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풍우연귀래

6. 모함에 몰린 양몽환

오늘의 쉼터 2014. 10. 22. 14:04

6. 모함에 몰린 양몽환

 

지그시 눈을 감은 양몽환은 하루 사이에 벌어지는 괴이한 일에 머리가 아팠다.

 

무슨 큰 오해나 모함으로 유원과 동숙정이 달려들고 다정선자라는 여인의 일로 해서?

 

등개우가 찾아와 무술계의 위급함을 알리는 것은 어딘가 이 세 명의 갖가지 사건이

 

일맥 상통한다는 것에 결론을 모았다.


그러나 아직은 어떻다고 결론을 내려 말할 시간이 아니었다.

 

그대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등개우가 조용한 적막을 깨뜨리고 입을 열었다.


[양대협께서는 신중히 생각하셔서 저희들의 의견대로 이번 기회에 다정선자의 정체를 밝히고

 

다시는 시끄러운 일이 없도록 하심이 제일의 선처인줄 압니다. 같이 가시겠읍니까?]


양몽환은 머리가 혼란해졌다.

[그것도 좋은 일이오마는, 한 여자의 초대연이 있었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무슨 사건이야 벌어지겠소?]


[그랬으면 좋겠읍니다마는 초대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다정선자의 미모와 정체에 현혹되어

 

술렁거리고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은 더 한번 그런 초대연이 또 없을까 해서 여기 저기 다니며

 

소란을 떨고 ...... 양대협께서도 생각해 보십쇼.

 

이 얼마나 시끄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몇몇 고수들이 양대협을 모시고? 의논을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뜻은 잘 알겠소이다마는 등형께서 보시다시피 여기 괴상한 말을 하는 두 사람이 있지 않소이까?

 

우선 이 사람들의 말이나 들어보아야 겠읍니다.]


그러자 등개우는 방 구석에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동숙정과 유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참 이상한 일이군요. 무슨 곡절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어찌 양대협같은 분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 수가 있겠읍니까?]

[헛 ...... 허 ...... 이 양모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 그러나 저러나 그들이 왜 이곳까지 왔는지,

 

그 진상이나 알아봤으면 좋겠소이다!]

하면서 그들이 거의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시간을 가늠해 보고 있는 바로 그때였다.

 

다시 문 밖에서 술렁거리며 하인의 인기척이 나는 것이었다.

[저 ...... 도사 두 분이 뵙자고 찾아왔읍니다.]


양몽환은 아직까지 이저럼 괴이한 일로 하루에 몇명씩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여하튼 오늘은 이상한 날이군. 하면서도 위엄있는 목소리로 하인에게 말했다.

[이 방으로 모시도록 해라!]


[예 ......]

하인의 대답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며 도사(道士) 차림의 사나이가 성큼?

 

들어오는 것이었다.

앞에 들어오는 도사는 좀 몸이 마른 편이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뒤에 들어오는 사나이는 우락부락하게 생긴데다가 등에는 빛이 번쩍이는 장검을 메고 있었다.


[어디서 오신 스님인지, 원로에 고생이 많겠소이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양몽환이 두 주먹을 앞에 모으고 정중한 예의로 두 명의 스님을 맞자

 

도사 차림의 스님도 팔장을 끼듯 하며 예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방 안에 벌어진 이상한 광경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등개우를 흘깃 바라보고

 

양몽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눈초리는 상당한 원한이 있어 찾아온 것 같았다.


[당돌하게 찾아와서 실례가 많소이다. 그런데 노형이 대협 양몽환이요?]


[듣기 매우 황송하오나 제가 양모인입니다. 그런데 무슨 말씀이라도?]


양몽환이 의아해 묻자 먼저 들어온 도사가 양몽환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노형이 대협 양몽환이라는 데는 이 소승이 정말 놀랬소!]


[잘못 아신 모양이군요. 듣기보다 그리 유명하지는 못하오!]


[내가 듣기로는 그래도 명색이 대협이라면 예의 범절은 물론 하는 행동도 대협다와야 한다고 알고 있소.

 

런데 막상 와서 보니 당신이 대협이라는 것에 말문이 막히오.]


양몽환은 너무 기가 막혀 어이가 없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액운(厄運)이 겹치는 날이라고? 여겼다.

 

가만히 생각해도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찾아온 두 명의 스님도 동숙정이나 유원처럼 어떤 오해나 모함에 걸려 찾아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몇년간 두문불출한 자기가? 눈꼽만큼도 남에게 원한을 산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양몽환은 침착하게 그들의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그것이 어디까지나 누구의 모함이나 오해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남에게 끌릴 것이나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없는 정정당당한 양몽환으로서는

 

그 누구의 모함인지 그 모함의 주동자를 증오하면 했지 이곳까지 찾아와 따지는 사람들을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 진상을 규명하는 것만이 그들을 위해서

 

양몽환 자기가 취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이라고 단정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어떠한 일을 당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고정하시고

 

이 양모인에 대한 일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소이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일일이 따져서 그 진가(眞假)를 규명해야만 되겠소.

 

그렇지 않고는? 이대로 물러갈 우리가 아니오!]

여차하면 번뜩이는 장검으로 양몽환의 목을 댕강 날려보낼 기세였다.


[그보다 먼저 나는 이름을 일덕(一德)이라 하는 소림사(小林寺)의 중이오.]


[아하! 그렇소이까? 저와 소림사와는 여러가지로 인연이 많소이다.]


[인연이 많은 것을 따지러 온 것이 아니오.]


[그건 그렇고 소림사의 여러 고수님들은 안녕하신지, 몇년 동안 찾아뵙지 못했는데요?]


하고 안부를 묻는 양몽환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일덕은 자기가 할 말을 계속해서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 알바 아니오. 한가지 물을 것이 있는데 숨김없이 대답하겠소?]


양몽환은 속으로


<이 무례하고 괘씸한 놈들......>

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이 묻기를 기다렸다.

이왕 벌어진 오해라면 자세하게 대답해서,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모함에 빠졌다면?

