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9. 불길 속의 두여인

오늘의 쉼터 2014. 10. 23. 00:26

9. 불길 속의 두여인

 

 

삼십여합의 교환으로 승부가 나지 않고 기운만 빠지는 도옥은 더 싸울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다 양몽환쯤이라면 몇 수 더 싸워보겠지만 뜻밖에 나타난 조소접을 대하고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섣불리 경솔한 행동을 했다가는 치명상을 받을 것이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도옥은 머릴 저었다.

 

그리고 계략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안되겠어. 불리한데...... 양몽환이라면 몰라도 조소접은 귀원비급을 터득하고

 

있지 않은가...... 잠시 이 자리를 피하고 다음을 생각해야겠군......>


하고는 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삼라전의 거대한 건물을 위시해서 몇 백년 묵은 고옥(古屋)들이 동쪽과 서쪽으로 한채씩 있었다.

 

도옥은 동쪽의 고옥을 택했다.

 

그리고는 다음 행동을 하기 위한 준비에 잠시 진기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앞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조소접을 노려보았다.


이때, 조소접 역시 자신의 지고한 무공으로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났다.


<역시 소문대로 도옥이 귀원비급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군.?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삼십여 수씩이나 공격해도 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공격하리라......>


눈썹을 치켜 올리고 얼굴의 근육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런 다음 소멧자락에 내공의 잠력을 가득 불어넣은 다음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순간, 도옥은 계획한 대로 주먹을 잔뜩 쥐고 조소접의 공격을 기다리는 척 하던 중이었다.

 

드디어 조소접의 소멧자락이 일시에 펄럭이며 질풍같이 달려오는 것을 눈으로 가늠한 도옥은

 

재빨리 몇 걸음 옆으로 쓰러지듯 비켜서며 조소접의 장풍을 피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처럼 웅후한 내공의 잠력으로 공격해도 무위로 끝나고 살짝 비켜서는 데는

 

조소접도 도리없이 섬섬옥수의 아름다운 손을 머리 위로 치켜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멧자락만으로는 도옥의 무공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조소접의 공격을 옆으로 쓰러지며 교묘히 피해버린 도옥은 조소접이 손을 치켜드는

 

극히 짧은 순간의 톰을 놓칠리가 없었다.


힘껏 쥐었던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집채같은 장풍을 몰아붙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회오리 바람처럼 사나운 돌풍이 조소접의 가날픈 몸을 사정없이 휘어감았다.

 

순간, 조소접은 그 자리에 더 버티지 못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며 주춤했다.


이때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조소접이 조금이나마 주춤하기를 기다렸던 도옥은 번개같이

 

몸을 날려 미리 눈여겨 두었던 동쪽의 고옥 속으로 뛰어들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돌변한 사태 앞에서 조소접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대로 서 있을 수 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 조소접은 옆에 서 있는 등개우와 유원에게 양몽환을 부축해서

 

삼라전 안으로 들어가게 한 다음 소매를 걷어올렸다.


이때 양몽환은 도옥의 화신인 젊은이의 악랄한 독침으로 왼쪽 손을 거의 쓸 수 없으리만큼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어서 힘이 있다해도 조소접을 도와 줄 수가 없었다.


등개우와 유원이 양몽환을 부축하고 하림과 동숙정이 있는 삼라전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조소접은 지금 막 도옥이 뛰어들어간 불당 안으로 도옥의 화신마저 뛰어들어가는 것을

 

놓치지 않고 그 뒤를 바싹 따라 뛰어들었다.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화신의 뒤를 따라 들어가긴 했으나 고옥의 불당 안은

 

형세가 너무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환한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와 어둠에 눈이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첩첩이 닫힌 장문과 코를 쑤시는 곰팡이 냄새에 머리가 아찔하고 숨까지 막히는 것이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으리만큼 어두운 불당 안에서 비단 조소접뿐 아니라 도옥과 그의 화신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두운 곳 어느 구석에 들어가 박혔는지 숨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설사 조소접이 서 있는 발 밑에 도옥이 엎드려 있다해도 찾아내지 못할 만큼 어두운 다음에야

 

별 수? 없이 눈에 어둠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도리 밖에 없었다.

 

그 순간이 극히 짧은 시간이긴 했어도 조소접으로서는 상당히 긴 시간인 것만 같았다.


얼마가 지나면서부터 자자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조소접은 자기도 모르게 헉!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무공과 내공이 강한 조소접이었지만 찢어진 눈이며 뿔이 돋힌 불상들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돌로 깎아 만든 불상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무서움과 공포감이 가시기도 했으나

 

 여자의 가냘픈 몸과 매정하지 못한 마음으로서는 얼마 동안이나마 고통과 공포를 겪어야만 했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공포감과 무서움을 이길 수 있도록 운기한 다음 조소접은 칠흑 같은

 

법당에서 몸을 돌리며 고함쳤다.


[비겁한 놈! 어디에 숨었는지 남자답게 나오지 않으면 이 법당을 불태워 버리겠어!]


별로 큰 고함은 아니었지만 장문이 모두 막힌 법당 안에서는 조소접의 외침 소리가

 

오랫동안 여운을 두고 윙윙 울렸다.

 

그러나 어느 불상 뒤에 숨었는지 도옥은 숨 소리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래도 안 나온다면 깨끗이 불태워 주겠어!]


