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13. 해독약 을 찾아서!

오늘의 쉼터 2014. 10. 23. 15:53

13. 해독약 을 찾아서!

 


한편, 등고강과 하림 그리고 유원은 저택을 왼편으로 끼고 돌아 등개우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넓은 뜰, 많은 건물 어느 구석에서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싸움이 끝났는지 인기척도 없었다.
이에 당황해진 등고강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등개우의 거처를 알아 내려고 시선을 급히 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림과 유원을 조금 뒤로 떨어뜨린 등고강이 맞은편 저택의 벽을 끼고 다음 모퉁이로

꼬부라지려는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며 휘익! 하고 일장 밖에 우뚝 서는 장정이 있었다.
검은 경장에 흰 비단으로 허리를 졸라매고 눈이 부리부리한 장정은 두 손목에 금환이 끼어져 있었다.
[바로 영감이 등가보의 고강이오?]
금환의 장정은 일장 앞에 딱 버티고 서서 늠름한 자세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때, 뒤에서 쫓아오던 하림이 입을 딱 벌리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앗! 도옥!]
가늘게 떨며 소리친 하림은 장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등고강을 뒤로 세우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금환의 도옥은 냉소를 터뜨렸다.
[이년! 비키지 못해? 사나이 대장부는 너따위 계집년과는 상대 안한다.]
하림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무식하고 무례한 놈! 어느 누구 앞이라고!]
[핫! 이년 봐라! 그래도 입은 살았구나! 가만 있거라.

등보주 뭔가 하는 놈을 찾아 해독악을? 빼앗아야겠다.
그 다음 네 년의 입을 짜악 찢어주마!]
순간, 하림은 지금 나타난 도옥이 진짜가 아닌 그의 화신임을 알았다.

그렇지 않고 진짜 도옥이라떤 하림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대할리가 없었다.

미루어 보건데 이는 양몽환과의 일전이 있기 전에 조소접과의 일전에서 맞은 독침의 여독이

지금 진짜 도옥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도옥의 화신들이 해독약을 구하려고 등가보에까지 침입해 들어온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배우지 못한 놈! 그래 여기 계신 이 분이 등대보주님이시다. 재간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봐라!]
[핫! 내참, 그래도 비키지 못해!]
하림은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비껴 잡았던 장검에 힘을 주어 허공을 가르며 화신의 견정혈(肩井穴)을 노리고 질풍같이 달려 들었다.

뜻밖에 여자를 만난 화신은 참으로 한심한 모양이었다.

<그년, 얼굴은 예쁘장하다만 제깐년이 어디 나와 상대나 된다구 단칼에 요절을 내서 사로잡아야지.

그래서 데리고 살면 꽤 살맛이 있겠는데 ......>

입가로 흐뭇한 웃음을 흘려버리며 화신은 금환검을 뽑아들었다.

이제 일장을 후려친 하림이 다시 위치를 바꾸어서 역공할 때 슬쩍 몸을 굽히며 하림의 장검을

후려칠 심산이었다.

그러나 하림은 이를 악물고 되돌아 섰다.

그리고 힘을 모았다.

장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눈썹을 치켜 올린 하림은 일월강식(日月强食)의 날렵한 수법과

금사직곡(金絲直曲)의 수법을 병용시켜 화신의 가슴을 겨누고 땅을 박찼다.

순간, 하림의 장검을 떨어뜨리고 사로잡으려던 화신은 너무나 강한 검풍과 후려치는 장풍에

몸을 비틀거리며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그도 도옥의 귀원비급을 전수받은 화신이었다.

가냘픈 여자라고 얕잡아 보았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발딱 재주를 넘어 일어나기는 했으나

머리가 어지러웠다.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싸악 바뀌어졌다.

하림의 장검을 떨어뜨리기는 커녕 오히려 들었던 금환검을 놓칠 뻔 했다.

<야, 이년 봐라! 제법인데!>

코를 탁! 풀어제친 화신은 의외로 상대의 무공이 강한데에 저윽이 놀란 모양이었다.

<안되겠는데...... 정식으로, 정식으로 싸워야겠군......>

화신은 눈에 불을 켰다.

이따위 작은 마을에 감히 자기와 상대가 될 사람이 없으리라고 가슴을 펴고 들어왔는데

뜻밖에 만난 상대가 남자도 아닌 여자로서 한 수에 자기가 뒤로 넘어지며 재주를 넘었다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하림에 대한 인식이 일시에 달라진 화신은 혼신의 정기를 모았다.