 

모함 속에서 건져주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다짐했다.

 

그러자 양몽환은 얼마든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제가 아는대로 대답해 드리겠읍니다.]

[그러면 좋소. 양대협의 명예를 걸고 대답하지 않으면 후회가 될 것이오!]


[물론입니다. 아직 누구에게 거짓으로 말을 한 일은 없소이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소이다.]

살기가 등등한 두 명의 대사 앞에서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 양몽환이었다.

 

실제로 무슨? 죄를 지었다면 모르지만 추호도 하늘에 부끄러운 일이 없는 데에야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다 양몽환? 자신의 무공은 승려 백 명이 달려들어도 솜털 하나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심오해졌다.

 

그런 그가 무엇이 두렵고? 또 천하에 부끄러울 것이 있겠는가?

 

자기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모함을 한 주인공을 증오한다면 몰라도

 

자기를 찾아온 사람들을 증오하거나 솜털 하나 다치게 할 마음이 없는 양몽환이었다.


[그러면 묻겠소. 누차 이야기 하지만 거짓이 있으면 용서치 않겠소.]


재차 다짐하는 승려의 위세당당한 말에 정작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은 등개우였다.

 

듣다듣다? 아니꼽고 메스꺼운 모양이었다.

[야! 이놈들! 네 놈들은 눈깔도 없고 귓구멍도 없느냐?

 

양대협? 대선배 앞에서 이놈들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구나!]


하면서 앉았던 자리를 박차며 눈썹을 곤두세우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당황한 사람은 역시 양몽환이었다.

지금 등개우의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소림사의 승려들이 어떠한 오해를 품고? 왔는지도 모르고

 

그에 대한 해명을 말하기도 전에 등개우와 싸움이 벌어져 어느 한편이라도 부상을 입고 물러간다면

 

자기의 명성은 그대로 오해로 가득 차서 강호에 떠돌아 다닐 것이 염려스러웠다.


등개우의 허리를 끼어 안으며 애원하듯 말리는 것이었다.


[등형! 등형의 심정은 잘 알겠소. 이 양모인이 처리할 일이니 등형은 잠깐만 참으시오!]


간곡히 만류하는 바람에 등개우는 그 자리에 주저 앉으면서도 끓어오르는 화가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굴러온 중놈의 새끼들인지는 모르겠다만 다시 한번 그 따위 주둥이를 놀리면

 

주둥이를 찢어버리고 말테다......]

씩씩거리며 여차하면 다시 뛰어 일어날 기세로 엉거주춤 앉는다.

그러나 두 명의 도사는 싸늘한 시선으로 등개우를 노려보고는 시선을 거두어 양몽환에게로? 돌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앞서 들어온 도사가 입을 여는 것이었다.

[건방진 놈이군! 아무 일에나 날뛰는 놈은 조금 후에 처치해 주마. 그보다 우선 ......]


또 다시 등개우와 도사 사이에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양몽환이 두 손을 벌려 만류하면서

 

간신히 그들을 막았다.


[소림사의 도사님은 고정하시고 말씀을 하십쇼.]

[이 소승은 이번에 소림사의 명을 받고 본원(本院)으로 가는 길에 이상한 일을 두번씩이나 당했소.

 

그런데 그 두 번의 이상한 일이 소위 양대협이라는 양몽환과 관계가 있는 일이었소.]


[계속하십시오. 무슨 일인지 들어나 봅시다.]

[소승이 십 여일 전 강서(江西)의 노가주(盧家洲)라는 곳을 지나다 내가중수법(內家重手水法)에

 

상처를 입은 무예계의 고수를 만나게 되었소.

 

있는 절기를 다하고 영단(靈丹)을 먹였지만 그때는 이미 내장(內臟)이 찢어져 있을 때여서

 

끝내 구하지 못하였소.]

[그것이 이 양모인과 무슨 관계가 있소이까?]

[관계가 없으면 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겠소? 그 사람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시오?]


[제가 옆에 있지 않았으니 어찌 알겠소?]

[흥! 그럴 것이오. 그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면서 남긴 말이

 

<양몽환! 그 놈을 죽이지 않으면 나같이 죽는 사람이 몇 십명이 될지 모르오.

 

제발 그 놈을 처치해서 다시는 무예계에 살생이 없도록 ......>

 

해달라고 하면서 말을 맺지 못하고 눈을 감았소!]


[뭐라구요?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요. 이 양모를 죽여야 한다니 ......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니오. 다시 얼마를 가다 여기 이 도사를 만났소!]

하면서 일덕은 자기 뒤를 따라 들어온 도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바로 지금 여기 계시지만 이 빈도가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를 듣고,

 

? 달려갔을 때는 괴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는 중이었소.

 

여자는 옷이 다? 찢어진채 신음하고 있고 그때 마침 저 도사께서?

 

그 여자를 구해주고 있더란 말이오.

 

자세한 이야기는 도사께서 말씀해 보시오.]

일덕 대사의 지명을 받은 도사 차림의 사나이는 헛기침을 하며 한 걸음 나섰다.


[이 빈도는 남악(南嶽) 현묘관(玄妙觀)에서 도(道)를 닦고 있는? 사청(詞請)이라는 사람인데

 

지금 저 도사님께서 말씀드린 대로 겁탈을 당한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갔었소.]


[그것이 이 양모인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씀이시오?]


양몽환이 위엄있는 음성으로 말하자 사정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듯이 손을 저었다.


[사건이 벌어진 자체로서는 당신과 상관었는 것 같지만 그 여자가 마지막? 숨을 쉬면서 하는 말이

 

<양몽환이라는 자가 겁탈을 하고 요혈을 찔렀어요!> 하더란 말이오.]


[뭣이라고요? 이 양몽환이가?]


[암, 그러다 뿐이오? 꼭 잡아서 원수를 갚아달라고까지 했소.]

[그러면 스님은 왜 도망가는 자를 쫓지 않았소이까?]