다시 한번 외치는 소리에 그제야 도옥의 간사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아가씨! 그러면 얼마나 좋겠소!

 

이 금환이랑 도옥과 절세의 미녀 조소저가 함께 불에 타죽으면 ...... 핫 ...... 하 ......

 

이 몸은 영광이로소이다.]

도옥의 음탕한 소리는 분명히 맞은면의 거대한 불상 뒤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순간, 조소접은 대반약현공(大般若玄功)의 강력한 장풍을 두 손바닥으로 불러 일으켰다가

 

힘껏 휘둘러 보냈다.

그러자


[와르르......]


거대한 불상이 산산조각이 나며 여기저기로 돌덩어리가 우르르 탕탕 떨어지며

 

한쪽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러자 무너진 벽으로부터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 들어와 법당 안을 환하게 비쳐주었다.


그제야 법당안 구석까지 샅샅이 잘 보였다.

 

그러나 도옥과 그의 화신은 어디에 엎드려 있는지 차가운 웃음이 일시에 들려올 뿐

 

도옥의 머리가 또 다른 불상 뒤에서 쏘옥 올라오는 것이었다.


[아가씨 큰일 났소. 여기는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요.

 

그런데 무례하게 불상을 깨뜨리고 법당까지 부수니 죽어도 지옥 맨 밑바닥에서 살 것이오!]


하고는 나왔던 머리가 쏘옥 들어가는 것이었다.

분통이 있는대로 터진 조소접은 다시 한번 금방 도옥의 머리가 나왔다 들어간 불상을 향하여

 

강력한 대반약현공의 장풍을 날려보내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대한 불상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부웅 떴다가는 뒷 벽을 뚫으며 밖으로 날라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조소접의 강력한 두개의 장풍으로 수라장이 되고 기둥만 흔들거리는 법당은

 

금방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도옥은 차가운 웃음을 날리며 다른 불상 뒤로 살살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약이 오를대로 오른 조소접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무슨 아가씨가 그렇게도 포악스럽소 부처님이 노하시면 큰일나오!]


이제는 완전히 도옥의 꾀임에 빠져들어 도옥이 놀리는대로 몸을 돌리게끔 된

 

조소접은 사실 기가 막혔다.


도옥의 말대로 불상을 깨뜨리고 법당을 부수고...... 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도옥을 처치하려고 한 노릇이 애꿎은 불상만 동강내고 말았다.


쥐 잡으려다 장독 깬 격이 되어서는 더 해볼 도리가 없었다.

[어서 나와서 정정당당히 상대하지 못하고 왜 숨었어!]


조소접은 깨진 불상을 다시 만들어 세우고 이 다음에 금(金)으로 불상을 만들어 바치리라?

 

다짐하며 도옥이 숨어있을 듯한 곳을 향하여 소리쳤다.


그러자 역시 그 차가운 웃음과 함께 도옥의 간사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가씨가 자꾸 그래서 무서워서 그럽니다. 이제 나갑니다.]


하는 말과 함께 도옥이 무너져내린 한쪽 벽을 향하고 몸을 날렸다.

 

놓칠 수는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도 주지 않고 조소접의 몸이 날은 것은 물론이었다.


이때, 법당에서 몸을 날려 도망친 도옥은 삼라전의 지붕을 타고 마악 그 옆의 고옥으로 뛰려는 순간,

 

뒤미처 달려간 조소접의 손에 기어이 덜미가 잡혔다.


간단히 도옥의 뒷덜미를 움켜진 조소접은 약간 팔을 들었다 돌을 던지듯 도옥을 옆에 지붕 위로

 

집어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떼굴떼굴 굴러 땅으로 떨어지는 도옥을 보고서야 아차! 했다.


<속았구나! 진짜 도옥이라면 이렇게 쉽사리 내 손에 잡힐리가 없지. 분명 화신임에 틀림없어......>


급히 되돌아온 조소접은 무너진 벽을 지나 다시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역시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깨진 돌과 먼지로 눈을 뜰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무 인기척도 없이 고요하기만 한 것에 조소접은 어떤 예감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내가 화신을 쫓았다 되돌아온 시각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영리하고 음흉한 도옥이

 

아직까지 법당 어느 구석에 숨어 있지는 않을거야.>


순간, 조소접은 양몽환이 있는 삼라전을 향하여 몸을 날렸다.


과연 조소접의 예감이 적중했다.


쌍심지를 켜고 삼라전의 문을 열고 들어선 조소접의 눈에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금환검을 멘 도옥이 조소접에게로 등을 돌려대고 등개우와 유원에게 무슨 손짓을 하는 것이었고

 

그 옆에 동숙정은 눈에서 불똥이 튀는듯 이글이글 증오에 타오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도옥을

 

노려보고 있을 뿐 달려들지는 못하는듯 했고 상처를 받은 양몽환이나 아직 회복되지 않은 하림은

 

그대로 살아있는 송장에 지나지 않았다.


조소접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옥이 어떠한 수단을 써서 여러 명을 일시에 마비시켰는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도옥이 손짓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더 괴상한 것은 도옥의 무궁한 내공과 귀원비급의 기록을 터득한 재간으로서

 

분명히 자신의 등 뒤에 조소접이 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도 남았을텐데 전연 뒤에는

 

정신이 없는듯 아니면 조소접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듯 여유있는 자세로 지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소접은 이를 악물며 잠시 홀로 생각에 잠겼다.