<......사로잡아 데리고 살아야지 ......>


가 다 뭐야.

오히려 사로 잡힐 형세었다.

이때, 하림은 하림대로 화신을 사로 잡을 심산이었다.

그래서 도옥의 거처를 알아내고 깨끗이 처치해 버리려고 했다.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도옥의 화신쯤은 눈밖이었다.

동숙정과 함께 익힌 삼음신니의 권보를 비롯해서 일찌기 곤륜파의 제자로서 단련된

그녀의 몸은 민첩하고 날래기가 누구보다 못지 않았다.

하림은 다시 한번 진기를 돋우고 땅을 가볍게 찼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인식이 달라진 화신도 금환검을 휘두르며 지쳐 들어오는 순간,

달려나간 하림의 가냘픈 몸과 화신의 건장한 체구가 맞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내는가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검풍과 장풍이 흙과 모래를 날리자 주위가 뿌우옇게 먼지 바람이 일며 검광과 장풍이

하늘을 뒤덮고 말았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지 뿌우옇게 일었던 먼지가 서서히 걷히는 한끝에서

하림의 어여쁜 자태가 땅을 박차며 되돌아서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흑의의 화신이 똑같이 돌아서시 금환검을 고쳐 쥔다고 느꼈을 때,

허공으로 부웅 떴던 하림의 몸이 발딱 고추서며 쏜살같이 화신의 견정혈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기기묘묘한 수법으로 공격하는 하림이나

그에 못지 않게 피하며 역습하는 화신이나 근래 보기드문 무공의 극치였다.

그런데 아차하는 순간에 하림의 칼끝이 화신의 오른쪽 어깨를 사정없이 찌르고 말았던 것이다.
[으윽!]
짧은 비명 소리가 들리고 비틀거리는 화신의 몸뚱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질 듯했다.

그러나 쓰러지려는 몸을 바로 세운 화신은 그대로 돌아서서 등가보의 높은 담장을 히잉!

넘어 달아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자 그때까지 어디서 싸우다가 달려오던 길인지 장검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든 등개우가

비호같이 화신의 뒤를 따라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하림은 발을 동동 굴렸다.
[그만 둬요!]
하림의 절규하듯 외치는 소리에 달리던 걸음을 멈춘 등개우는 급히 돌아섰다.
[왜 그만 두시라 하십니까? 부인!]
[쓸데 없어요. 흉악한 놈들이 또 무슨 계략을 꾸미는지 알 수 없어요.]
[음...... 그럴지도 모르죠.]
등개우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하림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는 한편, 일찌기 하림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던 등고강은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과연, 대협의 부인이시군...... 손색없는 대협의 부인이야 ......>

얼굴에 경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등고강은 두 손을 마주 잡으며 하림에게로 다가갔다.
[부인! 감사하오. 이 늙은이가 진심으로 감사하는 바요. 부인이 아니었다면

이 늙은이는 큰 변을 당할 뻔 하였소.]
숨김없는 등고강이 말에 하림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만 얼굴을 붉힘으로서 등고강의 인사를 받았다.
양몽환과 동숙정이 그들은 사로잡은 줄을 미처 몰랐던 등고강 일행은 눈이 동그래졌다.
[웬 놈들이오?]
앞서 들어오던 등고강이 양몽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로잡았읍니다.]
[훌륭한 솜씨요. 그런데 왜 사로잡았소이까?]
하고 묻는 것은 죽여버리든지 쫓아버리든지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었다.
[죽이기 전에 몇가지 알아낼 일이 있어서 살려두었읍니다.]
[음...... 그런데......]
[이놈들은 졸개라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만 하는군요.]
하고 양몽환이 대답하자

동숙정이 선뜻 나서면서 두 놈의 천영혈(天靈穴)을 탁! 탁! 쳐버리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얼마 있다 살려 놓으면 바른 말을 할 거예요?]
깨끗이 두 놈을 쓰러뜨리고 한쪽 의자에 앉아버리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양대협!]
등고강이 먼저 입을 열러 화제를 바꾸며 양몽환을 불렀다.
[예, 등선배님!]
[도옥이란 놈의 일당이 양대협께서 이곳에 온 것을 안 모양이죠?]
[글쎄요...... 미행을 당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근래 몇년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저 때문에 소란을 끼쳐서......]
[아니......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오.

