이 나가 떨어졌다면

볼장 다 본 것이다.
목을 떼 놓고라도 양몽환을 사로잡아야만 떨어진 목을 붙일 수 있는 형편이었다.
[도대체 뭣들하는 년들인지 가던 길이나 갈 일이지 뭣이 어쨌다고 칼을 휘두르며 큰 소리야.

되지 못한 년들!]
[저 작자 찢어진 입으로 잘 주절대는구나. 보아하니 도옥이란 자의 졸개 같은데,

목이나 붙여? 살려보내려고 했는데 안되겠어!]
하고는 소매를 걷어 올리는데 드러난 흰 살결에 파란 핏줄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는 번개같이 곽대천의 목을 노리고 몸을 날렸다.

순간, 나머지 세 명의 여인도 한결같이 장검을 휘두르며 두 명의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꽃봉오리에 나비가 않으려는듯 아니면 춤을 추며 꽃밭 위를 날으는 나비처럼

아름다은 자태의 여인이 그 풍만한 육체를 가볍게 움직이며 하늘 가득히 검화(劍花)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다시 치열한 싸움터로 변한 일대 주위에는 돌과 먼지가 날으는 대신

네 명의 여인이 풍기는 향긋한 살냄새가 은은히 퍼져나갔다.
뜻밖에 네 명의 여인을 만난 곽대천과 두 명의 부하는 어느 누구를 겨냥하고

장검을 날려야 할지 갈피를 잡치 못하고 쫓기기만 했다.
그러자 곽대천만은 두목답게 후퇴하는 부하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열심히 장검을 휘둘렀다.

지금 곽대천이 휘두르고 있는 장검은 보통의 장검보다 세배 정도는 크고 또 무게도 무거운 장검이었다. 이 곽대천의 장검에 한번 맞았다 하면 예리한 칼날도 칼날이지만 우선 그 장검의 무게에 짓눌려

박살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네 명의 여인은 추호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보조를 맞추며 전진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뿐만이 이니었다.
네 명의 여인이 휘두르는 장검은 한곳에 어울려 섞여 돌아가는 것이어서 어느 누구의 장검이

검광을 일으키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치 한 사람이 네 자루의 장검을 휘두르는 것 같기도 하고 네 명의 여인이 한 자루의 장검을

휘두르는 것 같기도 해서 장검의 주인을 알아 볼 수 없었다.
네 자루의 장검이 풍차처럼 섞여 돌아가는 대는 곽대천도 두 명의 괴한도 눈알이 홱! 돌아가는지?

엉거주춤 장검을 겨누고 어느 누구를 적수로 삼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네 명의 여인은 조금도 여유를 두지 않고 그대로 검광과 검화를 일으키며

일제히 밀물처럼 괴한을 휩쓸고 말았다.

순간! 검광과 검화가 자욱한 검진(劍陣)속에서 목을 보존한채 빠져나온 사람은 곽대천

하나뿐 두 명의 괴한은 파르르 다리를 떨다가 그대로 쭉 뻗어버리고 말았다.
어느 여인의 장검에 쓰러졌는지조자 모르고 겨우 검진 속에서 빠져나온 곽대천은

목덜미가? 시큰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체한다면 황량한 들판에서 뼈다귀도 추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눈알이 붉다? 못해 피가 흐르듯 충혈된 눈알을 부지런히 굴리던 곽대천은 쓰러진

여섯 명의 부하를 보고는 싸울 마음이 싹 가셨다.

아니 더 싸운다는 것은 목을 떼놓고 몸뚱이만 발버둥거리는 꼴밖에 더 될 것이 없었다.
<도망가야지. 이러다 나까지 죽어버리면......>
이렇게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한 곽대천은 주위를 급히 휘둘러 보며 탈출구를 찾는 동시에

장검을 꼬나잡고 당장 돌격할 태세로 네 명의 여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어금니에 힘을 주며 횡가금량(橫架金樑)과 운무금광(雲霧金光)의 수법을 병행하여

비호같이 몸을 날렸다.

순간, 곽대천의 너무나 험악한 얼굴과 죽기를 결심한듯한 그의 쇳소리나는 공격에 주춤

장검을 쥔채 한 걸음 물러서는 네 명의 여인들을 뚫고 곽대천은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고 말았다.
이때, 곽대천의 험상궂은 표정에 속은 여인들은 저마다 땅을 박차며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러자 그 중의 한 여인이 팔을 벌리며 추격하려는 동료들을 만류했다.
[내버려둬요.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도망가는 놈은 내버려두는 것이 좋아요.]
하는 말에 세 명의 여인은 각기 장검을 거두며 돌아섰다.
꼭 죽을 것만 같은 검진 속에서 용하게 빠져나온 곽대천은 앞으로 엎어질듯 엎어질듯

곤두박질을 하며 오던 길을 되돌아 허겁지겁 달려가고 말았다.
곽대천이 달아나버린 싸움터는 순식간에 조용한 정적이 감돌았다.
그때까지 동굴 입구에서 육보와 함께 곽대천의 싸움을 가로 막고 싸우는