조소접은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들어 도옥의 뒷덜미를 거머쥐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도옥을 덮치는 순간보다 도옥이 양몽환이나 하림을 덮치는 시간이 더 빠를 것이라고

 

계산한 조소접은 두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울까봐 공격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양몽환과 심하림은 상처를 입은 몸이어서 그렇다 하더라도 등개우나 유원,

 

그리고 동숙정은 왜 손 한번 쓰지도 못하고 저 모양이 되었을까? ......

 

비록 도옥을 당해 내지는 못한다 해도 셋이서 힘을 합하면 쫓아낼 수는 있을텐데......

 

분명 귀원비급의 무공으로 여러 사람들을 마비시킨 것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저 도옥이란 자가 귀원비급을 역이용해서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또 중상을 입히겠지......>

 
여기까지 생각한 조소접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되지, 살려두면 안 되겠어.

 

어떻게 하든지 오늘 여기서 결판을 내어 다시는 이 강호에 도옥의 해를 받는 사람이 없도록

 

그래서 후환의 씨를 말려버려야겠어. 귀원비급의 무공을 써서 평화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그 반대로 살생을 낙(樂)으로 삼겠지.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자는 아무리 고수라도 없애버려야지......>

조소접은 치를 떨었다.

 

그리고 도옥을 향하여 한걸음 옮겼다.

그 순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도옥이 돌아서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멈추지 않고 다가온다면 여기 있는 양몽환과 하림은 물론 벌레같은

 

이 놈들까지 모두 죽여버리겠어. 그래도 좋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은대로 하시오!]


미리 그렇게 나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도옥의 말을 듣고는 더 나가지 못하고

 

주춤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비겁하게 누구를 속이려고?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거에요.]

[흥! 나 역시 마음대로 하지는 못하겠지!]

돌아보지도 않고 도옥과 조소접은 서로 쏘아붙였다.

 

그러나 양몽환과 하림이 도옥의 수중에 있는 한 과격하게 행동할 수 없는 조소접은 잠시 생각을 돌렸다.

 

그리고는 약간 음성을 낮추었다.

[도옥이 똑똑한줄 알았는데 그따위 화신으로는 나를 속이지 못해.

 

조금 무공을 가르쳐주어서 나와 몇 수, 상대라도 하게 했으면

 

그렇게 빨리 탄로가 나지는 않았겠는데 ......]

전술을 바꾸어서 화신을 해치운 이야기를 했다.

 

사실 조소접의 말대로 도망간 도옥의 화신이 어느 정도 무공이 강해 조소접과 시간을

 

끌만큼 적수가 되었더라면 그 사이를 이용해서 도옥은 양몽환과 하림을 해치우고도

 

남음이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옥의 대답은 역시 싸늘하면서도 자만심에 넘치는 말이었다.


[그만한 시간도 나에겐 충분하지. 눈깜짝하는 사이에도 이 도옥은 하고 싶은 일을

 

다 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

[그럼 그분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죠?]


[핫...... 하...... 어떻게 하든 안하든 그것은 내 자유지 아가씨가 염려할 것은 아닌데.]


그러면서 그제야 천천히 돌아선 도옥은 그의 독특한 웃음을 싸늘하게 흘리며 어깨를 폈다.


[어쨌든 아가씨가 딴 마음을 품고 이 도옥을 공격한다면 해도 좋소.

 

그러나 지금 이놈들은 벌써 요혈이 짚혀 맥도 못추고 양몽환과 심하림은 나의 유명한

 

격물전독(隔物傳毒)의 독침을 맞아 몇시간 후면 살이 썩을 것이오.

 

그래도 순순히 물러가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소!]


[소문에 듣던대로 악독하군요.

 

지금 나는 누구를 죽일까 겁이 나서 공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내 손으로 저분들을 고치도록 만들어 버리겠어요!]


[아가씨가 이 도옥을 아무리 위협해도 소용이 없을거요.

 

나는 귀원비급의 기록을 완전히 터득해서 어떠한 공격도 겁내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는지?]


하고 말을 그침과 동시 백운(百雲) 가루와 수십개의 독침(毒針)을 조소접에게 뿌리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아주 태연한 척 말하며 음흉스럽게 암기를 쓰고 있는 도옥을 노려보던 조소접은

 

걷어올렸던 소매를 급히 내려 날아오는 백운가루와 독침을 무슨 먼지나 털듯 털어버렸다.

 

그러자 맹렬한 속도로 날아오던 백운가루와 독침은 조소접의 발 앞에서 후르르 떨어져

 

수북이 쌓이는 것이었다.


순간 도옥은 저윽이 놀랐다.


그것은 지금 도옥이 뿌린 백운가루는 마치 하늘에서 눈이 내리듯 팔랑팔랑 날아오는 것이지만

 

그 가루가 사람의 몸에 묻기만 하면 지독한 냄새때문에 정신을 잃음과 동시에 땀구멍으로 스며들어

 

전신의 피를 물로 만들어 버리는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암기중의 암기였고,

 

또 독침은 바늘끝 처럼 가늘게 깎은 사슴의 뿔로서 그 뿔끝마다 오독(五毒)이라고 하는 다섯가지의

 

독이 묻어 있기 때문에 일단 맞기만 하면 땀구멍을 폐쇄하는 동시에 물로 변한 피를 깨끗이

 

말려버리는 그야말로 생각만해도 전율을 금치 못하게 하는 흉기였다.