양대협의 말대로 강호가? 시끄러워질 징조가 보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만......]
하는데 하림이 눈을 반짝거리며 양몽환에게로 다가왔다.
[제 생각같아서는 도옥이란 자의 상처가 대단한 모양이에요.]
[무슨 말이라도 들었오?]
[아까 도옥의 화신이 등보주님을 찾으면서 해독약을 내놓으라고 호통이더군요.]
[음...... 그럴지도 모르오. 나도 그 도옥이란 자의 상처가 대단한 중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러자 동숙정이 여자다운 걱정을 했다.
[악독하기 이를데 없는 놈이 몸은 아프고 행동은 자유롭지 못하니

또 어떤 계략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할는지......]
[나도 역시 그 생각을 했소이다. 제놈이 죽을 지경이니까 악밖에 더 남은 것이 있겠어요.]
등개우의 하는 말에 유원이 응수했다.
[그러다 제풀에 죽어버리면 되겠는데!]
장내는 침울한 기분으로 서로 말이 없었다.
저마다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던 얼마 후, 의자에 기댄채 잠이 든 동사매를 발견한 등개우는 급히 손바닥을 세 번 쳤다.
그 손바닥 소리에 동숙정이 눈을 뜨고 지하실 문이 열리면서 녹의(綠衣)의 소녀가

조용히 들어와 등개우 앞에 시립하고 섰다.

[양대협님! 동사매님이 퍽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잠시 쉬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요?]


등개우의 말에 양몽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 며칠 동안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하고 좌충우돌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양몽환 역시 피로하고 고단했다.
[그렇군요. 저 역시 피로합니다.]
[그럼, 모두 잠시 쉬도록 하시죠.]
하고는 시립하고 있는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침대는 다 준비가 되었느냐?]
[예, 분부대로 준비해 놓았읍니다.]
[됐어. 그럼 여자분부터 모시도목 해라. 불편이 없으시도록 각별히 조심해라!]
[예. 분부대로 하겠읍니다.]
등개우는 동숙정과 하림에게 정중히 읍하며 소녀를 따라 가도록 했다.
[불편함이 있으시면 곧 하녀를 불러주십시오.]
동숙정과 하림이 소녀를 따라 나가고 등개우는 양몽환과 유원을 안내하고 역시 지하실을 나왔다.
깨끗한 침대에서 피곤한 몸을 쉬고 일어나 앉은 양몽환은 홀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궁천건 바로 그 사람을 위해서였다.

선비 차림의 궁천건, 왕한상의 불의의 공격을? 받아 아직 상처와 막힌 혈도가 회복되지 않은

그래서 원수를 갚지 못하고 지하실에서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는 궁천건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살려주고 싶은 생각에서였지 궁천건의 건강을 회복시킨 다음

그의 원수 왕한상을 찾아 복수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양몽환은 옛날의 지나간 기억들을 더듬었다.

주약란과 조소접이 수 없이 쓰러지는 자기를 죽음 직전에서 구해 주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리고 그 치료법 중에서 어느 한가지를 궁천건에게 치료하면 틀림없이 고칠 것만 같았다.

얼마 동안 노심초사하던 양몽환은 무릎을 탁!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부지런히 지하실로 들어갔다.
지하실에는 동숙정에게 천영혈을 짚힌 두 놈의 괴한이 쓰러져 있을? 뿐 등고강도

자기의 거처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양몽환은 주위를 휘이 둘러본 다음 쓰러져 있는 두놈 중에서 한놈을 끌어 방 한가운데에 엎어 놓았다.

그리고는 운기를 조식하고 내공의 진기를 모았다.
그 다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 십처의 요혈을 차례차례로 하나씩 짚어갔다.
우선 엎어 놓고 뒷통수에서부터 발목까지 짚을 수 있는 스물 네곳의 요혈을 짚은 다음

등허리의 대하혈(大河穴)과 오리혈(五里穴), 음염혈(陰廉穴), 혼혈(昏穴)을 짚고

맨 나중으로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을 짚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후, 지하실 문을 나온 양몽환은 등개우를 흔들어 깨웠다.
[등형! 미안하오만 혹시 은침(銀針)이 있읍니까?]
잠이 덜 깬 등개우는 곧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예?]
[은침이 있으면 좋겠읍니다. 없으면 동침(銅針)이라도.]

그제야 등개우는 번쩍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은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있읍니다만 무엇에 쓰시려고......]
[됐읍니다. 있으면 열 개만 주시오.]

자다말고 은침은 무엇에 쓰려나 하면서도 워낙 무공이 높은 양대협이니?