[생각해 보시오. 지금 숨이 끊어지려는 여자부터 구해야지. 그 놈을 쫓아갈 수 있겠소?]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도망가는 양몽환이라는 자의 얼굴을 보았겠구려!]


[조금만 일찍 갔었더라면 보았을텐데 한발 늦어서 보지는 못하였소이다.]


양몽환은 더 생각하기도 싫은 듯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일덕 대사가 힐난하듯 소리치는 것이었다.


[양대협은 잘 들었겠지요?

 

이래도 아니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오.

 

죄를 졌으면? 그 죄만큼 용서를 빌고 벌을 받는 것이 무술계 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지키는 법률이오. 속히 앞으로 나서서 이 칼을 받으시오.]


그러나 양몽환은 기침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하룻동안 일어난 여러가지 이상한 일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신도 유원의 횡설 수설, 수년만에 만나는 사매 동숙정의 정신착란과 일덕 대사와 사청?

 

대사의 돌연한 내방 ......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오해로 빗어진 사건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누군가가 사건을 만들고 조작하여 양몽환 자기에게 해를 입히려는

 

무슨 중대한 모략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다면 그 배후에서 흉악한 일을 꾸미고 있는 자는 과연 누굴까 ......>


생각에 잠겨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 양몽환을 뚫어지게 쏘아보는 일덕 대사는 좀 음성을 낮추었다.


[이 빈도는 그래도 중생을 구한다는 승려로서 도(道)를? 닦는 몸이오.

 

그러나 이토록 사람을 겁탈까지 하는 자는 그대로 보고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불의(不義)에는

 

냉정하단 말이오. 아시겠소?]


[............]

[양대협께서는 만천하가 우러러 볼 만큼 인덕(人德)과 무예가 훌륭하고

 

또 도량도 넓은 사람인 줄 알았지 설마 인간으로서는 차마 저지르지 못할 일을 공공연히 행하는

 

그렇게 악독한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소.

자, 솔직이 참회하고 이 칼을 받으시오!]

영락없이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무명의 대사에 의해 죽음을 당해야 한다면?

 

양몽환으로서는 다시 씻을 수 없는 치욕적인 일이다.

 

그러나 양몽환은? 그때까지도 냉정히 앉아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방안에는 잠시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그 침묵을 지키기 어렵다는 듯이 아니면 초조함과 불안을?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등개우가 침묵을 깨고 말았다.

[여보쇼. 대사님! 설사 당신의 말씀대로 여기 계시는 양대협께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치더라도

 

어찌 목숨이 끊어지는 사람에게서 들은 말만 믿고 양대협을 벌할 수 있단 말이오?

 

내가 생각하기에도 당치 않은 일이오.

 

그래도 진정 벌하겠다면 증거를 대시오. 증거를!]


하고 윽박지르듯 하는 말에 일덕 대사는 합장을 하며 냉정히 외치는 것이었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법이오.

죽은 사나이나 겁탈을? 당한 여자도 죽음 앞에서 양몽환이라고 외쳤소.

 

그래도 아니란 말이오?

 

이보다 더 중요한 증거가 어디 있겠소.

 

그러니 양대협께서도 이에 이 칼을 받기 전에 바른 대로 말씀하시오.]


그제야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던 양몽환의 눈이 떠졌다.

 

그리고 천천히 입이 열렸다.


[두분 대사님은 잠시 진정하시고 이 양모인의 말을 들어 보시오.

 

지금 아무리? 변명을 한다 해도 두분 대사님이 믿지 않을 것이오마는 이 양모인은

 

수년간 강호를 떠나 수월산장에서만 두문불출 지내왔소.

 

그런데 오늘 여러가지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또 살인까지 했다하니?

 

이 양모인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일 뿐이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는 이 양모인의 처도 행방불명이 되었소.

 

이 모든 것을 미루어 생각해? 볼 때 누군가가 이 양모인을 모함하는 것 같으오.]


[그러면 당신은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단 말이오?]

[물론이오. 내 어찌 거짓말을 하겠소?]


그러자 일덕 대사는 방 구석에 쓰러져 있는 유원과 동숙정을 가리키며 재차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거짓말 마시오.

 

지금 저기 쓰러져 있는 사람들도 보아하니

 

당신의 악랄한 수법에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하오.

 

그래도 아니란 말이오?]

양몽환은 점차 입장이 난처해지고 갈데 없이 모든 누명을 뒤집어 쓰게끔 일은 벌어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유원과 동숙정이 왜 저 지경이 되었는지

 

그 내막을 모르는 일덕 대사와 사청 대사로서는 능히 오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양몽환은 우선 대사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살인자의 누명도 벗어야 했다.


그래서 유원과 동숙정이 찾아온 것부터 요혈을 짚기까지의 모든 일을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그러자 두 명의 대사는 틀림없이 양몽환의 짓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그들이 여기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울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바로 맞았소. 사실 당신이 그따위 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왜 여기까지 왔겠소?]


갈수록 태산이었다.

 

손바닥처럼 뒤집어 보일 수도 없는 일이고 보니

 

오도가도 못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범인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얼마를 더 생각하던 양몽환은 마지막으로? 동숙정이 같은 곤륜파의 제자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사생활(私生活)을 자세히 들려주는 것으로서 결백을 호소했다.


그래도 그들은 조금전 보다는 누그러졌지만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태도로

 

한 마디 더 묻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저 사람들의 막힌 요혈을 풀어주시오.

 

그래서 당신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들어봅시다.]


[아, 그것은 어렵지 않소마는 지금 저 사람들은?

 

어느 고수의 손에 의해 요혈을 짚혀 정신착란(精神錯亂)이 되어 있소.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고 행동이 거칠기가 말이 아니오.]


[변명 마시오.

 

만일 그들이 입을 열면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워서 요혈을 풀어주지 못하는 것 아니요!]

[좋소. 두분 대사님이 정 이 양모인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그들의 요혈을 풀어는 주겠소만

 

나중에 그들의 거칠은 행동으로 이 양모인을 원망하지는 마시오.]