네 명의 여자들을 보고 있던 하림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어느 누구에 속해 있는 여자들인지? 아니면 곽대천과 처음 말을 주고 받던 여자가

그녀들의 우두머리로서 하나의 파벌을 이루고 있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여자들이라 하더라도 전연 모르는 척 하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곽대천에게 장검을 휘두르는 일이며 하림을 도와주면 무슨 말이라도 해서

아는 척을 할 일인데 그렇지도 않았다.
얼마 동안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하림은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강호 무술계에 여자만이 한 파가 되어 나타난 사람은 조소접 바로 그 여자였다.
그래서 혹시 저 여자들이 조소접의 시녀인 십이화녀(十二花女)중의 몇 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림은 곽대천을 쫓아 보내고 다시 되돌아서서 가려는 백의의 여자들 앞으로

급히 달려갔다.
[잠깐 실례하겠어요.]
하고 그녀들을 불러세웠다.
[어디에 계시는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토록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처음 곽대천과 이야기 하던 여자가 담담히 웃으며 하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고마와 하실 것은 없어요. 다만 우리 주인의 명을 받고 양부인을 도운 것 뿐이에요.]
순간, 하림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어떻게 제가 양부인인줄 아셨죠?]
[우리 주인님이 그러시더군요. 지금 여기서 괴한과 싸우고 있으니 곧 가서 도와주라구.]
[그럼 주인님은 누구신가요? 혹시 조소접 언니가 아니세요?]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시죠?]
[그저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자 여자는 자기들의 정체가 탄로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하는 표정으로 자기들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었다.
[사실 저희들은 우리 주인님의 시녀들이에요.]
[바로 십이화녀(十二花女)였군요.]
[그래요.]
하고 말하는 여자는 지금까지 하림과 말하던 여자의 옆에 서 있던 예쁘장한 얼굴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말까지 했다.
[바로 이 언니가 우리들의 책임자예요.]
하며 하림과 이야기 하던 여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상냥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 숙여보였다.
[저를 녹춘(綠春)이라고 불러주세요.]
하는 바로 그때였다.
십여 명의 장정이 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데는 약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찌기 무술계에서 생사의 치열한 격전을 겪어보지 못한 네 명의 시녀들은 눈썹을 찌푸리며

귀찮아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십여 필의 말이 곽대천을 따라 달려오고 그 십여 필의 말 뒤에는 네 명의 흑의인이 한 채의
가마를 메고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마 안에는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지 알 길도 없었다.
점차 말과 가마가 가까이 다가오자 녹춘은 세 명의 시녀에게 눈짓을 해서

불의의 역습에 대비하도록 했다.
먼저 달려온 곽대천과 말을 탄 십여 명의 흑의인들은 더 접근하지 않고 이삼장(二三丈)밖에

대치하고 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이어 네 명이 멘 한 채의 가마가 뒤쫓아 왔다.

그리고는 맨 앞까지 와서는 천천히 내려 놓는 것이었다.
가마는 사면으로 주렴(珠簾)이 처져 있어서 그 안에 어떤 인물이? 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그들의 두목급이 들어 앉아 있는 모양인지 십여 명의 괴한들은 말에서 내려

각자 장검을 움켜쥐고 가마를 위시해서 비잉 둘러싸고 하림을 비롯한 네 명의 시녀와 육보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가마 안에서 우렁찬 음성이 터져나왔다.
[양몽환이 누군지 좀 나타나시지!]
비웃고 조롱하는 듯한 말이 정체를 밝히지 않은 가마 안에서 터져 나왔다.
이 말을 들은 하림은 눈썹을 곤두 세웠다.

그러나 하림보다 먼저 녹춘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 못되먹은 놈인지는 모르지만 무례하기 짝이 없군!

나와서 정체를 밝히고 떳떳이 말하지 못하고.]
[으하핫...... 요망한 계집년! 어느 앞이라고 방자하게 구느냐?]
역시 가마 속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듣기 싫어. 용건이 있으면 말하고 아니면 곱게 물러가라!]
녹춘도 지지않고 응수했다.
[곱게 물러가라? 핫...... 하...... 이 계집년들아! 네년들은?

오늘 여기서 요절을 내겠으니 잠깐만 기다려라.

그보다 양몽환과 하림이 우리 말을 들어 우리와 같이 간다면 용서해주마!]
이때까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하림은 흑의 괴한들의 목적이 양몽환과 자기를

사로잡으려는 데에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는 무술계에 대적 경험이 없는 네 명의 시녀와 육보 그리고 하림 자신이

흑의의 괴한들과 승부를 가릴 수 있을까 하며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던 하림은 조용히 육보를 불렀다.
[육보야. 너 저기 가마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보고 올 수 있겠니?]
[네, 그냥 보고 오기만 하면 돼요?]
[그래 어떻게 생겼는지만 말해주면 알 수 있지. 어느 누구의 흉계인지.]
육보는 조그만 주먹을 단단히 쥐고 당당히 가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의 다가갔을 무렵, 가마의 주렴이 들썩 했는가 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다가가던 육보가 발랑 자빠지는 것이 아닌가.
[앗! 육보!]
외치며 육보에게로 달려가려던 하림은 다시 한번 호되게 놀랐다.
그것은 무공이 강한 내공으로 암암리에 후려친 일격으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진 육보가

그곳에서 여지없이 코와 입으로 피를 뿜으며 쓰러질줄 알았다.