갑자기 긴요하 쓸 일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등개우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십여개의 은침이 들어 있는? 함(函)을 들고 들어왔다.
은침은 깨끗이 소독되어 있었다. 등개우에게 은침을 받아 든 양몽환은 급히 지하실로 돌아왔다.
이때, 아무래도 양몽환의 거동이 이상하다고 여긴 등개우는 앞에? 가는 양몽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 양몽환의 거동을 주시하는 등개우의 눈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방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괴한에게? 다가앉은 양몽환은 잠시 진기와 내공을?

운기시킨 다음 은침이 들어 있는 함 뚜껑을 열었다.

그 다음? 조심스럽게 은침을? 가만히 찔러놓기 시작했다.

한 곳......? 두 곳...... 세 곳......

그래서 이십여개의 은침을 다 꽂아 농은 양몽환은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

괴한의 갈비뼈에 두 손을 대고 등 위에 자기의 귀를 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몇 곳의 은침을 뽑았다 다시 꽂고 손바닥을 대고 귀를 대고 또 뽑고......

이렇게? 하기를 대여섯 번! 이윽고 괴한의 몸에서 귀와 손을 뗀 양몽환은

무엇인자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꽂아 놓은 은침을 전부 뽑았다.

그리고? 스물 네 곳의 요혈을 뚫은 다음 괴한을 본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지하실 문을 열던? 양몽환은 눈이 커다래져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등개우를 발견했다.
그러나 놀라지 않았다.
[아, 여기 계셨군. 그렇지 않아도 등형에게 가려고 하던 중인데......]
[양대협님!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오.]
[무공을 연습하시는 겁니까?]
[글쎄....... 무얼 좀 생각하는 것이 있기에.]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등형,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궁천건형의 중상을 치료해 주어서 건장한 모습이 보고 싶구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저 역시 궁아저씨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내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 보려는 중이오.]
[양대협님!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내 생각같아서는 궁형의 몇 곳 혈도만 뚫으면 완쾌될 것같아서 지금 실험을 해본 것입니다.]
[아! 그랬었군요. 저는 무슨 일인가 했읍니다.]
[생명이 붙어있는 사람을 실험했다는 것은 도의상 용서못할 일인줄 알지만 어쩔 수 없었읍니다.]
[그렇지만 죽지 않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바로? 그 점입니다.

그렇치 않아도 동사매는 저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읍니나.

그런 것을 제가 말렸죠.

그것은 이왕 죽을 목숨인 그들은 실험해 보리라 생각한 것이죠.

등형께서는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오해라뇨?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알겠소. 그렴 궁형께 가보기로 합시다. 궁형은 어느 방에 계신가요?]
[제가 안내하겠읍니다.]

궁천건은 지하실 한끝에 붙은 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마침 의자에 앉아 무슨 책인가를? 읽고 있다가 양몽환과 등개우를 맞았다.

[방해가 되지 않았읍니까?]
[아니오. 어서 들어오십시오.]
[사실 한가지 여쭐 말씀이 있어 실례했읍니다.]
[말씀하십시오. 원래 아는 것이 별로 없읍니다.]
[아, 그것이 아니고 왕한상에게서 당한 상처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어서 왔읍니나.]
[난 또...... 무슨 말씀인가 했읍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며 그 자리에 양몽환이? 앉기를 권했다.

양몽환은 굳이 사양하고 다른? 의자에 앉았다.

[많은 상처 중에 어느 부분이 제일 중상이었는지요?]

궁천건은 이마를 찌푸리며 그때 일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얼마동안 그렇게 찌푸리고 있던? 궁천건은 자기의 허리께를 짚으며 입을 열었다.

[바로 이곳인 것 같습니다. 이곳을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예, 알겠읍니다. 미안하지만 궁형께서는 침대에 누우셨으면 합니다.]


[?............]

무슨 일인지 의아한 표정으로 양몽환을 바라보는 궁천건 옆에서 등개우가 설명을 했다.

[아저씨! 양대협님께서 아저씨의 중상을 치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뭐? 양대협이?]
[예. 제가 몇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읍니나.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를 해드렸으면 하고.]

그제야 궁천건은 주먹을 쥐고 읍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의 표정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이 가득했다.

[실로 무슨 말씀을 드려서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정색하며 고마와하는 표정에 양몽환도 주먹을 불끈 쥐고 읍했다.

[기대는 가지지 마십시오.

