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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원한 16

오늘의 쉼터 2014. 10. 19. 16:47

제24장 원한 16

 

 

 

이들은 남은 군사와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다가 이튿날 새벽이 되어서야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았다.

 

죽죽은 성문 위로 쫓겨 갔다가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용석은 바로 그 옆에서 사지가 잘려 죽었다.

 

그리고 곧 성이 완전히 함락되었다.

 

백제군의 대승이었다.

 

대야성에 입성한 윤충은 항복한 검일과 모척으로부터 그간의 일들을 자세히 전해 들었다.



그는 성주 품석을 찾았으나 이미 죽은 뒤였다.

 

하지만 원한에 사로잡힌 검일과 모척은 횃불을 밝혀들고 신라군의 시신 사이를 뒤져 품석을 찾아냈다.

 

그사이 윤충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던 성주의 아내 고타소와 검일의 처 성희를 잡아왔다.

 

검일과 모척이 품석의 시신을 들쳐 업고 오자

 

윤충은 그들에게 칼 한 자루를 집어주며 말했다.

“너희는 오늘 싸움의 일등 공신이다.

 

자, 기회를 줄 테니 바라던 바를 행하라.”

검일은 윤충이 준 칼을 들고 고타소와 성희를 번갈아 보았으나 차마 죽이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자 윤충이 웃으며 말했다
.
“그렇다면 내 어찌 너희의 말을 믿겠느냐?”

검일은 윤충의 의심하는 듯한 말에 이를 악물었다.

 

옆에서 모척이 어서 하라는 눈짓으로 검일을 부추겼다.

 

검일은 마침내 칼을 휘둘러 고타소를 베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자신의 처 성희도 가슴을 찔러 죽였다.

 

이성을 잃은 그는 성희를 죽인 여세를 몰아 이미 죽은 품석의 시신에도 수없이 칼질을 해댔다.

 

그 모습을 본 윤충이 크게 웃으며 검일을 치하했다.

“잘했다! 이렇게 하고 가야 백제 사람이 된다.

 

내 너희를 특별히 개선군의 선두에 세워 경사로 데려가서 후히 대접할 것이니

 

신라에서 살았던 일은 모두 잊어버려라.

 

이제부턴 강국 백제가 너희를 거 둘 것이다.”

대야성을 장악한 윤충은 군사를 성에 주둔시켜 새로운 국경을 만들고,

 

성에서 사로잡은 남녀 1천 명을 데려다 백제 서쪽 주현(州縣)에 나눠 살게 하였다.

 

또한 그는 성주 품석과 고타소 내외의 목을 잘라 나무 궤짝에 넣고 포로로 잡은

 

신라인을 시켜 금성으로 보냈다.

 

대야성의 승전보가 의자왕에게 전해진 것은 며칠 뒤였다.

 

그는 이미 미후성을 포함한 40여 개의 성곽을 공취한 뒤 대궐에 돌아와 있었는데,

 

얼마 안 있어 윤충으로부터 승전보가 날아들자 만조의 백관들을 불러 함께 기뻐하였다.

왕은 윤충이 성을 얻고 나서 행한 조치들을 백관들에게 자랑삼아 말했다.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구보다 먼저 성충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아뿔싸, 윤충이 큰 실수를 하였구나……”

성충은 땅이 꺼지도록 깊이 탄식했다.

 

왕이 그런 성충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공은 아우가 대공을 세우고 뒷일까지 빈틈없이 처리한 마당에

 

춤을 추지는 못할망정 어찌하여 한숨을 보태는가?”

하고 물었으나 성충은 하문을 받고도 한동안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자 성충의 옆에 앉은 흥수가 대신 입을 열었다.

“지금 상좌평이 걱정하는 바는 윤충의 처사가 지나치게 잔인하여

 

자칫 필요 없는 원한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있나이다.

 

전쟁이 일어나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은 비록 처참한 일이나 또한 불가피한 것이온데,

 

지금 윤충이 행한 잘못은 누구나 다 아는 그 불가피한 일을 새삼 처참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하물며 대야성에서 죽은 성주의 처는 김춘추의 딸이라고 들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김춘추는 신라 조정을 좌우하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당주와 교분이 자별하여 지금도 사석에서는 호형호제로 담소를 나누고,

 

그가 사신으로 가면 장안의 대신들이 줄을 지어 마중을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 자가 딸의 참혹한 수급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이까?

 

신 또한 윤충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흥수의 설명을 듣고 난 왕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보니 두 좌평은 순 겁쟁이들이구나.

 

윤충이 성주 내외의 수급을 잘라 금성으로 보낸 일은 잘한 일이다.

 

과인이 어찌 윤충의 마음을 모르겠느냐?

 

윤충은 수급을 잘라 보냄으로써 이제 막 보위에 오른 과인의 위엄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한편으론 동적들로 하여금 감히 대항하려는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기세를 제압하려는 데

 

그 뜻이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잘못된 일인가?”

왕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그대들은 김춘추가 그렇게도 두려운가?

 

하하, 만일 아바마마께서 그대들의 누렇게 뜬 얼굴을 보신다면 무어라고 하실지 궁금하구나.

 

김춘추가 무섭고 당나라가 무섭다면 좌평이란 직책이 너무 과하지 아니한가?”

왕은 호기가 지나쳐서 급기야 두 좌평을 조롱했다.

“전하, 신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옵고……”

흥수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려고 하자 왕은 팔을 흔들어 입을 막았다.

“아닐세, 하하. 내가 어찌 흥수의 말뜻을 모르겠나?

 

다만 별것도 아닌 일로 근심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농담을 해본 것일세. 하하하……”

임금은 한참을 더 혼자 웃다가 짐짓 옥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일이 아니니 두 좌평은 그만 안색을 밝게 하라.

 

그대들도 과인을 따라 미후성에 가서 보고 오지 않았는가?

 

신라 군사 그것들이 어디 군사들이던가?

 

김춘추가 아니라 김춘추의 할아비라도 고함소리 한 번에 새떼처럼 흩어지는

 

그따위 오합지졸들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과인은 윤충의 처사가 매우 마음에 든다.

 

앞으로 과인의 조정에서 일할 장수들은 윤충의 기백과 배짱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왕은 좌우에 명하여 윤충에게 말 20필과 곡물 1천 석을 상으로 주도록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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