그러한 흉기를 아무 표정없이 소매끝을 한번 펄럭이는 동작으로 털어버리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죽이고야 말리라 하고 뿌린 백운가루와 독침의 위력이 무위로 끌나자

 

도옥은 조소접의 무공에 간담이 서늘했다.


<지독한 여자군 ...... 암기 중의 암기인 백운가루와 독침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뿌리쳐 버린다면 확실히 내 무공보다 강하군.

 

여기서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나겠는데 ...... 기회를 보아 도망을 가야겠군!>

한편 조소접은 도옥이 얼마나 많은 암수를 가이고 있는지,

 

이 자리에서 모두 써버리게 한 다음 대반약현공의 수법으로 공격해서 도옥의 최후를 보리라

 

다짐하고 다시 더 암기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 암기는 날아오지 않았다.


[얼마든지 암기를 쓰시지. 누가 겁낼줄 알고?]


[핫...... 하...... 놀랐어. 내가 가진 암기를 다 써버리면 공격하겠다는 생각이신 모양인데

 

원래 이 도옥은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소.

 

귀원비급을 터득한 이 도옥이 그러한 계교에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흥! 귀원비급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말끝마다 귀원비급, 귀원비급 하시는지 모르지만

 

나는 벌써 수 년전에 귀원비급을 외웠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군!]


[왜 모르겠소?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암기를 쓰지 않는 것이오.

 

독침을 막았다고 너무 도도하게 굴지 마시오 ]


[도도하다고 생각은 말아요.

 

앞으로 몇년 후면 내가 외우고 있는 귀원비급의 모든 내용을 기록해서

 

수 천권의 귀원비급을 만들어 강호 무술계에게 나누어 주겠어요.

 

그러면 그때는 귀원비급, 귀원비급하고 떠들지 못할거에요.]

[핫...... 하...... 가소로운 일이군. 이봐요,

 

아가씨가 귀원비급을 수 천권씩 만들어 내놓도록 그냥 놔둘 이 도옥도 아니지만

 

설사 책을 만들어 낸다해도 언제 그 내용을 터득해서 이 도옥과 상대하겠소.

 

어림없는 소리 마오!]

[어림도 없다고 그렇게만 생각해두면 속이 편할거에요.

 

그래서 강호의 모든 무술인이 귀원비급을 배우면 당신은 쥐구멍을 찾아 헤맬거에요.

 

그때까지 내가 살려두지는 않겠지만!]


[핫...... 하...... 이 도옥은 누가 살려줘서 살고 있다고 행여 오해는? 마시오.

 

누가 죽여준다고 해서 고개를 숙일 이 도옥도 아니지만,

 

그보다 나같이 천하에 두뇌가 명석한 소유자도 귀원비급 한? 권을 터득하는데

 

꼬박 오년이 걸렸는데 이 천하에 나보다 더 두뇌가 좋은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훌륭하시군! 그 명석한 두뇌속에 무엇이 들어 있어서 똑똑한지 머리를 빠개서 보고 말겠어요.]


[좋도록! 그때까지 기다려 드리지. 그러나 한가지만은 알아두시오.

 

내 머리가? 빠개지기 전에 아가씨의 머리가 먼저 빠개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만일? 귀원비급을 수 천권 만든다면 만드는 그날부터 강호의 무술인을 모두 죽여버리겠소.

 

그 다음 귀원비급도 다 불태워 버리고......]

끝이 없는 도옥의 악에 바친 말에는 조소접도 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속히 귀원비급을 만들어 내는데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조소접이었다.


그러나 독침을 맞고 쓰러진 양몽환과 심하림을 구해서 속히 치료해 주어야 하는 것이 당장은 급했다.


도옥은 수중에 들어 있는 양몽환과 하림을 구하려면 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도옥을

 

대반약현공의 수법이나 천강지(天강指)의 수법으로 처치해야겠는테 눈치가 빠른 도옥은

 

조소접의 그러한 기미를 알아챘는지 양몽환과 심하림을 한 사람씩 옆구리에 끼고

 

방자한 소리만 하고 있는 터라 아무리 마음이 급하다 하더라도 도옥을 향하여 일격을 갈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명중시켜야 할 도옥보다 옆에 있는 양몽환이나 하림이 맞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교활하고 지략이 뛰어난 도옥은 조소접의 심중을 꿰뚫고 있었다는 듯이 더욱 대담해지며

 

어깨까지 들먹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격하지는 못하고 노려보기만 하는 조소접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노려보지만 말고 공격해 오시지! 만일 공격한다면 이 도옥이 순순히 서서?

 

공격에 거꾸러질 것 같소?]


[상대도 하고 싶지 않아요. 인간같지 않은 놈!]


[흥!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하겠지?

 

양몽환이나 하림이 상할까? 염려해서 못하겠지? 그렇지? 핫...... 하......

 

하림이 상하는 것은 별로 큰 일이 아니겠지만 양몽환이 상한다면 정말 큰일일거요.