너무 민망스러워서 미력(微力)이나마 힘이 되어 드릴까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읍니다.]
[도리어 제가 황공합니다. 양대협닙!]
감격의 순간도 지나고 궁천건은 양몽환이 지시하는 대로 웃통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양몽환은 지하실에서 괴한의 요혈을 짚듯 스물네곳의 요혈을 짚어 내려갔다.

그리고 운기 조식한 다음? 똑같은 순서로 은침을 꽂아 내려갔다.


[아프면 말씀하십시오.]
[아니, 아프지 않습니다.]
[여기는 어떻습니까?]
[예, 조금.]
[여기는?]
[괜찮습니다.]

이곳저곳 짚어가며 양몽환은 스물네곳의 요혈에 은침을 꽂았다.
그리고는 아까와는 달리 자기의 두 손바닥을 쫙 펴 궁천건의 손바닥에 밀착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궁천건의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뜨거운 땀이 샘솟듯 흘러나오고 나중에는 등과 허리까지 비오듯 땀이 흘러 침대를 적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밀착시켰던 손바닥을 뗀 양몽환은 몸을 일으켜 궁천건의 옆으로 비켜 앉았다.
그리고는 꽂았던 은침을 하나하나 뽑으며

그의 허리와 등에 귀를 대고 혈도의 상태를 진맥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를 세번, 이윽고 은침을 모두 뺀 양몽환은 궁천건이 일어나 앉기를 기다렸다.
[지금 제가 느낀바로는 오리(五里)와 음염(陰廉) 두 요혈이 폐쇄되어 있어서

체내의 피가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을 지나가지 못하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오리와 음염혈이 바로 이쪽 허리에 있는 혈도인가요?]
하며 궁천건은 자신의 왼쪽 허리를 짚으며 물었다.
[네, 바로 맞습니다. 그곳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아주 불편합니다. 제 생각도 그곳에 치명상을 받은 모양입니다.]
[잘 알았읍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물러가겠읍니다.]
궁천건은 문밖까지 양몽환을 따라나가 주먹을 쥐고 읍했다.
궁천건의 방을 나오자 양몽환과 함께 걷던 등개우는 궁천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양대협님! 가망이 있읍니까?]
한 일자로 입을 굳게 다분 양몽환은 어떻게 하면 오리나 음염의 두 혈도를 풀어

족궐음간경으로 피가 통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느라고

등개우의 조심스러운 물음을 듣지 못했다.
그러자 다시 등개우가 입을 열었다.
[가망이 있읍니까? 양대협님!]
재차 묻는 말에야 양몽환은 퍼뜩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글쎄요...... 확답하기는 곤란하지만 가망은 있읍니다.]
[그럼! 됐읍니다.]
[그런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양대협님이 하시는 일인데 무슨 염려가 있겠읍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저도 아직 미숙합니다.

더구나? 아차 실수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병신이 되던가,
아니면 목숨을 잃게 되는 치명적인 중상입니다.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불행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토록 중한 상태인가요.]
[중한 정도가 아닙니나.

왕한상에게서 혈도를 짚힌 즉시 등형의 가친께서 발견하여 성의껏 치료했기에 그 정도로 그쳤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눈속에시 송장이 되었겠지요.

다행히 발견되어? 치료를 받아서 저만큼이나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조되었다해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궁형이 터득하고 있는 무공을

근 이십여년 동안이나 긴 세월을 손 하나 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등개우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터득한 무공이 허사가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겠군요.

사나이 대장부가 무공을 쓰지 못하면 무엇 때문에 살겠읍니까?]
[어찌 무공 한가지에 삶을 걸 수야 있겠소?]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저런 중상을 입힌 수법은 어떠한 수법인지요. 양대협님?]
[투골타맥(透骨打脈) 수법의 일종으로서 아직 그와 같은 무공은 무술계에서 쓰지 않는 수법입니다.

상대방의 목을 빼앗으려는 목적이 아닌 다음에는 쓰지 않는 극히 악랄한 수법입니다.]
[지독한 악질이군요. 왕한상이란 놈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종인 모양이오.]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그 악명이 무술계에 자자했죠. 지금은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양몽환은 감개가 무량한 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무엇인가 괴로운 모양이었다.

 

 


 

'무협지 > 풍우연귀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 사랑의 고통  (0) 2014.10.23
14. 戰 雲이 감 도는 鄧 家 堡   (0) 2014.10.23
12. 흑심 ( 黑 心 )  (0) 2014.10.23
11. 가 짜 천 기 진 인  (0) 2014.10.23
10. 조소접의 계략  (0) 201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