하며 양몽환이 몸을 일으켜 동숙정과 유원이 있는 곳으로 몇 걸음 옮기던 바로 그때

 

또 다시 문 밖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이었다.


[작은 아씨께서 돌아 오셨읍니다.]

하인의 음성이 들리고 뒤이어 백의의 아름다운 여인이 약간 초췌해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요홍이었다.


지금 이요홍은 악양성에서 유원이 보낸 늙은 노인의 전갈로 행방불명된 심하림을 찾으러

 

길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막 방 안으로 들어오는 이요홍을 돌아다 보던 양몽환은 유원과 동숙정을 향해

 

가던 몸을 다시 돌려 이요홍을 맞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찾지 못하였소?]

하는 물음에 이요홍은 방 안에 늘어선 여러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피듯 보고는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예, 그 어느 곳에서도 림매(琳妹)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어요.]


[음 ......]

[악양성까지 나가 보았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대요.]

깊은 시름에 잠긴듯 한 일자로 입을 꽉 다문 양몽환을 볼 면목이 없다는듯

 

눈을 내리 깔고 있던 이요홍은 방 구석에 있는 도사 차림의 동숙정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아니, 동(童) 언니가 아니에요?]

가늘게 외치고는 양몽환과 여러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다시 소리를 낮추어 묻는 것이었다.


[아니 여보, 여기 모인 분들은 어디서 오셨어요? 그리고 동 언니는?]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양몽환은 주위를 한번 휘둘러 보고는 이요홍을 가까이 부르는 것이었다.


[당신은 머리가 영리하니까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것이오.]


[무슨 말씀이신지요?]

조급하게 묻는 이요홍의 말에 양몽환은 시선을 돌려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이요홍을? 소개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여는 것이었다.

[저기 있는 신도 유원이나 동사매가 정신이 조금 이상해져 가지고는 나보고 원수라고 하고

 

누구를 죽였다고도 하고 도대체 횡설수설하는 것이 그들의 말만으로는 그 말 뜻을 종잡을 수가 없소.

 

그리고? 또 여기 계시는 두 대사님도 내가 길 가는 나그네를? 죽이고 여인에게 손을 대고

 

나중에는 죽게 했다는군요.?

 

당신도 잘 알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두문불출 중이 아니오?]


이요홍에게 자기의 결백을 밝혀 달라는듯 말하는 양몽환의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듣고 있던 이요홍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얼굴 표정을 바꾸어 그 누구에 대한 분노인지 눈썹을 치켜 올리는 것이었다.


[당신은 아무 염려 말아요.

 

지금 모든 일을 꾸미고 있는 자는 바로 금환이랑 도옥이에요.]

하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깜짝 놀라는 사람은 바로 양몽환이었다.

[뭣이? 그럼 도옥이 살아 있단 말이오?]


[예, 틀림없어요.]


[당신이 만나 보았소?]

[도옥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도옥과 똑같이 생긴 화신(化身)을 만났어요.]

[화신?]


[그래요. 얼굴이나 복장, 그리고 금환까지 도옥과 똑같았어요.

 

만일? 도옥이 죽어버렸다면 그런 화신들이 있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는 화신(化身)을 쫓아 달려가다 잡지 못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양몽환의 생각은 옛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도옥이 귀원비급을 탐내 깊은 절벽 밑으로 떨어진 후 그의 시체를 찾지는 못했지만

 

아무 흔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도옥이 살아 있다는 이요홍의 말에 매우 놀라면서도 한편,

 

그보다 절세의 비보(秘寶)인 귀원비급(歸元秘及)의 행방이 더욱 궁금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도옥이 절벽 밑에서 살아나왔다면 그 밑에 떨어졌던

 

귀원비급도 분명히 그의 손아귀에 있을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었다.


그러니 물어보지 않기에는 너무나 귀중한 보배였다.


[그럼 그 귀원비급도 도옥이 가졌겠군!]

그러자 이요홍이 한숨을 가만히 내쉬며 말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도옥이 갖고 있을 거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와 똑같은 화신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사실이 그러했다.

 

도옥과 똑같은 화신이 있다면 그 화신은 틀림없이 귀원비급에 기재된 무공으로

 

도옥이 만들어낸 것임에는 더 의심할 바가 없는 일이었다.

양몽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폈다.

 

이제는 모든? 것이 새로와졌다.

 

유원과 동숙정, 그리고 두 명의 대사가 찾아오게 된 사연이 도옥의 행실이라는 것을

 

모든 상황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두 명의 대사가 품고 있는 오해를 풀어줄 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양몽환으로서는 그따위 자질구레한 오해같은 것에 생각을

 

고정시키고만 있을 몸이 아니었다.


앞으로 더욱 번잡하고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 것을 예감했다.

 

그러니 더 이상 강호를? 등지고 수월산장에서


자연을 벗삼아 인생을 즐기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도옥이 진정 살아 있어서 지금도 여전히?

 

그 악랄한 수법으로 사람을 괴롭히고 자기를 모함한다면,

 

그것이 점점 커져서 잔잔하던 호수에 돌을 던짐과 같이?

 

평화스럽던 강호 무술계에 일대파란을 일으킨다면 마땅히


그 대비책을 강구해야만 할 양몽환이었다.


그만큼 양몽환은 현재 무술계의 맹주(盟主)로서

 

그의? 확고한 지위와 쟁쟁한 무공은 군웅 호걸들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한 양몽환이 도옥의 재출현을 방관만 하고 일대파란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무엇인가 준비를 해야 하고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도옥이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만일 그것이 여의치 못하면 될 수 있는 대로 소수의 인명(人命)만 피해를 입는 것으로 그쳐야 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나는 수년 전의 무술계, 끊임없이 일어나는 살생, 군웅(群雄) 간웅(奸雄)들의 할거,

 

시 그 처참한 싸움이 재현된다면...... 양몽환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 앞으로 강호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


머리가 지끈지끈 쑤셔오고 빠개지는 듯한 아픔을 어금니로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고 얼굴을 들었다.