 

보통 사이가 아닌 모양인데 ......]

조소접의 마음 같아서는 이것저것 돌아보지 않고 방약무인으로 으시대며 지껄이는

 

도옥의 그 입부터 한방 놓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고는 울분을 억제했다.

 

그러자 다시 도옥의 방자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도옥을 죽이고 싶겠지만 이 도옥이 죽고 나면 독침을 맞은 양몽환과 하림은

 

영원히 살리지 못할걸 ...... 해독약은 이 도옥밖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까짓 해독약쯤! 나도 구할 수 있어요!]


[흥! 천만에, 이 해독약은 왕년에? 무술계를 주름잡던 어느 고수의 특별? 조제(調劑)라는 것을

 

모르고 있군! 그 고수는 이 도옥이 감금하고 있지만!]


[그들을 구하지 못해도 좋아요. 대신 오늘 이 자리에서 너를 죽여 원수를 갚고 말거다.]

[마음대로? 보아하니 이 양몽환과는 보통 사이가 아닌 모양이군! 그렇다면.]

하고는 옆에 끼고 있던 양몽환을 흘깃 내려다 보며 다시 한마디 하였다.

[여기 이놈은 부인이 둘씩이나 있소.

 

아가씨께서는 잘 생각해서 결정하시오.

 

이 도옥은 아직 부인이 없다는 것을 아시는지?]

[뭐라고? 악독한줄만 알았더니 천하에 흉측한!]


조소접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별 도리 없었다.

[속히 그들을 내려 놓고 독을 푸세요. 내 손에 죽기 전에.]

사태는 험악한 분위기로 법당안마저 싸늘한 살기가 돌았다.

 

그러나 시종 유들유들한 도옥은? 차가운 웃음을 거두지 않고

 

어쩌면 음탕한 생각까지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하림에 비해서 이미 성숙할대로 성숙한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조소접을 도옥이 음흉스럽게 생각해도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옥의 머리 속에는 어떠한? 계교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니 조소접의? 무공이 강해서 쉽사리 손에 넣을 수가 없어서인지

 

음흉한 기색을 싹 거두며 정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급히 주위를 살폈다.

[아가씨! 아가씨가 원하는 것은 이 하림이 아니라 여기 양몽환 이겠지!?

 

오늘은 이 도옥이 다른 할 일이 있어서 물러가겠소.

 

그러나 내가 필요한 하림은 데리고 가고 대신 아가씨가 필요한 양몽환은 두고 가겠소!]


하는 것과 동시에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양몽환을 휘둘러 조소접의 가슴 앞으로 휙! 집어던지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나 뜻밖에 공중으로 던져진 양몽환을 받아 안으려고 두 손을 벌리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하림을 옆구리에 낀 도옥은 질풍같이 삼라전의 대문을 밀어붙이며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설마 양몽환을 던지고 달려갈 줄은 미처 몰랐던 조소접은 떨어지는 양몽환을 받아 안고

 

급히 문밖으로 도옥을 따라 나갔으나 도옥은 이미 수장 앞에서 차가운 웃음 소리를 내며

 

사라져가는 것이었다.


[핫...... 하...... 아가씨께서는 양몽환이나 끼고 노시오. 이 도옥은 물러가겠소!]


조소접은 받아 안았던 양몽환을 돌층계에 내려 눕히고 쏜살같이 도옥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염라묘의 대문 앞에서 언제 대기시켜? 놓았는지 준마(駿馬) 한필이 기다리고 있다가

 

도옥을? 태우고 질풍같이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이미 도옥과 조소접의 거리는 약 열장(十丈)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말을 타고 도망가면 내 못따를줄 알아?]


날카롭게 소리치며 뒤따라가는 조소접을 힐끗 바라본 도옥은

 

말 고삐를 힘있게 낚아채서 말의 속도를 가한 다음 큰 소리로 외쳤다.

[따라오지 말고 오늘 밤 삼경에 염라묘에서 만납시다!]


어디까지나 여유있는 도옥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이를 악물고 진기를 돋우었다.

 

있던 내공과 진기를 다하여 도옥의 뒤를 바싹 따라 가던 조소접은 순간 퍼뜩 들어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교활한 도옥이 또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그 의중을 알아낼 길이 없었고 중상자들만

 

남기고 몇 십리를 따라가 그의 함정에 걸린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쫓아갈 것이 아니라 우선 중상자들부터 치료해서 구해놓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좋겠는데......>

이렇게 생각한 조소접은 도옥을 쫓는 것을 단념하고 곧장 되돌아 삼라전으로 돌아왔다.


삼라전 돌층계에는 조소접 자신이 눕히고 간 그대로 양몽환이 의식없이 누워 있었다.


조소접은 조심히 양몽환을 안고 삼라전 안으로 들어갔다.

 

삼라전 안으로 들어온 조소접은 도옥의 암수에 걸려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동숙정과 등개우

 

그리고 유원을 차례로 훑어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나는 이처럼 어려운 일만 당할까......>


라는 생각에 가슴만 아팠다.

 

사실 여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소접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스스로 역겹고 속이 상한다고 해서 돌아보지 않기에는 조소접의 마음이 너무 착하고 선했다.


