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원한 12
왕가의 일원이 되면 행동거지도 그만큼 조심스럽고 구설이 일면 책임도 큰데,
그렇다고 세상에 널리고 널린 여자들을 모두 버리자니 그럴 자신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던
품석으로선 여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세를 택할 것이냐 여자를 택할 것이냐,
그사이에서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김춘추가 만나자는 전갈을 보내온 것이었다.
품석이 춘추를 만나니 춘추가 다른 것은 아니 묻고 대뜸,
“나는 혼인을 하기 전에 몇몇 여자와 깊이 사귄 적이 있지만 천생배필이다 싶은 여자를 만나서는
꿈에서도 딴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네. 자네는 내 딸을 과연 천생배필이라고 여기시는가?”
하여 엉겁결에,
“물론입니다.”
하고 크게 고개를 끄덕인 뒤,
“저와 같은 것이 어찌 감히 그런 확신도 없이 귀녀(貴女)를 만나겠습니까.”
춘추의 기세에 눌려 제 본심과는 한참 동떨어진 소리까지 덧붙였다.
춘추가 그런 품석을 가만히 지켜보고 나서,
“그럼 됐네. 지난 일이야 복두를 거꾸로 뒤집어쓰고 외밭에서 네 발로 기었대도
나랑은 무관한 것이었지만 오늘부터는 자네가 주막에서 술 한 잔을 마셔도 나와 유관하네.”
뼈 있는 말로 뒤끝을 오달지게 여몄다.
그 말에 품석은 다만 예예 하고 머리만 조아렸다.
춘추가 품석과 헤어지면서,
“이제 자네는 내 집안 식구일세. 딸이 중하면 사위도 중하지. 허허, 조심해 가시게나.”
하고 다정스럽게 어깨까지 두드리니 품석은 더욱 송구하여 몸둘 바를 몰랐다.
양가에서 길일을 택해 혼인 날짜를 잡으려 할 때 고구려 군사들이 쳐들어와서
품석이 알천의 편장으로 칠중성 싸움에 나가 대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이를 두고 춘추는 마치 제 일처럼 기뻐했다.
여주가 품석의 공을 높이 사서,
“너에게 무슨 자리를 줄까?”
하고 의사를 묻자 품석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말한 자리가 대야성이나 삼년산성 성주 자리였다.
대야성이나 삼년산성은 원체 성이 견고해 성주 노릇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혼인을 하고 난 뒤 범 같은 장인과 멀찌감치 떨어져 지낼 수 있어서 좋고,
또한 서울보다는 행동도 자유롭고 보는 눈도 적어서 구설에 휩싸일 까닭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흑심을 모르고 보면 접경의 성주 노릇을 자청한 것이 일견 기특한 일이라
여주는 품석을 크게 칭찬하고 도독(都督)의 지위까지 보태어 대야성 성주로 보냈다.
도독은 지방 향군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병권(兵權)을 가진 자리라서
반드시 믿을 만한 자가 아니면 주지 않았는데,
이때는 품석이 김춘추의 사위가 될 거라는 소문이 여주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성주에 도독을 겸하게 된 것이었다.
고타소가 김품석과 혼례식을 성대히 올리던 날은 춘추도 울고 문희도 울고 지소와 법민도 다 울었다.
특히 큰누나 고타소의 등에 업혀 자란 법민은 이때 나이가 열두 살이었는데,
품석을 따라가는 고타소의 옷자락을 붙잡고 가지 마라며 어찌나 섧게 우는지
보는 사람들까지 눈시울을 붉혔다.
경사에서 혼인을 하고 대야성으로 부임한 김품석이 처음 몇 달은 새 신부와 눈도 맞추고
입도 맞추느라 한눈을 팔지 않았으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반년이 채 안 돼 일을 벌였다.
제일 먼저 그가 눈독을 들인 여자는 관내 늙은 현령 장기(壯己)의 처 부옥(釜玉)이었다.
품석이 자성(子城) 순시를 나갔다가 길에서 우연히 부옥을 보고 침을 꼴깍 삼키며,
“저 아낙이 뉘 집 아낙이냐?”
대야성에 온 뒤로 자신을 보좌하던 아찬 서천(西川)에게 물었다.
“삼지현 현령 장기공의 부인입니다.”
“장기공이라면 환갑도 넘긴 노인네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한데 저 부인은 나보다도 더 젊었구나?”
“장기공의 처가 재작년에 병사하고 새로 부인을 들였는데,
혼인하고 불과 석 달 만에 장기공이 병이 나서 부인이 날마다 불전에 치성을 드린다고 합니다.
아마 지금도 절에 가는 모양입니다.”
서천의 말에 품석은 구미가 당겼다.
부인은 젊고 아름다운데 늙은 영감이 제 구실을 할 리 없으니
남의 내외간 속사정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며,
“장기공이 참 불쌍한 사람이지?”
“아니야. 불쌍하기로 치면 실은 그 부인이 더하지.”
틈만 나면 한숨을 푹푹 쉬다가 급기야 관내 순시를 핑계로 삼지현 관아를 찾아가서
풍병(風病) 앓는 장기를 위문한답시고 그 부인에게 수작을 걸었다.
그런데 장기의 젊은 아내 부옥 또한 그리 정숙한 여자는 아니었다.
문병을 마친 품석이 부옥을 보고,
“내가 노공의 병에 좋은 약을 몇 첩 지어드릴 테니
언제 지나는 길이 있거든 내게 오시겠소?”
하니 부옥이 은근히 눈웃음을 치며,
“지나는 길이야 만들면 늘 있습지요.
금일 밤은 사정이 어떠하신지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수월했다.
품석이 이를 마다할 리 없어 그날 밤 은밀히 부옥을 만나서 일을 벌였는데,
위인이 어찌나 주도면밀한지 내막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외도가 다시 불이 붙었다.
품석이 옛날만 같으면 남의 부인을 건드려도 하룻밤으로 끝낼 일이었지만
그건 배부른 총각 시절, 여자들이 흔한 경사에 살 적의 이야기요,
촌구석에 와서는 사정이 달라져서 부옥과 내통이 꽤나 오래 이어졌다.
그래도 순진한 고타소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는데 병석의 장기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 친구인 학열의 집을 찾아갔다.
대야주는 본래 가야 땅이어서 가야인들이 많이 살았다.
학열 역시 대야주가 고향인 가야 사람으로,
오랫동안 찬간(撰刊:도성의 내마에 해당하는 벼슬)을 지낸 사람이었다.
“새로 온 성주가 행실이 과히 점잖치 못하네.
그러잖아도 서적(西敵)이 코앞에 똬리를 틀고 있어 민심이 예사롭지 않은데
성주의 행동이 본보기가 되지 못하면 대야성마저 떨어지게 될 걸세.
부디 죽죽(竹竹)에게 말해 성주가 다시는 내 처한테 한 짓과 같은 것을 못하게 해주게나.”
학열은 오랜 벗이 병든 몸을 이끌고 찾아와 부탁하자
당장 사람을 보내 품석의 휘하에 막객(幕客)으로 있던 아들 죽죽을 불렀다.
이때 용화향도 죽죽이 소사 벼슬을 살며 금성에서부터 김품석을 따라와
용석(龍石), 검일(黔日), 서천 등과 함께 성주를 보좌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불려가 사정 얘기를 전해 들은 죽죽은 품석에게 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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