[두분 대사님과 등형께서는 제 처의 말을 잘 들었을 것이오.?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던 나는 이제부터 해야할 일이 있소이다.

 

자질구레한 오해에 묶여있을 시간이 나에게는 이제부터 없게 되었소.

 

나도 나의 명예와 지위를 걸고 여러분들이 바라는 바의 일을 해야겠소!]

비장하리만금 엄숙한 표정으로 한 마디 힘을 주어 말한 양몽환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는 이요홍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지금 곧 마차를 준비해서 노부모(老父母)님들을 모시고 시골로 피신하시오.]


[예, 분부대로 하겠어요.

 

그러나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도옥이 아버님만은 두려워 하고 있으니 혹시 ......]


강호에 파란을 일으키지는 못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요홍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것은 이요홍의 아버지인 이창란(李滄瀾)은 천용방(天龍幇)의 방주(幇主)로 있을 때

 

도옥을 어릴 적부터 키워 무공을 가르쳤기 때문에 도옥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록 단혼애(斷魂涯)에서 천용방이 주약란(朱若蘭)에 의해 전멸을 당했을 망정

 

도옥이 하나쯤은 설복할 수 있는 이 창란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고개를 저었다.


[안될 말이오. 비록 장인(丈人) 어른이 무공이 강하다 해도 그것은 옛 말이오.

 

지금 귀원비급의 무공까지 완전히 터득한 도옥이 누구의 말인들 들을 것 같소?]


옳은 말이었다.

[당신은 아무 염려말고 노부모님을 모시고 곧 떠나시오.]


[그럼 당신은?]


[나는 다시 연락을 취하겠소.]


남편인 양몽환의 말에 순종하는 이요홍은

 

그 길로 마차를 준비하고 늙은 시부모님과 함께 길을 떠났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길을 떠나면서 이요홍은 하림을 걱정했다.

[림매(琳妹)가 걱정되어요.

 

당신이 찾을 시간이 없으면 제가? 부모님을 안전한 곳에 모시고 다시 찾으러 떠나겠어요.]

[염려마오. 내게도 생각이 있소.]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머리를 숙여 보이고 남편인 양몽환 앞을 떠났다.

한편, 이때까지 이요홍과 양몽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일덕 대사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만 싶었다.


순전히 오해였다는 것이 그것도 도옥이란? 자의 모함에 걸려 빚어진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양몽환을 죄인 다루듯 한 것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일덕 대사는 모든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양몽환의 대협다운 기품과 또 대범한 태도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 더 오래 지체한다는 것이 양대협을 욕되게 하는 일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덕? 대사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양대협께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껄였던 이놈을 당장 벌해 주시오.

 

누군가의 모함에 빠진 것도 모르고 양대협을 의심한 죄가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자 장승처럼 버티고 섰던 사청 대사도 엎어지듯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것이었다.

[이놈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벌해 주소서 ...... ]

사태가 완전히 뒤 바뀌어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양몽환은 대협답게 싱긋이 웃는 것이었다.

[두분 대사님은 일어나시오.

 

인간 세상에 그러한 오해는 부지기수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데 어찌 허물이 되며 또 벌하겠소? 속히 일어나시오.]


부드럽고 위엄있는 말에 일어난 두 대사는 떨리는 음성으로 다시 용서를 빌고는 하직을 고하는 것이었다.

[대협의 은혜를 길이 간직하고 소승은 떠나겠소이다마는 대협께서 하시는 일에 우리같은

 

소승도 필요하시다면 어느 때라도 부름에 응하겠소이다.]

[고마운 말씀이오. 길도 멀고 하니 속히 가시오. 가시는 길에 옥체 보중하시고......]


[나무아미타불 ......]

주먹을 쥐며 합장하고 총총히 사라져 갔다.

두 명의 대사가 밖으로 나간 후 사라져 가자 양몽환은 등개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등형께서도 보셔서 아셨겠지만 사태가 심히 위태로와졌소.

 

등형이 원하는 다정선자 의논회(議論會)에 참여치 못하게 된 것이 유감이오.

 

돌아가셔서 보신대로 춘부장(椿府丈)님께 고(告)하시면 양해하실 것이오.]


[잘 알겠읍니다. 양대협께서 하신 말씀이 어떠한? 뜻인지도 알았읍니다.

 

 

다정선자 건(件)은 저의 가친(家親)께서 잘 처리하실 것입니다.]


[그러시면 더욱 다행한 일이오.]

[그런데 양대협님! 한가지 부탁이 있읍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래도 다정선자 회의(會議)에 가자는 부탁은 아니겠지요.]


[아니 그럴리야 ......]

[말씀해 보시오.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슨 부탁이라도 ......]

[부탁드릴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등개우(鄧開宇)를 양대협의 제자로 삼아주시면 대협께서 하시는 일을 힘껏 도와 드리겠읍니다.

 

부디 버리지 마시고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너무나 의외의 부탁에 양몽환은 한참 등개우를 내려다 보고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등형의 말씀은 고맙소이다마는 어찌 귀중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나와 같이 싸움터에 나서겠다는

 

말씀이오?]


[양대협님! 인간의 생사(生死)는 천명(天命)이라고 했읍니다.

의(義)로운 일에 목숨을 바치는 것을 어찌 주저하며 두려워 하겠읍니까?]


간곡한 부탁을 끝내 사양하지 못한 양몽환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진정으로 고맙소이다. 함께 일하십시다.]

이와 같이 해서 등개우는 양몽환 대협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제자가 된 등개우는 양몽환의 분부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감수(甘受)할 것을 맹세했다.

일덕 대사와 사청 대사가 떠나고 이요홍과 노부모님이 떠난 수월산장은 하인과 동숙정,

 

유원 그리고 등개우와 양몽환만이 남았다.