한숨을 내려 쉬고 올려 쉬어도 우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고 운기 조식한? 다음 강력한 내공으로 모든 것을 준비한 조소접은 양몽환부터

 

차례차례로 그녀의 천혈(天穴) 수법을 써가며 폐쇄된 혈도와 마취된 관절을 풀어나갔다.


조소접의 지순한 내공력은 실로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 만큼 중상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치료가 끝나고 차례차례로 깊은 숨을 쉬며 깨어나는 사람들을 눈여겨 지켜보던 조소접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때 제일 먼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양몽환이 격한 노여움을 띄우며 일어났다.


[도옥이! 어디 갔어요?]


아직 양몽환은 처음 밖에서 도옥과 싸우던 생각이 계속인 모양이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으나 보이는 것은 법당 안이고 조소접의 아름다운 얼굴이

 

가만히 자기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림은?]

연이어 묻는 양몽환을 불러 앉힌 조소접은 낮은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 잠시 운기 조식하세요.

 

하림 사매는 도옥이 데리고 갔어요.]


[도옥이?]

[예, 그러나 너무 상심 마세요.

 

밤 삼경에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그동안 진기를 돋우세요.]


양몽환은 더 묻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모양이었다.

 

그 다음 차례차례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는 동숙정과 등개우

 

그리고 유원에게로 조용히 운기 조식하도록 이르고는 조소접 자신도 밤 삼경이 될 때까지

 

진기를 운집하는 내공을 쌓으리라 생각하며 조용히 무릎을 꿇고 눈을 감았다.

다시 법당 안은 적막으로 싸이고 밖은 어둠이 내혀앉고 있었다.


밤 삼경(三更)

도옥이 나타나겠다는 염라묘 앞에는 두 대의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경에 일어난 조소접이 시녀를 시켜 대기시켜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조소접은 수풀과 잡목(雜木)이 우거진 염라묘 옆으로 일행을 데리고 나타났다.


밤은 이미 깊었고 찬 이슬에 젖은 풀과 또 싸늘한 바람이 더더욱 분위기를 스산하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잡목 속을 주시하고 도옥이 나가나기만을 기다리던 조소접이 가늘게 외쳤다.


[앗! 하림사매!]


하고 외치며 응시하는 곳에는 과연 백의(白衣)의 여인이 귀신처럼 서 있었다.


틀림없는 하림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하림은 그 자리에 발이 얼어붙은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때 조소접 뒤에 있던 양몽환은 같이 온 동숙정과 등개우?

 

그리고 유원이 보이지 않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아까 본 두 대의 마차 중에서? 한대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이상히 여겨?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언제 따라왔는지 조소접의 시녀인 네 명의 소녀가 각기 장검을 뽑아들고

 

뒤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양몽환은 조소접이 하림을 발견하고

 

가늘게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런 것을 본 조소접이 하림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양몽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제야 앞을 눈여겨 본 그는 너무나 반갑고 또 기뻐 무작정 뛰어나가려고 했다.


잡목 속에 그림처럼 서 있는 사람은 정녕 하림이었다.


순간! 조소접이 손을 들어 양몽환의 앞길을 막으며 속삭였다.


[안돼요! 도옥이 무슨 계략을 꾸미고 있을 거에요.]


그제야 양몽환도 자기의 경솔함을 뉘우쳤다.


[옳은 말씀이오.

 

지금 하림의 혈도를 짚어서 저렇게 세워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는 바로 그때였다.


잡목 어둠 속에서 형체는 보이지 않고 큰 외침 소리만 들려왔다.


[아가씨! 이 도옥은 약속을 꼭 지킨다는 것을 알았겠지......]


분명히 도옥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도옥이라면 어둠 속에서 나와 말할 것이지 무슨 이유로 나타나지는 않고


소리만 치는 것인지 의심이 갔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왜 숨어서 나오지 않죠? 진짜 도옥이 아닌 모양이군!]


[핫 ...... 하 ...... 이 도옥의 화신이 몇명 있지만 그런 것은 상관할바 없소.

 

내가 진짜 도옥이든 아니든 아가씨는 저기 서 있는 하림만 데리고 가면 될 것 아니오!]


여전히 어둠 속에서 외치는 소리였다.

[좋아요! 그러나 간교한 계략을 써서 하림이 아닌 사람을 세워 놓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가씨는 너무 의심이 많소.

 

서 있는 사람이 정말 하림인지 아닌지 분명히 보여드리겠소!]


하고는 날카롭게 휙! 휘파람을 부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림이 서 있는? 바로 옆에서 불빛이 번쩍하며 한 사람이 나타나는가 했는데

 

그 다음 순간 이글이글 불이 붙는 횃불을 치켜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둡던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불빛으로 해서 서 있는 하림의 얼굴이 똑똑히 나타난 것은 물론이었다.

 

틀림없는 하림이라고 확인한 조소접은 진기를 모으며 하림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양몽환이 조소접의 앞을 가로 막았다.


[잠깐! 도옥이란 자가 어떤 함정을 만들어 놓고 저런 흉계를 꾸미는지 알고보고 들어가도록 합시다.]


옳은 말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의 지금 심정은 어떠한 흉계의 함정이라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염려 마세요. 어쨌든 사람부터 구해야죠.]


