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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원한 13

오늘의 쉼터 2014. 10. 19. 16:14

제24장 원한 13

 

 

 

그러나 품석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이놈아,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모르지만 난 그런 일이 없다.

 

그런 일이 없는데 무얼 조심하란 게냐?”

하고 도리어 역정까지 냈다.

 

부하한테 그런 말까지 듣고도 품석은 여전히 행실을 조심하지 않고 오로지 양물이 시키는 말만 들었다.

 

부옥의 뒤로도 두신(豆信)의 딸과 모척(毛尺)의 처 등 몇몇 여자가 품석의 노리개가 되었다.

그리하여 품석이 성주로 부임한 2년 남짓 사이에 성주가 여자 좋아한다는 소문이 짜하게 나돌아

 

관내 백성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오직 한 사람, 고타소만 제 서방이 그런 줄을 까맣게 몰랐다.

 

자고로 등잔 밑이 그처럼 어두운 법이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기로는 김품석 또한 매일반이었다.

 

그는 숱한 여자를 탐하며 추문을 뿌리면서도 정작 자신의 막객으로 있던 검일의 처가

 

아름다운 것은 꽤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검일은 동료인 죽죽이나 용석이 성주의 난잡한 행실을 걱정할 때도 되레 성주 편에서,

“성주가 권세를 이용해 남의 부녀자를 강탈했다면 모르지만

 

서로 좋아서 저지른 일을 어찌 반드시 성주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하겠는가?”

하고 역성을 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검일이 하루는 성주를 대신해 자성을 순시하러 간 사이에 검일의 처가

 

급한 일로 남편을 찾아왔다가 마침 관사 정문 앞에서 품석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품석이 검일의 처를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렇게 검일의 처를 알게 된 품석은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 무슨 적성 공략하듯

 

검일의 처를 공략했다.

 

검일의 처 성희(晟喜)는 남편과 금실이 자별해 시초만 해도 지조를 버리지 않았으나

 

하루는 품석이 귀한 비단 주머니에 금가락지를 넣어 선물하고 다정하게 웃으며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데 그만 마음이 저도 몰래 움직여서 귀신에 홀린 듯

 

허신(許身)을 해버리고 말았다.

도둑질과 서방질은 처음 한 번이 어려운 법이라

 

그 뒤로는 품석이 찾으면 성희가 마다하지 않고 찾는 곳으로 가서 어울렸는데,

 

몇 번 상관하며 보니 칼잡이 칼 쓰는 법 다르듯이 바람둥이 양물 쓰는 법이 다른지,

 

정신없이 뒤엉켜 놀 때는 평소 흉보던 감탕질이 절로 되고 희열에 북받쳐 눈에 눈물까지 고였다.

 

대낮에 그렇게 거벽을 치고 놀다가 저녁에 집에 와서 살림이 제대로 될 리 없었고,

 

남편과 잠자리 역시 전과 같을 리 없었다. 검일이 이 사정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

 

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검일이 처를 잡아죽인다고 설쳐대니

 

성희가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곳이 품석의 그늘이었다.

“나리, 대체 이럴 수가 있소?”

“무얼 가지고 그러느냐?”

검일이 입에 거품을 물고 씩씩대며 대들자 품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내 처를 건드릴 수가 있소?”

“나는 네 처를 건드린 일이 없다.”

“방금 이쪽으로 도망간 여자가 내 처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오?”

“그랬느냐?”

품석은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다가 그제야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 절색의 여인이 과연 네 처였단 말이냐?”

“그렇소! 긴말 할 거 없이 어서 내 처를 내놓으시오!”

“이놈아, 연약한 여인네가 관아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데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내 임무가 아니냐?

 

우선 네놈의 그 시퍼런 분기(憤氣)부터 거두어라.”

품석은 도리어 검일을 나무랐다.

“시끄럽소. 어서 내 마누라부터 내놓으쇼!”

평소 고분고분하던 검일이었으나 이때는 눈이 뒤집혀 뵈는 것이 없었다.

“어라? 저놈이 대체 어디다 대고 부랑을 떠는 게야? 네 감히 상전을 능멸하느냐?”

“상전이 상전 같아야 상전이지. 세상천지에 마누라 빼앗아가는 상전이 어디 있어!”

“뭐라구?”

웬만하면 제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참으려 했던 품석도 검일이 함부로 나오자

 

그만 부아가 치밀었다.

“너 이놈, 말 한번 잘했다!

 

상전이 상전 같아야 상전이라고?

 

그럼 이놈아,

 

서방이 서방 같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냐?

 

제 마누라 간수도 똑바로 못하는 놈이 어디 와서 행패야, 행패가?

 

너 같은 놈이 나랏일인들 무엇 하나 제대로 보겠느냐?

 

발칙한 놈 같으니!”

눈이 뒤집힌 검일도 지지 않았다.

“좋다. 네가 지위와 권세로 나를 압박한다면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

 

나는 여태까지 너를 상전으로 섬겨 충성을 바쳤으나 그 보답이 고작 이것이구나.

 

그간 관내에 떠돈 온갖 추문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

 

나는 이 길로 사직하고 금성으로 돌아갈 것이다.

 

금성에 가서 그간 너의 행실을 낱낱이 조정에 고변할 것이니 그리 알라!”

말을 마치자 쏜살같이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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