몇 사람이 떠나자 수월산장은 다시 적막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서로 목적이 있어 왔다가 새로운 목적을 위해 길을 떠나야 하는 무술인들의 기구한 운명이

 

비단 어느 한 사람에게만 그칠? 것인가,

 

장차 벌어질 위기를 예감하고 사랑하는 처와 노부모를 떠나 보내는 양몽환의 심정은

 

행방조차 알길 없는 하림의 걱정 때문에 더더욱 심란했다.

 

그러나 대사(大事)를 앞에 놓고 어찌 자신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슬픔과 번뇌를 잊어버리려는듯 고개를 두어번 가로 흔든 양몽환은

 

언제나 똑같은 음성으로 하인을 불렀다.


[여기 계신 등형을 아랫 방으로 모시고 잠시 쉬시도록 보살펴 드려라.

 

그리고 간단한 식사와 마차도 ......]

하고는 등개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등형은 잠시 쉬시오. 날이 어둡기 전에 떠나야 할 것 같으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읍니다.]


등개우의 정중한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하인은 등개우를 아랫방으로 안내했다.


아랫 방은 넓은 뜰을 가로 질러 아름다운 수목이 우거진 동산에 자리잡고 있었다.


깨끗한 방에 잘 정돈된 집기(什器)가 더 한층 방의 분위기를 은은하게 해 주었다.


아담하게 꾸며진 방은 어느 한 곳도 정갈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둥그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꽃병과 그 병 속에 꽂혀진 이름모를 꽃 몇 송이,

 

그리고 하안 벽은 수월산장의 주인인 양몽환의 품격을 말해주는 것 같아

 

더욱 대협다운 품위를 느낄 수 있었다.

강호 무술계에 비교적 진출이 늦은 등개우로서는 양몽환의 위인됨을

 

그리고 그의 초인간적인 무공을 직접 대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전하는 말로써 그 대강을 추측할 수는 있었다.

일찌기 양몽환은 현도관(玄都觀) 주인인 일양자(一陽子)와 혜진자(慧眞子)?

 

그리고 옥영자(玉靈子)가 주축이 된 곤륜파(崑崙派)의 제자로 무술계에 발을 들여 놓았으나

 

명(命)을 어겼다는 죄로 곤륜파에서 추방되고 주약란과 조소접(趙小蝶)으로부터

 

가공할 만한 귀원비급의 무공을 전수받아 당시 구대문파(九大門派)를 휩쓸

 

천용방의 방주 이창란을 굴복시키고 맹주(盟主)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혁혁하고 찬란한 무공과 도량이 넓은 기풍은 어느 다른 고수가?

 

감히 따를 수 없을 만큼 거의 신비에 가까왔다.


그러나 양몽환은 피비린내 나는 강호 무술계에서 여러가지 시시비비가 없어지고

 

만천하가 평화스럽게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맹주의 자리를 아무 욕심없이 버리고

 

수월산장으로 돌아와 자기 자신부터 자연인(自然人)의 생활을 몸소 실천해 오던 중이었다.


그러던 것이 도옥의 출현으로 평지풍파가 일어나 다시 몸을 무술계에? 던져야 한다는 것은

 

양몽환 자신 뿐 아니라 천하 무술계의 비극이기도 했다.


원하지도 않던 풍파에 군웅들과 다시? 생사를 겨루어야 하는 당대의 절수인?

 

고수 양몽환의 무거운 심정을 어느 누가 짐작할 수 있으랴.

더구나 양몽환이 무술계에서 종횡하던 모습을 보지 못한 등개우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인이 물러가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방안에 단정히? 앉아 운기조식(運氣調息)하던 등개우는 이러 저러한 생각을 하는 데에 여념이 없어

 

옆에서 양몽환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다 양몽환의 가벼운 인기척에 화다막 정신이 들었다.

[아! 언제 오셨읍니까? 그만 혼자 생각에 잠겨서 오시는 것도 몰랐읍니다.]


[허...... 허...... 뭐 좋은 생각이라도 한 모양이군요......]

[양대협님을 생각하고 있었읍니다......]


[나를 ...... ?]

[다시 풍진 속에 뛰어드실 양대협님의 심정이 어떠하실까 하고......]


[감개가 무량하기 보다 인생 살아가는 것이 너무 파란이 많다는 생각뿐이오!]

[대협님!]


[그만하고 자 어서 길을 떠납시다.]


마음이 괴롭다는듯 등개우의 말을 막으며 떠나기를 재촉했다.

양몽환의 뒤를 따라 수월산장의 육중한 대문을 나오자

 

그곳에는 건장한? 한 필의 말에 포장 마차가 메어진채 떠날 차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등개우는 양몽환을 불렀다.

 

그것은 방 안에 요혈이 짚힌채 쓰러져 있는? 유원과 동숙정을 염려해서였다.


[등형은 염려 마시오. 이미 마차에 태웠소. 등형도 속히 오르시오.]


[아닙니다! 양대협님이 먼저 오르십시오. 저는 말을 몰겠읍니다.]

 

[그것도 등형은 염려 마시오.

 

이 말은 무술계의 어느 고수 한 분이 나에게 주신 말인데

 

옆에서 몰지 않아도 능히 갈 길을 가는 말이오.]


등개우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과연, 양대협다운 일이며 그 대협에 그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앞만 볼 수 있도록 포장의 한쪽 끝을 말아올린 마차 안에는 양몽환의 말대로 유원과 동숙정이

 

그대로 요혈이 짚힌채 평화스럽게 잠을 자고 있었고 말은 채찍질해 몰지 않았는데도

 

말발굽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말이 어느 정도 달려나가는 것을 보고 있던 양몽환은 등개우를 부르며 동숙정을 가리켰다.

[등형! 아까도 잠시 말을 했소만 여기 이 여도사는 이름은 동숙정(童淑貞)이라 부르오.

 

원래 그녀와 나는 곤륜파의 제자로서 남달리 정의가 두터웠소.

 

그래서 나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동사매를 누님처럼 따랐다오.

그러나 동사매는 금환이랑 도옥(金環二郞陶玉)이란 자의 꾀임에 빠져

 

그 자에게서 씻지 못할 더립힘을 당하고 오늘까지 그 원수를 갚으려고 찾아다니던 중이었소......]