답답한 표정으로 말하는 조소접을 바라보는 양몽환의 가슴은 미어지는듯 아프고 쓰렸다.


[조소저 감사하오. 조소저만 믿겠소.

 

 내 비록 하림과 부부사이로서 그녀를 사랑한다 해도 조소저만큼 두려움을 무릅쓰고

 

들어가지는 못할 것 같소.]

[알고 있어요. 아무 염려 마세요. 오늘 도옥이란 자를 죽이고 말겠어요.]

[조심하시오.]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양몽환이었다.

이때, 다시 잡목 어둠 속에서 도옥이 소리쳐 외쳤다.

[틀림없는 하림이라고 확인했으면 구하시오. 그녀의? 몸에는 해독약(解毒藥)이 있소.

 

그러나? 한가지 말해둘 것은 하림이 서 있는 주위에는 무시무시한 함정이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오. 재간껏 구해보시오.


그러면 이 도옥은 이만 물러가겠소!]


하는 말과 함께 지금까지 불을 밝히고 섰던 도옥의 화신은 불을 꺼버리고

 

어둠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자 도옥과 도옥의 화신은 그들의 말대로 사라졌는지

 

아니면? 하림이 서 있는 어느 옆에 잠복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와 함께 스산한 바람과 음침한 기운이 일시에 몰려오는듯 주위는 공포에 휩싸이고 다만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때 조소접은 양몽환에게로 다가가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제가 하는 이야기에 섭섭히 생각하지 마세요.]

[무슨 말씀인데 ......]


[지금 도옥과 그의 화신이 어디에 숨어 있을 거에요.]

[알고 있읍니다.

 

조소서께서는 하림을 구하시오. 나는 도옥을 쫓겠읍니다.]

[아니, 지금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도 바로 그거예요.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지금 중상을 입은 몸으로서 누구하고도 대적할 수 없는 형편이에요.?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만 몸은? 대단한 중상을 입었어요.

 

그러니만치 아무 염려 마시고 여기 앉아서 운기하세요.

 

다행히 그 운기의 효과가 있으면 몇 시간은 더? 지탱할 수 있어요.

 

그러면 심소저를 구한 후 당신도 치료하도록 해요.]

양몽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소접의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르는 고마운 말이었다.

 

양몽환은 얼마만에야 겨우 숙였던 고개를 들고 조소접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소접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애정이 가득 찬 눈으로 양몽환을 마주 바라다 보고는

 

옆에 있던 굵은 지팡이를 집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홱! 몸을 돌리며 하림이 서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고 말았다.


지금 조소접이 하림을 향하고 몸을 날린 수법은 팔보등공(八步登空)의 수법으로

 

한번 땅을 박차면 팔척(八尺)의 높이를 유지하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팔보등공의 수법으로 순식간에 하림에게로 날아간 조소접은 그대로 하림 옆에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들고 온 지팡이 한 끝을 땅에 꽂고 그 위에 사뿐히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도옥의 말대로 하림이? 있는 주위 땅속에 어떠한 함정이 있는가?

 

염려해서 취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주위는 너무나 캄캄하고 또 어느 곳에 도옥이나 그의 화신들이 잠복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온 신경을 주위의 어둠 속으로 집중하고 급히 하림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을 꼭 감고 입까지 다문 하림은 옆에 누가 있으며 또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듯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다만 차가운 밤 바람에 옷깃이 날리고 머리칼이 그녀의 고운 얼굴을 덮기도 하고

 

또 걷혀지기만 할 뿐 이렇다할 변화는 없었다.

지팡이 한끝에 몸을 의지하고 하림을 찬찬히 훑어보던 조소접은 도옥의 말대로 하림의 손에

 

해독약이 쥐어져 있는가를 확인해 보았다.

과연 어떠한 해독약인지는 모르지만 하림의 손아귀에는 무슨 물체가 꼭 쥐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하림의 상태가 어떠한 위험에 빠져 있는지 알수 없는 처지로서는 무작정

 

그녀의 손에서 해독약을 뽑아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림의 전신 관절이 마비되어 있는 지도 모르는데 섣불리 손을 댄다면

 

마비된 관절이 모두 부러지고 또 생명까지 앗아가게 된다는 것을 조소접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얼마동안 불안의 공포 속에서 주위의 변화와 하림의 표정에 신경을 쓰고 있던 조소접은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서서 망설일 수만은 없었다.

 

해독약도 해독약이지만 이 위험 속에서 하림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고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 어떻게 가느냐가 문제였다.

머리를 짜내고 곰곰이 생각해도 관절을 다치지 않고 하림을 구할 도리는 없었다.


손을 잡아 끌고 갈 수도 없고 두 손으로 안고 가기도 그렇고?!


얼마를 더 생각하다가 조소접은 자신의 내공을 운기시켜 우선 하림의 관절부터

 

막힌 혈도와 마비된 곳을 풀어 놓고 그 다음을 실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막힌 혈도라도 제일 먼저 팔과 손목 그 다음? 허리의 순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아차 실수하면 팔의 관절이 상할 염려가 없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시 한참 망설이던 조소접은 퍼뜩 새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것은 무슨 해독약인지는 모르지만? 하림이 쥐고 있는 해독약을 뽑아 하림에게 먹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좋은 생각이다. 조소접은 즉시 허리를 굽혀 꼭 쥐고 있는 하림의 손바닥을 폈다.