그러나 하림의 그러한 상상을 뒤엎고?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육보가 팔딱 일어나서는

유유히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눈이 둥그래지기는 하림 뿐만이 아니었다.

네 명의 시녀는? 물론 흑의 괴한들도 경악하는 눈치였다.

육보의 태도는 너무나 유연했다.

툭툭 먼지를 털어내린 육보는 홀깃 가마를 흘겨보고는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녹춘이 한 걸음 나섰다.
[내가 보고 오겠어요. 도대체 어떤 작자가 들어 앉아서 큰 소릴치는지......]
하고는 장검을 바로잡고 다가갔다.

그리고 육보와 마찬가지로 거의 가마 앞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때

역시 좀전과 같이 주렴이 들썩하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저남철에 쇠붙이가 끌려가듯

가냘픈 녹춘의 몸이 가마 속으로 호로록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순간, 다른 한 명의 시녀가 땅을 박차며 가마 앞으로 달려들었다.
[녹춘 언니!]
그러나 주렴이 한번 들썩 하고는 그녀 역시 가마 속으로 호로록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무서운 잠력이오 인력(引力)이었다.

순식간에 두 명의 시녀를 삼켜버린 가마는 별로 크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속으로 들어갔는
지 이상한 일이었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하림은 가슴이 철렁했다.

조금 전까지는 가마 안에 어떤? 인물이 들어앉아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마음을 태웠지만

이번에는 가마 속으로 빨려? 들어간 두 명의 시녀부터 구하는 것이 더 급했다.
하림은 비록 자기까지 빨려 들어가는 한이 있다해도 두 명의 시녀를 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불행히 나까지 가마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면 그속에서 두 명의 시녀와 함께 힘을 합쳐?

뚫고 나와야지......>
하림은 장검을 고쳐 힘주어 잡고 한 걸음 마악 옮기려는 바로 그때였다.
[비키시오. 내가 가겠소!]
양몽환이었다.
[당신!]
하림은 기절하듯 놀랐다.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어 애태우던 양몽환이 걸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안돼요. 딩신은!]
하림은 양몽환의 손을 마주 잡으며 가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완강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가겠소!]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토록 정신없이 쓰러졌던 사람이 언제부터 일어났으며 더구나?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리고 하림이 가마 속으로 뛰어들려는 행동을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인가!
찡! 했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하림은 더 우기지 않고 잡았던 장검을 양몽환에게 넘겨주었다.
하림에게서 장검을 받아 든 양몽환은 잠시 앞의 가마를 노려보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걸음이라는 것이 위태롭기 그지 없었다. 비틀비틀 걷는다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듯 쓰러질듯 하며 걷는 걸음이었다.

그만큼 힘이 빠진 양몽환임을 알 수 있었다.
순간, 하림은 더 지켜보지 못하고 뛰어가서 양몽환을 가로막았다.
지금과 같은 걸음으로는 가마 앞까지 가기는 고사하고 당장 옆으로? 쓰러질 것만 같아

보는 하림의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안돼요. 당신은 너무 지쳤어요.]
하림이 간곡히 말리는 말에도 양몽환은 여전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가마 앞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염려없소. 뒤로 돌아가 기다리시오.]
하림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 저토록 허약해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사람이......>
장검 아니라 조금 건드리기만해도 그대로 썩은 기둥처럼 쓰러질 지경의 양몽환이었다.
이때, 역시 한편에서 양몽환의 걸어가는 모양을 보고 있던 두 명의 시녀도 자기들끼리?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참 별일이야. 우리가 듣기에는 양대협이 굉장한 무술인이라고 들었는데 저렇게?

걸음도 못 걷는 사람이 무슨 대협이야.]
[글쎄 곧 쓰러질 것 같은데...... 양대협이 아닌 모양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아니 진짜 양대협이 맞아. 저 여자가 바로 부인이라던데......]
[그럼 우리 주인이 거짓말을 했을라구?]
둘이서 속닥거리던 두 시녀 중의 한 명이 급히 하림에게로 다가왔다.
[위험해요. 속히 불러오세요.]
아무리 뜯어 보아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 양대협을 왜 그냥 가도록 내버려두느냐는? 말이었다.

그러자 하림도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근심이 가득 찬 얼굴을 들었다.
[저도 할 수 없어요. 그이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아서......]
[그러시다 다치시기라도 하면 어쩌죠?]
[다치지는 않을 거에요. 모르긴 해도......]
사실 하림은 비록 양몽환이 허약해져서 걸음을 옮기지? 못할만치 비틀거린다 해도

시녀의 걱정대로 상처를 입을 것 같지는 않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스스로도 딱히 꼬집어서 말할 수도 없지만 하림은 양몽환을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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