하고 말을 중단하자 등개우가 알겠다는 듯이 그 다음을 잇는다.


[그래서 도옥이란 자의 꾀임에 빠져 정신마저 혼미해져서 양대협님을 원수라고 하는군요.]


[그런 모양이오. 어떠한 수법으로 요혈을 짚혀 저토록 정신까지 잃었는지

 

그 수법이 악랄한 데는 소름이 끼칠 뿐이구려!]


[언제쯤 제 정신이 들겠읍니까? 대협님!]

[글쎄 그것은 나도 모르겠구려.]


동숙정과 유원의 정신 이상이 같은 것으로 보아 한 사람의 수법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어떠한 수법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양몽환과 등개우 그리고 동숙정과 유원을 태운 마차는 산을 돌고 물을 건너

 

어느덧 동무령(東茂嶺)을 지나고 있었다.

동무령을 벗어나면 험악한 길이 끝나고 탄탄한 대로(大路)인 관도(官道)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양몽환 일행을 태운 마차가 한참 관도 위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마차가 달리고 있는 맞은편 관도에서부터 한 필의 말이 곤두박질하듯 질풍같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말 잔등에는 흑의의 괴한이 말 잔등에 몸을? 차악! 엎딘채 양몽환이 타고 있는 마차와

 

정면으로? 충돌할 기세로 호기있게 몰아쳐오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탄 마차의 속도나 앞에서 달려오는 말의 속도는 어느 쪽이 더 빠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휘익!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 날 뿐 일조일초 위급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꽝! 하고 충돌하는 그 순간!

 

몽환의 몸이 말아 올린 포장사이로 빠져 나가는가 했을 때는

 

이미 앞에서 달려드는 말고삐를 낚아챈 후였다.

한편, 등개우는 콩알만해진 심장을 진정시키며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과연, 대협은 대협이시군!>

그리고는 몸을 날려 양몽환 옆으로 뛰어 내렸다.


마상(馬上)에는 멀리서 본대로 흑의의 괴한이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엎드려 있는 사나이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약간의 진기를 돋우고 사나이의 등을 흔들었다.

 

? 그러자 엎드려 있던 사나이가 그대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제야 양몽환은 사나이가 어떠한 계략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음! 어느 고수에게 상처를 입었군!]

하고는 사나이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끌어안았다.

 

그것은 양몽환 자신의 진기를 사나이의 가슴을 통해 불어넣어 우선 살려야겠다는 일념에서

 

취해진 행동이라는 것을? 무술계의 초보자인 등개우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정체 불명의 사나이를 끌어안고 있던 양몽환은 어느 정도 사나이가

 

숨을 내쉰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급하게 외쳤다.

[당신도 운기 조식하시오! 나를 힘껏 끌어안고 말이오.]

그러나 사나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꺼져가는 숨을 간신히 이으며

[누구...... 신지...... 고맙......? 소만...... 나는 상처가? 중...... 해서

 

살지? 못...... 하오...... 빨리......? 양대협에게 가서...... ]


하고 다시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은 또 무슨 위급한 사건이 벌어진 것을 짐작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내가 바로 양몽환이오. 우선 운기하시오.]

하는 말에 사나이는 눈을 뜨려다 뜨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당신...... 바로...... 당신이...... 그러나 아니오...... 나는? 틀렸소......

 

양대협...... 께서는 염라묘(閻羅廟)...... 로 가시......]


마지막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사나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무슨 일이 벌어져서 염라묘로 가라는 것인지,

 

또? 이 사나이는 누구며 어떤 연고로 자기를 찾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양몽환으로서는 위급한 소식보다 사나이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것은? 사나이가 말할 수 있는 최후의 힘으로 운기했더라면 양몽환의 진기와 혼합되어

 

살아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몽환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아까운 사람을 죽였군! 차라리 말을 못하게 하고 힘을 썼다면......]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통한 일이었다.

사실 생명을 아끼리라고 결심한 바였다.

 

그래서 비록 적이라 해도 살상을 가려서 하고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죽음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구하려는 것이 양몽환의 각오였다.

 

그것이 지금? 눈 앞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된 것에 자기의 경솔함을 뉘우칠 뿐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등개우는 다시 한번 양몽환의 사람됨에 또 한번 감탄해 마지 않았다.


[무슨 급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 한마디를 나에게 하려고 생명을 바꾸다니......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군......]

못내 애석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장검을 뽑아 들고? 길가에 구덩이를 파는 것이었다.

 

그러자 등개우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무엇을 하십니까?]

[어찌 그냥 가겠소. 여기에 묻어라도 주어야지!]

그제서야 감탄을 연발하며 등개우도 검을 뽑아들고 땅을 팠다.


삽시간에 구덩이가 파졌다.

 

구덩이가 다 파지자?

 

양몽환은 사나이를 조심스럽게 두 팔로 안아?

 

구덩이 속에 눕히고 등개우에게 흙을 덮도록 했다.

그리고 양몽환은 바위를 굴려 덮은 흙 위에 올려 놓았다.


그다음 천강지력(天강指力)의 무공으로 손가락에 힘을 주어 위에 다음과 같은 여섯 글자를 썼다.


<無名英雄之墓>

훌륭한 비석이 된 바위 앞에서 양몽환과 등개우는 주먹을 쥐고 합장하듯 읍했다.


무명의 사나이에게 마지막 예를 올린? 후 양몽환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얼굴을 돌려 등개우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등형! 오늘 하룻동안에 벌어지는 일로 보아 아무래도 이 강호에? 일대 풍파가 일 것 같소.

 

오년 전의 풍보다 더욱 처참하여 많은 피를 흘릴 것만 같소!

 

우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염라묘로 갑시다.]


[이 등개우는 대협님의 말씀을 따르겠읍니다.

 

?그런데 이번 풍파가 아무리 처참하다 해도 대협님이 나서는 이상 무슨 큰 일이 벌어지겠읍니까?]