 

그러자 하림의 손아귀에서는 까만 병이 나왔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하림의 관절이 상할까 염려해서 조심조심 손바닥을 펴고

 

해독약을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과 주위 일대가 불바다로 변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앗! 저 불!]


소스라치듯 놀라며 몸을 일으켰을 때는 십척이 넘는 불길이 맹렬한 속도로 활활 타오르며

 

조소접과 하림에게로 접근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구석에서 도옥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핫...... 하...... 아가씨 어떠시오?

 

본래 양몽환과 주약란을 태워죽이려고 몇달 동안 준비했는데 오늘 아가씨가


대신해서 타죽게 되었군! 미안하오.]

틀림없는 도옥의 음성이었다.


조소접은 소용돌이 치며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을 응시하면서 한편 뇌리 속에서는

 

다른 하나의 계산을 하고 있었다.

<나의 경신법(輕身法)인 팔보등공은 팔척의 높이를 날을 수 있다. 그런데 저 불길은 십척이 넘겠군......>
여기까지 생각하며 도옥이 어떠한 계산에서 불길의 높이를 십척으로 올려 놓았는지 그 비상한 꾀에 머리를
내저었다. 어디를 둘러보나 불길의 높이는 거의 십척을 균등하게 유지하며 맹렬히 접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 너머에서 다시 도옥의 말소리가 터져나왔다.
[아가씨 같은 미인이 타죽는다는 데는 이 도옥은? 실로 가슴이 아프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소.? 아가씨가
하림의 손에서 해독약을 꺼낼 때 그 병에 손을 대기만 하면 주위에 붙어둔 수백통의 기름통에 불을 지르는
도화선(導火線)이 장치되어 있다는 것을 꿈에도 몰랐을거요. 스스로 불을? 질러 타죽는 어리석은 행동을 선
택한 셈이요. 핫...... 하......]
[수 천번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너 도옥이 내가 이따위 불길에 겁낼줄 알아!]
소리치긴 했어도 사실 시시각각으로 거리를? 좁혀오는 불길에 볼이 뜨거워지는데는? 공포와 두려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급한 때일 수록 냉정하고 이성을 잃지 않는 조소접은 하림과 함께? 이 불길 속
을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에 머리를 짜내고 있었다.
이제 도옥의 악랄하고 간사한 꾀를 탓하기에는 시간이 늦었고 또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나와지는 불길은 도옥의 말대로 몇? 백통의 기름을 묻어 놓았는지 가끔? 기름통이 터지는 소리와 지독한
들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조소접과 하림이 서 있는 곳까지 불길에 휩싸일 지경으
로 불길은 사나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한 곳이라도 팔보등공으로 불길의 높이를 넘어설 수 있는? 곳만을 찾아 재빨리 눈길을 돌리던 조소접
은 이상하게도 한 곳이 전연 불이 붙지 않고 있음을 발견했다.?
정동방향(正東方向)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예민한 조소접은 그곳 한 곳만 불이 붙지 않는다는 것에 이상
함을 느꼈다. 사방이 불바다인데 유독 정동방향에만 불길이 없다는 것은 조소접 자신이? 그곳으로 달려나오
리라는 계산하에 어떠한 또 다른 함정이 아니면 복병이 대기하고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조소접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위급한 순간이? 다가온다 하더라도 분명히 또 다른 위험이? 잠복하고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된다면 호랑이 굴을 바로 찾아 들어간다는 것밖에 아무 것
도 아니었다. 차라리 몸 어느 부분에 심한? 화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불길 속을 뚫고 나가는? 것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뚫고 나갈 계획을 세운 조소접은 허리띠를? 풀어 하림을 열 십자 형으로 묶어 등에? 메었다. 그것은
두 손을 다 써서 하림을 안고? 나가는 것보다 한손만으로 하림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게 잡고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한 바로 그때 또 불길 너머에서 도옥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조소접 자신이 취하고 있는 행동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고 있다가 하는 소리임에 틀림없었
다.
[아가씨! 조심하지 않으면 등에? 멘 하림이 떨어질 것이오.? 그러면 새까만 재로? 되고 말 것이오...... 핫......
하...... 그러나 한 가지 이 도옥의 말을 들으면 살려주겠소.]
조소접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점차 다가오는 불길 속에서 도옥과의 말 상대로 지체할 수
도 없었다.
이렇게 다짐하고 아무 대답이 없는 조소접을 또 지켜보고 있었는지 다시 도옥의 방자스럽고 거만한 음성이
퍼졌다.
[아가씨가 하림과 함께 화상도 입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꼭 한가지 길 뿐이오. 그것은 이 도옥과 손을 잡
고 강호 무술계를 제패하는 길이오. 그러면 살려주겠소. 어떻소?]
[.................. ]
[대답을 안하는 것을 보니 생각해 보겠다는 뜻이 있는 모양인데 잘 생각해 보시오. 만일 이 도옥과 손을 잡
고 의좋게 지내면서 강호의 무술계를 제패하게 되면 이 무술계의? 천지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남쪽은 아가
씨가 지배하고 북쪽은 이 도옥이 지배하고...... 그렇지 않으면 둘이서 함께 천하를 지배해도 좋소.]


하고 말한 그 다음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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