[모르는 말씀이오.

 

등형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모양이지만 이번에 나타난 도옥이란 자는

 

나도 가히 적수가 되지 못하오!]

[예? 적수가 못된다구요? 겸손의 말씀을......]

사실 등개우 뿐 아니라 어느 고수라도 양몽환의 무공이 천하 제일이라고 믿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옥이란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등개우가 놀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이오. 등형은 잘 모르겠지만 정말 도옥이란 자는 그 악랄하기가 비길데 없는 자요.

 

하여간 마차에 오릅시다. 차차 이야기하면 등형도 믿게 될 것이오.]


등개우가 양몽환의 말대로 마차에 오르면서도 계속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양몽환과 등개우가 마차에 오르자 말은 다시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양몽환의 입에서는 실로 경탄할만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도옥이라는 자는 금환이랑이라고도 부르는데 원래는 오년 전에 제일 강했던 천용방의 향주(香主)였소.

그런데 도옥은 얼굴은 준수하게 생겼지만 마음을 쓰는 것이 얼마나 악독한지,

 

사람 죽이는 것을 파리 죽이기 보다 더 쉽게 할 뿐 아니라 교활하기도 그지 없소.

 

그러나 오년 전 무술? 대회에서 귀원비급을 차지하려고 많은 피를 흘렸소.

 

그때 그 귀원비급을 수천 길 절벽 밑으로 던져 버렸는데 그 귀원비급에 기록된 무술을 탐내어

 

이 도옥이 절벽 밑으로 쫓아 내려갔소.

 

그곳은 한번 떨어지면 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깊고 사나운 짐승이 칩거(蟄居)하는 곳으로서

 

백(百)이면 백명이 다 도옥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소.?

 

그러한 도옥이 살아나와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니 어찌 가공한 일이 아니겠소.]

듣기만 해도 입이 절로 벌어지는? 이야기에 넋을 잃고 있던 등개우는?

 

그래도 양몽환의 무공이면 도옥이란 자도 깨끗이 처치해 내리라고 믿고 있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그 도옥이란 자가 제 아무리 귀원비급에 있는 무공을 터득했다 해도 어찌 양대협님을 당하겠읍니까?]

[아니오. 아까도 말했지만 성질이 포악한 데다가 귀원비급의 무술까지 배운 지금은 내가 적수는 아니오.]


[그러면 그 도옥이란 자를 당해낼 사람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의아해 하는 눈치로 계속 묻는 등개우를 한참 바라보던 양몽환은 고개를 흔들었다.


[없지야 않지만...... 도옥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꼭 두 명이 있읍니다.

 

그런데? 그 두 명이 모두 여자요.]


[오! 그러면 바로 주약란(朱若蘭)이라는 여자입니까?]


[등형이 어떻게 아시오?]


[선배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럴 것이오. 사실 주약란으로 말하면......]


하고 말을 하려던 양몽환은 지나간 과거에 주약란과 조소접과 함께 지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 감개가 무량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갑자기 보고 싶은 생각에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양몽환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아름답기를 어디에다 비했으면 좋을지 모를 지경으로,? 재색(才色)을 겸비(兼備)하였고

 

또 지략(智略)과 무술도 말로 표현하지 못할만큼 훌륭한 여인이요.]


[그런데 양대협님! 말씀드리기는 황송하오나 그 주약란이란 여자와 양대협님은 보통 사이가 아니었다죠?]

[세속(世俗)에서는 그러한 말을 할지 모르지만 나같은 사람이 감히 주약란같이 높은 지위의 여자와

 

어찌 연인사이가 되겠소.

 

다만 남매(男妹)처럼 서로 아껴주었을 뿐이죠.]


하며 쓸쓸히 웃었다.

 

그러나 주약란이 황제(皇帝)의 딸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셨군요. 그런걸 저는 또...... 그런데 다른 한 분은 어떠한 여자입니까?]


[그 여자도 아름다운 여자였소.

 

들에 핀 국화라면 좋을까 ......

 

? 무술로는 주약란보다 더 월등하고 재덕도 또한 떨어지지 않는 여자죠.]


말을 하면 할수록 기억은 수년 전으로 돌아가 무술을 닦던 일,

 

단혼애에서? 군웅들과 대적하던 일,

 

그리고 시녀들을 데리고 언제까지나 떠나가는 자기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일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럼, 두 여자 중에서 누가 더 아름다운지요?]


[두 명이 다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 분간하기 힘들었소.]


[양대협님! 제 생각으로는 이번 도옥이란 자의 출현에 그 여자 두분을 찾아오면 어떨까 생각하는데요.]

[한 여자는 심산(深山) 속에 은거(隱居)해 있고 한 여자는 행방이 묘연해서 그것도 어려운 일이오......]

잠시 어두운 수심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듯 했다.

 

그리고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던 양몽환은 퍼뜩!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등개우가 말하는? 다정선자라는 여자가

 

혹시 행방이 묘연한 조소접(趙小蝶)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등형! 한가지 물어볼 말이 있는데 물어도 되겠소?]

[대협님! 무슨 말씀이든지 물어주십시오.]

[혹시 다정선자라는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실 수 있겠소?]

그러자 등개우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을 하는듯 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하여간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술이 너무 취해서 어디 정신이나 있었어야죠.]


[그래 어떠한 사람들이 모였던가요?]


[무술인은 물론 시인 묵객에서부터 고을의 유지라는 인물은 전부 모였었읍니다.]


[굉장한 잔치였군!]


[말도 마십시오.

 

생전 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술은 향기가 가득한 것이 마시면 마실수록

 

한잔 더 마시고 싶고... 그러다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중천(中天)에서 한창이고

 

주위는 고요한 것이 정말 일장춘몽이었죠.]

[아무 흔적도 없더란 말이오?]


[흔적이 뭡니까? 고기 부스러기 한점 떨어진 것도 없이 깨끗하게 치우고 사라졌더군요.

 

세상에 별난 일 다 겪었읍니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깜빡깜빡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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